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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著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 존레논 편

이제는 한편의 시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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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著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 존레논 편


1964년 2월 이들이 처음 미국에 상륙했을 때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케네디 공항에는 1만 명 이상의 틴에이저들이 운집했고, 그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반 쇼'의 시청률은 70%를 상회했다. 그 시간대의 뉴욕시의 소년 범죄는 드물게도 제로를 기록했다 ...

짤막한 비틀스 스토리다. 비틀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것을 창조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전설의 4인'(Fab Four)은 1960년대 내내 대중음악과 청년 문화를 주도하면서 시대를 대변했다. 1960년대는 그들의 것이었다.

1970년 그룹은 해산되었고 비틀스라는 이름은 무대에서 사라져 갔지만 멤버 모두가 빛나는 솔로 활동을 펼쳐 재결합설은 끊임없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러나 그룹 성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레논이 1980년 괴한의 흉탄에 피살되면서 사실상 비틀스 스토리는 끝이 났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리더였다. 그의 이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을 이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그가 사망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는 동시에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던가(권위를 자랑하는 이 양대 주간지가 문화 예술인을 발행일이 같은 날에 표지인물로 취급하기는 존 레논이 최초였으며, 지금까지 그밖에 없다).

그는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비틀스의 리더라는 사실은 차라리 상식이고,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폴 매카트니와의 다툼으로도 유명하다. 아내가 일본 여인 요코라는 점도 유명하다. 특히 우리 팝 팬들에게 '이매진', '러브', '오 마이 러브' 등 아름다운 팝송을 남긴 '부드러운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1970년 비틀스 해체 전후로 정치, 사회적 제반 문제를 강도 높은 톤으로 노래하고 한때 일선 투쟁에까지 가담한 '투사'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존 레논이라는 어찌보면 한 사람의 대중 스타의 존재에 시사성의 가치를 부여하고 무게를 실어준 이 중요한 사실이 우리 대부분의 팝 팬들 기억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틀스 시절이 1960년대 후반 존 레논에게 대중음악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인기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꿰뚫고 그 인식을 전달하는 미디어로 파악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3인칭 대중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 사회적 사고를 전달하는 1인칭 다큐멘터리를 쓰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1968년 그는 '혁명(Revolution)'이란 제목의 노래를 싱글로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곡은 레논의 사실주의적, 정치적인 노래쓰기의 신호탄을 올렸다.

'혁명을 원한다고들 하지. 그래,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지... 그러나 당신들이 파괴에 관하여 얘기할 때 나를 제외시키게 된다(count me out)는 것을 모르는가요... 헌법을 개정할 거라고들 하죠. 예, 우리는 머리를 변화시키길 바라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들 하죠. 대신 정신 상태를 해방시켜야 할 거예요. 모택동의 사진을 들고 나선다면 여하튼 누구와도 성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미국과 영국 전역에 민주화 투재, 반정 운동으로 시위와 집회가 들끓기 시작하던 그 당시 존은 과격한 행동주의 노선에 앞서 '정신 개조'와 '의식혁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금의 풍조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의식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 무렵 존은 자신이 양친 없이 이모 밑에서 자란 불우한 유년기를 비롯, 자신이 겪게 된 불행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자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존재 규명을 토대로 그는 비틀스 해산 후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1971년도 음반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의 수록곡 '어머니(Mother)'에서 존은 '어머니 가지 말아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광기서린 듯 절규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토해 내고는 곧바로 '노동 계급의 영웅(Working Class Hero)'이란 곡에서는 전투 의지를 다지는 현재의 변모된 자신을 펼쳐 보인다.

'그들은 가정에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학교에서는 당신을 매질하지. 당신이 똑똑하면 증오하고 바보일 땐 무시하지. 그래서 당신은 돌아 버려 그들의 좆같은(fucking) 규율을 따르지 않게 되지.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한 거야... 그들은 당신을 종교와 섹스와 TV로 중독시키지.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현명하고 계급이 없으며 자유롭다고 여기는 거야.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여전히 좆같은(fucking) 농부나 다름없다구.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하지... 영웅이 되려거든 자 나를 따르라구!'

존은 무차별로 법, 종교, 도덕 등 자본주의의 이념적 베일을 들추어 그 실체를 통렬히 고발하면서 개량과 개혁을 넘어서는 혁명을 부르짖는다. 의식 혁명의 단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실천과 투쟁의 시점으로 진입해야함을 느낀다. 노래로써 그가 내세운 테마는 '사랑과 평화'(Love and Peace)로 포장되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와 곧이어 공개된 <이매진(Imagine)> 음반의 수록곡을 비롯해 해산 직후에 싱글로 발표한 노래를 살펴보자.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올 거야. 네 머리를 두드릴 거야. 자신과 만나야 할거야. 곧 당신은 죽게 될 터인데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사랑 앞에서 비웃으면서 말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당신에게 달려 있어...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찾아올 거야. 당신의 발을 움직이게 할 거야. 네 주위의 형제들을 인식하라구. 네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말야... 우린 빛날 수 있어. 달과 별과 해처럼. 어서와, 만나자구.' '인스탄트 카르마(Instant Karma)'

카르마는 인연 또는 만남을 가리키는 말로, 존은 이 곡을 통해 미디어를 포함한 현대적이고도 '즉각적인 만남'을 역설하고 있다. 발표 당시 영미(英美)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상품 광고배경으로 이용돼 다시금 주목받았다.


'민중에게 권력을! 즉각 민중에게 권력을! 우린 혁명을 바라지. 똑바로 두발을 세워 거리로 나서야 해... 당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를 못받고 노동하고 있어. 그러니 그들이 사실상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해줘요.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이야.' '민중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난 죽고 싶지 않아. 난 법관이 되고 싶지 않아. 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난 성직자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울고 싶지 않아.'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I Don`t Want to bed a Soldier)'

직설적이고 과격한 메시지 일색이다. 마지막 곡에서 그 일단이 엿보이고 있지만, 특히 종교는 그의 독설을 피하지 못한다.


'신은 우리가 고통을 재는 척도로서의 관념일 뿐이야.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신은 관념이야, 그것으로 우린 고통을 측정하는 거지... 난 마법을 믿지 않아. 성경을 믿지 않아. 히틀러를 믿지 않아. 예수를 믿지 않아. 케네디를 믿지 않아. 석가를 믿지 않아. 엘비스 프레슬리를 믿지 않아. 밥 딜런을 믿지 않아. 비틀스를 믿지 않아. 난 나만을 믿어. 요코와 나를. 그것이 현실이야. 꿈은 끝났어. 어제까지 난 꿈을 쫓고 있었지만 이제 난 다시 태어났어.'

'신(God)'이라는 노래다. 여기서 신은 종교적인 신 외에 현실적 우상으로서의 신을 포함하고 있는데 존은 모두를 깡그리 거부하고 있다. 무신론자의 극단을 노출하는 곡으로 비틀스 때인 1966년 “비틀스는 예수보다 유명하다”(Beatles is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발언으로 일대 파문을 일으킨 전력을 면면히 이어나간 것이다.


그의 역사관, 사회관은 1971년의 명곡 '이매진(Imagine)'으로 완결된다. 존은 이곳에서 '천국이 없다고,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고는 말미에 가서 '사유재산이 없다고 상상해보라'고 유도하고 있다.

'물론 상상하기 어려울 거야. 그리되면 탐욕에 대한 필요도, 기아도 없지. 형제애만이 있을 거야. 모든 사람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나.'

루소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기초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의 원리로 파악된 사유재산제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노래는 1980년대 초반 영화 <킬링 필드>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영화 사운드 트랙의 백미라고 칭송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존의 생활권인 영미사회, 즉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부정이 테마인 만큼 공산주의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영화에 이 곡이 삽입된 것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 무렵 그는 어느덧 가수의 위치에서 크게 일탈, 노래 운동가이자 행위주체로 변해 있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정치색 짙은 일련의 이벤트에 적극 나섰으며 1960년대 말 대학가의 시위를 주도한 제리 루빈이나 애비 호프먼 등 신좌익 활동가와 친교를 긴밀히 한다. 활동 거점은 미국의 뉴욕.

'정치 가수'로서의 존 레논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사회의 배경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1960년대 말 불길처럼 퍼져나간 공민권 투쟁, 반전 운동은 1968년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과 월남전의 격화를 계기로 과격한 양상으로 번져갔다. 대학가의 징병 거부 시위는 무장 투쟁의 단계로까지 진입했고 평화를 주창한 비폭력 노선의 히피들 간에도 과격집단 이른바 '이피'(Yippie)가 등장했다. 이피들은 흑인 무장 투쟁 그룹인 '블랙 팬더'와 제휴, 폭력 혁명의 기치를 드높였는데, 이 이피들의 리더적 존재가 제리 루빈과 애비 호프만이었다.

비틀스 말기부터 이피의 입장에 공감을 가졌던 존은 이들에 동조하고 실천적으로 연대해 정치색을 노골화한다. 1969년 5월 캐나다 몬트리얼에서의 '베드인' 행사, 같은 해 9월 캐나다 터론터에서의 '라이브 피스' 공연을 가진 데 이어 1970년에는 미국으로 파고들어가 11월 뉴욕 아폴로극장에서의 '애티카 자선 콘서트', 12월 미시건주 앤아버의 미시건대학에서의 '존 싱클레어 자선 콘서트'(제리 루빈도 참석) 등에 잇따라 출연하여 평화를 외치고 사회의 억압 및 모순을 규탄한다.

애비 호프만과 제리 루빈과 같은 신좌익(New Left)과 손잡고 일선 투쟁에까지 나섰으니 일련의 사회운동을 체제에 대한 도발로 간주했던 미국정부가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존의 행동은 백악관의 닉슨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고 닉슨 정권은 '위험 인물'인 존의 미국 추방을 궁리하게 됐던 것이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존은 강도높게 미공화당 정부의 사기성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더욱 닉슨의 미움을 샀다. 당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와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었던 닉슨 정권은 존 레논이 급기야 그 무렵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미국땅에서 내쫓아야 했다.

닉슨 정부가 두려워했던 인물은 무장투사보다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특히 효과적인 존 레논 부류의 '문화적 게릴라'인 까닭이었다. 이때부터 FBI가 존과 요코의 생활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존은 정부 차원의 '외압'이 자신에게 가해져요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외쳤다.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있든 또한 어디에 있게되든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거리낌없이 말할 참이다.”

1972년 2월로 기한이 끝나게 된 그의 미국 체류 비자 연장 신청은 기각되고 말았다. 표면상의 기각 사유는 1968년 그의 체포까지 몰고왔던 영국에서의 마리화나 소지죄였다(궁색하지 그지없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려는, 존의 미국 정부 당국을 대상으로 한 길고도 치열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다.
비자 연장 신청 기각으로 가시화된 닉슨 정부의 국외추방기도에 분기탱천한 그는 1972년 6월 가장 과격한 메시지를 담은 2장짜리 음반 <뉴욕에서의 한때(Sometime in New York)>를 출반하여 미정부에 응답한다. 그때까지 나온 대중 가요 음반을 통틀어도 가장 급진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에서 존은 1971년 뉴욕시 애티카 형무소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주방위군이 발포해 43명의 사망자를 낸 반민주적 사태를 성토하고 있고, 영국정부에도 핏발을 세워 당시 격화일로를 걷고 있던 북아일랜드 식민 정책에 대해서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영국 정부에 대해서도 강경한 자세를 보여 1969년 11월 영국군이 월남과 나이지리아 전쟁에 참전한 데 항의, 비틀스 시절 받았던 국가공로훈장 MBE를 반환해버렸다).

'죄수를 쏘다니. 43명의 가련한 여인들을. 언론은 죄수에게 책임을 돌리지만 죄수들은 서로 죽이지 않았어. 록펠러가 방아쇠를 당겼지! 그게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거야. 모든 죄수를 석방하라!' '애티카(Attica State)'

'앵글로 잭슨 돼지들과 스코틀랜드인들이 북부(아일랜드) 식민지화를 위해 보내졌지. 피에 젓은 유니온잭을 흔들면서.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어찌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감히 억류한단 말인가.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에게 맡기고 영국군은 바다로 되돌아가라!' '일요일, 피에 젖는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고 역시 북아일랜드 식민화 정책을 비판한 노래 '아일랜드인의 운명(The Luck of the Irish)'과 함께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은 매상의 이익금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게릴라 단체인 북아일랜드공화군(IRA)에 기부되었다. 이 곡은 또 아일랜드 출신으로 1980년대 팝계를 강타한 그룹 유투(U2)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유투는 곡은 존의 것과 다르지만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이 앨범에는 또 '안젤라(Angela)'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데, 흑인 여성운동가인 안젤라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탄압을 고발하고 있다.

'안젤라, 그들이 당신을 감옥에 집어넣었죠. 당신의 배우자를 총살했구요. 정말, 당신은 세계의 무수한 정치적 죄수 중 한 사람이죠... 안젤라. 세계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가요? 세상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요. 당신은 곧 세계의 누이 형제들에게 돌아가게 될 거예요. 당신은 아직도 민중의 교사지요.'

그런데 과연 안젤라를 탄압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나중 8년간 미국 대통령에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레이건은 1970년 말 카터를 꺾고 대권을 쥐었고, 레논은 그때 피살되었으니 운명의 엇갈림치고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한때>음반의 꽃은 '여성은 세계의 노예(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라는 곡이었다.

'우리 여성더러 가정만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하지. 그리곤 그녀가 친구가 되기엔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는 거야. 그녀가 하인이 아니면 우릴 사랑하게 아니라고 하거든. 여성은 노예 중의 노예야.'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기둥인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노래는 대중 가요 최초로 우먼리브(Woman lib), 즉 여성해방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곡이라는 게 정설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우먼리브 물결이 솟구쳐 1969년 뉴욕에서 제1회 페미니스트회의가 개최되어 남녀의 완전 평등이 주창되었고 1972년에는 미국 최초의 여성월간지 <미즈>가 창간되었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대한 공식적 항의가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는 우먼리브운동에 열정적이었던 아내 요코의 사고방식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우먼리브를 매우 적절하게 소화해냈다고 평가받았다.

존은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념을 적극 실행에 옮겨 요코와 숫제 남녀 역할을 교체해버린다. 요코와 잠시 헤어졌다가 필생의 반려자임을 재확인하고 1975년 재결합한 이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아들 숀의 육아에 전념하는 등 안살림에 치중, 실제로 자신을 그렇게 불렀듯 '하우스 허스번드'(House Husband : 主婦 아닌 主夫가 되는 셈이다)로 변신하여 모든 바깥일은 요코에게 일임한다. 요코가 존의 사후에 사업가의 면모를 견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편 덕분(?)이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부분은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니거(Nigger)가 차별 용어에 해당된다고 해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차별을 고발한 노래인데 용어가 차별적이라고 금지되다니 우습기만 하다.

존의 노래는 그 이념성, 급진성, 그리고 묘사의 대담성으로 인해 방송 금지라는 억압이 유달리 자주 가해졌다. 심지어 '어머니' 같은 곡은 너무 광기를 띠고 있다는 이유로 발표 당시 일부 방송국에서 금지 지정을 받기도 했다(이유치고는 너무 인색하다).


그러나 1974년 이후 존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고 만다. 이 무렵 내놓은 음반 <마인드 게임즈(Mind Games)>나 <벽과 다리(Walls and Bridges)>에서 나타나듯 투사적 대열에서 극단적 퇴각을 시사, 민주화 투쟁에 지친 모습을 군데군데 노출시키고 음악적 주장은 자취를 감춘 채 공허한 사랑타령을 해대기도 한다. 물론 이 두 앨범은 요코와 별거중일 때 출반되어 절망과 공허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의 급진성에 매료된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주 오래 전 그것은 꿈속에서였을까? 단지 꿈이었을까? 알아, 난 알아. 그것은 너무 현실 같았어. 거리를 산책했고 열기 속으로 속삭이는 나무들. 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 두 개의 정신이 이상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 '9번째 꿈(#9 Dream)'

빅히트한 노래였지만 그의 작품으로서는 너무 무게가 제거되어버렸다. 불과 2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같은 외형상의 사상 전향(?) 때문인지 미국 정부는 마침내 1975년 10월 존에게 미국영주권을 발급해주었다. 더구나 그는 이후 음악 생활을 단절한 채 작품 출반은 물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꺼렸다. 한편 1987년 전기작가 앨버트 골드만은 존의 전기문인 『존 레논의 삶』을 내놓고 그 무렵 그가 깊이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 일대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뉴스위크>지는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을 커버스토리로 취급했다).

5년간 동면하고 난 후인 1980년 그는 앨범 <이중환상(Double Fantasy)>을 들고 화려히 컴백하여 새출발의 의지를 팬들에게 알렸다. 그렇지만 그 새출발의 정체란 일반인이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매일 우린 사랑을 나누곤 했지. 왜 우리 둘은 멋지고 편하게 사랑을 나누지 못할까. 이제 우리들의 날개를 펴고 휠훨 날아가야 할 때야. 또 하루가 우리 사랑을 비껴가지 않도록. 마치 새출발하는 것처럼 말이야.' '새출발 하듯(Just Like Starting Over)'

그의 새 모습은 '바퀴를 바라보며(Watching the Wheels)'라는 곡에는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난 그저 여기 앉아 바퀴가 굴러가는 것만을 응시할 테야. 난 정말 그것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더 이상 회전목마는 타지 않을 테야. 굴러가도록 내버려둘 거야.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내게 질문하지. 난 문제는 전연 없고 해결만이 있다고 말하지. 그러면 그들은 마치 내가 이성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젓지. 난 서두를 것 없다고 말하지. 난 단지 여기 앉아 시간을 즐길 뿐이야.'

참으로 많이 변질된 상태다. 과연 존은 훼절한 것인가. 엄청난 부와 안락에 취해 투쟁 의지를 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앨범 발표 몇 개월만인 1980년 12월 8일 그는 팬이라고 자처하고 순순히 다가온 마이크 채프먼이라는 정체불명의 청년이 쏜 총에 맞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얼마 전 미국 CIA의 조종으로 마이크 채프먼이 존을 살해했다는 미확인 외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존의 사망과 함께 미국은 레이건의 보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존의 후반기 삶을 집중 조명한 사람들은 “그도 별 수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의 거침없는 돌진과 견주었을 때 이같은 단정이 무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성급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방법론에 변화가 있었을 뿐 최후의 앨범에까지(아무리 냉정하게 따져도) 그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과 평화'는 결코 그의 두뇌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다만 가정이 큰 관심사로 부각되었을 따름이었다. 그의 유작 <이중 환상>에는 과잉이라고 여겨지리만치 요코에 대한 헌신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편을 흐르고 있다. 그에게서 가정이란 의미는 개인에게 가치뿐만 아니라 '변화의 밑거름'인 교육을 제공하는 '사회의 살아있는 세포'로 간주되었다. 그간의 현실 투쟁에서 이제 가족을 단위로 한 길고 긴 '역사투쟁'에 돌입한 것이었다.

존 레논의 전설은 신비와 혼돈의 안개에 뒤덮여 있다. 그가 보여준 인생의 드라마틱한 굴곡이 그에 대한 확실한 규정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방체제의 제반 가치를 통렬히 고발한 투사로서의 존의 모습은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그의 육신은 사라진 지 10년이 훨씬 흘렀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서방의 순종파 가수들'과 달리 현실 개혁과 직접 투쟁으로 일생을 숨가쁘게 달려간 그는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게 '노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서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쟈니 로튼, 퀸의 브라이언 메이, ELO의 제프 린, 유투 그리고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스타들이 그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레논이 사망했을 때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폴 매카트니는 이러한 추모사를 남겼다.

존 레논은 예술, 음악 그리고 세계평화에 누구와 견줄 수 없는 지대한 공헌으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1993/04 임진모 (jjinmoo@izm.co.kr)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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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http://www.youtube.com/watch?v=Gf-Q2rDd6Tw&search=beatles

[MV] Beatles Hey Jude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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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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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Added on December 29, 2005, 07:48 PM by bigriverharp

 

한 10년전에 한겨래 신문에서 "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라는 코너를 매주 운영했습니다. 나중에는 2권짜리로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는데 정치 사회 문화 외에도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현대 사상까지 인물 위주로 포괄하는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저는 지금도 이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사가다가? 분실하여 다시 구입한 세트입니다. 언론 고시? 준비하던 동생도 같이 끼고 열심히 봤었습니다... 상식 제고 차원에서).
말미의 내용처럼 레논은 롤랑 바르트나 쟝폴 사르트르와 동급이지요. 한시대가 끝났습니다....

아마도 직접 typing하신 정원창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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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100 - 비틀즈 (1962-1971)



전 세계 젊음 열광시킨 자유와 평화의 화음

뛰어난 음악성에 시대정서,이상담은 대중음악의 전설



파리/고종석 주재기자


한국의 1950년대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시인 고은은 "아, 50년대!"라는 영탄을 피할수 없었다. 어떤 세대, 어떤 공간의 사람에게는 1960년대가 그런 영탄의 대상 일 것이다. 만약 한 연대의 이미지란 것이 있다면 1960년대의 이미지를 짜내고 있는 것은 어떤 사건들과 사람들일까.

많은 현대사가와 저널리스트들은 그 리스트를 케네디가의 영욕, 베트남전쟁, 아이히만 재판, 알제리 독립, 유리 가가린과 잇따른 우주 정복의 무용담, 중국의 문화대혁명, 그리스의 군사쿠데타, 체 게바라의 비장한 최후, 68년 5월혁명과 그 이듬해 드골의 퇴진, 프라하의 봄 같은 항목들로 채울 것이다. 그런 현대사가들이나 저널리스트의 일부를 포함해서 더 많은 수의 대중은, 특히 그들이 60년대에 10대였거나 20대였다면, 그 리스트에 비틀스라는 항목을 기꺼이 끼워 넣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비틀스의 리더격이었던 존 레논이 지금부터 15년전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을 때, 당시의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발표한 애도 성명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그의 정신, 비틀스의 정신은 경박하면서도 진지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인 그 세대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경박하면서 진지" 60년대 상징



사실, 비틀스의 60년대 대표성에 대해서는, 그 영역을 대중음악에 한정하다 하더라도 약간의 이의가 제기될수 있다. 그들은 단지 짧은 한 순간 동안만 엘비스 프레슬리 한 사람의 인기를 누르고 팝음악세계의 정상에 머물수 있었다. 정치가요의 전통을 중시하는 이에게 60년대는 비틀스의 시대라기보다는 차라리 보브 딜런이나 조운 바에즈나 컨트리 조 앤 더 피시나 짐 모리슨이나 롤링 스톤즈의 연대다.



그러나 더 대중적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나 더 정치적이었던 보브 딜런들보다도 60년대의 이미지는 비틀스라는 이름에 더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우선 록 그룹으로서의 비틀스의 시작과 끝이 60년대와 일치한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비틀스의 앨범들은 그러나 30년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팔려나간다. 게다가 그들 주위에는 그들의 경쟁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화가 따라다닐다. 그런 신화들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해낸 일은 코드 사용의 극적인 다양성과 리듬의 혁명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비틀스식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통한 한 시대유행의 창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는 영국 지방도시 리버풀의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백만장자가 되는 계급상승의 신화를 이룩했다. 그들 모두는 한사람 한사람이 뛰어난 뮤지션이었고 그 네 싱어송라이터의 만남을 통해 그들 재능의 효과는 한껏 증폭되었다. 그들은 록 음악을 대중에게 더욱 더 친숙하게 만들면서도 비록 좌충우돌하기는 했지만 음악의 정치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그들 모두는 적어도 반전주의자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존 레논에게는 음악의 정치적 선동력을 먹어치우는 자본주의 유통회로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다. 요컨대 그들은 백만장자 명망가가 된 뒤에도 자기들을 그렇게 만든 좌우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 존 레논은 1940년 10월 9일 영국 서쪽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아일랜드계의 가난한 노동자 앨프리드 레논과 극장 안내원 출신의 부인 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탓에 이모 밑에서 자라난 존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56년에 이미 쿼리맨이라는 그룹을 조직했고 한해 뒤엔 자기보다 두살 어린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제임스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전쟁대신 사랑을" 베트남전 반대



그 이듬해에 땅딸한 몸통에 기다란 팔다리를 지닌 조지 해리슨이 쿼리맨에 가입했다. 60년에 실버 비틀스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은 도버해협을 건너 당시 유럽 대중음악의 중심지였던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하찮은 명성을 쌓았다. 앞의 "실버"를 떼고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레논 그룹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노스잉글랜드 뮤직스토어의 사장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다. 엡스타인은 레논과 그의 동료들에게 60년대 대중음악계를 불태워버릴 수 있는 연료가 내장돼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 자신이 기꺼이 그 점화자가 되기로 했다.



매니저 엡스타인의 제안으로 레논과 동갑내기인 리처드 스타키(에명 링고스타)를 새 드럼 주자로 받아들인 비틀스 4인조는 역시 엡스타인의 주선으로 62년 EMI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싱글 <날 정말 사랑해 줘>를 발표했다.


그들의 뒤이은 싱글 <제발 날 기쁘게 해줘>와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가 잇따라 히트차트 1위를 기록했을 때, 그리고 64년 2월 비틀스의 미국 공연 뒤 그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서 5위까지를 휩쓸었을떠, 이제 비틀스라는 이름은 대중음악사에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고딕체의 활자가 되어 버렸다. 이어서 비틀스 멤버의 삶을 그리며 영국 노동계급 청년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 <어느 힘겨운 날 밤>이 출시됐을때, 더 나아가서 마침내 66년에 비틀스가 집단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전쟁 반대를 선언하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 전부>라는 노래를 통해 무조건의 사랑과 평화를 역설 했을 때, 비틀스라는 이름은 성공한 노동계급과 대항문화와 프리섹스와 마약과 진보운동의 모순된 그러나 가장 강력한 60년대적 상징이 되었다.



67년 여름 엡스타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존이 일본계 미국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가까워지면서 보이기 시작한 비틀스의 분열 조짐은 존에 대한 폴의 라이벌 의식으로 가열돼 71년 그룹의 공식해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룹 해체 뒤에도 윙즈라는 새 그룹을 이끈 폴 매카트니를 비롯해서 비틀스 멤버들은 잇따른 히트 앨범을 발표하며 제 나름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리더격 존 레논, 열성팬에 피살



그룹 해체 뒤 존 레논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비틀스 시절부터 정치적 급진주의와 인도의 초월명상, 정신 요법등을 오가며 멤버들 가운데 가장 "히피적인" 면모를 보였던 존은 그뒤 타리크 알리, 로빈 블랙번 제리 루빈 등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앵글로 색슨 국가의 신좌파 청년들과 어울리며 급진적 정치운동가로 변모했다.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에 정착해서 반전, 인권운동, 북아일랜드 독립지원운동에 매진하며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운동가요 <민중에게 권력을><이매진>등의 노래를 만든 이 시기의 레논은 닉슨 행정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공화당 정부는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계속적인 추방명령과 FBI를 동원한 미행과 감시를 통해 그의 사생활을 옥죄었다.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열렬한 팬임을 주장하는 마크 채프먼에 의해 자기 집 앞에서 살해됐다. 바로 그 해에 사르트르, 티토, 에리히 프롬, 롤랑 바르트, 앨프리드 히치콕, 헨리 밀러, 팔레비, 장 피아제, 스티브 매퀸 ,로맹 가리 같은 이름들이 세상을 버렸다. 한 시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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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게시판, 네티즌 열기 뜨겁다

ㅠ.ㅠ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막 5공화국 인터넷으로 재미있게 봤다. 옥의티? 극 흐름상 큰 문제 안됐다. 몰입하면 그냥 막 넘어가는거다(발끄네가 그렇게 이쁘게 나오다니! 옥의티다. 지역 촌로들이 선거때 박끄네 손잡으며 먼저 가신 어머니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던데 바끄네는 아버지를 닮았다. 대게 딸은 아버지를 닮으면 잘생겼다는데 요 케이스는...).

 

마쵸 박정희 이하 역사의 반역자들이 인간적으로 멋지게 묘사되었다. 그럴 수 있다. 룸쌀롱 마담들이 모시고 술 한잔 따라드리고 싶었다고 한다고 그리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김재규는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김재규는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71년 보안사령관 시절 선거 승리를 위해 모진 고문으로 서승-서준식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서준식씨는 현재 인권운동사랑방 http://www.sarangbang.or.kr/ 에서 활동 중이다.

 

그래도 김재규도 나중에 건설부장관도 하고 했으니 그렇게 개념없는 인간은 아닐텐데 싶은데...

...

 

정말 김재규가 미국과 무슨 교감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떤 믿는 구석없이 아무 대책없이 그렇게 일처리하지는 않았을텐데... 확인된건 없고...

 

좌우간 김재규랑 민주주의는 관계없다.

 

 

 

 

'제5공화국' 게시판, 네티즌 열기 뜨겁다







[앵커멘트]

네티즌들의 논쟁이 제5공화국의 시청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김재규와 박정희를 두고 진정한 영웅을 가리고 있고, 실존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의 의견들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옥의 티를 지적한 시청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리포트]

'제5공화국'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실존인물과 역사를 다루고 있는 만큼 드라마 내용에 대한 진실공방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재평가가 시청자 게시판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시청자들 사이에 제일 큰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김재규에 관한 것입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김재규를 민주인사로서 높게 평가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그 당시 김재규는 차지철에게 무시당하고 박정희의 총애가 차지철에게 기울자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며 어차피 죽을거 후세에 모반자로 찍히기 보단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말로 미화한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네티즌은 김재규의 최후진술 원문을 올리며 누가 자기 목숨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자기 가족의 영원한 굴레를 걸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며 그의 용기에 고개를 숙인다는 반박의 글을 남겼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실존인물에 대한 평가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요즘같이 경제가 힘든 때에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고, 또 다른 시청자는 고도의 경제 급성장에 대해서는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수출로 급성장한 탓에 큰 인플레이션이 왔다며 '계란 위에 집짓기'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한편 옥의 티를 지적하는 시청자들도 많았습니다.

한 시청자는 24일자 방송 중 차량이 이동할 때 '대우정보시스템'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며, 이 회사는 지난 89년에 생긴 회사인데 79년 10.26사태에 등장한 것은 큰 오류라며 작은 티 하나가 극의 몰입을 떨어뜨린다며 주의해달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시청자는 박 대통령 총상으로 병원 후송 후에, 미 주요인사들이 회동을 하는 자리에서 이한우가 주한미국대사로 표기가 됐는데, 이한우역은 CIA 한국지부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극중 당시 보안사령관 소장이었던 전두환의 계급을 한자로 잘못 표기한 것과 대통령 전용차량의 유리창이 실제로는 보안을 위해 검은 선탠을 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방송에서는 유리창이 투명하게 표현됐다는 점 등도 지적됐습니다.

YTN STAR 손문선입니다. [저작권자(c) YTNSTAR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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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구, 2010년 전국 절반된다

지금도 서울 경기에 한 45% 정도 산다. 이게 나라냐? 나라야? 장난하냐? 장난해? 서울에서 애새끼 새로 태어나면 아토피에 걸릴 가능성이 많을까? 안걸릴 가능성이 많을까? 즉물주의 초딩 새끼덜

 

 

 

수도권 인구, 2010년 전국 절반된다
[YTN 2005-04-26 11:58]
포토
학생들에 차 '압수'당하고,
교직원들도 "물러가라!"
"찹쌀떡 팔던 고학생이
이제 주먹밥 봉사"
요즘 남편들 셋 중 하나
"아내에게 구박 당한다"
뉴스 Poll
검찰이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수사단계의 피의사실 공개를 제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인권보호 강화 - 찬성
국민의 알권리 침해 - 반대
[김진우 기자]

오는 2010년이 되면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절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통계청은 오늘 발표한 '시도별 장래 인구특별 추계결과'를 통해 수도권 인구가 2010년에는 2천4백57만명으로 전국인구 4천9백20만명의 49.9%에 이르고 2011년에는 50.2%로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올해 현재 천 71만명으로 전국 인구의 22.2%인 경기도 인구도 2015년에는 천 2백 77만명으로 전국 인구의 4분의 1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2020년 4천9백95만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어 인구 5천만명은 넘지못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또 출생아 수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에 평균수명은 늘어나 2015년에는 경기도를 제외한 8개 도에서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인구 노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부담해야할 부양비도 점차 높아져 2030년에는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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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당은 언제까지 개혁 팔아먹고 살건지 원

다음 대선 때까지 열우당은

잘하려는데 자꾸 발끈해서 발목잡아

하며 남 핑계나 대면서 갈꺼다.

 

지금 죽일 수 있는 박끈해와 열우당은 공생관계이다. 지들끼리 난리 부루스 치고 뭔 지랄하든 상관없지만 제발 '개혁'이라는 두 글자는 팔지 말아라

 

 

 

"여, 박근혜 결재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나?"
과거사법안 법 제정 취지 무색... 민노 "차라리 제정하지 마라"
  최경준(235jun) 기자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협의하고 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이 조사권한을 대폭 삭제한 데 이어 부적절한 조사범위를 규정하고 있어 법 제정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연말 박기춘 열린우리당 의원이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과거사법의 조사범위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4월 국회에서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나라당과 합의한 수정안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적인 세력'에 의한 테러·폭력·학살·의문사"로 확대됐다.

열린우리당 "'동조세력'은 안되지만, '적대적인 세력'은 수용"?

특히 한나라당은 이 합의안에 "이에 동조하는 세력"까지 추가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25일 양당간 합의가 결렬되자 "열린우리당이 합의했다가 번복했다"고 공세를 취했다.

이에 대해 문병호 의원은 "'동조세력'을 추가하자는데 합의한 적은 없다"면서도 "'적대적인 세력'을 넣자는 제안은 여야 합의 정신에 입각해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대적인 세력'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과거 국가보안법 사건까지 조사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과거사법이 '제 2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지적을 면키 힘들게 됐다.

문 의원 스스로도 '적대적인 세력'이라는 표현은 "국보법 사건을 다시 심사하자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는 "조사를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조사 받는 등 엉뚱하게 주객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민노당 원내부대표도 "과거사 규명이 아니라 친북·용공을 명분으로 탄압받은 민주인사를 재조사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이렇게 과거 민주인사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법이라면 차라리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시민단체 "확정판결 제외하면 뭘 조사할 수 있나?"

열린우리당 과거사법의 '조사 제외범위'는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면서 "다만 위원회의 의결로 민사소송법 및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민주노동당과 범국민위측은 열린우리당 안에 대해 "민·형사소송법의 재심사유가 워낙 제한적이기 때문에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사건이 아예 없을 정도"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민족일보 사건·통혁당 사건·동백림 사건·재일동포 및 납북어부 관련 간첩조작 사건·민청학련 사건·인혁당 사건·KAL기 사건 등이 모두 사법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병호 의원은 "확정판결된 사건에 대해 무작위로 심의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재심사유 규정'을 마련한 것"이라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시민단체의 과도한 피해의식"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지난 연말 현재의 안과 똑같은 안을 박기춘 의원 이름으로 제출했다가, 지난 3월 2일 본회의에 제출한 이원영 의원의 수정안에서는 "위원회의 의결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재수정한 바 있다. 결국 현재 열린우리당 안은 한나라당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지난 연말 안으로 후퇴한 셈이다.

열린우리당이 당초 안에서 군 의문사 진상조사 관련 부분을 제외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열린우리당은 군 의문사와 관련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방침이지만, 별도의 군 의문사 진상조사 특위가 국방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또 별도의 특위를 구성한다고 해도 위원회를 구성할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의문사진상조사특위의 현정덕 정책국장은 "군 의문사의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법적권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힘이 없으면 안된다"며 "과거사 청산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과거사법에 의해 군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방부가 조사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군 의문사 관련 부분을 제외함에 따라 상임위원 수를 7명에서 4명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이에 대해서도 민노당과 시민단체는 "과거사진상위 기구를 축소해 위상을 격하시킴으로써 실질적인 과거청산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정체성과 한계 드러나"

조사 범위의 '종기규정'이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까지"라고 규정돼 있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권위주의 통치'시점을 통상적으로 '군인 통치' 시절인 노태우 정권까지로 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직선제가 실시되기 전인 전두환 정권까지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통치'시기를 노태우 정권까지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92년 이후 각 대학 이념써클을 대상으로 자행됐던 '활동가 조작사건' 등 국가보안법 피해 사례는 조사대상에서 제외되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종전 안이 "1945년 8월 15일부터 이법 시행일까지"로 규정돼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역시 한나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은 지난 연말 진상조사위의 조사권한을 대폭 삭제한 바 있다. 위원회의 압수·수색·검증 영장 청구의뢰권, 금융자료제출요구권, 동행명령권 등 실질적인 조사권한이 사라지면서 진실규명이라는 법안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시민단체 등에서는 청문회만이라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미 지난 연말 한나라당과 합의를 통해 삭제했는데 어떻게 다시 하자고 할 수 있겠느냐"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정덕 정책국장은 "아무리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의 결재가 없으면 어떤 쟁점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정체성과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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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연기 신당바람 우리당 추월?

정말 대단한 나라의 대단한 주민들이다. 충청권 신당? 아무 이데올로기 지향도 없이 오로지 지역당? 그것도 내놓고? 김종필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명백한 쿠데타다. 다른거 다 그래로이고 오로지 상층부만 바뀌니까! 이런 쓰래기 정당 설래바리치게 만드는 지역주민 각성해야 한다. 이래서 멍청도다.

 

오늘 의정부에 들렀는데 유세 중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다니지 못하게 만든 열우당 심판하자는 딴나라당 후보 유세다. 참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못하고 돈과 권력에 의해 서열화시킨게 바로 딴나라당이다. 그 전신 민정당이다. 그 전신 유신 공화당이다. 한심한 사기 정당 열우당 한일 없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 없다고는 하지만 딴나라당이 할 수 있는게 강남구 하는 꼴 마냥 CCTV 몇개 설치하는거 말구 더 있나? 지들은 양평 러브호텔가서 놀구.  

 

 

 

 

공주·연기 신당바람 우리당 추월?
[현지르포] 한나라는 인기 바닥...“반대만 하는 당은 안찍어유”
2005-04-24 12:59 동성혜 (jungtun@dailyseop.com)기자
“모르겠어유, 아 참 잘 모른다니까유”

23일 오전 충남 공주시 중동 사거리. 공주시의 강남으로 불리며 유동인구가 많아 하루에도 몇 차례씩 6명의 후보가 돌아가며 유세를 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몇 년 동안 과일장사를 해 온 아주머니(54)는 재선거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일언지하로 잘라 말했다. 그는 “시끄럽기만 하다”며 투표를 할지 결정하는 것도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후보자 선거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탄 택시에서 기사 심모 씨(62)는 “글쎄... 선거에 관심도 없고 누구한테 물어봐도 선거 분위기는 별로라고 할것”이라며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재선거 분위기가 상당히 가라앉았다고 말한다.

행정도시 추진에 대한 여론과 중부권 신당 변수 등이 복잡하게 얽혀 민심의 향배가 주목되고 있는 충남 공주연기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이에 대해 각 후보 사무실에서는 “정말 속내를 알기 어려운 충청권”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정진석 후보 사무실에서는 “나도 공주사람이지만 공주는 어떤 선거든 출구조사와 결과가 다른 곳이다”면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만큼 말을 아껴 외부 기자들이 오면 취재가 까다롭다고들 한다”고 지역민의 특성을 설명했다.

행정도시법 '토지보상'이 관건

공주연기는 여전히 행정도시 문제가 주민들의 큰 관심사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시각과 해법만큼은 지난해 4·15 총선 때보다는 한결 유연해 보였다.

공주 터미널 앞에 택시를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최모 씨(65)는 “전에야 행정도시 때문에 바람이 불어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며 “어차피 통과된 법이니 그대로 진행할거고 얼마만큼이나 보상이 이뤄질지 그게 문제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 열린우리당 공주,연기 재보궐 선거 이병령 후보가 20일 공주시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어른신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 한나라당 연기 공주 박상일 후보가 20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시장 거리 유세에서 유권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 4.30 재보궐 선거 충남 공주,연기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진석 후보의 조치원읍 거리유세를 최근 자민련을 탈당한 류근찬 의원이 격려하며 지켜보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또한 그는 “토지 보상 때문에 쉽게 되것어유”라며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했다.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던 김모 씨(57)는 "이번에는 나오는 후보 모두 자기가 (당선)돼야 행정수도가 안정되고 보상문제도 쉽게 해결될 거라 하지만.."이라고 뜸을 들이다가 "그래도 앞에서는 주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반대하는 쪽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라고 말을 흐려 행정도시 문제로 여전히 내부 마찰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을 빗대기도 했다.

그들의 지적대로 각 후보들 역시 실질적인 보상 문제를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병령 열린우리당 후보는 연기 지역에 행정도시가 건설되면 공주에는 청와대 지청을 설치할 것을 내세웠다. 박상일 한나라당 후보는 정부가 제시한 4조 5000억원의 보상가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100% 등 최대 보상을 공약했다.

유근복 민주노동당 후보는 행정도시보다 쌀 수입개방 반대와 비정규직 철폐,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조관식 자민련 후보는 행정도시 보상 확대와 이주대책, 규제완화를 공약으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무소속 임덕수 후보는 전원도시로 추진되는 행정도시와 연계한 세계적인 문화관광지 개발을, 무소속 정진석 후보는 실행력을 바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완성과 맞춤형 토지보상을 내걸었다.

하지만 후보자들의 이런 공약에도 불구하고 공주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최모 씨(38)는 유세한다고 시장을 찾은 후보자들 중에서 자신의 정책을 말하는 후보자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그저 서로 남 헐뜯기 바쁘다. 아까 모 후보는 경쟁 후보의 경선 과정을 말하며 1등이 되고도 선거법 위반이라며 떨어진 예비 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매일 밤 술잔을 붙들고 울고 있다고 말하다”라고 설명하며 연신 혀를 찼다.

최모 씨가 말한 내용은 열린우리당 경선 과정에서 1등이 된 박수현 예비 후보자가 허위 경력기재로 도중하차하며 경선을 두 번 치른 과정을 말한다.

최모 씨 옆에 앉아 기자와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강인규 씨(42)는 경선과 관련해 할 말이 많은 듯 “그 울었던 지지자가 바로 나”라며 “솔직히 행정도시법이나 신당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경선 과정의 잡음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왜 신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 씨는 “신당이란 게 실상이 없다”라며 “더구나 심대평 충남지사가 지지하는 정진석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해도 바로 신당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평을 하기도 했다.

중부권 신당 '바람' 부나

이병령 후보 사무실은 심대평 충남지사의 신당 바람을 상당히 신경쓰는 눈치다.

이 후보측은 “당장 신당이 창당될지 그건 모르지만 심 지사가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재선거는 조직선거이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신당 바람은 애드벌룬에 불과하다”고 애써 낮춰 말했다.

또한 "자민련과 신당 표가 분산되고 행정도시의 안정적인 추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 지지도가 후보지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정진석 후보측은 후보자의 인물 지지도가 높고 심대평 지사의 지원에 따른 신당 바람을 기대하는 편이다.

정 후보측은 “심 지사가 12년 동안 70~80%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당선된 분이라 든든하다”고 속내를 드러내며 “다음주에는 변웅전 전 의원, 류근찬 의원이 와서 우리 후보를 지지할 예정이고 이번 선거를 통해 정 후보가 당선되면 이르면 올 10월경에 신당의 실체가 보이지 않겠는가”고 신당 창당에 대한 자신감을 비췄다.

이에 염홍철 대전시장의 열린우리당 입당이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에 "우리는 염 시장과 갈 길이 다르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오차범위 치열한 각축전

공주와 연기는 같이 행정도시로 지목됐지만 그 속내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공주의 경우 행정도시보다는 중부권 신당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이고 있으며 연기는 역시 행정도시 추진이 관건이다.

열린우리당 충남 도당 관계자는 "실제 행정도시의 대부분이 연기지역에 치중됐고 공주는 연기와 맞닿는 일부분만 행정도시가 포함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지역적으로 공주는 예전에 부여 다음으로 중요한 자민련 텃밭이었고 심대평 지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 시민들은 은근히 지역민의 소리를 대변할 정당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공주 보다 인구수는 적어도 당락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연기지역 유권자의 표심도 쉽게 볼 수 없다.

지난해 당선된 오시덕 열린우리당 후보의 승리요인이 70%대의 전폭적인 연기지역 주민들이 지지한 결과다.

토지수용 지역에서 만난 한 주민은 "토지수용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야 보상 때문에 여당에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빚까지 내서 땅을 사놓은 사람들은 행정도시에 목을 멘 상황이다"면서 "뭐라뭐라 해도 여당이 돼야 힘입게 추진하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주연기는 현재 이병령 열린우리당 후보와 무소속 정진석 후보 사이의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높다. 또한 두 후보측에는 서로 “오차 범위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공주연기의 표심과 농가 위주의 지역적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하기는 어려운 형세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동성혜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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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quot;냉정대처 일본이 한수위

다시 한번 역사 인식의 부재... 그 나이 먹도록 뭘 배웠는지... 나이는 똥구녕으로 먹었는지...ㅠ.ㅠ

 

 

 

<조영남 "냉정대처 일본이 한수위">
[연합뉴스 2005-04-24 12:42]
포토
MC 임성훈,
8년만에 KBS 복귀
에릭, 본능적으로 멋을 아는
메트로섹슈얼
문근영, "'올드보이' 유지태,
도전해볼거예요"
문성근 “한사람의
시민이었을 뿐"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일본 우파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이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펴낸 가수 조영남씨와 회견한 기사를 24일 실었다.

책의 일본어 번역을 계기로 일본을 찾은 조씨는 회견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그는 2차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가본 소감에서 "속았다는 생각이었다. 일반 신사와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 대단한 장소로 세뇌됐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인은 자신의 선조가 아무리 심한 일을 했어도 선조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반면 우리는 범죄자로 취급하니까 합사와 참배는 괘씸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사물을 놓고 지배한 쪽과 당한 쪽은 서로의 입장을 진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독도 및 교과서문제와 관련,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shin17

shin@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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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quot;'올드보이' 도전?

근영아, 예쁘게 다 큰 담에 도전해라.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다코타 패닝, 숨바꼭질에서 청승맞은 연기하는거 보면 괴롭다. 예술도 좋은데 개인적으로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i am sam에서 Lucy 수준으로 나오는게 좋을 것 같다. 당분간!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Lucy in the Sky with Diamonds...Lucy in the Sky with Diamonds...ah~~

 

덜떨어진 샘도 비틀즈가 해산한건 요꼬 때문이 아니라고 이해하는데 우리 초딩들은 왜 이리 개념이 없을까

 

 

 

문근영, "'올드보이' 유지태, 도전해볼거예요"
[마이데일리 = 강승훈 기자]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문근영(18)은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맡았던 이우진 역할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영화 '댄서의 순정'의 조선족 댄서 장채린으로 분해 열연한 문근영은 기존 작품인 '가을동화', '장화홍련', '어린신부' 등을 통해 순수함과 어두움 그리고 발랄한 캐릭터를 소화했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올드보이'의 이우진 같은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배역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이우진이 악역이기는 하지만 악함을 표현하면서도 내면적인 미묘한 감정을 잘 살린 것이 원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문근영은 "'어린신부'와 '댄서의 순정'처럼 따뜻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많이 하기를 희망한다"고 은근한 욕심도 내비쳤다.

문근영은 "사람들이 '장화홍련'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껴 이후로는 어두운 역할만 찾게 됐다"고 말한 후 "하지만 '어린신부'를 통해서 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듣고 행복함에 젖어서 따뜻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덧붙여 그녀는 하고 싶은 배역도 많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댄서의 순정'은 오는 28일 개봉 예정.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장채린으로 분해 열연한 영화배우 문근영.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강승훈 기자 tarophin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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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데일리안 ‘대통령 저격 만평’ 놓고 옥신각신

베리타스의 힘? 이 인간 진짜 보수인가? 그럴리가 있나? 대한민국에 보수가 과연 있나?

대한민국 보수 자처하는 인간들은 정신적 조국인 미국 가서도 그 알량한 affirmative action, 완전히 철폐하자고 설래바리치고 다닐 인간들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지향 미국은 1950년대 초코렛 얻어먹던 당시의 미국이다. 거기서 정체됐다. 우리는 그래도 외형상politically correctness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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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데일리안 ‘대통령 저격 만평’ 놓고 옥신각신
“저급하다, 사과하라”에 사과그림 게재 조롱…보수매체 시장 갈등 시각도
2005-04-24 16:50 김현 (guist10@dailyseop.com)기자
노무현 대통령 저격 패러디에 대한 사과 문제를 두고 보수 인터넷 매체인 독립신문과 데일리안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데일리안의 한 논객이 23일 컬럼에서 “독립신문이 패러디 사건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하자 독립신문이 ‘고결한 중도보수께 드린다’며 과일 사과 한 알을 내밀며 비꼰 것이다.

컬럼과 사진으로 오간 두 사이트의 공방을 지켜 본 네티즌들의 의견은 보수매체 시장경쟁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의 발단은 데일리안 사이트에서 ‘베리타스의 힘’이라는 필명으로 고정칼럼을 쓰고 있는 논객의 칼럼에서 시작됐다.

데일리안 “언론 자유 보장받는 한 페어플레이 해야”

그는 히틀러 암살을 기도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예를 들며 “독립신문의 노 대통령 저격 패러디는 얼핏 ‘본 회퍼’의 히틀러 암살 기도를 연상케 하며 동시에 노 대통령에 대한 독립신문의 증오와 적개심의 단면을 보여 준다”며 “문제는 노 대통령이 히틀러와 비견될 만큼 악한 사람이냐는 것인데 독립신문은 ‘그렇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볼 때 아직은 속단”이라고 말했다.

▲ 독립신문에 게재된 ‘사과’ 만평.  
그는 또 “보수우익은 노 대통령의 국가경영 방식에 반대하여 그를 격렬하게 비판하며, 그의 경박하고 방정맞은 통치스타일을 비웃고 혐오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류 공공의 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노무현의 외교기조와 대북관이 매우 위험스럽게 보이며, 그래서 이 나라가 혹시 김정일의 적화야욕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그게 너무 지나치면 자칫 강박증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패러디의 자유를 허용하는 노무현 정부와 페어플레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물리적으로 방해하거나 봉쇄하지 않으며 이 나라는 아직까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며 “따라서 우리는 노 정권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공격할 수 있지만 모함이나 저주, 직설적인 인신공격은 ‘더티 플레이’이므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민주적인 방식에 의하여 정권을 잡았고 허락된 야망을 실현하고 있으며 우리가 볼 때는 매우 못마땅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국민들이 그것을 허용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또 “그런 의미에서 독립신문의 노무현 ´저격 패러디´는 유감스런 해프닝이며 행동이 수반된 것은 아니지만 선동적 요소가 엿보인다”며 “패러디가 일부 보수우익들에게는 통쾌감을 주었을지 모르나 국민 대다수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자칫 극우집단의 히스테리로 보여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보수우익 전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독립신문 “고결한 중도보수께 사과 (한 알) 드립니다”

컬럼의 결론은 독립신문이 직접 사과를 하라는 것.

그는 KBS 정연주 사장이 박근혜 대표의 ‘알몸 패러디’를 사과한 것을 예로 들면서 “만약 좌파 찌라시들이 박근혜에 대한 ´저격 패러디´를 했다면 독립신문이 제일 앞장서서 비난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솔직히 이번 ‘저격 패러디’는 ‘알몸 패러디’보다 훨씬 더 강도가 심했으며 독립신문의 신혜식은 이번에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하여 정중하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독립신문은 여기에 과일 사과를 내미는 만평 사진으로 한껏 비꼰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이 신문은 ‘스나이퍼 패러디 사과드립니다’ 라는 제목의 만평을 실어 “데일리안 베리타스님께 드립니다. 고결하신 중도보수님께 심려를 끼쳐...”라며 사과를 내밀면서 “세파에 거칠어진 두 손으로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독립신문은 또 게시판에 이같은 데일리안의 칼럼을 올리면서 독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네티즌들은 “데일리안은 독립신문 패러디에 대해 그동안 침묵하더니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드러 가니깐 사과하라고 하네”(아이디 저격) “경찰이 수사할때 그런글을 올리면 좋았을거 같았는데 그때는 침묵하더니 데일리안이 그런 컬럼을 오늘 올린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음..)는 글을 올렸다.

두 보수 인터넷 매체의 분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나왔다.

‘국민’ 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데일리안과 독립신문은 같은 편에 서 있는 우파 신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무슨 망발을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볼 때 반성해야 할 측은 데일리안”이라고 말했고 아이디 ‘똥닙변소’는 독립신문을 향해 “까놓고 얘기해서 니들 스스로에겐 당장 방문자 늘어서 좋겠지만 전체 우익진영엔 엄청난 독이란거 알고 있니? 니들은 우익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폐기 되어야 할 쓰레기 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 밖에도 “독립신문은 너희 같은 인터넷 찌라시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우익의 성지”(까불지마) “데일리안은 울고 싶은 독립신문의 뺨을 때린 꼴”(거북이) “독립신문 편드는 척하면서 데일리안과 독립신문을 은근히 이간시키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요즘 노빠들이 우익들을 이간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감시원) 라는 글이 올라왔다.

보수 인터넷매체 시장 점유 갈등 드러내

이같은 두 사이트의 갈등을 촉발시킨 데일리안의 칼럼은 최근 독립신문이 자사 영향력을 홍보하는 기사를 연달아 내보낸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보수 인터넷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두 매체의 신경전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독립신문은 21일 기사에서 한 인터넷 순위조사 사이트를 인용해 ‘독립신문의 독자가 10만명을 넘었다’고 보도했으며 다음 날 기사에서는 “이른바 ´보수´라고 불리는 자유진영 사이트들이 방문자집계순위에서 약진을 보이고 있다”면서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의 사이트와 프리존만을 언급하고 데일리안에 대한 얘기는 빼놓았다.

‘이게 뭡니까’는 “독립신문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지 않습니까. 아니면 독립신문이 랭킹이 높고 열혈 지지자가 많아서 단순한 경쟁상대로만 보입니까”라고 물은 뒤 “최근 우파사이트 순위는 거의 대부분 낮게 나오고 있는데 데일리안만 최근에 한달 사이 300등이나 오른 게 좌파들과 손잡은 건 아닌지 의심이 된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네티즌은 “독립신문이 최근 랭킹과 관련, 은근히 데일리안의 신빙성을 까는 듯해서 기분이 나빠서 뒤늦게 뒷북치는 주장을 펼치는 건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독립신문은 지난해 초 보수 인터넷 매체의 후발주자인 데일리안의 창간 당시 ‘건전한 보수진영을 위한 새 인터넷신문의 창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으며 데일리안은 지난해 11월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가 국가보안법 사수 시위를 벌이다 구속됐을 당시 이 소식을 상세히 보도하는 등 업계의 우의(?)를 과시해왔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현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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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우발적 행동을 떼강도라니” vs 조선 “그게 강도 아닌가”

재밌는 것은 아래 리플이다. 아래 초딩들이 쓰래기같은 리플 많이 붙였다. 그래서 절도가 아니란 말인가! 뭐 이런 내용이다. 두 신문의 기사 쟁점은 단순한 동시절도냐 조직절도냐 하는 것이다(솔직히 좆선도 좀 쟁점을 헤매는 것 같다). 이런 기사 하나 읽고도 기본적인 독해를 못하니 학교에서 대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암기만 하니 독해 및 상상이 불가능하다. 우리 옛날에 단순 암기 학력고사 공부할 때 보다는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물론 각종 포탈에 부러 그렇게 리플다는 쓰래기들도 있기는 하지

 

 

집합범-다수인이 동일한 방향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공동으로 작용하는 범죄로 범죄구성요건이 군중범죄이다. 절도에 해당없다.

 

합동범-2인 이상이 현장에서 공동하여 범행하는 경우’로 좆선이 요렇게 우기고 있다.

 

동시범-공동의 의사가 없는 경우에 2인 이상이 죄를 범했더라도 공동정범이 될 수 없다. 바로 요케이스 답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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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우발적 행동을 떼강도라니” vs 조선 “그게 강도 아닌가”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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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자 조선일보의 <중학생 수백명 '편의점 습격사건'> 제하의 보도를 놓고 조선과 오마이뉴스가 공방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사건의 요지를 이렇게 전했다.

"지난 4일 정오 무렵 경기 수원시 인계동 수원문화회관 인근의 한 24시간 편의점. 일일체험 학습의 하나로 문화회관을 둘러본 K중학교 학생 400여명이 점심 식사 후 편의점으로 몰려와 진열장에서 껌과 음료수, 과자, 로션 크림, 헤어젤 등을 닥치는 대로 집은 채 돈을 내지않고 가게문을 나섰다"면서 "당시 점장과 아르바이트 직원 등 2명이 '학생들, 뭐하는 거야!'라며 제지했지만,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20일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당시 근처 광장에 1·2·3학년 학생 1600여명이 모여 있었고, 이 중 400여명이 편의점에 몰려와 300만원 이상의 물건을 그냥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오마이뉴스는 같은 날 이 기사에 대한 반박기사를 실었다. 오마이뉴스가 문제제기한 핵심은 조선이 학생들을 떼강도로 몰고 있다는 것.

오마이뉴스는 반박기사에서 K중학교 김 모 교사의 주장을 빌려 "(한꺼번에 물건을 사려는 학생들이 몰려) 물건을 계산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자 한 학생이 짜증을 내다못해 그냥 물건을 들고 나왔고, 군중심리에 휘말린 학생들이 하나둘 따라하면서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의도적인 강도행위가 아니라 한두명의 학생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절도를 나머지 수백명의 학생들이 군중심리에 의해 따라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오마이뉴스의 반박기사에 대해 첫 반론은 조선이 아니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부터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22일 저녁 <조선일보 보도면 왜곡이라고 주장해도 되나>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사실접근에서 중요한 부분은 학생들의 우발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물건을 그냥 들고 나갔다는데 있다"면서 집단절도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23일 장문의 반박기사를 조선닷컴에 실었다. 조선은 "오마이뉴스에 묻고싶다"면서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물건을 들고 나가도 되는 것인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돈을 내 계산하고 물건을 가지고 나오거나, 그 대기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상점을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앞서 절도행위 자체에 주목한 반박기사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조선은 또 '습격사건'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두 눈을 뜨고 멀쩡히 서 있는 편의점 주인에게, 수백명의 학생들이 가게에서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는 분명 '습격'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조선은 또 <조선일보 보도면 왜곡이라고 주장해도 되나>라는 제목도 문제삼았다. 조선은 "'조선일보 보도면 왜곡'이라는 말부터가, 본질보다는 특정 매체를 흠집내려는 의도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목부터가 오마이뉴스의 편향된 시각을 보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선닷컴의 기사에 대해 오마이뉴스도 같은 날 곧바로 제하의 재반박 기사를 실었다. 오마이뉴스는 "학생들이 절도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조직적 범죄냐, 우발적 범죄냐'에 대해서는 '양형(量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었으며 <조선> 기사는 과정을 생략한 채 (집단절도의) 결과만을 보여줌으로써 400여 명의 학생들을 '조직폭력배'나 '떼강도'로 몰아세우지 않았나?"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실을 전한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들어 조선 기사가 학생들을 과도하게 ‘범죄집단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오마이뉴스는 “누군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게문을 나서자 뒤따라 물건을 든 채 편의점을 빠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는 연합뉴스의 보도를 인용해 "이만큼이라도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오마이뉴스>도 <조선> 기사에 문제를 제기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또 조선일보 사주의 탈세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신문사주가 탈세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는 현실에 납득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며 "세상이 꼭 '법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먼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이호석(arisan@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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