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

2012/03/27 11:21

 

 

 

 

대학때는 이기주의라 말할 수 있는 양태를 숱하게 보았고,  그 숱한 이기주의가 싫어서

 

 그 와 반대되는 공간을 찾으려애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허한 마음을 채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결국 남의 도움을

 

 입어도 나 스스로 성장해야만 해결 되는 것임을..

 

 

  내가 내것만 잘챙기지 않고 남의 것을 챙기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내가 결핍된

 

 만큼 남이 결핍되어 불만을 가질까봐 미리 넘겨짚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때문에  나를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여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러나 내가 남에게 이럭저럭 감정적 호의를 제공 한다면

 

  (글쎄.... 니가 도대체 뭘 베풀었냐, 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건 그 사람이

 

  좋아서..... 인 경우도 있기는 하나 습관적인 요소, 또는 내가 바라보는 어떤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상이 투사되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니 생각만큼 낯설거나 혹은 사람들이 냉랭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럭저럭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나보다 나이는 연하지만) 선배인

 

 동료들이 고맙기도 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술을 물처럼 마시는 사람'으로

 

 찍히기도 하는 인상을 남기며 (;;)  나는 그럭저럭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들과 나는 다르지만, 우리사이의 마음의 벽은 조금씩 붕괴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비록 맨날 같이다니고 붙어다니는 사람이 없더라도 오히려 난 그냥... 서로 자주

 

만나거나 자주 얘기하지 않아도 마음에 벽이 없고 호감이 있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원 생활 동안 목표로 하는 것은

 

나와 가치관이 다르거나 혹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그저 물흐르듯

 

모든 것을 그 존재자체로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여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다. 여대에서 여대로 오고 또 환경이 바뀌면서 

 

여성들의 모습이 다양한 것을 발견하고, 석사박사를 하고 집까지 유복해도

 

모든것을 남이 (주로 남자가)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일 잘하거나 공부를 잘 해서 배울 점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가

 

많이 가진만큼 남한테 베풀줄도 알거나 성격이라도 좋으면  된다.

 

근데 그것도 아니면 뭐지, 인형인가?

 

싶다.

 

 

 

 

 

한숨쉰다.   여성과 여성사이의 관계가 중요한데 그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배우고 있나?

 

하긴 나도 사람에 대해서 고지식하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별로 그렇게 잘하지는

 

못한다.

 

얼마쯤의 허망함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서로 못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겉으로나마

 

좋은 말도 할 줄알고,  밥도 잘사고, 후배도 잘 챙기고 그런 여성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별로많지는 않지만) 괜찮다는 생각이든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나도 그런 사람을

 

그냥 남이 뭘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는 여성보다는 훨씬 좋게 보게 된다.

 

 

 

나도 요즘 가치관에 혼란이 많다. 이정도는 보통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면서도.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맘껏하고,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남들이 어떤

 

행태를 보이든 상관없이 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다.

 

 

 

도통 나한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질 못하고 시행착오만 하고

 

 살아오다가, 한 몇개월전부터

 

나한테 도움이되는 방식으로 조금씩 살아오고 있다.

 

더욱더 나에게 집중해야만 남에게 베풀 것도 생길것이다.

 

 

 

그리고 나한테 가장 많은 에너지를 부여하고, 나에게 모든것을 집중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좋은 세계를 만들수 있도록...

 

사람들은 다들 결국 각자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보면서

 

그 세계를 이루려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자기가 가장 행복하리라고 생각되는.

 

남보다는 나의 그 생각을 지지해주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12/03/22

2012/03/22 08:38

1.  선거

 

  통합진보당은 건전하지 못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난 유시민 별로 안좋아한다.

 

  글타고 진보신당을 다시 찍는다고 해도 좀 마뜩찮은 기분. 어제도 홍세화아저씨가

 

 당원들에게 남긴 음성 들으면서 참 마음 약해지고... 내가 아직 탈퇴를 못한게 우연이 아니었나

 

 싶고.....  대한민국에는 내가 지지할 당이 없나보다.

 

 

  마뜩찮고 못미더운 진보신당에게 결국 비례대표를 줘야하나보다.

 

 

 

 2. 순간 에너지가 넘칠때가 있는데, 이런 때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껏 말하고 마음껏

 

   표현해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버럭소리를 지르진 않아도 마음껏 주장을 펼칠

 

 

   자리가 한 두개 더 있어도 모자라다. 얌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12/03/20

2012/03/20 10:39

 

 

 

 

 

 1.

 

 자기 발견이라는 말은 있어도, 자기 관리라는 말은  내겐 없다.

 

 2. 

 

 나를 지금보다 더 치유할만한 환경의 조성은, 舊 옛날부터 오래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학교에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3.

 

  학교에서 늦게나와  차를 놓쳐서 성북역에서 내려서 청량리까지 택시 합승을 했다.

 

 합승한 사람은 나보다 좀 어린 남자인것 같은데,  합승하자니까 말없이 승인했다.

 

 차 안에서 잔돈이 있냐, 없냐 얘기를 서로 나누었으니 확실히 승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합승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택시 아저씨 한테도 '합승해도 되죠?'

 

 라고 큰 소리로 물었더니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난 그 말을 승인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근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택시 아저씨가 돈을 각자내라는 것이다.

 

 

 이 때 난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 성격 같으면

 

 그냥 냈을수도 있지만 깡다구가 생겼는지

 

 " 아까 제가 합승되냐고 여쭤봤잖아요? 된다는 얘기 아니셨어요-"

 

  하고  항변하였다. 

 

 

 

  택시기사님 입장에서는 합승을 ' 같이타되 돈은 둘다내는 것' 으로 해석했을

 

  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는 승차하기전에 다른 승객과 (무언으로) 합의했고, 아저씨도

 

 합의했으니 1인요금을 내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승객끼리 같은 목적지를  합의하고 가는 경우에 요금을 어떻게 하는지,

 

 택시를 잘 안타서 법 상,   관행 상 어떤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승객의 의도상 '합승하겠다'  라는 의미를 아저씨도

 

 

 요금을 둘다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럴거면 뒤에 택시 줄줄이 많은데 뭣하러 그 차타나.

 

 어쨌든 이러한 오해들이 있었고,  기사님은 의외로 나의 한마디에

 

 반값만 내라고 수그러들었다.

 

 

 근데 그 어린 남자가  내가 택시아저씨와 실랑이 할때  ' 제가 낼께요" 그러는 것이었다.

 

 그 남자분은 내 택시비를 내줄 이유가 없는데 자기가 내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소리냐고 내가 낸다고 하고 반값을 냈다.

 

 그리고 내가  택시에서 내리니까 공손하게  " 죄송합니다"

 

  하는 것이다.

 

 그 어린 남자분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근데도 저렇게 돈도 내준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보니 뭐랄까.  착한사람 나쁜사람 개념이라는게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택시기사님이 안받아도 될 2인요금을 받은 것이라면 (물론 상황상  계약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점도 있다.) 잘못한 것이다. 그치만 고단한 운수노동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야 뭐 그럴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자기 보신이지 악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어린 남자 승객은... 아마 마음이 좀 후한 사람이니까 자신이 돈을 내준다고 했겠지.

 

 심지어 택시안에서도 내가 거스름돈이 없어서 당황하니까 괜찮다고 다 자기가 낸다고 했다.

 

 

이건 분명히 기분좋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주어진 처지와 환경에 따라서 사람은 이렇게 달라지는데 착하다, 나쁘다 를 말하는 것도

 

매우 표면만 포착하는 어리석음같다 . 타인한테 엄청난 해꼬지도 아니고 요만한 케이스에서.

 

 

 

 

그러나 또한 돈이 있건 없건 남에게 무언가를 할애하려는 것 자체를 발견하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나는 그냥 남한테 조금이라도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무조건 반갑다.   가끔은 퍽퍽  기대고 싶은 생각도 있다.  돈이 없으면서 밥 사준다고

 

 뭐 준다고 하는 선배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막 거절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내가 마음편하게

 

 누가 해주는 걸 받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날때마다 자기가 한번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맙다.  정말 안사도 되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좋다는

 

 것이다. 

 

 

 난 상담학도니까, 비슷한 처지에서도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만드는가

 

 혹은 팍팍하게 만드는가 하는 인간의 심리형성을 생각해야겠지.

 

 

 청량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영화 ' 화차' 광고가 보였다.

 

 그 누가 저 영화속의 여자 주인공을 욕할수 있으리.

 

 그 영화속 김민희를 보고 선악 을 얘기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영화는 안보련다.  그 영화를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위기의식이 증폭될 것 같다.  내가 힘들어지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어떻게든 변해갈 수 있을것 같은 그런 잠재적인 두려움이 증폭될것 같다.

 

 그런 두려움, 현명하게 해소하는 방법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12/03/18

2012/03/18 12:02

1.

 

  어제 여성주의 상담 소모임을 하고나서 상담을 받고 밖에서 약간 책을 읽다

 

  들어왔다.

 

 

 

 

 

 

 

 상담분야가 좋기도 하면서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마음이 있다.

 

  

  왜냐면 갑작스런 삶의 모드의 전환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결과물과 효율을 중시하는 그런 분위기속에 있으면서, 나 역시도 안달복달

 

 하면서 마음을 많이 괴롭혔다.   자신을 의심하는데  에너지를 많이쏟으면서,

 

  이러니까 내가  생산적인데에 마음을 쏟지 못한다고 자책했다.

  

 

  결국 그러다가 흘러 흘러 이렇게 됬는데,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효율보다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맘의 여유를 강조하는 이런 삶을 요구받으니 혼란스러울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깊이 탐색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접해온 운동사회에서도 그정도까지의 깊이 있는 탐색을 하게 되진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고뇌보다는 일에대한 소신과 대인관계 능력이 오히려

 

   요구되었다고 보인다.

 

 

   저번주에 사례발표회때 교수가 발표자에게 지적하면서 했던 말들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존재하는 거야, 느끼라고요!"

 

   그런데 나는 여전히 저런말들이 좀 남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로 감정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인관계에서도 그렇게 중요한가? 하긴 그러고

 

   보면, 타인이 나에게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밥 사주는 것 이상으로 큰 기쁨이

 

   되기도 하니 사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우선이고 그 감성에 맞춰서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한 이성을 동원하는 것이 맞겠지.

 

   정말로, 감정적으로 내가 타인과 깊은 만남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욱더 ' 꺼리가 있는 만남'   ' 관점이 맞는 사람들간의 만남'   을 추구하고

 

   또한 어떤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만남을 추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감정을 깊이 아는 게 정말 중요한가? 상담은 사람에게 깊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이런 점에 나는 아직도 한 조각의 의심을 갖고 있다.

 

 

 

 2.

  

  내가 자기소신이라든지, 중심이  겉으로는 상당히 있어보이는 인간이지만

 

  그런것들이 종교, 혹은 이념 이런것이 내사된 것이지 충분히 자기화

 

  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요즘 강하게 갖게 되면서,  내 주변에 상당히 많은 상황이

 

  변동된다고 하여도 내가 나의 일부로서 가져갈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즉 쉽게 말하면, 이를테면 내가  즉 중도좌파

 

   정도의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때 이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권위적인 것을

 

   지양하고 민주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남녀평등 이상으로 근본적인 차별을 염두에

 

   두는 급진주의 여성주의 지향, 그러나 한편으로는 식자들의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비논리성에 호소하거나 대중적인 흐름에 지나치게 부합하려는 모습을 보면  거부감

 

   을 느끼는 半 식자의 한계, 따라서 실천력이나 현실문제 해결능력은 좀 떨어지고

 

   관념적으로 고민하는 성향이 짙은 것,  말하는 것과 살아가는 삶의 괴리나 모순,

 

   중산층의 계급적 기반위에서 지금 내가

 

   느끼고 믿고 있는 것들을 쌓아왔기 때문에 몇년 후  내 힘으로 살아가는

 

  중저임금 노동자가 되었을때는 지금 이상으로  많은생존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내 실존의 위치에서 추구하게 되는 지향점이 어느정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또한 내가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 중에서 어느정도의 공동체주의, 자유주의와

 

   급진주의가 복합된 여성주의  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입으로 말하는 가치들은 정말로

 

   내 실존의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배척하는 것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빌려온 독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치 자체가 독선이라기 보다는,

 

   내가 나의 방패막으로 삶에서 차용한 것 자체가 자신을 지키기위한 독선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꼴 보수적이거나 꼰대 가부장적인, 그리고 그것들에 기대어 사는 여성

 

  남성들과 대항해야 할때 별로 자기화되지 않은 지식들을, 논리들을 많이 내것처럼

 

  가지고 온다.  타인에게 대항하기 위한 일시적인 정체성들이었는가, 그리고 그

 

  중에 많은 것들은 사상누각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을 많이느낀다.

 

 

 

  31살이 되어 이제서야 이런 고민들을 진지하게 정말 진지하게 할 정도로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오지 못했던가,  하는 막막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하듯이, 나도

 

  대단히 체제 순응적인 인간에서 한발 나아가서 그것에 반격하는 양태로 발전했고,

 

  이제는 반격하는 것만이 아니라 존재자체로 나답게 자기 화 된 삶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 되는 단계로 발전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행

 

  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 나는 왜 이렇게 형성되어왔는가'

 

  그리고 ' 나는 무엇을 원하는 가'   궁극적으로 '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2 단계의 ' 반격하는 삶'  은  ' 무조건 체제순응적인 삶' 보다야

 

  주체적이기는 했지만 남들평가, 남들 눈치보는 것, 내가 권위를 부여한 것들의

 

  승인에 의존하는 삶이 었다.  그리고 난 내가 그렇게까지 남들 눈치에 연연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남들 눈치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

 

 지 못할만큼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과 공간만 찾아다니며 그들과 서로

 

 부둥켜 안았고, 그게 안되면 진짜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막막

 

  했지만 그래도 30년의 삶에서 어떻게 어떻게 그런것들이 충족이 됬다.

 

 

  눈치에 연연한다기보다는 내 소신이라고 생각할만큼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취사선별할 수 있었던 삶이었다.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고 그 과정에서 눈치에 연연하기도 하지만 결국

 

  관계가 잘 맺어지게 되면 내가 눈치에 연연했다기보다는 서로에게 맞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계에서 난 주체적이지 못했다. 적극성을 띄었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것, 결국 관계를 타인이 주도하는대로 열심히 눈치보며 따라가

 

  며 살았다는 것이다.   내 블로그에 쓴 글의 80% 이상이 관계로 인한 고민의 글이다.

 

  그만큼 남일에 머리쓰는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관계를 예측하려고 하고 타인에게

 

  부응하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 머리를 더 많이 이해하려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래도 그 과정속에서 알아가는 중이니 그 세월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자랑스럽진 않아도 부인할 필요 없이 너무나 필요한 과정이었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진짜 내가 기뻐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싶다.

 

 확실치는 않아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배우는 것, 그리고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난 배경과 논리적 흐름

 

  에 대해서 탐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젊음을 많이 누리고 기뻐하고

 

  활발하게 얘기하고 싶고 그 활발한 대화가 서로 감정을 주고받으며 배운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 그리고 내 맘에드는 옷을

 

  사입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주말에 삼청동을 산책하고 싶다.  풋풋하게 젊지는

 

  않아도 내가 예쁘다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 학문적인 결과물을 낸다는 것은 너무 장기간

 

  의 목표이고 또한 내가  가진 능력이나 여건상의 한계가 매우 크지만 그래도 자기발견이 되고

 

   상담계에 도움이 되는 논문을 쓰고 싶다. 어설프게라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약간이나마

 

   있다는 것도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느낌이 진짜 그렇게 까지 중요한

 

  것인지, 정말 ' 느끼고 ' 싶다. 자기 느낌과 만나지 못하고 노동을 계속 하게 되면

 

   피로하다. 이글을 쓰는 중간중간에도 내 느낌과 만나지 못하고 쓰는 순간들이 있었다.

 

    느낌을 정말 많이 접하게 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고 싶다. 공허하거나 막막하거나 외로운 순간들이 줄어드는지 알고 싶다.

 

 

   위에 나열한 것 말고는 내가 잘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분명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진짜 나와 만나야 할 것 같다. 진짜 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기쁜일& 물음표로 남는 일

2012/03/13 14:21

 

 

 

 

 

 

 

 

요즘 기쁜 일과  그리고 물음표로 남는 일이 있다.

 

 

기쁜 일은  내가 녀성주의 상담연구실에서 만난 언니와 토요일에 차 한잔을 했다.

 

그녀와 차 한잔을 하게된 계기는,  그녀의 치료 연구소를 친구에게 상담받으라고

 

 

 소개시켜줬는데,

 

그 과정에서  연구소가 재정난에 있다는 걸 알고 나도 소액을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연구실에 놀러오라고 했고, 나는 누구한테  놀러가서 넉살좋게 수다떠는 걸

 

잘 하는 인간이 아니기에 좀 긴장한 마음으로 갔다.

 

 

그녀도 처음부터 말이 많거나 엄청난 붙임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솔직하게 나를 개방할수록 그녀와 할 얘기가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  조금 외롭고 추우면서 사랑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나이 마흔에 너무 충만하고 안정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 내가 춥기도 하다'  라고 말하는 그녀가 더 인간적이었다.

 

그 언니는 타인에게 많이 베풀고 싶은, 사회적 엄마로 살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여성주의와

 

그녀가 연구소에서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행복해하고 삶의 깊은 의미를 찾는 것을

 

지지하고 싶었다. 그 연구소가 계속 됬으면 싶었고, 돈때문에 문닫지 않았으면 싶었다.

 

 

 

타인과 나를 하나로 바라보는 삶, 나와 타인 사이를 가르지 않는 삶, 타인안에서

 

나를 발견하기에 적대할 일도 이해하지 못할일도 없는 그런 삶을 어느정도는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녀가 내공있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비혼여성이면서 괜찮은(?) 수입이 없는 여성의 삶이 힘들게 느껴

 

졌다.  아무리 훌륭한 정신이 있어도 배고픔이 오래지속되는 것은 힘든일이다.

 

비혼의 삶은 멋진데...돈이 없는 것이 힘들단 말야

 

계란만 먹고 살고 싶지는 않은데.... 돈이 없음으로써 서로에게 팍팍해지고

 

어떤 가능성을 꿈꿀수도 없게 되는 상황, 그게 난 참 두렵다.

 

최대한으로 이 방면에 있어서 실질적인 능력과, 버틸 수 있는 내공을 가져야겠다.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때 재정난에 처하지 않을 일은 없을테니까...

 

 

내 주변에도 은근히 그녀가 하는 표현예술치료라든지 타로라든지

 

사이코드라마에 관심있을 사람들이 (소수지만)있는....내가 좀더 내공이

 

쌓이면 여성주의 상담에 대해서 나와 친구가 하고 있는 소모임과

 

그쪽과 뭔가 연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실마리를 하나 잡은 것 같았다.

 

 

 

근데 한편으로는 그녀 앞에서 내가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뭔가 그녀가 마음에

 

들어할만한그리고 그녀를 편안하게 해줄만한 말들을 찾기위해서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내 얘기를 다 했을때 그녀가 ' 00 씨 참진솔해'

 

이렇게 평가하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해야되나....

 

난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상대가 나를 진솔하게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 진솔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점점 더 진솔해지고 싶다.

 

아직은 타인앞에서 타인의 취향에 맞추려는 기질을 버리지 못한 자신을 확인했다.

 

이것에 대해서 마음편해지고자 의식적으로라도 마구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고

 

왔는데, 그녀는 역시 상담자니까 나의 억압된면, 다각적인 모순된 마음을 얼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든 그녀가 전해 받을 수

 

 

있었던 메시지가 '당신에 대해서 호감이 있소,  더 진솔해지고 싶소'  로 정확히

 

 

전달되었다면 충분하다.

 

기쁜일은 썼는데 물음표로 남는 일은 다음에 써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12/03/03

2012/03/03 09:55

 


 

 

 

1. 좋아하는 음악

 

 시네이드 오코너 라는 내 취향에 맞는 뮤지션 발견

 

 한동안 내가 그 언어를 못알아듣는데서 나오는 몽환적인 느낌이 좋아서 남미의 여가수

 

 들을 즐겨들었으나,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 느낌이 물리는 것이 있더라.

 

 

 

 소리지리는 락음악 말고, 너무 사랑과 이별 일관하지 않는 그런 좋은 노래 없을까?

 

 그 예로 우리나라 가수로 One more chance 라고 정지찬이 만들었던 그룹이 있다.

 

 그 그룹의 '자유인'  이라는 노래가 참 좋았다.

 

 

 그리고 요즘은 ' 옥상달빛'  이니 '제이레빗' 이니 하는 여성뮤지션들도

 

 너무 약한척 센치한 척 하지 않고 인생을 읊조리는 것 같아서 좋다.

 

 

 성깔있지만 소심한  여성들 같다고나 할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12/03/02

2012/03/01 23:52

알바 다녀와서

 

빈둥빈둥 먹고 놀고 언니네 집 다녀오고...

 

마지막 휴일을 이렇게 완전한 휴식도 아닌 그렇다고 알차게도 아니게 보냈다.

 

연우진이 나오는 그 드라마 스페셜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