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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 이누도 잇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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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기르기 / 카를로스 사우라


아무 것도 몰라서 무심한 듯 하지만, 저 까만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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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 축구단 / 대니얼 고든

 

이 자료사진만 하더라도 몇 컷으로 나뉘어 북한팀과 상대팀의 명암을 드러내는데 위트있게 쓰였다. 인터뷰 내용과 적절하게 매칭되는 자료화면과 나레이션의 리듬이 전체적으로 영화를 살리고 있었고.. (문장으로 보면 참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데, 어렵지..)



별다른 주장 따윈 담겨있지 않은 이 작품에 대해서.... 감독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라고도, 외부자의 시선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소재가 그러했을 수도 있고.. 이 작품은, 굳이 북한이 아니었다 해도 어떤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인 어떤 시대의 공기가 이성을 흐릴 때, 그로 인한 무지는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기 마련.. 북한팀에 대한 초기 영국 언론의 반응은 그러한 것이었다. 외무성의 입장은 그것대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고. 편견으로 덧칠된 미지의 북한팀이 미들스버러 시민들의 '홈팀'이 되고, 리버풀에서도 환대를 받는 동안, 편견은 탈색되고 그들 사이를 흐른 건 '우정의 노래'였다. 그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만으로도 그저 따뜻하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인 셈. 하지만 그들 사이에 생겨난 '우정'과 몇십 년이 지나 미소지으며 회상할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은, 축구선수와 축구팬 사이의 인간적인-감성적인 무엇이지 체제에 대한 이해나 공존을 보장하기 위한 길로 나아갈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흥미롭고 재미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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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갓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1.

신이 떠난 신의 도시에는 생존을 위해 폭력을 내면화 해야 했던 신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 빈민가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시절을 거쳐 점차 스스로의 시스템을 만들어갔고, 이유가 있었던 아이들은 어느 덧 이유를 잃어버린 채 폭력 그 자체로 성장한다.

 

 

 



창백하게 빛나는 마천루가 바로 코앞에 들어선 후에도,

단층 짜리 누런 흙집의 미로 속에 아이들은, 여전히, 맨발로,

더러운 진창을 뛰어다닌다. 한 손에는 총을 든 채로.

 

 

2.

간만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본 영화다. 감각적인 촬영과 편집은 물론이고, 30년에 걸친 대서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데 그 많은 캐릭터가 저마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공간의 매력, 인물의 매력,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음악.

 

이 영화의 스타일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고 한다. 감각적이다 못해 자극적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삶이 곧 죽음의 수렁인 이들의 현실을 그런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때, 폭력은 단지 하나의 이미지적 쾌락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아닌가. 나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인가.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그러한 위험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지만, 아주 교묘하게 혹은 위태롭게 피해가고 있는 듯하다. 내부자이면서 외부로의 탈출을 간절히 꿈꾸는 소년의 입을 빌어 슬럼가의 생리를 성실하게 살피며, 그 역사를 섬세한 결까지 놓치지 않고 드러낸 점이 유효했던 것 같다.

 

3.

"문제를 아는 것과 그에 대한 감정이입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 페르난도 메어렐레스 감독의 지론에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말그대로 이는 '첫걸음'일 뿐 부족하고 부족하다. 스타일도 마찬가지. 이것은 아직 여물지 않은 나의 고민.

 

4.

브라질 최대의 슬럼가라는 시티 오브 갓은, 60년대 초반 도시 빈민과 이주자들을 시야에서 없애기 위해 조성한 '계획' 빈민도시라고 한다. 영화에서 보여진 파국보다도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고 한다. 슬퍼졌다. 빼앗긴 자들은 극악한 자들로 변해 갔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은 원색의 삶을 즐기고 있다. 그 누군가의 안위를 위해 인간성마저 저당잡힌 이들은 서로를 죽이며 빈민가의 어두운 골목을 맴돌고 있을 뿐이라니.

 

5.

혁명이 일어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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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태양 / 정재은

'비겁한 게 나빠?'

 

상업영화는 보통 90분에서 120분 사이의 러닝타임을 가진다. 그 중에 뇌리에 와서 콱 박히는 장면은 60분을 넘어야 하나 건질까말까 한다. 그 60분이 지루하지 않은 영화도 있겠으나, 대개는 첫 20분을 넘기지 못 하고 지루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첫 70분 정도를 정말 견디기 어렵다. 연기와 내러티브 모두 어설프므로. 그러나 삐걱거리면서도 인물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구축해 나간다. 그렇게 감독이 밀고 나간대로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팟! 하고 터지는 순간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 덕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백번 넘어지는 친구들에게 바칩니다'라는 한 줄 뒤에 나오는 영화 메이킹이며 스케이터들의 자빠지고 엎어지고 고통을 참느라 말도 못 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짠한 감동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청춘은 그랬다. 책임감을 있는대로 짊어지고서 비틀거리는 축이나 막무가내 자유로운 영혼인 듯 보이는 축이나 같은 방황 속에 헤맸다. 영 시시하게 살고 있는 나나, 화려한 너나, 아직 제 갈 길 못 찾고 비리비리하는 그 애나, 빛나건 그늘 속에 있건 승자가 어딨고 패자가 어딨을까.

 

자신도 없고 고집도 없고 지구력도 없고.

그래서 결국 '비겁한 게 나빠?'라고 시시하게 한 마디 던진다.

그냥 대충 해.. 재미없다..

 

더이상은 '정재은 감독이' 어쩌구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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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도 난다 / 바흐만 고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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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ing amal / lukas moodyson

 

이 귀여운 아이가 왕따라니. 아그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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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 / 테리 길리엄

이동진의 20자평이 딱이다.

"매력적인 모티브. 매력 적은 비주얼. 매력 없는 캐릭터"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건, '타이틀'이었다.

타이틀 시퀀스도 아니고, 그냥 타이틀만.

그림자극의 배경 같은 짙푸른 숲을 헤치고 들어가,

그 끝에 만나는 아름다운 타이포.

 

사랑해 마지않는 길리엄의 그 만화 같은 앵글도 거의 없었고..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하며 힘없이 흩어진 이야기..

성배 시리즈에서의 날선 유머와 해학도,

바론에서처럼 모자란 듯하지만 풍부한 비주얼도,

브라질에서의 묘하게 웃긴 디스토피아적인 비전도,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그래도, 반가웠어요. 조나단 프라이스. 여전하군요.

짧게 나오다 만 진저브레드맨에게 애도를.



힘을 내요, 미스터 길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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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신부 / 팀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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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뤼미에르 / 허우 샤오시엔

 

고혹적인 포스터에 넘어가지 말 것. 그러나 타는 듯한 여름날, 하얗게 빛바랜 그 곳에서,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었던 공허가 마음에 들었다면...... 지루하고 나른해도 음미할 수는 있지. 차라리 내러티브가 이보다 더 없었다면 꽤 좋았을지도.

 

珈琲時光. '마음을 안정시키고 재정비해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온한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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