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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아침, 예루살렘의 한 마을에서 이스라엘 경찰이 달리는 자동차에 총격을 가했다. 차에는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나온 사촌지간 두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총격으로 운전자는 다치고 동승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스라엘 경찰은 차가 경찰을 들이받으려는 것 같아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하루 뒤 경찰은 살해당한 이의 부모를 경찰서로 불러 ‘실수로’ 쏴 죽였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열흘 뒤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기소된 사람은 경찰이 아닌 다친 사촌이었다. 차가 경찰을 들이받으려 했다는 주장을 뒤집는 목격자 비디오도 나왔지만, 운전자가 마약과 음주 운전으로 자기 사촌을 죽게 한 혐의(과실치사)로 기소된 것이다.
이스라엘 공권력이 민간인을 쏘고, 민간인 피해자를 테러리스트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자로 모는 일은 전혀 드물지 않다. 물론 이 민간인이 팔레스타인인일 경우의 얘기다. 지난 1년간 22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군 ·경 등에 살해당했다. 현재 한 이스라엘 군인이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팔레스타인 용의자의 머리에 총을 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군인 측 증인은 법정에 나와, 이전에도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용의자의 가슴을 쏜 뒤 머리를 쏘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지만 그 군인 중 재판을 받은 사람은 없다고 진술했다. 군인들은 이스라엘군의 발포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전보다 발포 지침이 완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작년에도 흘러나온 바 있다.
점령의 체계는 견고하다. 응당 불법으로 보이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발포는 임의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각 행위 주체가 어떤 규정이나 지침을 위반했다고 어쩌다 판결을 받을지언정, 군사 점령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행위는 합법의 울타리 안에 있다. 아니, 점령자의 행위가 점령 시스템 그 자체다.
내년이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지 50년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 ‘군사 점령’당한 후 50년이 지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근대 들어 가장 오래 타국을 군사 점령한 국가 라는 타이틀을 쥔 채 매일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깨질 수 있다. 다름 아닌 이스라엘 자신에 의해서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팔레스타인 땅은 영국 위임통치기를 겪었다. 2차 대전 종료 후 영국이 철수했고, 1948년 일어난 1차 중동전쟁 중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하며 건국됐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은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하고 살해하고 강제 이주시켰지만 이스라엘에서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인종 청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건국 초기 이스라엘은 인종 청소로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팔레스타인 인구에 대한 다른 계획이 없어,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시켰다. 비상강제령은 이스라엘 국내에 남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군사 지배의 법적 근거로 활용됐다. 소위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라고 자찬하는 이스라엘이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던 그 한가운데서, 이스라엘 내 소수의 팔레스타인인은 1966년까지 18년간 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 군정이 종료된 이듬해에 이스라엘은 다시 전쟁을 통해 1948년 전쟁 때 차지하지 못한 22%의 팔레스타인 땅, 즉 서안 ·가자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리고 곧장 서안과 가자를 군사 지역으로 선포하며 비상강제령을 적용했다(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로 강제 병합했다).
팔레스타인 민중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은 1948년 점령당해 지금까지 계속 군사 지배를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을 ‘48년 팔레스타인’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선 것 자체가 점령이다. 점령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고 말해도 틀릴 게 없다.
그러나 UN을 위시한 국제 사회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점령당한 서안·가자·동예루살렘만을 점령지로 본다. 관련 용어들도 모두 이때를 기준으로 정립됐다. 사용되는 용어에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필자도 1967년의 사건을 점령이라 칭하겠다. 이어지는 글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서안과 가자, 동예루살렘만을 일컫는 것이다.
1967년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들어선 군정은 그때까지 팔레스타인에 적용됐던 법보다 군정이 우위임을 선언했다. 군정 최고 사령관이 발행한 명령, 즉 군정령은 의회 승인 등 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점령지 전역에 적용되는 법의 효력을 갖는다.
군정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군사 지배할 때 그 법적 기초였던 비상강제령을 점령지에도 적용했다. 비상강제령에는 불법적인 강제 이주,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 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 구금, 출입 봉쇄, 통행금지, 강제추방 등이 규정돼 있는데 지금까지도 적용되고 있다. 초법적 내용이 법에 규정돼 초법적 행위가 합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군정은 14년 후인 1981년에 만들어진 민정 기구(Civil Administration)에 관할을 일부 이양하는데, 이 민정은 이스라엘 군정의 하위 기구다. 그 장은 이스라엘 군 사령관에 의해 임명된다. 이름만 민정이고 실제로는 군정 기관의 일부다. 이스라엘은 민정 설립으로 군정은 폐기됐다고 주장하지만, 민정 설립 후에도 군정령이 계속해서 발동한 바 있다. 행정기구 같은 이름을 가진 점령지 통치 조직도 있는데(COGAT),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군 장성이 최고사령관이다. 현재는 민정이 COGAT 산하로 편입됐다.
군사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인들도 난데없이 가옥 파괴 집행서를 송달받는다든가 하면, 이스라엘 대법원을 통해 불합리한 군정의 명령에 대해 다퉈볼 수 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점령 초기부터 국제 인권 규약을 언급하며 군정을 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황에 따라 자의적 판단을 내리거나 이스라엘 국내법을 국제법에 우선해 적용하며 점령 당국에 치우친 법 해석을 하고 있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대법원에 가도 승소하는 팔레스타인인은 극히 드물다.
비상강제령이 여전히 팔레스타인 전역에 적용되고 있지만, 서안지구의 C 지역만이 이스라엘 군사 지배를 받고 있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이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자며 미국의 중재로 양자 사이에 체결된 오슬로 협정 때문이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되고,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병합한 동예루살렘을 제외한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자치정부가 관할하게 됐다. 관할이라곤 해도 1995년 2차 협정을 통해 서안지구를 A· B· C로 나눠 이 중 가자 및 서안의 A· B 지역에만 관할권이 미칠 뿐, 서안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C 지역은 이스라엘 군정이 관할한다. 이 때문에 C 지역만 군사 통치를 받을 뿐 다른 지역을 점령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별도 조약으로 관리되는 헤브론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스라엘 민정 기구의 직접 통치를 받으며 이스라엘 군사 기지 사이를 오가는 군용 차량의 행군 속에서 사는 C 지역 사람들이 대 이스라엘군과 접촉면이 훨씬 넓긴 할 것이다. 다만 오슬로 협정상 A와 C 사이 완충지대 격인 B 지역의 ‘보안’도 ‘공동’이라는 명목으로 이스라엘군 또한 관할하고 있다. 협정으로 군사작전이 금지된 A 지역도 군사 지배가 없다고 할 순 없다. 2002년, 이른바 67년 서안 점령 후 행해진 가장 큰 규모의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행정수도 라말라 등 주요 A 지역 도시들에서 재개됐다. 지금도 A, B 상관없이 그때 그때 군사작전을 통해 팔레스타인인을 살상 · 체포 · 구금하고 있다. 특히 올 4월 이스라엘 내각은 이스라엘군이 자국 보안을 위해 A 지역에 들어가 작전을 펼칠 권리가 있고, 여기에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오슬로 협정의 주요 내용에 대한 공식적이며 전면적인 부정이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하고 실행한다는 레퍼토리의 주요 근거가 되었던 오슬로 협정의 외피는 이처럼 쉽게, 일방적으로 벗겨지곤 한다.
지적해 둘 것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 군정이 자치 정부보다 더 넓은 영역을 통치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받게 됐을 뿐 아니라, 점령 통치를 자치정부에 아웃소싱 해서 점령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단 점이다. 오슬로 협정이 기만적인 것은, 평화 협정이란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치라는 허울 속에 점령의 시스템을 긍정하는 것도 모자라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점령 통치의 일부분이 됐기 때문이다.
* 격주간 [워커스] 연재 1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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