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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07
    비틀즈와 히피 문화
    HelterSkelter
  2. 2006/05/07
    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konomie) ver 1.0518
    HelterSkelter

비틀즈와 히피 문화

비틀즈와 히피 문화

 

 

들어가면서

 

존 레논이 죽었을 때 당시 보수주의자 리차드 E. 쉬머혼(Richard E. Schermerhorn) 상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레논에 대한 추모 열기를 비판했다.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조장하는 노래따위를 작곡한 사람에게 신문마다 대서특필하는 것이 당황스럽다. 존은 히피 운동의 리더(a leader of hippie movemnet)였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을 대표한다는 한 상원의원과 대중들의 인식은 존 레논이 히피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보수주의자 상원의원에게는 히피의 지도자란 곧 젊은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다는 비난의 대상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히피"란 과연 무엇이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히피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며 히피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1. 히피

 

모든 사회 현상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듯 히피 역시 60년대에 갑자기 일어난 사회 현상은 아니었다. 멀리는 19세기 말의 보헤미안에서부터 가깝게는 50년대 말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Beatinik)로 이어지는 반문화주의(countculture)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다.

 

히피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트 세대에 대해 살펴보아야한다.

비트 세대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생들의 문학 운동으로 시작하여 50년대 미국 문학의 한 축을 차지했던 사조로 앨런 긴스버그와 잭 케루악 등이 대표적인 작가였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 대한 저항했으며 무정부주의에 가까웠다. 또한 취직과 가정같은 중산층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여 개인주의적이었으며, 술과 마약, 파티 등 보헤미안 예술가적인 기질이 짙었다. 이들에 대해 뉴욕시는 체포와 정신병원 감금 등 박해를 가했고, 몇몇 비트 세대들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되었다.

 

시인 로렌스 페링게티는 이러한 비트 세대들을 돕기 위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시티 라이츠라는 이름의 책방을 차렸는데, 이 책방은 단지 책을 팔기 위함이 아니라 출판 업무도 겸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비트 세대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트 세대들의 모습은 근처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곧 그들처럼 옷입고 행동하고 말하는 일련의 젊은이들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비트 세대들은 이들을 '히피'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2. 재즈 VS 록큰롤

 

비록 비트 세대로부터 히피가 시작되었지만 히피는 비트 세대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었다. 비트 세대는 기본적으로 재즈를 즐기는 세대였다. 재즈는 탄생 초기에는 하위 문화였으나 5~6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상위 문화나 마찬가지였다. 비트 세대 역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마일즈 데이비스같은 재즈 뮤지션의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당시 젊은이들의 새로운 음악이었던 록큰롤에는 빠져들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중심이었던 비트 세대로서는 사랑 타령이나 하는 록큰롤의 가사가 유치하게 여겨졌고 애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트 세대의 음악에 히피들은 찬동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히피들에게 재즈란 부모님들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쿨'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히피들에게 기성 세대의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전혀 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재즈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찾게 되었지만 이미 엘비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초기 록큰롤은 가사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비틀즈였다.

 

3. 비틀즈의 등장

 

미국 역사에 있어 1964년은 대단히 중요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63년 케네디의 죽음으로 국가 전체가 활력을 잃고 침울한 미국인들에게 64년 2월 7일 팬암 항공기를 타고 뉴욕 공항에 내린 네 명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활력소였다.

 

그들은 젊고, 생기발랄하고, 재치있고, 거침없었으며 스스로 연주하며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의 주목을 끈 것은 그들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엄격한 청교도 문화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장발은 일종의 반항이었다. 록큰롤이 반항의 음악이라고 한 것은 가사와 춤, 옷이었을 뿐 헤어스타일은 귀가 훤히 드러나게 보이는 이른바 '귀두컷'이었다. 반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군대까지 입대한 엘비스는 더 이상 반항의 상징은 아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비틀즈의 헤어스타일은 문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짧기까지 하지만, 64년 당시 그들의 머리는 충격적으로 길었던 것이다.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같은 마초적 이미지의 반항아들이 인기를 모았던 미국 사회에 마초적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중성적인 이미지에 가까운 비틀즈는 새로운 반항의 상징이 되었고 그 장발은 반항아들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비틀즈가 가져온 새로운 록큰롤이야말로 자신들의 음악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부모님들은 아래 사진의 비틀즈를 원했을 것이다.)

 

4. 히피의 성장

 

1965년에 이르면서 히피들이 서서히 미국 전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트 세대들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 사회의 유행이었다면 히피는 보다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히피들은 - 물론 통일된 강령이나 지도자는 없었지만 - 장발, 록큰롤 그리고 공민권 운동을 모토로 삼았다.

 

히피뿐 아니라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를 빼놓을 수 없다. 55년 미국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에서 백인 승객 자리에 앉았다고 체포된 로자 파크스가 법원 출두 명령을 거부하고, 이러한 '분리 평등 원칙'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모임을 주도한 27살의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몽고메리 시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하면서 미국 남부 전역으로 흑인 민권 운동은 퍼져나갔다.

 

히피가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6년이었다. 그전에도 히피라고 불리운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 TV에서 처음으로 히피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64년이었다. - 일회성에 가까웠고 언론에서 히피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쉬 버리에 모여 함께 살던 젊은이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디거(Digger)의 도움으로 뚜렷한 직업없이도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이상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여러가지 히피들의 복장)

 

5. 히피의 이념

 

히피는 그 추종자만큼이나 다양한 사상을 내세우고 있어 통일된 이념이라고 총칭하기가 어렵다. 또한 어느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끈 것도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흐름으로 섣불리 일반화하는 오류로 빠지기가 쉽다. 그렇지만 그래도 히피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 하나마다 따로 써야할만큼 복잡다단하지만 편의상 개념들만 정리해본다.)

 

정통 기독교에서 벗어난 신비주의, 동양 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 개인주의, 공동체의식, 장발, 긴 수염, 누드, 파격적인 의상, 꽃, 소극적 저항, 마약, 성해방, 자연으로의 복귀, 산업사회로부터의 일탈, 탈권위주의... 그리고 '사랑'

 

6. 비틀즈와 히피

 

비틀즈는 분명 히피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폴 매카트니도 인정하듯이 비틀즈 역시 60년대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고 영향을 받은 그룹이었지 결코 60년대의 사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히피들은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비틀즈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비틀즈를 자신들의 대변자라고 여겼다. 비틀즈를 영원히 히피와 떼놓을 수 없게 만든 앨범이 바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7.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이하 페퍼상사)은 책 한 권을 써야할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전체가 페퍼 상사 앨범에 대한 글로 채워진 책도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된 적이 있다.)

 

이른바 'Summer Of Love'라고 불리운 1967년 히피 운동은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새해 벽두인 1월 14일 골든 게이트 파크에서 열린 휴먼 비 인(Human Be In) 행사가 열렸다. 비트 세대의 시인 앨런 긴스버그, LSD를 통한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 티모시 리어리, 사회 운동가 제리 루빈, 반전 운동을 한 코메디언 딕 그레고리, 진정한 히피 그룹 그레이풀 데드, 퀵 실버 메신저 서비스 등 저항 문화를 이끌었던 거두들이 함께 모여 노래와 춤, 그리고 평화를 주창했던 것이다. 전 미국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면서 샌프란시스코로 미국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Human Be-In 행사에서 춤을 추는 앨런 긴스버그)

 

마마스 앤 파파스의 존 필립스는 이러한 열기에 휩싸여 20분만에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래를 작곡하였고 스콧 매켄지가 5월에 발표한 이 노래는 그야말로 히피들의 송가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올때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로 시작되는 이 유명한 가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고 샌프란시스코 역시 히피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수천 명의 히피들은 샌프란시스코로 모여들었고 이러한 놀라운 현상은 'Summer Of Love'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Summer Of Love'의 분위기를 완벽히 이끌어 준 앨범이 바로 페퍼상사였던 것이다. 비록 비틀즈 자신들은 히피들과 동참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히피라고 자칭하지도 않았다. 물론 앨범 역시 히피들을 염두에 작곡한 것도 아니었으며 히피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노래도 없었다. 사실 페퍼 상사는 사회성이 지극히 결여된 앨범이었다. 베트남전과 흑인 폭동, 여성 해방 운동, 히피 등 60년대 중반 폭풍처럼 불어닥친 이 열기속에 비틀즈는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페퍼 상사 앨범의 사이키델릭한 곡들은 수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케 했다. 게다가 앨범 자켓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꽃들(flower movement라는 말이 있듯이 히피와 - 평화를 상징하는 - 꽃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은 당시 히피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는 마약의 도움을 칭송하는 곡으로 (특히 I get high는 마약으로 인한 흥분 상태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LSD를 의미하는 제목과 뜻모를 가사를 통한 신비주의(여기에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히피와 공통분모가 된다.) Getting Better에서 보여지는 낙관주의는 히피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She's Leaving Home은 히피 소녀의 이야기로, Within You Without You는 동양 철학과 동양 음악으로의 관심을, 그리고 A Day In The Life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의 모습을 심판의 날처럼 묘사함으로써 격동의 60년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물론 히피들만이 이 앨범을 칭송한 것은 아니었다. 거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앨범을 찬양했으며 이는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하위문화로서의 록큰롤이 상위문화를 점령한 것이다.

 


 



 

(페퍼 상사의 영광은 하위 문화의 위대한 승리였다.)

 

8. All You Need Is Love

 

페퍼 상사 앨범이 간적접인 방식으로 히피와 관련을 맺었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결정적으로 히피와 비틀즈가 묶이게 된 계기가 바로 'All You Need Is Love'라는 곡이다. 1967년 전 세계 최초의 위성방송 프로그램인 'Our World'에 출연한 비틀즈는 히피에 가까운 복장으로 꽃으로 장식된 스튜디오에서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가운데 이 노래를 불렀고, 이 모습은 전세계로 방송되었다.

 

'오직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단순한 가사가 주는 효과는 실로 막대했다. 이 폭풍노도의 시대에 비틀즈가 세상에 주는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은 비틀즈에게 다시 한 번 열광하게 되었다. 그리고 히피들의 송가가 되었다. 물론 모든 히피들이 이 노래를 좋아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렇지만 히피 사상의 핵심인 '사랑'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틀즈를 심정적으로나마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곡은 충분했다.

 

(All You Need Is Love는 히피의 송가가 되었다.)

 

9. 조지 해리슨의 헤이트-애쉬버리 방문

 

1967년 8월 8일 Summer Of Love가 한창인 때, 조지 해리슨은 아내 패티 보이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애쉬버리를 방문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히피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는 곳을 방문한 것이다. 그곳에 모여있는 히피들은 조지 해리슨에게 커다란 동질감을 느꼈다. 너도나도 다투어 조지의 곁으로 몰려왔고, 조지 해리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메시아가 온 것같은 환영'을 받았다.

 

(히피의 성지 헤이트-애쉬버리를 방문한 조지 해리슨 부부)

 

조지 해리슨은 일찍이 인도 철학에 매료되었고 특히 인도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멤버였다. 비틀즈의 멤버들을 데리고 마하리쉬 요기의 강의를 듣게 한 것도 조지이고 보면, 그곳의 히피 역시 조지 해리슨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지는 그곳에 모인 히피들이 '진정한' 히피가 아니라 히피 흉내를 내려는 철부지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실망했으며, 너도나도 건네주는 마약에 당혹하기도 했다. 안전에 두려움마저 느껴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왔지만 히피의 성지에 방문한 유일한 비틀즈 멤버로서 조지는 히피들이 가장 친근함을 느끼는 비틀이었을 것이다.

 

10. Magical Mystery Tour

 

한 곡 한 곡과 히피와 연결짓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지만 영화 'Magical Mystery Tour'는 분명 히피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었다. 물론 비틀즈 스스로는 히피의 영향을 관련지은 적은 없었지만, 일련의 무리들이 버스를 타고 여행한다는 설정은 분명히 '이동성'이라는 면에서 히피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샌프란시스코를 히피들의 성지라고 이야기했듯이 히피는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이동하면서 자유를 만끽했으며 이러한 '이동성'은 히피의 특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영화 Easy Rider를 떠올리면 더욱 이해가 빠를 듯 싶다.)

 

Blue Jay Way는 동양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역시 히피와 연관지을 수 있으며, 사이키델릭의 위대한 곡인 I Am The Warlus 역시 기존 음악 문법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히피들의 반권위적이고 탈기성문화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좀 무리하게 이야기한다면 The Fool On The Hill은 히피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에 대한 일종의 답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1. Come Together

 

69년 발표된 존 레논의 빛나는 걸작 Come Togther는 당시 베드 인 해프닝으로 (Bed-In에서 In은 위에서 언급한 Human Be-In의 In을 따온 것이다. Human Be-In이후 어떤 행사에 In을 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반전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레논이 히피의 대부인 티모시 리어리의 주지사 선거를 위하여 만든 노래이다.

 

가사 곳곳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히피의 복장 그대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며, Come Togher를 외치는 부분은 사상으로 맺어진 사해동포주의를 여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부르던 레논이 이토록 성장한 것이다.

 

끝마치며

 

지금까지 수박겉핥기식이지만 비틀즈와 히피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이제껏 비틀즈를 히피의 지도자 혹은 대변인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어떠한 관계였는지에 대해서 접근할 만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부족하나마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더듬어 보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틀즈와 히피라는 주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우드스탁이라든가, 밥 딜런, 제퍼슨 에어플레인, 제니스 조플린, 도어즈, 지미 헨드릭스 등 히피 문화의 거장들을 함께 조명하지 못한 점이다. 또한 히피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히피와는 분명 구별되어야 하는 급진주의자들과의 관계도 짚어가지 못했다. 'Revolution' 발표 후 진행되는 비틀즈(특히 존 레논)과 신좌익주의자들의 논쟁과 갈등은 60년대에 비틀즈가 어떤 의미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건드려야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의 말대로 '대변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비틀즈와 히피의 관계는 결코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는 아니었다. 비틀즈가 히피에게 준 영향이 있다면 히피 역시 비틀즈에게 영향을 주었다. 모든 사회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 둘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written by 비틀매니아 (lennon71@freechal.com) 

 

sickduck 열우당이 보수입니다. 딴나라당과 조중동은 극우 파시스트들일뿐입니다. 만약 레넌이 만약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얼마나 빨갱이로 매도당하고 집단 백색 테러 당하고 있었을까요... 05/06 19:05
sickduck 중고딩때 Back in the USSR, Revolution같은 금지곡들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생각은 생각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물론 현대에 그 시대로 다시 되돌려 금지곡을 양산하려는 또라이들은 없겠지만... 정말 없을까요? 그들이 집권해서 우리 머리 속의 상상력imagine을 탄압하고 우리 마음 속에 금지곡을 만들려고 시도할 것이 두렵습니다. 자신들과 단지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좌파 매도하는 경직된 그들입니다. 그들의 기준에 다양성과 도발의 상징인 존레논 솔로 노래의 최소한 절반 이상은 금지곡입니다(과거 실제로 그랬고 현재 그렇게 시도하려는 무리들이 남아있지요). 05/07 08:46

sickduck 영화 '다빈치 코드'가 한국에서 정상 개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단지 Karl Marx 얼굴이 조그맣게 인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Sgt. Pepper 앨범 커버 전체가 난도질 당한 것에 준하는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그런 모션을 떼로 취하는 인간들, 그에 대해 정치적/법적으로 검토해서 지원하겠다는 정계 무리들... 어떻게 21세기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꼭 원판보고 돌아갈겁니다. 05/07 08:58
sickduck 현직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등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전에 새시대 세종보다는 구시대 마지막 태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과거처럼, 태종처럼 검찰/안기부 권력 손 아래 꽉 쥐고 이견내는 무리들 총/칼로 통제하고 고문하면서 삼겹살 판갈이 확실하게 하는게 차라리 낫습니다(제왕적 총재로 정부여당 위에 군림하고 일일히 지시하면서). 사람들이 무능을 탓하는 이유는 조중동 프레임도 한몫하지만 이런 아쌀한 액션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불과 반세기전 나찌-파시즘 기억을 잊고 네오 나치 극우 수구 파시스트들이 발호하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대한민국같이 일사불란한 아쌀함이 선호되는 국익 우선 획일주의 파시스트 사회에서 과연 다양성의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회의가 들 정도이기도 합니다. 05/07 09:23
sickduck 개인적으로 조중동 프레임 용어인 코드를 입에 담는 것을 꺼려하지만 이쪽 코드는 반대편에서 나오는 이견을 수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저쪽 코드에서는 반대편에서 나오는 이견을 '인정못하겠다, 깜이 아니다'하면서 압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2중 잣대도 문제입니다. 예컨대 이쪽에서는 동전 한잎만 받아도 '니들도 그럴 줄 알았다, 똑같다'하고 매도하면서 저쪽에서 그러면 '원래 그랬잖아, 전보다 오히려 액수 줄었네'하면서 넘어가는 것과 같은 패턴입니다(상습 강간범이 성추행만 하고 넘어가면 그게 그렇게 칭찬받을 일인지). 05/07 09:27
sickduck 오히려 진정한 코드 정치를 기다려 봅니다. 세상에 영국 노동당(Ah-ha Mr. Wilson)이 집권해서 보수당 인사를 입각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까? 역으로 보수당(Ah-ha Mr. Heath)이 집권해서 노동당 인물 장관 자리 안주는게 욕먹을 일입니까? 오히려 보수당 정부가 노동당 인사를 입각시키면 욕먹어야지요. 선거 민주주의 투표를 형해화시키는 것이니까!(물론 파시스트 사회처럼 반대파들의 씨가 아예 사라지도록 하면 외형상 거국 내각이 가능합니다). 사회적/계급적 분열 및 다양성이 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코드 정치를 기다려 봅니다(히틀러 집권 수단인 '수권법'의 정식 명칭은 아마도 <국론 통합을 위한 법>이었을 것입니다. 네이버 검색 해보시기를). 05/07 09:42
sickduck 저는 개인적으로 비틀즈와 존레넌을 통해 세계사 및 시대 정신에 대해 관심갖고 배우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격동의 60년대 반전운동, 흑인 민권 운동, 히피 무브먼트, 연대(solidarity), 켄트 주립대 발포 사건, 우드스탁, 블란서 파리 68혁명(1번 및 9번), 독일 비판 철학, 반레이건 반닉슨 운동, IRA, feminism, 애티카 형무소 학살 사건 등등등... 존레넌의 가사는 '시'라면서 왜 사람들은 특정 발라드만 편애해서 듣고 가사는 안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동양의 마녀 원숭이 요꼬가 착한 존레넌을 버려놓고 조종해서 비틀즈가 해산되었다는 orientalism 시각을 답습하는거지요. 05/07 10:05
sickduck 역사 얘기를 하자니 요즘 일본 학생들의 80%가 자기들의 야만의 과거사를 모른다던데 우리 나라도 별 차이 있겠나 싶어요(맥아더 반공 이래로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것은 한일 모두 마찬가지). 일본인들은 '자학사관'을 타파하자면서 왜곡한다던데 우리 나라 일각에서도 우리 역사 교육에 대해 '자학사관'이라는 단어를 씁디다. 얘들 무지몽매해 지는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쓰는 기만적 용어를 강제징용/정신대 피해국에서 똑같이 쓸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요. 워낙 얼굴 철판들이 두꺼운지 자학사관 운운하며 활보해도 부끄러움도 몰라요. 유럽 기준으로는 명백히 극우수구인데 자기들이 보수라고 집단 착각 자위하면서요. 결코 선진국이 아닌 단지 경제대국 일본 추종하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일본은 존레넌을 우익적으로 해석하는 전세계 유일한 나라라던데). 05/07 10:21

서강석 Sickduck님의 고견에 많이 공감합니다. 레논을 단지 '발라드' 가수로, Imagine을 듣기좋은 발라드곡으로만 안다면 레논을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역시 공감합니다. 저 역시 레논을 통해서 60년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서구 사회의 역사이지만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05/08 04:01
sickduck 바로 그 말씀인데 60년대 68혁명의 실패 그러나 68세대의 여파와 한국의 87년의 실패 그러나 386세대의 여파는 참으로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세계사적 보편성이 20년 시차를 두고 관철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20년이고 나발이고 불과 5-10년 전에 IMF 위기로 나라를 말아먹은 무리들에게 벌써 까먹고 몰표주는 현실을 보면 답답할 뿐입니다. 자기들이 후질러놓은 것을 아직까지 설거지하고 그 고통을 앞으로 얼마나 더 감내해야 할지 아직도 멀었는데 이 정부 들어 양극화가 어쩌구하니 하는 후안무치를 보면 할 말을 잊게 만듭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즉 수오지심이 없으면 짐승과 같다던데... 05/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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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konomie) ver 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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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konomie) ver 1.0518


요즘 Yale B.A/J.D인 Max Schanzenbach 선생에게 ‘거의’ 법경제학 강의를 듣고 있다(정확한 과목명은 Advanced Corporate Governance고급 기업 지배구조론?). 경제학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10년 전에 컨셉트만 잡아두고 채 정리하지 못했던 경제학 얘기를 풀어보도록 자꾸만 자극받는다. 생각난 김에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현재 몸뗑이만 타국으로 넘어와 주위에 아무 자료도 없기에 철저히 100% 기억에 근거해서 전개하도록 한다. 원래 전공도 경제학이 아닌 관계로 선무당이 사람잡는 식으로 될 수도 있지만 취지 중심으로 읽어주기를 바라며 이런 원초적 아이디어에 대해 더 뛰어난 분들이 발전시켜줬으면 하는 바램이다*1.


초라한 내용에 제목을 거창하게 잡았다. 경제학 비판 요강... 두둥!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2에서 함 따와봤다. 10년전 손호철 교수 수업 내용을 되살리자면,

Karl Marx가 자본론Das Kapital의 부제를 정치경제학 비판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이라고 제목을 붙이고서도 정치 얘기는 안하고 디립따 경제 얘기만 파다가 끝나는 이유는 (물론 전체 6부작의 책이 완성되기 전에 Marx가 돌아가신 측면도 있겠지만) 이러한 경제 메카니즘을 가능케 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정치이자 국가이기 때문이란다. 자본주의 경제 작동 원리 분석을 통해 숨겨진 정치이자 (자본주의)국가 메카니즘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자본론의 과제란다(구조주의 대가 Altusser의 제자인 Etienne Balibar의 Reading Capital에서의 관점)*3.


본좌는 제목만 빌려왔을 뿐 글쓰는 취지는 다르다. 말그대로 경제학을 까는데 국한된 것이다Kritik der konomie. 요강Grund-risse이라 붙인 이유는 내용이 워낙 부실해서 그렇다. 거두절미하고 본좌의 궁극적 관심사부터 밝히겠다. 결론은 버킹검?^^


과연 걔네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꽃피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정상이윤'(기회비용에 준하는)이란 과연 무엇인가?

빈약하게나마 이제 슬슬 그 허구성을 까보자.

     graph1 수요-공급 곡선(두둥! 게나 고동이나)


이른바 주류경제학에서 수요-공급 곡선만 알면 도끄dog도 경제학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참 피상적이고 천박한 접근이 아닌가 싶다. 아래를 보라(맨 아래에서 각각의 그래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graph2 처럼 수요가 늘어나면 거래량 및 가격이 같이 상승하지만 이에 graph3 처럼 공급도 같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그 결과 graph4 처럼 수요 및 공급이 동시에 늘어 거래량은 증가하되 가격이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로 본좌의 1차적 관심사다(100%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있기에 본좌가 수요의 이동 및 수요곡선의 이동을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세에 지장 읎다).

가격은 결코 우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등락을 거듭하면서 이른바 가격은 가치를 배리한다. graph4 처럼 꼭 수평선을 형성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곡선이 우상향하든 우하향하든 중장기적으로 가격은 경향성을 가질 수 있다(이하에서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가치value가 바로 가격price으로 현시된다고 가정할 것이다. 사실 가치와 가격은 다르다).

     graph2수요곡선 이동        graph3공급곡선 이동       graph4결국 가격 그대로


 

실제로 이런 전제를 바로 완전경쟁 시장 가정에 적용한다. 아래의 graph5완전경쟁 시장 을 보라. 완전경쟁 시장에서 개별 기업의 공급곡선은 완전 탄력적인 수평선이라고 가정한다. 즉 수요가 늘어도 거래량만 늘뿐 가격은 가치대로 그대로이다. 이렇게 전제하는 이유는 공급자가 너무 많아 공급자는 단지 price taker에 불과하며 자본의 이동에 장벽이 없기에 수요자/소비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4 


     graph5 완전경쟁시장        graph6완전경쟁 단기        graph7완전경쟁 장기


정작 본좌의 관심사가 여기에 있는게 아니라는 것은 위에서 밝혔다. 완전경쟁 시장도 단기와 장기로 나눌 수 있는데 graph6단기 및 graph7장기 이다.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상품의 동질성(무차별성)에 기인한 것인데 즉 graph6의 경우 한 천재가 발명/발견을 하여 시장에 그 공급자만 있는 경우를 염두에 두면 되겠다(이는 나중 단계인 독과점이랑 전혀 다르다). 가격Price이 비용Average Cost 보다 높아서 파란색으로 칠한 초과 이윤(가격과 비용AC사이)이 창출되고 있다(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이를 기업가 정신의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바로 요 시장에서 선발 기업이 짭짤하니까 너도 나도 그 시장에 진입하게 되고 요 상품 및 기술이 점점 범용화되기 이른다. 그래서 공급자가 많아지니 가격이 따운되어 graph7 처럼 초과이윤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른다(주류 경제학에서 graph6는 예외 상황이며 곧바로 graph7 상황으로 되는 것이 원칙이다). 노란색으로 칠한 부분이 이른바 매출이다. 그럼 이윤은? 본좌가 트집 잡으려는 부분이 바로 요부분인데... 이 경우 주류 경제학자들은 가격Price=비용Average Cost 되는 지점에서도 정상이윤이라는게 숨어있다고 가정한다. 정상이윤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장에 진입은 커녕 모두 퇴거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회계적 비용 및 기회 비용의 개념이 새로 막 뜨는데...... 개념 상실하는거다ㅠ.ㅠ 주류 경제학자들은 일반인들이 범접 못하게 온갖 현란한 그래프로 도배하고 승부하는데 막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경쟁 그래프 상에서는 이윤이 도식화되지 못하고 말로써 표시된다. 즉 정상이윤은 신비화/이데올로기화된다.


이른바 ‘정치경제학’적으로 도식화할 경우

자본주의 이전 단계의 교환 과정은 C상품 - M화폐 - C'상품'이며 사용가치의 획득이 최종 목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교환 과정은 M자본 - C상품 - M'자본'이다. 최초 자본 M에 비해 나중 M'이 +Δ만큼 증식되는 이유를 Marx는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 착취에서 찾았다. 즉 종합적으로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제적 생산과정

M자본------C상품------P생산(C+Δ)======C'상품======M'자본

                (유통과정)               (생산과정)               (유통과정)


반면 위의 주류 경제학의 경우는 이윤이 어느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가격Price=비용Average Cost가 된 상황에서도 정상이윤이라는 것이 의례히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는데(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유인으로써) 과연 어느 단계에서 증식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유통과정에서 ‘유통 마진’을 덧붙여???


M자본------C상품------P생산(C)--------C상품======M'자본(C+Δ)

             (유통과정)                (생산과정)                  (유통과정)


본좌의 궁극적 관심사는 정상이윤의 발생처 및 그 크기로써 주류 경제학 식으로 기껏해야 유통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풀자니 이거 참 대략 난감하다. 3가지 측면에서 간단Grund-risse하게 비판Kritik하고자 한다.

1) 정상이윤(유통과정상)도 또한 완전경쟁에 의해 궁극적으로 ZERO로 수렴하게 된다(예컨대 graph7에서 AC->P가 되는 것처럼 급락해 박리다매 미만의 판매). 생산과정까지만 완전경쟁 균형요소분배를 가정하고 유통과정에서는 불평등 교환이 가능하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무한한 공급자인데 정상이윤을 마진으로 붙여줄 만큼 소비자가 호구냐? 유통업이 호구냐?(‘공공의적’의 사안수 마냥 그냥 직업? 유통업이요! 이 수준이냐?) 

2) 유통 매개인 화폐도 궁극적으로 상품이다. 우리가 쓰는 종이쪼가리 지폐도 은행가면 결국 그 액면만큼 금gold이라는 상품으로 바꿔줘야 정상인데 당 이론은 모든 생산요소가 제값받고 교환되는 반면 유일하게 금만 불균등 교환 호구 잡히는 것을 가정하는 셈이다(좌우간 정상이윤이 유통과정이든 생산과정이든 어디에서 붙든지간에 또한 그 분야 완전경쟁에 의해 궁극적으로 0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자는 것이다)*5. 

3) 그래프 상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냥 의례히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정상이윤 그 자체 본질에 대해서 주류 경제학에서는 은행 이자율의 기회비용을 든다고 했다. 즉 생산의 결과 그 정도의 정상이윤도 얻지 못하면 차라리 은행에 대여해 이자율 만큼의 기회비용이라도 얻으리라는......

이 또한 비과학적인 접근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고리대 형태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보다 먼저 출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 매몰되면 곤란하다(과학하는 이유는 현상과 본질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속의 본질이 100% 일치한다면 과학할 필요 없다). 0에서부터 산업자본이 제시하는 적정 이윤율을 한계로 그 중간에서 금융자본의 적정 이자율이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 맞다*6. 아무 기준도 없이 고리대업 비슷한 은행 이자율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이는 또한 은행간 완전경쟁에서 차입 소비자를 비합리적 호구로 보는 것이다.*7


경제학 원론을 쭉 읽다가 보면 ‘완전경쟁 장기’ 단계에서 서로 평등하며 민주주의가 꽃피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지향해야 할 이상향으로 미화하고 있다(최소한 이 인간들도 독과점 체제가 반민주적이라는 것은 아는군). 그 이상향이 도달 가능한가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서 일단 도달한다 할지라도 과연 유통업 및 소비자가 개호구 취급 당하는 불균등 교환 체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냐?(반면 위에서 든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graph6 같은 상황은 안보이고 graph7 같은 상황만 연출되어 기업가 정신이 죽었다느니 하면서 한탄을 한다. IMF 금융 위기 상황에서 DJ 정부의 현안 중에 ‘한계기업’ 퇴출이 있었는데 본좌가 그 경제학적 용어를 이해하기로는 ‘한계에 봉착해서 정리해야 할 기업’ 이따위 너절리스틱journalistic한 표현이 아니라 P=MR=AR=MC=AC의 지향해야 할 이상향 민주사회의 기업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균형론except소비자,유통업 에 기초해 심화시킨 각종 요소시장 균형론 및 IS-LM->AD, AS곡선은 절대로 맞을 수가 없다.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옆집에서 Milton Fridman이라는 수괴 이후로 노벨 경제학상 참 많이 타고 경제학책 많이 팔아먹었을텐데 살아계시면 멱살잡고 ‘정상이윤’의 이데올로기적 허구성부터 막 따지고 싶은 생각이다. 말그대로 MUx=MUy 어쩌구 저쩌구하는 한계효용학파 이론은 ‘한계기업’으로 퇴출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학 원론은 다시 쓰여야 한다*5. 



일단락하고 흥분을 가라 앉히면서 균형 이론에 대해 더 언급해보고자 한다. Leon Wallas 이래로 경제학적 균형론의 전통은 유구하다. John Bates Clark, 파시스트 경제학자 Vilfredo Pareto 최적까지...... 경영학적으로는 미국의 H. Simon인가 Chester Barnard인가 하는 경영학의 대가 또라이도 균형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그 이론에 의하면, 인간들의 의도적 협동체인 조직에서 조직으로 유입되는 조직원들의 기여와 그들의 자발적 기여를 유발하기 위한 유인(incentives)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조직의 균형(equilibrium)이다(기여=유인). 더 나아가 이 치는 기여≤유인 되어야 사람들이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

 

 

조직으로 유입되는 조직원의 기여≤조직원들의 기여를 유발하기 위한 조직의 유인


유혈적Taylorism/신식민지Fordism 하의 코리아 시스템에서 개소리다 하고 당시에 들었을 때는 그냥 넘어갔다, 10년전에......  경제학 전공인 Max Schanzenbach 선생의 균형론을 들으며 미국에서 얼마나 뿌리깊은 전통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Jensen과 Meckling라는 사람들이 있는데(경제학자인지 법학자인지 원) 전부다 대리 이론agency theory으로 풀어가고 있다. 일단 법률행위상 대리라고 함은 타인agency이 본인principle을 위하여(본인의 명의로) 법률행위를 하고 그 법률효과가 직접 본인principle에게 귀속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하는게 아니라 ‘본인을 위하여’ 하는 것이므로 대리인의 의사결정 상의 자율성이 있다(본인의 의사결정을 단순히 전하는 것에 불과하면 이는 사자라고 한다*8). Jensen과 Meckling은 사람들의 일정 목적의 조직을 형성하는 이유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본인이 대리인을 선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Jensen과 Meckling는 기회주의를 전제하는데 이 개념은 대리인이 본인에게 선임되려고 처음에는 알랑거리다가 일단 관계를 형성하는 순간 그 다음부터 대리인은 농땡이 피우며 배째라 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본인의 입장에서 대리인을 통제하기 위해 직접적인 monitoring cost가 드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대리인 입장에서 대리인은 MC대리인의 기여=조직 본인의 유인MR 시점까지만 딱 성과를 수행 통제한다. 더 나아가 대리인은 부수입perks의 형태로 유무형의 보상을 챙겨서 결과적으로 기여MC≤MR유인 상태에 이른다(여기서 perks란 회사돈으로 워크샵가서 회사 콘도에서 고기 궈먹고 골프치고 룸쌀롱가고 그런거 말하는데, 제시되지는 않지만 챙기는 보상이라고 평가된다compensation taken but not given). 위에서 먼저 언급한 Chester I. Barnard의 경영학 이론과 법경제학 이론이 서로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회사법 영역에서 논의되는 Jensen과 Meckling의 대리 이론은 주주(본인)와 이사회(대리인)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지만 Barnard의 조직론에 가서는 임원/이사의 위임 관계를 넘어서 일반 직원 월급쟁이들의 고용 관계로까지 일반화 확대 적용한다. 


이런 식의 미국식 미시적 접근은 참 난감하다. 1) 일단 위에서 MR=MC 이론의 문제점은 논한 바 있으며 2) 게다가 실용주의적 미국식 전통이라고 생각되지만 구조와 개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진화론적 유기체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갈등론과 비교하면 유기체적 구조도 질적으로 특화된 것이라기보다, 목적을 매개로 한 개체의 조화롭고도 일사불란한 량적 연장에 불과하다). 야근도 불사할 수 밖에 없는 쥐꼬리 소모품 월급쟁이 노동의 구조적 수직적 종속성은 20세기 이후 주지의 상황인데 어디 18세기 형식적으로 동등한 사인 간의 사적 자치, 계약 자유 대리이론을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무슨 서부 개척 시대 동등한 벌거숭이 인간들이 다이다이 맞짱뜨는건지...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게 아니야! 비단 종속 노동의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율성이 인정되는 임원/이사 대리 관계에 있어서도 질적인 구조 문제는 고려되어야 한다( 구조 > ∑개체들 ). 오늘날에 구시대 대리 이론을 막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시간이 멈춰 버린 것인지... 먹구 살만하니까 그러는건지... 아! 기회의 나라, 미국*9). 3) perk도 보면 결국 회사가 다 필요하니까 두는 것이지(단기적으로 임직원 사기를 올려 중장기적으로 더 큰 return을 꾀하려는) 그까이꺼 몇푼이나 되며 또 그에 대해 얼마나 개인적 만족이 크다고 과대 포장하는지 모르겠다. 이론 참 furck이다(회사내 경비/판관비 비율에서 일반적으로 얼마나 차지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세계 최고 강대국 미국에서 말이다. 분명한건 미국인들의 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중요한 것은 후자인 개인적 만족 크기가 관건일텐데 기수적cardinal 또는 서수적ordinal으로 무슨 한계 효용 분석 실증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잘난 그래프로 말이다).


좌우간 세월이 좋아져 이너넷 시대에서 그동안 10년동안 못한 정리를 철저히 100% 기억에 의존해 하였다. 비록 너저분하게 그린 그래프지만 스캔해서 붙이기까지 했다. 맨아래 각주라고 붙였다. 원래가 본좌의 글의 참맛은 각주에 있다. 여기까지 읽으신 김에 아래 각주도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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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비록 Max Schanzenbach 선생처럼 비법학을 먼저 전공하고 나중에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미국 법대에서 일반화된 학제간 연구는 이방인이 보기에 참 부러운 점이 많다. 이 사람들은 여러 각도에서 항상 ‘왜’의 reasoning을 찾지 우리 나라처럼 이미 정해놓은 법을 암기하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 법학은 실정법 해석/암기에 너무 치우쳐 법철학 등의 근본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과 응용력이 개발될 수 없다(예컨대 헌법에서 3명의 인사청문회를 하라고 적시되어 있는데 정치권력이 오히려 투명한 정당성 부여하겠다며 5명으로 인사청문회 확대하겠다고 한다 쳐보자. 만약 3명 인사청문회 하라는데 대해 2명만 인사청문회하고 그냥 지나가려 하면 이는 위헌이다. 그러나 5명 하겠다고 하면 이는 위헌 아니다. 암기 교육 체제하 인간들은 3명 하라고 적혀있는대로 하면 되지 여기서 벗어나면 2명이든 5명이든 다 위헌이라며 자구 및 단어에 얽매어 한치의 융통성, 응용력, 상상력, 창의성없는 경직된 또라이 소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논리를 ‘선거법 개정해 준다면 대연정하겠다’라는 선언에 대입하고 싶다. 달을 보랬더니 손가락 끝 빨고 있다는 그 얘기 말이다-손가락 및 달의 논쟁은 이소룡의 73년작 용쟁호투에서도 볼 수 있다). 철학적 근본 알맹이는 커녕 모법인, 즉 국가질서법 바로 헌법에 대해 기본적 고민/성찰도 없는 대한민국의 실정법 위주 고시생 접근에 대해 본좌는 법대 학부LL.B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믿는데 너무 과격할까?! 실상 대학원 위주의 로스쿨 시스템은 미국에서만 예외적으로 유일하고 그 외 다른 나라에서는 법학도 학부제로 운영되는데 말이다.


*2: 무슨 정치 얘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politischen konomie가 통상 정치경제학으로 번역된다. 사실 Marx가 politischen konomie를 창시한 사람은 아니다. Adam Smith의 국부론 원문을 봐도 Political Economy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며 David Ricardo의 대표 저서는 제목이 아예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이다(10년전 본좌가 읽은 번역서의 제목은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였다by정윤형).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Political Economy라고 쓴 것 같다(뿐만 아니라 이들은 모두 다 노동가치론자들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적절한 번역으로, 본좌는 ‘정치’경제학이 아닌 ‘정책’경제학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여기서 ‘정책’의 의미는 국가가 적정 개입해서 세금을 걷는 부분에 관한 것이다. 독립적 의미의 ‘경제학’의 분화는 Jevons, Menger, Wallas같은 한계효용학파 학자들 등장 이후인데(예컨대 Adam Smith 시대에서 경제학은 윤리학 일종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 이후 ‘경제학’과 대비해 Political Economy를 ‘비주류 경제학’ 이런 의미의 뉴앙스를 담아 부를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비주류 경제학을 천시하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입에 달고 다니는 Adam Smith, David Ricardo도 전부 비주류 경제학자들이게??? 다만 단절적인 한계효용학파와 대비해서, 위 두사람의 최종 계승 적자는 분명 Karl Marx 노동가치론이라고 믿는다. 또한 Political Economy를 정치경제학으로 번역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개방한 일본넘들이 그렇게 붙여서 그냥 따라하는 것 같은데 영 아닌 것 같다(일찌기 일본넘들은 anarchism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했다. anarchy는 분명 무정부/무질서 상태가 맞다. 그러나 anarchism은 부정적 의미의 무정부주의가 아닌 긍정적인 ‘자율주의’로 번역해야 맞다고 믿는다).

 

*3: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경제 속에 들어와 앉아있다. 여태껏 모든 사회구성체 경제양식 안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시대 정치가 들어와 앉아있다. 초딩들은 정치와 경제가 서로 분리된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상대적 자율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치 상부구조는 경제 토대와 조응한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정치는 모르겠는데 경제는 어떻고 하면서 서로 분리해서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가 찬다. 정치는 때려치우고 뒷전에 물러나고 경제에 매진하자는 바로 경제 제일주의 말이다. 본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경제 제일주의가 순수하게 경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자체가 바로 정치라는 것을 모르는 무식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발리바르 접근대로 국가 정치권력의 개입을 줄이라는 정언 자체가 경제적이자 정치적인 멘트이다. 공무원 수 줄여라, 공무원 수입 줄여라, 공무원 규모 줄여라, 세금 줄여라 이런 멘트들은 전부 정치적인 멘트이다. 결코 순수 경제적인 멘트 아니다. (현대에서는 타인에게 정치 및 종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문명인들의 에치켓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야만적으로 경제 제일주의라는 정치 멘트를 함부로 날릴 수가 있는지...). 또한 초딩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18세기 야경국가에 대해 무슨 정치/국가는 전혀 안보이고 경제 사적 주체 양자 예컨대 노동-자본이 매사를 처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단지 총자본으로서의 정책에 관한 것이다(본격 국독자는 미국 대공황-뉴딜 이후). 개별 자본 사이에서 정책적으로 조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곧바로 말 뚜그덕 뚜그덕 타고 와서 피도 눈물도 없이 악랄하게 진압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야경국가는 노골적으로 벌거숭이 친자본이었다. 바로 육안으로 보더라도 식별가능한 노골적인 반노동 정치였다.


*4: 완전경쟁의 지표는 4가지이다. 1)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소비자 존재 2) 상품은 모두 동질적(무차별)이며 하나의 상품에는 하나의 가격만이 존재=일물일가의 원칙 3) 기업은 가격순응자(price taker) 4) 진입장벽 없음(기업의 진입/퇴출 자유)


*5: 물론 71년 미국의 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는 붕괴되었으며 78년부터 금 본위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는 킹스턴 체제Kingstern가 설립되었다. 여기서 본좌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화폐라는 상품의 가치 기준에 관한 것이다.


*6: 기억이 가물가물한게 0에서 제산업 평균 이윤율 사이에서 임의적으로 결정되는게 이윤율이었나? 주가였나? 당연히 이윤율이리라 믿는다. 주가는 거품을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거품이니까...

얘기 나온 김에 주식에 대해 얘기를 덧붙여보자면,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어본 것 같다. 살아 생전 Marx도 주식회사 제도에 대해 자본주의 최고 발명품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소유 구조에 진보적으로 물타기하는거니까... 그것도 결국 있는 사람들 얘기고 그 얘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본좌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식 투자 및 주식 투기에 관한 것이다. 현행 주식 투자 붐에 대해서 투자할 곳은 없고 부동산은 묶어 놓아 돈 갈 곳이 없어서 주식 시장에 돈이 몰린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르는 소리한다 싶다.

재무 관리 원론만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주식 보유의 바람직한 목적은 연말에 배당금 타먹는거다. 기업 가치대로 매수해 연말에 기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게 정통 주식투자인데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배당도 잘 안해주고 그러니까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게 되는거다(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져 연말 배당 3% 이상 쳐주는데 현행 이자율보다는 높다). 단기 매매차익을 노린 온갖 잔머리 플레이는 부동산 투기같은 투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러한 주식 투기 자체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사실 기발행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은 사고 파는 행위는 증권사 및 주식거래자의 배만 불려줄 뿐 현상적으로는 당해 발행 기업에게 아무런 직접적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는게 맞다. 그러나 이를 전부라고 보면 너무도 근시안적 시각이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주가가 오르면 증자를 통해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더구나 IMF 위기 이후 기업들이 차입금 부채 비율을 낮추는 요즘 경영 추세를 감안하면 이는 규정적이다). 인과 관계까지는 아닐지라도 상관 관계 정도로는 볼 수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 유상 증자는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 자금 조달 추세에 따라 설비투자 추세도 큰 폭으로 개선되는게 현실인데 물론 환율 문제로 자본재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는 있지만 수입이든 내수든 그 자체로써 고용 창출이나 성장 잠재력 제고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원칙이다(솔직히 대한민국의 자본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고로 주식 투자는 고정된 가치에서 가격만 올려놓는 부동산 투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생산적이다

(이하의 그래프 중 graph9는 토지의 공급이 제한된 관계로 부동산 수요 증가가 어떻게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지를 잘 보여줄 것으로 기대됨. 사실 부동산/토지는 공급 고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자본주의 상품이 아님. 즉 수요 증가시 사회 후생 증가없이 가격만 상승함. 보수 경제학의 거두인 시카고대 Milton Friedman 같은 대표적 반세금론자들도 부동산에 대한 과세는 인정. 전세계에서 부동산 부문에도 시장 원리 100% 적용해야한다고 하는 무리들은 대한민국 초딩들밖에 없음. 무식한 꼴통초딩덜...

부동산에 관한 꼴통초딩들의 무식에 대해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90년대 초반 일본의 10년 불황은 철의 3각형 즉 일본국회 건설상임위-건설성 기술관료-건설 업자 에 의해 형성된 부동산 버블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발생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일본은 20-30년이 지나도 이 불황에서 못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우리나라 무식한 초딩들 중에 한국의 경기 불황을 부동산/건설 시장 활성화를 통해 풀자는 일각의 무리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본좌에게는 일본식 버블을 만들어 경기 문제를 풀자는 것으로 들리는데 어떻게 결과가 해결 원인이 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된다. 하기사 결국에는 이 공동체가 무너지든 뭐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꼴통들).

                    graph8주식시장                                    graph9부동산


설비투자 추세도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선순환 고리가 끊어져 내수 진작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은 유감이다. 수출만 잘돼서 소수 재벌만 배불리는 것 같은데 박정희때 60-70년대 수출지상주의 시대를 보는 것 같다(수출기업만 특혜받는-실제로 특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수 침체에 있어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다. 비정규직들은 보수 받아도 소비할게 없다. 경쟁원리의 소산이겠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내 기업만 비정규직 쓰고 출하된 제품은 정규직 소비자들이 다 팔아주는게 제일 좋다. 그런 ‘나 하나쯤이면’ 하는 경쟁원리상 당연한 생각으로 모든 기업이 모두 비정규직을 쓰고 모든 소비자들이 비정규직이니 소비가 될 턱이 없다(대한민국에서의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초과해 OECD 최고 유연화 수준을 자랑한다고 하는데 현행 근로기준법을 완전히 사문화,형해화시키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이에 대한 규제는 결국 국가 차원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는데 대한민국 국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의지가 없는 듯 하다. 개별 기업에게는 경쟁 원리상 바랄 수가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최초로 산업별 사용자 단체가 뜬다고 하는데 산별 교섭은 산별 노조를 제대로 정착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별 사각 지역의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데 아주 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여지껏 기업별 bargaing 시스템 하에서 재벌 기업들은 사용자 단체 결성을 회피하며 양수겸장의 꽃노리패를 잘 행사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정규직 노조 탄압 및 비정규직 차별 측면에서. 조속히 산별 사용자 단체 결성 및 산별 교섭 체제가 정착하여 두가지 문제 모두 합리화되기를 바란다(그럴 경우 산별 노조의 관료제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겠지만).


위에서 ‘나 하나쯤이면’하는 악화 일로의 개별 자본간 경쟁 상황에 대한 국가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들고나니 자본론에 있다는 사례가 떠오른다(이 역시 손호철 선생이 수업 도중 소개한 내용으로 본좌는 방대한 볼륨 원문을 읽지는 못했다). 일단의 영국 자본가들이 국가에 몰려와 탄원을 한다. 제발 노동 시간 규제 법을 만들어 달라고. 몰려 온 것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자본가들이다. 그 이유인 즉슨 개별 자본이 자비로움을 발휘해 내 기업, 내 회사 종업원들 인간적으로 다루고 야근 안시키고 일찍 퇴근시켜 보내면 그런 경쟁 상황에서 내 기업만 바로 도태된다는 것이다. 현 경쟁 시스템에서는 나만 인도적 대우했다가 내 회사만 도산하는 것이 명약관화하기에 모든 기업 전체를 일괄적으로 규율해달라는 탄원이다. 획일적인 노동 시간 규제법 만들어......  구조 속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매몰되는 실존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케이스이다.


*7: 역사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재구성해 본질을 캐는 것 또한 Marx의 방법론이 맞다. Marx는 자본주의 최소 단위로 상품을 분석한 후 추상에서 구체(사회, 나중에는 독과점까지도)로 상승escalate하는 발표presentation 방법론을 펴고 있는데 사실 이는 이미 중세 때 Roger Bacon이 제시한 방법론이란다(구체에서 추상으로 하강하는 탐구inquiry의 방법론 병용).

그냥 지나가면 되지 요즘같은 시대에 철지난 분석이 무슨 현실 적실성이 있느냐 싶은 분도 있겠다. 바야흐로 우체국 근대화post modernism 시대를 맞이하여 소비자가 물건 사려고 쭉 줄서 있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는 끝났단다. 이제 기업이 고객의 입맛에 맞춰 고객을 찾아다니는 차별화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란다. 개인적으로 독점적 경쟁시장 개념을 전면적으로 도입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독점적 경쟁시장의 조건은 1)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소비자 존재, 2) 상품 차별화, 3) 따라서 기업의 가격 설정 가능성(price setter), 4) 진입장벽 없음(기업의 진입 퇴출 자유)으로 완전 경쟁 시장 조건에 부분적으로 수정을 가하고 있는데 요식업등 서비스업이나 책, 음반 같은 문화재 시장을 생각하면 되겠다(완전경쟁시장 개념을 대체하려는 유효시장 개념이라는게 있는데 독점적 경쟁시장 개념과 유사한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그 지표가 뭐였던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무한경쟁이라는 너절리스틱한 개념이 있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운운하는 global 뭐시기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이런 개념 자체도 결국 완전경쟁 분석 base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또한 발표의 방법이다. 완전 독과점같은 것은 단지 공급점만 있어 공급 곡선도 그릴 수 없는데 그런 결과도 완전경쟁에서 독과점/독점적 경쟁시장으로 상승하는 발표의 방법론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base인 완전경쟁에 대한 한계효용학파의 nonsense 균형론은 여전히 허당이다. 균형론은 단연코 폐기되어야 하며 독점적 경쟁시장이라는 개념은 있으되 그래프 내용은 새로 채워져야 한다. 또한 독점적 경쟁시장에 대한 분석도 자본의 집적/집중에 대한 기존 분석은 병행되어야 한다.


*8: 사자와 대리인의 구분은 정치-사회학적으로도 의미가 큰데 직접 민주주의 및 간접 민주주의의 철학적 근원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여타 현대 국가들처럼 간접 대의제 민주주의를 주로 하고 있다.

 

먼저 민주주의 자체의 역사에 대해 최장집 교수 및 손호철 교수 말씀을 빌어 간략히 정리하자면

18세기 절대 왕정에서 벗어나 싹틔우는 근대 자본주의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는 다름아닌 왕으로부터의 자유주의였다. 근대 자유주의는 인간의 형식적 평등, 독립성에 기초한 (소수의)신흥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로 그 최대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며 등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였다(다수결에 의해 절대화되는!!!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세력의 두려움은 J S Mill의 글이나 Alexis de Tocqueville의 글, 하다못해 미국 건국헌법에도 잘 드러난다). 자유주의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난한 탄압의 역사는 결국 현대 자유/민주주의로 융합/귀결되었는데 그 실체는 대의 민주주의이다(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이 게나 고동이나 입에 거는 대의 민주주의는 무슨 '큰' 민주주의 이런게 아니다. 단지 대표자 민주주의이다. 민중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

민!주!주!의!!! 민demos이 주cratia가 된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자유민주주의가 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유권자가 하루만 대표/대리인을 선출하고 나머지 4-5년은 헤게모니를 쥔 그 엘리트에 의해 통제/지배받는 바로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인데 이 또한 근대 대리agency 이론의 산물이다.


대표/대리인은 추상적인 나씨옹nation국민 본인에 대해 임기 기간내 정치적 책임만 진다. 그 정치적 책임이란 정책 실패에 대한 차기 선거 단죄이며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바로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의 요체이다(이는 본좌에게 마치, 사법부는 경영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는 Business Judgment Rule이 적용되는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직접 연상케 한다. 물론 미국 회사법상 신인의무fiduciary duty의 또 한축으로써, 비위등 법위반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이 인정되는 충실의무duty of loyalty도 동일하다). 그 잘난 군림하는 엘리트, 즉 대리인의 자율성은 인정된다(그렇게 잘난 대리인 자리를 그냥 세습으로 물려주면 됐지 무지몽매한 백성 본인들이 선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내주는 논리적 일관성은 뭘까?!). 그러한 엘리트 자율성 인정의 전제는 결국 민중 지배에 대한 불신, 민중에 대한 불신이며 이런 식의 통치자 엘리트/피치자 민중 분리의 접근은 미국 헌법에 잘 구현되어 있다(더 나아가 최장집 교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의 헌법에 근거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헌법에도 불구하고 작동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정치 철학적인 측면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경우 우원은 대리인이 아니라 바로 사자이다. 사자는 아무런 자율성없는 심부름꾼을 말하며 뾔쁠people인민인 유권자 본인이 맘에 안들면 원하면 언제든 법적/제도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달랑달랑한 위치에 있다. 소비에트 헌법 상에 구현된 민주주의가 대표적이다

(H.B. Mayo를 비롯한 미국 학자들의 영향으로 초딩들은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로 잘못알고 있다. 오호 통재! 과학적으로 정리하자. 시장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공산주의가 선다면 정치체제는 각각 간접 민주주의 vs 직접 민주주의, 그리고 부르조아 독재 vs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이다. 맨 마지막 독재론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가 노예에 대한 독재에 기반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라).


위에서 든 직접 민주주의 폐해를 이유로(예컨대 다수의 소수에 대한 전횡)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는 대부분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한다(히틀러 지랄 이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도 그나마 좀 있던 직접 민주주의 기제 아예 없애버리고 더 소극적인 본 기본법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를 주로 한다고 할지라도 직접 민주주의 기제를 가미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국민선출plus)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이다. 솔직히 위 3가지 기제가 모두 완벽하게 헌법화되어 실질적으로 작동한다면 명실상부하게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를만하다. 국민이 뽑을 뿐만 아니라 끌어내릴 수 있고 대리인이 있는 와중에도 인민이 직접 법안을 제출할 수도 있고 투표도 할 수 있다면 그렇다.

이 세가지 기제가 얼마나 제도화하느냐 문제를 가지고 현대 시대는 인구도 많고 국토도 방대해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넌센스이다.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단 철학적 문제이며(추상적인 나씨옹nation국민 vs 구체적인 뾔쁠people인민) 또한 엘리트 정치인들이 유권자 국민을 얼마나 신뢰하고 제도적으로 문을 열어주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며(솔직히 그럴수록 자기들한테는 손해임) 또한 현대는 전자 민주주의 등등으로 기술적인 문제도 거의 없다(기술적으로 가능해도 정치적 무관심으로 형해화되는 것은 또다른 별개의 심각한 문제다).


*9: 이런 미국식 접근은 전세계 국가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이러한 형식적 평등을 전제한 접근에 대해 본좌가 생각하는 발생 연유로는 1) 땅넓고 자원이 많은 관계로 미국은 영원한 자영업자의 나라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의 나라이다. 2) 새로 세운 나라인 관계로 유럽식의 전통적 계급 구조로부터 자유롭다. 미국은 자신들이 직접 선출하는 왕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군주가 없으며 전근대적 봉건관계도 없다. 3) 50년대 매카시즘 열풍 이후로 좌익의 씨를 말려버려 실질적 불평등에 대해 문제 제기할 주체가 없다. 기타 영-미 특유의 실용주의적 사고(utilitarian)도 들 수 있겠다. 기초적인 state vs nation/country 구별 개념도 없다(구조주의는 대륙의 블란서가 강국이다. 학교, 언론, 교회, 제도화된 노조까지도 착취 도구인 국가의 일부(ISA)이다. 반면 영국인들은 널널하다. Fabianist들은 어떻게 하면 학교, 언론, 교회를 아래로부터 인적으로 장악해 최상층 국가의 성격을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참고로 Alan Parker 감독의 걸작 Wall 영화에서 오히려 영국 밴드 Pink Floyd(더 정확히는 bassist Roger Waters)가 학교를 학생들 고기 갈아버리는 곳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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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ph1 수요-공급 곡선(두둥! 게나 고동이나)


 

    


 

     graph2수요곡선 이동     graph3공급곡선 이동   graph4결국 가격 그대로

 

 

 


 

     graph5 완전경쟁시장     graph6완전경쟁 단기     graph7완전경쟁 장기

 

            graph8주식시장                             graph9부동산

 

 

 

 

 

 

 

정ㅇ석 2006.05.13 05:16 0

이게 뭔데여? 저, 요런거 잘 몰라여....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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