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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31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HelterSkelter
  2. 2005/10/31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HelterSkelter
  3. 2005/10/31
    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HelterSkelter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한 의사가 형편이 어려운 안면장애 환자들에게 거의 무료에 가까운 ‘만원’만 받고 수술을 해주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에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익(46.사진)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근 안면 장애가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 한 TV 프로그램에 ‘선풍기 아줌마’라고 불리던 한미옥씨가 소개되면서부터.

안면장애는 ‘사회적 죽음’이라고 불릴 만큼 환자들은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주위로부터 ‘괴물’취급을 받는 등 그들에겐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

그동안 이들이 치료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 왔던 데에는 막대한 수술비와 더불어 성형외과 치료가 단지 미용을 위해서라는 사회적 몰이해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안쓰럽고,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베풀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안면 장애 연구를 전문적으로 해온 한성익 씨가 환자들의 무료 치료 에 나선 것은 6년 전인 1999년 무렵. 종합병원 재직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환자가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듣고선 남몰래 병원비를 ‘깎아준’ 일이 계기가 되었다.

개인 병원을 차린 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무료시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젠 해외에서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선배를 따라 몽골에 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몽골로 의료 활동을 떠난다. 처음 몽골 국영방송을 통해 그의 선행이 알려졌을 때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흘 새 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술하기도 했다.

그는 ‘의료봉사’라는 말을 극구 사양한다. 돈 받고 치료해주는데 그것이 봉사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 동사무소로부터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소개받고 수술비로 환자들에게 1만원씩을 받는다. 환자들이 당당하게 돈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무료수술을 받는다는 부담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자 환자들이 예상외의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안면 장애 수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기간이 길고 통증 또한 커 환자들이 종종 버티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들었던 수술은 올해 6월 몽골에서 온 자매에게 하나씩밖에 없던 귀를 시술할 때였다. 귀 수술을 해주겠다는 몽골인에게 사기를 당해 불법 체류자가 된 두 자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는 귀를 ‘선물’했다. 그 중에서도 둘째의 귀를 만들기 위해 12시간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첫째처럼 인공 귀를 만들어 단 것이 아니라 머리의 피부조직을 이식해 실제 귀처럼 만들었다.

“저는 일이 재밌어요. 사람들을 수술하고 도와주는 것이 즐겁습니다. 제 꿈이오? 안면 장애 환자들이 집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올해 7월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17)과 함께 몽골을 찾아 12명의 환자들을 수술하고 왔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전적인 지지자다.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고 거울을 볼 때면 두 눈이 반짝거린다. 한쪽 눈 부위가 없어 얼굴 절반이 푹 꺼져있던 독일의 한 할머니는 수술을 마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감동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그는 행복을 느낀다.



/세계닷컴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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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quot;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펴낸 김희수 코리아포커스 대표
텍스트만보기   조성일(sicho) 기자   
▲ 변호사에서 인터넷신문사 대표로 변신한 김희수.
ⓒ2005 조성일
그에 대한 바른 호칭이 '변호사'가 아니라 신생 인터넷신문 '대표'라는 사실을 안 것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었다. 인터넷신문 대표로 있지만 당연히 변호사 일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배수진은 신문사뿐이었다.

우리의 당연한 추론마저 빗나가게 만든 주인공은 <코리아포커스> 김희수(47) 대표다.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에 의해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1상임위원'이라는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국민주권 찬탈행위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시국성명 발표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그가 최근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삼인 펴냄)는 제목의 자전 에세이집을 펴냈다.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말하는 그가 촌놈에서 검사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기까지 시대와 정의에 관한 솔직한 내면을 이 책에 드러내놓는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적선동에 있는 <코리아포커스> 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버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김희수는 누구인가
검사→변호사→인터넷신문 대표

김희수는 59년 <남부군> 무대인 회문산과 성천강이 있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천재' 소릴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 고교시절 수학선생이 강의하면서 튀기는 침을 노트로 받는 장난을 치다 훈육 넘는 폭력을 당해 공부와 담을 쌓아 반에서 30, 40등 수준의 '개고기'가 됐다. 그래서 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먼저 시험에 붙은 친구로부터 "너 같은 사람도 합격하는구나"라는 소릴 들었다.

'사람은 열 번도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1990년부터 서울, 수원, 군산 등지에서 검사로 일했고, 꽉 조여진 조직논리에 회의를 느껴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국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 검사실 특별 수사관'을 비롯 2003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1상임위원,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인터넷신문 <코리아포커스> 대표로 일하면서 민변 회원으로,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 병영문화개선위원회 위원, 인권실천시민연대 운영위원 등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부끄럽게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썼습니다."

그렇다. 여기서 자칫 생길 수도 있는 오해부터 풀고 넘어가자. 그가 대표로 있는 <코리아포커스>가 창간한 직후 곧이어 책이 나옴으로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형국(烏飛梨落)이 됐다.

그러나 그의 책 출간을 출마를 앞둔 정치인들이 서둘러 펴내는 자전 에세이류와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코리아포커스> 창간과는 전혀 다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월 16일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의문사위를 그만두고 과거사법 관련 일을 하고 있을 즈음인 지난해 10월경, 그의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정말 아버님과 많이 싸웠습니다. 평생 보아오던 <조선일보>를 '용돈을 안 드린다'는 협박까지 해가며 몇 년에 걸쳐 <한겨레>로 바꾸어 드려야 할 만큼 고집이 세셨던 아버지, 이에 맞서 속도 참 많이 썩여드린 아들. 우리 부자 사이에는 진한 애증이 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시한부 삶을 사시게 되니까 자식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넘겼다. 그런데 출판사 사정으로 책 출간이 늦어졌고,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9재 때라도 묘소에 책을 바쳤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10월 4일에야 비로소 나왔다. <코리아포커스> 창간일이 3일이었고, 창간 기념식이 6일 있었는데 묘하게도 그 사이에 끼게 되었다.

"내 자신의 과거도 청산하고 싶습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아들로서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야말로 깡촌에서 나고 자란 촌놈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기까지 내 자신의 내면에 있던 부끄럽고 아픈 사연을 고백하고, 아울러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신념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법고시 준비 시절, 취약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학생증을 변조하여 타 대학 강의를 몰래 도강하는 불법(?)을 저지르며 작성한 서브 노트를 다른 수험생들과 나눠보던 추억 한 자락에서부터 자신의 순간적 실수로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했던 성추행범을 눈앞에서 풀어줘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실수, 폭력조직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자살소식 앞에 눈물을 쏟아야 했던 사연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사실 과거청산 작업에 관여하면서 부끄럽고 한심했던 내 자신의 과거도 함께 청산하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내 작은 힘이나마 억울함이 없는 사회,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릴 때 이를 안아줄 수 있는 사회, 국가가 피해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사회 만들기에 보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는 이 책 앞에 "소신이 세속의 역풍에 부딪혔을 때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과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더 없이 겸허하게 고백하는 겸손함을 아울러 갖춘 드문 법조인"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법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시대와 법의 엄정함을 말하면서도 그는 '법도 눈물을 흘려야 하고, 법에도 따뜻한 피가 흘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퇴근길에 가끔 들르는 포장마차가 단속반에 단속되는 것을 보고, 단속행위가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통행에 지장이 없고, 또 고단하게 사는 서민의 생계라는 이유를 대며 단속하지 말아줄 것을 직접 부탁까지 해보는 '인간의 법'을 갈망한다.

그는 군산에서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겪었던 작은 에피소드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하루는 덤프트럭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덤프트럭이 급정거를 하더란다. 하마터면 추돌할 뻔했던 그는 덤프트럭 운전사를 욕하면서 차에서 내려 덤프트럭 앞으로 갔단다. 그런데 덤프트럭 운전사는 서둘러 내려 덤프트럭 앞에 놀라 서있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하라고 조용하게 타이르고 있더란다.

갑자기 차 앞에 뛰어든 어린아이에 대한 운전자들의 반응은 열에 아홉은 욕지걸이가 섞인 야단치기였을 것이다. 일반 운전자들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덤프트럭 운전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 그는 편견을 갖고 사람을 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이 일을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법조인은 항상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유연하게 보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법을 집행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만에 하나 저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억울한 경우를 당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사과하고 싶습니다."

"검찰은 법치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에게 검찰총장이 그만두는 사태로까지 확산된 강정구 교수 사건, 특히 그로 인해 발동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뻔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검사출신이란 점을 감안, '만약 당신이 검찰총장이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동원했다.

"검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법치주의 원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법치주의 원리는 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장관의 적법한 지휘권 발동을 수용하면 그만이지 정면 항거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검사 이전에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이지요."

그에게 다시 지능적이고 악질적인 성추행범이 변호를 의뢰해 온다면 어떡하겠느냐 조금은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런 답을 내놓는다.

"나치 전범을 재판할 때 나치즘을 부정하는 학자나 법조인 대부분이 변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추행범도 예외는 아니지요. 다만 사건을 맡기 전에 고려해야 할 정황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겠지요."

그렇다. 법 앞에 평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법정신은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는 검사보다는 간섭 없는 변호사가 좋고, 돈에 노예가 되는 것 같아 변호사보다는 자유인이 좋다고 했다.

주변으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아가며 행한 그의 또 다른 변신, 언론사 대표라는 직함을 달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을 위해 애쓰겠습니다. 그게 곧 진보가 아닐까요?"
2005-10-30 18:3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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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오마이뉴스 윤형권 기자] 침침한 조명아래 거나하게 술잔이 돌고 있는 자리. 한 사람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배꼽을 잡고 큰 소리로 웃는 사람,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살피며 슬쩍 웃는 사람이 뒤섞여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십중팔구 음담패설이 오가는 현장이다.

성 담론을 풀어놓는 그 자리를 사람들은 음탕하고 음란한 시선으로 보지만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까운 사람끼리의 음담패설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도 없다. 그저 성을 대상으로 하는 진한 농담일 뿐이다. 풍자와 해학을 다룬 우리 옛 문헌 여기저기에도 음담패설이 잔뜩 묻어있지 않은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있듯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음담패설이 있게 마련이다.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려 공통분모를 만들며 거리감을 줄여준다. 어색했던 자리, 떨떠름했던 사이라도 음담패설이 한차례 지나가면 한결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처럼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배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맞다. 나는 음담패설 옹호론자다.

동서고금 막론한 공통화제, '음담패설'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 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얼핏 보면 음탕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춘향전> '사랑가' 원전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이다. <춘향전>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옛 민화에도 음담패설을 주제로 한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과는 달리 <춘향전> 원전에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군데군데 담겨있다. '사랑가'가 대표적. 사진은 1999년 영화로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005 태흥영화사
선조들도 다르지 않았다. 시인 이원규가 과거부터 전해내려 오는 남한, 북한, 연변 등의 음담패설을 정리한 <육담>(1996, 지성사)은 신분 차별과 농사에 평생을 바쳐온 민초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원규 시인은 이 책에서 "육담이 한갓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유교 문화에 깊숙이 젖어 금기시돼 오던 성을 풍자나 해학을 통해 노골적으로 얘기함으로써 억압된 성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도록 하는 노릇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음담패설은 음담배설... 탈 나기 전 소통시켜줘야"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대학 입학고사를 치른 뒤여서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업 중에 어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대학생활에 대해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데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음담패설이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이 소 시장에 갔다. 사람들이 소를 사려고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들이 '왜 소를 만지지요?'하니까 아버지가 '좋은 소를 사려면 손으로 이곳저곳을 만져서 감정을 해야 한단다' 한 거야. 며칠 후에 옆집에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지. '어떤 형이 옆집 누나를 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썰렁하기 이를 데가 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당시 수학 선생님은 이런 음담패설을 한 시간 내내 한 다음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한 너희들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음담을 늘어놓았다"며 "음담패설은 음담배설이다. 배설이 안 되면 막혀서 탈이 나니까 소통을 시켜줘야 한다"고 하셨다. 항문이나 요도를 통해 몸의 찌꺼기나 체액을 배설한 뒤의 그 개운한 맛을 음담패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수학선생님의 지론이었다.

수학 선생님의 음담패설이 있은 후 아이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인간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라고들 했다. 아이들은 이날 이후로 수학 선생님을 보는 시각이 부드러워졌다.

▲ 음담패설을 다룬 우리 민화 작품들도 많이 있다. 가사문학관에서 구입한 그림엽서
진한 농담일뿐...손가락질 할 것까지야

많은 사람들이 음담패설 속에 가부장적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음담패설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씨는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자주 나눈다고 한다. 그는 남자들의 음담패설에 대해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수다의 일종으로 술자리 끝나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전모씨는 "남자 셋 정도 모이면 '야설'이 끊이지 않는 게 사실 아니냐"면서 "친한 친구 둘 셋이 모인 자리에서 편하게 하는 야하고 진한 농담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음담패설도 진화한다. 조선시대에는 봉건적 유교사상을 겨냥했고, 억눌린 시기에는 높으신 양반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제는 점차 가부장적 음담들도 성평등적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악의 없는 우스개일 뿐이다. 오히려 성적인 상상을 죄악시 하면서 이를 은밀한 공간으로만 밀어 넣으려 할 때, 그때부터 성범죄가 시작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음담패설에서 중요한 단어는 담(談)과 설(說)이다. 음란함(淫)과 어그러짐(悖)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다소 짓궂지만 음담패설 한마디가 한바탕 웃음과 자연스런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솔직히 말해봐라. 당신도 즐기지 않는가.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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