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커피한잔과 여유로운 아침

2012/02/19 09:16

 

 

 

 

 

1.

 

 아침에 애기커피 (보리로 만든 무카페인 커피인데,  우리조카도 즐겨마시기에 애기커피라고 한다 )

 

 한잔에 이렇게 여유롭게 블질이나 하고 있다. 

 

 어젯밤에는 알바가 끝나고 나서 석촌역의 까페에 앉아서 슬슬 책을 읽었다.

 

 제목은 ' 감정노동' 이라는 책. 구구절절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행위들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법칙에 따라

 

상호교환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p.35)

 

 

 

 

" 요즘 새로워진 것이라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개인적인 목적에 따라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본능적 능력에 관련해서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감정에 관해 도구적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대기업이 개인의 이런 거리두기를 구성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 (p.37)

 

 

 

 

" 그렇지만  '나' 와 내가 짓는 표정사이의 , 또는  '나' 와 내 감정사이의 단절을 소외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외부맥락 outer context이라는 또 다른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연극계에서는 무대위에서 기억과 감정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존경받을만한

 

기술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 정도는 덜하더라도 이 두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손익 계산을 따지는 세게에 들어섰을 때나 회사가 감정노동에 드는 심리적 비용을

 

인정하지 않을때, 우리는 충분히 유용할 수도 있었을 ' 나' 와 내 표정, 내감정사이의 단절을

 

잠재적인 소외로 보게 된다. "   (p.57)

 

 

 

 

 

" 느낌이 없는 사람이 불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가 힘들어진다. 자기 이익 self interest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상태다.

 

사실, 감정은 ' 합리적 사고' 를 위한 잠재적 통로다. 게다가 감정은 우리에게 세강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줄수도 있다"  (p.49)

 

 

 

 2.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사회현상을 의미있게 이론화 한 책은 세상을

 

 정말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겠지만

 

 

 사실 나라는 사람이 하려는 상담은, 과연 얼마나 세상을 좋게 만드는데 기여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상담이 ' 부적합한 (사실은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감정'  을 '완화'하고 '교정'

 

 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접근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나마 그 ' 불순한'  감정들이

 

 ' 없어' 져서서 개인적으로 편안해질 수 는 있겠지만,  체제에 더 ' 순응적'

 

 이고 '비판의 시선을 상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그 감정이 있었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합리적 사고로

 

  가는 길을 일깨울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나칠정도로 병리적인 심리 문제들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방어기제를 탐색하고....어린시절에 대상관계가

 

 이루어진 방식을 탐색하고.... 자신의 잘못된 인지도식을 수정하고....

 

 새로운 대응방식을 학습하고....  하면서

 

 

 자신이 가진 좀 ' 괴이하기는 하나'  '독특하게' 세상의 병폐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잃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주의 상담이라든지 이런입장으로 자신이 가진 증상 (이를테면 분노)

 

 에 대해서 ' 병리' 가 아닌  ' 건강한 적응방식' 이라고 해석하면서

 

 '개개인이 가진 그대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 역량강화'

 

 하면서, 한마디로 불만많은 인간들의 역량을 강화해주면서 그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소신껏 목소리 내고 살게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변화의 움직임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구시대적인 운동의 도식에서 못벗어 나는 인간인지

 

 그게 운동이구나, 변화구나, 하고 마음에 확 와닿지가 않는 것일까?

 

 

 이건 지적인 문제라기보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 변화구나, 운동이구나'

 

 하는 감동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정말 근본적인 애착이 부족해서인가,  다른 사람이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모든 코드'  가 다 가슴으로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공감능력이

 

 어쩔때는 매우 뛰어난데 어쩔때는 아얘 통로가 막혀버린 것 같다.

 

 

 어떤 사람한테는 ' 그냥 넌 불행한대로 살아. 불행하든지 말든지'

 

 하는 시선인데 어떤 사람한테는 꼭 그 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갖는다. 감정이입해서 달려든다 해야될까.

 

 이건 자연스럽기보다는 좀 .... 뭐랄까. 공정하지 못한 수준에까지

 

 다다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세상이라는 곳에 제대로 발디디지 못한 나라는 인간이

 

세상의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걍 내가 서핑보드처럼 한발로 딛고

 

서 있는 그 위태위태한 그 접촉면만 보면서 울고 웃고 공감하고 한다는 것이다.

 

 

고로 세상에 '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  ' 세상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 불만이 있어도 그걸 개인적인 지위의 상승을 통해서 없얘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얘 완전히 냉소적이다.  '너의 부모 너의자식하고만 잘먹고 잘

 

살고 기본적으로 세상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변화의 일부로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하지 않다면,  내가 왜 굳이 당신에게 애써서 도움을 주냐' 이런 생각이다.  (내담자라면

 

 돕고 싶은 직업의식이 어느정도 생기겠지만, 내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말이다.)

 

 실제로 저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조력하고자 노력했을때 나에게 보람이 주어지는 것은 없었고

 

 소진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치만 나의 이런 냉소적 시각 자체가 별로 떳떳하진

 

 않다.  기본적으로 내가 마음으로 배제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게 될 직업은 그렇게 마음으로 배제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

 

  매우 단점이되는 직업이다.

 

 

 

 

내 무의식속에는 가족에, 학교에, 직업세계에 속하고자하는 강한 욕망과 컴플렉스

 

  가 있는 것일까.  학교나 직업세계는 의식적으로도 그렇지만, 가족과의 관계도

 

  얼른 앙금을 풀고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세상에 좀더 침투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신병원에서

 

 인턴을 하던지,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지경에

 

 놓였다.  나의 관심사는, 인간의 아픔에 대한 공감은 편협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접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나는 타인의 삶에 깊이 침투하면 관심을 대체로 갖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정체성

 

자체가 희미해지는 위기에 놓인시점..... 더는 미룰 수 없다.

 

 

상담가라는 직업과 내가 가진 관점, 시선

 

이것을 통합하는 일이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리가 없다.

 

상담에서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건강한 애착을 강조하면서 만일 인생초기에 그런 애착이

 

없었다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무의식속에있는 부모와의 갈등을 의식으로 끄집어내어서

 

인지하고, 상대에게 표현하고, 감정으로 분출하여 건강해지라고 한다.

 

이렇게 가족관계의 건강함을 강조하는 조언들이 나에게는 낯설다.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족이라는 단위에 얽매이지 말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뜻을 나누는 사람들과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온 나로서는.... 가족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현실에서 부모에게 겉으로 보이는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  가족은 아얘 진심을 나눌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온지 오래였다.  이런 나, 이제는 변화되어 바뀌어야 하는가?

 

 

 

내가속한 사회의 어떤면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라고 달려드는 마인드 속에

 

어쩌면 깊은 컴플렉스가 추동이 된것일게다.

 

그 컴플렉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나중에가서야 자신의 왜곡된 컴플렉스를 보상받는 방식의 하나가 운동이었을 뿐

 

자신원래   타인이 행복해지는데에 깊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미 기이하게 동지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못느낄 정도로 망가져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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