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0

2007/05/10 20:07

1.  성장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참 보기 좋은 일이다.

 

   나도 '조금은'   자랐고,  나 말고도 많은 다른 이들이 예전에 모습과 달리

 

   많이 자랐음을 보게된다.

 

   갓 스무살때는 혼란에 싸여서 무엇을 해야할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막막함을 갖고 대학에 입학한다.   '관계' 에 있어서 날이 선 태도로 대하고 충돌에 있어서

  매끄럽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 반박하고 분노하면서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함에 괴로워한다.

 

 내가 썩 괜찮고 잘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부푼꿈을 안고 세상을 대하지만,  '너의 생각은

 착각이야' 라고 비웃는 듯한 상황을 수없이 접하게 된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나만큼 똑똑한

 사람은 수백여명이고, 나보다 강하고 단단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수천여명이다. 책을 읽어도

 인생경험이 활자를 읽는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다보니 이해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나이만 먹고 대학만 들

 어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와 다른 형태로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 내가 지금 생각하는 바가 맞나' 라고 혼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상처와 감정은 과잉으로

 확대하여 해석하지만,  정작 타인의 상처를 돌아볼만한 샤려깊음은 없다.

 

 이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화해함' 이 곧 '타협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고 부딧히고 그만큼 눈물을 흘리며 살이 깎여나가는 통증을 겪어야 한다.  자신이

 '이만큼'  밖에 안됨을 인정하게 되지만, 또 '이만큼'  밖에 안된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싫은것'   '다른 것'  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게 된다.  어느것에는 기대

 를 가져도 되고 어느것에는 가지지 않는 편이 좋은 지 알게 된다. (물론 이건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  에 대해서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조금은 배우게 된다. 자학하는데에

  너무많은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내가 유한한 인간이라서 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겸허해진다. 작은것에 일희일비해지지 않게 된다.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에서 짧게 커트하고 예전에 우울함과 고뇌에 가득찬 모습은 없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사진을 찍던 그녀가 나에게 왠지 모르게 힘이 되었다. 

 

 2.  노동법

 

     전공수업중에서, 시간이 꽤나 빨리간다고 느껴지는 수업은 이것이 첨이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과목도 이게 첨이다.

    과목의 성격도 있지만 이건 솔직히 교수가 학생들을 흡입하는 능력이 상당히 크기때문이다.

    역시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해명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즐거울 수 있다.

   

 3.  어쨌든

 

   어쨌든  극복해가고 있다.

    고장난라디오처럼 같은 얘기 여러번 떠들어댔다. 무슨 자랑처럼.

   왜냐면 자꾸 얘기해야 나아지기 때문이다.

 

   던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없었던 일로 치부해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몇년씩 사귀고도 안좋게 헤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정도 가지고 엄살을

  떠는지. 그 정도의 깜량이라면충분히 던져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왜냐면 그 감정과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속상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내가 괜찮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몇번보지도 않고 괜찮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한것은 단지 내가 마음이 끌려서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일 것이다.  또 그렇게 믿었으니까 마음이 끌렸을테고.  내가 사람을 아직 다면적으로

파악할 줄 모르고 신중하지 못했던 탓도 있다. 뭐, 사실 보편적인기준으로 보아도 특별히

비상식적이거나 비열하거나 그런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어떤 사람인지는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내 반경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standard가 높은 것 같다. 나를 좋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그 한달정도의 시간동안 그 사람이 보여준 우유부단함

  에 대해서는 안좋은 감정을 지울수가 없다. 적어도 전형적인 이기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타인의 괴로움에 대해서 쉽게 외면하는 스타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침묵했고, '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바쁘고 자신에게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은 알지만, 그냥 나에게 ' 너와의 관계에 대해서

   확신을 못가지겠다. 이유는 이전 사람을 극복을 못해서 인것 같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그 사람을 잊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줘라.' 라고 말하든지 아님 '  아무래도 넌 나와 아닌

  것 같으니 그만두자.'  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말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아니면 당장의 결론도 결정도 아니어도 좋으니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만 해줬어도

 내가 온갖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왜 말을 안하냐고. 말을.  ( 이 말에 한 친구도 부르짖으며 동의하더만)

 

 

 이십대 초반 철없는 남자아이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행동해.

 

 

   이렇게 모호한태도로 질질 끌다가 나중에 자기 바쁜일 다 끝나고, 나는 너덜너덜할정도로 녹초가

  되면 ' 미안해'  하고 보내버릴 생각이었을까.

 

 빚을지거나 직업상의 실수를 지는 일 등에는 전전긍긍하지만,  ' 자신이 손해보지 않는 실수' 

 에는 '에잇 뭐...'  하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데 익숙한 '사회인'  이고 ' 어른' 이라서 그런 걸까. 

 

 그 정도로 내가 그에게 사소한 인간이었을까.

 

 나 역시 과거에 그에 못지 않은 잘못을 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좋아함의 유무를 떠나서 옆에

 있는 사람을 사소하게 여길 수는 없었는데.

 

  어차피 '사람' 에 대해 생각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나와 틀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

 자체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건가.

 

  

 

 두번째로 속상한 이유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 우리 그만둡시다'    라고 했을때 그 사람이 한 말은 ' 넌 괜찮은 아이인데,  이전 사람을

 감정적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네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라는 말이었다.  

 

  그것 참 일단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내가 무슨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 이전 사람을 극복하지 못한 것'  이  문제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처음에는 시큰둥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면서 점점 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것은 단지 전 애인을 잊지 못해서 뿐만이 아닐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몇번 봤을때의 인상과 달리 가까운곳에서 보다보니 기대한  바와  달랐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게 아닐까? 관계란 상호적인 것인데 이쪽에서 보내는 텔레파시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잔여 에너지로 움직였던 것이지 나는 무형물이 아니지 않은가?

 

  이를테면 처음에는 신선하고 당찬 이미지가 좋았지만, 알고보니 딱히 그렇지 않았다든지.

 

  나라는 사람이 예술가에게 긴장감과 자극을 주기에는 부족했다든지.

 

  고양이처럼 밀고 당기는 맛이 없었다든지

 

  알고보니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든지

 

  너무 논리적으로 따지기만 하고 따뜻하지 못했다든지

 

  좀더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바랬다든지

 

  장래성이 불투명하고 자기일을 독하게 하지 못하는 수험생의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졌다든지

 

  아니면 딱히 짚을 것없이  전반적으로  매력이 없었다든지

 

  나의 ' 세계관' 또는 '정치적 성향'  이 강해서 그에게 부담스러웠는지

 

  혹은 반대로 딱히 '사상만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듯한 내가 미숙하게

 

 혹은 모순되게 느껴져서 실망했는지.

 

 

  가장 최악으로 드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멀어지고 자유롭고 즉흥

 

 적으로 살아가는 전 애인에 비하여  신중하고 원칙주의에 도덕적(!) 으로 살 수 밖에 없는

 

내가 ' 얽매인 것 처럼'  느껴진 걸까.

 

 

  이 최악으로 드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아팠었다.  내가 긍정하여 살아가고 또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은 부분을 누군가에게 정면 부정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지레

 

 짐작일수도 있지만. (만일 어릴때에 이런 경험을 했으면 정말 상처받고 자아가 흔들렸을수도

 

있는데 어느정도 나라는 사람이 형성된 후에 겪게 되어 다행인걸까. )

 

 

 한 마디 해주었으면 내가 의혹속에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내가 왜 그 사람에게 부족했는지 알 수 없이 수많은 의혹만이 남았다.

 

 한 친구는 이제 그만 그 의혹에 대한 답을 알려고 하지 말고 덮어버리라고 한다.

 

 그래, 이제는 그 대답을 듣고 싶지 않다.

 

 그의 마음을 알고 싶지 않다.

 

 의혹을 분명히 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박스안에 집어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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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루냐 2007/05/10 19:39

    으으, 무척 공감 가네요. 읽는 저도 덩달아 속상해요.

    perm. |  mod/del. |  reply.
  2. 새잎 2007/05/10 21:43

    (글을 읽고 댓글을 달까 말까 잠시 망설였답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작년 10월의 시간들이 생각났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늘어나는 물음표들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던 시간들. 여러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세상은 조금씩 변해있었는데, 문제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저만 그대로더군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물음들로 불쑥불쑥 시도때도 없이 제 삶이 공격당하면서 말이죠. 서로 마주앉아 '솔직한' 대화를 단 3시간만이라도 나누었다면, 저는 그렇게 긴긴 시간을 힘들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상실감, 분노, 그리움 등등의 복합적 감정보다는 오히려 '답답함'이라는 시간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그만 망가지고 싶어서 그 모든 물음들에 대해 놓아버리기로 다짐한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오랫동안 아물지 않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더니 이제서야 겨우 딱지가 앉았어요. 이제 제가 해야할 일은 덧나지 않게 잘 보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징어땅콩님도 상처 부위가 덧나지 않게 잘 보살피세요~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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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징어땅콩 2007/05/11 08:02

    루냐/ 덩달아 속상해 하진 마세요^^;;
    새잎/ 우... 모든 사람들이 속상해하는 패턴은 다 비슷한가봐요. 왜 유괴를 당한 부모가 자식이 죽은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더 고통일수도 있다는데, 역시 불확실함이란게 제일 사람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거 같아요. 새잎님의 마음에는 딱지가 앉았다니 다행이군요.... 가렵다고 딱지 긁어서 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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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구성철 2007/05/14 17:46

    젠장...내가 하고 싶은 얘기 다 써 놓았네. 난 아직이에요. 이번 주중에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은데...이제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해왔는지도 도통 모를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네요.

    perm. |  mod/del. |  reply.
  5. 오징어땅콩 2007/05/14 22:40

    성철/ 선배도 '젠장' 이라는 말을 쓸 줄 아시는 군요ㅋ 피 그만 말리세요... 탈수증 걸립니다. 그리고 다음기회에 뵈면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을거 같네요...

    perm. |  mod/del. |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