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A Canterbury Tale, 1944

시네마의 비전은 이렇게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심적인 모드와 원심적인 모드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모드가 섞여 작용하는 예로 마이클 파월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1944)의 씬을 들 수 있다. 평범한 어느 마을의 집회에서 벌어지는 이 씬은 곧 이상하고 진지한 의식으로 발전한다. 의식의 내레이터는 주술인지 최면술인지 모르는 말로 초서가 캔터베리로 가는 도중에 만난 과거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광을 받은 실루엣의 그는 관중들에게 “여러 분이 보는 것은 바로 오래 전 그들이 본 것”이며 “가만히 누워서 들으면 그때의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라고 친근하게 말하며 사람들을 꿈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비상한 씬에서 보는 몇 가지의 디테일은 이것이 곧 기억이나 상상, 또는 꿈과 같은 내면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예고한다. 카메라의 포커스가 한 여자에게 맞춰지면서 그의 자세는 부드러워지고 몸은 약간 뒤로 젖혀진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인물의 얼굴은 거의 블랙으로 페이드 되고 그녀의 눈만 내레이터의 눈과 마찬가지로 하이라이트 된다. 내레이터가 꿈과 같은 운율의 말을 계속하는 동안 인물은 거의 눈을 감고 몽상이나 잠에 빠진 모습이 된다. 씬은 곧 이 픽션의 인물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상상의 이미지로 옮겨 갈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순간 파월과 프레스버거는 이 몽환적인 상태에서 별안간 관객을 끌어낸다. 내레이터의 강의는 끝났고 이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물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영원히 알지 못하는 우리는 그것을 상상만 할 따름이다.

내레이터의 주술이 불러오던 꿈, 우리에게 약속되었던 그 상상의 이미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다음의 씬에서도 이것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어도 특정 인물이 상상하는 내면의 이미지로서는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보는 것은 지극히 매혹적인 현상인데 머리 속의 그 꿈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뿌려져 스토리의 구석구석, 모든 인물과 사물에 그 자취가 담기는 것이다. 인물들은 내레이터가 권유한 대로 풀밭에 누어 귀를 기울이고, 어느덧 캔터베리로 가는 길을 가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과거의 영혼들과 언덕이나 교회에서 생각을 주고 받게 된다.

 

출처 : 씨네 서울

 

이토록 중요하다는 이 앞부분은 한 개도 못 보고 말았네-_-


볼까말까하다가 봤는데 잘 봤다! 일단은 이야기(tale)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다. 무슨 세계문학사의 최고라는 책 <캔터베리 이야기>를 읽은 적도 없고 내용도 전혀 모르고 제프리 초서가 썼다는 것만 아는데, 이 영화는 그 옛날 얘기를 2차대전 중의 영국을 무대로 가져와 아기자기 재미나게 보여준다.


난 이 두 사람이 썸씽이 생길 줄 알았는데... 정말 냉정한 영화야-_-;;; 애인이 죽지 않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알리슨(여자)를 두고 판사(남자)가 사라지는 걸 보여주긴 하는데 관심도 안 보여준다, 남자가 어떤지. 불쌍햄;ㅁ; 난 다 알아 사랑한 거지?

 

이마 이치코의 만화 중에 물이 끊긴 마을에 강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을의 처녀가 물의 신 하백이 사는 곳까지 한 발 한 발 걸어서 가면 감동한 하백이 처녀의 발자국을 따라 강길을 터준다는 씨리즈가 있다. 이 영화도 캔터베리 성당에 가는 순례자들에게 축복을 준다. 원래 책 내용이 그런가보다. 다만 이 네 명의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간다-_- 격세지감... 그래도 신께서는 선하기도 하시지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신다. 맨오른쪽 남자만 빼고-_-;;; 대체 그에게 무슨 축복이 왔다구 그래. 알리슨이 축복받는 바람에 혼자 비극이 됐구먼 헐

 

등화관제를 실시해 어두운 마을의 밤길이 "글루맨"때문에 위험하다! 무려 11명의 여자의 머리에 순식간에 풀(글루)을 뒤집어 씌우고 달아난 글루맨! 글루맨의 정체는 무엇이며 목적은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은 그냥 조심하고 말아버린 일에 이방인 세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푼다. 영국인 하사인 오르간 연주자는 좀 싫은; 캐릭터였는데 미국인 병사 밥 존슨과 도시에 환멸을 느끼는 발랄한 알리슨은 너무 좋았다. 덧붙여 비운의 판사님도 좋았다;

 

알리슨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농장의 일을 너는 모른다고 무시하는 대장간 아저씨에게 "나는 백화점에서 계산하는 사람이었고 거기에 당신이 있었다면 당신도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요지의 말을 멋지게 날린다. 애인을 떠올릴 때면 정말 슬픈 분위기를 풍기고, 상냥하고 사심없이 밝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글루맨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다니고, 말을 놀래킨 탱크 군인들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기타 등등 대활약을 펼친다.

 

아.. 아주 재미있게 보았으나 앞부분을 놓쳐서 무척 아쉽다. 이야기 이상의 영적인 분위기는 도저히 모르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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