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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7일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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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점령 반세기에 다다른,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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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의 진실

이 영상을 찍은 후에도 10월 7일 노바 뮤직 페스티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련해서 많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래 인용글은 비슷한 시기에 쓴 거고, 최근 거는 인용문 아래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날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날 이스라엘의 음악축제가 열린다는 걸 사전에 알게 된 하마스가 군사작전을 짜서, 축제 장소에 쳐들어가 비무장한 민간인을 200명 넘게 살해했다는 이야기에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믿기는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먼저 저는 이슬람 정치 운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세속주의자기 때문에 하마스를 조금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대서 하마스를 실제 이하로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어찌 됐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기 때문에 좋게 볼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하마스는 온건한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예전에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창궐했던 IS 같은 극단적 이슬람 정치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IS와 같다며, 하마스가 아기 머리를 베었다거나 여성의 몸이 부서질 때까지 강간했다는 둥 입에 담기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무수한 프로파간다를 퍼뜨렸지만, 이후 이런 사실이 없다는 게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일단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가짜 뉴스(허위 조작 정보)를 퍼뜨려 집단 학살을 자행할 근거를 만든 것뿐입니다. 아무튼 그런 IS나 할 법한 짓을 하마스가 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서양의 정부들과 언론들이 사실이라고 퍼뜨렸습니다. 일단 퍼뜨리고 나중에는 정정하고 있지만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과 정정된 뉴스가 퍼지는 속도와 범위는 무서울 정도로 다릅니다. 저는 하마스가 IS와 다르며, 오히려 서로 적대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 첫 군사작전이 목표로 한 게 고작 민간인 학살이라면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신임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째서 하마스가 그런 짓을 한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 한국 언론에는 하마스 단독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지난 몇 년간 오랜 분열을 딛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들이 단일한 무장 투쟁 전선을 만들었고,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이들이 함께 계획한 것입니다(참고로 앞서 말한 ‘파타’는 무장 해제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마스도 그렇지만, 좌파 세력이 그런 민간인 학살을 작전으로 짰다는 걸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하마스는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부정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노린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군경과 무장한 경비대와 정착민 등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살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영상을 계속 내보냈죠. 이번 군사작전의 목표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5천에 가까운 해방 운동가들을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감자와 교환 협상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고, 또 군사 기지를 공격하는 게 그 수단이었고요. 참고로 수감자(인질) 교환은 거의 유일하게, 이스라엘이 협상에 응하는 영역입니다.

전 세계 연대자 중, 저처럼 10월 7일의 일에 대해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하죠. 우리는 하마스가 IS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이스라엘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자동차와 사람이 완전히 새카맣게 불타 죽고, 키부츠의 집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는데, 하마스의 경량화기로 그리고 중장비 없이 그렇게 파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언론에서, 10월 7일 이스라엘 민간인 일부를 살해한 것은 이스라엘 점령군이라는 보도가 조금씩,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준 아파치 헬기가 달리는 사람과 자동차에 미사일로 폭격하는 영상과 자신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폭격하지 않았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조종사의 인터뷰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마스는 축제가 있단 걸 몰랐다는 이스라엘 경찰 조사결과가 보도됐습니다. 경찰이 생포한 하마스 대원들의 진술도 그렇고, 원래 목/금 개최 예정이었던 음악축제는 불과 이틀 전에 하루 연장이 결정돼 하마스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점령군의 아파치 헬기가 음악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발포했다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고수해 온 내러티브가 깨진 것입니다.

- 질라라비에 기고한 글 중에서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음모론을 제일 싫어하며 음모론에 무조건적인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인데. 그런데 10월 7일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학살하는 군사작전을 짰다는 얘길 듣고, 실제로 많은 민간인 시신이 발견된 뒤에도, 너무 너무 납득할 수가 없어서 음모론자가 될 것 같아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이 전례 없이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내 의문을 막 얘기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이 스스로 도저히 납득이 안 돼서 이런 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봤었다. 내가 모르는 새 하마스 내 권력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어서 극단주의자들이 장악을 했다거나? 하마스 정치가 최고 대가리들은 이 군사작전을 거의 마지막 단계에야 알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부 군사조직인 알까삼 여단이 실권을 장악했다는 것이었다. 근데 위에 썼듯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하마스만 아니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다 같이 하는 건데, 이슬람 지하드랑 좌파 PFLP까지 다 같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어서 기존과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하게 됐다고? 그게 도저히 말이 안 됐다. 그리고 여러 번 강조했듯 하마스는 극단주의 계열이 전혀 아니다.

다른 음모론들도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위성과 감시 드론으로 촘촘하게 감시하고 있는데, 하마스의 군인이(이스라엘 점령군에 따르면 전투원 3만 명) 대규모로 훈련하고 재배치되는 걸 이스라엘이 몰랐을 리 없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러 이유로) 원했거나 최소 방조한 거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음모론까진 안 빠졌는데 왜냐면 음모론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뉴욕 타임즈에 기사가 나왔다. 알았지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무시했다고. 이건 아슈카르가 지적했듯 행위 주체성을 무시해서 그런 거임.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처음에 다른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미친듯이 선전선동에 이용하면서도 노바 축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뒤늦게 선전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제일 음모론자가 될 것 같았던 게, 영상 마지막에 빼먹었다고 넣은 저 얘기 때문임

10월 9일 네타냐후 수석 보좌관의 노바 음악 축제에 대한 인터뷰:
“파티는 그 혼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며 “파티 참가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때로는 누적된 조건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저 인터뷰 후 이스라엘 사회에서 왜 피해자 탓을 하냐고 엄청난 비난을 받은 뒤 보좌관은 자기 말이 사실은 너무 많은 인명 피해 때문에 신원 식별 과정이 더뎌져서 했던 말이지 피해자들 비난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는데, 뭔 소리임? 말이 안 됨. 그래서 저 멘트 때문에 이상하다, 이상하다 계속 이러고 있었음. 그리고 그 뒤에 점령군의 아파치 헬파이어 미사일과 탱크에 일부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살해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에 역시. 저 말이 그냥 말 그대로, 하마스가 계획적으로 학살을 자행한 게 아니고, 자신들도 (당연히) 민간인을 죽이려던 건 아니고, 그런 누적된 조건의 결과로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교전 중 살해가 있었던 것. 이게 그냥 너무 아다리가 들어맞는다. 하마스가 설명했던 거랑도 일치하고.

그리고 영상에서 조금 말하다 왜 때문에 까먹고 다 얘기를 안 했는데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군사작전의 목적은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5천 명(지금은 8천 명)의 팔레스타인 정치 수감자를 석방시키는 것이었다. 즉 최대한 많은 인질을 데려가 최대한 많은 수감자를 교환-석방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이 대체 자기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왜 유리하다고 판단하겠는가? 그렇게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최근상황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모든 걸 덮는다. 이미 매장된 시신도 많다. 증거가 될 불태운 자동차들도 다 폐차시켜 없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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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측 사상자 숫자다.

이스라엘은 사망자를 10월 7일 제외하고 105명이라고 말하는데, 부상자가 5천이 넘고, 그 중 장애 등록된 병사가 이미 2천이고, 1천이 등록 대기 중이라고 한다. 사망자에 비해 부상자 규모가 너무 크다.

사실 이 뉴스를 보고도 너무 화가 나서 한밤중에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는데... 이미 자국민 인질 살해하는 데서 다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자국민의 신변 보호는 안중에도 없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치는 게 이스라엘로서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벌써부터 전쟁 후 군인들의 포스트 트라우마 걱정하던데, 애초에 그러면... 트라우마 생길 일을 안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사회를 완전히 훼손하면서도 위정자들은 단기적 이해관계밖에 못 본다. 정말 답답하다. 이스라엘 사회가 망가진 대가는 유대인들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훨씬 더 치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절망스럽다.

팔레스타인 사회를 망가뜨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아니 그냥 모든 사람들이 살해되고 있다. 건물 잔해에 묻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합하면 살해된 사람이 2만 5천을 훌쩍 넘었다. 너무 너무 무섭다. 더는 안된다고 맨날 말하는데 매일 매일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너무 무기력하다. 그래도 정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심 갖고 자기 이슈로 삼고 있어서 정말 유일하게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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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점령 반세기에 다다른,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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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팔레스타인 지도 변화

 

섬처럼 갈갈이 조각난 "서안지구 제도諸島" (출처). 이스라엘 군정 통치를 받는 C지역을 바다와 같은 하늘색으로 표시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가 이뤄지는 A, B 지역간 단절을 '제도諸島', 즉 섬들의 집합에 비유한 지도이다.

 

- 점령의 A,B,C

 

9월 5일 아침, 예루살렘의 한 마을에서 이스라엘 경찰이 달리는 자동차에 총격을 가했다. 차에는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나온 사촌지간 두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총격으로 운전자는 다치고 동승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스라엘 경찰은 차가 경찰을 들이받으려는 것 같아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하루 뒤 경찰은 살해당한 이의 부모를 경찰서로 불러 ‘실수로’ 쏴 죽였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열흘 뒤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기소된 사람은 경찰이 아닌 다친 사촌이었다. 차가 경찰을 들이받으려 했다는 주장을 뒤집는 목격자 비디오도 나왔지만, 운전자가 마약과 음주 운전으로 자기 사촌을 죽게 한 혐의(과실치사)로 기소된 것이다.

 

이스라엘 공권력이 민간인을 쏘고, 민간인 피해자를 테러리스트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자로 모는 일은 전혀 드물지 않다. 물론 이 민간인이 팔레스타인인일 경우의 얘기다. 지난 1년간 22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군 ·경 등에 살해당했다. 현재 한 이스라엘 군인이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팔레스타인 용의자의 머리에 총을 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군인 측 증인은 법정에 나와, 이전에도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용의자의 가슴을 쏜 뒤 머리를 쏘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지만 그 군인 중 재판을 받은 사람은 없다고 진술했다. 군인들은 이스라엘군의 발포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전보다 발포 지침이 완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작년에도 흘러나온 바 있다.

 

점령의 체계는 견고하다. 응당 불법으로 보이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발포는 임의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각 행위 주체가 어떤 규정이나 지침을 위반했다고 어쩌다 판결을 받을지언정, 군사 점령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행위는 합법의 울타리 안에 있다. 아니, 점령자의 행위가 점령 시스템 그 자체다.

 

세상에서 가장 긴 군사 점령

 

내년이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지 50년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 ‘군사 점령’당한 후 50년이 지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근대 들어 가장 오래 타국을 군사 점령한 국가 라는 타이틀을 쥔 채 매일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깨질 수 있다. 다름 아닌 이스라엘 자신에 의해서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팔레스타인 땅은 영국 위임통치기를 겪었다. 2차 대전 종료 후 영국이 철수했고, 1948년 일어난 1차 중동전쟁 중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하며 건국됐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은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하고 살해하고 강제 이주시켰지만 이스라엘에서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인종 청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건국 초기 이스라엘은 인종 청소로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팔레스타인 인구에 대한 다른 계획이 없어,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시켰다. 비상강제령은 이스라엘 국내에 남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군사 지배의 법적 근거로 활용됐다. 소위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라고 자찬하는 이스라엘이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던 그 한가운데서, 이스라엘 내 소수의 팔레스타인인은 1966년까지 18년간 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 군정이 종료된 이듬해에 이스라엘은 다시 전쟁을 통해 1948년 전쟁 때 차지하지 못한 22%의 팔레스타인 땅, 즉 서안 ·가자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리고 곧장 서안과 가자를 군사 지역으로 선포하며 비상강제령을 적용했다(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로 강제 병합했다).

 

팔레스타인 민중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은 1948년 점령당해 지금까지 계속 군사 지배를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을 ‘48년 팔레스타인’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선 것 자체가 점령이다. 점령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고 말해도 틀릴 게 없다.

 

그러나 UN을 위시한 국제 사회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점령당한 서안·가자·동예루살렘만을 점령지로 본다. 관련 용어들도 모두 이때를 기준으로 정립됐다. 사용되는 용어에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필자도 1967년의 사건을 점령이라 칭하겠다. 이어지는 글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서안과 가자, 동예루살렘만을 일컫는 것이다.

 

점령지의 법

 

1967년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들어선 군정은 그때까지 팔레스타인에 적용됐던 법보다 군정이 우위임을 선언했다. 군정 최고 사령관이 발행한 명령, 즉 군정령은 의회 승인 등 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점령지 전역에 적용되는 법의 효력을 갖는다.

 

군정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군사 지배할 때 그 법적 기초였던 비상강제령을 점령지에도 적용했다. 비상강제령에는 불법적인 강제 이주,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 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 구금, 출입 봉쇄, 통행금지, 강제추방 등이 규정돼 있는데 지금까지도 적용되고 있다. 초법적 내용이 법에 규정돼 초법적 행위가 합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군정은 14년 후인 1981년에 만들어진 민정 기구(Civil Administration)에 관할을 일부 이양하는데, 이 민정은 이스라엘 군정의 하위 기구다. 그 장은 이스라엘 군 사령관에 의해 임명된다. 이름만 민정이고 실제로는 군정 기관의 일부다. 이스라엘은 민정 설립으로 군정은 폐기됐다고 주장하지만, 민정 설립 후에도 군정령이 계속해서 발동한 바 있다. 행정기구 같은 이름을 가진 점령지 통치 조직도 있는데(COGAT),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군 장성이 최고사령관이다. 현재는 민정이 COGAT 산하로 편입됐다.

 

군사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인들도 난데없이 가옥 파괴 집행서를 송달받는다든가 하면, 이스라엘 대법원을 통해 불합리한 군정의 명령에 대해 다퉈볼 수 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점령 초기부터 국제 인권 규약을 언급하며 군정을 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황에 따라 자의적 판단을 내리거나 이스라엘 국내법을 국제법에 우선해 적용하며 점령 당국에 치우친 법 해석을 하고 있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대법원에 가도 승소하는 팔레스타인인은 극히 드물다.

 

점령의 A, B, C – 기만적인 오슬로 협정

 

비상강제령이 여전히 팔레스타인 전역에 적용되고 있지만, 서안지구의 C 지역만이 이스라엘 군사 지배를 받고 있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이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자며 미국의 중재로 양자 사이에 체결된 오슬로 협정 때문이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되고,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병합한 동예루살렘을 제외한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자치정부가 관할하게 됐다. 관할이라곤 해도 1995년 2차 협정을 통해 서안지구를 A· B· C로 나눠 이 중 가자 및 서안의 A· B 지역에만 관할권이 미칠 뿐, 서안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C 지역은 이스라엘 군정이 관할한다. 이 때문에 C 지역만 군사 통치를 받을 뿐 다른 지역을 점령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별도 조약으로 관리되는 헤브론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스라엘 민정 기구의 직접 통치를 받으며 이스라엘 군사 기지 사이를 오가는 군용 차량의 행군 속에서 사는 C 지역 사람들이 대 이스라엘군과 접촉면이 훨씬 넓긴 할 것이다. 다만 오슬로 협정상 A와 C 사이 완충지대 격인 B 지역의 ‘보안’도 ‘공동’이라는 명목으로 이스라엘군 또한 관할하고 있다. 협정으로 군사작전이 금지된 A 지역도 군사 지배가 없다고 할 순 없다. 2002년, 이른바 67년 서안 점령 후 행해진 가장 큰 규모의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행정수도 라말라 등 주요 A 지역 도시들에서 재개됐다. 지금도 A, B 상관없이 그때 그때 군사작전을 통해 팔레스타인인을 살상 · 체포 · 구금하고 있다. 특히 올 4월 이스라엘 내각은 이스라엘군이 자국 보안을 위해 A 지역에 들어가 작전을 펼칠 권리가 있고, 여기에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오슬로 협정의 주요 내용에 대한 공식적이며 전면적인 부정이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하고 실행한다는 레퍼토리의 주요 근거가 되었던 오슬로 협정의 외피는 이처럼 쉽게, 일방적으로 벗겨지곤 한다.

 

지적해 둘 것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 군정이 자치 정부보다 더 넓은 영역을 통치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받게 됐을 뿐 아니라, 점령 통치를 자치정부에 아웃소싱 해서 점령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단 점이다. 오슬로 협정이 기만적인 것은, 평화 협정이란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치라는 허울 속에 점령의 시스템을 긍정하는 것도 모자라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점령 통치의 일부분이 됐기 때문이다.

 

* 격주간 [워커스] 연재 1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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