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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그리고 ...... - 60나노급 플래시 메모리 개발의 의미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그리고 ......

- 60나노급 플래시 메모리 개발의 의미


추석 전 9월 20일, 신문사 방송국할 것 없이 모든 언론사들이 일제히 '삼성 전자가 60 나노 기술을 적용한 8기가 비트 낸드(NAND)형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를 개발했'음을 보도하였다. 또 이 기술은 '무어의 법칙'을 능가하는 성과라고 한다. 휴대폰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무노조의 신화를 위해 노동탄압을 일삼는 삼성에서 해마다 첨단기술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의 이러한 면을 두고 노동탄압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도 한고, 또 일부에서는 무노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가 가능하다고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번 삼성의 성과에 대한 '속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듯하다.

 

우선, 상식부터

60 나노기술에서 '나노'란 '니나노'가 아니라, ‘나노미터‘를 줄인 말로 길이의 단위이다. 1 미터가 100 센티미터이듯, 나노미터로 환산하면 10억 나노미터가 된다. 즉 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로, 대략 머리카락 지름의 8만분의 1 정도 되는 길이다. 물론 눈으로 볼 수 없고 고급의 특수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아주 미세한 길이이다. 그러므로 60 나노기술이란 단순히 60 나노미터 폭을 갖는 미세한 전기 도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또 플래시 메모리란 디지털 사진기나 캠코더 등에 흔히 사용되는 정보 저장장치로 반도체로 만들어진 휴대형 하드 디스크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종류로는 낸드(NAND)형과 노어(NOR) 형이 있는데, 낸드형은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노어형은 정보저장량은 적지만 속도가 빠르다. 이번에 개발된 8 기가(Giga)비트 플래시 메모리 칩으로는 16 기가 바이트 메모리 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용량은 대략 MP3 파일 기준으로 340시간 분량(4000여곡)을 저장할 수 있는 양이다.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

지난 30 여 년간 반도체 칩의 개발 속도는 무어의 법칙과 아주 잘 맞았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한 것으로,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지만,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반도체 부품의 크기를 줄이는 기술인데, 반도체 부품의 크기를 작게 하면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고 반도체 칩의 크기도 작아져 단가를 낮출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 발표한 기술은 이 무어의 법칙을 능가하여 (1 년 6 개월이 아닌) 1년에 2배씩 집적도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2001년 업계 최초로 반도체 제조공정에 100나노기술을 적용한 1기가 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이어 2002년 90 나노급의 2 기가 메모리를 발표해 무어의 법칙을 능가한 바 있다. 이에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2002 년 세계 3대 반도체학회 중 하나인 ISSCC(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 Conference)에서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집적도는 1 년에 2 배씩 증가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이른바 ‘Non-PC’ 분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황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황의 법칙이 발표된 후 '희한하게도' 이 법칙에 따라 2003년 70 나노급의 4기가에 이어 2004년에 60 나노급의 8기가 플래시메모리를 실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자본의 경쟁

올해 플래시메모리의 세계시장 규모는 107 억 달러 정도이고, 내년에는 175 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에는 미국의 인텔,  일본의 도시바, 한국의 삼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미 삼성보다 앞서 도시바와 인텔은 각각 지난 6월과 9월초에 65나노급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뒤이어 삼성이 9월말에 60나노, 정확하게는 63나노급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처럼 이 분야에서 경쟁은 불과 몇 달 차이로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별 자본가가 기술개발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 이 상품의 개별 가치는 사회적인 가치보다 낮아지게 되어 더 많은 이익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특별잉여가치'라고 한다. 이는 자본의 투자를 통해 얻는 이익이 아니라 기술개발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만 잉여 노동시간을 연장시킨 결과로 얻어진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보편적으로 확대되어 너도 나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특별잉여가치는 자동적으로 소멸하는데, 이것이 자본가가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통해 초과이윤을 얻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특별잉여가치가 자동적으로 소멸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짧은 기간은 자본의 기술개발 경쟁을 매우 치열하게 한다.

예를 들어 1 기가급 메모리 카드가 현재 10 만원 대인 반면 내년 말쯤에 본격 생산될 것으로 16 기가급 메모리카드는 같은 크기(Size)를 가지면서도 가격이 수백만 원을 웃돌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제품을 먼저 내놓아 초기시장을 선점하고 생산량 향상에 따른 원가 경쟁력의 확보를 위해 ´나노 기술´ 적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플래시메모리로 경쟁하고 있는 3사의 경우 반도체 기술이나 반도체 장치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다. 그러므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느 회사가 더 과학기술 노동자들의 (절대적 혹은 상대적) 노동강도를 강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이 잘 맞는 이유

일반적으로 과학기술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는 노동의 시간을 통해 평가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 시간 관리 이외에 다양한 노동자 관리기법이 적용하고 있다. 우선 인금관계를 개별화하여 팀간 혹은 개인간 사이의 경쟁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 방식에는 개인별로 업무성과의 목표를 정해 주는 것, 개인별로 인사고과를 하는 것, 상시적으로 인사고과를 하는 것, 개인별로 차등 임금인상하거나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상여금을 수여하는 것, 그리고 개인별로 경력을 관리하는 것 등이 있다. 또 책임감을 강하게 심어주는 전략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반미, 반일 등 민족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연구기획, 개발 단계 등 다양한 경영 참여를 통해 마치 사업주가 된 것처럼 무한책임을 부여해 자율적인 자기-착취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성에 입각한 복종' 기법 같은 것인데, 책임지는 직위에 있는 간부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작업 속에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초과 투입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또 매우 시급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일하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제반 [인간적인] 기준 내지 규준들과 집단적인 연대를 약화시키거나 절멸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 과학기술 노동의 특성상 시간을 많이 준다고, 또 노동자의 헌신을 이끌어 낸다고 해도 자본이 원하는 시기에 재품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이성에 입각한 복종’과 함께 더 강력한 '강압적 복종 방식'을 병행한다. 강압적 복종 방식이란 무조건 개발 시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 내에 개발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고전적인 방식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고전적으로 납기를 맞추어야 하는 노동의 경우 노동시간에 따라 생산량 증가가 예측 가능하므로 과학적인(인간적인?) 관리(착취)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 개발 노동은 그 개발 기간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은 개발 기간 외에는 아무런 관리 기준 없다는 뜻으로 한마디로 ‘무조건 이 기간 내에 개발하라’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지난 30년 동안 귀신 같이 맞았던 비밀은 자본가들이 그 법칙이 맞게 과학기술 노동자들을 강도 높게 착취했기 때문이지, 자본가들의 뛰어난 미래 예측 능력 때문이 아니다.

반도체 칩이 극도로 더욱더 미세해짐에 따라 그만큼 설계도 어렵고 생산 공정단가도 올라가고 있다. 이제 이 기술은 극한까지 와서 45 나노이하의 공정에서는 황의 법칙(혹은 무어의 법칙)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공정 단가가 상승하면 할수록 자본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개발기간을 더욱 단축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상황이 격해질수록 과학기술자들의 노동 강도는 2배, 3배 더 증가될 것이다.


 

인텔과 삼성의 공통점

인텔의 공동창업자 무어 회장은 무어의 법칙을 발표하였고, 삼성의 사장은 황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인텔과 삼성의 공통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어와 공동으로 인텔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는 “무노조는 우리 회사를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노조가 있는 회사의 규칙을 우리 회사에 적용한다면 회사는 곧 망할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무노조는 경영의 제일 원칙이다. 운영하는데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국가를 위한 큰 희망은 우리 경제를 마비시키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깊고 깊은 분열을 피하는 길이다”라고 강변하고 다녔다고 한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의 무노조 신념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삼성의 황사장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윌리엄 샤클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윌리엄 샤클리는 인텔의 노이스와 함께 실리콘 벨리에서 노동자 탄압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다(**).



(*) '신자유주의의 본질', 피에르 부르디외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3월호

    http://copyle.jinbo.net/archives/bourdieu.htm

(**) 'Organizing Silicon Valley's High Tech Workers', David Bacon

    http://dbacon.igc.org/Unions/04hitec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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