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시네큐브 매표소 불친절, 불쾌함

2014/12/27 16:07

 

어제 영화를 보러갔는데, 광화문 시네큐브 매표소 직원과  할인문제로 실랑이하고나니,

힘이 빠져서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가' 라고 했다가 그다음에는 '나' 라고 했다가  하면서 뭐가 잘못됬는지 알지도 못하고

자기 착오였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 무례한  직원- 20대 초중반밖에 안되어보이고 안경끼고

화장안한 얼굴에  뭔가 무지해보이면서도 순진해보이는 그 사람을 보니 ,

마치 학교 다닐때 애들 따돌리고나서 ' 난 쟤가 하라는 대로만 했어요. '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응대하는 아이가 생각났다.

 

하긴 당신도  저녁에 여기 근무하면서 뭐가 즐겁겠냐, 얼마나 돈 많이 받는다고 친절하고

싶겠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대로 업무를 숙지하지 않는 사람도 감정노동자라고 이해해

줘야 하나? 싶었다. 하긴 그 회사에서  제대로 교육을 안했겠지.

그래도 대형 영화관의 정확한 설명한 설명과 싹싹함이 편안한 나 자신에게 묘하고

아이러니하게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광화문 시네큐브가 영화나 시설은 그럭저럭 호평인데 매표소 직원의 불친절 문제

는 꽤 오래 된 모양.

앞으로는 미로스페이스나 스폰지 하우스 등 다른 곳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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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0

2012/03/20 10:39

 

 

 

 

 

 1.

 

 자기 발견이라는 말은 있어도, 자기 관리라는 말은  내겐 없다.

 

 2. 

 

 나를 지금보다 더 치유할만한 환경의 조성은, 舊 옛날부터 오래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학교에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3.

 

  학교에서 늦게나와  차를 놓쳐서 성북역에서 내려서 청량리까지 택시 합승을 했다.

 

 합승한 사람은 나보다 좀 어린 남자인것 같은데,  합승하자니까 말없이 승인했다.

 

 차 안에서 잔돈이 있냐, 없냐 얘기를 서로 나누었으니 확실히 승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합승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택시 아저씨 한테도 '합승해도 되죠?'

 

 라고 큰 소리로 물었더니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난 그 말을 승인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근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택시 아저씨가 돈을 각자내라는 것이다.

 

 

 이 때 난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 성격 같으면

 

 그냥 냈을수도 있지만 깡다구가 생겼는지

 

 " 아까 제가 합승되냐고 여쭤봤잖아요? 된다는 얘기 아니셨어요-"

 

  하고  항변하였다. 

 

 

 

  택시기사님 입장에서는 합승을 ' 같이타되 돈은 둘다내는 것' 으로 해석했을

 

  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는 승차하기전에 다른 승객과 (무언으로) 합의했고, 아저씨도

 

 합의했으니 1인요금을 내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승객끼리 같은 목적지를  합의하고 가는 경우에 요금을 어떻게 하는지,

 

 택시를 잘 안타서 법 상,   관행 상 어떤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승객의 의도상 '합승하겠다'  라는 의미를 아저씨도

 

 

 요금을 둘다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럴거면 뒤에 택시 줄줄이 많은데 뭣하러 그 차타나.

 

 어쨌든 이러한 오해들이 있었고,  기사님은 의외로 나의 한마디에

 

 반값만 내라고 수그러들었다.

 

 

 근데 그 어린 남자가  내가 택시아저씨와 실랑이 할때  ' 제가 낼께요" 그러는 것이었다.

 

 그 남자분은 내 택시비를 내줄 이유가 없는데 자기가 내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소리냐고 내가 낸다고 하고 반값을 냈다.

 

 그리고 내가  택시에서 내리니까 공손하게  " 죄송합니다"

 

  하는 것이다.

 

 그 어린 남자분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근데도 저렇게 돈도 내준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보니 뭐랄까.  착한사람 나쁜사람 개념이라는게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택시기사님이 안받아도 될 2인요금을 받은 것이라면 (물론 상황상  계약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점도 있다.) 잘못한 것이다. 그치만 고단한 운수노동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야 뭐 그럴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자기 보신이지 악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어린 남자 승객은... 아마 마음이 좀 후한 사람이니까 자신이 돈을 내준다고 했겠지.

 

 심지어 택시안에서도 내가 거스름돈이 없어서 당황하니까 괜찮다고 다 자기가 낸다고 했다.

 

 

이건 분명히 기분좋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주어진 처지와 환경에 따라서 사람은 이렇게 달라지는데 착하다, 나쁘다 를 말하는 것도

 

매우 표면만 포착하는 어리석음같다 . 타인한테 엄청난 해꼬지도 아니고 요만한 케이스에서.

 

 

 

 

그러나 또한 돈이 있건 없건 남에게 무언가를 할애하려는 것 자체를 발견하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나는 그냥 남한테 조금이라도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무조건 반갑다.   가끔은 퍽퍽  기대고 싶은 생각도 있다.  돈이 없으면서 밥 사준다고

 

 뭐 준다고 하는 선배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막 거절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내가 마음편하게

 

 누가 해주는 걸 받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날때마다 자기가 한번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맙다.  정말 안사도 되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좋다는

 

 것이다. 

 

 

 난 상담학도니까, 비슷한 처지에서도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만드는가

 

 혹은 팍팍하게 만드는가 하는 인간의 심리형성을 생각해야겠지.

 

 

 청량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영화 ' 화차' 광고가 보였다.

 

 그 누가 저 영화속의 여자 주인공을 욕할수 있으리.

 

 그 영화속 김민희를 보고 선악 을 얘기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영화는 안보련다.  그 영화를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위기의식이 증폭될 것 같다.  내가 힘들어지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어떻게든 변해갈 수 있을것 같은 그런 잠재적인 두려움이 증폭될것 같다.

 

 그런 두려움, 현명하게 해소하는 방법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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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일& 물음표로 남는 일

2012/03/13 14:21

 

 

 

 

 

 

 

 

요즘 기쁜 일과  그리고 물음표로 남는 일이 있다.

 

 

기쁜 일은  내가 녀성주의 상담연구실에서 만난 언니와 토요일에 차 한잔을 했다.

 

그녀와 차 한잔을 하게된 계기는,  그녀의 치료 연구소를 친구에게 상담받으라고

 

 

 소개시켜줬는데,

 

그 과정에서  연구소가 재정난에 있다는 걸 알고 나도 소액을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연구실에 놀러오라고 했고, 나는 누구한테  놀러가서 넉살좋게 수다떠는 걸

 

잘 하는 인간이 아니기에 좀 긴장한 마음으로 갔다.

 

 

그녀도 처음부터 말이 많거나 엄청난 붙임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솔직하게 나를 개방할수록 그녀와 할 얘기가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  조금 외롭고 추우면서 사랑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나이 마흔에 너무 충만하고 안정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 내가 춥기도 하다'  라고 말하는 그녀가 더 인간적이었다.

 

그 언니는 타인에게 많이 베풀고 싶은, 사회적 엄마로 살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여성주의와

 

그녀가 연구소에서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행복해하고 삶의 깊은 의미를 찾는 것을

 

지지하고 싶었다. 그 연구소가 계속 됬으면 싶었고, 돈때문에 문닫지 않았으면 싶었다.

 

 

 

타인과 나를 하나로 바라보는 삶, 나와 타인 사이를 가르지 않는 삶, 타인안에서

 

나를 발견하기에 적대할 일도 이해하지 못할일도 없는 그런 삶을 어느정도는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녀가 내공있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비혼여성이면서 괜찮은(?) 수입이 없는 여성의 삶이 힘들게 느껴

 

졌다.  아무리 훌륭한 정신이 있어도 배고픔이 오래지속되는 것은 힘든일이다.

 

비혼의 삶은 멋진데...돈이 없는 것이 힘들단 말야

 

계란만 먹고 살고 싶지는 않은데.... 돈이 없음으로써 서로에게 팍팍해지고

 

어떤 가능성을 꿈꿀수도 없게 되는 상황, 그게 난 참 두렵다.

 

최대한으로 이 방면에 있어서 실질적인 능력과, 버틸 수 있는 내공을 가져야겠다.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때 재정난에 처하지 않을 일은 없을테니까...

 

 

내 주변에도 은근히 그녀가 하는 표현예술치료라든지 타로라든지

 

사이코드라마에 관심있을 사람들이 (소수지만)있는....내가 좀더 내공이

 

쌓이면 여성주의 상담에 대해서 나와 친구가 하고 있는 소모임과

 

그쪽과 뭔가 연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실마리를 하나 잡은 것 같았다.

 

 

 

근데 한편으로는 그녀 앞에서 내가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뭔가 그녀가 마음에

 

들어할만한그리고 그녀를 편안하게 해줄만한 말들을 찾기위해서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내 얘기를 다 했을때 그녀가 ' 00 씨 참진솔해'

 

이렇게 평가하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해야되나....

 

난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상대가 나를 진솔하게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 진솔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점점 더 진솔해지고 싶다.

 

아직은 타인앞에서 타인의 취향에 맞추려는 기질을 버리지 못한 자신을 확인했다.

 

이것에 대해서 마음편해지고자 의식적으로라도 마구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고

 

왔는데, 그녀는 역시 상담자니까 나의 억압된면, 다각적인 모순된 마음을 얼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든 그녀가 전해 받을 수

 

 

있었던 메시지가 '당신에 대해서 호감이 있소,  더 진솔해지고 싶소'  로 정확히

 

 

전달되었다면 충분하다.

 

기쁜일은 썼는데 물음표로 남는 일은 다음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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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2

2012/03/01 23:52

알바 다녀와서

 

빈둥빈둥 먹고 놀고 언니네 집 다녀오고...

 

마지막 휴일을 이렇게 완전한 휴식도 아닌 그렇다고 알차게도 아니게 보냈다.

 

연우진이 나오는 그 드라마 스페셜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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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2

2012/02/12 17:29

1.  관심

 

 사람은 관심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나 역시도 관심을 받으면 좋아하지만

 

 아얘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관심꺼버렸으면 하는 몇몇 사람이 있다.

 

 진짜 있었는지 없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으면....

 

 나 역시도 그들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으니.

 

 그들은 나의 관심밖이다.

 

 그걸 꼭 알아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탐색하기 위하여 그들을 돌아보는 것이지, 그들의  삶에 대해서

 

 가치부여는 전혀 안한다는 것이다.

 

 나르시스트는 피곤하다>.<

 

 

 2.

 

  종로에 꿈꾸는 길냥이라는 까페에 왔다.

 

  넘 조용하고 좋다.

 

  차는 조금 비싸지만, 이정도로 조용하다면......

 

  여기서 느껴지는 이 편안함은 충분히 창의성을 샘솟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발디디는 환경들이 이런 환경들일 수는 없을까?

 

 3. 

 

   좋은 인연들과 함께 하면서 나도 기운을 얻어 정상적인 생활로 많이 진입하고 있다.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

 

   당사자들이 들으면 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면에서 그들은 나에게

 

   생물학적 가족보다 더 의미 있는, 혹은 의미 있어질 수 있는 사람들인것 같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 길게, 그리고 깊게 알고자 하고, 또한 그들과  어떤 충돌이 있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나에게 유익한 것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보살필 수 있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이러한 경향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이제껏 당위로 살아온 인생보다

 

    더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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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상담 스터디를 하고나서,  소감을 간단히 쓴다.

 

 

많은 생각을하고,  멤버 한분과 조금 얘기나눈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1. 아카데믹과 집단상담 성격을 함께 가는 것은 이 상황에서는 어렵다.

 

2.  만일 집단 상담의 성격을 가진다면 결국은 리더또는 준 리더가 필요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3.  그러면 모임의 주최자인 내가 리더를 할것인가? 여성주의 상담 내용자체야 열심히 공부

 

    해가면 되지만 숙련되지 않은 (사실상 초심자에 불과한) 내가 결코 집단상담의 준리더역할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

 

 

4. 결국,  이 스터디가 집단상담이나

 

   참만남집단의 성격이 '더' 앞선다면 숙련되지 않은  내가 리더역할하는 것은 나에게도 안좋고


  다른구성원에게도 안좋은 일이다.

 

 

5.  결국 스터디를 통하여 집단상담의 성격을 가져가야된다는 강박을 버리고, 커리를 충실

 

     히 따라가며 그 사이사이에  공통된 주제 (ex: '여성주의 상담과 기존상담의 차이'

 

    라는 내용이 발제에 나온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상담받은 경험,  그것의 한계

 

    등등을 연이어 얘기한다든지....) 를 가지고 얘기하는 편이 낫겠다.

 

 

  6. 스터디에서 너무 많은 얘기를 '양적으로' 늘어놓는데에 의미를 두지말고,

 

   또한 여러개의 아이템을 하려고 하지말고 (두개정도면 충분하다)

 

    커리목차에 따른 어떤 중심테마를 하나 가지고 그 테마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

 

    즉 발제자가 커리와 관련된 생각할문제를 써가는 편이 낫다.

 

 

  7. 결국 다들 상담에 있어서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  더욱이 여성주의 상담을학습

 

     한적이 없기 때문에 학습을 결코 간과할수 없겠구나 하는 결론이다.  학습을 해야만

 

     깨달음도 깊어지고 자신과 서로의 삶에대해서 여성주의 적인 감도 생긴다.

 

 

 8. 처음에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지금 이상황에서 스터디 크기를 더 확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멤버4명

 

     그대로 가고,  나중에 내가 성장과 경험이 있은후에 두고봐야겠다.

 

 

 9. 2월에 여성주의 상담 아카데미에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다.

 

 

 10. 오늘도 바람에 클린징 크림 냄새가 스치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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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절규

2011/12/01 00:11

 

 

 

 

요즘 무척 고독하다.

 

언제는 고독하지 않았냐마는.  새삼고독이 친구처럼 다가온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사실 하는 것들이 있다. 사실 고독하지 않기보다는 '고립'되지 않기위하여

 

, 또 어떻게든 세상 살만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영어스터디도 빡세게 하고,

 

운동도하고  독서도 꽤 맛나게 하며,  이따금 보고싶은 영화등도 보니 나쁘지 않은 생활이다.

 

 

 

 그렇지만 이 활동들에는 나를 표현하고 깊이 알아가고, 또 채워가는 것이 결여되어있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나를 표현하고, 내 안에 있는 깊은 열망이나 잠재력 등을

 

 끄집어내서  그걸 더 구체화시키고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쓰는 것이다.

 

 

 내 삶에는 지난 몇년간, 아니 아얘 애초부터 나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나만이 가진 자질을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그것으로 나온 결과물을 바라보고 스스로 만족하고 든든한 자아를 쌓아

 

 나가는 과정이 부족했다, 혹은 결여되어있었다.   나는 진중하고 또 심각한 모드로 세상을 산

 

 편에 속하지만,  심각함속에는 거친 열정보다는 회의나 냉소 그리고 부적응에서 나오는

 

 방황이 더 많았다.  분명히 거친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느끼던 순간들도 많았

 

 지만, 쉽게 낙담하고 쉽게 회의하면서 그 열정들을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뜨렸다.

 

 

 이제 내 나이 서른살, 남의 눈치 볼 것도 없이 아쉽지 않게 달려가고만 싶다.

 

 

언제나 나는 제도권에 완전히 안착하지 못하고 부적응하는 사람이었다. 그 제도권이란

 

아마 가족의 일원으로서, 학생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여자로서  주어지는 규율을

 

내면화하고 순응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

 

지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렇게 언제나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한번도 내가 속해있는

 

공간에 가슴깊이 안착하지 못함을 자조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게 내가 가진

 

정체성인것 같다.  이게 30년가까이 내가 형성된 결과물이고, 늘 그러한 상태에

 

있으면서 내 마음속에 있었던 깊은 공허감 상실 그리고 외토리같은 느낌을 어떻게든 그

 

무엇으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발악하는 활동들이 나다운 나를 만들게 할 것 같다.

 

 

 

getaway 라는 액션영화를 보았다.  킴베신저와 알렉볼드윈이 나오는 영화로, 내용은

 

뭐 그냥 그랬다.  근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난 그 주인공들에게 동화되었다.

 

인생 한탕 은행털이해서 때깔나게 살고 싶어하는 강도집단이 어찌보면 지금의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인것 같았다.  바르게 살기위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위해서, 조화롭게 나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고민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 과정을 끈질기게 견뎌낼만큼 나에게 그런 강한 동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난 지금 눈앞에 놓은 것들만 볼 수 있고 작은 이익에 급급하고 그런사람이다.

 

가슴속에 품은 깊은 뜻을 위해 등불을 밝히고 노력하기보다는

 

 오늘 밤에 배깔고 누워서 소설책보고 싶은 그런 유혹에 지는 사람이고

 

 정신적으로도 무척 불완전해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오랫동안 받아왔음에도

 

아직도 안정을 찾지못해서 그냥 세상에 잘 적응해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기만해도

 

 칭찬해줄만큼 위태위태한 인생이기도 하다.

 

 

   머리카락 엉켜서 막힌 욕조배수관처럼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물만 흘려보내면서 살고 있기는 하나,  재미있게 살고 싶다.  멋진 걸 만들어내고

 

  싶다. 이 순간 죽게되도 후회스럽지 않을만큼 이렇게 괜찮은 것을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간다

 

   라고 하고 싶다.  나 나름대로 가진 한계안에서 할 수 있는 멋진것- 가치까지 있으면 더 좋다

 

  그런걸 하고 싶다.

 

  

    거침없이 말할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 아 정말 우리가

 

   오늘 대화를 통해서 산을 쌓았구나'  라고 느낄만큼 그 대화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호기심 열망들이 매순간 표현되고 그것이 상대의 열망과 맞물려서 순간순간

 

    접합되는 그런 느낌을 맛보고 싶다.  말할때 조심하기 위하여 들이는 에너지보다, 숨김

 

    없이 내 마음속의 그 무엇을 퍼내기위하여 동원되는 에너지가 더 많은 대화 말이다.

 

    듣기위하여 귀 기울이는 그 순간이  배려의 무게로  지렛대를 누르고 있는 것이 아

 

  니길 바란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내가 그 사람에게 기울어져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나를 너무 억제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억제하며 살아온 삶은 억제하지 아니함만

 

  못했다.  이제는 억제하지 않으려해도 뭘 억제하고 싶지 않은지 모를정도로 내 안에

 

  잡스러운 욕망밖에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나마 꺼져가는 불씨라도 살려보고싶다

 

   단숨에 활활 타오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자글자글 타오를 수 있는 단단한 기름덩이가 있다. 오래도록 끈적하고 눅진하게

 

  엉겨붙는 찰진 기름덩이가 있다. 불판에 구우면 생각보다 맛있는 냄새가 날것이다.

 

  고소한 냄새 풍기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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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9

2011/11/20 00:17

 

 

 아직 상담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입문단계인데도 상담계의 많은

 

 일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자주 들어가는 사설상담관련 연구소게시판에는  익명 게시판이 있다.  온갖 소소하거나

 

 혹은 한층 심각한 고민들이 올라오는 그 게시판에 한 몇달전부터  한 여성이 출몰했다.

 

 지금까지 한 10회이상글을 올렸을거라고 생각되는 그 여성은, 모 대학교의 교수

 

 에게 한시간에 10만원씩 돈을 주고 상담을 받았는데 뭔가 틀어진 것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심하게

 

 모욕을 느꼈다. 그후  내담자는 계속 상담자에게 입장해명과 사과 등을 요구하고 심리학회

 

  윤리위원회에고발하는 등등을 했으나,  심리학회 윤리위원회에서는 내가보기에도 좀 미비하다

 

   싶은 방식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래서 이 내담자는 더 열받아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상태로,  일주일에 한두번은

 

  그 익명게시판에 그 교수에 대한 증오의 감정과 상담계가 개혁되야 하는 부분을 계속 올리고 있다.

 

  

  요즘 이 사례를 지켜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예비상담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문제는 역시 상담이란 매우 내밀한 1:1의 관계로서,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한것인지

 

   녹취정도 하지 않는 이상 그 상황을 증언만으로 절대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에게 심한 모욕을 행했다고 하는데,  그 시초가 된 내용은

 

  상담자가  ' 얼굴을 찌뿌리고 조롱했다'  ' 무책임한 언사를 했다'  ' 비하했다'  등등이었다.

 

    근데 구체적

 

   으로묘사한 글을 봐도  이 정도가 과연 사과를 요구할정도로 엄청난 일인지 해석의 여지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자기 입장전달을 잘 못해서인지,  그 내담자의 글을 보면 십중팔구는

 

   내담자가 과하게 반응한다고 여겨질 여지가 많고,  그 ' 모욕했다' 라는 부분을 보았을때

 

   상담자가 실력이 별로 이거나  상담자로서 태도가 미비할 수는 있어도 사과와 보상을

 

    해야할정도로 큰 실책을 저질렀는지는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담자가 실제로 심히 자격미달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존재하는데,

 

   내담자가 ' 모욕을 느꼈다'  라고 했을때 상담자는 ' 그건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는데

 

   내담자가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내담자가 정서적

 

    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상담자의 언사를 왜곡해석할 가능성도 높지만, 상담자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내담자에게 성의없이 비전문적으로 대하며 사적 감정을 투사하더라도

 

    상담자가 얼마든지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변명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난

 

    그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사례자체에 대해서 판단하기 위해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

 

 

 

   지금 일어나는 이 사례도,  결국 녹취도 없고 상담자가 이

 

  내담자와의 대면

 

   을 완전히 피하고 있고 심리학회도 더 이상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부분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아니고

 

   어떤 것이 전문적인지, 비전문적인지도 모호한 상담이라는 영역에서 녹취도 없이 잘잘

 

   못을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녹취를 하는 것이 상담계에서 관례화되지

 

   는 않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해도 아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 다음 문제는, 내담자가 매우 불안한 심리상태이고 어쨌든 그 취약한 심리상태에서

 

   상담자에게 상당히 감정적으로 예속되어있기 때문에, 누구의 귀책사유이든지 간에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이성을 잃기가 쉽고 그런 상태에서 상담자와 대립하게 되면

 

   내담자만 손해이다.  지금 이 사례만해도 내담자는 상담게시판에 글을 매우 자주

 

   올리고 있고, 그 글들의 많은 내용은 원망과 피해의식으로 가득하며 사실관계보다는

 

   주관적판단이 들어간 감정에 대해서 더 많이 쓰여져 있다.  현재 감정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자신의 글에 대해서 조금만 반론을 표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일히 반감을 담아서 댓글을 달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게 이성을 잃고 타인을 설득할만한 정서상태에 있지 못하다보니 나를 포함하여

 

   그 게시판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잃고있는 상태이다. 즉 공감을 사는 행동을

 

   할만한 정서상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얘기할만한 정신적

 

    능력이 원래 부족했는지, 혹은 이 상황으로 인하여 더 악화되었는지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화가 안되는 상태이다.  이렇다보니 문제해결이 내담자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또한

 

   내담자에게 불리해진다.

 

 

 

 

   어쨌든, 나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내가 상담자가 되면 나 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이 내담자가 행동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도  내가 아직 상담자의 마인드에서는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일단 나는,  감정이 자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적개심을 드러내며 일일히 말꼬리잡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질린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데  싸우는이가 사실상

 

   굉장히 무지하고 논리도 엉성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어도 끝까지 우기거나 하는

 

   상황일때 훨씬 더 질린다. 

 

 

 

   그러나 사실 상담을 받는 내담자 쪽에서  교육을 많이

 

   받고, 감정을 잘 절제하며, 나아갈때와 물러날때 그리고 자신에게 해를 주는 발언과  이익

 

  을 주는 발언을 구분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장기 상담을 받는 내담자는

 

   어느한편으로는  피해의식에 가득차 있고,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의

 

  문제를 건드렸을 때 자신의 감정을 결코 제대로 다스릴수 없고, 대인관계 스킬도 별로

 

  없는 편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는 어느정도는 나에게도 해당되었고 또한 지금도 해당되

 

  는 부분이 있는 얘기기도 하다. ) 그런데 이렇게 소위 ' 비 이성적' 으로 행동하는 사람

 

  을 보고 거부감을 느낀다면 일단 그건 내가,  그렇게 감정을 마구 표출하는 피해의식에

 

  가득찬 사람들과의 과거의 경험을  어쨌든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한 나

 

  자신이 가진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한편

 

  으로 ' 절제와 이성' 을  사람의 감정보다 우위에 놓는 사고을 하고 있는 것일테고.

 

 

 

   어쨌거나, 나는 소쿨하고 매우 명랑 이성적이고 아쉬울게 없는 사람들보다는, 억한심정

 

   이 많고 일면 자기입장만 고집하며, 사고의 고착상태에 빠진 매우 상처받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대다수를 앞으로 만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인간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정말 마음속 깊이에서 우열을 나누지 않고 호불호에서

 

  어느정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상은 어디까지인가?  위 게시판에서 일어난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을 때, 나의 입장을 요구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을런지 생각해보게 됬다.

 

 

 

 

  그리고 사실 피해의식이라는 건,  그걸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자체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피해의식이나 컴플렉스니 하는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

 

  인간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할정도로 세상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다면 피해의식이

 

  전혀 없을수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의 피해의식과 컴플렉스는 정당

 

  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피해의식을 단죄하고 고쳐야 할 부분으로

 

   여긴다.   물론 본인이 매사 그 피해의식때문에 괴롭다면 본인을 위해서 그 부분이 감소

 

   되는 것이 좋겠지만, ' 피해망상' 이 아닌 정도의 피해의식도 부정적으로 판단된다는것은

 

   오히려 어떤 한 국면에서 소수자이자 피해자였다고 느낄 수 있는 정체성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실 난 '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피해의식을 마구

 

   표출하는 사람들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그런 사람들이 좀 버겁다.  내가, 나 스스로가 피해의식을 가진 부분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더 쓸말이 있는 것 같지만, 정리도 잘 안되고 비문투성이다.

 

    나중에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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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

2011/11/15 09:21

 

 

 결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일 생각하지 못해서 자기 의사표현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넘어 환멸을 느낀다.

 

 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왜 조용히 앉아있으면 저절로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가.

 

 자신은 남에게 언짢은 소리 한번 들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언짢은 소리 들으면 최대한으로 진정성있게 자기 입장을 해명하면 되지.

 

 그렇게 하면 적어도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성의는 부작위가 아니라 작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을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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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4

2011/10/24 13:05

조규찬의

 

' 이별이란 없는 거야'

 

가는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 감정의 회로를 부드럽지만 인상적으로 스치며...

 

작은 몸으로 한 발 한발 힘주어 밟는 힘이 실려있는 듯 하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기도하고 싶어진다.

 

그 어느 누구에게든지 내 마음을, 나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싶어진다.

 

정죄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가만히 느끼고 받아들이고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나도, 나를 스친 모든것도  살아나는 경험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삶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파고들고 그 안에 안착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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