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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일부 보충해서 [현장에서 미래를]에 제출한 것입니다. 암튼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조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고민의 핵심은 종교적 우파의 논리와 기술주의적 논리의 함정을 견지하면서 그들의 옳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장을 다급하게 정리하느라 빈틈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읽어 보시면 많은 의견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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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저항 주체를 중심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Ver1.1)


김영식 / 한노정연 연구원, 과학기술자

한 차례 황우석 교수의 과학 파노라마가 노랗게 지나간 자리에, 언론은 황 교수가 ‘자발적 기증’을 받았다는 난자 이야기로 다시 물들이고 있다.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 기증'이라는 황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그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매매한 난자였고 심지어 같은 팀 연구원의 난자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1월23일에는 한 국회의원에 의해 우리나라에 만연된 난자매매 사례들이 발표되었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2곳에 개설된 7곳의 카페에서 난자 매매 의뢰 152건, 구입 의뢰 26건 등 179건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역시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난자 매매뿐 아니라 과거 씨받이를 연상케 하는 대리모 문제도 밝혀졌다. 현재 난자를 거래하거나 대리모를 구하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는 1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이트 당 회원이 2000∼3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거래 희망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임신-출산 기술(reproductive technology)

문제가 되고 있는 난자매매와 대리모는 불임부부를 위한 인공수정(체내 수정)이나 체외수정에 이용된다. 18세기 말부터 적용된 인공수정((IUI)는 자궁경부의 점액이 비정상적이거나 정자의 수가 다소 적은 경우 시행하는 방법인데, 배란기에 정자를 채취하여 여성의 자궁 내에 이를 넣어 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체외수정 및 배아이식(IVF-ET)이 있는데, 여성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킨 후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 기술로 나팔관이 폐쇄된 여성은 물론 난소가 없는 여성, 폐경기가 지난 여성도 아이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의 형태로 시작되다가 188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리모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발전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여성 난자의 또 다른 사용처는 배아 복제기술이다. 배아 복제 기술에는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가 있다. 생식세포는 말 그대로 정자와 난자를 이용해서 복제하는 방법이고 체세포 복제는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서 복제하는 방법이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의 난자를 필요로 한다. 생식세포 복제는 1983년 복제생쥐 이후에 양(1986), 소(1987), 토끼(1988), 돼지(1989), 쥐(1993), 염소(1997)로 이어졌고 체세포 복제는 유명한 복제양 돌리(1997)로 부터 시작해서 소(1998), 쥐(1998), 염소(1999), 돼지(2001), 고양이(2002) 등으로 이어졌다.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역시 최초(2003년 2월. 논문 발표는 2004년 2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인간복제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고, 복제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그러자, 배아 복제 연구가 활로를 찾은 것(응용분야)이 치료를 목적으로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난자매매와 대리모

한국의 경우 난자 매매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금전 거래가 아닌 난자기증은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불임 환자가 난자 제공 여성을 스스로 데려오는 것이 가능하다. 단 ‘인간 수정 및 발생 기구(HFEA)’에 등록을 해야 한다. HFEA는 최근 자문을 하면서 정자 기증은 한 번에 50 파운드, 난자는 최고 1천 파운드 정도를 적정 보상비로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도 난자를 제공한 여성에게 돈을 주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통상 난자 수혜자가 제공자에게 2500달러에서 1만5000달러를 지급한다. 난자 제공자를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모집할 수도 있다. 스웨덴, 뉴질랜드 등에서도 난자 제공자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는 수출할 목적으로 그의 환자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한 사례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Global Arts Clinic' 이라는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하여 유럽연합으로 수출한 사실이 2004년 말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대리모의 경우 영국, 이스라엘 등 10여 개국에서는 관련 법안은 없지만 대리모계약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는 한걸음 더나가 대리모를 공식적으로 등록시켜 정부가 대리모에게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방안을 검토(2001년)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불임치료 센터에서 불임 부부와 대리모의 임신, 출산 계약을 중개해 주어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경우, 영리적인 목적의 대리모 계약과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도 관련 법안이 없지만 대리모 출산 건수는 불임전문병원별로 한해 10여건, 전국적으로 약 100여건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001년). 그들은 대부분 극도로 어려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업가정의 주부, 이혼녀, 카드빚에 찌들린 젊은 여대생들이다.

그리고 여성

초기 많은 여성운동가들은 새로운 인공수정을 비롯한 임신-출산 기술이 낙태 기술처럼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더 큰 선택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여성이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양육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생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대리모와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몸 밖에서 임신과 출산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불평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독신 여성을 비롯하여 레즈비언과 게이들과 같은 성적소수자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현실과 달랐다.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출산 능력을 대상화하고 남자의 유전자를 계승시키려는 욕망에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출산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한 남자가 유전적 자손을 얻게 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일반 의사들은 독신 여성이거나 레즈비언, 생활 보호 대상자 및 기타 좋은 부모로 판단되지 않을 때는 이 시술을 거부했다. 법원에서도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부모의 경우 이러한 시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를 위해 아버지 역할을 할 사람이 없을 때, 예를 들어 레즈비언이나 독신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권리는 정자 기증자에게 주어진다.

대리모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아이에게 주려는 남성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불임일 때 대리모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 아버지와 아이들 간의 생물학적 관계는 높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어머니의 경우 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을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것을 모든 여성들만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강제하고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할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여성의 신체는 새롭고 증명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실험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생학과 인종 차별

나치는 우생학을 이용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유태인과 집시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적용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1926년에 우생학을 기초로 단종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안은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에게도 적용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는 기간 동안(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 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우생학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임신초기에 양수 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남자아이만을 선별한다든지, 유전적 결함이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난자매매의 경우도 상류층 대학의 여성들의 난자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또 미국의 흑백간의 인종차별 문화는 임신-출산 기술에 그대로 반영된다. 흑인 여성의 경우 백인여성보다 불임률이 1.5배 높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각종 성병에 대해 치료를 못하고 있고, 영양 결핍과 출생과 낙태의 어려움 그리고 작업환경의 위험성 등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경우 백인의 1/3 수준 정도뿐이다.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이지만 인공수정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부는 고학력이며 풍요로운 백인들인 것이다.

위험성

일반적으로 여성의 난자 추출 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 과정과 유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장기기증에 비해 훨씬 적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추출할 때, 한 번에 많이 얻기 위한 과배란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 방법은 신장 이식과 유사한 외과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여성의 난자 추출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신장 이식 과정과 유사하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오히려 신장 추출보다 더 위험한 것이라는 주장한다.

과배란 과정에서는 난소에 다수의 난포가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자궁내막 위축제인 루프로리드 아세테이트(leuprolide acetate)를 사용한다. 이 약은 관절통에서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가슴 통증이나 메스꺼움, 우울증, 시력감퇴, 뇌하수체 기능 상실, 고혈압, 빈맥, 천식, 심장기능 장애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뼈 밀도 역시 전체 뼈에 대해 7.3% 정도 낮아진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난소를 과자극해서 낭포를 만들 때, 난소가 커지거나 채액 체류와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자주 발생되는 부작용으로는 난소과자극증후군(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 OHSS)이 있는데, 이것은 혈액응고 장애, 신장 손상 등의 위험이 나타난다. 이 증후군의 발생건수는 0.5-5%에 이른다. OHSS 증세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난소 자극은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 급성 동맥폐색 (Acute arterial occlusion), 뇌졸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배아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난자를 추출할 때 체외 수정보다 윤리적 측면에서 훨씬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과배란에 대한 유혹이 많이 있다. 체외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는 이유는 체외수정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이고, 실패할 경우 다시 반복적으로 난자 추출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단지 실험용 난자를 많이 얻기 위해서 이다. 황우석 교수팀도 처음에 1개의 배아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242개의 난자가 필요했다.

자본주의, 상품화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저항 주체가 생긴다.

이러한 임신-출산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서만 본다면 임신, 출산 낙태의 문제에 대해 자연적인 것이 좋은 것으로 보는, 다시 말해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자치권과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대립지점은 배아의 위상에 대한 논의로 부터 시작한다. 반대하는 측은 배아가 인간이거나 인간이 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찬성하는 진영은 매우 다양한데, 배아 줄기에 사로잡혀 있는 관념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은 다양하지 않다. 이들 두 진영 모두 여성은 빠져 있다.

전형적인 맑스주의 입장도 이와 유사한데, 단순히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가족 내의 노동 분업에 대해선 본질적으로 비-착취적인 것이며 자연적인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해 버린다.

이렇게 임신, 출산 등의 생식기술과 대리모가 모든 여성들에게 억압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의 딸을 위해 손녀를 낳아 주는 할머니의 사례나 이타적으로 난자를 기증하거나 대리모로 자청하는 사례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생각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연관된 권력관계를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항적 의미를 보지 못한다.

임신-출산 기술을 둘러싼 정치에는 분명 특별한 무엇인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 5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정자와 난자를 생산해서 기증할 사람과 대리모 그리고 태어난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있다. 이 경우 진짜 부모는 누구일까? 보통의 경우 아이를 키워줄 사회적 부모, 즉 임신-출산 기술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소비자가 있다는 말은 생산자가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 생산자는 곧 노동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난자 매매에서 여성은 난자라는 몸의 일부를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하고 대리모는 태아에서 출생까지 아이가 살아갈 환경과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노동을 한다. 이와 같이 화폐를 위해 여성은 대리모 노동을 판매하고 자신의 몸속에 생산된 난자를 상품화한다. 이러한 노동은 집창촌의 성노동자와 비교되는데 성 노동은 비생산적인 성을 상품화 하는데 비해 임신-출산과정의 노동은 기술을 통해 생산물을 상품화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성노동자 운동이 있듯이 대리모 노동자운동, 난자 생산 노동자 운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영향은 자연적인 영역과 생산적인 영역,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적 경향을 통해서 여성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임금 노동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고, 생산결과물로부터 소외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저항의 주체인 노동자의 입장에 설 때만, 배아나 태아의 생명존중을 내세우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적 우파진영이나 그 모든 기술에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하는 친시장주의자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난자 매매에 대한 과배란 처방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고발하고, 음성적으로 거래되어 착취당하는 대리모/난자매매 문제 그리고 임신-출산 기술에 배어 있는 우생학적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논란 속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가정에서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임신-출산 ‘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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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 일반적으로 질병 문제를 다를 때, 그 치료약에 한정해서 논의한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의 문제를 다룰 때 그 치료약인 타미플루의 효과 및 소유권에 대해서만 논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의 원인을 특정 바이러스에서만 찾는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그 바이러스의 발생원인이 되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조류독감문제는 백신의 공유를 통해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김영식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되면 항상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는데, 바로 감기이다. 감기에 걸리면 목구멍(기도) 주변에 염증이 나서 목이 아프고 기침 콧물이 난다. 감기는 수백 가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므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어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흔히 감기약이라고 하는 것은 바이러스 치료약이 아니라 증세만 완화시켜주는 일종에 '나일론-약'이다. 다행히도 대부분 감기는 일주일만 버티면 사라진다.


그런데 독감의 경우는 다르다. 독감의 경우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를 말하며, 이름값을 하느라 일반 감기보다 더 지독하고 세균성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죽게까지 한다. 다행히도 독감은 감기와 달리 바이러스 종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백신(치료약)이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H5N1) 역시  타미플루 (Tamiflu)라는 치료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전 세계가 이 독감에  전율하고 있을까? 에이즈나 말라리아 혹은 폐렴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이제 겨우 117여명 감염되고, 60여명이 사망한 조류독감에 이토록 긴장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과거 20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아픈 상처와 자본주의의 본질이 숨어있다.

 

 



 

독감, 그 무시무시한 역사

1918-1919년에 스페인 독감(H1N1)은 전 세계인구 30%를 감염시켜 2천만 명에서 5천만 명 정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망한 사건이며, 1차 세계대전 때의 총 사망자 수 보다 몇 배 많은 수치이다. 그리고 이 질병의 원인균은 1933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1957-1958년의 아시안 독감(H2N2)은 6개월 동안 전 세계에 퍼졌고 2백만 명 가량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1968-1969년에는 중국의 동남쪽에서 발생한 소위 홍콩 독감(H3N2)은 1만 명을 죽게 했다.


 2005년 10월 6일 [네이처 Nature]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18년의 독감 바이러스는 처음에 조류독감이던 것이 돌연변이해서 사람을 감염시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인간을 감염시키는 조류독감이 또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천연두나 탄저병과 같은 전염병은 원인균이 발견되면 그에 따른 백신이 개발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금 테러가 아니라면 아무도 천연두나 탄저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독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쉽게 돌연변이 해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만약 그 개발 시기를 놓치거나 물량확보를 하지 못한다면 1918년과 같은 재앙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이번 조류독감은 아시아의 가금류 밀집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새나 사람한테나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돌연변이를 통해, 오리, 닭 등에 감염되면 48시간 내 죽을 수 있는 무서운 병원균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조류독감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18명의 사람이 감염되어 그 중 8명을 죽었다. 이어 2003년에는 한국, 일본, 중국북부 등에서 역시 같은 종류의 조류독감이 발생했고 2004년에는 베트남 남부 지역을 시작으로 태국, 중국 남부, 라오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2005년에는 터키와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 조류독감의 경우 아직 사람들 사이에 감염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감염된 가금류와 밀접하게 살고 있는 대규모 인구 밀집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염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닭과 같은 가금류를 집단 관리하는 자본주의식 양계장 모델은 조류독감 확산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조류독감과 특허권

현재까지 알려진 백신은 프랑스 제약회사 로슈(Roche)가 특허 독점권(주 1)을 가지고 있는 타미플루이다. 이 약은 증상이 나타난 후 처음 24시간에서 36시간이내에 처방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이 인구의 20%분을 타미플루를 확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500-1500만 명분에 해당한다(주 2). 그러나 로슈는 타미플루를 스위스에 있는 단 한 개의 공장에서만 독점 생산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WHO에 따르면 로슈의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10년 후 세계인구의 20% 정도만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타미플루의 독점과 품귀 상황은 제 3세계 국가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얼마 전 타이 보건당국은 타미플루를 구매하려고 했어나 미국정부가 이미 로슈로부터 거의 모두 구매해 버렸기 때문에 구매할 수 없었다.


또 몇 달 전 WHO 회의에서 태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타미플루를 자신의 나라에서 생산해, 생산 설비가 없는 제 3세계국가들에게 수출 할 수 있게 하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요청한 바 있다(주 3).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는 이 논의를 차단했다. 그리고 부시 정부는 2006년에 타미플루를 미국에서 제조할 수 있도록 로슈와 합의 했다. WHO 역시 독감이 창궐할 때 로슈로부터 3백만 명분(course)의 타미플루를 제공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로슈의 독점에 대해서 비판도 지지도 하지 않고 있다. .


신자유주의에서 활개 하는 조류독감

 조류독감이 아무리 위험한 독감이라고 하더라도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위생적인 생활환경과 충분한 영양 공급으로 큰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조류독감은 일반 독감과 같이 보균자의 경우 증세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격리 수용과 같은 방법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주 4). 그러므로 위생이나 영양 상태를 향상시키는 방법이 타미플루보다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전 세계 빈민가는 1918년 이후 해마다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 이후 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바람으로 인해 전 세계 공공 보건의료 시설은 황폐화되었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 몰려 도시 주변 참혹한 위생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류독감의 위험성을 배가시킨다. 극단적인 예로 서울역 노숙자들이 조류독감에 감염되었다고 해보자 어떻게 될까? 전국적인 확산은 불을 본 듯하다. 그리고 AIDS가 창궐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유행성 조류독감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눈에는 오직 자본만이 보일 뿐이다.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들의 눈에는 특허 독점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또 몇몇 자본가들만 안전하다면(주 2) 그들에게는 그리 무서운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 1) 타미플루는 미국의 비영리적인 공공 병원에서 의료용으로 개발되었고 이후 켈리포니아의 작은 회사에서 조제약으로 개발되어 지금 프랑스 로슈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약이다.

(주 2)한국 정부의 정책은 70만 명분만 확보하겠다는 안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류독감에 대처하는 정부정책의 전부이다. 약이 부족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약값을 올린다. 만약 조류독감이 창궐한다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약값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때 70만 명 속에 노동자 농민들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까?

(주 3)국내에서도 IPLeft 등 일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추진하고 있다.

(주 4) 사스(SARS)의 경우 증세가 나타난 이후 감염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사스는 조류독감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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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 철학 I

노동자와 과학 철학 I

 

앞으로 [현자에서 미래를]에서 필자는 진화론, 우주팽창이론, 카오스 정리, 상대성원리 등 현대 과학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참고로 양자역학은 현재 노동자의 힘에 연재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자연의 객관진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비판도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수사과정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나 DNA 분석의 결과는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숨어있는 1인치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수사의 결과인 ‘유서대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레닌에 의해 극복된 경험주의의 부활을, 우주 빅뱅이론은 진화론으로 극복된 종교의 창조론을, 유전자연구는 나치와 함께 멸망한 우생학과 유사한 유전자 결정론을 부활시키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자본주의 속에서 격리된 섬으로 남을 수 없다. 자본주의속에서 발전한 과학은 자본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영향을 받은 과학은 자본가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것이 현대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 철학을 같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현대과학의 흐름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잘 정리되어 있어 번역하였다. 이 글의 저자 알랜 우즈(Alan Woods)는 ‘국제 맑스주의 경향 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이라 알려진 ‘맑스주의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Marxist International’를 이끌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반항하는 이성: 맑스주의와 현대과학 Reason in Revolt: Marxism and Modern Science“이 있다. 이 글은 원문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일부 보충하고 일부 삭제하여 '수정 번역'하였다. 원문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site에서 볼 수 있다. (역자 주)

 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노동자와 과학 철학 I

 

-20세기 현대 철학

우연한 기회에 장거리 택시 안에서 철학 어쩌고..하는 책을 꺼내 들었다. 그 책을 본 택시노동자의 말은 자본주의 시대에 철학의 위상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도에 관심 있으시군요." 이렇듯 우리시대(자본주의시대)의 철학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쇠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 철학에는 새롭고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철학을 경멸하고 있고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무관심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여기서 극단적인 노동 분업의 파괴적인 영향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상아탑 속에 격리된 대학교수들은 노동자들이 평생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게 모호한 글을 적고 있으며 심지어 동료 학자들조차 답하기도 어렵게 글을 적고 있다. 사실 그들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나마 미미하게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동료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생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철학자들은 일부러 이해할 수 없게 정교하게 설계된 듯한 특수 용어나 기호에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자기들만의 비밀 언어를 가지고 있어 그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고대 승려-카스트와 닮아 있다. 그러한 난해한 철학 속에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  

 

오래전에 요제프 디쯔겐(Joseph Dietzgen)1)은 주류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방위수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문 철학자들은 냉전시대에나 가능한 말이라고 부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맑스주의에 반대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냉전시대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이고 지금도 여전히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것은 없다. 맑스주의가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상당한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난 이후로 지배계급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시작해서 모든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맑스주의 이름만 나와도 그들은 조건반사식으로 대응한다. "낡은", "과학적이 아닌", "오래전에 반증된", "형이상학"과 같이 초라하고 지루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철학의 신성한 전당에서 기피인물 취급받았던 사람은 맑스와 엥겔스뿐만이 아니었다. 불상하게도 헤겔은 한때 뛰어난 철학자의 철학자로 칭송받았지만 이후 아무도 인용하지도 배우려하지도 않는 부끄러운 침묵의 음모 속에 묻혀 버렸다. 일반적으로 직업적 철학자들의 경우 경력을 관리해주고 연구자금을 지급해 주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한 물질적 이익뿐아니라 한때 실제 세계에 대해 중요하고 심오한 것을 실제로 말하는 철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싫었을 것이다.




 

과학 철학의 주요 흐름


철학자 앙리 베리그송(Henri Bergson)이나 존 듀이(John Dewey), 조지 산타냐(George Santayana)와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를 제외하면, 현대 서구 철학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실존주의와 관계가 있는 주관주의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2)을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논리 실증주의"이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철학은 라틴 국가, 특히 프랑스에서 더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후자는 지금까지 앵글로-색슨 지역에서 지지 받았다. 이 글에서는 후자 쪽에 더 많이 집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 철학을 대표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흐름은 신-실증주의, 논리 경험주의, 경험비판론, 분석 철학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장하며 여러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영국과 미국에서 지배적으로 일어났지만 독일과 특히 오스트리아 철학자들에 의해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세기 전환기에 물리학자 에네스트 마흐(Ernst Mach)는 경험-비판론을 발전시켰다. 마흐는 물질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약간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것은 원래 그 철학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철학은 20세기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이 철학은 18세기 비숍 버클리 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한마디로 새로울 것이 없는 최악의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러나 신-실증주의자들은 그들을 따로 과학적 실증주의자로 부르며 버클리가 그들의 원 저자임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비숍 버클리 사상은 근본적으로 영국의 협소한 경험주의 철학에서 나왔으며, 인간의 모든 지식은 우리의 감각으로 부터 나온다는 로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감각-지각으로 부터 나오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과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확실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나의 감각-지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다다르는 결론은 이 세상에는 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유아론(solipsism, 라틴어로 solo ipsus -"I alone")이라고 한다. 물질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엥겔스는 1892년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우리 불가지론자는 우리의 모든 지식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받는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라고 그는 부연 설명한다―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지각하고 그것을 정화하게 모사할 수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또 계속해서 불가지론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즉 사람이 사물 또는 사물의 속성에 대해 말할 때 실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물 자체 또는 사물의 속성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사물들이 감각기관에서 일으키는 지각뿐이다.


 이 말은 확실히 논증을 통해서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논증하기 전에 행동(실천)하고 있었다. "태초에 행동(실천)이 있었다." 인간은 행동(실천)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로 논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이미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푸딩이 맛있는지 없는지는 먹어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우리가 지각하는 물체의 속성을 우리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얻은 지각이 옳은지를 정확히 시험해 볼 수 있다. 만일 그 지각이 틀렸다면 그 사물을 이용하려던 우리의 판단은 틀린 것이며, 그 사물을 이용하려는 온갖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리고 그 사물에 대해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갖는다면, 우리가 사물의 속성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우리 외부의 진실과 일치하고 있다는 긍정적 증거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버클리의 사상을 연상케 하는 마흐의 기본적인 언급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의 감각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유물론자들은 여기에다 "세상은 나의 감각과 독립적으로(상관없이) 존재한다."는 말을 추가한다. 이런 기본적인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엄청나게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는 나의 감각뿐이다. 그러므로 나 이외에 다른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기 전에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세계를 관찰하기 전에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진다! 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철학자뿐만 아니라 일부 매우 존경받는 과학자들까지도 이와 아주 유사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마흐도 유명한 물리학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역학의 주류 흐름에 반발해서 '누군가 달을 보고 있을 때만 달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1981년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은 "아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마흐의 주장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 의해 완전히 반박되었다. 여기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의해 주어지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모사되지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 (Lenin, Collected Works, Vol. 14, p. 130.) 맑스와 엥겔스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우리 시야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통일성(공통점)은 물질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두세 명의 마술사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 및 자연과학의 장구한 발전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Engels, Anti-Duhring, p. 54) 이것은 이미 헤겔도 언급한 바 있다. "일상의 언어로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에 의해 의미를 주고 감각에 의해서 외부와 닿는다."(Hegel, Logic, p. 67.)


흄과 칸트로 부터 시작해서 마흐까지 그들의 근본적인 실수는 감각을 개인(주체)과 물질세계(객체)를 분리하는 어떤 장벽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사실 감각 자체는 신경계, 뇌, 신체, 음식 등 물리적 환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감각을 신체와 같이 어떤 식으로 조직된 물질과 분리하여 독립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관념주의자들의 사유 중에서 최악이다. 그것은 과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종교와 관념론과는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사유는 사유를 하게하는 물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유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조직된 물질(예를 들어 신체)의 생산물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특히 자연을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우 특별한 부분이다. 주관적 관념론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다음과 같다: 만약 물리적 세계가 사람이 인식할 때만 존재한다면,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 혹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세상이 어떻게 존재했겠는가?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논리를 비틀고 돌려 보지만 이러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의식", "사유" 등을 이미 자연스럽게 주어진 그 무엇, 본래부터의 존재, 자연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의식과 자연, 사유와 존재, 사유법칙과 자연법칙이 일치하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겨야 된다. 그렇다면 다시 도대체 사유와 의식이 무엇이고 또 어디에서 나왔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두뇌의 산물이라는 것, 인간 그 자체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또 이 환경과 더불어 발전하는 자연물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자연의 산물에 불과한 인간두뇌의 산물이 나머지 자연과 연관성에서 모순되지 않고 서로 잘 조응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ngels, Anti-Duhring, p. 44.)그리고 레닌도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직업적(주류) 철학자들에 의해 방황하지 않는 모든 과학자들을 위해 아울러 모든 유물론자들을 위해 감각은 실재로 의식과 외부 세계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감각은 외부 자극 에너지를 의식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주위의 일상 경험 속에서 그리고 수백만 번 관찰되었고 관찰되고 있다. 관념론에서는 감각을 의식과 외부세계의 연결 통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로 부터 의식을 구분하기 위한 울타리, 벽으로 보고 있다. 즉, 외부 현상의 이미지가 감각에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로 본다. (Lenin, Collected Works, Vol. 14, p. 51).


 외부 세계가 실재하는지 실재하지 않는지의 문제는 사실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은 연구를 통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존재 조건을 변화시키고 지배하고 다시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완전한 경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은 맑스의 포이에르바흐의 테제 두 번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사유가 객관적 진리성을 가지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인간은 자기사유의 진리성을, 즉 현실성과 힘을, 그 생명력을 실천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천이 없이 사유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하는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적인 문제이다". (MECW, Vol. 5, p. 3.)


헤겔주의 관념론에 대항한 경험주의


경험주의는 앵글로-색슨에 뿌리 깊은 전통이 있었지만,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대학에서 지배적인 철학은 헤겔주의였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적당히 신비주의적이며 종교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브래들리(Bradley), 맥타카드(McTaggart)와 스털링(Stirling)등 당시 주류 헤겔철학자들이 헤겔에 대해 핵심을 빼고 관념주의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스털링은 [헤겔의 비밀]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 책에 대해 레닌은 "비밀은 잘 유지 되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들 관념론자들은 헤겔 철학에서 모든 가치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신비주의적인 면만 보존하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맥타카드는 시간의 개념은 일관성이 없으므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신비주의적인 허튼 소리를 무어(G. E. Moore)나 러셀(Russell)과 같은 더 젊은 세대 철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의 철학은 이러한 관념론적 신비주의에 대한 건강한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대체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대안을 모색했지만 상당히 낡은 영국적인 것-"상식"과 "사실"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그들은 철학에서 관념주의를 청소하기위한 시도로 다시 경험주위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의 슬로건은 뉴턴의 슬로건과 같았다. "물리학, 형이상학을 두렵게 하라." 관념론자들의 잘못된 이론화 대신에 경험주의자들은 어떤 이론화작업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자연과 같이 철학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형이상학에 대한 유일하게 살아있는 대안은 일관성 있는 유물론-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이 혁명적 철학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 철학에서 관념주의의 장식을 벗겨버리고 합리적 핵심을 드러내었다. 아무튼 그들은 이미 완전히 극복되어 다시 볼 필요도 없는 그런 초기 관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베이컨(Bacon), 홉스(Hobbes)와 로커(Locke)에 의한 영국 경험주의 학파의 발전 계보는 이미 버클리와 흄과 함께 장기적인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점차적으로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에 의해 재생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생명력 잃었고 속류화만 가속시켰다. 경험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는 : "나는 세상을 감각을 통해 해석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자명한 이 명제에, 더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은 내 감각으로 부터 독립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각은 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지식의 원천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많은 실수의 원천이기도 하다. 경험주의 초기에는 인간 사유에 있어서 거대한 도약을 이끌어 내었다. 과학을 지배한 종교 독제를 거부하였고 실험과 관찰에 기초한 진정한 과학적 방법의 승리를 이루어내었다. 그리고 스콜라 학파들의 무능한 관념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 유물론은 불완전하고 일면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유행하고 있던 기계론적 사고방식의 먹이가 되었다.


철학에서 스피노자(Spinoza), 라이프니츠(Leibniz), 칸트(Kant),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겔과 같은 관념론자들에 의해 거대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일종에 역설이다. 이 모순은 맑스와 헤겔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유물론의 과학적 방법과 변증법을 결합시켰다.


무어는 명예롭게도 헤겔 주의적 신비주의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경험주의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신비주의도 반대하려고 노력했다. 버클리와 흄의 예는 경험주의 철학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그 종착지는 바로 주관적 관념론, 유아론(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관념)의 혼돈속이다. 그런데 무어는 그의 논문, [판단의 본질(1899)]에서 사람의 감각에 독립해서 물리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1925년에 그의 에세이 [상식의 옹호]에서 그는 "나는 오늘 아침 밥을 먹었다(그래서 시간은 존재한다) 그리고 내 손에 연필을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외부 세계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마흐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3)가 신비주의적 난센스를 선호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표면상의 논증은 키니코스학파의 디오게네스(Diogenes)가 위로 아래로 걸어서 운동의 존재를 "증명"했을 당시의 철학에서 한걸음도 전진시키지 못한 것이다. "상식"은 어떤 한계 내에서 자신의 논리를 세울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훨씬 더 심각한 실수를 초례하기도 한다. "상식"으로 지구는 평면이며 태양이 지구주의를 돈다고 할 때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애를 쓰도, 우리는 바로 주어지는 감각-지각의 세계를 훨씬 너머설 수 있는 이론적 일반화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무어는 "상식에 대한 믿음"에 호소하면서 형이상학에 대한 전쟁을 시도했지만 그의 철학은 많이 비어 있다. 왜 다른 것들 중에 꼭 이러한 상식에 호소하는가? 결국 이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편견에 사로잡힌 일상에 호소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현 상태에 뿌리를 둔 본질적으로 주관적 철학에 묶일 수밖에 없다.


논리 원자론(Logical Atomism)


 무어가 "상식"으로 회귀한 반면 러셀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다. 러셀과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근원적 구조에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분석하면 실재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어 속에 진실의 싹은 있다는 말은 헤겔이 이미 오래전에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도 역시 좁고 일면적이므로  결국 막다른 길목에 도달한다.  


"프라이팬에 나오면 다시 불속이다" 러셀은 무어와는 다른 새로운 이론과 방법을 시도했다. 논리학을 과학적 기초위에 어떻게 올려놓을 수 있을까? 수학적 언어를 가져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젊고 뛰어난 오스트리아인 비트겐슈타인의 영향 하에 1918-19년 동안 그는 [논리 원자론의 철학] 이라는 일련의 글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언어의 근본적인 작용을 밝히기 위해 그리고 그것에 의해 언어가 기술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캠브리지 대학으로 옮긴 뒤 처음에는 러셀과 카르넵의 입장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후 수학과 논리학의 토대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일상 언어로 연구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철학은 언어에 대한 비판이다."라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가 밝힌 목적은 "언어를 수단으로 우리 지식에 주문을 걸어버리는 것에 대항하여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과거에 미해결된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최종 해답"으로 밀고 나간다. 마치 과거에 미해결된 문제가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사유의 형식적 결함 때문에 발생된 것처럼, 단지 문법과 구문론을 잘 정리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2천 500년 만에 처음으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위대한 사람이 갑자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물론 맑스도 포함해서 이들과 같은 얼간이(?)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혼란을 빠르게 정리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논리원자론은 언어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그 이름은 당시 물리학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가장 단순한 문장을 "원자적"이라 불렀고 더 복잡한 문장을 "분자"라고 하였다. 몇몇 구문을 물리학에서 빌려온 러셀은 언어에 관한 그의 주장이 과학적 분위기가 풍기기를 바랐지만 그의 철학에서 과학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언어는 이렇게 세부를 분해해서 이해하는 "환원주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별 부분들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큰 복합적 총체이기 때문이다. 러셀의 접근방식은 좁고 형식주의적인 그의 철학뿐만 아니라 당시 물리학의 한계가 가지고 있는 결함까지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언어 철학의 개념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이것은 언어에 대한 뛰어난 변증법적인 통찰력을 보인 헤겔은 물론이고 로커, 버클리 흄의 저서에서 이미 나온 것이다.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Tracticus]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언어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 스스로를 얼마나 옭아매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실험 과학을 통해서만 세상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 [논고]에서는 실험과학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실제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논고]에서는 자신의 철학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들은 헤겔에게 난해함을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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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1828-1888 변증법적 유물론의 재구성에 노력한 맑스주의철학자이다. 변증법을 인식론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 그의 중요한 이론적 공헌이다. 독일 철학자·사회주의자·유물론자. 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철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자로 활동하였다. 맑스·엥겔스와 관점을 달리한 독자적인 변증법적 유물론 체계에 도달했고, 특히 승려주의(僧侶主義)와 불가지론(不可知論)을 공격했다.

2) 언어철학(philosophy of language)는 언어에 대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언어철학에서는 언어와 실재의 문제, 의미와 지칭의 문제, 의미와 진리의 문제 등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설(J.Searle)은 보다 구체적으로 언어철학의 문제들을 다음처럼 정리하고 있다. "언어철학은 언어의 일반적 특징들, 가령 의미, 지칭, 진리, 검증, 언어행위나 논리적 필연성 등을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언어철학은 철학의 어떤 주제들에 대한 이름이다."(J.Searle, ed., Philosophy od Language, p.1.) 반면에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 는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단어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분석함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전통적 철학의 문제들, 가령 결정론, 회의론, 인과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세계를 기술하거나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가 언어에서 하는 분류나 구분들을 검토함으로써 세계의 어떤 특성을 탐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적 철학은 철학적 방법에 대한 이름이다."

http://agora.co.kr/cgi-bin/ez2000/ezboard.cgi?db=sellars-p3&action=read&dbf=87&page=6&depth=2 인용

3)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힘 제 88호 '아무도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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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하이젠베르크와 나치

 

하이젠베르크와 나치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에서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개발하였다. 1932년에 그의 행렬 역학 시스템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플라톤(Plato)의 <<대화Timaeus>>에 강한 영향 받은 그는 학생 때부터 유명한 관렴론자였다. 이러한 관념론자의 반동적인 결론은 하이젠베르크 삶의 변화과정에서 잘 보여준다.


 1919년 하이젠베르크는 반동적 자유군단(Freikorps)에 가입하여 독일 노동자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자유군단은 훗날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나치돌격대(SA)가 된다. 이러한 과거의 부끄러운 경력을 그는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당시 그의 아파트가 한번(!) 강도당한 적이 있을 만큼 매우 혼란한 시기였고 또 호기심 많은 젊은 날의 모험심 때문에 자유군단에 복무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의 친-나치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동안에 나치의 원자폭탄(A-bomb) 계획의 총 책임자였다. 다행히도 나치의 원자폭탄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포로가된 그는 원자폭탄 계획의 실패 원인을 그와 그의 동료과학자들이 나치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히틀러의 오른팔인 히믈러(Himmler)집안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왔다. 그리고 나치가 그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 계획을 그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나치의 원자폭탄 계획의 실패 원인을 리더로써 하이젠베르크의 자질 부족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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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좌파6]아무도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II


인간은 과학을 통해 무지에서 지식으로 진보시켰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의 혼돈은 끊임없이 진보를 방해해 왔다. ‘모른다‘와 ’알 수 없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인식에 한계를 두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칸트는 물-그-자체(Things-in-Themselves)가 아닌 오직 현상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버클리(Berkeley)와 흄(Hume)과 같은 주관적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의식을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그것이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한에서만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양자역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의 전체적인 관점은 주관적 관념론을 반영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측정할 수 있는(경험할 수 있는) 것만 의미가 있다. 이것을 '측정 = 의미 원칙 meaning principle'이라고 하는데, 이 원칙은 신(God)과 같이 측정되지 않은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므로 종교적 미신을 물리치는데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의식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미신을 만들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측정 = 의미원칙‘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는 적절한 실험 장치로 측정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불확실성원리에 따르면 운동량(위치)의 불확실성은 입자의 '위치(운동량)'를 측정할 때 그 측정 장치가 ’운동량(위치)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각각은 최대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이 두 물리량(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교하게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입자가 정확한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우리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측정할 수 없다면 달이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원자폭탄을 폭발시켜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면 그 효과를 말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입자의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하면 운동량은 변하게 된다’는 말을 ‘측정 = 의미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위치는 정확하게 측정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만,’운동량이 변하게 된다‘는 말은 측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의미한 말이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스스로 빠진 이 모순에 대해 해결을 시도한다. 입자의 초기 운동량(pi)을 아주 정교하게 측정하고, 바로 이어 입자의 위치(x)를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한다. 또 바로 다음에 다시 운동량(pf)를 측정했다고 해 보자. 이 값들은 모두 각각 따로 측정했기 때문에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초기 운동량(pi)을 측정한 후 바로 위치(x)를 측정했기 때문에, 초기 운동량(pi)는 위치 측정 직전에 입자가 갖고 있는 운동량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치(x) 측정 후 운동량(pf)도 측정했으므로 변한 운동량 |pf-pi|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확실성 원리를 어기지 않고 ‘변하는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다. 여기까지 그의 설명은 완벽한 듯 보인다.


아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아직도 완벽하지 못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 다른 상황을 설정해 보자. 입자의 운동량(pi)을 측정하고 일정시간 후 그 입자의 위치(x)를 측정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한 직후부터 입자의 위치를 측정한 직전까지는 입자의 경로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러면 그 기간 동안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므로 불확실성원리는 유효하지 않다. 이러한 결론은 하이젠베르크도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초기 운동량(pi)과 같이 과거에 측정된 값을 이후 측정된 위치(x)의 초기 값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다시 주장한다. 이들 두 시점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입자의 “‘경로‘는 입자를 관찰할 때만 나타난다(실재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것을 '측정 = 발생 원칙 creation principle’이라 부른다. 이 원칙에 따르면 밤하늘의 달을 아무도 측정하지 않는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역학의 주류 흐름에 반발해서 '누군가 달을 보고 있을때만 달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1981년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은 "아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아무리 유명한 과학자의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결론을 따를 이유는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다른 무엇보다 기저에 깔려 있는 철학적인 생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과 공간속에 객관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있다는 관념을 제거하기 위해"필요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해석은 과학적 실험에 의한 객관적 결과가 아닌 그의 관념주의 철학의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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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좌파5]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실(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 I

 

[양자역학과 좌파5]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실(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 I


물리학자들은 입자가 움직인다는 것을 운동량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움직이는 입자의 질량과 속도를 곱한 값으로 정의한다. 반면에 파동은 다른 형태의 물리적 과정이다. 예를 들어 잔잔한 물 표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발생하는 왜란과 같은 것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된다. 파동의 경우 파장으로 나타내는데, 그림에서와 같이 파장의 가장 큰 값(마루)에서부터 다음 마루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의 이론적, 실험적 연구결과 이후 물리학자들은 운동량과 파장이 서로 직접적으로 관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입자의 운동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특정 순간에 입자가 어디에 있고 또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속도(운동량)와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이 두 물리량이 정확하게 측정되면 입자의 운동에 대한 원인과 결과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중슬릿 실험의 이상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전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 결과를 1927년에 불확실성원리(*)로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불확실성 원리는 인과론을 부정한다고들 하는데,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실성의 '원인'을 상상실험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전자와 같은 미세 입자의 운동을 실험적으로 측정하기 불가능했기 때문에 머릿속 생각으로 실험을 하곤 했는데, 그것을 "상상실험(though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전자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는 강력한 현미경이 있다고 해보자. 이 현미경은 전자에 빛(광자)을 쪼여 전자와 충돌해서 나오는 빛으로 전자의 움직임을 알아낸다. 먼저 전자로부터 반사되어 나온 빛을 다시 렌즈로 집속하면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다. 또 반사되어 나온 빛으로 전자의 속도도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경찰관이 레이저 총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반사되어 나온 빛의 파장을 측정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렌즈로 작은 전자에서 반사되어 나온 빛을 집속해서 위치를 측정하기에는 전자가 너무 작다. 일반적으로 빛을 집속해서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해상도는 빛의 파장 길이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전자의 위치는 빛의 파장 길이만큼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미경의 해상도는 아주 큰 렌즈를 사용하거나 짧은 파장을 갖는 빛을 이용하면 증가한다.


현실적으로 무한히 큰 렌즈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파장이 아주 짧은 빛을 쪼여야 한다. 그런데 빛이 파장이 짧다는 것은 아주 높은 에너지를 가졌다는 뜻이다. 높은 에너지의 빛을(광자를) 전자와 충돌시키면 전자의 속도는 변하게 된다. 그러면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만약 정확하게 속도를 측정하고 싶다면 낮은 에너지의 빛(광자)을 충동시켜야 하는데, 이때에는 파장이 길어져서 정확한 위치를 측정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종류의 현미경을 개발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젠베르크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에너지는 양자로 나타나고 또 모든 물질은 미시 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성을 뛰기 때문에 어떤 측정 장치를 가져와도 같은 문제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 상상실험에서는 측정 장치(현미경)와 측정대상(전자)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이 결과는 고전적으로 보더라도 이상한 결론이 아니다. 그러면 다시 이중슬릿 실험으로 돌아가 보자. 측정 장치로 전자를 측정하지 않으면 전자는 어떤 상호작용도 없으므로 전자는 명확한 속도와 운동량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중 슬릿실험에서도 전자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입자특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고 파동 특성인 간섭무늬가 나타난다.


결국 측정하지 않을 때에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고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아무튼 위치와 운동량은 거시적인 측정 장치에서 관측되는 고전적인 개념이며 이 개념을 미시 세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희한한 점은 위치와 운동량 각각은 명확하게 측정되지만 동시에 측정할 때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또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할 수 없다는 것은 입자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물리학을 지배해온 결정론은 위기를 맞는다.


그러면 두 가지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먼저 전자는 측정 장치와 무관하게 비결정론적으로 랜덤하거나 운동하거나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변수(숨은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측정할 수 없는 숨은 변수에 대한 설명을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불확실성의 원리가 인간이 측정(경험)할 수 있는 ‘최종적인’ 한계이며, 그리고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그 기저에 인과론적인 진실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형이 상학(metaphysics)일 뿐이라고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을 인식할 수 있는 한계가 불확실성의 원리이며, 그 이상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인식과 무관한 객관적인 자연이 존재한다는 설명을 반박할 수 는 없다. 이것을 부정하기 위한 유일한 종착지는 측정되지 않는 것(경험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경험주의, 실증주의). 하이젠베르크는 이 입장을 고수한다. 그래서 전자의 운동은 비결정론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전자운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부족이라는 의미에서 불확실성이라는 용어 보다는 대신 결코 결정할 수 없는, 즉 비-결정성(indeterminism)의 원리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하며, 그것은 자연현상은 근본적으로 완전한 우연에 의해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불확실성 원리는 과학자들로부터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게 한다. 이 원리의 진리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불확실성 원리가 자연이 완전한 우연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법칙은 아니다. 그런 해석은 변증법을 거부한 물리학자의 해석일 뿐이다. 만약 전자의 운동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한다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입자의 운동이란 위치의 부정을 말한다. 변증법에 따르면 입자가 운동 중에 있을 때는 입자의 움직이는 경로는 존재하지만 어떤 특정위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비변증법적으로 전자의 운동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특정 시간에 특정위치에서 입자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이젠베르크는 결국 전자가 움직이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비 실재론으로 치닫고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다음에 계속)


(*) 비 결정론적(indeterminism)이라는 뜻과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 보다  불확실성의 원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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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도 배아복제 논란에 뛰어 들어가 보자.

 

노동자도 배아복제 논란에 뛰어 들어가 보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 111호

 

지난 5월 20일 서울대 황우석ㆍ문신용 교수팀과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은 18명의 여성에게서 기증받은 난자 185개로 31개의 배반포기 배아를 복제하고 여기서 11개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배아줄기세포 11개는 남성과 사춘기 전 여성, 폐경기 이후 여성 등 연구 참여자(남성 8명, 여성 3명)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으로 이 중에는 3명의 난치병 환자도 포함돼 있다


이번 배아 복제의 성과는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댄스그룹 클론의 구성원인 강원래씨 와 슈퍼맨의 크리스토프 리브,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와 모하메드 알리의 파킨슨 병, 로날드 레이건의 알츠하이머(치매)나 선천적인 (제 1형) 당뇨병 등 치료약이 없어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12월 마리아 생명공학 연구소의 박세필 박사팀은 인간 배아줄기 세포로 쥐의 파킨슨병 치료에 성공했고, 황우석 교수도 척수를 다친 개의 치료에 성공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영국에서는 비교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좌파정권인 브라질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 지원계획을 공식 발표했으며, 스페인의 좌파 정부 역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찮은데, 미국의 부시정권을 포함하는 종교적 우파와 그리고 일부 녹색당이 여기에 속한다. 스위스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법안이 당초 2003년 12월 의회에서 채택됐으나 가톨릭교회와 녹색당, 의료윤리단체들이 반발로 인해 국민투표에 붙여지기도 했다. 독일의 녹색당의 볼커 벡 하원 원내총무는 줄기세포 관련 정책을 바꾸는 일은 `위장한 식인(食人)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2005.06.16 연합) 이 처럼 배아복제를 둘러싸고 그 양상이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복제 ‘화려한’ 성공과 정부와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거대 제약회사의 움직임은 아직 둔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본의 욕구는 ‘돈(자본증식)’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황교수의 연구결과에서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각종 반자본주의 투쟁에 지쳐 있는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배아복제 문제를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배아복제란 무엇인가?


우리 몸에 세포는 크게 두 가지 종료가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가 있고 정자와 난자의 생식세포가 있다. 세포의 종류와 같이 세포 복제도 두 가지 종류 즉,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가 있다.


생식세포 복제는 정자와 난자를 이용한다.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면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이때 분열할 때 마다 난세포 크기가 작아지므로 ‘난할’이라고 하며 이 작은 난세포를 ‘할구’라고 부른다. 복제의 핵심은 분열과정이 있는 이 할구와 수정되지 않은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것이다.

 

 

(a) 생식세포 복제

 

 

 

   (b) 체세포 복제

그림.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

(그림 출처 : http://www.cfe.org/parkup/t_ecodemia_4/HYS.hwp)

 

만약 수정란이 8개의 할구로 분열했다고 하면, 난자 8개로 염색체가 동일한 8개의 복제 난자를 만들 수 있다. 즉, 1개의 수정란으로 8개의 일란성 쌍둥이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비해 체세포 복제는 수정란의 세포가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세포(체세포)를 떼어내어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재까지는 난자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두 복제과정(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 모두 여성들로 부터 새로운 난자를 제공 받아야 한다.


할구나 체세포는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된 후 세포융합과정을 거치고 인큐베이터에서 체외배양 과정을 거친 후 복제 난자로 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장한 복제 난자를 대리모의 자궁에 주입해,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쳐 복제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적으로 배아란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된 후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의 수정란을 뜻한다.


복제양 돌리가 유명했던 이유는 생식세포 복제가 아니라 처음으로 체세포 복제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역시 최초(2003년 2월(논문 발표는 2004년 2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를 성공시켰고 복제 수정란을 4∼5일 배양한 배아(배반포기 단계)에서 ‘줄기세포’라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배아줄기 세포와 성체 줄기 세포


줄기 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의 근간이 되는 세포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분열할 수 있는 자기-재생산(self-renewal)기능과 여러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 능력을 가진 세포로 정의된다.


식물의 줄기에서 자기-재생산과정을 거쳐 가지와 잎이 나오듯이, 배아시기에 줄기 세포는 대량으로 존재하며 자기-재생산 과정을 통해 근육, 신경, 심장 그리고 혈액 등 모든 조직과 장기로 다-분화된다. 성장 후에도 이 줄기 세포는 소량 남아 상처를 치유하는데 이용된다. 이때 배아시기에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조직과 장기로 분화될 수 있는 줄기 세포를 배아 줄기 세포라 하고 성인이 된 후 남아 있는 미량의 줄기 세포를 성체 줄기 세포라고 한다.


배아줄기 세포는 모든 장기를 재생할 수 있는 잠재 능력 때문에 ‘상품’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써 그 능력을 통제할 수 없다. 반면 성체 줄기세포는 주로 본래 자신이 있던 조직과는 성격이 같은 세포를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그 양이 적기 때문에 ‘상품’으로 매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특정 조직이 손상되면 치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통제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현실화된 치료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백혈병 치료로 사용되는 골수 이식이 바로 성체 줄기세포인 골수 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골수 세포에서는 혈구 세로를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체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는 기관으로 뇌, 골수, 말초혈액, 혈관, 근육, 피부와 간 등이 있다. 학자들은 성체줄기세포를 세포배양을 통해서 증식 시키고, 특정세포로 분화를 유도하여 우리 몸이 상처를 받거나 질병에 걸리면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인가 세포 덩어리인가? 


 가톨릭이나 반-낙태주의자들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즉시 한 영혼을 가진 생명주체인 태아로 간주한다. 체세포 복제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것이 아니지만 자궁 내에 착상시키면 인간으로 자라기 때문에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한다. 영국의 반-낙태주의자 단체 Life는 배아세포 연구를 신종-학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의 가족 연구위원회라는 보수주의 단체는 “나치는 일부 인간들을 ‘종속 인간’으로 분류해서 그들을 소모해도 된다고 했다. ... 사람들은 배아를 종속 인간으로 보고 있다.”라고 나치의 학살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수정란은 수정 후 두 배수씩 분열해 16개가 되면 딸기 모양의 세포가 되는데, 이때가 14일쯤 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인체의 근본이 되는 척추와 신경 등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14일 이전 단계의 세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세포 덩어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아 세포 조작을 통해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아를 인간이냐 세포덩어리냐의 논쟁을 인간중심(배아=세포덩어리) vs 생태중심(배아=인간)적 사고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큰 의미는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맑스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에 포함시키며, 인신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만약 생태 중심적 사고와 인간중심적 사고가 다르다면 생태계에는 이로우나 인간에게는 불리한 것들이나 생태계에는 불리하나 인간에게 이로운 것 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배아의 구분을 인간-비인간으로 구별하지 말고, 새로운 지위를 설정해서 배아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김환석, 배아의 사회학, 한겨레신문) 이 주장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연구는 신중에 신중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어떤 경우라도 민주적 통제가 용의해야 하고 연구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의미 있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배아를 둘러싼 논쟁에서 같이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낙태와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볼 것이며, 불임부부를 위해 인공 수정 후 남은 대량의 잉여 배아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현재 불임시료를 위한 인공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고 있고, 배아를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10만에서 50만 이상의 잉여배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잉여 배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폐기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잉여 배아를 대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논쟁의 한가운데 기독교로 무장한 부시정권이 있고 그가 배아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부시 정권은 전쟁으로 인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상당하고 있는 이라크를 위해 의료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그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배아줄기 세포의 경제학

 

치료 목적의 배아 복제 기술은 환자들에게 유전적으로 특별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은 일반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범용 치료제가 아니라는 뜻이므로 자본의 입장에서 큰 매력이 없다. 올해 황우석 교수팀은 배아 복제의 효율을 10배 증가시켰다. 작년에는 1개의 배아를 복제하기 위해 242개의 여성 난자를 필요로 했는데 이번에 기술을 더욱 정교화해서 올해는 10개 이하로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배아 줄기 세포를 통해 개발된 약이 모든 대중 약국의 선반에 진열될 정도의 상품으로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해 보인다.


특히 여성에게서 난자를 많이 얻기 위해서 과배란 처방을 해야 하는데, 한명의 환자 치료를 위해서 여성들에게 한번 혹은 두 번 정도 인공 수정시와 유사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 배아 복제 기술은 백만장자들을 위한 치료방법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배아복제 기술에 노다지가 보인다면 자본은 엄청난 투자를 감행할 것이다. 물론 그들의 관심에는 수백만 명의 고통 받는 환자들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주요 제약회사는 10년에서 20년 후에나 배아복제 기술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명확한 상품화 가능성이 보일 때 까지 공적자금을 이용하기하거나 중소 벤처기업들이 그러한 위험을 떠안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의 전략은 원천기술의 특허를 확보해 놓는 것이다. 원천기술만 확보 해놓으면, 혹시 모를 누군가가 치료약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EGE(European Group in Ethics in Science and New Technologies)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줄기세포 관련 출원이 2000건이 넘고, 그 중 1/4이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배아복제 실험을 거부하던 부시도 초기 배아줄기 세포에 투자한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 최대의 생명공학회사인 제론 (Geron)사 등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배아줄기 세포에 대해서만 연구를 허용했다.


문제는 여성의 보호와 상품화


이미 한국에서는 불임부부들에게 정자·난자를 판매하는 회사가 영업 중이며 법적으로 이들을 규제하는 법은 없다. 인간배아복제 기술이 성공해서 치료 기술로 이용된다고 해보자.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것은 난자 기증자일 것이다. 어떤 경우든 배아복제 기술이 자본주의 상품에 가까워질수록 여성 몸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교수 연구에서도 여성 기증자에 대한 논란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황교수는 올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 미국과 같은 수준의 윤리 기준을 준수했음을 밝히고 그때 사용된 [동의서]까지 실었다. 그런데 그의 연구를 조사한 두 명의 미국의 생명윤리학자들은 황 교수에서 D-의 성적, 그러니까 수우미양가로 따지만 ‘양‘의 점수를 주었다.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 생물학 윤리센터 소속의 데이비드 매그너스(소장)와 밀드레드-초인데,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 매우 높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주요한 이유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위험성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동의서]에서 환자들과 기증자를 구별하지 않았으며, 환자 자신의 난자를 실험에 기증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기술이 환자 당사자의 치료약 개발로 단기간 내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교수가 기증받은 난자 중에는 30이하의 여성으로부터도 기증받은 것도 있다. 30대의 여성으로부터 받은 난자의 경우 한 개의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30번의 처리를 해야 하는데 30대 이하의 여성으로부터 받은 난자는 평균 13번의 처리를 거치면 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선호한다. 이러한 사실은 작년 [네이처]지가 황 교수 팀에 제기한 연구실 대학원생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배아 복제 연구는 보다 공개적이고 엄격한 통제의 필요성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시사한다.


배아 복제 기술 정말 안전한가?


2001년 초 미국에서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아 뇌세포를 환자의 머릿속에 주입하는 실험이 있었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도파민(dopamine)의 결핍으로 인해 나타나는 병인데, 태아의 뇌세포가 도파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었다. 물론 이 실험은 배아 줄기세포와는 같은 실험은 아니지만 원리상 유사하다. 처음 1년 동안은 60세 이하의 환자들에게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그들 중 몇 사람은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심하게 몸을 뜨는 증세가 나타나는 등 치료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줄기세포 연구 결과로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가능성과 세포치료의 현실과는 아직도 많은 기술적인 괴리가 있다. 줄기 세포에서 조직 세포로 어떻게 분화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또 통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작정 주입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성공적으로 착상된 복제배아들 가운데 출산 뒤까지 정상적으로 자란 동물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유산(33%), 기형(12%), 급사증후군(22%), 거대체중증후군(8%)로 죽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복제된 배아의 줄기세포 치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 영국의 유명한 줄기 세포 과학자는 영국 의학 논문지에 배아줄기 세포로 “치료에 성급한 이용은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질병 혹은 프리온 질병과 같이 뇌에 독성 단백질이 모여 발생하는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배아복제의 마지막 종착지; 인간복제


배아복제 기술에서 항상 나타나는 것은 인간 복제의 유령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서도 어떠한 인간 복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명목으로 연구되고 있는 수많은 복제기술들이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인간 복제의 유령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실천윤리학 교수이면서, 의료윤리에 관한 유명 논문지에 영향력 있는 편집인이기도 한 사부레스쿠(J. Savulescu) 교수는 ‘복제 기술은 가장 위대한 과학 기술진보 중의 하나이다. 복제기술은 인간의 운명에 기회와 힘을 준다. 점차적으로 인공 번식이 자연 번식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회학자 이진경교수도 황우석 교수에게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인위적인 변이’가 가능해졌다면 이제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이’의 가능성을 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회학자나 윤리학자뿐만 아니라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 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복제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는..


대체적으로 배아복제연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더 나은 인공 수정기술 발전시키고, 치명적인 질병치료를 위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연구과정에서의 오용가능성이나 위험으로부터 배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는 적극적 우생학으로의 길을 열 수 있으며, 출산과 가족의 가치를 경시하고, 낙태를 조장하는 심각한 윤리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부시정부가 배아 복제를 굳건하게 반대하고 그의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 배아복제 기술에서 돈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자본가들에게 세금 감면 정책을 쓰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라크 전쟁으로 공적자금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이나 기타 자본주의 국가에서 배아 줄기 연구는 정부 주도로 공적자금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연구 결과의 공공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공적 자금은 단지 자본가들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기능만 할 뿐이다. 투자 위험이 높거나 미래에 상품화가 불분명한 곳에 공적자금의 연구비가 투여된다. 또 자본주의 기술 혁신은 상품화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연구 방향은 자본이 소유하기 쉬운 고수익의 상품 개발로 향해져 있다. 즉 개발된 치료 방법은 특허로 소유하거나 비밀로 포장할 궁리만 하지 환자들의 고통과 그 기술의 사회적 이용에 대한 고민은 그들의 대차대조표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공적자금이 투여되어 배아복제 기술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을 즈음, 이미 이 기술은 상당부분 사적으로 소유된 고가의 상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신체의 상품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아 복제 기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고 일부는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에서 배아 복제 연구는 과학기술의 생산, 분배와 함께 내용까지 다를 것이다. 배아 복제 과정에서 모든 윤리적-철학적 문제는 투명한 토론할 것이며 어떤 내용, 어떤 방법으로 연구할 것인지를 합의해 나갈 것이다. 합의하기까지 시간이 길어져도 결코 비효율적이지 않다. 모든 연구는 공동으로 상호 협력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한번 시작된 연구는 매우 효율적이며 빠르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는 모든 통신수단을 통해 빠르게 공유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약 산업과 바이오산업은 민주적으로 통제될 것이며, 이들은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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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변증법 II

이 글은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web page http://www.plp.org/misc/dialofmath.html에 올라온 글이며, 지난호(108호) 수학의 변증법 I (1. 산술연산의 변증법)에 이어지는 글로 수학의 변증법 II (2. 기하학의 변증법과 3.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 4.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학의 변증법 II

                                                       현장에서 미래를 109호

2. 기하학의 변증법


자연의 형상


기하학(형상, 도형의 수학) 역시 인간 실천의 필요성에서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서 기하학적 형태를 가져왔다. 보름달의 원, 초승달과 호수의 부드러운 곡선, 빛과 나무의 직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형태들이었다. 그러나 자연에서 실제 직선이나 정교한 삼각형과 사각형과 같은 도형을 발견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규칙적이고 정교한 물건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일상의 필요성 때문에 점차적으로 정교한 도형(figure)의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이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돌을 자르고 땅을 나누어 울타리를 쳤고 활시위를 당기거나 흙으로 그릇과 같은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매일 그 도구로 노동을 했고 또 더 정교하게 만들어 왔다.


자연의 형상에서부터 추상적 형상으로


 점차적으로 활시위는 직선이지만 항아리는 곡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반화 시켰다. 사람들은 물질에 어떤 형태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후 나무, 점토, 돌과 같은 물질에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을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형태 그 자체는 구체적인 물질에서 추상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곧은자로 수천가지 물건을 만들고, 수천가닥의 실타래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서야, 그리고 땅위에 수많은 직선을 긋고 나서야 직선이라는 일반적인(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직선은 이러한 특별한 경험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성질이었다. 이와 같이 실천적 활동은 기하학에서 추상적 개념의 기초가 된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직선을 그린다.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곧은자로 재조된 물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법칙


같은 식으로 길이와 면적 그리고 체적 등 기학학적 양의 개념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길이를 측정하고 거리를 결정하고 면적을 계산한다. 이것은 농부나 건축가들에게 매우 유용했는데, 이들은 실천적 활동을 통해 가장 단순한 일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들 들어 사각형의 면적은 두변의 길이의 곱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는 농부에게는 경작할 땅의 면적을 계산하여 다음해 수확 양을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기하학 "땅을 측량하는 것"


기하학은 인간의 실질적인 활동의 필요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하학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토지를 측량해온 결과로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일강에서 주기적으로 홍수가 범람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토지 측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기하학"이라는 단어도 "땅을 측량하다"는 그리스어에서부터 유래되었다)


BC 1700 시대의 이집트 문서에는 창고나 그릇의 용량을 계산하는 문제, 땅을 구획하는 문제 그리고 토목공사에서 길이를 계산하는 문제 등이 적혀 있다. 당시 이집트와 볼리비아인들은 가장 단순한 면적과 체적을 계산할 수 있었고 그들은 원의 지름과 원호의 길이의 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처럼 초기 산술연산처럼 기하학도 경험에서 유추한 법칙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기하학이 전해 내려옴에 따라 새로운 사실들이 축적되었다. 이후 축적된 사실간 상호관계가 밝혀지면서, 여러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기하학적 명제로 발전했다. 이렇게 해서 기하학적 이론과 증명의 개념이 발생하였고, 점차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유추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명제, 공리(axioms)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기하학은 점차적으로 수학 이론으로 발전해 갔다.


기하학적 기본단위(geometric body)의 정의


앞서 "수"에 대해 논의한 것과 같이 "기하학적 기본단위"도 정의할 수 있다. 가하학적인 기본단위는 밀도, 색 혹은 무게와 같이 다른 모든 구체적이 특성을 추상화해서 공간적인 형태만을 고려한 실재적인 단위(body)이다.


왜 기하학은 일상생활에 유용할까?


기하학이 넓은 응용분야를 갖는 이유는 산술연산과 같은 이유이다. 즉 기하학적 개념은 우리 주의 세계에서부터 추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점을 지나야 직선이 될 수 있다는 공리를 알기 이전에도 수없이 직선을 그려왔다. 그러한 원칙을 몰라도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유사한 것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종이위에 그려진 두 점, 들판에 박혀있는 두개의 말뚝, 도로 사이에 있는 두개의 전봇대 등에도 이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들은 구의 체적이 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여러 종류의 구형의 물체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 는 그리스 글자로 ‘파이’라고 읽는다. 이 파이는 원의 지름과 원 둘레의 비율이다. R은 원의 반지름으로 원의 중심에서 가장자리 표면까지의 거리이다) 이 공식은 물방울에도 우주의 별에도 베어링 과 야구공에도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다.

 

요약하면 산술연산과 같이 기하학도 실천적 경험과 추상적인 생각간의 연속적인 상호 침투(interplay)를 통해 나온 것이다. 산술연산과 기하학은 모든 수학에서 역사적이고 개념적인 두 개의 근원(뿌리)이다.

 

3.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 : 분수와 고차수학 


부엌 바닥 측정과 분수


김씨가 마루깔개를 깔기 위해 부엌의 면적을 측정한다고 하자. 김씨는 간단하게 발걸음으로 부엌 바닥의 길이가 얼마가 되는지를 잴 수 있다. ‘한발 두발 세발...‘ 방금 김씨는 산술연산과 기하학을 통일시켰다. 부엌바닥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김씨는 적절한 길이 단위를 적용했고, 그것의 몇 배인지를 계산했다. 첫 번째 행동(응용)은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고 두 번째 행동(계산)은 산술연산을 한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보폭으로 부엌 바닥의 길이를 계산하는데 이용했고 그리고 총 몇 걸음이나 되는지를 (수를 세면서) 계산했다.


김씨가 벽에 아주 가까이 와 벽까지 남은 거리가 자신의 보폭보다 작을 때는 어떻게 할까? 김씨는 보폭을 나누어서 훨씬 더 정교하게 부엌 바닥의 길이를 측정할 것이다. ‘부엌 바닥은 총 12걸음 반 정도군.’ 김씨는 보폭의 일부를 이용한 것이다. 이로써 김씨는 일반적인 숫자와 함께 분수까지 사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분수는 앞서 김씨와 같은 측정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옷의) 길이를 측정하고 (들판의) 면적을 계산하고 (물의) 체적(2리터 물)을 측정을 한다. 이렇듯 기하학과 산술연산을 포함해서 무수하게 많은 계산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분수를 발견한 것이다.- 그 과정은 김씨가 부엌 바닥의 길이를 측정할 때와 유사하다. 이렇게 인간의 실천적인 활동(노동)과 이전에 축적된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지식을 종합하여 새로운 개념인 분수가 탄생한 것이다. 


풀어서 익힌 계란의 철학 : 연속과 불연속


또 하나 변증법적 범주 중에 수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있다. 이것은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인데,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 것이다.


 

다음의 재미있는 예를 통해 이 변증법적 범주를 살펴보자. 날달걀 3개를 2명이서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나눌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달걀을 풀고 휘저어 익혀 나누면 된다.


불연속적인(분리된, 개별적인) 것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고 말할 때는 그것을 한번만 더 나누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특성이 사라질 때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의 1/3이나 날달걀의 1/2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만약 살아 있는 사람을 자른 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연속적인 것은 기본적인 특성을 잃지 않고 쉽게 나눌 수 있고 다시 합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별적인 날달걀은 나눌 수 없지만 풀어서 익힌 달걀은 쉽게 나눌 수 있다.


연속과 불연속의 통일(과 투쟁)


 

불연속과 연속은 항상 통일되어 있다. 이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절대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은 없다. 물리학자들은 한때 전자(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 중 하나)가 가장 기본적인 입자라고 했고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완전한 불연속적인 물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들이 발견되고 있다.


2. 완전하게 연속적인 물질은 없다. 풀어서 익힌 달걀을 한 조각씩 잘라서 점점 더 작게 나누어 보자. 점차적으로 작아져서 달걀의 특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어떤 작은 입자(예를 들어 분자)까지 도달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실재로 모든 물질은 연속과 불연속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수학에서 불연속성을 추상적으로 반영한 것이 숫자이다. 이와 유사하게 연속성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은 기하학적 도형(예를 들어 직선)들이다. 김씨가 부엌바닥을 측정한 과정은 수학에서 연속과 불연속의 통일 과정인 것이다. (연속적인) 길이는 (불연속적인) 단위(예를 들어  보폭)로 측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봤듯이 불연속적인 단위(보폭)도 나눌 수 있다. (그것은 불연속적인 단위가 연속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차원 추상과 "현실과 동떨어진(Far Out)" 수학


지금까지 어떻게 인간이 일상 경험들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해서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기본적인 개념에 도달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수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추상에서부터 다시 추상화하는" 훨씬 더 추상화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수학적인 개념을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수학적인 개념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개념 중에는 음수가 있다. 음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15도는 "영하 0도" 아래의 온도이다.(매우 춥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추상에서 추상화된 음수의 개념도] 실제 물리적인 측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수의 제곱근은 또 어떤가? 어떤 수의 제곱근이라는 것도 수의 한 종류이며, 그 뜻은 제곱근을 두 번 곱할 때 원래 수로 돌아오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9의 제곱근은 3이고 3에다 자기 자신 3을 곱하면 다시 9가 된다. 그렇다면 -1의 제곱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두 번 곱해서 -1이 되는 숫자일 것이다.


"상상의" 수(허수, imaginary number)는 새로운 진실을 밝혀낸다.


이 시점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면, 지극히 정상적이다. 당시 수학자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수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1의 제곱근은 존재한다고 하고 "상상"해서 만들어 버렸다. 수학자들은 그것을 "i"라고 불렀고 i에 i를 곱하면 -1이 되었다. i에 기초해서 "상상의" 수(허수)의 집합을 만들었다. 이것은 현대 수학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수는 실재적인 어떤 것과 대응하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 말이 맞다 허수는 확실하게 다른 수에 비해서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허수가 실재 물질과 직접적인 작용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추론을 통해-완전히 수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유도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수는 순수하게 정신작용으로 만들어 졌지만 이후에 연구자들에 의해 교류 전기를 설명하고 유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허수는 다른 수와 같이 단순하고 직감적으로 실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실재와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허수는 우리가 바로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새로운 실재적인 면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추상화라는 정신 작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상상의" 기하학


이와 같은 과정은 기하학에서도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잘 알려진 기하학의 원리들을 많이 정립했다. 그의 원리 중에는 직선위에 있지 않은 한 점을 지나고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만 있다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수학자들은 이 명제가 참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 원리를 만족하는 한 직선을 그리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오직 한 직선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19세기 수학자 로바체프스키(Lobachevsky)는 그 한 점을 통과하고 원래 직선과 평행한 직선을 적어도 두개이상 그릴 수 있는 기하학을 "상상"했다. 이러한 기하학은 단지 한 직선만을 그릴 수 있다는 "상식"에 반하고 있다. 그래서 로바체프스키는 그것을 "상상의(imaginary)" 기하학이라 불렀다. 또 한명의 19세기 수학자 리만(Reimann)은 다차원 공간의 개념을 개발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3차원 공간 속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다차원공간이란 명확하게 "상상의" 개념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새로운 기하학


이 상상의 기하학은 새로운 "비-유클리드"적인 공간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포함해서 아인슈타인의 여러 연구에 수학적인 틀을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기하학적 개념은 추론을 통해 나왔지만 실재 세계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이론을 기초로 해서 현실 세계에 대해 올바른 예측을 하고 있다. 이들 이론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리고 물리학이 새로운 수학에 심오하게 영향을 받듯이 새로운 물리학은 더 고차원 수학을 통해 더 깊이 있게 발전을 거듭한다.


 


4. 결론 수학-변증법


수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투쟁으로부터 나왔다. 물질세계는 변증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학이 변증법 개념의 풍부한 원천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동시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일반 원칙을 더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수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변증법은 기본 교육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기하학적 모양을 인식하고 수를 세는 과정에서 변증법적 개념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진실이므로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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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과 유한: 도대체 왜 닭은 길을 건널 수 없는가?


닭 한마리가 있다. 자 이놈이 어떻게 길을 건너는지 생각해 보자. (“왜 우리가 닭의 고민까지 해야 합니까? 이건 닭의 문제이지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라고 묻지 말기를..) 닭은 도로를 완전히 건너기 전에 도로의 절반을 지나가야 한다. 지금 도로 중간에 도착했다. 이제 절반만 건너면 된다. 나머지 절반을 건너기 전에 닭은 도로의 절반의 절반, 혹은 종착지에서 4분의1 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전체 도로 폭의 4분의 1만 남았다. 남아 있는 4분의 1을 지나기 전에 또 그 절반의 위치, 종착지에서 8분의 1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무한히) 반복된다. 불쌍한 닭은 도로의 반대편에 결국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닭은 쉽게 도로를 지나간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이 틀렸을까? 우리가 여기서 헛갈리는 것은 유한과 무한사이의 모순관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닭을 따라가 보자.


 

수학적으로 이 닭이 도로를 건너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도로의 절반, 그 다음에 4분의 1 그리고 그다음에 8분의 1씩 계속 지나갔다. 이것은 무한히 널어선 숫자들로 나타난다. 즉 1/2 + 1/4 + 1/8 + 1/16.... ('...'의 의미는 이 수열이 같은 형태로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이해하기 쉽게 닭이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동한 거리는 시간에 비례한다. 절반을 건너가는데 필요한 시간을 1/2시간이라고 하면 또 그 절반을 건너는 데는 1/4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총 시간은 1/2 + 1/4 + 1/8 + 1/16 ...가 된다.) 이것이 무한수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숫자를 무한히 더하면 얼마가 될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아무리 작은 숫자라도 무한히 더하면 결국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무한대)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닭의 예에서 헛갈리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비변증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1/2 + 1/4 + 1/8 + 1/16...의 합이 무한대라고 하면 닭은 아무리 걸어도 영원히 도로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닭의 운명은 도로를 건너기 전에 자동차에 치거나 뜨거운 태양 때문에 탈수현상으로 쓰러져 죽거나 사람들에 잡혀 통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무한수열 1/2 + 1/4 + 1/8 + 1/16....의 합이 무한대가 아니고 1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일렬로 무한히 널어선 숫자들(무한수열)을 무한히 더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값이 유한한 값 1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닭은  무사히 도로 반대편 도착할 것이다.


무한과 유한은 수학에서 그리고 모든 물질적인 실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것들은 유한하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 들어 죽는다. 죽은 후에 땅에 묻혀 썩어간다. 그러면 다시 박테리아의 일부가 되고 점차적으로 다른 식물과 동물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죽어버린 유한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유한이 되고 이 과정을 계속해서 무한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한한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이 닭 이야기는 유한과 무한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의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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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좌파4]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양자역학과 좌파4]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기관지노힘  제81호

A는 A이면서 A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파동으로 알려져 있던 빛이 입자와 같이 운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빛도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 관찰에 의해 증명되는데, 개기일식 때 별빛이 태양 주위의 중력에 의해 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1919년). 빛은 물질의 또 다른 존재형태였던 것이다. 엥겔스도 그의 책 [자연 변증법]에서 "에너지("빛, 운동")를 물질의 존재 형태이며 내재된 속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으로 드브로이는 입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본질적으로 파동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입자성이란 일정한 공간에 국한되어 있고 서로 충돌하는 특성을 말하며, 파동성이란 전 공간에 퍼져있고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중첩하여 보강-간섭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 두 개념은 상호 배타적이며 반대되는 개념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혼란에 빠진 이유는 미시세계의 이러한 물리적 특성을 “일반 상식”(특히 형식논리학)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식논리학은 ‘A는 항상 A와 동일하다(동일률).’ 와 ‘A는 A가 아닌 것 (not-A)과 같을 수 없다(모순율).’이라는 기본법칙을 가지고 있다. 근대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형식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형식논리학에 따르면 파동성이 A라면 입자성은 not-A가 된다. 그리고 A는 non-A가 절대로 될 수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A가 not-A의 특성을 나타내므로 모순율에 위배된다.


변증법의 핵심에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때 대립물이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통일을 이루면서도 서로 배제하는 가운데 서로 침투하는 관계에 있는 것, 즉  모순 속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모순 관계로 입자성과 파동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렇듯 형식논리학이 답을 주지 못하는 곳에서 변증법은 좋은 해답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변증법의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개념은 더 상세한 해명과 발전을 필요로 한다. 

 



미시세계의 우연성과 거시세계의 합법칙성 : 양-질의 전환


 양자역학에서 파동성과 입자성을 만족할 수 있는 물리적 해석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보른(Max Born)이었다. 일반적으로 파동성은 공간에 퍼져 있는 것이지만 입자성은 한 장소에 국한되어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른은 파동 방정식으로는 입자 자체를 기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보른은 한 장소에서 파동함수의 세기는 (입자를 관찰 할 때)  그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파동함수가 특정 위치에서 입자의 존재확률을 나타낸다.' 뜻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입자가 항상 명확한 경로를 지나간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된다. 즉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두 슬릿(구멍)을 통과할 확률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스크린 상에 도달한 전자는 두 슬릿중 적어도 하나를 통과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렇다면 간섭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른의 해석은 파동함수가 특정위치(예를 들면 스크린)에서 입자를 관찰할 때 그 곳에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미미한 차이 같지만 나중에 엄청나게 다른 해석으로 발전한다. 일단 ‘관찰’이라는 말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보른의 통계적 해석은 자연현상을 아이러니하지만 아주 정교하게 해석해준다. 이 해석은 입자 하나하나의 측정 결과를 정교하게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어느 곳에 얼마인지만을 예측한다. 그러나 입자가 실제 어디에서 발견되는지는 모른다. 이런 점에서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 매우 정확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유사한 시도들을 여러 번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평균적 분포를 양자역학만큼 정확하게 예측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중 슬릿 실험에서 엄청나게 많은 전자를 순차적으로 통과 시킬 때 스크린 위의 전자 분포를 그 확률로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러나 실제 개별 전자들이 어디에 부딪힐 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이러한 평균 예측 결과는 여러 과학자들의 정교한 실험결과들과 잘 일치한다. 양자역학으로 원자의 주기율표에서 부터 햇볕이 빛나는 방법이나 전자회로의 작동원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확률적 해석은 양자역학만의 특별한 해석이 아니다. 19세기에도 확률-통계학은 일반 물리학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기체 이론에서 개별 분자는 완전히 무작위적인(우연적인) 운동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기체를 구성하는 거대 분자 집합은 통계적으로 정교한 역학 법칙(필연성)에 지배받는다.


이러한 법칙을 큰 수의 법칙(law of great numbers)이라고 하는데, 하나하나의 개별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연에 의해 일어나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많은 수가 모인 집단에의 사건들은 일정한 규칙(합법칙성)을 따른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전체 인구로 보면 인간의 평균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변증법에서는 양-질의 변환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에 의해 미시세계에는 대한 우연성과 확률성이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거시세계에 까지 인과론(합법칙성)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연에도 종류가 있다.: 양자역학의 두 그룹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미시세계에 우연성이 지배하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우연‘에는 종류가 있다. 흔히 주사위를 던질 때 각각의 숫자가 나타날 확률은 1/6이고 결과는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은 자연법칙의 본질적인 우연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사위를 던져 나타나는 숫자는 초기 손에서 떨어질 때의 각도, 속도, 위치와 관련이 있고, 그때 바람의 세기와 방향 그리고 땅에 떨어졌을 때 탄성, 표면 거칠기와 모양 등등에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알면 주사위의 숫자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완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결과를 결정하는 많은 요인들을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더 깊이 있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연 현상의 본질적인 우연성 때문일까? 물리학자들 사이에도 이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 해석을 둘러싸고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그룹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특성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는 어떤 원인(숨은 변수)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룹에는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그리고 드브로이가 있다. 또 한 그룹은 자연이 근본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요인, 즉 완전한 우연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는다. 이 그룹에는 양자역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그룹으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있다. 

 

참고문헌

1. The Möbius Trip (강추)

2. 맑스주의와 현대과학(번역중)

3. 정리되는데로 링크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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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변증법I-산술연산의 변증법

 

 (*)  현대의 과학기술은 수학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학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지금 연재중인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수학에 대해 쉽게 설명된 글이 있기에 번역하였다. 이 글은 미국의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web page http://www.plp.org/misc/dialofmath.html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1편 산술연산의 변증법에 이어, 2편 기하학의 변증법 그리고 3편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서는 먼저 1편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 글은 [현장에서 미래를] 108호에 실려있다.

 

수학의 변증법 I


번역(*) 김영식

수학은 우리 생활의 한부분이다. 잔돈을 계산할 때도 도로 지도를 읽을 때도 책꽂이를 만들 때도 그리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때도 수학을 사용한다.


이 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먼저 수학이 매우 변증법적이라는 점이다. 수, 도형, 공식 전반에 걸쳐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과 범주는 작동한다. 수학을 이해하는 것은 변증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의존한다. 


두 번째는 수학적 생각이 실제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의 법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소수 천재들의 머릿속에서 마술처럼 생겨난 것도 아니다. 수학적인 생각은 인간의 실천의 필요에서 부터 나왔고 실제-삶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1. 산술연산(Arithmetic)의 변증법


몇 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하고 있나?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핫도그 파티를 하고 있다. 몇 개의 핫도그를 요리해야할지 알아보려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핫도그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 그러자 세 명의 아이가 손을 들었다. 한 아이는 금발에 스파이더 맨 옷을 입고 있고 또 한 아이는 검은 머리에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마지막 한 아이는 갈색 머리에 빨간 목욕신발을 신고 있었다. "음, 세 명! 핫도그 세 개를 요리하면 되겠군."


일상적인 판단이지만, 이러한 과정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른 것이다. 즉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같은 것’과 ‘다른 것’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자 하나씩 살펴보자. 아이들은 모두 달랐다. 한명은 금발이고 한 명은 검은 머리이며 나머지 한명은 갈색 머리였다. 또 한명은 스파이더맨 옷을, 또 한 명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목욕신발을 신고 있었다. 김씨는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같은지에만 주목하였다. 즉, 아이들은 배가 고팠고 핫도그를 먹고 싶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몇 명인지를 세었다. "한넘, 두넘, 세넘" 김씨는 아이들이 가진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핵심 범주 : 구체(Concrete)와 추상(Abstract)


김씨는 수학의 핵심인 구체와 추상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구체"와 "추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중 하나인 철학적 개념이다.


"구체(Concrete)"는 라틴어로 "결합하다. 자라서 하나가되다"는 뜻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어떤 것의 구체적인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하면 그 사물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면을 이야기 할 것이다. (건축 자재로 콘크리트(Concrete)를 생각해 보자. 콘크리트는 광물성 재료 모두를 한데 썩고 굳혀서 지하실 벽 재료로 사용된다.) 첫 번째 아이를 보고 금발에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이 구체적인 특징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추상적 개념을 이용 한다.


많은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추상적인 생각은(사유는) 박사학위를 받은 "가방끈이 긴" 소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추상(abstract)"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떨어뜨리다. draw away"의 뜻에서 나왔다. 어떤 것을 마음속에서 추상적으로 다룰 때, 그 사물의 구체적인 면을 뒤로한다(즉 무시한다).


"추상"은 "실제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사물이나 과정에서 나타나는 추상적인 특성은 구체적인 특성만큼이나 실제적이다. 앞의 예에서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도 여러 아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추상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추상화시킨 개념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머리색이나 옷을 만큼이나 실질적이다. 게다가 모든 사물에는 구체적인 면만큼이나 많은 추상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김씨가 핫도그 요리를 하면서 뒤뜰에 있는 사람들과 한 쌍의 고양이와 나무들을 보았다고 하자. 만약 그가 본 사람들과 고양이 나무들의 특별한 면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 모두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특징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배고픈 아이들에 대해 또 다른 추상적인 면을 찾아보면, 그들은 (고양이와 같이) 네발로 걷지 않고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사물의 현상을 추상적으로 보는 것이다.


추상과 구체 : 배고픈 아이들이 몇 명인지 세는 것


앞에서 아이들을 셀 때 김씨는 그들의 구체적인 특징, 즉 그들의 머리색과 옷을 무시했다.(즉 추상화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명의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와 다른 한명의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는 같기 때문에, 그들이 몇 명인지를 셀 수 있었다. 이때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들이 머리색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수를 샌다는 것은 추상화시키는 능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더많은 배고픈 아이들,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


핫도그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더 있다. 두 명의 아이들이 더 달려와 핫도그를 요구했다. 그러면 김씨는 앞에서와 같은 과정을 밟을 것이다. 새로 달려온 아이들의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무시하고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의 수를 세고, 두 명임을 확인할 것이다. 앞에서는 3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했고, 지금 2명이 더 왔다. “음 그러면 3+2=5. 모두 5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하고 있군” 


여기서 김씨는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 단계로 옮겨갔다. 더 이상 3과 2의 숫자가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의 개념에 메이지 않는다. 김씨는 완전히 3과 2의 숫자를 아이들의 특징으로부터 분리해서 완전히 추상적인 숫자를 가지고 정신적인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3과 2의 숫자로 산술연산을 한 것이다. 그래서 불판위에 핫도그를 몇 개를 올려놓아야 할지를 확신을 가지고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인간은 숫자로 투쟁했다.


이제 김씨의 핫도그 파티를 떠나 2-3천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인간의 초기 역사를 살펴본다면 김씨가 핫도그 파티에서 생각했던 것과 유사한 인식 발전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어떤 물건을 셀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수의 개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옛날 사람들은 숫자에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더미 들이 각각 얼마나 큰지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 사람들은 20개 통나무 한 묶음이 5개 통나무 한 묶음보다 크다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통나무의 개수는 모호하게나마 장작과는 분리할 수 없는 특성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특성이 (20이나 5와 같은)특정한 수로는 이해되지는 않았다.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수


인간발달의 다음 단계에서, 수는 여러 물건들의 특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는 아직까지 물건과 구별될 수 없었고, 숫자 자체도 물건과도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옛날 일부 사람들은 숫자 5를 대신해서 "손"이라는 단어를, 숫자 20을 대신해서 "사람 전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20"은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만큼을 의미했다. 숫자 5와 20은 손가락과 발가락과 분리된 추상적인 수로 이해되지 않았다.


거대한 진보 : 추상적인 숫자.

옛날 사람들은 물건의 개수를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숫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어떤 물건들이 더 많은지 서로 비교하면서 구분할 수 있었다. 장작더미 혹은 소떼 들을 이런 식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이런 비교는 의식주를 위한 일상적인 활동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수백만 번 이런 활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비교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추상적인 숫자"(한명의 소년과 같은 것을 ‘구체적인 수(명수)’라고 하고, 단지 하나, 둘과 같이 숫자만 때 놓은 것을 ‘추상적인 숫자(무명수)’라고 한다.)개념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통나무 5개나 20개가 아니라 그냥 "5"나 "20"이 되었다. 이 추상적인 숫자는 구체적인 통나무 묶음이나 소떼들에서부터 추상화된 개념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수는 수세기 동안 실제 사람들에 의한 육체적 노동(통나무, 바위, 동물들에 대한 노동)과 정신적인 노동(물건들의 수를 비교하는 것)의 결과인 것이지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마법사에 의해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 아니다.


수의 정의


다음은 수학책에서 읽을 봤을 법한 수에 대한 "엄격한" 정의이다. 이 정의로 부터 숫자의 개념이 일상의 물건들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 투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는 물건들을 여러 개 모아놓은 것의 특징이다. 그 물건들을 모아 놓은 것과 숫자는 서로 1대 1로 대응하는데, 그러한 모음들에 공통적이다. (핫도그 5개와 장난감 5개에서 5라는 숫자와 1대1로 대응하고 5개라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이 특징은 그런 대응이 불가능한 모음과는 다르다.“


함께 쌓아 올리는 것 : 산술연산(산수)의 기원


(추상적인) 숫자는 옛날 사람들이 물건더미들을 매일, 매년 비교하면서 나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모아 놓은 물건들을 비교했을 뿐만 아니라 모아 놓은 물건들을 서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만약 5개의 통나무더미와 7개의 통나무더미를 각각 1개의 묶음으로 묶어 놓았다고 해보자. 만약 두 묶음을 합친다면 12개의 통나무 더미가 될 것이다. (통나무 더미처럼) 물건더미들을 반복해서 연산을 한 결과, 사람들은 수를 가지고 연산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숫자를 더하는 것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모음들을 함께 놓거나 합치는 것과 같다. 곱셈은 아마도 같은 수의 모음들을 셀 때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들 들어 두개씩 묶어 놓은 물건이 4개가 있다면 모두 8개가 되고, 세 개씩 모아 놓은 물건이 2묶음 있다면 모두 6개가 된다. 빼기와 나누기 역시 같은 방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즉, 물건들을 모아 놓은 더미를 다루는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왔을 것이다.


수의 법칙

수를 세는 과정에서 옛날 사람들은 물건과 분리된 숫자들만의 관계를(특히 5와 7을 더하면 12가 된다)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법칙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매일 경험을 통해 옛날 사람들은 더하는 순서를 바꾸어도 같다는 결과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5개의 장작더미를 먼저 세거나 7개의 장작더미를 먼저 세어도 결과적으로 모두 12개의 장작더미를 갖게 된다. 5와 7을 더하면 12가 되고 7과 5를 더해도 역시 12가 된다(나중에 수학자들은 숫자에 대한 여러 가지 많은 법칙들을 발견했다. 이것이 숫자 이론의 기초가 되는 원칙이 되었다)


산술연산에서 핵심은 숫자들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들 관계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것들 사이의 관계를 추상화한 이미지이다. 산술연산은 (많은 지도자급 “학자”들이 믿어 왔던 것과는 다르게) 순수한 사유(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반면에, 산술연산은 실질적인 노동 속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특징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그것은 많은 세대의 장구하고 실질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수학 기호(심벌)는 수천가지 물건에 대해 가치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물건들의 수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수에 대한 개념이 생겼고 숫자에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 사회생활이 더 복잡해짐에 따라 점점 더 큰 가축 떼들 혹은 교환하기 위한 상품들의 개수를 셀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그 숫자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해  숫자의 기호(심벌)와 이름을 더 편리하게 개선해야 했다. 


숫자에 기호(심벌)를 도입한 시기는 명백하게 인간이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이후 기호(심벌)는 숫자들 사이의 연산으로, 예를 들어 덧셈에 대해서 + 기호(심벌)로 발전했다. 이러한 숫자와 수학적 연산에 대한 기호(심벌)는 산술연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것 보다 “종이위에 계산 하는 것”이 더 쉽게 느꼈다. 수학적 기호는 머릿속(정신적인) 연산을 계산으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계산은 글씨로 적을 수 있었고 모든 계산 과정을 볼 수 있게 하여,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계산은 정확한 규칙에 의해 지배받게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줄에 있는 숫자를 다한다고 할 때, ‘첫 번째 줄을 먼저 더하고 그 다음에 10번째 줄로 가져와서 더해라“는 식의 연산이 가능하다.

기호(심벌)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큰 수를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만약 한 친구가 김씨에게 “일곱(칠)”이라고 말했다면 김씨는 일곱 개의 물건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기호 “7”을 생각할 것이다. 이 “7”은 추상적인 숫자 “일곱(칠)”에 대해 명백한 틀을 형성한다. 18759와 같은 큰 수에 대해서, 그것을 어떤 물건들이 이 숫자만큼 있다고 마음속에 그리면서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큰 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18759”와 같은 기호(심벌)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호의 발명은 숫자의 발견을 더 용이하게 하였다. 이 발견은 직접적인 관찰과 수를 세는 행위와는 관계없이 발생했을 것이지만, 큰 수에 대한 연산은 고대 사회에서 세금을 걷거나 무기를 만들거나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했을 것이다.


왜 산술연산은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유용할까?


왜 산술연산이 식료품가계나 경기장 등에서 이렇게 많이 도움이 될까?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 과정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산술연산의 결론과 개념은 수천 년의 세월과 경험에서부터 나왔다. 이러한 개념은 추상적인 형식 속에 사람들이 생활하는 실제 세계를 반영한다. 아이들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나 장난감을 셀 수 있고 밤하늘에 별을 셀 수 있다. 산술연산은 이러한 것들의 일반적인 특성들로 부터, 즉 특별하고 구제적인 것에서 부터 추상적인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산술연산이 이렇게 생활에 유용한 이유는 산술연산이 많은 실제 상황에 대해 모두 적용할 수 있게 일반적인 특성(추상성)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술연산의 바로 이 추성성은 그것을 아주 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추상성은 공허한 추상(빈-추상)도 아니며, 신비스러운 어떤 것도 아니다. 이 추상은 당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는 사람들, 당신의 조상들의 오랫동안 실천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호에는 기하학의 변증법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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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1

수학과 실제 세계에 대해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순수수학에서 단순히 정신의 창조물과 상상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수와 도형의 개념은 현실세계에서 유래한 것이지 결코 다른 곳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사물의 개수를 세는데 있어 최초의 수단이며, 처음으로 산술계산을 가르쳐 준 것은 손가락 열 개다. 그러므로 산술연산은 ‘정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숫자를 세기위해서는 어떤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에서 개수 이외의 다른 모든 특성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오랜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발전한 결과이다. 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도형의 개념도 전적으로 외적 세계에서 유래한 것이지 결코 머릿속의 순수한 사유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형체를 가진, 그리고 그 형체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사물이 있어야 우리는 도형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순수 수학은 현실세계에서 공간적 형태를 취하고 양적인 관계를 갖는 것-즉 매우 실제적인 소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재가 대단히 추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소재가 외적 세계(실제 세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표면상으로 감추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것의 형태와 관계를 순수 그 자체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와 관계가 담고 있는 내용자체를 분리해서 무시해야 한다. 그래서 부피가 없는 점, 부피와 넓이가 없는 선, a와 b, x와 y 변수와 상수가 나오고 결국 처음으로 정신 자신의 자유스런 창조물과 상상물, 즉 상상적인 양에 도달한다. 


상호관계로부터 명백하게 유도된 수학적인 크기는 그것이 선험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합리적인 상호 연관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직사각형의 한 변을 중심으로 회전시키면 원통이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불완전한 형태로 나마 무수하게 현실적인 직사각형과 원통을 연구한 결과였을 것이다. 다른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수학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학은 토지 측량 및 내용물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계산하기 위해 그리고 시간을 계산하고 (기계)역학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유적 분야에서와 같이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추상된 법칙이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마치 현실세계 밖에서부터 유래되어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처럼 독립된 어떤 것으로 현실세계와 대립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와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순수 수학도 바로 실제 세계에서 유래한 것이고 또 실제 세계의 구성형식의 일부분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이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세계에서 나왔기 때문에 적용 가능한 것이다.

-엥겔스, 반듀링론 page 46 (새길)

 

BOX 2.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추상의 중요성을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전계되는 사유는 -만약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때.............-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 가까이 접근한다. 물질이라는 추상, 자연법칙이라는 추상, 가치라는 추상 등등 한마디로 말해 모든 과학적인(올바른, 진지하게 생각하는, 무의미하지 않는) 추상들은 자연을 보다 깊게, 보다 정확하게 보다 완벽하게 반영한다. 생생한 직관에서 추상적인 사유로 그리고 이 추상적인 사유로부터 실천으로-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는 변증법적인 길이다. (강조는 레닌)

-레닌, 철학 노트 page 120(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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