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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찍 자야지

어제의 오프모임에서 2시에 나와서 집에와서 씻고 자리에 누우니 3시

아침에 알람이 울렸는데도 끄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떳을 뿐인데 40분이 지나있다

지각하는 줄 알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을 챙겨입고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사무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 몰골을 보니

핏발선 눈, 텁수룩한 머리, 깎지 못한 수염, 채 빠지지 않은 담뱃내, 거기다 텁텁한 입의 냄새까지...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의자에 앉아도 뭐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이다

하루 종일 이상한 전화만 걸려오고 오늘 따라 사무실 분위기 최악이다

It never rains but it pours. 제길.

 

술 마신 다음날은 역시 힘들다

그래도 이런 날이 1년에 몇 번은 필요하긴 하지

내가 생물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쟎아

 

오늘은 여기서 끄~읕. 자야지...(-_-)a

근데 어제 막판까지 남아계셨던 많은 분들... 아직 살아계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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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빌게이츠와 스팸?

재미있어서 퍼왔어요. 벌써 많이 지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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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읽기 - 박홍규(2003)

 

* 이 글은 molot님의 [2001년 오늘(9.24) 에드워드 사이드 영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구에 대한 나의 시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량에 눌려 지금껏 먼지만 쌓여 있다.-_-;; 그러던 중 우연히 알라딘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게 됐다.

 

이 책은 2003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박홍규 교수("오리엔탈리즘"의 역자)가 쓴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개론서다. 머릿말에서 그가 밝혔듯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급하게 그에 대해 써놓았던 이전의 글들과 평상시의 자신의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 펴냈고 그것이 하나의 책이 되어 나온 것이다. 

 

박홍규 교수의 말빨(?)탓에 쉽게 읽힐 수 있는 재미있는 개론서 하나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책이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듯 싶고, 앞부분은 내게 조금 어려웠다. 사이드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에 관한 장이었는데, 철학적인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난 추상적인 개념을 별로 안 좋아하거덩-_-;)

 

이 책에는 사이드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던 "서구에 의한 동양개념의 날조", "문화적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론"에 더해 남한에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남한의 번역의 문제와 영어교육, 서구의 기준에 매몰되어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 인문학강단 "에서의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지금껏 영어의 문제나 서구의 여러 이론에 대해서 일종의 컴플렉스를 느껴왔다는 뜻인데,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이분법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내가 느끼던 컴플렉스 또한 사라졌던 것 같다.

 

사족) 이 책속에서 사이드가 자신의 지식인론(지식인의 고향은 세계)을 말하며 인용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드러운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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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박민규

 

직장동료가 읽고서 권해주길래 지하철에서 읽었다. 장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에 가깝다. 그만큼 분량에서 부담이 안되는, 박민규씨의 재치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국중심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슈퍼맨, 배트맨, 로빈, 아쿠아맨 등 만화속의 영웅들을 통해 그려냈다. 그의 첫번째 장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대표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비해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겉은 황인종이지만 머릿속의 관념은 순종백인임을 자처하는 주인공 "바나나맨"의 독백을 통해 소설이 서술되는데, 그의 독백은 의미심장할지는 몰라도 독자를 웃기지는 못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독백이 연상됐다. 그만큼 이 소설의 서술은 담담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가볍지는 않으며, 소설안에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위한 준비도 철저한 것 같고, 일단 하루키보다 재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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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밥먹기

* 이 글은 NeoScrum님의 [밥이라도 맘 편히 먹고 싶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난 혼자서 밥을 잘 먹는 편이다. 같이 먹는 밥도 싫어하지 않는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밥상은 유쾌해서 좋고, 혼자서 먹는 밥상은 조용하고 나른해서 좋다. 하지만 억지로 여러사람들과 어울려서 먹는 밥은 너무 싫다. 특히 직장에서 먹는 점심은 그렇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구내식당이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몰려나가서 먹는데 그렇게 같이 먹으려면 미리 점심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내 책상위에 올려놓은 탁상용 달력에는 칸칸이 "ㅇㅇ랑 점심"이라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 회사에서 점심약속을 잡는 건 일종의 업무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점심약속을 못 잡아 놓았거나 갑자기 점심약속이 펑크가 난 과장들은 내게로 와서 애처롭게(정말로 그때는 애처롭게 보였다) "ㅇㅇ씨 혹시 점심약속 있어?"라고 묻곤 했다. 그때 만약 내가 "없는데요. 같이 드실래요?"라고 말하면 그들의 얼굴은 일순간 환해지면서 "그래~ 내가 점심 사줄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남들과 비교하여 튄다는 건 분명 남한내 직장문화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이고, 자신이 만약 '남들과 다른 인간'으로 찍혔을 때 받을 수도 있는 '상상속의 불이익'이 두려운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무 웃긴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나 자신도 거기에 많이 동화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달력에 수많은 약속들을 적어두고, 저녁때 배가 고파도 괜히 집근처에까지 와서 밥을 사먹는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는 괜히 혼자 밥먹기가 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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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랫만에 일찍 퇴근해서 된장찌개를 끓여먹었다. 혼자서 TV를 보면서 찌개에 방금 한 따뜻한 밥에 후식으로 귤하나까지... 먹을 때는 뱃속이 아늑하고, 먹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랫만이다. 어디서 혼자 밥을 먹더라도 제발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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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China - 데이비드 레드몬

* 이 글은 트랙팩03-노동영화제에 관련된 글입니다.

 

오늘 오후에 가서 본 3개의 영화중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였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 축제에 사용되는 저가 구슬목걸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추적함으로써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을 폭로한 다큐였다.

 

문제의 구슬목걸이의 생산지는 중국 푸저우. 시간당 10센트의 임금을 받는 중국의 10대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통해 만들어지는 목걸이는, 1세계 사람들의 일회용 즐김(?)을 위해 사용되고 하룻밤만에 쓰레기가되어 길거리에 나뒹군다. 구슬을 사는 미국인들은 그 구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흘러들어오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설사 알게 된다고 한들 "그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는 체념내지는 "어떻게 그런 일이..."라는 즉흥적 분노로 그칠 뿐이다.

 

언젠가 미국 월마트에 의류를 납품한다는 한국업체의 수출신용장을 본 적이 있다. 원자재는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동한 뒤 현지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공되어 완제품이 바로 미국으로 수출된다. 그런데 웃긴 것은 신용장의 기타조항에 "제품의 생산에 아동노동이 이용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첨부할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그 증명서를 누가 발급하는줄 아는가? 바로 그 한국업체의 사장이 발급하게 되어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한다라는 건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 같다. 내게는 신용장의 그 증명서조항이 가진 자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으로 다가왔다.

 

비록 짧긴 하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걸 하다보니 학생시절 책으로만 읽었던 내용이 현실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걸 목격할 때가 많다. 특히 금융업종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현재의 많은 법적, 경제적 제도들이 착취를 합법적으로 제도화시키고 은폐시키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생계를 걱정하면서 뼈빠지게 일을 해야만 하는가? 왜 나는 점심시간에 주방일을 하기 위해 식당 전단지를 들고 식당의 위치를 묻는 삶에 찌들고 환갑이 넘은 아주머니들을 종로바닥에서 만나게 되는가? 이 세상은 서민들로 하여금 돈을 빌려쓸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유지시키면서 "돈을 빌렸으면 이자와 원금을 내야한다"는 원칙만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력이 있는 법이다. 오늘 영화에서도 목걸이제조업체 사장은 "우리는 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반복해서 외쳐댔다. 그는 법을 지켰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착취를 당하는걸까? 

 

이 세상의 누군가가 자신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며 살아간다는 건 죄악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죄악으로 생각지 못하게끔 생산과 소비과정을 철저히 파편화, 분절화시켜버렸다. 그러는 사이 자본의 세계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시작부분 마디그라축제용 목걸이가 지구를 묶고 있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지금, 영화 속의 미국인들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이미 많은부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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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월터 살레스(2004)

 

노동자대회 가기 전에 광화문에서 봤다. 조조인데도 사람들이 꽤 되더라. 역시 '게바라'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상업적인 아이콘(?)'이다. (몇년전 체게바라평전을 읽은 어떤 친구놈은 내게 게바라처럼 꿈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잘 나가는 자본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_-;;) 씁쓸하긴 하지만 뭐 어쩌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건 게바라의 일대기를 영화로 본다는 기대감,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화면 가득히 담긴 남미의 아름다운 풍광들이었다. 게바라역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확실히 연기력 하나는 출중한 배우다.

 

영화의 시작과 말미에 이 영화가 위대한 혁명가의 일대기가 아니라 단지 길을 함께 걸었던 두 인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영화는 평범한 인간 게바라가 여행을 통해 남미의 현실에 눈떠가고 변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조금 나기도 했는데, 게바라가 변화해가는 과정이 너무 도식적으로 처리된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든 전체적인 느낌은 그저 그렇다는 거다. 나 역시 놀랍다. 게바라의 영화를 보고 어찌 기분이 이렇게 맹숭맹숭할 수가 있단 말인가! 역시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체게바라 평전을 읽어본 후 언젠가 다시 한번 영화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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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지금 내가 사는 집으로 작년 11월에 이사를 왔다. 전엔 왕십리에 살았는데 대문을 나서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청계천 똥물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청계천 건너편 저쪽에는 지하철 용답차량기지가 보였다. 동네 자체가 좀 우울한만큼 편리한 교통에도 집값은 쌌다. 그러던 어느날 그노무 명박이가 청계천변 개발을 시작하자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그 덕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거다. 망할노무 명바기...

 

처음에 이 집으로 이사올 때는 몰랐는데, 이집은 주변건물들에 비해 지은지가 오래되서 우풍도 세고 난방비도 많이 든다. 그래서 보일러를 잘 안 틀게 되는데, 겨울에는 아래 위로 체육복을 입고 자야한다. 지난 겨울에는 양말도 신고 잤는데, 지금은 11월초라 아직 양말은 안 신고 자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추워진다는데 큰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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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 리처드 링클레이터(2004)

* 이 글은 시와님의 [다시 만난 셀린느와 제시]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하다가 이번 주말에 가서 봤다. 9년전에 보았던 "비포 선라이즈"는 대강의 줄거리만 기억이 나는데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다 까먹었다. 그렇다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분명 아니고...

 

연인들의 9년후의 만남이라는 소재는 적잖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자그만치 9년전 헤어졌던 사람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고 또 나와 보냈던 시간을 글로 썼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은 항상 기분좋은 일일 것이다.

 

영화 속의 쥴리 델피는 그 나이에도 참 아름답다. 오히려 9년전의 모습보다 훠~얼씬 매력적이었다. 약간 마른듯한 얼굴에 눈가의 주름이 특히나...  에단 호크도 전보다 훨 낫다. 9년전 내게 거부감이 들게하던 느끼한 후까시도 많이 죽은 듯하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답게 저마다 생활속에서 느끼는 여러 고민들에 대한 대화도 간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겐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사랑의 찬란함"보다 비포 선셋에서의 "사랑과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가정있는 유부남인 제시는 만남 초반부터 셀린느에게 다가가려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는 달리 셀린느는 나름대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이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있으되 그것을 섣불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30대초반의 미혼여성과 "내 결혼생활은 불행해"라고 말하며 옛사랑에게 "사랑해 줘, 사랑해 줘"라고 징징대는 30대초반의 남성이라... rivermi님 말대로 이것이 나이를 먹어 좀더 유들유들해진 남성의 모습인가? 흠흠

 

영화의 중반이후 셀린느의 감정상태의 변화 등등을 감안하면 제시가 비행기를 안 탔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난 제시가 비행기를 탔으면 싶다. 아마도 난 일상이 된 사랑을 두려워하는 갑다. 사랑이란 천상의 것인게야... -_-a

 

사족1)영화속에서 셀린느의 직업은 환경관련단체의 상근자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은 그리 궁핍해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 여름같아 보이는 화창한 날씨, 그리고 내가 서유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빈곤하고 고단한 삶까지도 여유있고 풍요로운 삶처럼 보이게 만들었을까? 만약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면 여주인공의 직업을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번쯤 유럽에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돈 모아서 한 20년 뒤에. 크크크

 

사족2)자동차 안에서 이루어지던 셀린느가 제시에게 말하며 울먹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빌어먹을 남자들이 다 나랑 헤어진 다음에 결혼한다며 찾아와서는 고맙다고 해. 내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이야." 그거 보고 너무 웃겨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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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사던 사람들...

* 이 글은 푸른 솔님의 [신념과 로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푸른 솔 님처럼 나도 복권을 사지 않는다. 그렇다고 푸른 솔님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복권을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쪽팔림을 느낀달까 어색하달까 암튼 그런 감정을 느끼긴 한다. 그래서 지금껏 한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로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사무실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인생역전"이라는 카피는 내 생각에도 정말 기발했다. 인생역전이라... 그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냔 말이다. 옆 팀의 팀장은 한번에 30만원씩 로또에 때려박았다. 그래서 건진 건 달랑 2만원. 그나마도 다시 로또 사는데 들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로또에 대한 사람들의 열기가 차츰 가라앉던 어느 날이었을 거다. 작년 늦가을 정도의 을씨년스러운 토요일이었는데, 그날은 일이 많이 몰려 혼자 사무실에 나와야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혼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커피나 한 잔 먹자 싶어 근처의 테이크아웃 커피가게에서 커피를 한 잔 시키는데, 왠지 허름한 옷차림을 한 아주머니와 남자아이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때 불쑥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2천원을 주며 로또기계를 가리킨다.(그 테이크아웃 커피가게는 로또복권도 팔았다) 근데 아이의 몸짓이나 표정이 왠지 어색하다. 아마도 아이는 자폐나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2천원을 내고 무사히 로또를 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엄마의 품에 뛰어가서 안긴다. 그런데 아뿔싸... 로또 영수증을 안 받았다. 다시 엄마는 영수증을 받아오라며 손가락으로 가만히 가리킨다. 아이는 달려가서 영수증을 받아왔고, 엄마는 대견스러운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그 아이는 엄마의 손에 매달려 쌀쌀한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던 거리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땐, 그 두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그날 저녁 이루어질 로또추첨에서 꼭 당첨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것도 간절히...

 

그 때가 작년 이맘 때여서 그랬는지, 푸른 솔 님의 글 때문이었는지, 오늘 갑자기 그 날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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