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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한 의사가 형편이 어려운 안면장애 환자들에게 거의 무료에 가까운 ‘만원’만 받고 수술을 해주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에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익(46.사진)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근 안면 장애가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 한 TV 프로그램에 ‘선풍기 아줌마’라고 불리던 한미옥씨가 소개되면서부터.

안면장애는 ‘사회적 죽음’이라고 불릴 만큼 환자들은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주위로부터 ‘괴물’취급을 받는 등 그들에겐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

그동안 이들이 치료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 왔던 데에는 막대한 수술비와 더불어 성형외과 치료가 단지 미용을 위해서라는 사회적 몰이해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안쓰럽고,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베풀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안면 장애 연구를 전문적으로 해온 한성익 씨가 환자들의 무료 치료 에 나선 것은 6년 전인 1999년 무렵. 종합병원 재직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환자가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듣고선 남몰래 병원비를 ‘깎아준’ 일이 계기가 되었다.

개인 병원을 차린 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무료시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젠 해외에서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선배를 따라 몽골에 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몽골로 의료 활동을 떠난다. 처음 몽골 국영방송을 통해 그의 선행이 알려졌을 때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흘 새 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술하기도 했다.

그는 ‘의료봉사’라는 말을 극구 사양한다. 돈 받고 치료해주는데 그것이 봉사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 동사무소로부터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소개받고 수술비로 환자들에게 1만원씩을 받는다. 환자들이 당당하게 돈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무료수술을 받는다는 부담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자 환자들이 예상외의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안면 장애 수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기간이 길고 통증 또한 커 환자들이 종종 버티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들었던 수술은 올해 6월 몽골에서 온 자매에게 하나씩밖에 없던 귀를 시술할 때였다. 귀 수술을 해주겠다는 몽골인에게 사기를 당해 불법 체류자가 된 두 자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는 귀를 ‘선물’했다. 그 중에서도 둘째의 귀를 만들기 위해 12시간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첫째처럼 인공 귀를 만들어 단 것이 아니라 머리의 피부조직을 이식해 실제 귀처럼 만들었다.

“저는 일이 재밌어요. 사람들을 수술하고 도와주는 것이 즐겁습니다. 제 꿈이오? 안면 장애 환자들이 집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올해 7월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17)과 함께 몽골을 찾아 12명의 환자들을 수술하고 왔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전적인 지지자다.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고 거울을 볼 때면 두 눈이 반짝거린다. 한쪽 눈 부위가 없어 얼굴 절반이 푹 꺼져있던 독일의 한 할머니는 수술을 마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감동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그는 행복을 느낀다.



/세계닷컴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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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quot;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펴낸 김희수 코리아포커스 대표
텍스트만보기   조성일(sicho) 기자   
▲ 변호사에서 인터넷신문사 대표로 변신한 김희수.
ⓒ2005 조성일
그에 대한 바른 호칭이 '변호사'가 아니라 신생 인터넷신문 '대표'라는 사실을 안 것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었다. 인터넷신문 대표로 있지만 당연히 변호사 일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배수진은 신문사뿐이었다.

우리의 당연한 추론마저 빗나가게 만든 주인공은 <코리아포커스> 김희수(47) 대표다.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에 의해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1상임위원'이라는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국민주권 찬탈행위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시국성명 발표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그가 최근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삼인 펴냄)는 제목의 자전 에세이집을 펴냈다.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말하는 그가 촌놈에서 검사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기까지 시대와 정의에 관한 솔직한 내면을 이 책에 드러내놓는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적선동에 있는 <코리아포커스> 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버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김희수는 누구인가
검사→변호사→인터넷신문 대표

김희수는 59년 <남부군> 무대인 회문산과 성천강이 있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천재' 소릴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 고교시절 수학선생이 강의하면서 튀기는 침을 노트로 받는 장난을 치다 훈육 넘는 폭력을 당해 공부와 담을 쌓아 반에서 30, 40등 수준의 '개고기'가 됐다. 그래서 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먼저 시험에 붙은 친구로부터 "너 같은 사람도 합격하는구나"라는 소릴 들었다.

'사람은 열 번도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1990년부터 서울, 수원, 군산 등지에서 검사로 일했고, 꽉 조여진 조직논리에 회의를 느껴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국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 검사실 특별 수사관'을 비롯 2003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1상임위원,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인터넷신문 <코리아포커스> 대표로 일하면서 민변 회원으로,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 병영문화개선위원회 위원, 인권실천시민연대 운영위원 등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부끄럽게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썼습니다."

그렇다. 여기서 자칫 생길 수도 있는 오해부터 풀고 넘어가자. 그가 대표로 있는 <코리아포커스>가 창간한 직후 곧이어 책이 나옴으로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형국(烏飛梨落)이 됐다.

그러나 그의 책 출간을 출마를 앞둔 정치인들이 서둘러 펴내는 자전 에세이류와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코리아포커스> 창간과는 전혀 다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월 16일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의문사위를 그만두고 과거사법 관련 일을 하고 있을 즈음인 지난해 10월경, 그의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정말 아버님과 많이 싸웠습니다. 평생 보아오던 <조선일보>를 '용돈을 안 드린다'는 협박까지 해가며 몇 년에 걸쳐 <한겨레>로 바꾸어 드려야 할 만큼 고집이 세셨던 아버지, 이에 맞서 속도 참 많이 썩여드린 아들. 우리 부자 사이에는 진한 애증이 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시한부 삶을 사시게 되니까 자식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넘겼다. 그런데 출판사 사정으로 책 출간이 늦어졌고,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9재 때라도 묘소에 책을 바쳤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10월 4일에야 비로소 나왔다. <코리아포커스> 창간일이 3일이었고, 창간 기념식이 6일 있었는데 묘하게도 그 사이에 끼게 되었다.

"내 자신의 과거도 청산하고 싶습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아들로서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야말로 깡촌에서 나고 자란 촌놈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기까지 내 자신의 내면에 있던 부끄럽고 아픈 사연을 고백하고, 아울러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신념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법고시 준비 시절, 취약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학생증을 변조하여 타 대학 강의를 몰래 도강하는 불법(?)을 저지르며 작성한 서브 노트를 다른 수험생들과 나눠보던 추억 한 자락에서부터 자신의 순간적 실수로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했던 성추행범을 눈앞에서 풀어줘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실수, 폭력조직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자살소식 앞에 눈물을 쏟아야 했던 사연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사실 과거청산 작업에 관여하면서 부끄럽고 한심했던 내 자신의 과거도 함께 청산하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내 작은 힘이나마 억울함이 없는 사회,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릴 때 이를 안아줄 수 있는 사회, 국가가 피해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사회 만들기에 보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는 이 책 앞에 "소신이 세속의 역풍에 부딪혔을 때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과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더 없이 겸허하게 고백하는 겸손함을 아울러 갖춘 드문 법조인"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법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시대와 법의 엄정함을 말하면서도 그는 '법도 눈물을 흘려야 하고, 법에도 따뜻한 피가 흘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퇴근길에 가끔 들르는 포장마차가 단속반에 단속되는 것을 보고, 단속행위가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통행에 지장이 없고, 또 고단하게 사는 서민의 생계라는 이유를 대며 단속하지 말아줄 것을 직접 부탁까지 해보는 '인간의 법'을 갈망한다.

그는 군산에서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겪었던 작은 에피소드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하루는 덤프트럭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덤프트럭이 급정거를 하더란다. 하마터면 추돌할 뻔했던 그는 덤프트럭 운전사를 욕하면서 차에서 내려 덤프트럭 앞으로 갔단다. 그런데 덤프트럭 운전사는 서둘러 내려 덤프트럭 앞에 놀라 서있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하라고 조용하게 타이르고 있더란다.

갑자기 차 앞에 뛰어든 어린아이에 대한 운전자들의 반응은 열에 아홉은 욕지걸이가 섞인 야단치기였을 것이다. 일반 운전자들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덤프트럭 운전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 그는 편견을 갖고 사람을 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이 일을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법조인은 항상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유연하게 보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법을 집행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만에 하나 저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억울한 경우를 당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사과하고 싶습니다."

"검찰은 법치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에게 검찰총장이 그만두는 사태로까지 확산된 강정구 교수 사건, 특히 그로 인해 발동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뻔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검사출신이란 점을 감안, '만약 당신이 검찰총장이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동원했다.

"검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법치주의 원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법치주의 원리는 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장관의 적법한 지휘권 발동을 수용하면 그만이지 정면 항거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검사 이전에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이지요."

그에게 다시 지능적이고 악질적인 성추행범이 변호를 의뢰해 온다면 어떡하겠느냐 조금은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런 답을 내놓는다.

"나치 전범을 재판할 때 나치즘을 부정하는 학자나 법조인 대부분이 변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추행범도 예외는 아니지요. 다만 사건을 맡기 전에 고려해야 할 정황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겠지요."

그렇다. 법 앞에 평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법정신은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는 검사보다는 간섭 없는 변호사가 좋고, 돈에 노예가 되는 것 같아 변호사보다는 자유인이 좋다고 했다.

주변으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아가며 행한 그의 또 다른 변신, 언론사 대표라는 직함을 달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을 위해 애쓰겠습니다. 그게 곧 진보가 아닐까요?"
2005-10-30 18:3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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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오마이뉴스 윤형권 기자] 침침한 조명아래 거나하게 술잔이 돌고 있는 자리. 한 사람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배꼽을 잡고 큰 소리로 웃는 사람,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살피며 슬쩍 웃는 사람이 뒤섞여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십중팔구 음담패설이 오가는 현장이다.

성 담론을 풀어놓는 그 자리를 사람들은 음탕하고 음란한 시선으로 보지만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까운 사람끼리의 음담패설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도 없다. 그저 성을 대상으로 하는 진한 농담일 뿐이다. 풍자와 해학을 다룬 우리 옛 문헌 여기저기에도 음담패설이 잔뜩 묻어있지 않은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있듯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음담패설이 있게 마련이다.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려 공통분모를 만들며 거리감을 줄여준다. 어색했던 자리, 떨떠름했던 사이라도 음담패설이 한차례 지나가면 한결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처럼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배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맞다. 나는 음담패설 옹호론자다.

동서고금 막론한 공통화제, '음담패설'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 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얼핏 보면 음탕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춘향전> '사랑가' 원전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이다. <춘향전>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옛 민화에도 음담패설을 주제로 한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과는 달리 <춘향전> 원전에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군데군데 담겨있다. '사랑가'가 대표적. 사진은 1999년 영화로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005 태흥영화사
선조들도 다르지 않았다. 시인 이원규가 과거부터 전해내려 오는 남한, 북한, 연변 등의 음담패설을 정리한 <육담>(1996, 지성사)은 신분 차별과 농사에 평생을 바쳐온 민초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원규 시인은 이 책에서 "육담이 한갓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유교 문화에 깊숙이 젖어 금기시돼 오던 성을 풍자나 해학을 통해 노골적으로 얘기함으로써 억압된 성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도록 하는 노릇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음담패설은 음담배설... 탈 나기 전 소통시켜줘야"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대학 입학고사를 치른 뒤여서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업 중에 어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대학생활에 대해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데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음담패설이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이 소 시장에 갔다. 사람들이 소를 사려고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들이 '왜 소를 만지지요?'하니까 아버지가 '좋은 소를 사려면 손으로 이곳저곳을 만져서 감정을 해야 한단다' 한 거야. 며칠 후에 옆집에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지. '어떤 형이 옆집 누나를 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썰렁하기 이를 데가 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당시 수학 선생님은 이런 음담패설을 한 시간 내내 한 다음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한 너희들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음담을 늘어놓았다"며 "음담패설은 음담배설이다. 배설이 안 되면 막혀서 탈이 나니까 소통을 시켜줘야 한다"고 하셨다. 항문이나 요도를 통해 몸의 찌꺼기나 체액을 배설한 뒤의 그 개운한 맛을 음담패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수학선생님의 지론이었다.

수학 선생님의 음담패설이 있은 후 아이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인간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라고들 했다. 아이들은 이날 이후로 수학 선생님을 보는 시각이 부드러워졌다.

▲ 음담패설을 다룬 우리 민화 작품들도 많이 있다. 가사문학관에서 구입한 그림엽서
진한 농담일뿐...손가락질 할 것까지야

많은 사람들이 음담패설 속에 가부장적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음담패설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씨는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자주 나눈다고 한다. 그는 남자들의 음담패설에 대해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수다의 일종으로 술자리 끝나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전모씨는 "남자 셋 정도 모이면 '야설'이 끊이지 않는 게 사실 아니냐"면서 "친한 친구 둘 셋이 모인 자리에서 편하게 하는 야하고 진한 농담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음담패설도 진화한다. 조선시대에는 봉건적 유교사상을 겨냥했고, 억눌린 시기에는 높으신 양반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제는 점차 가부장적 음담들도 성평등적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악의 없는 우스개일 뿐이다. 오히려 성적인 상상을 죄악시 하면서 이를 은밀한 공간으로만 밀어 넣으려 할 때, 그때부터 성범죄가 시작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음담패설에서 중요한 단어는 담(談)과 설(說)이다. 음란함(淫)과 어그러짐(悖)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다소 짓궂지만 음담패설 한마디가 한바탕 웃음과 자연스런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솔직히 말해봐라. 당신도 즐기지 않는가.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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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음란화 그린 분들, 연락주세요&quot;

 

 

"화장실에 음란화 그린 분들, 연락주세요"
[인터뷰] 화장실 낙서를 양지로 끄집어낸 조정화 작가
텍스트만보기   김대홍(bugulbugul) 기자   
▲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선 국내 최초로 화장실 낙서를 주제로 한 전시회, '소통을 위한 드롱잉'전이 개최됐다. 어두운 실내에 관객들이 플래쉬를 들고 감상해야 하는 이색 전시회였다.
ⓒ2005 김대홍
어디에 있든 그 내부가 음담패설로 꽉 채워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남자 화장실이 그곳이다. 난잡한 성행위 그림에서부터 이성을 유혹하는 문구와 전화번호까지 그야말로 음담패설 천지다. 왜일까. 왜 화장실, 특히 남자 화장실에는 낯 뜨거운 음담패설이 홍수를 이룰까.

화장실 음습한 낙서문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작가가 있다. 조정화 작가. 조 작가는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소통을 위한 드로잉전'을 개최했다. 점잖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화장실 낙서'다.

강간과 동성애, 근친상간 등 자극적 그림과 '우연히 함께 있게 된 옆집 누나를...'로 시작하는 포르노성 스토리로 구성된 전시회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19세 이하 관람 불가'라는 안내문은 어떤 문구보다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된 '낙서'들을 보기 위해 주말에만 4백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어두컴컴한 전시회장. 희미한 조명 아래 사진 속의 낙서를 주시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불 꺼진 방에서 스탠드만 켠 채 음란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었다. 관객들은 그림 중간 중간에 마련된 거울을 통해 음란물을 보는 자신을 마주 대하고,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통해 관음증의 단면을 지켜봤다. 전시회장에선 인간의 욕망들이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렸다.

화장실 속에 숨어있던 인간의 거친 욕망을 전시회장으로 끄집어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 것은 아닐까. 과장된 남녀의 성기와 소통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 전시회는 관객들이 관음증을 체험하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관객들이 뚫린 구멍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05 김대홍
게다가 여성인 작가가 2년 동안 누볐을 화장실은 대부분 남성의 공간이었을 터. 과연 그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나는 벗는다 너도 벗어라, 나는 드러낸다 너도 드러내라, 나는 솔직해진다, 너도 솔직해져라... 진정한 소통만이 널 자유롭게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실 낙서'를 끄집어낸 조정화 작가를 찾아가봤다.

왜 하필 화장실 낙서인가

- '화장실 낙서'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전시회를 개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화장실에서 몰래 몰래 표현하는 욕망을 드러내놓고 생각해보자는 의도였다. 성(性)이 화장실에서 범죄 저지르듯 털어놓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성은 밥 먹는 행위처럼 자연스런 일상의 한 부분이다. 또한 성에 대한 관심은 작가라면 누구나 가져볼 만하다. 피카소나 세잔 고흐도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적지않게 그렸다. 그들의 작품을 한 번 봐라. 놀랄 정도로 화장실 낙서와 닮았다."

▲ 이번 전시회는 관객 그림이 한 면을 차지했다. 화장실 낙서를 직접 그리고 있는 관객.
ⓒ2005 김대홍
- 일부에서는 상업성이나 또 다른 관음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상업적인 비판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석은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봤다면 그런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단지 사람들이 몰래몰래 구경하는 게 아니라 실제 관객들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참여가 너무 뜨거워서 그들의 그림을 벽에 다 붙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나 또한 관객 그림 속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사실 '성'은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소재가 아닌가. 솔직히 포르노사이트에 회원가입 하는 사람 숫자를 한 번 파악해보고 싶다."

- 남자화장실의 낙서를 2년 동안 감상한 느낌이 궁금하다.
"처음 화장실 낙서를 접했을 때는 왜 성적 욕망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화장실에서까지 와서 저렇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야 하는가 싶기도 했고. 그런데 점점 작업을 하면서 연민의 정 같은 게 느껴졌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항상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인간의 한계, 존재감 같은 것 말이다. 경기대 박형택 교수는 추천사에서 '슬픈 하드코어'라고 썼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억제하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와 비교하면…."

"포르노의 원조는 화장실 낙서, 하지만"

▲ 화장실 낙서는 성기 부분만 집중 묘사되는게 특징이다. 그 점은 포르노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2005 김대홍
- 전시된 사진을 보니 포르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포르노의 원조는 화장실 낙서다. 특별한 이야기 없이 '삽입'에만 치중한다는 점, 은밀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두 문화는 닮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음란한 그림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화장실 낙서는 엉성한 그림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더라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반면 포르노는 실제 우리가 보는 '사실 그대로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충격도가 다르다. 그리고 접근성이 대단히 강력하다."

- 화장실 낙서의 특징 중 댓글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인터넷 리플의 원조가 화장실 낙서에 따라붙는 댓글이라고 본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흥미 있거나 관심 있는 글에 자신의 의견을 추가해왔다."

- 사진에 있는 그림 대부분이 남자와 여자의 성기나 혹은 삽입장면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곤혹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
"다양했다. 한 30대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 관객은 방명록에 '올해 들어서 가장 좋은 전시회를 봤다'고 적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온 20대 남자도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50대 주부들은 사진 감상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남편만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보지 않겠다고 입구에서 버티는 모습도 봤다."

- 여자와 남자의 반응이 달랐다는 얘기 같은데.
"여자들은 '고생했겠다'는 반응이었다. 화장실 낙서가 그려진 곳이 주로 남자화장실이었겠기 때문에 촬영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남자들은 그런 고충을 모르는 것 같더라."

"좋고 나쁨은 낙서하는 당사자들이 잘 알 것"

▲ 관객이 전시회장에서 직접 그린 화장실 낙서 그림(좌).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사람이 그린 작품 '거울, 내가 없다'(우)
ⓒ2005 김대홍
- 왜 남자들이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묘사하는데 열을 올린다고 생각하나.
"글쎄. 내가 남자가 아니어서 모르겠다. 관객들하고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자신이 과거 화장실 그림을 그렸다고 털어놓은 분은 50대 중년남자였다. 어린시절 그렸다는데, 당시엔 자신의 성적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서 어떻게든 표출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지금 10대나 20대, 그리고 '작업 중'인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다."

- 만약 누군가 화장실 낙서를 한다고 고백하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
"작업노트에서 말한 대목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겠다. '나는 벗는다 너도 벗어라, 나는 드러낸다 너도 드러내라, 나는 솔직해진다 너도 솔직해져라, 나는 자유다 너도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소통만이 널 자유롭게 한다'라고 썼다. 화장실 낙서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이분법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알 것이다. 건강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만약 건강한 소통이라면 자유롭다고 느낄 것이다."

- 화장실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나.
"딱 한 번 있다.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40대 중반의 중후한 남자였다. 길에서 보면 아주 모범적인 인격을 갖춘 신사라고 생각했을 사람이었다."

"화장실에 남성중심의 사회상이 담겨있더라"

▲ 화장실 낙서는 '삽입' 위주, '남성' 주도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2005 김대홍
- 전국 각지의 화장실을 다녀봤을 텐데 지역별 차이는 없었나?
"없다. 놀랄 만큼 똑같다. 그림 형태, 내용 모두 닮았다. 한 사람이 그림과 텍스트 모델을 뿌렸다고 착각할 정도로. 가령 내용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누나가 있더라' 희한한 점은 상대여성이 모두 연상의 여자라는 점이다. 친구 동생이나 친구의 여자친구 이야기는 없다. 모두 누나 아니면 동네 아줌마다. 그림은 남성 중심적이다. 여자는 수동적인 자세로 남성을 받아들이고 남성이 성행위를 주도한다. 여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반면 남자들은 의기양양하다."

- 여자 화장실은 어떤가.
"여자 화장실에 있다고 모두 여자가 그린 것은 아니다. '누나 시리즈'나 남자 핸드폰 번호를 남긴 그림들은 남자들이 그렸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진짜 여자들이 그린 그림도 발견된다. 그들의 그림은 남자들에 비해 소극적이다. 가슴 두 개를 그리거나 조개 모양을 그린 게 전부다. 욕망을 많이 드러낸 글도 보기 힘들다."

조정화 작가는

올해 프랑스 에띠엔 드 코장 갤러리에서 'panorama전'을 개최한 것을 비롯, '한국사진의 수평전'(1994, 공평아트센타), '또다른 만남'(1997, 삼성포토갤러리), '사진 영상의 해 기념전'(1998, 코엑스), 물전(2003, 서울시립미술관), '몸이 내게 말했다'(2003, 라메르)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몸이 내게 말했다>(2004, 눈빛출판사)를 저술했다.

현재 남서울대학교에 출강중이다. airjjh@naver.com.
- 과거의 낙서와 현재의 낙서는 어떻게 다른가.
"과거에는 무조건 남녀 관계였다. 그러나 점차 동성애 그림이 증가하는 중이다. 남자가 남자의 성기를 잡거나 여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한다. 또한 무조건 수동적이었던 여자가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하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 그림들은 보통 여자들이 그린다."

- 다음엔 어떤 걸 계획하고 있나.
"있다.(웃음) 실제 화장실 낙서를 한 사람들을 찾고 있다. 커밍아웃하면 그 분들을 모델로 사진촬영을 할 계획이다. 성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하자는 이번 전시회 주제를 이어가자는 목표에서다. 여기엔 화장실 낙서뿐 아니라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회원가입한 사람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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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 &quot;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quot;

안택수-장윤석 검사-이방호 쓰레기 연속

 

 

이해찬 총리, "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
대부도 문제로 고성과 감정섞인 말싸움 벌여
 김윤상(bigjaw) 기자   
오마이뉴스
2005.10.25
2분 11초
273Kbps
이방호 의원은 이해찬 총리와 이른바 '대부도 땅 문제'를 놓고 감정 섞인 설전을 벌였다.

이 의원은 이 총리의 대부도 땅과 관련한 여론 조사를 했다며 이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총리가 대부도 땅을 취득할 당시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상에 영농경력을 15년으로 기재한 것에 대해 "고의로 속였다"는 응답이 51% 였다.

또 "영농목적으로 대부도 농지매입은 거짓말"이라는 응답이 72.3%,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2.1%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여론조사의 시기와 조사 대상자 숫자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내용을 국회 본회의장 양쪽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보여주자 이 총리가 상당히 강하게 반발했다. 이 총리는 "이미 여러 번 설명했다"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면서 "이 의원이 돈까지 들여 여론조사를 했는데 가치 있는 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비꼬았다.

감정이 상한 이 의원은 발언 시간을 초과해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어떻게 의원 발언을 그렇게 폄하 하나?"라며 "반성하는 기미가 있어야지…"라고 반발했다.

"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 "누가 훈계했다는 것이냐"는 등 이 총리와 이 의원은 서로 고성을 지르며 감정 섞인 말싸움을 5분 정도 벌였다.
(글 - 김태경/유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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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지휘권 발동은 강 교수 구하기&quot;

valign=top 이해찬 "답변 한다는 것이 창피스럽다" / 김윤상 기자
valign=top "천 장관, 대한민국 법률가들이 웃어요" / 김윤상ㆍ박정호 기자

 

수사지휘권 발동은 강 교수 구하기"
"검찰은 국민통제 받아야할 권력"
장윤석-천정배, 법사위 국감에 이어 강정구 사건 2라운드
텍스트만보기   특별취재팀(karma50)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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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세가지 문제'와 한국전쟁

극우수구 또라이들이 무신 말이 필요한가

 

취재: 황방열 유창재 김지은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동영상: 김윤상 박정호 기자



천 장관은 계속해서 "명백하게 정치권력에 의해 시녀화 된 검찰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라며"법무장관이 그런 지휘했다면 있을 수 없는 부당한 지휘"라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것과 관련해 "조사 받을 용의가 있느냐"고 천 장관에게 물었다. 천 장관은 "제가 지휘하는 검찰 수사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검찰이 헌법, 법률에 따라 제대로 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비켜나갔다.

장 의원이 "독려는 무슨 독려냐"고 반박하자 천 장관은 "표현 갖고 말꼬리 잡지 말라"며 "고발됐다고 모두 피고발인 조사하는 건가, 최소한의 인격 존중하면서 질문하면, 저도 답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 그만 들어가라"..."좀 더 해야겠다"

이에 앞서 장 의원과 이해찬 총리의 질의응답에서도 파열음이 터졌으며 의원석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이 총리가 답변과정에서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장 의원이 "초점 흐리지 말라"며 말을 돌렸다. 의원석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총리에게 "들어봐라"고 소리쳤고, 의원석에 앉아 있던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은 장 의원에게 "장 의원이 옛날에 어떻게 (수사지휘) 받았나 고백 해봐요"라고 조소하듯 질문을 던졌다.

선 의원이 계속해서 "한번 말해 봐요"라고 재촉하자, 장 의원은 사회를 보고 있던 박희태 국회부의장에게 "지휘권을 발동해 달라, 선병렬 의원은 상습적"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선 의원은 "장 의원이 상습적이야"라고 응수했다.

장 의원은 이어 "참여정부는 이전과 달리 합법, 정통성 있는 정부인데 이전 정부와 비교해 수사지휘권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이 총리에게 "내가 하면 정당, 남이 하면 부당한 개입이냐"며 "(천 장관의 개입은) 부당한 지휘라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에 발끈한 이 총리는 언성을 높이면서 "뭐가 부당하다는 것이냐"고 연거푸 화를 냈다.

장 의원이 "총리도 의원 아니냐. 진지하게 답하라"고 하자, 이 총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그만 들어가라는 장 의원에게 "좀 더 말씀드려야겠다"면서 발언을 계속하기도 했다.

이 총리가 들어간 뒤, 장 의원은 갑자기 해외 출장중인 행자부 장관을 대신해 국회에 나온 권오룡 행정자치부 차관을 불러냈다.

그는 "행자부 장관도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대리인인데, 경찰에 대해 왜 민주적 통제를 안 했냐"며 "이 중대한 사건을 불구속으로 처리했더라면 아무 문제없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행자부와 경찰의 관계에 빗대 천 장관을 비꼰 것이다.

애꿎게 불려나온 권 차관은 "행자부 장관은 개별사건에 대해서는 보고 받지 않으며, 포괄적인 지휘권만 갖고 있다"고 답했다. 선병렬 의원은 의석에서 "(검찰청법 8조 같은) 법이 없어"라고 말했다

▲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이 이해찬 총리에게 '그만 들어가라'고 했지만, 이 총리가 "좀 더 말씀드려야겠다"며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6신 : 24일 오후 6시]

이 총리 "이제야 보수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이제야 보수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보수가 아니고, 정통성 없는 물리적 통제세력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해찬 총리는 "언제쯤 합리적 보수가 주류로 자리잡고 정치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보느냐"는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민 의원은 "이번에 강정구 교수사건을 접하면서, 아주 일부지만 뉴라이트 세력에서 관용의 정신을 함께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언급을 접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사법적 처벌은 보수주의자가 신봉해온 자유주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박효종 서울대 교수), "이런 급진적인 주장도 지식의 시장에서 토론을 통해 여과될 수 있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다"(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인 김일영 성균관대교수) 등 보수적 입장의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 처럼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사견을 전제로 "현재 수구 정치세력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군부 쿠데타 세력일 뿐 정상적 정치세력도 갖지 않았다"며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리적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총리는 "지금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정통세력이 정상적으로 성장한다고 본다"며 "이런 (박효종 교수나 김일영 교수같은) 분들과 함께 토론할 조건을 만들려면 우리 사회를 철저하게 다원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이 보수의 중심에 자리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민 의원은 우리 사회를 샴쌍둥이로 비유해 "몸은 붙어있지만 생각은 다른 샴쌍둥이가 서로를 축복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가 관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대정부질문을 시작했다.

▲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이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발언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은 근본적 국가구조 개혁문제에 대해 계속 말씀할 것"

한편,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은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 대표와 이명박 시장을 공격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최인기 민주당 의원은 "정기국회 끝난 뒤에 노 대통령이 국민이 깜짝 놀랄만한 정책 변화를 제안하는 이변은 없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앞으로도 근본적 국가구조개혁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하고 의논하고 말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노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국가 여러 체계, 구조 근본 개혁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우리 사회를 선진사회로 만들기 위한 근본적 문제를 생각하면서 일상적 국정운영은 총리가 많이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5신 : 24일 오후 4시 50분]

"박근혜 대표에게 묻는다, 유신시대가 옳았다는 것인가"


▲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이 질문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대표에게 진심으로 고언 드린다. 이미 오래 전에 유신 끝났다. 유신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색깔공세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라.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 돌릴 수 없다.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가정체성' 문제제기에 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박 대표는 유신정권 시대가 옳았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처럼 강 교수를 정점으로 하는 간첩단을 만들어야 직성 풀리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해찬 총리에게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묻는데, 한나라당이 이해하기 쉽게 답변해 달라"고 물었다. 이 총리는 "한나라당이 잘 몰라서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아마 정당이기 때문에 활용하는 차원에서 묻는 것 같다"며 "우리 참여정부는 기본적으로 현행 헌법을 철저히 존중하는, 기본가치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우 의원은 천정배 법무장관에게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번 사태의 문제였다"며 "법무장관이 매번 수사 통제를 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한 방안이 있냐"고 물었다.

천 장관은 "성공한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며, 얼토당토 않게 과거 신군부에 면죄부를 준 것이 과거의 검찰이었으나, 10년 지나면서 검찰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검찰도 법원이나 재야 법조계 공공기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인권과 법치주의 존중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국토균형발전은 수도권의 대극점인 남해안에서 찾아야 한다.(정의화 한나라당 의원)

정의화 의원은 "남해안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면 서울과 수도권의 구심력을 견제하기 위한 이상적인 대극점이 구축되어 매우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며 "섬진강을 중심으로 여수, 순천, 광양, 구례와 남해, 하동, 사천을 묶어 거점지역으로 하고 왼쪽의 부산 통영, 오른쪽의 신안 목포가 독수리의 양날개가 되어 대양을 향해 웅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인 정 의원은 "남해안 개발과 호남고속철도 조기완공 및 연장, 남해안지역에 사회간접 자본 투자확대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다면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나 외자유치는 물론 관광산업 발달, 나아가 지역주의의 해소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남해안 개발을 위해 국제적 공모를 하고, 우선 당장의 일로서는 총리가 중심이 되어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이어 이 총리에게 자신의 제안에 대한 TF팀을 만들 것을 제안하면서, 정부 차원 검토를 부탁했다. 이 총리는 "국가균형발전 을 위해 남해안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며 "적절한 제안"이라고 답했다.

정 의원은 또 "정부는 양극화 해결 위해 여러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양극화 해소 위해 아일랜드형 사회협약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정배 "장관 맡으면서 탈당하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강정구 교수'사건에 대해서는 천정배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천 장관은 "이는 전적으로 법치주의와 인권신장이라는 자유 민주적 기본 가치를 위해 인권 수사 원칙 지키자는 것이었다"며 "차라리 법무장관을 맡으면서 무슨 탈당한다든가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이 총리 답변 태도에 '경고'

한나라당이 이해찬 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대정부질문 답변태도가 성실하지 않다"며 "문제를 삼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한나라당 공보부대표는 민병두 의원의 질의가 진행되는 중에 기자실에 내려와 "국무위원들의 답변에서 불성실, 적반하장, 본인 강변 등의 모습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나 부대표는 "대정부질문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 중 하나로, 헌법112조에는 국무위원들이 성실하게 진술답변할 의무가 있다"며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므로 답변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등은 대정부질문과 국회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나 부대표는 ▲ '이제야 보수세력이 탄생했다'는 이 총리의 답변 ▲ 한나라당의 국가정체성 회복 주장을 '구국운동 따위'라고 말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을 비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민병두 의원이 (보수와 개혁을 빗대) 샴 쌍둥이 얘기를 했는데, 이처럼 정부에게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고 야당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요구했다. / 황방열 기자


[4신 : 24일 오후 3시 40분]

"강정구 발언 어떻게 보나" "국민들이 실없는 사람으로 볼 것"


▲ 이해찬 총리가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 "총리는 강정구 교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찬 국무총리 "국민들이 실없는 사람이라고 보지 않겠나."

대정부질문 첫날인 24일, 한나라당은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강정구 교수 발언'과 관련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이해찬 총리와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은 "'한국전쟁이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 주장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공식입장은 무엇이냐"며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인지,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침략전쟁인지 밝혀달라"고 이해찬 총리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우리는 6.25 때 2백만명 가까이 동족상잔한 민족"이라며 "그 많은 분들이 희생되고 미망인·후손·부상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그렇게 발언하는 데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권 의원은 이해찬 총리로부터 "강 교수는 실없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오고, 의원들의 웃음이 터진 뒤 관련 질문을 끝냈다.

이에 앞서 권 의원은 천정배 장관을 상대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물었다.

"보석 중에 있는 자(강 교수)가 나와서 위법 행위를 계속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천 장관이 "보석으로 나온 사람이든 아니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어 법적 구속 요건에 충족하면 구속하는 것"이라고 답하자 "더 이상 장관과 얘기할 가치가 없다"며 이 총리를 불렀다. 이에 천 장관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퇴장했다.

권 의원, 조기 대선·총선 제안... 이 총리 "2007년 개헌논의 나올 것"

이 총리에 대한 질의에서 권 의원은 김대중 정부시절 도청문제를 언급한 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곧 한반도 평화"라며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하여 동북아 관련 국가의 정부대표들로 구성되는 '동북아시아평화센터'를 서울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 총리는 "동북아 평화가 깨지면 한반도 평화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한다"며 "동북아 평화센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권 의원은 계속해서 개헌문제를 꺼냈다. 그는 올 정기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헌법학자 및 정치학자로 구성되는 정치 전문가 중심의 '헌법연구회'를 국회의장 직속으로 설치해 개헌준비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 준비를 거쳐 2007년 11월에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동시 실시해 차기인 17대 대통령과 18대 국회의 임기 개시일을 2008년 2월 1일로 하자는 것이다.

이 총리는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 아직 개헌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며 "2007년 가면 자연스레 개헌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때 권 의원이 말한 사안들도 자연스레 나올 것이라 본다"고 답했다. 또 "국회의원 선거와 대선 일정을 조율할 좋은 기회이니 2007년에 가서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권지휘권 행사에 대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3신 : 24일 오후 1시 20분]

이 총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내면 어떻게 하나"


24일 국회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대정부질문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해찬 총리와 천정배 법무부장관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부으며 공격하고 있고, 반대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적극 찬성의사를 표시하며 총리와 장관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있다.

이날 세 번째 대정부질의자로 나선 유필우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 총리에게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발언에 대한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이 총리는 "여기 299명 의원 중에 그가 하는 말 누가 동의하나"라고 반문한 뒤 "말이 되지 않을 사안을 갖고 계속 논의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는 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은 2005년이다. 벌써 전쟁을 치른지 50년이 넘었고, 냉전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지 20년 넘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 국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국민들이 이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게 안타깝다. 이젠 국민들도 그 실체를 다 안다. 이런 논쟁은 무의미하다."

이 총리는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수사 지휘권 발동'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직서를 낸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현재 참여정부는 검찰에 대해 부당한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수용하지 않은 공무원으로서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들어진 법은 모든 공직자가 지켜야 한다. 제도가 잘못됐으면 고쳐야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내면 어떻게 하나. 처음부터 직을 수용하지 말았어야지…. 그게 공무원의 복무자세이다."

천 장관도 "검찰의 수사 자율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면서 "제 수사권지휘로 준 사법권의 지휘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준 사법기관으로서 제대로 활동하도록 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수사권 지휘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했다.

천 장관은 이어 "이번에 검찰총장과 많은 논의와 토론을 했었다"면서 "그런데도 견해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소법 법원칙상 불구속 수사지휘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천 장관은 또 "수사권 지휘권 발동을 '일상다반사'로 보는 것은 굉장한 오해"라면서 "검찰이 수사를 잘 할 수 있도록 지휘하지만 (가급적) 지휘는 토론하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총리 "개헌 논의 2007년 하반기에 공론화 될 것"

이해찬 국무총리가 "우리 시대에 맞는 국가권력 구조에 대한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2007년 하반기 가서 되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유필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개헌을 위한 전문가모임'(가칭)을 제안하면서 개헌 논의를 촉구하자 이같이 답했다.

이어 이 총리는 "개헌 논의는 매우 중요한 것을 다루는 것이기에 (전문가들의 논의는) 일찍 시작해도 되지만 국민적 공론화는 너무 일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민간 전문가 뿐만 아니라 개헌에 관련된 정당이나 헌법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해 폭넓게 해서 여러 안으로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총리는 현행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한 질의에 "지금 소선거구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율과 당선자 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며 "일정지역의 경우 의석 한 자리도 얻지 못하기도 해 제대로 대의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 총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지향적인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구조로 대의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24일 대정부질문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이해찬 국무총리.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2신 : 24일 오후 1시]

이해찬-안택수 '2라운드'... 천 법무와 협공으로 이해찬 판정승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노 정권이 자유민주주의 신봉하는 세력인지 중도파 정권인지, 사회주의, 나아가 친북 좌파 세력인지."

이해찬 국무총리 "지난 연초에 쓰나미 피해가 커서 우리가 지원했던 나라의 의원들이 와서 보고 계신데 이 자리에 와서 안 의원이 말한 사안에 대해 답변한다는 것이 좀 창피스럽다.(소란)

92년 선거 때 당시 여당이 (정체성 논란을) 많이 활용해 성과를 얻었다가 97년엔 실패해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나. 21세기에 들어서까지도 (정체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고, 의회 품위에도 도움 안 된다."

지난해 대정부질문을 파행으로 몰고 갔던 안택수 의원과 이해찬 국무총리의 설전이 올해 대정부 질문에서도 재연됐다.

지난해 대정부질문에서는 안 의원이 이 총리의 해외순방 중 한나라당 폄하 발언에 따져물었으나 이 총리는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했다, 그런 정당을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하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같은 '차떼기당 발언'에 발끈한 한나라당이 국회 일정을 거부하면서 당시 정국은 급속히 냉각됐다.

24일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질문자로 나선 안 의원이 이 총리에게 현 정권의 정체성이 뭐냐고 물은 것이 발단이 됐다. 작심하고 나선 안 의원이었으나 이 총리가 곧장 반박에 나섰다.

안 의원이 다시 "노 대통령은 당선 전에는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인 것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동가식 서가숙'하기 때문에 정체성을 종잡을 수 없다"며 "보수 우파들의 시국선언 애국주의 인사 모임은 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좌향좌를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총리는 "사람이 많이 사는 나라이니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없다"며 "자기가 보는 만큼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일일이 답할 가치는 없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이 나라 어디로 끌고가나. 진지하게 답하라" "그렇게 미숙한 총리 아니다"

▲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이 이해찬 총리와 천정배 법무부장관에게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에 안 의원이 "이렇게 오만한 총리의 답변을 계속 듣는 국민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지 안타깝다"며 불쾌한 심경을 내비친 뒤 "노 정권이 이 나라를 진정 어디로 끌고가고 있는지 총리, 진지하게 답하라"라고 질문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진지하게 답하면 정체성 논란으로 국민을 이간, 분열시키는 전술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면서 "그 정도로 제가 경험없는 미숙한 총리가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안 의원은 "강 교수 구하기 방침은 남북 정상회담 열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란 견해도 있다"며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며 "강 교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이에 대해서도 "지금 강 교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의원 중에서도 한 분도 안 계신 것 같은데, 자꾸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대꾸하라면 누가 대꾸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총리는 "색깔론으로는 많이 이용하지 않았나, 그만 하라, 이젠, 그 정도 하셨으면…"이라고 덧붙였다.

또 안 의원은 이 총리의 땅투기 의혹을 제기했으며 "한나라당은 아직도 나쁜 당이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투기를 한 적이 없다"며 "(한나라당이 나쁜 당인지는) 안 의원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받아쳤다.

"법무장관 참 뻔뻔하다" "무분별한 구속 시정하는 것이 내 임무"

이 총리에게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안 의원은 이번에는 천정배 법무장관으로 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천 장관은 "수사지휘권 행사는 법치주의와 형법·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검찰에 불구속 수사 원칙을 잘 지키라고 한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이 문제를 국가 정체성 문제로 확대하는 일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있다, 정략적 문제제기로 사회 분열이 빚어지는 지는 몰라도 이는 나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와는 전혀 관련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안 의원은 다음과 같이 천 장관을 질타했다.

"법무장관 참 뻔뻔스럽다(한나라당 의원들 웃음), 지금 우리나라에 생계형 절도범이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1백여명씩 구속되고 있다. 법무장관은 (강금실 장관 시절인) 2년 전에는 송두율씨를 봐주자고 하다가 이제는 강 교수를 봐주자고 하고 이러면 국민이 헷갈릴 수밖에 없지 않나. 어찌 그렇게 뻔뻔하냐."(안 의원)

하지만 천 장관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질문 다 하셨나요? 질문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저는 뻔뻔하지 않다. 헌법과 법률을 잘 지켰다. '그간에는 법률 취지 잘 안 지켰는데 (이번엔) 왜 잘 지켰느냐'고 하면 답할 방법이 없다.

검찰이 그렇게 함부로 구속하지 않는다. 과거에 구속을 남발한 관행은 매우 빠르게 검찰, 경찰, 법 집행 기관이 시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절도범이든 누구든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법적 구속요건과 관계없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면 내가 시정시키는 것이 당연한 임무다."


안 의원은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책임지고 스스로 용퇴할 의향 있느냐"고 물었으나, 천 장관은 "사회 갈등, 분열에 대한 책임은 법무장관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국가 정체성 침해' 따위로 정략적으로 공격해서 생긴 것"이라며 "만약 정당한 지휘권을 행사한 장관이 물러나면 이 문제의 본질이 없어진다"고, 사퇴주장을 일축했다.

또 "수사권 지휘를 검찰 장악 위한 신호탄으로 본다"는 공세에도 천 장관은 "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든 것은 신군부독재 같은 군사독재였다"며 "저는 검찰을 부당하게 장악할 의도가 전혀 없다, 장관으로서는 검찰이 국민 위한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안 의원은 천정배 장관에게서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1신 : 24일 낮 12시 10분]

천정배 "검찰 과거사 정리하겠다"... 조사위 구성 방침 밝혀


▲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은 "검찰도 다른 기관보다 앞장서서 (과거사를 정리할 수 있도록) 지휘하겠다"고 강조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민들의 인권을 옹호하기는 커녕 인권을 유린·말살하고 사건을 조작하는 경우가 과거에 많았다. 검찰도 그런 국가기관 중 하나로서 그런 일이 적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어 법무장관인 제가 진심으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하고 사과드린다. 이런 과거에 대해서 정리해야겠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검찰의 과거사 진상 규명을 천명하고 나섰다. 천 장관은 이를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천 장관은 특히 "앞으로 잘못된 과거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검찰도 다른 기관보다 앞장서서 (과거사를 정리할 수 있도록) 지휘하겠다"고 강조했다.

천 장관은 24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정치분야)에서의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또한 천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서도 "수사지휘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키려는 것"이라면서 "피의자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을 시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것이 원칙으로, 이번 수사지휘는 검찰청법에 따라 적법하게 내렸다고 생각한다"고 기존의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는 이해찬 총리도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 총리는 "천 법무장관은 국회의원을 하기 전부터 인권 변호사로서 모든 사람, 국민의 인권을 소중히 하는 것을 중요덕목으로 삼아온 사람"이라며 "법무장관이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했는데 국가 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24일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관계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정치분야를 시작으로, 31일까지 통일-외교(25일), 경제(27, 28일), 교육-사회-문화(31일) 분야 대정부질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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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세가지 문제'와 한국전쟁
텍스트만보기   이재봉(pbpm) 기자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글 한 편으로 온 사회가 참 시끄럽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한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강 교수의 글을 직접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란다. 대학교수들을 비롯해 이른바 여론을 주도한다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별로 길지도 않은 그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극우 정치인들과 수구 신문들의 억지와 선동에 놀아나는 꼴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강 교수의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의 글은 너무 쉽다. 대학교수들의 글은 대체로 영어와 한자가 많이 뒤섞여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쉬운 내용도 어렵게 써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미국에서 오랜 동안 공부한 사람이어서 심오한 이론을 끌어다가 어려운 영어를 섞어 글을 쓰면 웬만한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을텐데, 글을 너무 쉽게 쓰는 탓에 극우 정치인들이든 수구 언론인들이든 무식하거나 바쁜 사람들조차 그의 글을 대충 읽으면 시비를 걸 수 있게 된다.

둘째, 주장이나 결론이 너무 명확하다. 글을 쉽게 쓰더라도 주장이나 결론은 에둘러 표현하거나 다소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면 될텐데, 민감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게 되는 듯하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처럼 과정만 제대로 설명하고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글을 쓰면 탈이 덜 생길 것 같은데, 그는 '비겁한 글쓰기'를 굳이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글투가 점잖지 못하다. 나이 60의 대학교수라면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긴 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텐데 거친 말들을 그냥 쏟아낸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에 부시 대통령을 '황야의 무법자'라고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 북한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는 학술 논문에서든 신문 기사에서든 '깡패 국가'나 '폭군' 등의 거친 말을 주저없이 쓰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거친 말을 쓸 수 없느냐는 식이다.

강 교수는 이처럼 '고지식하게' 글을 쓴다는 것을 참고하면서, 그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발표해온 한국 전쟁의 성격에 관해 얘기해본다.

(1) 전쟁의 명칭: '한국 전쟁'과 '6·25 사변'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름짓는데 날짜를 포함하기 좋아한다. '3·1절' '4·3항쟁' '4·19' '5·16' '5·18' '8·15' 등으로 말이다. 나는 이게 좀 불만스럽다. '3·1절' '5·16' '8·15' 등과 같이 어떠한 일이 일어나 그 동작이 지속되지 않고 하루에 끝났다면 이런 명칭에 이의를 달기 어렵겠지만, '4·3항쟁' '4·19' '5·18'에서처럼 운동이 지속되었다면 어느 특정한 하루를 잡는 게 애매하기 때문이다.

'6·25'는 더구나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군이 이 땅에 발을 디딘 1945년 9월부터 1950년 6월 이전에 남북 사이의 이념 갈등과 투쟁 과정에서 약 10만명이나 희생되었는데,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남쪽 안에서 일어난 이념 갈등은 빼더라도, 1949년부터 38선 일대에서 남북의 군대가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적지 않았다. 남침도 있었고 북침도 있었다. 또한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도 이 과정을 모두 '6·25 사변'이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한가.

나는 '6·25'라는 이름에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공산 괴뢰군이 쳐들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의도 말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한국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한편, 한국 전쟁의 국제적 성격과 관련하여, 유럽평화대학의 요한 갈퉁 교수는 '한국 전쟁(The Korean War)'이란 이름도 전쟁의 성격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며,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면 남북한 사이에서만 일어난 전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전쟁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지만 전쟁의 주체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전쟁'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라크 전쟁 (The Iraq War)'이란 명칭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침략자 또는 핵심 당사자인 미국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조차 '이라크에서의 전쟁 (War in Iraq)'이라고 쓰지 않았던가.

(2)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1945년부터 시작된 한국 전쟁은 분명히 국지전이었고 내전이었다. 그러나 '6·25 사변'은 국제전으로 보고 싶다. 1948년에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독립 국가가 세워져서 1950년 6월부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1950년 6월 북한이 유엔으로부터 주권 국가로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북한이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지 않았으므로" 내전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유엔은 1950년 6월 25일과 27일 결의안에서 6·25를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 파괴'라고 규정했고, 10월 7일 통일 결의안 역시 통일을 전쟁 목적으로 삼아 한 나라 안의 문제 곧 내전으로 성격 규정했다. 6·25 이전에 유엔은 남한만을 38선 이남 합법 정부로 승인했지 북을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지 않아 침략 전쟁의 성격 규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소련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외교적 승인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은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었으므로 국제법적 기준으로 침략 전쟁도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6·25가 침략 전쟁보다는 통일 전쟁의 성격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엔의 승인을 가장 중시하는 듯하다.

당시 북한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 주장은 오랜 동안 치열하게 국가의 정통성을 경쟁해온 남북 사이에서 남한에 결정적 힘을 실어주는 셈이다. 극우 수구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남한에게는 충신이요 북한에게는 역적 아닌가.

나는 그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국가의 정통성을 따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강 교수가 내세우는 유엔이나 국제 사회의 승인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와의 연계성 여부, 나라를 세운 지도자들의 경력, 당시 인민의 지지도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국가의 정통성을 지도자들의 경력이나 인민의 지지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1948-1950년 북한의 정통성은 남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 않았을까. 당시 북한 정부는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서 항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반면, 남한 정부는 일제에 빌붙어 지내던 친일 또는 부일 세력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해방 직후에는, 자본주의를 강요한 미군정 아래의 남쪽에서조차, 80% 이상의 인민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원했던 반면, 10% 남짓의 인민만이 자본주의 체제를 원했다. 따라서 유엔의 승인을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북한이 주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3) 6·25는 통일 전쟁인가, 침략 전쟁인가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비교 대상의 성격이 서로 다르거나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인가 해방군인가" 하는 불순하고도 무식한 질문과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통일 전쟁이면서 침략 전쟁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침략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에 대해 미국과 미군 자신은 '점령군'이라 부르며 남한을 '점령'했지만, 남한의 위정자들은 그들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며 '해방군'으로 불렀다. 점령군도 되고 해방군도 되는 것이다. 점령군이기 때문에 해방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고, 해방군이기 때문에 점령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다.

그런데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25를 '통일 전쟁'이라고 쓴 부분에 대해 온갖 비난과 위협이 난무한다. 2001년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6·25를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라며 앞으로는 결코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 국회에서는 북한의 입장만을 대변했다며 대통령직을 사퇴하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6·25가 통일 전쟁이 아니라면 분단 전쟁이었다는 말인가.

극우 수구파들은 6·25를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기습 침략을 감행한 전쟁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공부해왔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는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강 교수나 김 전 대통령도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전쟁을 6·25 사변으로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본다면 미국이 전쟁의 원흉일 수도 있고, 남침이 먼저냐 북침이 먼저냐 따지기가 애매하거나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6·25 사변만 떼어놓고 본다면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먼저 침략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적화 통일은 통일이 아니고, 침략 전쟁은 통일 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통일은 여러 가지로 추구할 수 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통일도 있고, 전쟁에 의한 통일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녹화 통일도 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며 수렴될 수 있는 통일도 있고, 한 체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통일도 있다. 이 가운데는 바람직한 통일도 있고 꼭 피해야할 통일도 있다.

6·25는 전쟁에 의한 통일 시도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 시도였다. 수단과 방법이 나빴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고,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달랐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강 교수나 김 전 대통령이 이러한 통일 시도의 방법과 목표를 바람직하다거나 다시 한 번 추구해보자고 했다면, 나를 비롯해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6·25가 통일 전쟁 또는 통일 시도라는 너무나도 뻔한 말이 도대체 왜 시빗거리가 되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4) 미국의 전쟁 개입에 관하여

미국이 6·25에 개입한 것을 미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 전쟁에 미군 포병 연락 장교로 참여했던 하와이 대학교의 글렌 페이지 교수다. 그는 1968년 펴낸 The Korean Decision (한글 번역본: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 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참전 결정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가, 1977년 자신의 책을 스스로 비판하며 하나의 폭력에 대해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한 것을 반드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성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 때문에 중국까지 참전하여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남북 양쪽에서 수백만이 죽게 된 것을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는 우리의 가치관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다. 강 교수가 요즘 비난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6·25가 통일 전쟁이라는 주장보다는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전쟁이 빨리 끝났을테고 사람들이 덜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부른 것 같다. 물론 강 교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앞 뒤 문맥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지금은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쉽게 말해 체제 우월 경쟁은 끝났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는 그 때 수백만 명이 죽었을지라도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에 흡수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강 교수 자신도 지금의 남북 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남한 체제를 선호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1950년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북쪽이 남쪽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더 안정되어 있었고 훨씬 개혁적이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인민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원했었다. 따라서 지금의 기준이 아닌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면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막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바랐을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한국 전쟁에 관해 오랜 동안 연구해온 학자가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주장을 편다는 이유로 그에게 온갖 위협을 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그리고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을 인정하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란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악랄하게 훼손했던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들을 떠받쳤던 이른바 '국가 원로'들이 국가 정체성을 들먹거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시국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무슨 자유이며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 반공군사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반공군사독재의 망령이 하루 빨리 완전히 사라지고 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길 기대한다.
이 글은 [통일뉴스] 및 월간 [열린전북]에도 기고한다.

* 이재봉 기자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이며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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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산엔 '게릴라전'이 한창

 

 

10월 산엔 '게릴라전'이 한창
[떠나요! 우리땅 우리바다] 까탈이의 추억여행2
텍스트만보기   김남희(freesoul) 기자   
▲ 곰배령의 단풍은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은근한 수줍음으로 찾아온다.
ⓒ2005 김남희
10월 산은 게릴라전이다. 척후병처럼 기척도 없이 내려와 순식간에 온 산을, 산 아래 마을을, 한반도 남단을 죄 접수해버린다. 소리도 없는 일제공격에 결박당해 발만 동동 구르다 주저앉기 십상이다.

10월 산은 속도전이다. 치고 들어왔나 싶었더니 어느새 다 빠져나갔고, 가득 찼나 싶었더니 텅 비어 있다. 손 쓸 틈도 없이 무장해제 당해 두 손 번쩍 들고 엎드리기 십상이다.

10월 산은 위험하다. 10월 산에 들면 일상으로 돌아가 적응하기 어렵다. 바람 든 심장의 두근거림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10월에는 함부로 길을 나서지 않는 법이다.

▲ 맑은 가을 햇살 아래 나도 몸을 말려 잘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해지고 싶다.
ⓒ2005 김남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가을은 빠르고 깊다. 가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중턱이다. 이곳에 내려온 지 이제 보름 남짓. 부러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어딘가에 짐을 부려놓고 정착민으로 두어 달 살고 싶었는데 서울은 아니었다. 내게 서울은 점점 낯선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낯설음에 불편함까지 더해져 겹으로 난감했다.

가까운 이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은 후 나는 준비 없이 내려와 일주일을 머물렀다. 좋았다. 맵고 맑은 공기가, 망설임 없는 바람이, 하늘과 잇닿은 산이, 그 산 아래 깃든 사람의 마을이 좋았다. 눈을 두는 곳 어디에나 나무가 있고, 산이 있었다. 나무는 내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고, 산은 몸을 두는 곳과 상관없이 늘 내 마음이 가 있는 곳이었다. 몸과 마음이 살아나던 시간이었다.

그 충만함을 잊지 못해 제대로 짐을 꾸려 다시 내려왔다. 나는 끝을 보고 싶었다. 치고 내려오는 가을산을 마중하고, 단풍의 눈을, 단풍의 속도를, 단풍의 성질을 낱낱이 지켜본 후, 마침내 잎 다 지고 허허롭게 선 늦가을산까지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무를, 숲을, 산을, 제대로 한 번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름 꽃 이미 다 진 자리에 저 홀로 남은 둥근이질풀 한 송이
ⓒ2005 김남희
진동리의 아침은 느리게 찾아온다. 산을 넘느라 기진한 해는 맵찬 아침 공기 속에 이미 녹녹해진 햇살을 풀어놓는다. 내가 머무는 집에서 강선리까지 이어지는 3킬로미터는 매일 아침 산책길이다. 40분을 걸어 올라가는 길. 삼거리를 지나 곰배령 가는 길로 들어서면 길은 조붓해지고 숲은 울창해진다. 물소리는 귓전을 울리며 길게 차오른다. 그 길에 가을이 깊다. 단풍이 들었다.

단풍은 엽록소가 빠지면서 잎들이 제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단풍 물 든다'가 아니라 '물 빠진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야 배웠다. 온 산의 나무들, 그 잎들이 물 빠지고 있다. 제 색을 찾아가고 있다. 허황했던 치장을 벗고 맨 얼굴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산을 이루는 것들의 그 월동준비가 나는 눈물겹다. 그래서 이 길에서 내 발걸음은 늘 느리다.

▲ 곰배령 오르는 길에 이년 째 집만 짓고 있는 사나이가 있다. 그 사나이는 지나는 이를 붙잡아 제 집 벽이 될 판자 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렇게 붙잡혀 나도 한 줄 써놓고 돌아섰다.
ⓒ2005 김남희
느리게 느리게 걷는 길. 산의 길은 다 다르다. 오르는 길이 다르고, 내려오는 길이 다르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길이 또 다르다. 첫 햇살 받는 아침길이 다르고, 지는 해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저녁길이 다르다. 혼자 걷는 길이 다르고, 좋은 이의 발치에 두세 걸음쯤 떨어져 따라 걷는 길이 다르다. 맑고 밝은 기분으로 걷는 길이 다르고, 고요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걷는 길이 다르다. 첫 잎 틔우는 봄길이 다르고, 초록이 지쳐가는 여름길이 다르고,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길이 다르고, 눈 쌓인 겨울길이 다르다. 길은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다.

▲ 꽃 지고, 잎도 다 지고, 오직 열매로 남아 새싹 틔울 봄을 기다린다.
ⓒ2005 김남희
날마다 새로운 길을 걸어 조금씩 익숙해지는 얼굴을 찾아 간다. 곰배령 입구에는 젊은 부부가 산다. 나는 날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그 집으로 간다. 가서, 둘이 함께 채워가는 공간과 시간을 들여다보며, 둘의 꿈을 기웃거린다. 그 둘의 사는 모습이 하도 어여뻐 내 마음도 덩달아 달아오르곤 한다.

그래서 나도 꿈을 꾼다. 은밀한 꿈 하나. 어느 물 맑고 산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 더벅머리 총각 혼자 사는 소박한 집 한 채를 찾아내면, 스윽 문을 열고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고 그냥 살아버리고 싶다는 꿈. 아무렇지 않게 부엌으로 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토닥토닥 파를 썰고 두부를 베어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나뭇짐을 지고 돌아온 그이와 마주앉아 저녁밥을 나누고, 몸도 나누고, 남은 삶도 나누며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는 꿈. 그래서 산길을 걸을 때면 늘 남의 집을 기웃거리게 된다.

▲ 엽록소가 빠져 제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풍이다.
ⓒ2005 김남희
젊은 부부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삼형제 고개가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고개라 이름 붙일 만큼 가파른 길은 없다. 같이 걷는 이가 "여기가 첫째 고개, 이게 둘째 고개, 마지막 고개야" 하고 일러주어야 겨우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여기다 고개라는 이름을 붙였겠어. 한 겨울에 눈은 한 자가 쌓였는데, 지게라도 지고 이 길을 넘으려면 요만큼의 오르막도 높은 고개처럼 버거웠던 거지."

바라보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일이다. 바라보는 건 어디까지나 낭만이고, 존재하는 대상을 향한 관찰의 시선일 뿐이지만, 산다는 것은 치열한 현실이자, 존재하는 대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참여의 움직임이다. 나는 여전히 산을 낭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직 산의 덕성에 기대어 살 자격이 없다.

▲ 자연이 그려놓은 가을 풍경화 한 점
ⓒ2005 김남희
산에 관한 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어찌 모르는 것이 산에 관한 것뿐일까!). 거기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알지 못하고, 나무의 이름과 성질도 모르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산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일자무식쟁이다. 그런 무식함이 부끄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한 내게는 늘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셈이니까. 산이, 산을 아는 사람이, 내게 줄 것들이 여전히 많으니까.

자연 앞에서 나는 한없이 어수룩하고, 서투르고, 구멍투성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오면 가르쳐줄 게 많다. 산도, 나무도, 풀도, 꽃도, 내게는 스승 아닌 것이 없다. 나의 서투름과, 나의 틈과, 나의 아무것도 모름과, 이 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 없음이 때로는 세상과 소통하는 구멍이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내가 지금 이름 불러주지 못하는 꽃들과 내가 구별해내지 못하는 나무들은 내가 불러주는 이름 따위 없이도 수천, 수만 년을 잘 살아왔다. 저 홀로 자유롭고, 스스로 빛나는 그것들이 나는 부럽다. 기다림을 알되, 그 기다림에서 자유로운 것들. 나무들과 꽃에 있어 기다림은 일상이고, 몸에 밴 것이다.

때를 열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데에 서두름도 없고, 서투름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그저 제 자리에서 할 일을 할 뿐이다. 다만 하고 또 할 뿐이다.

▲ 물 빛에 비친 단풍과 붉은 열매 몇 알
ⓒ2005 김남희
나는 점점 사람이든 사물이든 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들이 좋아진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제 자리에서, 그저 묵묵히 할 뿐인 사람과 짐승들. 산 아래 머무는 동안 나는 산을 바라보며 삶을 배운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그저 기다리며 견뎌가는 것임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할 뿐임을, 산 아래 마을에서 산을 통해 배우고 있다. 저 산에 지금 가을이 깊다.

 

2005-10-22 09:1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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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함께 秋억을 쌓자

 

 

연인과 함께 秋억을 쌓자
[스포츠한국 2005-10-08 09:51]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깊어지는 가을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추억만들기에 바쁜 연인들에게 ‘이색 데이트 코스’ 5곳을 소개한다.

향긋한 허브향기에 피로가 '싸악~'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허브 아일랜드 (www.herbisland.co.kr)는 세계 각지의 대표적인 허브 100여 종을 수집, 재배해 허브 생태는 물론 특유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5,000여평의 넓은 대지 위에 조성된 허브단지를 산책하면서 허브 잎을 직접 손으로 문지른 후 향을 맡아보자.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금방 달아나 버린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향을 먹는 마을(식당)에 들러 허브만이 자아낼 수 있는 향을 먹고, 카페에 들러 향긋한 허브를 마시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겨울연가'속 준상이와 유진이 돼볼까

천년의 시간 속에 낯선 길손을 지혜의 문으로 인도하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 (www.woljeongsa.org). 주변 250만평에 전나무 100만 그루를 비롯해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등 70여종의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도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약수터로 가는 약 1㎞구간은 전나무 숲이 울창해 최고의 산책길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이 눈 덮인 전나무숲길을 걷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올 가을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높이 35m 거목이 양쪽에서 반기네

담양-순창 24번 국도를 타고가다 보면 유명한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이 있다. 1972년 가로수 조성사업 시 묘목을 심어 조성한 것이 벌써 30여년이 흘러 높이 35m, 지름 2m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가로수 길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드라이브하기에 최적이다. 구길이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차를 세워두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담양에서는 최고의 대나무 숲을 자랑하는 대나무골 테마공원(http://www.bamboopark.co.kr)을 만날 수 있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대밭 사잇길, 맨발로 걷는 황토길, 소나무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축제와 함께 즐기는 오색찬란 단풍

가을하면 단풍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오색찬란한 내장산 백양사 단풍은 특히 유명하다. 백양사 단풍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소 중 하나가 바로 쌍계루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쌍계루는 붉은 단풍에 둘러싸인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백학봉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백양사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인데, 올해는 10월 26일~28일에 백양단풍축제가 열린다.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고…

지리산 피아골 은 지리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유명하다. 산도 붉고 물도 붉게 비치며, 사람도 붉게 물든다 하여 ‘삼홍’이라고 불린다. 피아골의 상단부인 피아골 산장 아래 부분은 10월 중순, 단풍이 가장 빼어난 직전 부락에서 삼홍소까지는 10월 말경에 찾아야 단풍의 절정을 볼 수 있다. 10월 중순에서 말경에는 피아골 일대에서 피아골 단풍제가 열린다.

도움말 : www.toursite.co.kr

사진 설명

1 내장산 백양사

2 허브 아일랜드

3 월정사 전나무 숲길

4 지리산 피아골



최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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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미스테리쥐

 

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입력 :2005-10-21 14:49   강세준 컬럼니스트  
안상수. 인천시장 말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안상수. 그는 필자 같은 80년대 초중반 서울법대생들에게는 작은 영웅이었다. 그 시절 서울법대생들에게 그는 전두환 시대의 파쇼적 억업구조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인권을 옹호한 용기있는 선배로 각인돼 있다.

그가 있었기에 87년 6월 항쟁이 있을 수 있었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 그를 사표삼아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서울법대생도 주위에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군부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래서 고시 공부는 곧 민중에 대한 배신이자 일신의 영달만을 위한 도피행위라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해도, `안상수 같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방어논리를 서울법대생들에게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검사시절 박종철군 물고문 타살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는 그 일로 검사 옷까지 벗었다. 사실 그 시대에 그만한 일을 하려면 본인으로서는 목숨까지 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두환이 마음만 먹었으면 실제로 안씨는 무슨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가 한 일은 전두환 정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안 의원이 어느 자리에서, 무슨 정당에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저 사람이면 믿어도 된다’는 공감대가 서울법대 출신들에게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대로 여전히 정의를 지키는 사람, 용기있는 사람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 의원이 20일 밤 100분 토론에서 한 일련의 발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라고는, 그것도 검사를 지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리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밤새 허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평소 TV를 잘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안씨가 그런 수준에서 말하는 것을 처음 봤다.

필자가 충격먹은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로 인해) 이제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민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비슷한 말을 박근혜 대표도 며칠전 전 소위 `구국투쟁’을 선언하면서 했다. 박대표는 `검찰,경찰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국기문란사범을 처벌하려고 하는데 법무부장관과 현 정권이 이를 가로막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대표의 발언도 법논리로 따지면 말이 안되지만, 사실 그녀가 형사소송법을 제대로 한번 공부해 봤을 리도 없고, 수사절차에 대해 자세히 경험한 적도 없었을 테니, 뭐 저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법대 출신, 검사출신인 안 의원의 입에서 같은 취지의 말이 나오다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일일이 법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지만, 한번 보자. 검찰이 강 교수를 불구속수사하면 앞으로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를 불러도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 이런 사고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잘 파악이 안되지만, 대충 짐작은 이렇다. 법 위반자, 특히 국보법 위반자의 경우 구속수사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서 그 죄를 함부로 짓지 않고 은인자중하겠지만, 불구속 수사하면 법을 우습게 보고 마구 위반할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 아닌가 여겨진다.

짐작이 맞다면, 안 의원은 정말이지 법학전공자로서는 F학점이다. 그런 실력으로 고시에 합격했다는 게 미스터리다. 넓은 의미에서 구속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수사나 재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구속이고, 또 하나는 형을 집행하는 단계에의 구속이다.

형 집행단계에서의 구속은 형사처벌의 일종이다. 쉽게 말해 감옥에 가서 죄값을 치루는 것이다. 만약 천 장관이 이 재판단계에서의 구속을 하라 하지마라 했다면 그건 정말 탄핵감이다. 사법권에 대한 불법적인 간섭이고, 정말이지 광화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위해서, 좀더 정확하게는 증거 및 신병 확보를 위해서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라는 특별한 요건이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것도 일시적으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법 집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죄에 대한 대가로서의 형벌이 아니다. 검사는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권한은 있지만, 처벌할 권한은 지니고 있지 않다. 삼권분립에 의해 형사처벌권은 사법부 즉, 법원에만 주어져 있다. 물론 수사단계의 구속에도 처벌의 냄새가 묻어 있지만, 그것은 인신속박이라는 결과가 가져오는 부작용일 뿐이다.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 때문에 앞으로는 반국가사범, 공산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설쳐대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고 안 의원이 말한 것은 이 두 종류의 구속을 법률적으로 구별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진짜 안 의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의 법률지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강 교수가 경찰이나 검찰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던가 도망가려고 한다던가 하면 지금이라도 긴급체포나 체포영장, 구속영장 청구 등을 통해 신병을 강제로 확보할 수 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관계가 바뀌면 천 장관의 지휘도 효력을 잃게 된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느냐 구속수사하느냐 하는 것 하고, 강 교수를 형사처벌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니까 이 틈을 타 광화문에서 누군가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만세를 외치고 내란을 선동하고 생쑈를 한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법무부 장관이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으니까 이들을 사법처리할 수 없는가?

현행범이라고 판단되면 현장에서 체포하면 되고, 도망갈 염려가 있으면 구속수사하면 된다. 그것하고 이번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법대 1년차면 알 수 있는 이런 단순한 법논리를 검사출신의 안 의원이 모른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안 의원의 발언 가운데 또 하나 놀란 부분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의미를 안 의원이 이해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천 장관 쪽에서 `민주적 통제’ 운운하니까 “도대체 민주적 통제가 뭐요?”라고 묻더니, 나중에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이는 안 의원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상식 이하로 낮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제1원칙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 의해 주어졌고 통제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교과서 수준의 말이라 글로 쓰기 민망하지만, 조금만 부연 설명해 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행정권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은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그 방법은 바로 선거다. 선거에 의해 뽑힌 대의기관에 의해 모든 국가권력은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됐다. 국민이 직접 스스로 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니까 일종의 대표자를 뽑아서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대표적인 국가기관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검찰은 대통령과 의회 양쪽으로부터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대통령은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임명하고 지휘하고 감독하는 등의 행정적 방법으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행사한다. 의회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법률안 및 예산 심의 등을 통해 검찰을 통제한다.

▲ 강세준 컬럼니스트 
검사가 수사권,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민주적 통제구조가 전제로 돼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했거나 개인적으로 똑똑하다는 이유로 수사권, 기소권을 준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고 지휘할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국회가 제어할 수 있으니까 검찰이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와 관련해 `민주적 통제’를 거론할 때는 바로 이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론적 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이를 `헌법과 양심에 의한 수사’ 따위로 이해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수준이 한심하고 그 속내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안 의원이 상황여건상 정치적으로 박 대표를 밀어주기 위해 그런 발언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진짜 법이론 이해가 그런 수준이라면 자기반성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고언하고 싶다. 안 의원을 믿고 따르고 싶어 하는 법대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무지한 모습을 보이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비명횡사 당한 박종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되살려준 검사 안상수를 계속 지지하고 싶은 마음을 안 의원이 이해해 줄지 모르겠다. 안 의원의 좌우명 중 또 하나가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불구속 수사원칙이야말로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피의 역사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안 의원이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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