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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하다가

어제 퇴근하는데 "국보법폐지를 위한 단식농성*일째"라고 붙인 일군의 사람들이 주욱 서있다.

아마도 광화문에서 국보법폐지를 위한 집회가 있나보다.

단식1일째라고 써붙인 분들도 눈이 퀭한게 보기에 안쓰럽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짠하다.

국회에서는 어찌 되어가고 있는것인지. 어제 뉴스듣기로는 김원기가 단독처리 안 할 거라고 그러던데. 흠...

어제 내가 한 일이라곤 퇴근하다가 찌라시 돌리는 분한테 가서 "저도 한장만 주세요"라고 말한 것 밖에 없다. 속으로 '이러고도 국보법이 폐지될 것 같냐?'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뜨끔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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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의 테이프를 끊다.

드디어 어제 송년회의 테이프를 끊다.

회사사람들이랑 밥먹고 영화<오페라의 유령>을 보다.

늦게 들어가서 아무자리에나 앉았는데 내 몸에서 나는 삼겹살과 소주냄새로 옆 사람에게 상당히 미안해하다.

역시 오페라는 내용은 없으되 볼거리는 좀 있다.

영화보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재미없는 영화 때문에 열받은 아저씨들이 3차를 주도하다.

퍼마시고 2시에 들어가다.

내일저녁 또 출동해얄텐데 벌써 송년회에 지치다.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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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을 쓰다

연말을 맞아 회사에서 공짜 연하장을 5장 받았다.

5장을 누구누구에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겨우 5명을 정하고 내가 그들의 주소를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아무도 모른다. -_-; 핸드폰으로 전화만 걸면 바로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연하장은 너무 촌스러운 매체이긴하다.

 

그래도 연하장은 보내야겠기에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그랬더니 오는 답문자는 "안기부에 꼬바를라고 하냐? 왜 주소묻고 X랄이야"다. 이런... 내가 친구들 중에서 가장 덜 팍팍하게 사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다른 인간들이 이토록 긍정적이지 못한 生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절감~! 그래도 다들 문자를 다시보내서 주소를 알려준다. 그리고 끝에 "카드 보낼라 그러냐?"라고 묻는다. 눈치하난 빠르셔~들...

 

올 한 해도 다 갔다. 내일은 본부송년회다. 제발 깨끗하게 끝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통과해야할 송년회 지뢰밭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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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2002.11)

 

난 최장집 교수를 잘 모른다. 김대중 정부때 자문위원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조선일보 이한우를 비롯한 수구세력의 색깔논쟁으로 입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러던 중 알라딘에서 우연히 김명인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읽고 사 두었던 책을 최근에야 한번 훑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주제는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한국민주주의는 왜 오히려 보수화, 퇴화하였는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짚은 뒤 나아가야 할 추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싶더라. 정치학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쉽게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치한 이론적 틀로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옆에 두고서 다시 한번 읽어본 후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그렇기에 이곳에 내용만 대충 메모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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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이후 왜 한국정치는 보수화, 퇴하하였는가

 

1.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제도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이 제한되었다

2.한국야당 성립의 역사적 과정 - 명사정당, 정치계급형성, 가장 보수적인 정치 엘리트그룹

3.권위주의적 산업화과정의 문제(과잉성장국가)

4.운동이 제도정치화되지 못했던 점(구체제를 해체한 힘과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가져온 힘의 괴리, 민주화 = 운동에 의한 민주화 + 협약(pact)에 의한 민주화)

 

민주화가 보수적으로 종결된 이유 p.115

1.냉전반공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의 강력함

2."2단계 민주화"라고 부르는 이행의 방법

3.제도권의 야당과 운동이 서로 분리되고 약했다는 것

 

3과 관련하여, p.119

 

"그러나 운동의 약함이 한국민주주의의 구조적 제약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된 것으로, 무엇보다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이 어떤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고 이를 공유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운동권이 지녔던 이념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급진적 민족주의처럼 도식적이고, 낭만적이고, 교리적이고, 비경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강력한 군부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그들은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이론에서 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려 했다. 운동권의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선거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선거불참여주의(abstentionism)적 경향 또는 선거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내에서의 분파주의를 강화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현실을 경험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낳았으며,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화에 장애요인이 되어 기존의 보수적 정당들과는 다른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해 운동권의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의 강함의 반영이 아니라 약함의 반영이었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의 국가가 보여 주는 가장 큰 특징은 '무력한 국가'라는 것이다.p.130

 

현대 한국정치의 주요 문제점 p.125

1.정치(무능한 국가, 무능한 관료제, 대중적 기반이 없는 야당 etc)

2.경제(고도의 집중과 불평등을 초래)

3.세계화(97년 이후 IMF등 세계화의 문제)

4.시민사회의 문제

 

최장집 교수는 너무 온건한가...?
이렇게 써놓으니 정리된 게 아무것도 없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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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악마들 - 피터 홉커크(1984)

 

이 책의 부제는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지역(현재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19세기말~20세기초까지의 탐험가들의 기록을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다.

 

실크로드의 중심루트인 투르키스탄 지역은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구소련령 서투르키스탄과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그리고 옛날의 대상들에게는 타클라마칸을 통과해야하는 중국령 동투르키스탄 지역은 生과死를 가르는 공포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하늘에 닿을 듯한 천산, 곤륜, 캐라코람,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으로 둘러싸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죽음의 불모지, 타클라마칸사막(원주민어로 들어가면 못나온다는 뜻이란다)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가 둔황에서부터 천산남로, 북로로 갈라졌다가 카쉬가르(현재는 카스)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바로 이 타클라마칸사막 때문이다.

 

서구의 입장에서 19세기말은 고고학적 발견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스, 이집트를 포함한 중근동, 캄보디아, 중국에서 엄청난 고고학적 발견이 있을 때마다 서구는 열광했다. 그것은 그들의 근대적 합리성의 승리였던 것이고, 제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수단이기도 했으며, 식민건설을 위한 필수코스이기도 했다. 19세기 서구제국주의 국가들은 탐험가와 선교사를 먼저 보내고, 다음에 군인과 상인들을 보내면서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지 않았던가.

 

이 책의 악마(Red Devils)들은 바로 그 시기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을 탐험했던 탐험가들을 중국의 입장에서 부른 말이다. 실크로드는 동서문화교류의 동맥으로서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이 잠자고 있기도 했고, 사막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유물보존에 있어 천혜의 조건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열악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19세기까지 서구인들에게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땅이기도 했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서구인으로서는 최초로 이곳을 탐험하여 유물을 약탈해간 이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미국의 랭던 워너 등이 들어와 유적을 닥치는대로 싹쓸이해갔다. 심지어 그들은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마저 벽째로 뜯어갔고, 돈황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고문서들을 푼돈을 쥐어주고서 "신사적으로 사갔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저자인 피터 홉커크는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물론 과정에서 잘못은 있었으나,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당시에 과학적 고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던 동양의 한계에서 서구의 어르신들이 나서서 그들의 역사를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나, 당시 탐험가들의 고고학적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다시 읽다가 괜히 배가 살살 아프더라.

 

하지만 이 책은 실크로드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꽤 훌륭한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실크로드가 동서문화의 교류,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데 방점이 찍히기 보다는 "대륙정벌", "만주진출", "고구려..."등의 쇼비니즘적 주장의 근거로 인용되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간조선 조갑제의 아이디가 mongol 이라지 아마?

 

사족)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도 실크로드관련 유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가 약탈한 유물의 30% 정도가 남한의 광업권획득을 위한 대가(?)로 조선총독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오타니콜렉션"은 일반에 공개는 되지 않고 박물관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남한도 제국주의 국가의 유산을 물려받은거다. ㅎㅎㅎ

 

* 읽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면 덧글로 남겨주세요.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위의 설명대로 독일의 폰 르콕 3차탐험대의 모습이다. 현지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그 뒤로 독일인들이 거만하게 서 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맨 앞줄의 노동자들 중 양쪽의 노인2명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비해, 중간의 어린 아이는 눈의 흰자위를 보이며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어 흥미롭다.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의 강추위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한다. 아마 이때도 겨울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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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의 행방불명 - 신재인(2004)

 

 

<엄마>를 본 후에 "여기까지 왔는데 프로그램 하나만 보고 가기는 아쉽다"는 생각에 봤다. <엄마>를 본 후 바로 이어서 했거든. 보고나서 내 생애 한 선택중 두번째로 잘한 선택같아 가슴이 뿌듯뿌듯(첫번째 선택은 비밀~) 한마디로 너무 잘 만들었다.

 

기발한 상상력, 중간중간 박혀있는 블랙유머, 보고 난 후 드는 의미심장함, 원장역을 맡은 예수정씨의 출중한 연기... 캬~~

 

영화의 공간은 황량한 시골에 위치한 고아원 <천사의 집>. 아이들에게 주는 밥값마저 착복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고아원 원장은 아이들에게 식욕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종교로 세뇌를 시켜버리고, 때문에 아이들은 쵸코파이 하나, 우유하나를 먹더라도 냄새나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주기도문을 외우고서야 먹는다.

 

이곳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고, 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구역질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원장과 수위는 기도실에 들어가 아이들 몰래 맛나게 밥을 먹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맛난 걸 먹이고 좋은 옷을 입혀 좋은 학교를 보낸다.

 

그러던 와중에 주인공인 고아 신성일은 아무리 먹지 않으려 해도 살이 찌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자발적인 금식에 들어가고, 원장은 이것을 아이들의 세뇌에 다시 이용한다. 한편, 신성일의 친구 김갑수를 비롯한 몇몇의 아이들(조직명:레드썬)이 원장의 착취에 대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어차피 인간은 욕망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욕망을 하나씩 충족시켜가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지구를 몇개씩 파괴할만큼 무한한 인간의 욕망이 무조건 충족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착취구조를 은폐하기 위해 일반인들을 종교나 교육을 통해 세뇌시킨다는 건 누가보더라도 때려죽일만한 행위다. 이 영화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참칭한 원장은 자신의 비열한 지배를 종교를 통해 교묘하게 위장한다.

 

이런 세뇌의 힘은 너무나도 커서 아이들은 쉽게 "레드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더군다나 원장에게 계속해서 자발적인 복종(음식먹는 벌칙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구역질을 한다)을 하기까지 한다. 한편, 우리의 주인공 신성일... 아이들이 봉기한 고아원에서 도망을 쳐 바깥세상에 나오지만, 원장의 충실한 신하인 신성일은 부끄러움도 없이 버젓이 음식을 먹는 바깥세상의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순교직전까지 간다. (이 장면에서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알 수가 없더라. 물론 나는 엄청 웃었지만...-_-;)

 

중간에 원장에 반하는 "레드썬"조직이 아이들을 봉기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우리의 "레드썬"은 너무나 어설프게 그려진다. 그들이 아이들을 선동하는 방식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지며, 아이들의 손에 몽둥이와 작대기를 쥐어주며 뛰어나가게 하지만 정작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레드썬"의 결말은 신성일의 환상(억지로 박재에 밥을 먹이는 행동, 계속해서 밥만 먹다가 배가 터져 죽는 아이들)을 통해 그려진다. 아마도 감독은 우리 현실세계의 운동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개개 욕망과 자유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운동의 한계는 자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에구구. 너무 나가부렀다.-_-;;)

 

신재인 감독은 <잊혀진 아이들>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1편이 <신성일의 행방불명>이었고, 2편 <김갑수의...>, 3편 <심은하의...>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재정적인 지원이 되어서 시리즈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사족 : 이영화에는 신성일, 김갑수, 이영애, 심은하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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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영화 잘 보았습니다.

* 이 글은 알엠님의 [죄송합니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용산 스페이스9에 시간에 맞춰 가긴 갔는데, 알엠님이 말씀하신 배트맨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닌 요상한 물풍선을 못 찾기도 했고, 용산 CGV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리둥절해서 헤매고 있는데 앞을 보니 어느 틈엔가 슈아님이 서계시더군요. 너무 반가웠어요. 슈아님이 "<엄마>보러 왔어요? <계속된다>보러왔어요?"라고 웃으면서 물으시는데, <계속된다>는 다음에 보는 수 밖에 없어서 애매하게 얼버무렸답니다... 에공 아쉬워라...-_-;;

 

나중에 오신 알엠님한테 너무나도 감사히 초대장을 받고 들어가서 <엄마>와 <이주노동자프로젝트-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동시상영을 보았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영화 보러 들어가기 전 <엄마>의 주인공인 감독님 어머니를 뵈었는데, 막상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기분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데요. 저라면 아마도 민망해서 못 볼 것 같아요.

 

<엄마>를 보면서 새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아이를 키우는 일을 포함해서-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어째 저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한테 애정과 관심을 주는 일에 서툰 것 같아요. 어릴 적 부모님한테 애정을 못 받고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암튼 공짜표까지 주시면서 좋은 영화 볼 기회를 주신 알엠님, 슈아님 모두 감사드려요. 꾸벅(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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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추워졌지만...

이번주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월요일부터 장롱속에 걸어두었던 모직코트도 꺼내어 입고 출근을 한다.

 

내방은 여전히 싸늘하다. 집에 있는 보일러가 오래 되어서 그런겐지 아니면 형의 말대로 방바닥에 있는 수도관 속에 관석이라는 것이 끼었기 때문인지 보일러를 틀어놓아도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는다. 방바닥에 앉으면 방구들이 "나 좀 녹여주~~"하고 앉았다. 흐미 징한거...-_-;;

 

하지만 잠을 잘 때는 내게도 비장의 무기가 생겼다. 이름하야 "전기요"

예전에 시골집에 있던 무거운 전기장판과 달리 요놈은 가볍기도 하려니와 코드만 꽂으면 바로 따뜻해져서 좋다. 물로 세탁도 가능하댄다. 전기요 틀어두고 두터운 솜이불 덥고 그 속에서 발가락 꼼지락거리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말 그대로 요즘엔 '3만원의 행복'속에서 잠이 든다.

 

전기세가 걱정이기는 한데 설마 가스요금보다 더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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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제너레이션 - 노동석(2004)

 

<참고> 노동석감독 인터뷰기사 : http://blog.naver.com/pssora21/100008008948

 

이 영화보고 나서 들었던 감정은 정말 깝깝하다는 거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저 이시대의 갑갑함만이 느껴졌다.

 

병석은 갈비집에서 숯불피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끔씩 결혼식 비디오를 찍지만 자신이 찍은 필름은 악평을 듣고, 형이 꾼 돈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혼쭐이 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위안이 있다면 그의 여자친구 재경과 큰 돈을 들여 장만한 카메라다.

 

재경은 병석보다 더 우울하게 생겼다. 얼굴이 우울하다고 하루만에 직장에서 짤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돈을 벌어보겠다며 인터넷쇼핑몰에서 물건을 팔아보려하지만, 남은 건 카드빚뿐이다. 어쩔 수 없이 빚을 갚기 위해 재경은 카드깡을 하게 된다.

 

영화속 주인공들의 갑갑한 삶처럼 영화의 전체화면도 흑백톤으로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 병석이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볼 때만은 화면이 총천연색이다. 병석은 그의 미래와 꿈과 욕망을 카메라를 통해서 확인하고 바라본다. 하지만 그 카메라도 이젠 그의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사채업자의 사무실과 재경이 카드깡을 하는 생경한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묘사된다는 거다. 오히려 그 장면들이 코믹해서 웃음이 피식 나올 정도다. 오늘날 빚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연장해 나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만 같다.

 

사족)난 영화배우중에 반데라스처럼 튀는 배우도 좋지만, 특히 진중하고 분위기있는 남자배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 3명만 꼽으라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얼', 드라마<나는 달린다>의 '김강우' 그리고 이 영화속의 '김병석'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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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en - 아모스 지타이(2001)

오늘밤 EBS 세계의 명화에서 보았다.

 

영화의 배경은 1940년대의 팔레스타인.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온다. 주인공 사만다와 그녀의 남편 도브(건축가)는 시오니즘과 맑시즘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약속의 땅(Eden)'에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희망을 품고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그의 오빠는 돈만 아는 속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대박을 꿈꾸며 미국과 팔레스타인을 오간다. 또한 서점주인 칼코프스키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홀홀단신으로 이곳에 온 불법이민자로 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날을 꿈꾸는 그야말로 이상주의자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팔레스타인에 들어오지만 현실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지리한 전쟁은 계속되며, 칼코프스키가 보내는 편지와 서류는 다시 반송되어 서점 한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는 영국은 불법이민자들을 체포하여 추방하는가 하면, 제국주의국가들의 지배에 맞서 폭탄테러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시건설에 몰두하며 사만다에 관심조차 주지 않던 남편은 독일에서 벌어지는 유태인학살소식과 불법이주유태인에 대한 입대명령으로 영국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남편의 부재중에 사만다는 칼코프스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발견하고 관계를 갖는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남편은 많은 것이 변해있다. 자신이 강간한 여성에 대해 키득거리면서 말하고 "파시스트니까"라며 자신을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이에 혐오감을 느낀 사만다는 남편을 떠나 칼코프스키에게 가지만 현실(독일의 가족들의 죽음, 격해지는 팔레스타인과 유태인의 대립 등)에 절망한 칼코프스키는 그의 서점에서 자살해 버리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40년대의 거리를 걸어오던 무표정한 사만다가 코너를 돌자 현재의 텔아비브 거리가 나타난다. 저마다의 이상향을 찾아왔던 사람들 중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돈만 아는 속물인 오빠와, 파시스트가 되어버린 그녀의 남편 도브, 그리고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을 무표정하게 지나쳐가는 사만다가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데 이 감독은 이런 영화 만들고 이스라엘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록 영화의 시선이 담담하게 처리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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