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커피한잔과 여유로운 아침

2012/02/19 09:16

 

 

 

 

 

1.

 

 아침에 애기커피 (보리로 만든 무카페인 커피인데,  우리조카도 즐겨마시기에 애기커피라고 한다 )

 

 한잔에 이렇게 여유롭게 블질이나 하고 있다. 

 

 어젯밤에는 알바가 끝나고 나서 석촌역의 까페에 앉아서 슬슬 책을 읽었다.

 

 제목은 ' 감정노동' 이라는 책. 구구절절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행위들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법칙에 따라

 

상호교환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p.35)

 

 

 

 

" 요즘 새로워진 것이라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개인적인 목적에 따라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본능적 능력에 관련해서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감정에 관해 도구적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대기업이 개인의 이런 거리두기를 구성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 (p.37)

 

 

 

 

" 그렇지만  '나' 와 내가 짓는 표정사이의 , 또는  '나' 와 내 감정사이의 단절을 소외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외부맥락 outer context이라는 또 다른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연극계에서는 무대위에서 기억과 감정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존경받을만한

 

기술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 정도는 덜하더라도 이 두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손익 계산을 따지는 세게에 들어섰을 때나 회사가 감정노동에 드는 심리적 비용을

 

인정하지 않을때, 우리는 충분히 유용할 수도 있었을 ' 나' 와 내 표정, 내감정사이의 단절을

 

잠재적인 소외로 보게 된다. "   (p.57)

 

 

 

 

 

" 느낌이 없는 사람이 불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가 힘들어진다. 자기 이익 self interest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상태다.

 

사실, 감정은 ' 합리적 사고' 를 위한 잠재적 통로다. 게다가 감정은 우리에게 세강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줄수도 있다"  (p.49)

 

 

 

 2.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사회현상을 의미있게 이론화 한 책은 세상을

 

 정말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겠지만

 

 

 사실 나라는 사람이 하려는 상담은, 과연 얼마나 세상을 좋게 만드는데 기여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상담이 ' 부적합한 (사실은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감정'  을 '완화'하고 '교정'

 

 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접근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나마 그 ' 불순한'  감정들이

 

 ' 없어' 져서서 개인적으로 편안해질 수 는 있겠지만,  체제에 더 ' 순응적'

 

 이고 '비판의 시선을 상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부적합하다고

 

  여겨진 그 감정이 있었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합리적 사고로

 

  가는 길을 일깨울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나칠정도로 병리적인 심리 문제들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방어기제를 탐색하고....어린시절에 대상관계가

 

 이루어진 방식을 탐색하고.... 자신의 잘못된 인지도식을 수정하고....

 

 새로운 대응방식을 학습하고....  하면서

 

 

 자신이 가진 좀 ' 괴이하기는 하나'  '독특하게' 세상의 병폐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잃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주의 상담이라든지 이런입장으로 자신이 가진 증상 (이를테면 분노)

 

 에 대해서 ' 병리' 가 아닌  ' 건강한 적응방식' 이라고 해석하면서

 

 '개개인이 가진 그대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 역량강화'

 

 하면서, 한마디로 불만많은 인간들의 역량을 강화해주면서 그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소신껏 목소리 내고 살게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변화의 움직임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구시대적인 운동의 도식에서 못벗어 나는 인간인지

 

 그게 운동이구나, 변화구나, 하고 마음에 확 와닿지가 않는 것일까?

 

 

 이건 지적인 문제라기보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 변화구나, 운동이구나'

 

 하는 감동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정말 근본적인 애착이 부족해서인가,  다른 사람이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모든 코드'  가 다 가슴으로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공감능력이

 

 어쩔때는 매우 뛰어난데 어쩔때는 아얘 통로가 막혀버린 것 같다.

 

 

 어떤 사람한테는 ' 그냥 넌 불행한대로 살아. 불행하든지 말든지'

 

 하는 시선인데 어떤 사람한테는 꼭 그 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갖는다. 감정이입해서 달려든다 해야될까.

 

 이건 자연스럽기보다는 좀 .... 뭐랄까. 공정하지 못한 수준에까지

 

 다다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세상이라는 곳에 제대로 발디디지 못한 나라는 인간이

 

세상의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걍 내가 서핑보드처럼 한발로 딛고

 

서 있는 그 위태위태한 그 접촉면만 보면서 울고 웃고 공감하고 한다는 것이다.

 

 

고로 세상에 '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  ' 세상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 불만이 있어도 그걸 개인적인 지위의 상승을 통해서 없얘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얘 완전히 냉소적이다.  '너의 부모 너의자식하고만 잘먹고 잘

 

살고 기본적으로 세상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변화의 일부로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하지 않다면,  내가 왜 굳이 당신에게 애써서 도움을 주냐' 이런 생각이다.  (내담자라면

 

 돕고 싶은 직업의식이 어느정도 생기겠지만, 내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말이다.)

 

 실제로 저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조력하고자 노력했을때 나에게 보람이 주어지는 것은 없었고

 

 소진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치만 나의 이런 냉소적 시각 자체가 별로 떳떳하진

 

 않다.  기본적으로 내가 마음으로 배제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게 될 직업은 그렇게 마음으로 배제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

 

  매우 단점이되는 직업이다.

 

 

 

 

내 무의식속에는 가족에, 학교에, 직업세계에 속하고자하는 강한 욕망과 컴플렉스

 

  가 있는 것일까.  학교나 직업세계는 의식적으로도 그렇지만, 가족과의 관계도

 

  얼른 앙금을 풀고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세상에 좀더 침투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신병원에서

 

 인턴을 하던지,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지경에

 

 놓였다.  나의 관심사는, 인간의 아픔에 대한 공감은 편협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접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나는 타인의 삶에 깊이 침투하면 관심을 대체로 갖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정체성

 

자체가 희미해지는 위기에 놓인시점..... 더는 미룰 수 없다.

 

 

상담가라는 직업과 내가 가진 관점, 시선

 

이것을 통합하는 일이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리가 없다.

 

상담에서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건강한 애착을 강조하면서 만일 인생초기에 그런 애착이

 

없었다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무의식속에있는 부모와의 갈등을 의식으로 끄집어내어서

 

인지하고, 상대에게 표현하고, 감정으로 분출하여 건강해지라고 한다.

 

이렇게 가족관계의 건강함을 강조하는 조언들이 나에게는 낯설다.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족이라는 단위에 얽매이지 말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뜻을 나누는 사람들과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온 나로서는.... 가족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현실에서 부모에게 겉으로 보이는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  가족은 아얘 진심을 나눌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온지 오래였다.  이런 나, 이제는 변화되어 바뀌어야 하는가?

 

 

 

내가속한 사회의 어떤면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라고 달려드는 마인드 속에

 

어쩌면 깊은 컴플렉스가 추동이 된것일게다.

 

그 컴플렉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나중에가서야 자신의 왜곡된 컴플렉스를 보상받는 방식의 하나가 운동이었을 뿐

 

자신원래   타인이 행복해지는데에 깊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미 기이하게 동지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못느낄 정도로 망가져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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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6

2012/02/16 08:06

1.  강박증

 

 이따금 강박증이 살아난다. 그럴때면 무척 무섭다. 그리고 재기하기 위하여 해온 모든 노력이

 

 헛된 것 같다.

 

 

 나는 정신적 질병에서 스스로를 구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못할 일은 없을것 이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걸릴것을...

 

 

 

2.  신학기

 

  신학기가 되면 무척무척 바빠질 것이다. 하아~ 

 

  공부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식의 세미나식 공부를 정말 제대로 한 적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했던것도 8년은 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자신이 현재 수준이 미천하더라도 대단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뭐든지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열등감도 소중하게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

 

  그건 나를 어느정도 불행하게 할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사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말갛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마음으로는

 

  행복하지 모르지만 발전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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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2012/01/02 11:21

1. 

 

 내가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쪽 분야로 온 이유는 90%는 매우 실제적인 이유였다.

 

 decent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내 정신적인 상태에 지나친 압박을 주지않고 함께 치유를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렇게  1:1로 상담

 

 하며 정서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문제에 대해 접근한다는 것은 나에게 낯설다.

 

 

 

 

 또한 내 삶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힘을 주고 지지를 주는 것이 개인상담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있다. ( 그러나 상담이 내 삶의 뒤틀린 부분을 바로잡게 해주고, 정신적으로 아주 고착

 

 적인 질병을 어느정도 벗어나게 해준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인정한다. )

 

 

 결국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있을때는 상담이 나에게 상당한 역할을 해주었지만,

 

  개인의 성격을 재구성 하며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단계

 

 에 있어서는 상담이 나에게 어떤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관계에 있어서 풍요로워지면  다른 것에 대해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좀 없어질 거라고 하셨는데,  관계에 대해서 잘 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은 나에게 좀 스트레스다.  그것이 별로 잘 되지 않을때에는 별로 그것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사안이나 일에 집중하고 싶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거나 에너지를 기울이고 싶지는 않다.

 

 

 

 

 

글쎄. 풍요로운 관계라는 것은 결국 글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없어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겐 그렇다.  근본적으로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해야하나. 결국 함께 유형으로 무형으로

 

 무언가를 생산해야만  그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깊어진 관계를 core로 하여

 

 점점 확장해 나가는 다른 관계들도 마음 편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송구영신으로 상담으로 관련된 야간 모임에 나가서,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사람들

 

 과 어울렸다.  그런것에 대해서 예전보다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받는 측면이 있었다.

 

 내 얘기도, 부드럽게 타인이 편안해할만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획일적으로 내편 네편 이렇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얼만큼 가깝든 멀든지 간에 그 순간에 그 관계에 집중하고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같다.  관계에서 피하지 않으면서도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혹은 괴리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하는 공부나 일에 대해서는 아직.... 뭐 별다른 경험이나 결과물이 없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실제로 뭔가를 행하고 싶다.  그러기 전에는 

 

 ' 여자가 노후에도 하기 좋아서 다들 쉽게 접근하는 직업을 하고 있나' 라는 자괴감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어느정도 괴로움의

 

 원인이 제거되고 난후에는, 더욱 정서적으로 깊어지고 치유되려면 배움도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서의 만남,  할수있는 한 많은 내담자와의 만남이 필요

 

 하고 그 토대로 지금 이 현실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이론을 정리해 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인간의 정서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너무 많다.  나와 다르게 살아온 인간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배움이나 활동을 매개로 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어떤방식인지 잘 모르겠다. 활발하거나 재밌게 인간의 흥미를 끄는

 

 재주는 정말 없는 것 같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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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음

2011/11/02 20:34

 

 

 영화 청연을 보았다. 디비디로.

 

 주인공 박경원이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사실 하늘 위를 나는 씩씩한 여성을

 

 보고싶어서 봤을뿐, 친일이고 아니고를 많이 신경쓰진 않았다.

 

 내용을 보니..... 감동적일만한 코드가 있었다. 눈물이 주룩 나오기도 했다.

 

 주인공 박경원이 친일적인 만주국 비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랑하는 남자

 

 지혁이 독립운동단체의 조직원으로 누명을 뒤집어쓰고 고문받다가 박경원을

 

 위해서 거짓 자백하고 사형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비행사로 남고 싶은

 

 자신의 꿈을 살려주기 위하여 희생한 연인의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결국 박경원도

 

 자살 비슷하게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다.

 

 

박경원은 식민지 시대에 꿈을 펼치려는

 

 당당한 여성이었지만 당당함만으로  억압적인 시대를 비껴갈 수는 없었던 것을 보고

 

 (솔직히 대사나 장면들이 많이 전형적이고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들의 고뇌가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난 이 영화를 보고서,  세련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저 정도의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면

 

 친일이라고 매도할 수 만은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념에서 비껴가서 그저 꿈을 펼치고자 한 사람의 삶이 참 기구해서 영화화 할만

 

  하다 싶었다.    근데 집에와서 찾아보니 영화의 대부분은 <허구> 였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오는 지혁 (김주혁) 은 완전히 가공의 인물이고, 따라서

 

  박경원이 연인과 독립운동

 

 과 암살에 얽힌일도 없었을 뿐더러,  박경원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것은 그냥 사고일뿐

 

 그러한 시대적 아픔을 지닌 자살도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박경원은 영화에서처럼 가난한

 

  양민의 자식도 아니라 부잣집딸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등학교까지 다닌 상당히

 

  재력가집안 자식이자  신 문물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일본에

 

  비행을 위해서 유학하는 동안 고학했던 것은 부모님이 반대했기 때문이지 출신자체가

 

  가난해서는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비행기를

 

   증정받아서 둘이 염문설까지 있었다니 이건 뭐....

 

 

 

   왜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을 영화화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별다르게 사연이 있는것으로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의 사생활을 가공해서 역사적 배경과 버무려서 눈물을 짜내는 스토리

 

  를 만들었는지 조금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있지도 않은

 

  애인과 함께 조선인으로서 아픔을 겪은 얘기를 괜히 지어내지 말고 차라리 < 조선이 키워주지

 

  못한 꿈을 펼치기 위해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자신의 야망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이자

 

  여성인>  비행사의 모습을

 

  부각시켜서 그리던가. ( 하긴 그러면 영화가 잘 안팔리겠지)  

 

 

 

  친일/ 애국의 한계를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는지 민족문제 연구소 사람들은 기준을 세울

 

  수 있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기준이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일본의 정책을

 

   호도하는데 앞장선 사람과, 그 시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시키는대로 글 하나쓰고

 

   작곡하나 한 것과 그 책임을 똑같이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한 인간이 어떤

 

   대외적 행동을 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과 또 일생동안의  삶의 행보를 알게 된다면

 

   친일인지 아닌지,  이분법을 떠나 좀더 설득력있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친일논란이 있는 사람을 미화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영화는 죽도 밥도 아니더라.  사실 이런영화

 

   만들려면 시나리오 쓰는 사람이나, 감독이나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깊어야 할까. 그러기가 힘들겠지.

 

  

 

   실존인물을 영화화 할때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의미를 담아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파란만장하고 극적이고 감동을 주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생활은 잘 알려지지도 않고, 지난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고 그냥 저냥

 

   별로 놀라운 운 일 없이 산 경우도 의외로 많겠지.  

 

 

   그런 점에서 김산의  ' 아리랑' 을 영화화 하면 재밌을 텐데.   하긴 나같은 사람만 재밌어 할라나

 

   싶기도 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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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2011/10/03 22:56

1.

 

  배움을 할만한 좋은 공간을 하나 발견했다.

 

  11월에 가볼 생각이다.

 

  뭐든지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서는 할 일이 없다.

 

  거절을 즐기듯이 많이 도전하고 쌓아가자.

 

 

 2. 오늘 대상관계이론을 조금 정리했는데, 참 마음이 뜨끔했다.

 

     특히 코헛의 나르시시즘 부분을 읽으면서.... 난 과연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것인지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애초부터 좀 취약한 자기 모습을 형성한 것이 아닐까?

 

     속스러움보다도 나 자신이라고 할만한 모습을 키워가고 있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면

 

     아싸리 다 눈감아 버리고

 

      내가 가야할 길에 골몰하게 되면 오히려 덜 두려워할 수 있지 않을까.

 

     난 무얼그렇게 두려워하는가 도전해보지도 않고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모로가건 똑바로 가건 오랫동안 가면 결코 이룰수 없는 것이아닌데.

 

      조금더 쉽게 가려고 스트레스  이빠이 받는거 아닌가.

 

      친구가 자기 애인이 해준 말인데, 자신에게 도움됬다고 나에게 전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존심은 너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 일부에 불과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자존심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너의 모습을 그냥 있는그대로 한번

 

        바라보아라 . 통합적인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지 말고 있는그대로 바라보아라'

 

        지난 30년 가까운 인생을 나는 나 나름대로

 

        진솔하게 세상에 부딧히려고 노력했으나 역시나 부족했던

 

        것 같다.

 

         가식쟁이 인생에서 좀더 한 걸음 내딛는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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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2011/10/03 07:06

1.

 

 추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약간은 추해진것 어쩔 수 없다.

 

 조금씩 자신을 그 자리에서 나아가게 하는 수밖에.

 

 2.

 

  못하는 것이 95개이고 잘하는 것이 5개이면

 

  나머지 잘하는 5개에 집중하는 수밖에.

 

 3.

 

  할말은 많고, 쓸만한 에피소드도 많고, 하고 싶은 일,  기록해나가고 싶은 일 참 많은데

 

 

   일단 조금 후로 접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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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2011/09/09 08:39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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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2011/09/02 19:51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은채로 29년을 보냈으나

 

왜 이소라의 이 노래는 내 마음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일텐데. 왜 마음에 와닿는걸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이 너무 높은것인지.

 

 

사랑은 어떤 기준을 넘어서야만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개념인가보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보지 않으면 알수는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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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홀로 집에서

2011/07/27 01:33

엄마는 동료들과 여행을 가셨고 나는 혼자 집에 있다.

 

오랜만에 이렇게 홀로 덩그러니 있는것도 나쁘지 않다.

 

 

인생에서 작은 한단계의 문제가 해결됬을때 참 안도했다.

 

그러나 내가 아직 마음안에 풀지 못한 한이랄까, 욕심이랄까 이런것이 덩어리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렇지만 그 욕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경쟁사회에서 이길만한 기질을 나는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 외부환경에 많은영향을

 

받으며, 몸도 약하고, 타인이 하는 말에 의하여 많이 좌우되고 결국 신경도 예민한편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경쟁

 

자체가 싫다기보다 결과가 좋지못할것이 두려워 경쟁이라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오히려 경쟁자체가 주는 그 스릴이랄까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즐기는 면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이건 모든사람이 다 그런가?)  이러한 측면만 보고 또다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런데서 느껴지는 작지않은 내적 모순들이 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사실 별것도 아닌것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정 내적으로 자신을 포용하며 나아가지 않는 이상 어떤 자격을 얻는다고 해서

 

내면의 요동침이 멈춰지지는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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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주변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둘 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무언가 독려와 위안을 나에게서

 

  바라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전까지는 그 요구에 당연히 내 힘을 다해 부응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에 상담을 받고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상담사를 업으로 삼으려

 

 한다고 해서 내가 여력이 되지 않을때조차 일상에서 상담사같은 역할을 할필요는 없다고 나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나보다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며, 나보다 더 내적인 힘이 많을지도 모른다.

 

 내가 인정해오지 않았던 사실일지 모르는데, 나야말로 더 많은 치유와 내적인 발전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내면의 상태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 자신을 돌봐

 

 주는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먼곳에 있는 친구가 가끔 전화를 해도,  주변사람이 자신의 힘든 얘기를 하려고 해도

 

 내가 심리적으로 여의치 않으면, 적당히 마무리 하고 끝낸다.  내 주변사람들은 내가 이런 심경

 

 의 변화를 겪는것을 잘 모를지, 알지 모르지만  섭섭하더라도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카운셀러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다른 면모가 그들에게 와 닿는 것이 있다면 우리 관계를 잘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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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꽤 오래전에 내가 그때로서는 나름 '굉장하다'  라고 생각했던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썼던 글을 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다행스럽게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많이

 

   극복했고, 그 글들을 나름 ' 재밌게'  읽고 관련당사자를  ' 관찰하듯'  돌이켜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뭏든 연애와 관련된 문제는 처절하게 자신을 망가뜨릴정도가

 

  아니라면, 나름대로 다 좋은 경험이 되고 배우는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던 상황들이 지금은 허풍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명백하고 간단하게 느껴지는데, 그러나 내가 누군가와 또다시 감정적으로

 

   얽힌다면 그렇게 명백하고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것이다.  그렇지만  이성이

 

   살아있다고 해서 관계의 진지성이나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앞으로도 적극적이지만 또한 이성적으로

 

    또한 방어하기보다는 개척하면서 나에게 놓인 모든, 가족 동료 추상적인 문제

 

   모든 관계망들을 해결해 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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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010/07/12 02:52

 

 

   영화감상을 했다.

 

   냉정과 열정사이.. 몇년전 봤을땐 가슴이 먹먹했으나, 다시보니 글쎄... 상대적으로 조금은

 

   덤덤했다.

 

   책이 더  좋다고들 하더라.  영화는 준세이 역할 일본배우와, 웅장하고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이 그 영화를 살렸다.  혜림이 언니도 나름 나쁘지

 

   않음.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는것이 지금 이 시기에는 조금 힘들다. 벅찬 감정의 분출..

 

   벅찬 감정을 간직하는 것도, 그런것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다 버겁다.

 

   역시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처럼 냉정하지도 않으면서 냉정한 척 그렇게 억누르

 

   며 살아야 할 운명인듯-

 

  

 

 

   두번째로 조디악.

 

   피곤해서 집중을 잘 못했다.  데이비드 핀처는 역시 이런영화가 잘 어울린다.

 

   벤자민 버튼... 영화로 블록버스터 형 감동을 자아내려 시도했던건가?

 

   모든 영화는 감동의 요소가 조금씩은 다 있지만, 벤자민.... 영화나 오늘 본

 

   냉정과 열정사이나,  뭔가 감동의 장면이라고 따로 인위적으로 만든듯한

 

  장면이 있는 느낌인데,  물론 그것도 좋지만 조용히 섬세하고 촘촘하게

 

  장면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오는 영화도 좋다.

 

 

 

  시험이 끝나면 냉정과 열정사이 두권을 각각 빌려서 비교하며 읽어볼까 한다.

 

  감정에 푹 잠겨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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