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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22
    10월 산엔 '게릴라전'이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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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과 함께 秋억을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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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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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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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산엔 '게릴라전'이 한창

 

 

10월 산엔 '게릴라전'이 한창
[떠나요! 우리땅 우리바다] 까탈이의 추억여행2
텍스트만보기   김남희(freesoul) 기자   
▲ 곰배령의 단풍은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은근한 수줍음으로 찾아온다.
ⓒ2005 김남희
10월 산은 게릴라전이다. 척후병처럼 기척도 없이 내려와 순식간에 온 산을, 산 아래 마을을, 한반도 남단을 죄 접수해버린다. 소리도 없는 일제공격에 결박당해 발만 동동 구르다 주저앉기 십상이다.

10월 산은 속도전이다. 치고 들어왔나 싶었더니 어느새 다 빠져나갔고, 가득 찼나 싶었더니 텅 비어 있다. 손 쓸 틈도 없이 무장해제 당해 두 손 번쩍 들고 엎드리기 십상이다.

10월 산은 위험하다. 10월 산에 들면 일상으로 돌아가 적응하기 어렵다. 바람 든 심장의 두근거림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10월에는 함부로 길을 나서지 않는 법이다.

▲ 맑은 가을 햇살 아래 나도 몸을 말려 잘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해지고 싶다.
ⓒ2005 김남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가을은 빠르고 깊다. 가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중턱이다. 이곳에 내려온 지 이제 보름 남짓. 부러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어딘가에 짐을 부려놓고 정착민으로 두어 달 살고 싶었는데 서울은 아니었다. 내게 서울은 점점 낯선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낯설음에 불편함까지 더해져 겹으로 난감했다.

가까운 이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은 후 나는 준비 없이 내려와 일주일을 머물렀다. 좋았다. 맵고 맑은 공기가, 망설임 없는 바람이, 하늘과 잇닿은 산이, 그 산 아래 깃든 사람의 마을이 좋았다. 눈을 두는 곳 어디에나 나무가 있고, 산이 있었다. 나무는 내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고, 산은 몸을 두는 곳과 상관없이 늘 내 마음이 가 있는 곳이었다. 몸과 마음이 살아나던 시간이었다.

그 충만함을 잊지 못해 제대로 짐을 꾸려 다시 내려왔다. 나는 끝을 보고 싶었다. 치고 내려오는 가을산을 마중하고, 단풍의 눈을, 단풍의 속도를, 단풍의 성질을 낱낱이 지켜본 후, 마침내 잎 다 지고 허허롭게 선 늦가을산까지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무를, 숲을, 산을, 제대로 한 번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름 꽃 이미 다 진 자리에 저 홀로 남은 둥근이질풀 한 송이
ⓒ2005 김남희
진동리의 아침은 느리게 찾아온다. 산을 넘느라 기진한 해는 맵찬 아침 공기 속에 이미 녹녹해진 햇살을 풀어놓는다. 내가 머무는 집에서 강선리까지 이어지는 3킬로미터는 매일 아침 산책길이다. 40분을 걸어 올라가는 길. 삼거리를 지나 곰배령 가는 길로 들어서면 길은 조붓해지고 숲은 울창해진다. 물소리는 귓전을 울리며 길게 차오른다. 그 길에 가을이 깊다. 단풍이 들었다.

단풍은 엽록소가 빠지면서 잎들이 제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단풍 물 든다'가 아니라 '물 빠진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야 배웠다. 온 산의 나무들, 그 잎들이 물 빠지고 있다. 제 색을 찾아가고 있다. 허황했던 치장을 벗고 맨 얼굴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산을 이루는 것들의 그 월동준비가 나는 눈물겹다. 그래서 이 길에서 내 발걸음은 늘 느리다.

▲ 곰배령 오르는 길에 이년 째 집만 짓고 있는 사나이가 있다. 그 사나이는 지나는 이를 붙잡아 제 집 벽이 될 판자 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렇게 붙잡혀 나도 한 줄 써놓고 돌아섰다.
ⓒ2005 김남희
느리게 느리게 걷는 길. 산의 길은 다 다르다. 오르는 길이 다르고, 내려오는 길이 다르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길이 또 다르다. 첫 햇살 받는 아침길이 다르고, 지는 해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저녁길이 다르다. 혼자 걷는 길이 다르고, 좋은 이의 발치에 두세 걸음쯤 떨어져 따라 걷는 길이 다르다. 맑고 밝은 기분으로 걷는 길이 다르고, 고요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걷는 길이 다르다. 첫 잎 틔우는 봄길이 다르고, 초록이 지쳐가는 여름길이 다르고,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길이 다르고, 눈 쌓인 겨울길이 다르다. 길은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다.

▲ 꽃 지고, 잎도 다 지고, 오직 열매로 남아 새싹 틔울 봄을 기다린다.
ⓒ2005 김남희
날마다 새로운 길을 걸어 조금씩 익숙해지는 얼굴을 찾아 간다. 곰배령 입구에는 젊은 부부가 산다. 나는 날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그 집으로 간다. 가서, 둘이 함께 채워가는 공간과 시간을 들여다보며, 둘의 꿈을 기웃거린다. 그 둘의 사는 모습이 하도 어여뻐 내 마음도 덩달아 달아오르곤 한다.

그래서 나도 꿈을 꾼다. 은밀한 꿈 하나. 어느 물 맑고 산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 더벅머리 총각 혼자 사는 소박한 집 한 채를 찾아내면, 스윽 문을 열고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고 그냥 살아버리고 싶다는 꿈. 아무렇지 않게 부엌으로 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토닥토닥 파를 썰고 두부를 베어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나뭇짐을 지고 돌아온 그이와 마주앉아 저녁밥을 나누고, 몸도 나누고, 남은 삶도 나누며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는 꿈. 그래서 산길을 걸을 때면 늘 남의 집을 기웃거리게 된다.

▲ 엽록소가 빠져 제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풍이다.
ⓒ2005 김남희
젊은 부부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삼형제 고개가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고개라 이름 붙일 만큼 가파른 길은 없다. 같이 걷는 이가 "여기가 첫째 고개, 이게 둘째 고개, 마지막 고개야" 하고 일러주어야 겨우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여기다 고개라는 이름을 붙였겠어. 한 겨울에 눈은 한 자가 쌓였는데, 지게라도 지고 이 길을 넘으려면 요만큼의 오르막도 높은 고개처럼 버거웠던 거지."

바라보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일이다. 바라보는 건 어디까지나 낭만이고, 존재하는 대상을 향한 관찰의 시선일 뿐이지만, 산다는 것은 치열한 현실이자, 존재하는 대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참여의 움직임이다. 나는 여전히 산을 낭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직 산의 덕성에 기대어 살 자격이 없다.

▲ 자연이 그려놓은 가을 풍경화 한 점
ⓒ2005 김남희
산에 관한 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어찌 모르는 것이 산에 관한 것뿐일까!). 거기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알지 못하고, 나무의 이름과 성질도 모르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산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일자무식쟁이다. 그런 무식함이 부끄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한 내게는 늘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셈이니까. 산이, 산을 아는 사람이, 내게 줄 것들이 여전히 많으니까.

자연 앞에서 나는 한없이 어수룩하고, 서투르고, 구멍투성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오면 가르쳐줄 게 많다. 산도, 나무도, 풀도, 꽃도, 내게는 스승 아닌 것이 없다. 나의 서투름과, 나의 틈과, 나의 아무것도 모름과, 이 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 없음이 때로는 세상과 소통하는 구멍이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내가 지금 이름 불러주지 못하는 꽃들과 내가 구별해내지 못하는 나무들은 내가 불러주는 이름 따위 없이도 수천, 수만 년을 잘 살아왔다. 저 홀로 자유롭고, 스스로 빛나는 그것들이 나는 부럽다. 기다림을 알되, 그 기다림에서 자유로운 것들. 나무들과 꽃에 있어 기다림은 일상이고, 몸에 밴 것이다.

때를 열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데에 서두름도 없고, 서투름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그저 제 자리에서 할 일을 할 뿐이다. 다만 하고 또 할 뿐이다.

▲ 물 빛에 비친 단풍과 붉은 열매 몇 알
ⓒ2005 김남희
나는 점점 사람이든 사물이든 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들이 좋아진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제 자리에서, 그저 묵묵히 할 뿐인 사람과 짐승들. 산 아래 머무는 동안 나는 산을 바라보며 삶을 배운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그저 기다리며 견뎌가는 것임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할 뿐임을, 산 아래 마을에서 산을 통해 배우고 있다. 저 산에 지금 가을이 깊다.

 

2005-10-22 09:1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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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함께 秋억을 쌓자

 

 

연인과 함께 秋억을 쌓자
[스포츠한국 2005-10-08 09:51]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깊어지는 가을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추억만들기에 바쁜 연인들에게 ‘이색 데이트 코스’ 5곳을 소개한다.

향긋한 허브향기에 피로가 '싸악~'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허브 아일랜드 (www.herbisland.co.kr)는 세계 각지의 대표적인 허브 100여 종을 수집, 재배해 허브 생태는 물론 특유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5,000여평의 넓은 대지 위에 조성된 허브단지를 산책하면서 허브 잎을 직접 손으로 문지른 후 향을 맡아보자.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금방 달아나 버린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향을 먹는 마을(식당)에 들러 허브만이 자아낼 수 있는 향을 먹고, 카페에 들러 향긋한 허브를 마시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겨울연가'속 준상이와 유진이 돼볼까

천년의 시간 속에 낯선 길손을 지혜의 문으로 인도하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 (www.woljeongsa.org). 주변 250만평에 전나무 100만 그루를 비롯해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등 70여종의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도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약수터로 가는 약 1㎞구간은 전나무 숲이 울창해 최고의 산책길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이 눈 덮인 전나무숲길을 걷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올 가을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높이 35m 거목이 양쪽에서 반기네

담양-순창 24번 국도를 타고가다 보면 유명한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이 있다. 1972년 가로수 조성사업 시 묘목을 심어 조성한 것이 벌써 30여년이 흘러 높이 35m, 지름 2m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가로수 길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드라이브하기에 최적이다. 구길이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차를 세워두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담양에서는 최고의 대나무 숲을 자랑하는 대나무골 테마공원(http://www.bamboopark.co.kr)을 만날 수 있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대밭 사잇길, 맨발로 걷는 황토길, 소나무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축제와 함께 즐기는 오색찬란 단풍

가을하면 단풍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오색찬란한 내장산 백양사 단풍은 특히 유명하다. 백양사 단풍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소 중 하나가 바로 쌍계루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쌍계루는 붉은 단풍에 둘러싸인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백학봉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백양사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인데, 올해는 10월 26일~28일에 백양단풍축제가 열린다.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고…

지리산 피아골 은 지리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유명하다. 산도 붉고 물도 붉게 비치며, 사람도 붉게 물든다 하여 ‘삼홍’이라고 불린다. 피아골의 상단부인 피아골 산장 아래 부분은 10월 중순, 단풍이 가장 빼어난 직전 부락에서 삼홍소까지는 10월 말경에 찾아야 단풍의 절정을 볼 수 있다. 10월 중순에서 말경에는 피아골 일대에서 피아골 단풍제가 열린다.

도움말 : www.toursite.co.kr

사진 설명

1 내장산 백양사

2 허브 아일랜드

3 월정사 전나무 숲길

4 지리산 피아골



최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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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미스테리쥐

 

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입력 :2005-10-21 14:49   강세준 컬럼니스트  
안상수. 인천시장 말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안상수. 그는 필자 같은 80년대 초중반 서울법대생들에게는 작은 영웅이었다. 그 시절 서울법대생들에게 그는 전두환 시대의 파쇼적 억업구조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인권을 옹호한 용기있는 선배로 각인돼 있다.

그가 있었기에 87년 6월 항쟁이 있을 수 있었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 그를 사표삼아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서울법대생도 주위에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군부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래서 고시 공부는 곧 민중에 대한 배신이자 일신의 영달만을 위한 도피행위라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해도, `안상수 같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방어논리를 서울법대생들에게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검사시절 박종철군 물고문 타살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는 그 일로 검사 옷까지 벗었다. 사실 그 시대에 그만한 일을 하려면 본인으로서는 목숨까지 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두환이 마음만 먹었으면 실제로 안씨는 무슨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가 한 일은 전두환 정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안 의원이 어느 자리에서, 무슨 정당에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저 사람이면 믿어도 된다’는 공감대가 서울법대 출신들에게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대로 여전히 정의를 지키는 사람, 용기있는 사람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 의원이 20일 밤 100분 토론에서 한 일련의 발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라고는, 그것도 검사를 지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리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밤새 허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평소 TV를 잘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안씨가 그런 수준에서 말하는 것을 처음 봤다.

필자가 충격먹은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로 인해) 이제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민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비슷한 말을 박근혜 대표도 며칠전 전 소위 `구국투쟁’을 선언하면서 했다. 박대표는 `검찰,경찰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국기문란사범을 처벌하려고 하는데 법무부장관과 현 정권이 이를 가로막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대표의 발언도 법논리로 따지면 말이 안되지만, 사실 그녀가 형사소송법을 제대로 한번 공부해 봤을 리도 없고, 수사절차에 대해 자세히 경험한 적도 없었을 테니, 뭐 저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법대 출신, 검사출신인 안 의원의 입에서 같은 취지의 말이 나오다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일일이 법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지만, 한번 보자. 검찰이 강 교수를 불구속수사하면 앞으로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를 불러도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 이런 사고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잘 파악이 안되지만, 대충 짐작은 이렇다. 법 위반자, 특히 국보법 위반자의 경우 구속수사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서 그 죄를 함부로 짓지 않고 은인자중하겠지만, 불구속 수사하면 법을 우습게 보고 마구 위반할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 아닌가 여겨진다.

짐작이 맞다면, 안 의원은 정말이지 법학전공자로서는 F학점이다. 그런 실력으로 고시에 합격했다는 게 미스터리다. 넓은 의미에서 구속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수사나 재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구속이고, 또 하나는 형을 집행하는 단계에의 구속이다.

형 집행단계에서의 구속은 형사처벌의 일종이다. 쉽게 말해 감옥에 가서 죄값을 치루는 것이다. 만약 천 장관이 이 재판단계에서의 구속을 하라 하지마라 했다면 그건 정말 탄핵감이다. 사법권에 대한 불법적인 간섭이고, 정말이지 광화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위해서, 좀더 정확하게는 증거 및 신병 확보를 위해서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라는 특별한 요건이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것도 일시적으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법 집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죄에 대한 대가로서의 형벌이 아니다. 검사는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권한은 있지만, 처벌할 권한은 지니고 있지 않다. 삼권분립에 의해 형사처벌권은 사법부 즉, 법원에만 주어져 있다. 물론 수사단계의 구속에도 처벌의 냄새가 묻어 있지만, 그것은 인신속박이라는 결과가 가져오는 부작용일 뿐이다.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 때문에 앞으로는 반국가사범, 공산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설쳐대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고 안 의원이 말한 것은 이 두 종류의 구속을 법률적으로 구별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진짜 안 의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의 법률지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강 교수가 경찰이나 검찰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던가 도망가려고 한다던가 하면 지금이라도 긴급체포나 체포영장, 구속영장 청구 등을 통해 신병을 강제로 확보할 수 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관계가 바뀌면 천 장관의 지휘도 효력을 잃게 된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느냐 구속수사하느냐 하는 것 하고, 강 교수를 형사처벌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니까 이 틈을 타 광화문에서 누군가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만세를 외치고 내란을 선동하고 생쑈를 한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법무부 장관이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으니까 이들을 사법처리할 수 없는가?

현행범이라고 판단되면 현장에서 체포하면 되고, 도망갈 염려가 있으면 구속수사하면 된다. 그것하고 이번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법대 1년차면 알 수 있는 이런 단순한 법논리를 검사출신의 안 의원이 모른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안 의원의 발언 가운데 또 하나 놀란 부분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의미를 안 의원이 이해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천 장관 쪽에서 `민주적 통제’ 운운하니까 “도대체 민주적 통제가 뭐요?”라고 묻더니, 나중에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이는 안 의원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상식 이하로 낮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제1원칙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 의해 주어졌고 통제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교과서 수준의 말이라 글로 쓰기 민망하지만, 조금만 부연 설명해 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행정권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은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그 방법은 바로 선거다. 선거에 의해 뽑힌 대의기관에 의해 모든 국가권력은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됐다. 국민이 직접 스스로 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니까 일종의 대표자를 뽑아서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대표적인 국가기관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검찰은 대통령과 의회 양쪽으로부터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대통령은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임명하고 지휘하고 감독하는 등의 행정적 방법으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행사한다. 의회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법률안 및 예산 심의 등을 통해 검찰을 통제한다.

▲ 강세준 컬럼니스트 
검사가 수사권,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민주적 통제구조가 전제로 돼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했거나 개인적으로 똑똑하다는 이유로 수사권, 기소권을 준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고 지휘할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국회가 제어할 수 있으니까 검찰이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와 관련해 `민주적 통제’를 거론할 때는 바로 이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론적 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이를 `헌법과 양심에 의한 수사’ 따위로 이해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수준이 한심하고 그 속내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안 의원이 상황여건상 정치적으로 박 대표를 밀어주기 위해 그런 발언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진짜 법이론 이해가 그런 수준이라면 자기반성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고언하고 싶다. 안 의원을 믿고 따르고 싶어 하는 법대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무지한 모습을 보이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비명횡사 당한 박종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되살려준 검사 안상수를 계속 지지하고 싶은 마음을 안 의원이 이해해 줄지 모르겠다. 안 의원의 좌우명 중 또 하나가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불구속 수사원칙이야말로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피의 역사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안 의원이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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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quot;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quot;

 

 

최장집 "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
  "PD 문제의식 소진 큰 문제"-"'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
  2005-10-21 오후 1:52:58
  "한 사회의 정당성의 기준은, 그리고 역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정의된 어떤 형태의 이념의 구현이 아니라 시민적 자유, 권리, 복지,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훌륭하게 실현하는가에 두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조건에서 누가 문제를 정의하고,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민중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해방 60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좌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뜻밖에도 1980년대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문제의식을 다시 되새겨볼 것을 제안했다.
  
  해방 60년, 왜 오늘의 한국 사회 문제점 회피하나
  
  최장집 교수는 참여사회연구소가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해방 60년에 대한 한 해석'이라는 글에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한 냉철한 직시를 촉구했다.
  
  최 교수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해방 60년을 주제로 한 행사나 논의들은 '성찰 없는 현대사 이해'를 특징으로 한다"며 "정작 오늘의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회피 내지 문제의식의 결핍을 나타내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최 교수는 "분단국가의 건설과 권위주의 산업화가 내포했던 갈등과 이로부터 제기된 문제 해결의 과제는 민주화로 떠 넘겨졌다"며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곧 '민주주의를 향한 전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방 60년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디를 지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란 곧 오늘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과제를 통해 조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억압과 궁핍,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던 민중을 역사와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낸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여전히 민중이 소외된 민주주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민주화는 매우 불완전하고 미숙한 수준에 있다"며 "민주화야말로 한국 사회를 진정으로 성숙하게 하는, 한국인이 대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한국적 '해방의 이념' NL-PD 문제의식 다시 불러와야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열쇠'로 뜻밖에 NL-PD의 문제의식을 다시 불러올 것을 제안했다.
  
  최 교수는 "NL-PD의 문제의식은 강력한 반공 권위주의 국가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민주화의 두 의제를 축약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 내부로부터 제기됐고 민중성을 관심에 중심에 두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적 '해방의 이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NL-PD의 이념을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NL-PD의 문제의식은 현실의 핵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돼 그 이념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정당 체제 내로 들어오고, 그 정당이 선거 경쟁을 통해 다수당과 정부가 돼 그 개혁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NL-PD의 장점은 한국의 역사로부터 생성된 체제가 안고 있는 두 문제(민족 문제-민중 문제)를 상호연관성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라며 "그간 민족 문제에 초점을 둔 NL과 민중 문제에 초점을 둔 PD가 상호 연계성을 잃고 분리된 것과는 달리 둘 사이의 연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상승적으로 그 의미를 크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둘 사이의 연계가 유지될 때 민족 문제는 민중 문제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반대로 민중 문제는 민족 문제의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다"며 "이 연계가 단절될 때 하나가 다른 것을 희생하여 자기 정당화와 자기 권력의 증진을 도모하는 분열과 적대성을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민주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PD적 문제의식의 소진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상황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PD적 문제의식의 약화 또는 소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결합한 경제 및 사회ㆍ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에 여러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각종 양극화의 현실은 그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민주화 이후 집권 정당과 집권 엘리트들이 이런 현실을 초래한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같은 신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통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NL-PD는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통한 개혁 프로그램들, 즉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서 노동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분배 구조의 개선과 사회 복지권의 확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와 공공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민주정부는 대신 신자유주의적 극단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여기에 노동참여, 사회복지와 같은 내용을 가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결합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민주정부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통일 지상주의 경계해야…'통일'보다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
  
  한편 최 교수는 NL적 문제의식에 대한 강조가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 교수는 특히 "NL은 PD적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의 민족주의로 전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주의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민족주의적 정서의 동원이나 이슈로 활용해 왔다"며 "이것은 민중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저평가하게 만들거나 나아가서는 민중 문제를 민족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분열적 요소로 보게 만들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최 교수는 "탈냉전 시기 남북한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평화와 공존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커다란 격차가 남북한 사이에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민족 통일'을 최대 명제로 강조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남북한 간의 이상적인 관계는 장기간에 걸쳐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북한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남한과 같이 자족적인 독립 국가로서 지위와 안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단일민족→분단 이후의 다음 단계는 완전히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명한 것은 통일보다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사회의 정당성의 기준은 시민적 자유, 권리, 복지,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훌륭하게 실현하는가에 있다"며 "다른 사람이 아닌 민중이 민주주의를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해방 60년의 좌표를 제시했다.
  
   ▶ '해방 60년에 대한 한 해석' 전문보기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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