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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10

 

김현, 『김현문학전집3 - 상상력과 인간/시인을 찾아서』中에서


내공이 쌓이면 문학사를 이와 같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김인환 선생의 현대문학사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탄을 바로 김현의 이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김수영씨에 대해 물었다. 그것은 그가 시작(詩作)에 있어서 그의 의식을 가장 강하게 억압한 사람 중의 하나로 김수영씨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사실 그와 김수영씨의 대립과 갈등이 없었다면 한국시는 아직도 『청록집』수준에서 맴돌고 있었을지 모른다. 김춘수씨의 무의미의 시론과 김수영씨의 새로움 혹은 저항의 시론은 60년대 시단이 거둔 값진 수확이다. 그들은 실제로 김주연의 시론에 촉발되어 서로 격렬하게 싸웠을 뿐만 아니라, 직접 상대방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에도 상대방을 의식하며 제작한 희귀한 예를 이룬다. 그 두 시인이 그처럼 극단화될 수 있었던 것도 서로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춘수씨의 시가 감추려고 한다면, 김수영씨의 시는 벗기려고 한다. 김수영씨가 인용하고 있는 이오네스코의 표현을 빌면, 전자는 감추려고 한다는 사실까지를 감추려고 하며, 후자는 벗기려고 한다는 사실까지를 벗기려 한다. 김춘수씨가 침묵을 지향한다면 김수영씨는 요설(饒舌)을 지향한다.


1960년대 새로운 시적풍토를 열어가려는 시인들이 있었다. 신동엽, 서정주, 김수영, 김춘수. 이들은 전통적인 정서, 정치적 태도, 표현의 방법 등의 기준으로 볼 때 각자의 영역을 충분히 개척해 나간 시인들이었다. 이들의 개척은 자신들의 공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끊임없이 의식한 데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들이 개척한 영토에서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등이 피어난 것이 아닐까? 김현은 이와 같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며,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는 약점을 안고서도 동시대 시인들의 통시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특출난 재주를 보여준다. 특히 인용도 재주라는 생각이 밑줄 친 부분을 보면서 든다. 김수영과 김춘수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줄의 인용구는 주옥같다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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