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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10/09

이왕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친절한 금자씨>는 들뢰즈의 것이다
이왕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텍스트만보기   정민호(hynews20) 기자   
천만 관객 시대가 알려주듯 영화는 이제 국민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영화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진 때가 오늘이다. 더군다나 영화관의 스크린 위에 나타난 영화가 아니더라도 비디오나 TV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영화들까지 생각한다면 영화를 본다는 것은 국민의 문화행위 중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2005 효형출판
그런데 이러한 문화행위는 어느 정도나 그 값어치를 해내고 있을까? 양적인 팽창과 달리 질적으로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소도구적인 역할로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보고 난 뒤에 곧바로 잊게 되는 무의미한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이왕주, 그 역시 이러한 의문을 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의문을 품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분야인 철학을 살려 영화들을 한 단계 높은 단계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영화와 철학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는데 그리하여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가 등장하게 됐다.

<디아더스>는 푸코, <친절한 금자씨>는 들뢰즈의 것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영화들을 낯익으면서도 낯설게 여겨지는 철학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디 아더스>는 푸코의 것으로, <친철한 금자씨>는 들뢰즈의 것으로, <슈렉>이나 <존 말코비치 되기>는 칸트의 것으로, <피아노>는 에리히 프롬의 것으로, <북경자전거>는 하이데거의 것으로 해석하는 등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철학을 만나고 철학을 말하면서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영화와 철학의 만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가령 지은이는 <북경자전거>에서 하이데거의 이름을 찾아내는데 그 근거는 '부숴질 수는 있으나 패배할 수는 없는 자', 즉 '존재'라는 개념이 영화 속에 우뚝 솟아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대하는 지안과 구웨이의 서로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에서 자전거를 다루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특히 구웨이가 자전거에 달려드는 그것은 자기 세계의 주인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강한 존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이데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물론 구웨이를 욕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자전거에 보이는 그의 병적인 집착 그리고 한갓 도구인 자전거를 부순다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돌로 해치는 행동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물건과 생명은 그렇게 단순하게 부를 수 있는 고정된 명칭이 아니다. 생명 같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물건 같은 생명이 있다. 혹은 소유물로 위장된 존재가 있고, 존재로 위장된 소유물이 있다. 영웅은 먼저 그것을 준별하는 눈을 가진 자요, 또한 그것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자를 말한다. 영화에거 구웨이는 그런 눈과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본문' 중에서

또 다른 영화 <디 아더스>에서는 푸코의 이름이 등장한다. <디 아더스>는 깜짝 놀랄 반전으로 유명했는데 사실 그 반전을 만들고 가능케 했던 일련의 서사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 어느 영화에서나 나와 타자의 관계가 등장하고 그에 따라 그것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디 아더스>는 나를 중심으로 타자를 보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타자로 전락해 버린 나'를 다룸으로써 흥미로운 사실들을 제공해할 수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메시지들 또한 자연스럽게 푸코의 사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나비>에서는 '니체'이름 등장

마찬가지로 <트루먼 쇼>는 안주를 넘어서 떠나려는 열망을 표출하는 유목민의 갈 길을 다루기에 들뢰즈의 이름이 등장하고, <나비>는 삶의 시간을 과거나 미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서 찾는 것임을 보여주기에 '니체'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다.

"최상의 조건에서도 안나는 낙태를 선택했으나 최악의 조건에서도 유키는 분만을 선택했다. 한때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때로 진저리치며 잊고 싶은 기억들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것들까지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현재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 사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본문'중에서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의 이러한 과정들은 낯설면서도 대단히 흥미롭다. 영화가 인생살이를 말하고 철학 또한 인생살이를 기본 바탕으로 두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통분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와 철학의 만남은 전문가들을 넘어 대중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허나 이왕주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영화와 철학, 그 절묘한 만남으로 영화를 보는 문화행위에 지적유희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철학은 목적 그대로 인생사의 기본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영화와 철학, 모두에게 숨결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철학과 영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까지 지적유희를 가능케하고 있다. 철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가장 친근한 문화행위를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했으며, 가장 친근한 문화행위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니 그 즐거움을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모든 것을 가슴 속에 품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에서 언급한 영화들로 시작하거나, 또한 책에서 지은이가 언급한 철학도서들로 시작한다면 강물에 몸을 맡기듯 그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으리라.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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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 &quot;청계천 도시형 개천, 자연이 없다&quot;

 

 

박재동 화백 "청계천 도시형 개천, 자연이 없다"
양재천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 열어... "사람과 동물의 교감 경이로운 일"
텍스트만보기   나영준(nsdream) 기자   
▲ 열창을 해 준 듀엣, '데자부'
ⓒ2005 나영준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귀에 익숙한 문구지만 어디까지나 광고 속 이야기다. 그러나 서울 양재천 부근 시민들에겐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저녁 무렵 산책을 나와 걷고 있노라면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눈빛의 너구리 가족들과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다.

7일 저녁 6시 양재천 수변무대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 현장. 낯익은 얼굴의 중년신사가 부드러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박재동(53) 화백이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만화가가 아닌 너구리 지킴이로서 사람들에게 다가섰다.

이날 행사는 박 화백이 사회를 맡고 남녀혼성 듀오 '데자부'와 기타리스트 '고무밴드', 가수 신용택, 이성원씨, 가야금 연주가 이예랑씨 등이 힘을 보탰다. 또 공연 중간 중간 친화경적인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됐다.

우리 삶과 자연을 돌아보는 작은 축제

▲ 재미있고 푸근한 입담으로 지역주민을 즐겁게 해 준 박재동 화백.
ⓒ2005 나영준
"제가 사무실이 이 근처거든요. 저녁 먹고 산책을 하는데 너구리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이 녀석들이 먹이를 주고 하다 보니 매일 나타나는데 참 귀엽더군요. 그래서 사무실 식구들이 사진을 찍어 여러 사람과 나누게 된 게 계기가 됐습니다."

마침 그 사진을 보게 된 기타리스트 '고무밴드'가 너구리 지키기 콘서트를 열자고 제의해왔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평소 환경과 자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너도나도 와 주었다며 박 화백은 고마움을 전했다.

- 축제의 취지는.
"순수하게 너구리가 예쁘고 양재천을 사랑하는 작은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작은 축제라고나 할까요.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 환경, 자기가 사는 곳 등 우리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돌아보는 자리가 되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박 화백은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주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한 쪽 주장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다 일리가 있어요. 먹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원래는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먹이를 안 주다보면 얘들이(너구리) 민가로 가서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개한테 물리기도 하고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가 나서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느 한 쪽이 무조건 '맞다'가 아니라 생각하는 논의의 장을 열어 보자는 거지요."

- 서양의 경우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인 곳이 많은데.
"그것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해요. 그건 그 사람들의 생각이고, 그렇다면 개나 고양이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겠지요. 동물과 사람이 먹이로 친해지고 경계를 허물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서로 교감한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죠."

"청계천은 도시형 개천일 뿐, 자연이 없다"

▲ 안내판에 그려진 귀여운 너구리들.
ⓒ2005 나영준
그는 그런 관심 때문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제작과 학교 강의 등으로 바쁘지만 자리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번 행사도 인간과 환경에 천착하던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문득 얼마 전 복원한 청계천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 복원한 청계천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에 대한 의견은.
"전체적으로 물길을 낸 것에 대해선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전 문화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중요한 것은 강이라는 것은 울퉁불퉁해야 물도 천천히 흐르고 고기도 숨을 데가 있거든요. 그걸 길을 내듯이 똑바로 해 놓았으니…. 그게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에요, 똑바로 하는 게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물고기가 살 수가 없잖아요."

박 화백은 양재천도 근래 손을 본 곳은 도로를 내듯 일자로 뚫어버려 물고기가 못 사는 것은 물론 빠른 물살에 사고위험까지 생겼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청계천은) 시각적으로도 단조로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도시형 개천을 보고 고향 정취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앞으론 나간 박 화백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왜가리, 이름 없는 들풀, 딱정벌레, 메뚜기, 여러 물고기들 모두 반갑습니다. 양재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구름 속에 가려진 달과 별을 느끼는 이런 날이 있어 기쁩니다. 그럼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비가 그친 후 다소 쌀쌀한 날씨, 스무 명 남짓한 이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곧 이어 많은 이들이 동화 같은 그의 이야기에 이끌려 발길을 멈췄다.

"얼마 전 밥먹고 산책을 나왔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앗, 저것봐라!'고 하더군요. 너구리였습니다. 꼬마 너구리가 살짝 숲에서 나왔다가 싹 사라지더군요. 요 꼬마 녀석들이 처음엔 세 명이었다가 먹이를 주니까 네 마리 다섯 마리, 나중엔 열두 마리까지 늘어나더군요. 한 가족이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도망을 안 가더군요. 얘들이 그새 많이 컸습니다. 이 녀석이 이젠 중학생쯤 되겠군요. 참, 초등학생도 있답니다."

그렇게 지역주민 모두 너구리 가족 이야기를 통해 천일야화의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어 멋진 노래가 울려 퍼지고 통기타와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물을 타고 흘렀다. 공기는 맑았고 자리에 모인 이들은 천천히 가을밤의 향기에 취해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가 사랑하는 너구리 가족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지역주민이 함께 했다.
ⓒ2005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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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에는 청계천에 오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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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41년 감옥생활은 '가혹했다'?

우리와는 멀리만한 프랑스 선진국이다. 경제대국만이 아닌...

 

 

그에게 41년 감옥생활은 '가혹했다'?
[해외리포트] 프랑스 전대미문 아동살해범 뤼시앙 레제 출소 '파문'
텍스트만보기   박영신(jocaste) 기자   
"나는 충분히 죄를 뉘우쳤다. 사회로 돌아가면 건실한 소시민으로 살 것이다."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관들 앞에 선 무기수 레드. 하지만 간절한 호소에도 그의 요청은 번번이 묵살된다. 그렇게 40년이 흐른 어느 날, 이제는 자유에 대한 의지도, 어쩌면 삶에 대한 희망마저도 가물가물한 모습으로 심사관을 마주한 레드.

그에겐 더 이상 이들을 설득할 의지도 희망도 없다. 그 순간 레드의 서류에 힘차게 찍히는 도장, 가·석·방! 영화 <쇼생크 탈출>(1995, 프랭크 다라본트)의 한 장면이다.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던 이 영화에서 무기수 레드를 연기한 것은 실력파 배우 모건 프리만이었다.

이제 현실의 레드가 감옥에서 출감했다. 현실의 레드가 감옥에서 보낸 세월은 41년.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통틀어 최장기수로 알려진 뤼시앙 레제(68)는 1964년 프랑스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전대미문의 아동살해범이다.

유럽 최장기수 41년만에 출소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 프랑스 최장기수 뤼시앙 레제의 출소를 전하는 <프랑스2> TV.
지난 3일 0시가 조금 지난 시간, 결코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두터운 철문이 열렸다. 뤼시앙 레제가 장장 41년만에 감옥 밖의 공기를 호흡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철창 밖 레제를 맞이한 것은 경찰의 철통감시 아래 허용된 1개의 TV채널과 1개의 일간지가 전부였다. 여론의 동요를 우려한 불가피한 조처이기도 했지만 '조용히 세상으로 복귀하고자' 한 레제의 주문이기도 했다.

1984년부터 레제의 옥바라지를 도맡아온 뤼시앙 베르나르의 자동차가 나타났고 레제가 올라탔지만 밖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종이상자와 가구들로 채워진 베르나르의 자동차 속에 레제도 가구 일부처럼 몸을 숨겨야 했던 것이다. 입양한 5명을 비롯 총 8명의 자녀를 키워낸 전직 제빵사 베르나르의 자동차가 향한 곳은 프랑스 북부 인구 2400명의 작은 마을 랑다. 여기서 레제는 베르나르 부부와 함께 기거하며 지역 적십자센터의 자원봉사자로 활동, 극빈자들을 위해 음식물과 옷가지들을 배급하게 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TV채널 <엘쎄이(LCI)>의 카메라를 통해 전파된 레제의 첫 마디였다. "나와 감옥 사이에 차이는 없다"거나 "자유와 나는 같은 것"이라는 등 냉소적인 선문답으로 일관한 레제의 자기애적 태도는 41년의 긴 세월에도 녹슬지 않은 듯 보였다.

41년 전 레제의 손에 죽어간 어린 뤽의 어머니 수잔 타롱은 그의 석방에 유감을 표하기는 했으나 최대한 말을 아꼈다. "종신형 선고는 거짓말이었나?" 레제 석방 며칠 전 <프랑스2> TV를 통해 정부 당국을 원망하는데 그친 수잔 타롱은 그러나 레제가 혹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저서를 출판하는 일만은 막아줄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1979년부터 석방청원 자격을 갖게 된 레제는 지금까지 13차례의 가석방, 3차례의 대통령 사면청원을 법원에 제출했으나 매번 기각됐다. 올해 7월 다시 14번째 석방청원 제기. 마침내 지난 8월 31일 두에 관할 법원이 조건부 석방을 결정함으로써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 10년간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거주지역인 빠 드 깔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까다로운 규율을 따라야 한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저니 홀리데이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는 게 레제가 기억하는 프랑스의 전부였다. 레제가 복역하는 동안 프랑스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었고 17명의 총리가 내각을 거쳐 갔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아동 살해범들이 교도소로 흘러들었고 상당수가 20여년의 복역을 마친 뒤 출감했다. 그렇다면 레제의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41년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동살해, 그리고 39일간의 숨바꼭질

1964년 5월 27일 이른 아침 프랑스 에손 지방의 베리에르 숲에서 어린 아이의 사체가 발견됐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파리 8구 경찰서로 이브 타롱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의 11살 된 아들 뤽이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실종된 아이와 발견된 사체의 인상착의는 정확히 일치했다.

이어 그날 저녁 익명의 전화 한 통이 라디오 <유럽1>의 데스크로 걸려왔다. 마리냥 3가에 세워진 자동차 앞창에 끼워둔 쪽지를 회수하라는 것이었다. "베리에르숲 사건. 뤽의 아버지가 아이의 몸값을 거절했고 오전 3시에 나는 아이의 목을 졸랐다. 이것은 다음 유괴를 위한 경고다. 몸값 아니면 죽음!"

다음날인 28일 <아에프페(AFP)> 통신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뤽의 유괴범이다.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정보를 준다…." 그 정보는 뤽의 웃옷을 버린 장소였다.

이같은 쪽지는 6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 라디오로, 신문으로, 경찰서로 심지어 내무부로까지 무차별적으로 배포됐다. 차례로 순번이 매겨진 쪽지의 발신자는 'XXX'였다.

6월 2일, 뤽의 장례식에 분산 배치된 경찰은 장례식 참가자들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했다. "장례식은 완벽했다. 참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음날 경찰을 비웃듯 도착한 새로운 쪽지, 그리고 이때부터 'XXX'라는 발신자 서명은 '교살자'로 바뀌었다.

지하철역 벤치나 파리교통공사(RATP)의 분실물 보관소 등이 교살자가 애용한 '숨바꼭질'의 주무대였다. 신문 전단지에 끼워진 '벅스 버니의 모험' 광고에서는 손으로 직접 휘갈겨 쓴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정신병원 간호사 뤼시앙 레제가 범인이다!

▲ 프랑스 최장기수 뤼시앙 레제의 출소를 전하는TF1 TV.
"정면을 보고 후두 부분을 엄지손가락 두 개로 누르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나는 뒤에서 단지 손가락 네 개만으로 목을 졸랐다. 시간이 좀더 걸렸다."

대다수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 시작한 '교살자'는 점차 '썩어빠진 사회'를 힐난하거나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가 행한 고문 등을 고발하는 등 까탈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거나 혹은 이미 저질렀다고 협박하는 '교살자'의 쪽지 내용은 갈수록 잔인해졌다. 6월 10일자 쪽지는 뤽의 아버지 이브 타롱을 겨냥했다.

"고통스러운 사실을 상세히 알려주마. 아이의 목을 조르다 멈칫한 순간이 있었다. 손가락에 쥐가 났기 때문이다." '교살자'는 자신이 주도하는 숨바꼭질을 '술래'가 따라잡지 못한다며 간혹 역정을 부리기도 했다. 쪽지가 발견되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6월 26일, 뤼시앙 레제라는 이름을 가진 빌주이프의 정신병원 간호사 한 사람이 자동차를 도난당했다며 파리 앵발리드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낸다. 7월 1일 다시 경찰서를 찾은 남자는 '피로 얼룩진' 자신의 자동차를 되찾았다고 했다. 같은 날 저녁 '교살자'는 <라디오-뤽상부르>에 전화를 걸어 피갈에서 죽은 부랑자의 사체를 처치하기 위해 '뤼시앙 레제라는 사람의 자동차를 훔친 것은 본인'이라고 밝힌다.

그로부터 5일 뒤 프랑스 최대 석간신문 <프랑스수아르>에 도난당했다던 자동차를 운전하는 뤼시앙 레제의 사진이 긴 인터뷰와 함께 실리고 경찰은 이 미심쩍은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 즉시 가택수색에 돌입한다. 그들이 레제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것은 벽에 도배된 '교살자' 관련 신문 기사들이었다.

같은 날, 밤을 새워 경찰의 취조를 받은 레제는 오전 7시 30분 마침내 자백하기에 이르렀으나 11개월 뒤 생각을 바꾼다. 1966년 5월 3일 성난 군중이 '사형'을 외치며 법원을 에워싼 가운데 처음 열린 재판에서 레제는 '교살자' 명의의 쪽지를 본인이 쓴 것은 맞지만 뤽 타롱의 죽음과 자신은 무관함을 주장한 것.

"나는 가증스럽고 추악한 소설의 인물을 창조했을 뿐이다."재판이 진행된 5일 동안 레제의 주장은 횡설수설로 일관했고 전문가들이 그의 정신장애를 진단함으로써 사형판결에서는 비껴갔다. 1966년 5월 7일 레제에게 떨어진 것은 종신형이었다. 이날 프랑스의 언론은 '레제, 목숨은 건졌다'고 썼다. 레제의 나이 27세였다.

뤽의 아버지 이브 타롱은 1980년대 초 <파리마치>를 통해 '내가 곧 법'이라며 레제가 출소하면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경고하며 별렀으나 2001년 이브 타롱도 아들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이로써 '교살자'는 프랑스인의 머리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듯했다.

41년 후... 레제의 출소가 불러온 '장기복역' 논란

그러나 레제는 지난 3일 41년만에 세상으로 복귀했다. 41년이라는 세월은 41년 전에 레제가 저질렀던 극악무도한 범죄행위보다 그가 '갇힌 채' 지내야 했던 오랜 시간을 더 많이 상기시키며 또 한번 세상을 흔들고 있다.

지난 4월 레제의 변호사 드펠리스는 유럽인권재판소에 프랑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 사람을 40년 이상 감옥에 가둬두는 '국가의 비인간성'에 정면 도전한 것. 드펠리스는 종신형 장기 복역자들을 '느린 죽음'의 희생자로 규정하며 2001년 10월 26일자 일간지 <르몽드>를 통해 아래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가 사형제도를 폐지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사회보호의 미명 아래 필요 이상으로 형벌을 가한다거나 속죄의 수단으로서 사형제도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가 뒷받침됐고 국가에 살인면허를 부여함으로써 국가의 범죄를 합법화는 도구라는 인식,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오판, 많은 경우 사형집행이 정치적으로 이용돼 온 점 등 사형제도는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할 생명의 존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이후 이제는 종신형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느린 죽음'이라 불러도 무방할 종신형은 사회로부터 한 개인의 생명을 제거하고 구석에서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가 지난 5월 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2000년 이후 평균 20년을 복역한 20여 명의 종신형 장기수들이 매년 출감하고 있다.

1995~2005년 사이 실시된 같은 조사를 보면 프랑스 장기 수형자들의 수감기간은 80년대 말부터 평균 3년이 늘었다. 같은 기간 조건부 석방, 사면, 만기출소 등으로 석방된 사람들의 3분의 2는 20년 이하의 징역을 살았고 나머지는 그 이상이었다. 프랑스에서 종신형으로 복역하는 수감자는 현재 562명이며 그중 131명이 복역한 지 20년 이상된 사람들이다. 이들 131명 중 17명은 30년 혹은 그 이상 감옥에 갇혀 있다.

'종신형 폐지' '최고 30년형과 조건부 석방' 실현을 위해 싸우고 있는 국립과학연구소 범죄학자 피에르 투르니에는 "장기수들에게 출소는 '제2의 탄생'"이라며 "감옥은 실제 수형자들이 범한 죄보다 과한 벌을 가하고 있어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범죄자들이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책임감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들이 출소할 시기가 되면 '현기증 없이 거리를 걷는 법, 두려움 없이 군중과 섞이는 법, 돈 쓰는 법, 먹는 법' 등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 투르니에는 "장기수들에게 출소는 한 마디로 '난폭한 충격'으로 어쩌면 진정한 형벌은 출소와 함께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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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데 콩 나고, 털 심은데 털 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털 심은데 털 난다?
[탐방] 천연허브 성분의 탈모방지제품 만드는 '난다모'
텍스트만보기   홍성식(poet6) 기자   
▲ 한국 발모제 시장 규모는 5천억에 이른다. 대기업들이 다수 진출해있는 이 시장에서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중소기업 난다모의 제품.
ⓒ2005 난다모 제공
게임 시나리오업체에서 근무하는 J(34)씨는 요새 부쩍 고민이 늘었다. 업무 스트레스 탓인지 이십대 중반부터 시작된 탈모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피가 보일 정도로 듬성듬성한 머리숱 탓에 대학에 다닐 때는 실내에서도 줄곧 모자를 써온 J씨.

그의 소원은 친구들처럼 시원스럽게 벅벅 문질러가며 머리 한번 감아보는 것이다. 회사 회식자리에서 "머리칼이 나기만 해준다면 수명이 10년쯤 줄어도 좋겠다"는 그의 푸념에 동료들은 깔깔댔지만, 심각한 J씨의 표정을 보곤 얼른 웃음기를 거두었다.

탈모 고민에 시달리는 사람은 비단 J씨만이 아니다. 한국의 성인남성 4명 가운데 1명 꼴인 23%(350여만 명)가 탈모인구로 추정되고, '대머리가 없다'던 여성들 역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탈모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발모제시장 규모도 크게 확대돼 왔다. 업계에서는 잠재적 고객까지 포함한 발모관련제품 시장의 규모를 5천억으로 보고 있다. 발모제를 만드는 회사도 40여 개가 넘는다. 이중에는 CJ와 LG생활건강 등 대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2002년 봄. 발모제 시장에 뛰어들어 짧은 시간에 업계 1위에 오른 난다모. 지난해 한국표준협회 컨설팅 조사결과 발모제 부문에서 '웰빙지수 1위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한 난다모는 남미에서 수입되는 천연허브를 주성분으로 사용해 발모제를 생산한다.

쟁쟁한 대기업과 경쟁하며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 있는 난다모 고도윤(46) 대표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나 발모제업계와 회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물었다.

"초기엔 사기꾼 취급도... 직접 인디언 복장으로 홈쇼핑 출연"

▲ 난다모 고도윤 대표.
ⓒ2005 난다모 제공
- 발모관련 제품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는지.
"젊을 때부터 건설업과 외식업 등의 사업을 했다. 98년경에는 스틸하우스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IMF가 터졌다. 하던 일이 모두 스톱되고 나니 막막했다. 사업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분이 '아직 젊지 않냐. 외국으로 나가서 네가 할 일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했고, 이탈리아와 미국을 거쳐 멕시코에서 8개월 정도 머물렀다.

거기서 조그만 회사를 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칼이 하루에 한 뭉치씩 빠져나갔다. 보다못한 현지 직원이 식물 몇 가지를 뭉쳐와서 머리에 발라보라고 했다. 별 기대없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3일만에 탈모증세가 호전됐고, 20일쯤 후에는 머리칼이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해 귀국했다."

- 초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텐데.
"가족들조차 내 사업구상을 무시했다. 약국으로 영업을 나가 '이걸 사용하면 머리칼이 납니다'라고 말하면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다. 후배인 신경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환자들에게 사용권유를 해서 일정부분 효과를 봤고, 약사 한 명이 직접 써보고는 발모가 돼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공신력을 얻은 건 2002년 2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이 우리 제품에 관한 임상실험 보고서를 내면서부터다. 4개월에 걸친 임상 결과 사용자의 83%가 만족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단위면적당 71%의 발모율이 있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 그 때부터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영업을 할 수 있었다."

- 현재 매출규모와 직원 수는.
"지난해의 경우 250억 정도였다. 직원은 경기도 이천 공장과 서울 서초동 사무실을 합해 50명 가량 된다. 99년 나와 직원 1명으로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성장이다. 회사 규모가 커졌다는 건 사회적 책임도 커졌다는 이야기다. 그 부분을 늘상 생각하고 있다."

- 홈쇼핑 판매를 통해 급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홈쇼핑에 첫 방송되던 날까지 기억하고 있다. 2002년 4월 19일이었다. 나서는 모델이 없어 내가 직접 인디언 복장을 하고 출연까지 했다. 진행대본도 직접 작업했다. 감기만 하면 되는 편리성과 임상실험 결과를 강조하고, 발모관련 제품 최초로 환불제도를 도입한 것이 주효해 이듬해에는 현대홈쇼핑 판매 1위 상품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마케팅'의 힘... "단시간에 머리칼 안 나니 차라리 가발" 조언하기도

- 탈모의 원인은 뭔가.
"학계에서는 스트레스와 유전적 요인, 과도한 음주와 흡연 등으로 보고 있다. 여성의 경우는 출산 후에 머리가 빠지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염색과 스프레이의 사용이 탈모를 부추기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한국에서 발모관련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숫자는. 그리고, 난다모가 타사 제품과 변별되는 점은 뭔가.
"40~50개 정도다. 대기업도 적지 않다. 일단 난다모는 천연성분의 안정성과 편리성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있다. 이것들보다 중요한 건 사실에 근거한 광고와 마케팅이다. 발모제 업계에선 과대과장광고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고객들이 이를 묵과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부분은 가슴에 새기고 사업을 할 것이다."

- 회사를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이른바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 기획실에 근무하는 30대 초반 남자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곧 결혼을 한다는 그가 '단시간에 머리칼이 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고 하길래 '그런 방법은 없으니 차라리 가발을 쓰고 한동안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조언해줬다. 이것도 사실에 근거한 마케팅을 하자는 회사 방침을 지킨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지내느냐고? 잘 산다고 하더라(웃음)."

- 초창기의 어려움을 상쇄해주는 보람도 있을텐데.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지만 탈모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빠지는 머리칼 한 올 한 올이 눈물겹다. 탈모로 인해 비관자살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나마 주고 있다는 것이 우리 직원들의 긍지라면 긍지다. 우리 고객이 60만명이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과 절망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는 탈모의 아픔, 조그마한 희망 주며 긍지"

- 수출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나라로 수출하는지.
"올 목표액을 500만 달러로 잡고 있다. 내수가 80%라면 수출은 20% 정도다. 향후 수출을 늘려가기 위해 미국과 일본, 대만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는 원료를 수출하고, 일본에는 '보보'라는 이름으로 완제품 수출을 한다. QVC라는 홈쇼핑업체를 통해 판매하는데 하루에 15억원 어치가 팔린 적도 있다.

서양에서는 대머리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칼을 포함해 신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양이 발모제 판매가 많은 편이다."

- 향후 회사의 지향점은.
"우리가 시작한 아이템으로 업계 최고가 되자는 것을 사원들에게 강조한다. '가장 좋은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에게도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일류(최고)가 되자고 이야기한다. 이런 목표가 이뤄지면 구축된 유통망을 통해 생활건강 용품 유통업에도 진출하려한다."
2005-10-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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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후보 뒤집어보기⑧] 권영길, 척박한 보수의 땅에 진보의 나무를 심는 큰 형님

 

 

[대권후보 뒤집어보기⑧] 권영길, 척박한 보수의 땅에 진보의 나무를 심는 큰 형님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10-07 12:47]
▲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자료사진)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데일리서프라이즈는 2007년 대선 유력 후보들을 연속 해부하는 특집기사를 연재합니다. '그가 대통령이 돼야하는 이유 10가지'입니다. 조선닷컴이 최근 연재한 '...안되는 이유 10가지'를 뒤집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매체가 어떤 의도로 그런 연재를 했는지의 이유와 함께 후보군들에게서 또 다른 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칼릴 지브란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은 쉽게 보지만 정작 보아야 할 자신의 허물에는 어둡다." 본보가 연재할 '...돼야하는 이유 10가지'에서 나타나는 각 후보들의 장점이 실제 경선에서 득표율과 연결될 지의 전망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맡깁니다.<편집자 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진보정당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다. 그는 김대중, 이회창 후보와 대결한 97년 대선과 노무현, 이회창 후보와 맞붙은 200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독자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분단과 독재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정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당초 보이지 않았다. 진보세력의 독자 후보들은 87년 이후 대선 때마다 사퇴와 연대 요구에 시달려왔다. 많은 이들은 “이길 수도 없는 선거에 왜 나서서 범민주개혁세력 후보의 표를 갉아먹느냐”고 비판했다.

권영길 의원은 두 번이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도했다. 결과만을 보면 당선은 커녕 기대했던 득표율에도 미달했다. 하지만 그가 감행한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지난해 4 ·15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이라는 소중한 씨앗이 됐다. 이후 민노당은 군소정당의 한계를 뛰어넘고 진보적 의제를 공론화시키는 정책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던 권영길은 그 결실을 거둬야 하지 않을까. 차기 대선은 고건 전 총리를 비롯 여권에서 김근태, 이해찬, 정동영,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손학규, 이명박 등 쟁쟁한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

개혁완수를 위해 재집권을 희망하는 열린우리당이나 정권탈환이 실패할 때 당 해체가 불가피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차기 대선에서 불꽃 튀는 격돌을 벌일 것이다. 진보진영 또한 외연확대와 안정적 뿌리내림 더 나아가 2012년 집권 플랜을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다.

조선닷컴은 최근 대선후보 시리즈를 통해 진보진영의 유력 후보 권영길 편에서 ‘황당 공약을 남발하는 위장서민’이라는 의문부호를 달고 다소 색깔론적인 시각에서 권 후보를 평가했다.

본보는 권영길 의원과 민주노동당을 유기적으로 결합, 차기 대선 가능성을 전망해봤다. 조선닷컴이 지적대로 권영길 의원의 대통령 당선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와 소속 정당이 실력만큼의 정당한 평가를 받고 2012년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개인 권영길이 아니라 진보정당 대선후보 권영길

차기 대선은 개헌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2007년 이후 5년간 한국을 이끌어나갈 국정 최고 책임자를 선출하는 것. 조선닷컴은 권영길 의원과 관련 차기 대권 여론조사의 낮은 지지도에 근거로 “대통령의 꿈은 역부족일 것”이라며 “그는 왜 대통령이 되기 힘든 것일까”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이어 조선닷컴은 △비대중적 한계와 기득권층의 반감 △독자적 득표력의 취약성 △부유세 등 극단적이고 허황한 공약 △위법경력 △노회찬 의원과의 경쟁관계 △위장 서민 논란 △부친의 빨치산 전력 등을 약점으로 일일이 거론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없을까? 조선닷컴은 특히 ‘뜨는 노회찬, 지는 권영길’이라는 구도를 사용, 최악의 경우 (권영길 의원이) 차기 대선후보조차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지난 4월 11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의회진출 1주년 기념 <민주노동당의 길-빈곤극복과 평화실현>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권영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민노당은 기존 정당과는 시스템이나 체계나 다른 정당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 권영길 개인이 아닌 진보정당 대선후보 권영길로 평가해야 그의 대선 전망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등 기존의 여야 정당이 이념적 스펙트럼이 혼재돼 있다면 진보성이라는 비교적 단일한 이념으로 조직돼 있고 당내 민주화에 있어 훨씬 돋보이는 정당이다. 기존 정당들은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당의 전반적인 컬러는 물론 실세그룹도 자연스럽게 교체된다.

반면 민노당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권영길 혹은 노회찬 그리고 제3자 누가 나서더라도 민노당의 대선후보는 당의 핵심적 가치와 이념을 실현해내는 매개자일 뿐이다. 인물보다는 소속 정당의 가능성에 보다 포커스를 둬야 한다.

이 때문에 권영길과 소속 정당인 민노당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노당의 입장에서 2007년 집권은 실현이 어렵겠지만 2012년 집권의 가능성은 충분히 탐색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에서 권영길 의원은 2012년 집권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분파주의 노동운동을 통합으로 이끈 리더십

권영길 의원은 90년대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아직 ‘국회의원 권영길’보다는 ‘위원장 권영길’ 혹은 ‘대표 권영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권 의원과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영역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다양한 인사들은 아직도 ‘위원장’ 혹은 ‘대표’로 그를 부른다.

먼저 ‘위원장 권영길’은 과거 노동운동 지도자 시절의 그를 가리키는 것. 또한 ‘대표 권영길’는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하며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활동한 경력을 담아낸 호칭이다.

권영길 의원은 80년대 말 노동운동에 투신, 1994년까지 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부터 3대 위위원장을, 95년부터 97년까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국민승리21’ 창당과 97년 대선 출마, 2000년 16대 총선 출마, 2002년에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오랜 노동운동 생활과 진보정당의 풍부한 경험 속에서 그가 가지는 강점은 통합의 리더십이다. 정치는 한마디로 이해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조절하는 예술. 권 의원은 특히 노동운동 지도자 시절과 진보정당의 대표를 역임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직들을 큰 대과없이 무난히 이끌어왔다. 특히 김영삼 정권 말기 노동법 개악안이 날치기 통과된 것에 맞서 총파업 투쟁을 이끈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매카시즘은 독이 아니라 득

색깔론은 지역주의 정치와 함께 우리 정치를 후퇴시킨 가장 고질적인 악재였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통해 민주화에 헌신했던 인사들은 ‘빨갱이’라는 딱지를 천형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과거 독재정권의 논리대로 본다면 민노당은 ‘빨갱이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좌우파를 막론한 운동권 인사들이 주요 포스트에 포진해있다.

조선닷컴은 대선후보 권영길의 약점으로 부친의 빨치산 경력을 거론한 바 있다. 조선닷컴은 대선후보 시리즈 권영길 편에서 “부친 전력 문제는 물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을 논할 때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색깔론의 냄새를 짙게 풍긴 부친의 빨치산 경력이 ‘과연 약점이 될까’라는 점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볼 때 다소 의문이다.

▲ 지난 3월 21일 오후 열린 국회 통외통위(독도문제 현안보고) 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반기문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후보 시절 장인의 부역 의혹에 맞서 “유권자 여러분들께서 부역자의 딸이 아내라는 이유로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대통령 후보를 포기하겠습니다”고 호소했다. 이에 국민들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 그의 아픈 가족사를 보듬어 안았다.

2002년에도 통하지 않았던 이른바 색깔론이 2007년에 통할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색깔론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과거 선거 때마다 몰아친 매카시즘적 광풍에 휩쓸리지 않은 만큼 우리 사회는 이미 성숙해있다.

△개혁 대 진보로 재편되는 정치구도

87년 이후 대선이나 총선의 주요 국면에서 진보진영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정권의 탄압도 내부의 갈등도 아니었다. 어쩌면 독자 당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사표심리로 진보진영은 범민주개혁세력 후보의 당선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때문에 개혁과 진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은 머뭇거렸다. 실제 권영길 후보의 경우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각각 1.2%와 3.9%에 불과한 투표율을 얻었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대선 정국 최대의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방송토론 등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진보정당의 의미있는 득표를 기대했다.

하지만 대선 전날 정몽준 의원의 지지 철회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많은 지지자들이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4.15 총선 직전에도 ‘거대 야당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표이론이 등장, 민노당은 적잖은 손해를 겪었다.

과연 차기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도 이러한 관행들이 여전히 반복될까?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민노당은 원내 진입 이후 누구나가 인정하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는 10석이라는 군소정당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진보적 의제설정에 성공한 것이고 이는 지지자층의 확대로 늘어났다.

X파일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추악한 정경언 유착 구조에 대해 민노당은 가장 선명한 입장을 견지,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점을 중요하게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의석수로는 민주당이 3당이지만 일반인의 인식에서는 민노당이 여전히 3당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아울러 보수라는 이념 앞에 ‘합리적’ ‘개혁적’ ‘혁신적’ 이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거나 뉴라이트 운동의 확산 등은 보수가 처한 위기감을 그대로 나타낸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가 개혁 대 진보라는 구도로 변화해나갈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설득력 얻어가는 공약들

권영길과 민노당의 이미지 중 하나는 과격하다는 것. 또한 민노당의 강령과 부유세 등 주요 정책들 또한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먼저 강령부분. 딱딱한 사회과학적 용어의 사용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유렵식 사회민주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민노당의 강령을 지나치게 삐닥하게 보는 시선은 우리의 사회경제적 토대가 그만큼 왜곡돼있다는 반증이다. 실제 많은 학자들은 민노당이 추구하는 이념이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이 지향하는 수준보다 더 우파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홍세화 한겨례신문 기획위원은 과거 권영길 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한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이 존재한다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도 존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선 유권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서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은 없었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사회를,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는 사회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신이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며 사회경제적 처지에 걸맞는 정치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에따른 정당 선택이 이뤄질 때 한국사회는 비로소 하나의 ‘사회’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이 주장하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은 정말 허황된 공약인가? 교육과 의료, 부동산의 문제로 우리 국민들이 감당해온 엄청난 비용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황당한 공약으로 평가하기보다 진보적 관점에서의 고민과 문제해결이라는 데 무게를 둬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또한 이에따른 사회 양극화는 사회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다.

사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위기 탈출은 고통분담이라는 슬로건에도 노동자와 서민층의 고통전담으로 어느 정도 극복됐다. 하지만 이후 이들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너무 미진한 편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 민노당의 3대 핵심정책은 지난 대선에서 그 참신성에도 실현 가능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차기 대선에서도 과연 ‘황당한 공약’이라고 평가받을 것인지는 현재 한국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과 토대, 복지수준만을 살펴봐도 답은 나온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2004년 12월 5일 오후 이해찬 국무총리가 7일째 단식농성중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을 찾아 유감표명의 뜻을 전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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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도 모르다’는 야한 말이다

'쥐불울도 모르다'가 표준말

 

‘쥐뿔도 모르다’는 야한 말이다

‘노가리 까다’, ‘곱살이 끼다’ 등 재미있는 우리말 어원 이야기

미디어다음 / 최이연 프리랜서 기자


559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한 여러 행사가 도처에서 열린다. 한글날 하루만큼이라도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가 많이 쓰는 우리말 표현 중에는 정작 어원을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분위기, 사실 등을 나타내는 관용구나 속담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뜻을 거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원을 알고 쓰면 더 재미있고 감칠맛이 나는 게 우리말이 지닌 매력이다.

지금까지 우리말 어원 관련 도서들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적당하다. 그 중에서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1·2’(조항범 지음, 예담, 2004)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재운 편저, 책이있는마을, 2003)은 우리가 자주 쓰는 관용구의 어원을 속 시원하게 밝혀준다.

“쥐뿔도 모르는 게”

뿔 달린 쥐는 없다. 그렇다면 ‘쥐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옛날 커다란 쥐가 사람을 내쫓고 주인 영감 행세를 하자, 가짜로 여겨져 내쫓긴 주인이 억울해서 스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고양이를 풀어 쥐를 내쫓은 주인은 부인을 앉혀놓고 ‘쥐좆도 모르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쥐뿔’이 ‘쥐불’의 변형이고 원래는 ‘쥐의 불알’에서 왔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이야기이다.

쥐도 작은데 쥐의 성기는 아주 작을 것이라는 데서 ‘쥐뿔’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쥐뿔도 모르는 것이니, 앞뒤 분간도 못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종종 쓰는 비속어이지만 사실은 은근히 야한 말이다.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나 깔까?”

수다를 떨거나 그럴듯하게 이것저것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노가리를 까다’라고 한다. 노가리는 명태의 새끼. 흔히들 노가리 껍질을 벗겨가며 시끄럽게 잡담을 하며 술을 마시는 풍경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노가리를 까다’는 명태가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새끼를 까는 데서 유래한다. 이렇게 명태의 새끼인 노가리의 수가 많다는 데서 말을 많이 하다는 비유적인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많이 하고 그만큼 진실성도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다라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한다. 노가리를 잘 까는 사람은 재미는 있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곱살이 끼지 마”

남이 하는 데 끼어서 어떤 일을 쉽게 하려는 것을 가리키는 말. 흔히 ‘꼽사리 끼다’라고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곱살이 끼다’는 노름판에서 유래한 말이다. 노름할 때 판돈을 대는 것을 ‘살 댄다’라고 하는데, 밑천이 부족하거나 패가 좋지 않아 쉬고 있다가 패가 좋은 것이 나올 때 살을 댄 데다 또 살을 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곱살’이라고 한다. 자기 힘으로 하려 하지 않고 남의 노력에 쉽게 묻어서 가려는 얄미운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말짱 도루묵이지”

도루묵은 물고기의 이름이다. 이 말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 오른 선조가 처음 보는 생선을 맛보고는 그 맛이 너무 좋아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 생선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맛을 잊지 못한 선조가 그 생선을 다시 먹어보았지만 그 맛은 온데간데 없었다. 결국 선조는 “도로 묵이라 불러라”고 명했다고 한다.

재미는 있지만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물고기의 원래 이름은 ‘목’이었고 그 앞에 붙은 ‘돌’은 돌배, 돌복숭아에서처럼 맛이나 모양이 좋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돌목’은 목이라는 물고기 가운데서도 질이 떨어지는 물고기. 결국 힘들게 그물질해 건져 올렸으나 별 이득이 없으니 ‘헛수고’를 한 셈이다.

“저 어리버리 또 왔냐?”

‘어리버리하다’는 요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원래는 ‘어리바리’가 표준어. ‘어리바리’는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을 뜻한다.

먼저 ‘어리’는 중세국어에서 ‘어리석다’라는 뜻으로 쓰이던 ‘어리다’의 어간이 부사화한 것이다. ‘바리’는 어원을 규명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어리버리’라는 말이 훨씬 많이 쓰인다. 행동이 굼뜨고 좀 모자란 사람을 가리켜 ‘어리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기가 스스로를 ‘어리버리하다’고 할망정 남에게 들으면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다.

“아, 쪽팔려”

부끄럽거나 민망한 상황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쪽팔리다’에서 ‘쪽’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듯이 ‘얼굴의 한쪽’이나 ‘얼굴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쪽팔리다’는 ‘얼굴이 팔리다’라는 뜻이다. 그리 점잖은 표현은 아니어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잘못 썼다가는 정말로 체면을 깎일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상책이다.

한편 ‘쪽을 못 쓰다’에서 ‘쪽’은 족(足)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씨름판에서 나온 것. 상대에게 배지기로 들렸을 때 자신의 발등을 상대의 종아리에 대면, 상대가 더 들지도 내려놓지도 못하고 힘만 빼면서 애를 먹는다. 이런 기술을 ‘발쪽을 붙인다’라고 하는데 그런 기술도 못 써보고 당한 상황처럼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것을 뜻한다.

“재수 옴 붙었네”

되는 일도 없고 도무지 재수가 없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혹은 막 뭔가를 시작하려는데 싫은 사람이나 훼방꾼이 끼어들었을 때 운이 막혔다는 뜻으로 쓴다.

‘옴’은 원래 옴벌레가 옮기는 전염성 피부병을 일컫는다. 이 병은 한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이나 겨드랑이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악성 피부병이라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나쁜 일이나 사람에 빗대어 많이 쓰인다. 덜 할수록 좋은 말이라 할 수 있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고 있네”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온갖 짓을 다한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 옛날 매우 가난한 선배가 살았다. 어느 날 선비가 밖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 황급히 엉덩이 쪽으로 숨겼다.

자기 몰래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선비가 아내를 추궁했다.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호박씨인 줄 알고 까먹으려 했는데 쭉정이더라구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속담의 유래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사실 호박씨를 까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물며 뒷구멍으로 까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속담은 뒷구멍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리조리 무슨 일을 은밀하게 꾸미고 있다는 뜻이다. ‘호박씨 까다’는 ‘안 그런 척 내숭을 떨다’라는 의미로, 이 속담의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시치미를 떼 봐야 소용없어”

‘시치미를 떼다’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하고도 안한 척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이 말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려시대 때 매사냥이 성행했는데 매사냥 인구가 늘다보니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매에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 표시했는데 그것이 ‘시치미’였다. 이 시치미를 떼버리면 누구의 사냥매인지 알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살다 보면 시치미를 떼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왕이면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또 삼천포로 빠졌네”

이야기를 한참 잘 하다가 곁길로 빠지는 것을 ‘삼천포로 빠지다’라고 한다. 삼천포(三千浦)는 사실 경남 진주 아래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이름이다. 지금은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진 상태.

한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 장사를 망쳤다거나 부산에서 기차로 진주에 가는데 기차를 잘못 갈아타서 삼천포로 가게 되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유래설이 전해진다.

원래는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이지만 무슨 일을 하다가 엉뚱하게 다른 일을 하거나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삼천포에서 가서는 ‘잘 나가다가 샛길로 빠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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