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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철학 IV

 *) 노동자와 과학철학III은 현장에서미래를 2006년 9.10월호(제123호)에 실려 있습니다.

 

[번역]노동자와 과학철학 IV

[출처]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포퍼주의 철학의 빈곤


일부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합리한 것은 없다.

- 키케로 Cicero, 예언에 대하여 De Divinatione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일종에 코미디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가장 거만하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과학적인 이론들이 다른 모든 철학 사조를 밀쳐내고 그들 스스로 과학 철학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파티에서 불청객과 같은 지식인이었다. 때때로, 파티에 사람들이 너무 얌전하거나 떠들썩한 것을 싫어해서 문을 닫지 않고 파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그 불청객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만약 누군가가 안에서 ‘그래 괜찮아 그들은 내 친구야’라고 소리친다면 [그 불청객이 파티에 참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양자역학의 발전에 닐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들은 함께 일했으며, 소위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접근에는 차이가 있다. 보어는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적 과학자였고, 하이젠베르크는 더 철학적으로 접근이었고 한동안 논리 실증주의 이론을 받아 들였다. 결과적으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전체에 주관적 관념론의 정신이 스며들었다.

 

이러한 경향이 철학의 영역에서 ‘현대과학’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들은 과학자들에게 그들의 작업을 가르쳐야 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과학 철학이라면 모든 과학자들은 그것들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사실 바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혹시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정신분석학에 그들이 한 일들을 보기 바란다[1].

 

문제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위 논리적 타당성의 기준은 실제 과학 실천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실천적 과학자들은 과학철학자들이 세운 기준에 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이없어한다. 그리고 파티에 불청객이 떠들거나 말거나, 파티에 시끄러운 불청객을 피해서 부엌에 가 있는 사람처럼 과학자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수행한다. 물론 그 과학자들은 시끄러운 잡음을 내는 불청객을 막을 수는 없다.

 

가장 시끄러운 불청객 중에 한 사람이 칼 포퍼였다. 마치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처럼 포퍼는 그 스스로 과학 철학자로 명명했다. 그리고 특정 주제에 대해 국민투표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전 세계 규모의 재판을 열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맑스에 반대해서 맹렬하게 논쟁하는 중에, 그는 많은 (완전히 일방적으로 해석한) 과학적 방법에 대해 글을 썼다. 이런 난센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현대 철학에서 공백의 척도를 보여 준다.



귀납과 연역?


포퍼는 1934년에 당시, 비엔나에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포퍼는 귀납적인 방법을 완전히 거부했고 모든 결론은 논리적 연역으로만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포퍼는 관찰에 기초한 귀납적 방법을 배제하였다. 포퍼에게서 “과학적으로 가치 있다.”는 증명서를 받기 위해서, 과학 이론들은 내적으로 연속성이 있어야 하고 같은 말을 반복(동어 반복)하지 않아야 하며 실험해야 할 것들이 예측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는 논증의 결과는 이론을 증명할 수 없고 단지 거짓임을 입증(반증)할 수만 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참신하게 들린다. 그리고 형식논리학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과학에서의 실천과 관계가 거의 없다. 한 물리학자는 “포퍼의 생각은 전략적으로 튼튼해 보이지만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허술하다. 바꾸어 말하면 (형식 논리학적) 이론은 정교하지만 구멍이 많은 우산처럼 의도한 목적을 위해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귀납(라틴으로 inducere 유도하다)은 논증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알려졌지만 베이컨과 갈릴레오가 지지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논증 형식으로써 귀납법은 개별 사실들로부터 일반 명제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항상 경험에 기초해서 일반화를 시킨다(이끌어낸다). 종종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귀납적 논증의 예를 들어보자. 한 아이가 불에 손을 데였다. 그리고 경험에 따라 불에 너무 가까이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불은 (일반적으로) 탄다.” 이것이 귀납적 논증이다-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이끌어 내는 방법. 이 경우 결론은 유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완전히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칠면조는 매일 아침 손에 옥수수를 든 친절한 숙녀의 방문을 받았다. 귀납적 논증법에 의해 칠면조는 이 친절한 숙녀의 방문은 바로 음식을 의미한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수백 번-364번- 반복되는 동일한 경험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이 농부의 아내가 도살장 칼을 쥐고 나타났다. 여기서 칠면조의 귀납적 논리는 문제가 있으며 존재의 딜레마를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 귀납법은 어떤 한정된 수의 계체를 이용해서 전체 계체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여기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특정 수의 계체를 통해 연구한 요소들에서 전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연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연적 연관관계를 발견하는 일은 자세한 관찰과정을 포함한다. 그래서 귀납적 방법은 물질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중요시하고 개별 사실로부터 일반화를 시키는 방법이다.


연역적 방법은 귀납적 방법에 정확하게 반대 개념이다. 연역법은 논리학의 법칙에 의해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전제로부터 결론을 유추해 내고 증명하는 방법이다. 연역적 방법은 특별한 경험에서 시작하지 않고 소위 공리(axioms)로부터 시작한다. 공리는 처음부터 올바르다고 가장된다. 이것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고전 기하학은 유클리드 공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 절대 진리, 즉 시간과 환경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연역적 논증은 일반 법칙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귀납과 연역사이의 투쟁은 17세기, 두 명의 위대한 과학 사상가-베이컨과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사람인 베이컨은 실증주의와 귀납법의 아버지였다. 그는 관찰된 사실만으로 이론을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베이컨은 관찰에 집착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그는 눈으로 닭고기를 보관하는 실험과 같은 냉동기의 초기 실험 과정에서 얻은 기관지염으로 죽었다.

데카르트는 베이컨과는 대립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과학에 접근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그의 모델로 받아들여 순수 이성으로부터, 의심스러운 감각의 증거들에 의존하지 않고 일관되고 정합적인 이론(consistent and coherent theorem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성주의적 방법으로 프랑스의 전통이 되었다. 베이컨의 경험주의는 운하를 건너 타 지역에서 발전하였다. 두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과학의 원인을 진보시켰고 중요한 발견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연역법과 귀납법 각각으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베이컨의 문제는 [관찰된] 사실들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무슨 관찰을 해야 하는 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초기 이론(가설)이 필요하다. 게다가 귀납법의 결론은 항상 일시적인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수백 마리의 백조를 관찰한 사람이 모든 백조가 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자. 이것은 귀납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어떤 백조는 검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 결론은 잘못되었다. 엥겔스는 관찰에만 의존하는 실증주의는 결코 적합한 필연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연변증법, p. 304.)

 

우리는 귀납적 논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칼 경(Sir Karl Popper)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귀납법을 부정하는 것은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불길로 뛰어드는 격이 된다. 귀납법은 과학에서 그리고 모든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바다 물이 소금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할까? 포퍼가 과학에서 귀납적 방법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연역과 귀납법 사이의 진정한 관계와 과학이 실제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연역적인 방법은 수학에만 거의 배타적으로 사용되었다. 20세기에는 물리학, 생물학, 언어학, 사회학 등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학문들이 대표하는 주장은 인상적이지만 공리적-연역법은 과학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귀납과 연역의 논쟁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실제로 귀납법은 연역법과 항상 같이 존재한다. 어떤 것도 방법으로써 자기 완결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연역법과 귀납법을 실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측면, 즉 서로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결정하는 것으로 결합시킨다.


이미 이코노미스트지(Economist)의 한 기사에서도 포퍼가 귀납적 방법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비판들이 지속되어 왔다.


“많은 철학자들 역시 포퍼가 귀납법을 거부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귀납법은 논리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세계에 대해 연역적 추리는 그들이 발판으로 삼고 있는 세계에 대해 가정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기본 가정들로부터 내린 결론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결과를 해석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가정은 귀납법에 의존한다. 가설을 설정할 때 그리고 그것을 검증하고 해석할 때 모두 과학자들은 하나의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자연이 지금 여기에서 움직이듯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도 똑같이 움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귀납적인 가정이다.

 

제니퍼 트러스티드(Jennifer Trusted) 박사는 귀납법에 대해 올바른 견해(in perspective)를 밝힌 영국의 철학자이다. 그녀는 귀납법은 본질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실재 세계의 지식을 얻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연역법에 대해서도 똑 같이 말할 수 있다. 고 지적한다.”


이 마지막 의견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물질의 핵심에 다가간다. 귀납법이나 연역법 중 둘 중 하나를 취하면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이 둘을 결합해야 하며 이것이 변증법적인 것이다. 연역법은 결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귀납은 연역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모든 연역은 최종 분석에서 물질적 실재로부터 유추되어야 한다. 이것은 ‘순수 이론’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공리도 사실은 물질적 실재로부터 유추된 것이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공리 중 직선은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거리라는 것도 사실은 오랜 관찰과 경험의 결과이다. 엥겔스는 연역법과 귀납법 이 두 가지 방법을 서로 각각 취했을 때 그 일면성을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종합과 분석처럼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편파적으로 다른 하나를 희생하며 하나만을 찬미해서는 안 되고 각각을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 또 그것들이 상호 내재되어 있고, 서로를 보충관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적용해야 한다.”(자연 변증법 p. 302.)

 

예측할 수 있는 것만 과학인가?


모든 결론을 연역법에 의해 이끌어 내야한다는 포퍼의 주장은 실재 과학 실천 활동과 맞지 않는다. 사실 입자 물리와 우주론과 같이 연역적 방법과 추상적 추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과학 분야도 있다. 그러나 이 분야는 깊고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포퍼가 주장했듯이 새로운 가설은 증명할 수 없다. 상당히 불충분한 한데도 단순히 가장 최선이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공학자들이 물질의 스트레스와 스트레인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후크의 법칙이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1981년 이코노미스트 지 12월호 과학 부분에 매우 통찰력 있는 글에서 (불행히도 저자명이 없다) 과학에 대한 포퍼의 견해는 탐구 분석에 있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결과를 ‘예’ 혹은 ‘아니오’라는 대답으로 제한할 수 없는 실험결과들이 많이 있다. 또 극단적으로 해답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소위 측정하고자 하는 신호에 대한 잡음비 때문이다. 만약 실험을 여섯 번 반복하여 단지 두 번만 예측된 결과가 나왔다면 그 예측은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여섯 번 중에 네 번은 실험은 잘못된 것인가? 생물학에서 이러한 결과들이 일반적이다. 자연의 변덕은 악명이 높다.


과학자들은 명확한 답을 추구하지만, 종종 덜 명확한 답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어떤 예측된 이론에 대해 확실히 반증된 결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반증된 것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완전히 격리된 가정만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과학자들은 검증된 가정들 이외에도 지식의 피라미드로부터 훨씬 더 많이 생각을 가져온다.” (이코노미스트 12월 26일자, 1981, p. 101.)


반드시 정확하게 예측 가능해야지만 과학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조건은 실재 과학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천체 과학자는 때때로 지금부터 수백만 년 전 별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윈은 백만 년 이후에 어떤 종이 진화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지질학자는 지진이 발생할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기상학자에게 희망을 갖지 않는다. 현대 컴퓨터와 인공위성 기술로 그들은 최대 3일 정도로 기후를 어떤 정확도내에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덧붙이자면 천문학조차도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정확한 과학은 아니다. 우주론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들이 있다. 다음별이 태어날 장소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천문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예측의 본질과 실험적인 ‘검증’의 형식이 실험실 시험관 규모에서부터 천문학적 거리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 다양하지만 실재과학은 확실히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예측과정을 포함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예측할 수 없고, 예측 자체가 없다는 이유로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 여러 과학이 존재하고 여러 예측들이 있다. 단순히 선형계에 속하는 예측은 매우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복잡계는 정밀하게 예측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모든 인공위성과 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정확하게 3일 이상의 날씨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상학은 과학일까 아닐까?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산뜻한 실험실의 실험도 지질학의 이론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질학은 과학이 아닌가? 병원 의사의 예측은 무엇인가? 최고의 의사도 진단할 때 실수를 하고 때로는 그 실수가 치명적일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의학은 과학인가? 확실히 그것은 물리학류와 같은 정교한 과학은 아닐 것이다.


심리학의 영역에 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과학으로써의 심리학은 여전히 유아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가장 복잡한 영역에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추동하는 기본적인 힘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완성되고 정리된 생각들(body of ideas)을 아직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 대중들의 복잡한 행동을 다루는 사회학에 까지 오면 어마어마한 양의 변수들로 인해 예측이 이중 삼중으로 어려워진다. 물론 이 경우 예측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인간사회에서 행위에는 어떤 패턴이 있고 어떤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명확하게 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실천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지만 예측도 할 수 있다. 단지 실험실에서와 같이 정교한 실험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을 뿐이다.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향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예측은 경험에 비추어 수정되고 부가되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정되어야 한다. 결국 이 이론들은 어떤 사건들에 의해 수많은 이유들로 반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유능한 의사의 진단이 오진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의사의 진단을 일반적으로 비과학적인 업무이며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려야할까? 아니면 다시 오진의 원인을 분석하여 그것으로부터 다시 배워야 할까?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사회적 진화를 지배하고 있는 일반 법칙이 있고, 그 법칙들을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하다고 믿는가? 만약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그러면 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그러면 그것을 이해하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과학이 아주 작은 양의 귀중한 화석으로 아주 오랜 과거에 인류발전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러면 왜 지난 10,000년 동인 우리 종족의 진화를 결정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포퍼 교수에 게서 나왔다. 포퍼는 이러한 시도들을 모두 가증스러운 역사주의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우리는 멀리 떨어진 은하계에 대해 그리고 가장 작은 입자 물질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지만, 만약 우리가 사회에 대한, 역사에 대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시도 한다면 그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포퍼의 논리가 정말 과학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형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 어떤 기득권 이익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미래 우리가 살기를 원하는 사회 형태에 대해 혹시 그들에게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그들은 과학과 무관하다.


연역법과 특히 형식논리학을 부각시키려는 포퍼의 시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일면적이고 경직된 풍자를 하는 중세시대 독재적인 교회의 21세기판과 같다. 다시 한 번 과학을 엄격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관념론자들의 도식으로 구속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하는 절대 진리의 권위를 주장하려는 것이다. 불행히도, 통제되지 않고 반항적이며 모순적인 자연은 그러한 처분에 맥없이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모순이 없는 논리학은 그 속에서 해답을 줄지 모르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꼭 맞는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가 봐왔듯이 21세기 논리학과 수학은 그것 내부의 [논리적] 모순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은 참인가 거짓인가?) “다음 문장은 거짓이다. 앞 문장은 참이다.” 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여러 ‘변칙’들이 해결되고 있는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칼 포퍼의 아류들은 아무런 걸림돌 없이 자신들의 철학이 인간의 사상 전체 영역에 대한 법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천연 그대로의 물질세계에 과학이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고 대부분 비선형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점은 과학과 과학철학이 서로 맞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칼 포퍼는 이러한 불일치에 대해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만약 과학이 엄격한 검증의 원칙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과학을 위해 더 불행할 뿐이다! 이 위대한 사람이 이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는지 들어 보자.


“과학은 확실하거나 잘 정립된 진술로 이루어진 시스템도 아니며, 최종 상태를 향해 착실하게 진보하는 시스템도 아니다. 우리의 과학은 지식(episteme)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심지어 확률처럼 진실을 대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과학은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 가치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그것은 단지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진리와 가능성 어느 것도 얻을 수 없지만 지식에 대한 노력과 진리 추구는 과학 발전의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추측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추측은 우리가 어떤 규칙성과 법칙을 밝혀내거나 발견할 수 있다는 비과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생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믿음에 따른다. 베이컨처럼 현재의 과학에는- ‘사람이 지금 일상적으로 자연에 적용해서 추론할 수 있는 방법’에는- ‘예감, 성급함 그리고 미성숙 그리고 편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리스 Ferris 인용, pp. 797-8, 강조는 저자.)


1936년 옥스퍼드 아리스토텔레스 학회에서는 듀링(Herr Duhring)의 전통을 이어 받아 전형적인 온순한 스타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이 강의를 본 사람은 적었지만 이후 강사는 이 강의를 회상하며 화를 내며 말한 적이 있다. “청중들은 [칼 포퍼의 철학을] 농담이나 역설로 받아들이며 웃으며 박수를 치더군요.” 확실히 그 청중들은 칼 포퍼를 알지 못했다! 강사는 의도된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심을 말한 것이었다. 포퍼와 그의 제자들에게 과학의 목적은 세계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단시 체스나 교체 단어 퍼즐과 같이 형식 논리학의 연습과 같은 것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그들은 과학의 발전이 전대미문의 정상을 도달한 21세기 초에 과학은 실제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우리의 견해는 다음의 판단과 같다.


“이론과 사실사이에 차이는 존재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론을 가정한다. 그 사실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확실히 진실임을 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이론은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는데, 논쟁을 통해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된다. 논쟁할 것 없이 명확한 것은 알려진 사실들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뿐이다.

대체적으로 과학은 ‘진리’이다. 사람이 중세시대보다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물론 어떤 과학적 발견은 거짓이며 과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을 알려낼 때 종종 약간씩 비이성적일 때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에 진실에 대한 강력한 척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남은 대안은 소가 아플 때 마녀를 탓하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같은 책, p. 103.)


일반적으로 포퍼주의와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은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주장들이 실재 과학과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은 과학자들의 태도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에 동정적이라고 기대했던 과학자들도 포함된다. 코펜하겐에서 과학자들과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양자역학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회의를 마친 후 닐 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로서는 실증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모든 실증주의자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현대과학의 과정에 철학적 편견을, 정당화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면 정당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 철학 개념에 과학적 개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철학자들이 논쟁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무시해야 하는 가짜 문제로 생각한다.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는 실증주의자 주장은 확실히 인정할 수 있지만, 단순히 깨끗하고 명료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폭넓은 이슈들에 대한 모든 토론들을 의미 없다고 하는 것은 그리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양자 이론을 이해하는 것에도 방해된다.” (페리스 인용, p. 822)


유명한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논리 실증주의자들을 단지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를 욕설과 같은 것, 잘해야 비과학적 사상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예전 철학자들이 정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상과 고민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해 보인다. - 이 점은 닐 (보어) 역시 동의했다. 사실 종종 이들 사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해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것들을 항상 현대 언어로 변역하고, 새로운 해답을 던져주는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페리스 인용, p. 824.)


마지막으로 실형을 구형하기에 앞서 논리실증주의 측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증인-하이젠베르크-를 불러 보자. 사실 그는 처음부터 원자 수준이하에서 ‘불확실성(비결정성)’을 주장하였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관찰을 통해서는 물리적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한마디로 논리실증주의를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심오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로써 하이젠베르크는 물리세계의 객관적 진실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결국 자칭 과학 철학자의 불합리한 주장은 그도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었다.


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실증주의자들은 단순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확실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 더 핵심이 없는 철학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불확실한 모든 것을 생략해 버린다면 아마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이나 그러나 하찮은 동어 반복적인 것들만 남게 될 것이다.”(같은 책, p. 826.)


건조한 사막에서 수십 년 동안 방황 후, 마침내 가장 전향적인 과학자들은 자연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철학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의 출현은 과학철학의 협소함에 깨부수는데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해 주었고 자연의 변증법적 견해에 접근했다. 생물학자 스튜터트 카우프만(Stuart Kaufmann)이 왜 그가 철학을 거부했는지에 대한 그의 결론에서 현 철학 사상에 대한 신세대 과학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내가 철학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 속에 어떤 경솔함을 믿지 않는다. 현 철학자들은, 적어도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철학자들은, 세상속의 사실들이 아니라 어떤 개념과 그 개념이 의미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을 통해 당신이 말한 것이 설득력이 있고 적절하고 통일성이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마첼 월드롭, M. Waldrop, 복잡성 Complexity, p. 105.)


영국속담에 “소인은 하찮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있다. 이들은 과학에 대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과학은 과학에 대해 ‘진정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버린다. 단지 복잡한 질문을 단순하게 대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불평을 한다. 이렇듯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이러한 낡은 주장은 문에 박힌 못처럼 쓸모없는 것이다. 맑스가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에게 말한 것을 바꿔 써보면, 과학철학은 이 세상에 있기에는 너무 과분하다.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니체(Nietzsche)와 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로 대표되는 19세기 비-합리주의자에 근거하고 있으며, 아주 다양한 형태와 정치적 색체를 띄고 있다. 종교적인 경향(마르셀(Marcel), 야스퍼스(Jaspers), 베르다예프 (Berdyayev)와 부버(Buber))과 무신론적 경향(하이데거 (Heidigger), 사르트르 (Sartre), 까뮈 (Camus))이 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극단적인 주관주의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선호하는 단어-슬로건에 의해 반영되어 있다. 예들 들면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 ‘공포’ ‘걱정’ ‘죽음을 향한 존재’ 등이 그러하다.


독일 수학자였다가 철학자로 바꾼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에 의해 주관주의 경향은 이미 예견되었다. 그의 ‘현상학’은 중심에 자아를 갖는 개인, 직접 경험된 것으로 개인세계에 기초를 둔 주관적 관념론이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도 확실히 종교적이며 신비주의적이었다. 그는 철학의 목적이 ‘존재의 계시(revelation)’라고 하였다. 장-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nothingness)의 두려움’, ‘선택의 자유’, ‘의무’”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의 일부 지식인층에서 나타난 분위기를 표현한 것으로 ‘대 전쟁’이후 자유주의의 심각한 위기, 그 결과로 나타나는 대 격동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직시하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개인에 의존해서 대안을 찾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수반되는 절박한 숙명적인 느낌과 무력감 그리고 ‘공포’들이 그들의 글을 채우고 있다.

 

실존주의는 독일고전철학과 계몽운동의 합리주의- 미쳐가는 세상 속에 잘못 놓인 합리주의에 반작용으로 비이성적인 것을 옹호하였다. 실존주의자들은 독일 고전철학자들이 세상을 주체와 객체(대상)로 나누는 것을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주체와 객체의 통일이 바로 존재이다. 존재를 알기 위해서 중요한 임계 상황, 예를 들어 죽음에 직면해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사람에 “직접적으로 가까이”있다. 그래서 존재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의 중심에는 선택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있다. 여기서 자유란 무한히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개인의 ‘선택의 자유’이다. 그리고 자유는 필연과 반대되는 대립물로써 완전히 추상적인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주의주의(voluntarism)로 귀결된다. 이것에 따르면 개인은 객관적인 주위 환경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사회로부터 격리된 개인들의 ‘자유’를 의미하며, 바로 로빈슨 크루소의 ‘자유’이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유의 문제를 추상적인 도덕(윤리)의 문제로 돌려 버린다. 그러나 실천적으로 자유는 아주 구체적인 문제이다. 현실에서 사람이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속박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낭떠러지로 뛰어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존주의에서 현대 철학을 완전하게 통합(융해)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장-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맑스주의와의 통일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물과 기름은 썩기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사르트르의 사상을 철학사상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철학은 다른 여러 철학 특히 데카르트와 헤겔로부터 빌려 온 개념들을 무질서하게 혼합해 놓고 있다. 결국 앞뒤가 맞지 않고 총체적으로 불일치를 보이며 허무주의와 비관주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불합리한 존재의 본질 때문에, 사르트르에게 근본적인 철학적 경험은 혐오감, 매스꺼움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모든 것은 무(nothingness)로 용해되어 버린다[2]. 이것은 헤겔의 풍자이다.[3] 헤겔은 확실히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르트르의 저서에서 헤겔 주의적 특수용어는 헤겔의 가장 불명료한 문장조차도 명료한 모델로 보이게 하는 식으로 사용된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는 지식인, 적대적인 세계에 직면해서 격리된 지식인의 무력감이다.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개인주의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사르트르의 유명한(악명 높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옥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 어떻게 이러한 전망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혁명적 낙관주의와 일치할 수 있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르트르의 일관성에 대해 비난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은 베트남과 프랑스 1968 학생과 노동자들의 운동에 연대하는 등 진보적 운동을 지지에 대한 그의 명성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인 견해에서 사르트르는 맑스주의에는 완전히 낯선 것이다.(끝)


[1](역주)비트겐슈타인은 이천 년간 내려온 철학의 문제들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그것을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퍼에 따르면 점성학, 형이상학,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프로이트주의 정신분석학과 같은 사이비과학은 반증가능성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경험과학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Adolf Grunbaum는 정신분석학은 반증가능하며, 사실상 틀렸음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과 옹호자들 간의 논쟁은 때때로 매우 격렬해져서, 이러한 논쟁들은 프로이트 전쟁으로 불린다.(위키 백과)


[2] (역주)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우연성(偶然性)’과 ‘무상성(無償性)’으로 대표된다. 인간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3](역주) 실존주의는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정신을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임을 주장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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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철학 III

*) 노동자와 과학철학II는 현장에서미래를 2006년 5월호(제119호)에 실려 있습니다.

 

[번역] 노동자와 과학철학 III

[출처] 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언어 철학의 막다른 골목

나는 형이상학론자들에게 스캘린(Scalinger)이 바스크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샹포르(Chamfort)의 <잠언과 단상>(Maximes et Pensees), ch. 7.)

1929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캠브리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논고, Tracticus>에서 밀고 나갔던 입장에서 많이 달라졌다[1]. 초기에 의존했던 논리-원자론에 대한 생각에 반대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기묘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언어는] ‘과학적 시스템’을 대변한다는 초기 모든 주장을 거두고, 후기에 와서 그는 체계적인 사유보다는 방향감의 상실을 나타내는 연결되지 않은 문장과 느슨한 언급들에 관심을 두었다. 체계적 사유를 위해 우리는 수학 철학, 윤리, 미학 등에 사용되는 발음들을 분리해왔었다.

언어가 엄격한 원칙으로 환원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접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언어는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한줌의 선험적인 원리로 결정될 수 없다. 러셀(과 초기 <논고, Tracticus>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기저에 기호 논리학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형식논리학과 수학은 언어[를 대표하기에는] 지독히 나쁜 모델이다.

로크(Locke)는 생각을 의미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올바른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규칙은 스스로 죽었다며 반대했다.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의 손에 있는 자(Ruler)와 같이 그것은 단지 한 줄의 단어일 뿐이다.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모른다면 사람을 강제할 수도 심지어 지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상(image)이 언어 표현을 위한 표준(규칙)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올바르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a) 개인의 정신적인 삶 속에서 뿜어 나오는 것은 이 사람이 혼자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
b) 그런 ‘사적’ 언어는 결코 언어가 아니다.
c) ‘사적’ 언어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사적 언어 정의에 따르면 당사자를 제외하고 어떤 사람도 그 언어에 접근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후기 저작에서는 해체 과정을 보여 준다. 후기 저작은 상호 관련성 없는 격언들, 일부 유용한 식견이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사실 ‘학파’가 형성될 정도는 아니다. 일부는 스스로 비트겐슈타인 주의(G.E 앤스콤, 노만 말레온 등)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은 주로 ‘일상 언어’나, ‘상식’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를 형식 논리학적 규칙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언어 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있으므로 어떤 한계 내에서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수백만 년 이상 진화되어 방대하고 풍부하게 변화된 강력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형식논리학에서 규정된 좁은 한계내로 환원할 수 없다. 형식논리학은 극단적으로 제한된,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사고방식이다. 이 방식은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수학의 원리>에서 형식 언어로 확립하였는데, 이 논리학은 참 아니면 거짓으로 나눌 수 있는 진술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면성을 잘 보여준다. “너희는 맞으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하라. 그것을 벗어나는 모든 것은 악에서 비롯된 것이다(마태복음 5:37).”

그러나 일상 언어는 이처럼 제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좁은 세포 속에 가두려는 시도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예’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고, 명령을 하고 약속을 하거나(혹은 깨거나) 믿음을 표현한다(이러한 것은 모두 논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확실한 것만큼이나 확률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다가 감정과 감성을 나타내고 표현하다. 이것들은 수식으로 나타낼 수 없지만 확실히 사람의 삶에 있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수학의 원리>의 전체 구성이 얼마나 임의적이며 표면적인지를, 즉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논리학 시스템”을 개발해서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형식논리학의 근본적인 오류를 분명히 지적하고 자진해서 부닥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다. 형식논리학은 그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논리학자들 중 어떤 그룹은 배중률(A는 B가 아니다)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발전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더욱이 동일률(A는 A다)은 그 속에서 모순율이 유도되기 때문에 그것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러셀과 함께 언어를 그의 임의적인 시스템에 강제적으로 맞추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전체적인 접근이 잘못되었고,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그리고 언어 속에는 확실히 유사하지만 상당히 다른, 심지어는 모순되는 의미를 가진 것들도 있다. 이미 헤겔은 <논리학의 과학, The Science of Logic>에서 이것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언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현대 과학에 중요한 업무이고 정보 기술 및 “인공 지능” 연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구를 언어의 구조에 대한 추상적인 연구로 제한 한다면, 사람의 성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에 실제 내용과 의미를 부과하는 사회와 물질세계 그리고 신경계와 뇌의 작용 심리학과 생리학과 별개로 진행한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 연구를 순전히 문단 구조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언어의 사회적 역사적 토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그 세계의 한계로 보았다. 이누잇족(에스키모)의 언어는 다른 언어보다 눈(snow)에 대해 더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눈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훨씬 더 정교하게 분류할 수 있다. 이들에게 눈의 종류는 사냥하는데 중요하고, 그러므로 생존과 관련이 있다. 이와 유사한 예는 모든 언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어는 긴 기간 동안 사회적 발전의 산물이다. 언어의 내용과 형식은 반복적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매우 유연하고(fluid) 복잡한 현상을 강제적으로 임의적인 ‘논리적’ 족쇄에 속박하려는 시도는 잘해야 언어를 과도하게 단순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최악의 경우 많은 철학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단순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반대로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카르납(Carnap), 라이헨바흐(Reichenbach) 등에 의해 대표되는 논리 경험주의 학파는 논리 실증주의 주류 경향을 대표한다. 이것은 모든 철학을 언어의 논리적 분석, 그리고 구문론적 분석(1930년대 까지)과 의미론상 분석으로 환원해 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물질세계의 존재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실증적인 과학 언어”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객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도적인” 형태로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파는 초기 입장에서 진보하고 있다. 철학적인 일반화논리를 버리고 특정 연구 영역에 대해 집중하면서, 논리 연구 분야에 있어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에이어(A. J. Ayer)

[‘당신에게 영광이 있어라!’ 그런데 네가 말하는 ‘영광’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고 엘리스는 말했다. ‘아주 꽤 죽이는 말을 했다는 뜻이야’ 그런데 ‘영광’은 죽이는 말이라는 뜻은 아니잖아. 엘리스는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험프티 덤프티는 다소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내가 단어를 사용할 때, 나는 그것의 의미도 내가 선택한다는 뜻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루이스 캐롤 Lewis Carroll,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에이어(A. J. Ayer)의 글은 신-실증주의 사상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읽힌다.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매우 난해해 몇몇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에이어의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 Language, Truth and Logic (1936)>와 〈지식의 문제 The Problem of Knowledge〉(1956)는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적은 대중서이다. 에이어의 기본 가정은 ‘실증적인 과학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감각을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는 낡은 실증주의자들의 철학을 요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cf. 로커의 유명한 문장: “감각이 우선하지 않고서는 마음속에는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마흐처럼 에이어의 모든 입장은 거의 표절이다. 에이어는 주관적 관념론을 거부하는 척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단지 감각-내용(sense-contents)(마흐의 감각-인상)만을 알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지식의 문제>에서 그는 [주관적 관념론을 반대하는 척 하면서 실재로] 소위 소박한 실재론(소박한 유물론)에 반대하는 마흐의 정직하지 못한 주장을 거의 모두 반복하고 있다. 이런 속임수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러한 철학에 의해 옹호되는 ‘소박한 실재’는 필경 가장 값싼 궤변이다. 정신병자나 관념론 철학자의 제자가 아닌, 건전한 사람의 ‘소박한 실재론’이란 사물이나 환경, 세계가 우리의 감각이나 의식과 독립하여, 또 우리의 자아나 인간 일반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그것은 높은, 작은, 노란, 단단한 등등의 나의 감각의 단순한 복합체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굳은 확신을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동일한 경험(마흐주의자의 의미에 있어서가 아니라 일반인의 의미에 있어서)이 또한 사물이나 세계, 환경이 우리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감각, 우리의 의식은 외적 세계의 모사에 불과하고 이러한 모사는 모사되는 것(실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은(실재, 모사되는 것) 모사하는 것(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다. 유물론은 의식적으로 인류의 이와 같은 ‘소박한’ 믿음을 그 인식론의 기초로 삼는다.” (레닌 저작선, Vol. 14, p. 69-70.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p. 70)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저서들이 갖는 공통된 특징은 논리적 왜곡이 이상한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식의 문제>에서도, 에이어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정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질문에 전체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빨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같은 것에 집착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는 독자의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사과 말을 전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누가 이빨이 아프다고 했을 때 그 존재 혹은 그들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한 이 지겨운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고 [요약만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완전히 꾸며낸 일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약간의 인용을 한다.

“만약 내가 내 자신에게 아프다고 애기하면 나는 오직 나 혼자만 의식하고 있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고통스럽다는 신호를 밖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호가 아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라고는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표현한 것 중 일부는 의미가 달리 전달되거나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게 김씨가 아프다고 애기 한다면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김씨가 고통의 신호를 보였다는 점, 그의 몸이 그렇고 그런 상태라는 점 혹은 그가 그렇고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내가 김씨에게서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테제[소박 실제론]에 대한 명확한 반론은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품고 있는 의미를 똑 같이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누가 나에게 아픈지를 물어 보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내 대답은, 내가 이해하듯이,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다. 나는 나의 감정 상태를 이야기 했지만 그는 단지 나의 육체적인 상태를 묻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내 대답이 틀렸고 해도, 그는 완전히 나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적당한 고통의 신호를 보여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나를 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명확히 다르다.” (에이어, 앞의 책 pp. 214-5.)

이러한 정신훈련 (mental gymnastics)을 하는 이유는 에이어 스스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 결국 유아론-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개념-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흐를 통해 논리 실증주의가 물질세계의 객관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론은 피해갈 수 없다. 마흐와 같이 에이어도 회의주의의 일종인 유아론에 반대하는 척 하는 핑계거리를 찾았지만 유물론(소박실재론)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의주의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만약 이 이론이 옳다면 정신과 육체 사이에 구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별은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이 이론이 나타내려고 하는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의 요새 내로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요새의 높은 벽을 관찰할 수 있겠지만 그 벽을 통과할 수는 없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 내면에 있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같은 책, pp. 215-6.)

마흐와 같이 에이어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결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그는 실재로 철학적인 견해를 통해서 회의주의에 반대한다는 실질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결국 그는 ‘상식’에, 물리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에,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이 관찰하기 전에도 세계는 존재한다는 사실에 호소하게 된다. 이것은 그 자신의 진술에서 논리적으로 유추(연역)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주장은 객관세계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 보다 더 일관성이 없다. 문제는 얼간이들과 얼간이들의 논리로 논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리학과 윤리학

텔레비전이 없던 평화로운 옛날, 사람들은 공포소설을 읽곤 했다. 보통 남자 주인공은 묶여 있고 반면에 여자 주인공은 죽음보다 더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독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다음 장을 넘긴다. 다음 장에서 마침내 위대한 주인공은 “단번에 자유롭게 되었다”는 유명한 문구와 함께 해방된다.

윤리 철학의 영역에 왔을 때, 과학 철학은 소설속의 영응만큼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과학철학의 정신적 조상 격인 흄(Hume)은 사실(matters of fact)로부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당위적인 것, what ought to be) 결론을 유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증의 원리라는 좁은 관점으로 윤리 전체는 터무니없고 가장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철학자들은 ‘선’과 ‘악’의 정의에 대해 수 세기동안 그들의 머리를 괴롭혀 왔다. 그러나 과학철학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험적인 증명”하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모두 정리해 버린다. 이 모두를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무의미하다)고 규정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선’에 대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위대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칸트 헤겔에 의해 논의되어 왔고 마침내 맑스와 헤겔에 와서 윤리는 초-역사적인 카테고리(범주)가 아니라 항상 그 시대를 반영하지만 사회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기존 사회와 경제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며 명확하게 계급적인 태도와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윤리의 역사적 상대성은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closed book)이었다. 그들에게 윤리는 사회관계와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의식의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단지 언어의 문제!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은 수세기 동안 위대한 사상가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는데, 그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단어 분석으로 환원시켜 모든 것을 한 번에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윤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현실 생활 속에서 무엇에 기초하는지를 묻지 않고 그들은 윤리적 판단과 조건(terms)의 정의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의 품질 증명서인 겸손을 내세우며, 새롭고 혁명적인 단어-‘메타윤리학’을 고안해 내었다. 그들은 메타윤리학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윤리학 이론이라기보다 추상적이며 형식적인(scholalstic) 개념으로 실재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다. 윤리의 근원에 대한 실질적 연구는 하지 않고 그들은 끊임없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논쟁한다. 그리고 ‘선’, ‘악’, ‘악마’, ‘의무’와 같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통해서 윤리학을 이해하려하고 있다.

부정확한 방법은 부정확한 결론을 이끌어 낼 뿐이다. 과학철학자들은 자연 과학의 관점에서 도덕적 의미를 접근한다. 일반적으로 논리 실증주의의 임의적인 카테고리(범주)는 사실상 물리학에는 의미가 없을 뿐더러 윤리의 영역에서 훨씬 더 무의미하다. 이 방법이 만들어내는 세기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선과 악은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결과는 자명하다. 이것들은 과학적이지 않으며 형이상학적인 가짜-개념(pseudo-concepts)이다. 이것은 자존심 강한 과학철학자들이 삿대로 더듬어서 알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거짓-개념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 그것도 사회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무지와 고집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과학철학자의 계시를 들으며, 그들 방식의 오류에 집착하고 거짓-개념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고 거짓-이슈에 대해 논쟁한다. 결국, 과학철학자들은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그들의 연구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세상에 문을 굳게 닫아 버린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가치판단을 수학과 논리학처럼 “반드시 과학의 부속물일 필요는 없다.” 더욱이 언어관례(linguistic convention)나 정의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골치 아픈 점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은 선한 것이라 주장하고 어떤 것은 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믿음이 너무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증명할 수 없다는 설명을 아무리 여러 번 해주어도 그들은 고집스럽게 그 믿음을 고수한다. 더욱 심한 것은 사람들이 행동하는데 있어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것까지 즉, 셔츠를 사는 일에서부터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에 의해 의미 없고 관련 없는 것이라고 삭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있어서 때로 아주 중요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설명을 필요로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단순히 문제꺼리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릴 묻고 육식 동물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실증주의에서는 도덕성이 주어진 상황에서의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은 단순히 “나는 도둑질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도덕성은 완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마음 상태로 환원된다. 어떻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아주 잘 변하는 대상에 대해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완전히 미스터리다. 더 미스터리한 것은 그런 집단적인 마음 상태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혹은 종족 공산주의 사회 중 어느 시기냐에 따라 어떻게 반대로 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논리 실중주의자들이 가치가 있으려면 그들이 누울 자리에 그 속에 누워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격식도 없이 논리학, 수학, 윤리학, 도덕성을 추방했기 때문에 예전 보다 훨씬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이 과정에서 종교나 형이상학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불가지론을 유지하였으며,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슈화하지 않고 회피했을 뿐이다. 마치 예의바른 사람이 저녁식사 테이블에서 불쾌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종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큰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 종교의 환상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을 반대하기 때문에 불가지론은 올바른 방향으로 반보 진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게 반보이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방대한 영역에서 다시 낡은 난센스를 복권시키고 있다.

현재 ‘분석 철학’ 지지자들 중 일부는 아마 그들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신과 육체의 차이와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점점 더 이론은 물리적 틀의 기준 없이 정교화 되고, 주어진 공리(axioms)로부터 연역(deduction)된다. 그 결과로 다시 이론(theorems)이 되고 수식으로 정교화 된다. 더욱 열악한 것은 사실들이 이들 이론에 강제적으로 맞추어진다는 점이다. ‘분석 철학’의 옥스퍼드학파는 철학은 ‘선험적 규율(priori discipline)’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철학자들은 관찰하지 않더라도 분석을 위해 필요한 개념을 미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배가 ‘터지기’전까지 배를 부풀리는 이솝우화의 황소개구리처럼 ‘분석 철학’의 자부심은 터져버리고 있다. 분석철학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일상 언어의 뿌리를 찾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의 오용으로부터 실수를 드러내는 것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단지 혼란에 혼란을 쌓아 올리고 있고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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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며, 전기는 <논리철학논고>로, 후기는 <철학적 탐구>가 대표한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언어 논리가 오해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철학의 과제는 언어의 논리를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오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 중대한 잘못을 비판하고 언어의 다양성, 언어와 행위와의 관계 등에 주목하고서 언어놀이(language gam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제 언어는 더 이상 실재의 그림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극히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파악된다.
이리하여 언어는 실재를 그리는 것으로 본 전기에 비해, 후기에는 언어와 삶의 형식의 관계로 그 축이 바뀐다. http://www.nalm.info/critics.html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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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se change/9-11 미국자작극이라는 다큐.

 

무지 재미있네요.

9-11이 미국 자작극이라는 다큐가 구글에 올라왔습니다.

혹시 보셨나해서..

상당히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한번 보시죠.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2301934902458285549

공식 web site

http://www.loosechange911.com/

관련 web site

9-11 Loose Change Second Edition Viewer Guide

 

-------아래 과학겔러리 인용-------

미국 정부가 911사태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영화배우 Charlie Sheen의 의견에 동의하냐는 CNN 투표결과인데 동의가 무려 83%였답니다. 미국인들도 상당수가 loose change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지요. 단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는 동화에서처럼 모두가 겁이 나서 말을 못 하고 있는거죠.

과겔흉아 글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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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겔에서 나온 요약문.. 역쉬 과겔 찌찔..

다음 두 링크를 보시면 간단히 사진과 같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특히 2번이 정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1. 과겔 흉아 요약글1

2. 과겔 흉아 요약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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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에 대한 반박글

http://en.wikipedia.org/wiki/Loose_Change_(video)

 

관련 신문기사

“9·11테러는 美정부의 조작?”9·11음모론 동영상 화제

Documentary 'Loose Change' challenges truth about 9/11

9/11 conspiracy movie taken off the web
500 Conspiracy Buffs Meet to Seek the Truth of 9/11

The 9/11 deniers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47208.html ('06, 08. 07)

 

좀 지난 기사

이스라엘, 미국 테러 주범 의혹

 

 

 

WTC 건물 붕괴 의혹에 대한 미국 NIST의 공식 답변

http://wtc.nist.gov/NISTNCSTAR1CollapseofTowers.pdf

http://wtc.nist.gov/pubs/WTC%20Part%20IIC%20-%20WTC%207%20Collapse%20Final.pdf

 

공식답변에 대한 반박 web site 및 NIST에 대한 반박글

website 

반박 기술 논문(Jim Hoffman)

물리학자의 반박 논문(Steven Jones, a physicist at Brigham Young University )

911review

 

911위원회 보고서

 the 9/11 Commission's report

 

기타

911Truth.org

911Cour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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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철학 II

[‘노동자와 과학철학I’은 현장에서미래를 제113호(2005년 11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번역]노동자와 과학철학 II

[원문]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현장에서 미래를  제119호

비엔나(Vienna) 학파

 

1차 세계대전 이후, 루돌프 카르냅(Rudolph Carnap)이 이끄는 비엔나 학파는 승리의 환호 속에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학파를 출범시켰다. 그들은 "철학은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세상에 선전하였고 이후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상표가 붙은 철학은 "과학적 방법"을 독점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철학자에게 자칭 과학 철학의 용어를 엄격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들의 교리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즉시 비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되고 더 심하게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선언되어 어둠 바깥으로 버려진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이빨을 갈고 으르렁거리면서 소위 과학 철학으로 다져진 최고의 지성으로 맑스, 헤겔, 프로이드,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성 오그스틴 그리고 모든 완고한 형이상학론 대가들을 비난하고, 또 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카르냅은 지각(perception)에서 시작해서(<<세계의 논리적 구조,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World>>, 1928) 의미론(<<언어의 논리적 구문론, The Logical Syntax of Language>>, 1934),으로 간 다음에 논리학(<<의미와 필연, Meaning and Necessity>>, 1947)에서 끝을 맺고 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명확하게 생각하는 것(clear thinking)"를 목적으로 1922년에 <<논리 철학 논고, Tracticus Logico-Philosophicus>>를 펴내었다[1](여기서 확실한 가정은 이전에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의 품질 보증 마크는 상당한 겸손이라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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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논리 철학 논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철학의 목표는 사유의 논리적 명료화이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해명으로 이루어진다. 철학의 결과는 많은 '철학 명제'가 아니라 명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유의미한 논술은 a)논리학과 수학의 형식적 문장과, b)특수과학의 사실적 명제 중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2) 사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언표는 어떻게 그 언표를 검증할 수 있는지를 밝힐 수 있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3) 1)의 두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언표는 무의미하다.

4) 도덕적·미학적·종교적 가치에 관한 모든 진술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 몇 줄의 문장을 기준으로 이천년 인류의 사상을 아무런 노력 없이 버려 버린다.

만약 논리 실증주의의 이 작은 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나 나폴레옹(Napoleon)이 치룬 모든 전쟁은 단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이다. 또 신과 악마, 변증법적 유물론, 심리학적 분석,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테레스(Aristotle)의 저서, 스피노자(Spinoza)의 저서, 성경, 코란과 토라(Tohr)[2]도 역시 모두 아무 논란 없이 버려야 할 것들이다.


히틀러(Hitler)의 집권 후 카르냅과 그의 동료들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에서 그들의 사상은 상당한 세력을 얻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다양한 이름의 논리 실증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고 있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논리학에서 인식의 문제로 돌아섰고 마지막에는 단어와 기호(심벌)를 가지고 노는 불모지 어문학으로 끝을 맺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목적은 철학에서 형이상학을 제거하는 것이다. 뜻이 좋다고 결과까지 좋다는 법은 없다! 뒷문으로 대범하게 버린 것이 즉시 창문으로 들어와 버린 꼴이다. 그들은 관념론자들의 형이상학과 공평하고 정당하게 싸우지 않고 (이것은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적 입장을 일관되게 받아들여야 가능한 것이다) 철학적인 핑계꺼리를 찾았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태도는 잘하면 불가지론이나 부끄러운 얼굴을 한 일관성 없는 유물론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주관적 관념론의 늪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치는 것은 극단적인 사유의 빈곤, 협소한 형식주의, 실제 내용 부제, 전체적인 전망에 대한 지적 비급함이다. 인간 사유의 진보, 특히 과학의 진보는 위대한 사상가(과학자)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사상가(과학자)들은 그 당시에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에도 뛰어난 원자론자이며 이론가들이 많았는데, 과연 그들이 당시 기술로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자론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과학철학자들도 [논리 경험주의자들처럼] 데미크리토스(Democritus)와 에피크루스(Epicurus)의 [원자론을] "의미 없는 형이상학"이라고 비난했을 지도 모른다. 


논리 실증주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습관적으로 맑스주의가 여러 정치적 분파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가지고 비웃는다. 그러나 이 상황은 논리 실증주의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옥스포드를 근거지로 무어(G. E. Moore)는 지식이론과 윤리에 대해 "실재주의적이고 상식적인" 접근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영국적 경향을 대표한다.


20세기 초반에 러셀(Bertrand Russell)과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당시 팽배한 여러 종류의 사이비-헤겔주의적 관념론에 반대해서 "새로운 논리학"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1910-12에 출판했다. 이것을 뉴턴의 명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프린키피아,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의 이름을 따서 <<수학 원리, Principia Mathematica>>라고 이름 지었다. "철학의 기원은 수학자들의 성과에 달려있고, 수학자들은 초라한 논리와 주체의 오류를 정화하는 일을 한다." (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p. 783) 이런 종류의 자화자찬은 논리 실증주의 전체의 전형적인 경향이었다. 그들은 과거 엥겔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뒤낭(Duhring)처럼 화려한 말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진실은 머리위에 거꾸로 서 있다. 세계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분석해야 이해할 수 있고, 더 심하게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분석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이 이미 1908년에 비판한 바 있는 마흐(Mach)의 <<경험-비판론 empirio-criticism>>에서 보여준 낡은 신비주의를 또 만나게 된다. 러셀은 [철학의] 중심 주제를 물리적 대상이 우리의 감각 외부에 존재하는 지로 후퇴시켰고 왜곡시켰다[4].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관찰자는 어떤 한 점에서 그의 경험을 성명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가설로 물질세계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4]. 그렇지 않으면 그는 물리적 대상은 감각-자료들로부터 논리적 구성을 통해 얻어진다고 주장한다[5].


언어에 대한 이러한 강박관념은 우연이 아니다. 실재(reality)가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과 잘 일치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예측하지 못한 사회적 변혁기 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기에다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당시 수백만 명을 살육한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경제 위기, 영국에서의 광부들의 파업이 있었다. 그리고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는-단어의 의미를 담은 두꺼운 사전 편찬 작업이 있었고, "완벽한"언어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 엘리트적인 문법을 따지는 분위기로 후퇴하고, "원자"단위로 언어를 분해했다. 이러한 시도는 아마도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존재들 [즉 주변 여건들을] 모두 무시하자!. 그러면 그리스 로마시대. 중세 수도승, 비숍 버클리의(Bishop Berkeley)의 그리고 현재 자칭 과학 철학자의 회의주의만이 남을 뿐이다. 전체 철학의 역사에서 그렇게 잘못 호칭되고 가식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들 학파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일반적인 고리가 있다. 그것은 언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첫 장에 "태초에 말씀(Words)이 계셨느니라"고 쓰여 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문구를 약간 수정해서 그들의 슬로건으로 채택하고 있다: 태초뿐 아니라 중간과 마지막, 전부가 모두 단어(Words)의 문제이다!


이러한 경향은 항상 단어를 쓰고 말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편견에서 비롯된 결론일 뿐이다. 양분 없는 토양은 단지 연약한 식물만 만들어 낸다. 빈혈기 있는 환경 속에서는 피없는 철학만이 생산될 뿐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하찮고 혼란한 의미론이 철학을 대표한다고 여겨졌다. 한때 헤겔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작은 것에 만족하는 가를 통해 정신의 상실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단어와 단어들의 의미로 환원하는 것(의미론)으로는 관념론을 탈피할 수 없다. 단어는 사람의 사상을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소위 "과학적 실재주의"는 또 다르게 변장한 관념론의 복원을 의미한다. 사실 언어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물질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어떤 특정 생각들이 진실과 일치하는지를 묻지 않고 주어진 단어와 문장이 우리가 표현하고자하는 생각에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만 질문한다.


여기서 다시 풍부한 철학들이 어떻게 몇 개의 말린 빵 부스러기로 환원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철학과 과학의 특별한 분과로서 언어와 의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10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언어와 의미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솔직히 엉터리이다. 이런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철학은 미국에서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오스틴(J. L. Austin), 스트로슨(P. F. Strawson) 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마흐와 비교해서 유일하게 "혁신"된 것이 있다면 언어의 차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에서 한걸음 더 멀리 밀고가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진 생각이 옳은지 그런지 묻는 대신에(다시 말하면 그것이 객관적 진실을 반영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단지 주어진 문장이 의미가 있는지 여부만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논리실증주의자에 따르면 그들 스스로 개발한 임의적인 정의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축구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데, 여기서 규칙은 상대편 팀만 골을 넣을 수 있게 허용하는 그런 축구게임과 같다.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가는 데로 규칙을 정하는 그런 축구 게임과 같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 엘레스의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6]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하는 말은 정확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진술은 실험적으로 증명 가능해야한다(검정의 원칙) 그래서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표현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을 포함해서 철학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 대부분을 같은 식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없는"것으로 선언된다. 크리켓의 규칙처럼 "심판 결정이 최종적이다[7]" 그래서 카펫 슬리퍼는 버리지 않아도 우리는 철학의 역사 전체를 버려 버린다.


"잠깐만" 강의 실 뒤쪽에서 소리친다. "잊어 버린 것 없습니까? 신(God)이나, 칼-맑스 그리고 몇 몇 악명 높은 소란꾼들을 버리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면 수학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유클리드 기하학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수학의 공리는 중명하지 않고 그냥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또 논리학도 그 자체로 증명되므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파동과 입자가 같다고 하는데, 파동은 파동이고(A는 A이다) 입자는 입자(not A는 not A이다)이므로 파동은 입자가 될 수 없다(A는 not A가 될 수 없다)는 형식논리학의 동일률(혹은 모순율)은 어떻게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순간 신-실증주의 강사는 시계를 보며 점심시간이므로 수업을 마친다고 말한다. 순수한 학생들에게 그는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소위 수학하고 형식 논리학에서의 진리는 실험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험적인 것으로 (즉 라틴어로 "처음부터") 알려져 있고, 처음부터 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논리에 일관성이 있으려면, 맑스와 프로이드가 그들의 검정의 원칙에 맞지 않았던 것처럼 피타코라스와 유클리드도 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유해한 형이상학이며, 논증 불가능한 난센스이며,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으로 비난해야 할 것들 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쓰레기통에 버렸듯이 결국 형식논리학과 수학 모두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이러한 모순을 <<논고 Tracticus>>에서는 눈속임으로 재빠르게 덮어 버린다. 사기성이 있는 보험설계사의 보험에는 항상 그들의 면책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경험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수학의 진리는 "분석적"이라고 선언된다.(이 용어는 칸트에서 부터 훔쳐왔다)[8] 수학의 진리는 참이기는 하지만 "모든 독신자는 결혼하지 않았다"와 같이 동이 반복이다. 관련된 심벌의 사용을 기초로 한 상식적 차원의 진리(conventional truth)이다[9] . 이것은 어떤 의미라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풀 수 없는 모순에 직면했을 때, "실질적"이며, "상식적"이며, "과학적"인 이들 신사는 망설임 없이 그들의 뒤를 덮어줄 뻔뻔스러운 계략을 펼친다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경험 지식에서부터 나와야 한다는 교리적 주장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가장 최종 분석에서만 경험지식에서 부터 나온다" 사유의 역사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와 생명력을 갖는다. 마치 초보 마술사의 빗자루처럼.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형식논리학의 법칙은 자연에서부터 도출되어 추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일단 중요한 일반화에 도달했는데, 모든 세대 혹은 개인이 [매번] 실제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적으로") 그것을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할까? 자동차 바퀴를 재발명하는 것이 필요할까? 만약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모든 지식은 직접 경험으로 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진화한 사유의 형식은 어떤 것이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리가 질문해야할 것은 이러한 사유의 형식이(변증법이나 형식 논리학이) 적절하게 객관적 세계를 반영하는지 여부이다. 다만, 과학철학자 처럼, 객관 세계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전체적인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분석 철학


그들이 구문(syntax)의 얽혀있는 덤불 속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진실로 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가장 최근의 "분석 철학자"들은 언어가 객관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조차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매우 높으신 곳에 오랫동안 유영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일반 사람의 언어는 충분히 좋지 않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ideal)" 언어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상 언어는 순수하고 정교하며 어떤 모호함도 없는 그런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언어적 분석으로 매우 유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어 분석이 인간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현대과학의 위기와 극단적인 노동분업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이 현실세계의 출발점으로 취하고 있는 실험과 실천의 과학영역(종합명제)과 수학과 논리학과 같이 소위 "연역적'이고 "선험적"인 과학(분석 명제) 사이에 날카로운 이분법이 그러하다. 복잡한 수학적 이론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 우주론과 이론물리의 경향은 실제세계를 설명하는데 점점 더 적합하지 않게 되고 있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논리학에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어문학적 조사와 난해한 상징(심벌)에서는 어떤 혁명도 나오지 않는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낡은 접시를 따뜻하게 데워 약간 다른 장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학에서 빌려온 난해한 기호로 예전의 낡은 관념들을 다시 표현한다 고해서 더 확실해 지는 것은 없다. 다만, 과학적 수도승들과 "대중"들 사이에 간극만 커질 뿐이다.


"사실"만을 고집하고 "형이상학"과 종교의 머리에다 저주를 퍼부은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과학에 신비주의적 관념을 도입하고 있다. 언어와 구문에 대한 난해한 연구, 그리고 수학적 기호의 세계를 위해 "이상"언어를 추구하는 것은 실제 세계와 점점 멀어져 가며 가장 지독한 관념론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논리학과 수학에서는 일련의 선험적인 규칙(공리, 이론 등등)을 세우고, 이 규칙에서부터 연역적 추론을 통해 모든 것을 유도해 낸다. 그러나 언어의 발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 언어의 역사 발전에 수학적인 방식을 결코 적용할 수 없다. 언어에다 수학에서 사용하는 좁고 임의적인 변수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그 종말을 예고할 뿐이다. 문법, 어희 그리고 구문은 다른 여러 현상,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현상들이 극단적으로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로서 역사적으로 진화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논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규칙은 형식논리학과 수학의 규칙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죽은 규칙은 단어에 생명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규칙 스스로 설명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어와 언어에 대한 이러한 강박관념은 실제 대상 즉 물질적 진실과 더욱 멀어지게 한다. 마치 소금물로 목을 축이며 계속 목말라 하는 사람처럼 우리가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다른 어떤 것, 말하자면 "A, B, C를 말할 때 의미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문구에 대해 무한히 토론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명확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단어의 의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확실히 유익한 실천이라 할지라도) 우리 손에 실제 일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정확하게는 중세 스콜라 주의자들처럼 바늘 끝에 천사 몇 명이 춤을 출 수 있을까하는 무의미한 토론만 끝없이 할 것이다.


결국 이 길은 점차적으로 주관주의(subjectivism)에 이르게 한다. 무어와 러셀에 의해 추진된 "사적 언어(private language)" 는 아주 좋은 보기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각기 개인이 "아는" 것은 객관 세계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감각, 관념과 의욕이다. 이것들은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현상이다. "알고 있는" 사물은 기본적으로 사적이며 개인적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언어의 발전에 있어 알려져 있는 모든 것에 반대된다. 언어는 사회적 현상이며 역사적으로 집단적, 협동적 생산의 요구에서 부터 나왔다. "사적" 언어라는 바로 이러한 설명에 모순된다. "원자론"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확대해서 물리학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사회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적언어를 인정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물리세계를 알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여기서 철학은 세속화되고 진부한 것으로의 치부되며 아니면 아주 세부적인 연구에만 치중한다. 이런 의미 없고 쓸데없는 이론은 언어적 철학자들이 가장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바로 언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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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2) 모세 율법, 모세 5경, 유대교의 율법

역주 3) 러셀은 외계의 사물과 우리의 의식을 매개하는 것이 감각자료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실재하는 사물의 표상(表象)으로 보여지는 감각자료뿐이라고 하였다

역주 4) 러셀은 이것을 직접지(knowledge by acquaintance)라고 불렀다. 대표적으로 감각 자료(sense-data)가 있는데, 설탕을 입에 넣었을 때 느끼는 단맛,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의 파편,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질 때의 느낌 등이 바로 우리의 직접 경험에 주어지는 감각자료들이다.

 역주 5) 러셀은 이것을 기술지(knowledge by descriptions)라 불렀다. 예를 들어 책상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은 모두 기술지에 속한다. 이들은 분명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은 대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각소여를 통해 얻은 직접지들을 토대로 그러한 대상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주 6)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벽 위에서 말하는 '달걀' 이 말은 남이 이해하든 못하든 자기가 쓰고 싶은 말만 쓴다는 뜻이다.

역주 7) 크리켓은 11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교대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공을 배트로 쳐서 득점을 겨루는 경기이다. 크리켓에서는 심판의 결정사항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중하게 한번 정도 문의하는 것 이상으로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은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감독관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역주 8) 이들의 논리는 경험적인 것과 경험에 독립적인 것으로 나눈다. 경험적인 것은 반드시 검증을 통해 증명되어야 의미가 있다. 경험적인 것은 천적이고 종합적인 명제가 되는데, 이러한 문장들은 검증을 통해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경험에 독립적인 명제를 분석적인 명제라고 하는데 선천적이며 명제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명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참, 거짓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역주 9) 분석 명제는 세계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해 줄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인식적으로 의미 있는 명제가 아니며 동어반복일 뿐이다. 우리가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석적 명제는 이미 술어가 주어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확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명백하게 해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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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으로 임신-출산(생식) 기술의 문제를 바라보자.

/* 작년 말에 적은 글인데 이제야 올립니다. */

 노동자의 시각으로 임신-출산(생식) 기술의 문제를 바라보자.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맑스, 공산당선언


한 차례 황우석 교수의 과학 파노라마가 노랗게 지나간 자리에, 언론은 황 교수가 ‘자발적 기증’을 받았다는 난자 이야기로 다시 물들이고 있다.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 기증'이라는 황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그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매매한 난자였고 심지어 같은 팀 연구원의 난자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에 한 국회의원은 우리나라에 만연된 난자매매 사례들을 발표하였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2곳에 개설된 7곳의 카페에서 난자 매매 의뢰 152건, 구입 의뢰 26건 등 179건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역시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난자 매매뿐 아니라 과거 씨받이를 연상케 하는 대리모 문제도 밝혀졌다. 현재 난자를 거래하거나 대리모를 구하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는 1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이트 당 회원이 2000∼3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거래 희망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두 개의 사건 모두 난자매매(기증)를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전자의 경우는 난치병을 치료를 목표로 하는 배아 줄기 세포 기술이며 후자의 경우는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관 아기 기술(체외 수정 기술)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기술 모두 여성에게 호르몬을 투여하여 얻은 다량의 난소로 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인간복제 기술과 유전자 조작기술(인간 게놈 프로젝트)까지 더해져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 기술을 통칭해서 임신-출산 기술(생식기술, reproductive technology)이라고 하는데, 관련 기술들을 논란이 심한 순으로 도식적으로 반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인공수정과 체외 수정 기술은 난자매매와 대리모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지만, 태어난 아이(결과물)에 대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다. 배아 복제 기술은 말 그대로 태아 이전단계인 배아를 복제하는 기술을 말한다. 복제된 배아를 대리모에 착상시켜 임신을 하게 하면 인간이 복제되는 것이고, 배아를 파괴하여 치료목적의 줄기세포를 얻는 다면 배아 줄기 세포연구가 된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기술은 배아 복제 과정 혹은 그 이전에 관여하여 다양한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공수정/체외수정 기술을 제외한 나머지 기술들은 아직까지 초기연구 단계이며, 그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된다.


인간 개체 복제나 유전자 조작 기술은 안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우수 형질을 갖는 태아만 출산하려하는 우생학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사회단체들로 부터 지속적인 반발이 있어왔다[1]. 그리고 배아 줄기 세포기술은 이들 두 기술 사이에 위치(그림 참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입장 또한 다양하다. 소위 좌파정권인 브라질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 지원계획을 공식 발표했으며, 스페인 좌파 정부 역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와 같은 종교적 우파[2]는 배아 줄기 세포 연구 과정에서 파괴되는 ‘배아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황우석교수의 연구 과정에 사용된 연구원의 난자 문제가 논란이 초점이 되고 있는데, 시민-사회단체는 주로 황 교수의 연구 윤리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배아의 인권 문제에 휩쓸리다보면 여성의 선택권을 핵심으로 하는 낙태문제에 총구를 겨누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의 입장은 친-시장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연구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대응 방법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주장에는 빠진 것이 있다. 사실, 25여 년 전 시험관 아기(체외 수정)시술에 대해서도 이런 논란이 있었고, 그 기술을 통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험관 아기가 성공적으로 탄생하고, 자본에 매력적인 시장까지 안겨다준 이후 그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기술에 대한 논란은 이미 만연되어 있는 대리모나 난자매매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하나의 해프닝꺼리 정도로 다루어질 뿐이다. 다만 여성주의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계기로 생명윤리법 제정 당시 인공수정에 대한 조항 마련을 주장했으나 주류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부닥친 바 있다[3] 배아 복제 기술도 치료기술로써의 위험성이 사라지는 시점에 와서는, 다시 말하면 자본에 매력적인 상품으로 변할 시점에 와서는 이러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기술의 민주적 통제를 실천할 투쟁 주체와 파업과 같은 투쟁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재하고서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엘리트주의나 전문가주의로 흘러간다. 그래서 이번 배아 줄기세포 논란을 시작으로 임신-출산 기술 전반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실현시킬,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그 논의를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투쟁 주체들을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임신-출산 기술


1) 인공 수정과 체외 수정 기술

18세기 말부터 적용된 인공수정 기술은 자궁경부의 점액이 비정상적이거나 정자의 수가 다소 적은 경우 시행하는 방법이다. 기록에 의하면 영국의 외과 의사였던 헌터(J. Hunter)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785년에 처음 시도되었다. 당시 지병으로 생식 불가능하게 된 남편에게서 정자를 얻어 부인의 체내에 수정하여 임신케 하였다. 처음에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의 형태로 시작되다가 188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으로 발전하였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난자매매와 대리모는 불임부부를 위한 체외수정 및 배아 이식(IVF-ET 혹은 시험관 시술)에 이용된다. 이 기술은 주로 여성의 생식 기관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시술한다. 난자를 여성 밖으로 끄집어내어 유리관(in vitro) 안에서 정자와 수정시켜 2~3일 배양한 후, 자라난 배아를 특수관을 통해 다시 자궁 속에 옮겨 착상시켜 하여 임신하게 하는 기술이다. 1978년 7월에 영국에서 최초로 체외 수정을 거쳐 루이스 브라운(Louise Brown)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난관이 막혀 임신하지 못하던 브라운 부인에게 그녀의 난자와 남편 정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자궁에 이식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는지, 실험실에서의 조작에 의해서 끔찍한 유전적 교란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기괴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는 않을지,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결국 끔찍하게 생을 마감할 첫 희생자가 되지나 않을지 등 많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약 85% 가 반대했었다[4].


현재 불임 시술한 부부의 20-30%만이 임신에 성공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체외 수정기술로 5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태어났다[5].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아이들이 ‘상품’으로 전락하지도 정체성의 혼돈을 겪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는 1985년 서울대 장윤석 교수가 체외 수정을 성공시켜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쌍둥이)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불임 치료 사업은 자본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올랐다. 인공수정 시술의 경우 연간 4억-5억 달러 시장규모라고 추정된다.


2) 배아 복제 기술과  인간 개체 복제 기술

일반적으로 배아란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된 후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의 수정란을 뜻한다. 배아 복제기술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로 나눌 수 있다. 생식세포 복제는 정자와 난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면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이때 분열할 때 마다 난세포 크기가 작아지므로 ‘난할’이라고 하며 이 작은 난세포를 ‘할구’라고 부른다. 복제의 핵심은 분열과정이 있는 이 할구를 수정되지 않은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것이다. 만약 수정란이 8개의 할구로 분열했다고 하면, 난자 8개로 염색체가 동일한 8개의 복제 난자를 만들 수 있다. 즉, 1개의 수정란으로 8개의 일란성 쌍둥이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비해 체세포 복제는 수정란의 세포가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세포(체세포)를 떼어내어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방법을 말한다[6]. 현재까지는 난자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두 복제과정(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 모두 여성들로 부터 새로운 난자를 제공 받아야 한다.


할구나 체세포는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된 후 세포융합과정을 거치고 인큐베이터에서 체외배양 과정을 거치면, 복제 난자로 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장한 복제 난자를 대리모의 자궁에 주입해,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쳐 복제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 개체 복제라고 한다.


 생식세포 복제는 1983년 복제생쥐 이후에 양(1986), 소(1987), 토끼(1988), 돼지(1989), 쥐(1993), 염소(1997)로 이어졌고 체세포 복제는 유명한 복제양 돌리(1997)로 부터 시작해서 소(1998), 쥐(1998), 염소(1999), 돼지(2001), 고양이(2002)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인간복제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고, 복제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크게 일자, 배아 복제 연구가 그 활로를 찾은 것(응용분야)이 치료를 목적으로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인간배아복제는 2001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고급세포기술연구소(ACT) 연구원이었던 호세 시벨리 교수에 의해 처음 성공하였으나 당시 줄기세포 단계까지 분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역시 (2003년 2월(논문 발표는 2004년 2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를 성공시키고 복제 수정란을 4∼5일 배양한 배아(배반포기 단계)에서 ‘줄기세포’라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줄기 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의 근간이 되는 세포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분열할 수 있는 자기-재생산(self-renewal)기능과 여러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 능력을 가진 세포로 정의된다. 배아줄기 세포는 모든 신경이나 장기로 재생할 수 있는 잠재 능력 때문에 치료제로 ‘상품’성이 있어 보인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지난 6월 배아줄기세포 특집을 다루면서 향후 5-10년 안에 약 3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제론사 등 미국의 여러 거대 생명공학 회사가 배아줄기세포에 달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써 배아 줄기세포의 다분화 능력을 통제할 수 없다. 분화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현재 연구되고 있는데, 그 중에 유전자 조작기술이 포함된다.


배아복제 기술에서 항상 나타나는 것은 인간 복제의 유령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서도 어떠한 인간 복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명목으로 연구되고 있는 수많은 복제기술들이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인간 복제의 유령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실천윤리학 교수이면서, 의료윤리에 관한 유명 논문지에 영향력 있는 편집인이기도 한 사부레스쿠(J. Savulescu) 교수는 ‘복제 기술은 가장 위대한 과학 기술진보 중의 하나이다. 복제기술은 인간의 운명에 기회와 힘을 준다. 점차적으로 인공 번식이 자연 번식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회학자 이진경교수도 황우석 교수에게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인위적인 변이’가 가능해졌다면 이제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이’의 가능성을 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회학자나 윤리학자뿐만 아니라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 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복제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인간 개체 복제를 추진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불임 전문가 세베리노 안티노리(Severino Antinori), 미국의 불임 분야 연구원 파노스 자보스(Panos Zavos), 이스라엘의 생명공학자 아비 벤 아브라함(Avi Ben Abraham) 등 인간 개체 복제 지지자들은 2003년까지 복제인간을 탄생시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2005년 9월까지 복제된 배아를 인간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에는 아직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7].


그들은 체외 수정으로 태어난 루이스 브라운양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인간 개체 복제기술을 변호한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체외수정은 성공했고 이 기술과 유사한 일단 인간 복제 기술이 성공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복제해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체외 수정과 인간 개체 복제 기술은 서로 비슷한 듯 보이긴 하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루이스 브라운양이 태어나기 전 많은 동물 실험이 있었고 이 실험의 결과에서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 복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동물실험의 90%가 실패로 끝이 났으며, 그 중에서 성공한 경우라도 치명적인 의학적인 문제를 발생시켰다. 복제양 돌리의 경우도 무려 277번의 시도 끝에 겨우 한번 성공했다. 만약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핵 을 제거한 1개의 난자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100명 이상 난자 기증 여성들이 줄 지어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복제양 돌리를 다시 복제해서 태어난 새끼 양들은 비정상적이었고 정상적인 새 끼 양에 비해 사산하는 비율이 여덟 배나 높았다고 한다. 복제양 돌리 역시 탄생부터 지금까지 순탄하지 못했다. 3살 때부터 돌리의 체내에 있는 세포들이 늙은 동물에서 나타나는 노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5살이 되었을 때는 다른 양들보다 빨리 관절염이 발생했다. 연구소 측은 관절염을 제외하고는 6마리의 새끼를 낳고도 건강한 상태라고 당시 발표했지만, 6살이 된 2003년 진행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결국 '안락사'시켰다.

 


3) 유전자 조작 기술

유전공학 유전자조작기술은 1953년 DNA 이중나선의 구조가 밝혀지고, 1960년에 대장균에서 DNA를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발견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바이러스와 대장균을 이용해서 DNA를 재조합 하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이 기술은 2003년 4월 14일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32억 쌍의 염기의 순서가 밝혀지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지금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개발되고 있다[8].


이 중 인간 복제 기술과 관련해서는 장기 복제(organ cloning)기술이 있다. 최근에 사람 귀 모양의 연골 세포를 쥐에게서 배양한 실험과 같이 필요한 장기를 다른 동물에서 복제하여 얻는 기술을 말한다. 이 수정란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장기를 동물에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 이식이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유전자조작기법으로 문제가 되는 동물의 항원을 사전에 파괴하는 등 이후 인간에게 이식해도 별문제가 없는 형질 전환동물을 만들어 이용한다.


또 배아의 줄기를 이용하여 유전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유전자치료에는 정자와 난자의 단계, 착상 전 수정란의 단계, 배아의 단계, 태아의 단계 그리고 출생 후의 성체의 단계 등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체세포 유전자나 생식세포 유전자를 변형하여 우수한 유전자로 바꾸는 우생학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확실하지 않는 기술 남용으로 후대에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9].


배아 인권 논쟁 속에 숨어 있는 의도


인공수정이나 체외 수정에 대해서 대부분의 노동-사회단체들은 아무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논란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지만, 인간 복제 기술은 기술의 위험성과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고’ ‘의학과 생물학을 남용하는 일’[10]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회단체에서 별 논란 없이 반대하고 있다[11]. 이 두 극단의 기술 사이에 인간 배아 줄기 세포 기술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위치만큼이나 다양한 입장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정란은 수정 후 두 배수씩 분열해 16개가 되면 딸기 모양의 세포가 되는데, 이때가 14일쯤 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인체의 근본이 되는 척추와 신경 등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14일 이전 단계의 세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세포 덩어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아 세포 조작을 통해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불임시료를 위한 인공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고 있고, 배아를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10만에서 50만 이상의 잉여배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잉여 배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폐기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잉여 배아를 대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가톨릭이나 반-낙태주의자들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즉시 한 영혼을 가진 생명주체인 태아로 간주한다. 체세포 복제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것이 아니지만 자궁 내에 착상시키면 인간으로 자라기 때문에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한다. 영국의 반-낙태주의자 단체 Life는 배아세포 연구를 신종-학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의 가족 연구위원회라는 보수주의 단체는 “나치는 일부 인간들을 ‘종속 인간’으로 분류해서 그들을 소모해도 된다고 했다. … 사람들은 배아를 종속 인간으로 보고 있다.”라고 나치의 학살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논쟁의 한가운데 기독교로 무장한 부시정권이 있고 그가 배아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부시 정권은 전쟁으로 인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상당하고 있는 이라크를 위해 의료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그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더욱이 배아 줄기 세포 연구는 신약개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개발만 된다면[12] 자본에게 아주 매력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배아의 인권에 상대역에는 환자의 인권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배아 인권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사실 허황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자본을 대변하는 부시와 강경보수파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13].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배아 인권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음을 의심해 볼 만 하다.


 70년대 초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의 성(sexuality)과 임신과 출산과정으로 대표되는 임신과 출산(reproduction)에 대한 자치권과 통제권에 대한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안전한 피임과 낙태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배아의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낙태로 죽어가는 ‘태아의 인권’을 자연스럽게 논란의 대상으로 올려놓는다. 지난 2004년 11월 미국 대선 출구조사에서 후보선택 기준 1위가 이라크 전쟁(15%), 경제(20%)를 누르고  '도덕적 가치(22%)'였다. 그리고 도덕적 가치를 꼽은 유권자의 80%가 부시를 지지했다. 그 ‘도덕적 가치’에는 낙태와, 불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 그리고 동성애 문제 등이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강경보수 진영은 아예 부시 2기 집권기간 중에 낙태 합헌결정을 뒤집어 버리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낙태 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아쉬울 것이 없다.


 우생학과 인종 차별


나치는 우생학(優生學)을 이용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유태인과 집시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적용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1926년에 우생학을 기초로 단종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안은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에게도 적용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는 기간 동안(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 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우생학을 정부가 강제한 우생학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우생학은 이보다 훨씬 은밀하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임신초기에 양수 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남자아이만을 선별한다든지, 유전적 결함이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난자매매의 경우도 상류층 대학의 여성들의 난자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이러한 우생학은 예전과 같이 국가에 의해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시장과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 강제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자유방임적 우생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14].


그런데 자유방임적 우생학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문화와 너무나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에서 높은 비용의 유전자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될 경우 ‘하층민의 질병화’를 불러 올 수 있다. 그리고 임신 초기 태아 검사로 유전적 질병이 있는 태아 낙태를 당연시하는 사회라면, 낙태 거부로 혹은 실수로 유전자 질병을 가진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 양육 책임을 모두 개인 부모에게 지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제공되었던 사회적인 복지 정책도 축소해 버릴 것이다[15]. 


실제 미국의 임신-출생 기술에 대한 흑백간의 경제적 접근권 차이는 이러한 점을 반영하고 있다. 흑인 여성의 경우 백인여성보다 불임률이 1.5배 높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각종 성병에 대해 치료를 못하고 있고, 영양 결핍과 출생과 낙태의 어려움 그리고 작업환경의 위험성 등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경우 백인의 1/3 수준 정도뿐이다.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이지만 인공수중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부는 고학력이며 풍요로운 백인들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흑인은 줄어들고 백인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배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은 ‘유전자 치료/검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와 함께 노동자 -민중들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같이 고려해야지만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난자매매와 대리모


한국의 경우 난자 매매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금전 거래가 아닌 난자기증은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불임 환자가 난자 제공 여성을 스스로 데려오는 것이 가능하다. 단 ‘인간 수정 및 발생 기구(HFEA)’에 등록을 해야 한다. HFEA는 최근 자문을 하면서 정자 기증은 한 번에 50 파운드, 난자는 최고 1천 파운드 정도를 적정 보상비로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도 난자를 제공한 여성에게 돈을 주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통상 난자 수혜자가 제공자에게 2500달러에서 1만5000달러를 지급한다. 난자 제공자를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모집할 수도 있다. 스웨덴, 뉴질랜드 등에서도 난자 제공자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제 3세계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최근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한 산부인가 의사는 수출할 목적으로 그의 환자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한 사례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Global Arts Clinic' 이라는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하여 유럽연합으로 수출한 사실이 2004년 말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베트남이나 동유럽에서 한국의 경우도 연변 사례가 보도되기도 한다.


대리모의 경우 영국, 이스라엘 등 10여 개국에서는 관련 법안은 없지만 대리모계약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는 한걸음 더나가 대리모를 공식적으로 등록시켜 정부가 대리모에게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방안을 검토(2001년)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불임치료 센터에서 불임 부부와 대리모의 임신, 출산 계약을 중개해 주어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경우, 영리적인 목적의 대리모 계약과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도 관련 법안이 없지만 대리모 출산 건수는 불임전문병원별로 한해 10여건. 전국적으로 약 100여건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001년). 그들은 대부분 극도로 어려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업가정의 주부, 이혼녀, 카드빚에 찌든 젊은 여대생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난자공여시스템’을 제도화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고, 생명과학계를 중심으로 ‘난자공여시스템’ 도입뿐만 아니라 유상 난자 기증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16].


그리고 여성


초기 많은 여성운동가들은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이 낙태 기술처럼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더 큰 선택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여성이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양육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생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대리모와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몸 밖에서 임신과 출산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불평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인간 개체 복제기술은 독신 여성을 비롯하여 레즈비언과 게이들과 같은 성적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의 도움 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17].


호주의 독신녀인 멜드럼이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기 위해 빅토리아 주를 대상으로 ‘아이를 가질 권리'를 위해 11년간 법정 투쟁을 하였다. 그 결과 지난 2000년에는 연방법원으로부터 “불임시술을 금지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2002년에는 호주 고등법원에서 만장일치로 "독신녀와 레즈비언 여성도 시험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판결을 이끌어내었다. 2005년에는 영국의 레즈비언 부부인 비키 힐(Vicky Hill)과 헤일리-머로우(Hayley Marlow)는 특이한 방식으로 아이를 낳았다. 비키-힐의 난자와 기증받은 정자를 이용해서 머로우에게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 것이다. 이로서 비키-힐은 유전적인 어머니가 되며 머로우는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birth mother)가 된다[18]. 그리고 같은 해 스웨덴에서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허용한 바 있다[19].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최근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독신 여성이거나 레즈비언, 생활 보호 대상자 및 기타 좋은 부모로 판단되지 않을 때는 이 시술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에서도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부모의 경우 이러한 시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아이를 위해 아버지 역할을 할 사람이 없을 때, 예를 들어 레즈비언이나 독신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권리는 정자 기증자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일반 여성의 경우도 임신-출산 기술은 그리 밝은 현실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출산 능력을 대상화하고 남자의 유전자를 계승시키려는 욕망에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출산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한 남자가 유전적 자손을 얻게 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였다.


대리모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아이에게 주려는 남성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불임일 때 대리모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 아버지와 아이들 간의 생물학적 관계는 높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어머니의 경우 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1986년 미국에서 1만 달러를 받고 대리모 임신계약을 맺은 여성이 출산 후 상대방에게 아이의 인도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베이비 엠(Baby M) 소송이라고 한다. 윌리엄 스턴(William Stern)은 홀로코스트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이 같은 사정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아이를 희망하였지만 불행히도 그의 부인은 불임이었다. 스턴은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Mary Beth Whitehead)를 대리모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아이(Melissa Stern)가 태어나자 마음이 바꾸어 아이의 양도를 거부하였다. 이에 스턴은 소송을 제기하였다. 1987년 재판에서는 대리모 계약이 유효함을 인정하고 유전적 아버지가 아이에게 유일한 부모의 권리를 갖는 다는 것으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유전자를 물려준 남성이 유전자를 물려준 여성과 임신한 여성(대리모)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화이트헤드는 곧 바로 항송하였다. 그 다음해 뉴저지 주 대법원은 그 계약이 유효하지 않다고 판결했고 대리모로써 어머니의 권리를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함께 피아노 레슨과 같은 능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스턴 부부가 아이를 양육할 권리를 갖고, 대리모는 단지 아기를 만나고 볼 수 있는 권리만 받았다. 또한 이 판결이 있은 후 많은 전문가들은 아이를 돌려 줄 수 없다는 대리모에 대해서 부모로써의 적합성을 문제제기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위의 사건의 경우 스턴이 정자를 제공하고 대리모인 화이트헤드가 난자와 자궁을 제공한 경우였다. 그런데 자궁만 제공한 대리모의 경우 그 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1990년 마크 칼버트(Mark Calvert)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그의 부인인 크리스피나 칼브트(Crispina Calvert)가 불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직장동료인 안나 존슨(Anna Johnson, 흑인,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1만 불의 수수료와 함께 20만불의 보험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대리모 계약을 맺었다. 칼버트 부부는 정자와 난자를 모두 대리모에게 제공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존슨과 칼버트는 계약 조건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1990년 9월 19일 아이는 태어났고 존슨과 칼버트는 양육권에 대한 법적소송이 붙었다. 1990년 10월에 캘리포니아 법정은 칼버트에 손을 들어 주었다. 법원은 칼버트 부부에게 유전적 부모로서 아이의 유일한 양육권을 인정했다. 1993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친권을 결정함에 있어서 대리모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의 의도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친권자는 실제로 분만을 한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로서 키우고자 의도한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도록 의도한 여성 즉 대리모계약을 의뢰한 여성, 크리스피나 칼버트가 아이의 어머니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의 판단은 두 부모가 모두 유전적인 부모이고 안나 존슨은 단지 ‘임신하는 사람(gestator) ‘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 지불되는 돈은 ’부모의 권리‘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태아를 임신한 서비스에 대한 노동의 대가로 지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베이비 M의 대리모의 경우 역시 부모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1만 불을 받기로 계약을 맺었고 만약 아이가 사산하거나 유산하면 서비스의 대가로 1천불만을 받기로 계약 했었다. 그 이유는 대리모가 아이에게 유전자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즉 대리모가 받는 대부분의 사례금은 대리모와 생물학적 유대 관계를 형성한 아이에게 부모의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지불된 것이었다. 이 경우 1천만 불이라는 금액이 아이를 낳는데 실패했을 때 정당한 대가인지 혹은 계약과 다르게 쌍둥이를 낳았을 때 혹은 계약 당사자가 아이를 양육하기를 거부하거나 죽어버렸을 때 등 여러 조건에서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대리모와 아이와의 관계 설정이 정당한지 등의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것을 모든 여성들만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강제하고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여성들에게 남성의 유전자 보존을 위해 임신과 출산을 할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성의 몸 자체를 남성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여성의 신체는 새롭고 증명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실험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르주아적 기술은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난자 추출 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 과정과 유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장기기증에 비해 훨씬 적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추출할 때, 한 번에 많이 얻기 위한 과배란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 방법은 신장 이식과 유사한 외과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여성의 난자 추출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신장 이식 과정과 유사하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오히려 신장 추출보다 더 위험한 것이라는 주장한다.


과배란 과정에서는 난소에 다수의 난포가 생기도록 하기위해서 자궁내막 위축제인 루프로리드 아세테이트(leuprolide acetate)를 사용한다. 이 약은 관절통에서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가슴 통증이나 메스꺼움, 우울증, 시력감퇴, 뇌하수체 기능 상실, 고혈압, 빈맥, 천식, 심장기능 장애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뼈밀도 역시 전체 뼈에 대해 7.3%정도 낮아진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난소를 과자극해서 낭포를 만들 때, 난소가 커지거나 채액 체류와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발생할 수 있다. 자주 발생되는 부작용으로는 난소과자극증후군(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 OHSS)이 있는데, 이것은 혈액응고 장애, 신장 손상 등의 위험이 나타난다. 이  증후군의 발생건수는 0.5-5%에 이른다. OHSS 증세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난소 자극은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 급성 동맥폐색 (Acute arterial occlusion), 뇌졸중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배아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난자를 추출할 때 체외 수정보다 윤리적 측면에서 훨씬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과배란에 대한 유혹이 있다. 체외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는 이유는 체외수정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이고, 실패할 경우 다시 반복적으로 난자 추출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단지 실험용 난자를 많이 얻기 위해서 이다. 황우석 교수팀도 처음에 1개의 배아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242개의 난자가 필요했다.


상품화와 여성


인간 조직에 대한 유형 재산권과 인간 게놈에 대한 무형 재산권은 연구자와 생명공학 회사 그리고 정부에 의해 새로운 엔클로저 운동[20]의 주제가 되고 있다. 임신-출산 기술에서 자신의 몸의 신체 일부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영미법(common law)에 따르면 우리 몸의 조직이 분리되어 제거 되면 원 ‘소유자’에 의해 소유권이 포기되거나 아무도 주인이 없는 무주물(res nullius)이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몸에서 제거된 조직은 병든 것이었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아무른 가치도 없었다. 대륙법에서도 물건의 자연적 또는 법률적 성질상 양도할 수 없는 물건(res extra commercium)으로 취급하여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 두 법률 시스템 모두 자신이 자신의 장기나 신체의 일부를 가지고 계약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환자들은 일단 기증이 이루어지거나 추출에 동의한 장기와 조직에 대해서 재산권을 인증받기 힘들다.


예를 들어 임신-출산 기술에 대해 윤리강령을 잘 만들어 놓고, 공정하게 계약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난자로 생성된 줄기세포(주)는 이미 법적으로 공유지이기 때문에, 기증자가 계약당사자와 같은 능력이 없다면 계약 자체만으로 그 어떤 권리도 인증 받지 못한다. 즉, 줄기세포를 분리하여 증식하는 과정과 유전자 발견과정은 대단히 어렵고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연구자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같은 이유로 유전자-공유지는 사적소유의 울타리가 쳐지고 인간 조직은 기업이나 연구자들의 유형 재산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공유지는 기술적으로 기업이나 연구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그들이 먼저 들어가서 울타리를 쳐 버린다는 뜻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던 존 모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체의 일부가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때 희귀한 암에 걸려 캘리포니아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를 치료하던 의사는 비장에서 백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의사는 산도스라는 제약회사와 함께 이 비장 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는 1984년 이 ‘발명’에 대해 특허를 받은 것이다. 무어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뒤늦게 소송을 제기 했지만 1990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무어가 자신의 신체조직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자신의 몸 일부가 자본가의 소유가 된 것이다. 또 다른 특허는 모든 아기의 탯줄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 우리를 더욱 경악스럽게 한다. 1993년 미국 바이오사이트사는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에서 나오는 모든 혈액 세포에 대한 소유권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얻어냈고, 96년에는 유럽 11개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더욱이 유전자 발견에 대한 특허는 유전자 또는 DNA 서열 자체에 특허성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 유전자를 이용하는 모든 행위에 특허가 인정되게 된다. 예를 들어 특허 받은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단백질을 만들거나 이 유전자와 다른 단백질 유전자를 조합하여 융합단백질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특허권의 권리범위이다. 즉, 유전자 특허의 권리범위는 거의 무한한 것이다.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 전쟁은 생명 윤리와 과학적 양심에 대한 고려도 없이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미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199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175건의 인간 유전자가 특허를 인정받았으며, 1999년까지 미국 정부 388건, 인사이트 356건, 캘리포니아 대학 265건, 제넨테크 197건을 특허 등록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집계하고 있다. 특허 출원도 1980년대 매년 15만 건에서 현재에는 27만 5천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새로운 엔클로져 운동은 남자나 여자나 동일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많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줄기세포 연구에서 여성의 생식 세포 조직에 대한 착취에 대해서는 그 분노가 훨씬 덜하다. 사실 주요 언론이나 생명윤리 문헌 등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상품화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저항 주체가 생긴다.


이제까지 보여준 임신-출산 기술의 위험성과 문제점들은 모두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신, 출산 등의 생식기술과 대리모가 모든 여성들에게 억압적이라고만 본다면, 그 반대의 경우, 즉 자연적인 임신과 출산만을 좋은 것으로 해석해 버리는, 다시 말해 여성이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자치권과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연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결과를 초례할 수 있다.


또 임신-출산 노동에 대해 억압적인 상황만 고려하면 자신의 딸을 위해 손녀를 낳아 주는 할머니의 사례나 이타적으로 난자를 기증하거나 대리모로 자청하는 사례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생각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연관된 권력관계를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항적 의미를 보지 못한다.


전형적인 맑스주의입장도 이와 유사한데, 단순히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가족 내에 노동 분업에 대해선 본질적으로 비-착취적인 것이며 자연적인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해 버린다. 또 임신-출산의 노동을 가사노동과 같이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을 생산이 아닌 소비의 영역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집안에 여성이 없거나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여성의 노동력을 구매하게 된다. 이것은 파출부를 통해 가사노동을 생산적 활동임을 알 수 있듯이 대리모나 난자매매 역시 여성의 임신-출산활동이 생산적 노동활동임을 보게 한다. 앞서 언급한 칼버트 vs. 안나 존슨의 소송의 판결에서도 보듯이 이미 제도권 내에서도 대리모행위를 노동으로 인증하고 있다.


난자 매매에서 여성은 난자라는 몸의 일부를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하고 대리모는 태아에서 출생까지 아이가 살아갈 환경과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노동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화폐를 위해 여성은 대리모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자신의 몸속에 생산된 난자를 상품화한다. 흔히 이러한 노동을 집장촌의 성노동자와 비교되는데 성 노동은 비생산적인 성을 상품화와 하는데 비해 임신-출산과정의 노동은 기술을 통해 생산물을 상품화 한다.


이 처럼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영향은 자연적인 영역과 생산적인 영역,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적 경향을 통해서 여성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임금 노동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착취당한다고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대리모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계약의 목적을 여성이 모성을 찾는 것 보다 남성이 유전적인 부성을 찾는 것을 강조하기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대리모는 법적으로 자신의 아이가 될 수 없는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적 물질(난자)과 자궁을 의식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의 의미는 현실 사회의 관계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 관계나 인종적 관계[21]와 함께 대리모에 쌓여 있는 문화적 편견 속에서 계약 자체가 ‘진짜‘ 자율적으로 이루질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베이비 엠 소송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은 유전적으로 아이와 공유하더라도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국은 계급적으로 그 아이의 양육권이 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성노동자 운동이 있듯이 대리모 노동자운동, 난자 생산 노동자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 주체인 노동자의 입장에 설 때만, 배아나 태아의 생명존중을 내세우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적 우파진영이나 그 모든 기술에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하는 친 시장주의자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난자 매매에 대한 과배란 처방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고발하고, 음성적으로 거래되어 착취당하는 대리모/난자매매 문제 그리고 임신-출산 기술에 배여 있는 우생학적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논란 속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가정에서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임신-출산 ‘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일 것이다.

 

미주)

1)  1997년 복제양 돌리가 발표되었을 때 녹색연합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설치와 생명복제 연구 금지를  주장했고, 1998년경희대 인간배아복제실험이 발표되었을 때는 환경운동연합이 인간복제실험의 즉각 중지를 주장했고 뒤이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15개의 종교, 시민단체)에서는 '인간복제 금지 위한 규제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환경·사회·종교단체 공동 성명서' 를 발표하고 집회를 벌였다. 1999년에는 생명공학과 생명윤리학의 전문가이 인간개체복제의 전면금지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및 전문 연구기구의 설치를 촉구하는 생명복제에 관한 1999년 생명윤리 선언'을 채택하였다.

2)  미국의 부시정권을 포함하는 종교적 우파와 그리고 일부 녹색당이 여기에 속한다. 스위스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법안이 당초 2003년 12월 의회에서 채택됐으나 가톨릭교회와 녹색당, 의료윤리단체들이 반발로 인해 국민투표에 붙여지기도 했다. 독일의 녹색당의 볼커 벡 하원 원내총무는 줄기세포 관련 정책을 바꾸는 일은 `위장한 식인(食人)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배아복제 기술을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배아의 인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녹색당은 종교적 우파와는 달리 배아 인권과 함께 여성의 선택권 등 복합적인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3) 여성신문 853호 (2005, 11. 10)

4)  조선일보 2001년 8월 12일

5) The Columbia Encyclopedia, Sixth Edition.  2001-05.

    http://www.bartleby.com/65/in/invitro.html

6)  여자 난자의 핵엔 N개의 유전자가 있고 남자 정자에도 N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이 둘이 수정하면 2N개의 유전자를 갖는 수정란이 된다. 그런데 체세포 복제는 여자의 난자 속에 있는 N개의 유전자를 갖는 핵을 제거하고 2N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여자의 체세포를 치환 것이다. 이 경우 남자 여자의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자 혼자만으로 태아의 전단계인 배아를 만들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7)  New Zealand Herald, 2005년 9월 27일, 파노스 자보스(Panos Zavos)는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않고 이번이 두 번째 시도였고 실패했다고 발표하였다.

8)  (1)제약분야에서는 미생물이나 동물세포의 유전자에 인슐린, 인터페론, 성장호르몬과 같은 단백질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결합시켜 미생물이나 동물세포로부터 사람에 필요한 그 유용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2) 농업분야에서는 병충해 내성 또는 제초제 저항성 농작물(옥수수, 콩), 항암제를 생산하는 식물, 먹는 백신이 든 사과, 비타민을 강화한 쌀 등 유전자변형(GM; genetically modified) 작물의 개발에 이용되고 있으며, (3) 축산분야에서는 알부민, 인터페론, 인터루킨, 항체 등의 고가이며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의료용 단백질과 생체활성물질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형질전환동물(외래유전자를 도입 받은 동물. 소, 닭, 산양) 개발에 이용되고 있다. 정영기, ‘생명공학의 현재와 미래 - 생명공학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http://www.arumdaun.org/spboard/board.cgi?id=21&action=simple_view&gul=2 참조

9)  박명철, 생명윤리-배아복제를 중심으로, http://www.theology.or.kr/37/37_special1.htm

10) Council of Europe, Draft Additional Protocol to the convention on Human Rights and Biomedicine, On the Prohibiting of Cloning Human Beings, Doc. 7884, July 16, 1997.

11) 1997년 복제양 돌리가 발표되었을 때 녹색연합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설치와 생명복제 연구 금지를  주장했고, 1998년경희대 인간배아복제실험이 발표되었을 때는 환경운동연합이 인간복제실험의 즉각 중지를 주장했고 뒤이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15개의 종교, 시민단체)에서는 '인간복제 금지 위한 규제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환경·사회·종교단체 공동 성명서' 를 발표하고 집회를 벌였다. 1999년에는 생명공학과 생명윤리학의 전문가이 인간개체복제의 전면금지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및 전문 연구기구의 설치를 촉구하는 생명복제에 관한 1999년 생명윤리 선언'을 채택하였다.

12) 신약 개발기간을 대략 10년 정도 예상하고 있지만 사실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국가가 주도해서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이 관심이 없는 기술은 아니다. 

13) 이미 지방정부는 중앙 정부의 제한조치를 풀고 있다. 2004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Proposition 71' Progosition 71은 줄기세포 연구에 1년에 3억 달러(약 3600억 원)씩을 10년 동안 투자하여 총 연구비 30억 달러(약 3조 6천억 원)를 투자하는 법안을 상정한바 있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 주민의 69%에 달하는 적극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2005년에는 플로리다 주에서도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지자들이 향후 10년에 걸쳐 이 분야에 2억 달러를 투입키 위한 주민투표 발의안 초안을 작성했다. 

14) 박희주, ‘새로운 유전학과 우생학’, 생명윤리 제1권 pp.113-121, (2000)

15)  ibid.

16)  여성신문 853호 2005년 11월 10일자

17) 동성애자인 랜돌프 위커(Randolfe Wicker·63)는 1997년 2월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 발표된 지 이틀 만에 ‘인간복제권 연합전선’(CRUF)을 설립했다. 그해 3월에는 뉴욕시의 복제실험 금지 결정에 항의, 세계 최초로 인간복제 지지 시위를 벌였다.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아이를 못 갖는 사람들에게 인간복제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복제는 종교적인 자유이기도 하다. 인간복제는 나에게 있어 ‘완전히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은 복제를 통해 이어진다.”

18)  BBC News 2005년 4월 19일

19)  BBC News 2005년 3월 03일

20)  16세기 국제적인 양털가격의 상승으로 양 목축업이 호황을 누리자 지주들은 자신의 농토와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enclosure, 엔클로져) 식량 경작지 대신에 양 사육을 위한 토지로 만든 운동을 말한다. 즉 이윤을 위해 농민들을 무산자로 내몬 사례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농민들이 가난과 굶주림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19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21) 안나 존슨이 흑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1] Donna Dickenson, 'Lady Vanishes : What's Missing from the Stem Cell Debate', International Journal of Ethics, http://eprints.bbk.ac.uk/archive/00000227

[2]Donna L. Dickenson, John Ferguson, 'Property and Women's Alienation from Their Own Reproductive Labour, Biethics Vol. 15 pp.205-317 (2001)  http://eprints.bbk.ac.uk/archive/00000221

[3] Subrosa, 'Stolen Rhetoric : The Appropriaton of Choice by ART Industries', Sarai Reader 2003: Shaping Technologies pp.110-118 (2003)

[4]조남옥, 박영숙, ‘불임경험의 사회적 기제와 간호’, http://www.women-health-nursing.or.kr/kjwhn/pdf/1996/0191.pdf

[5]Roberts,  Dorothy E., ‘Chapter 6: The Dark Side of Birth Control’ http://www.hsph.harvard.edu/rt21/race/race_reproductive_technologies.html

[6] Nadia Mahjouri, 'Techno-Maternity : Rethinking the Possibilities of Reproductuive Tehcnologies", thirdspace 4/1 pp.9-27 (2004) http://www.thirdspace.ca/vol14/4_1_Mahjour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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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생산/거버넌스... 답변2

다섯병님의 [대안적 생산/거버넌스 모델 [2]] 에 관련된 글.

저도 분위기에 맞춰 트랙백으로 답변 드립니다. 덧글도 붙고 의견도 트랙벡되어 올라오고

하니까, 제 블로그도 살아나는 듯합니다. 블로거가 토론에 용의한 툴인지 약간의문이

남습니다만, 암튼, 트랙백은 재미있네요.  

 

일단 생각나는데로 적어 보겠습니다.  우선 바쁘신데도 시간을 내주셔서 무척 감사 드립니다. 저도 IPLeft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잘 안되네요.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각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암튼 병일씨가 지적하신 문제를 뒤에서 부터 봅시다.  



1.  

병일씨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유지의 비극이나 무임승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즐거움, 진리에 대한 탐구, 명예, 공동체에의 기여 등이 창작의 동기가 되며 자신의 창작 활동이 생계의 기반이 되지 않는 관계 속에서는 무임승차 문제나 공유지의 비극 문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어떤 문제도 피해갈 수 있습니다. 만약 '필요에 따라 분배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를 전제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지적할 수 없겠죠. 이러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개인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이 되는 그런 사회속의 사람들이기에 전체 사회를 유기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그리고 그 사회 전체를 고민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당연, 공유지의 비극이나 무임승차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병일씨가 설정하신 것은 문제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최종 목적이 됩니다. 제가 지적한 것은 공유지의 비극이나 무임승차 등의 문제를 피해가면서 병일씨가 지적한 최종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진리에 대한 탐구, 명예, 공동체에의 기여 등이 창작의 동기가 되며 자신의 창작 활동이 생계의 기반이 되지 않게" 될까 하는 점입니다.


2.

그렇다면 어떤 과정들이 최종목적에 도달하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병일씨의 의견에서 중심적인 부분은 아래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

'정보/지식의 생산'에 있어서는 개별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타인의 창작물을 자신의 창작활동에 자유롭게 이용하는 관계 자체가 '사회적 생산'이라고 생각"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개별 생산자들이 공유를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동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분배의 관점에서는 진보평론 5호에 '조건없는 사회급여 보장을 위한 대장정'으로 결론 맺은 '지식사회의 이율배반'글이 새로운 고민을 많이 하게 합니다.) 

 

이렇듯 병일씨는 사회적 생산이 "분배"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개별 생산자들의 공유를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 "정보/지식의 생산'에 있어서는 개별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타인의 창작물을 자신의 창작활동에 자유롭게 이용하는 관계 자체"만으로는 위에서 지적한, "즐거움, 진리에 대한 탐구, 명예, 공동체에의 기여 등이 창작의 동기가 되며 자신의 창작 활동이 생계의 기반이 되지 않는 관계"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분배 문제는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 내의 문제이지 자본주의를 넘어선 문제 설정이 아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또 병일씨는 민주적 가버넌스(여기서 민주적 생산)의 문제에서도 역시 분배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두개의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다루었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물론 정보/지식 생산에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고, 이 경우 어떻게 정책 결정을 해 나갈 것이며, 그 성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생산 시스템과 일정하게 독립적으로 민주적인 정책결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 (강조는 인용자)

 

'생산 시스템과 일정하게 독립적'인 문제는 일단 무시한다면 민주적 의사 결정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 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한 문제로만 남습니다. 즉, 민주적 가버넌스도 생산관점에서는 분배의 문제와 작업의 조율 문제로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빠진 것은 "무엇을 생산하고(생산, 기술의 설계)","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노동과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산의 민주화라고 말씀 드리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병일씨에 대한 저의 덧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데, 그래서 병일씨의 답변 글에 이 부분이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대안적 생산 모델과 민주적 거버넌스 모델이 서로 연관될 수 있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강조는 인용자)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독립된 실체를 규명하는 것을 환원주의라고 하는데, 현대과학을 발전시킨 중요한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각각을 독립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점에서는 크게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체적인 고민이 전체를 유기적으로 바라보는 전제조건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개별적인 고민들은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 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결론으로 가죠.

(*)

"(대표적으로 민중가요나 독립영화처럼) 이 경우 기존의 카피레프트 모델로는 창작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사회의 공적 지원 시스템이나 수익 배분의 문제, 창작물에 대한 평가의 문제,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 등등이 발생할텐데, 아마도 영식님의 고민 지점은 이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라고 많이 진전된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니 차차 더 논의하도록 하지요."

 

잘 정리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된 것들을 생산-분배의 관점을 분리해 정리해 봅시다. 

 

(1)분배의 관점 : 사회의 공적 지원 시스템(생산수단),  개별 창작물의 소유권 문제

                         주체 : 이용자 (생산자와 이용자의 분리)

(2)생산의 관점 : 사회의 공적 지원 시스템(생산수단) 정책결정과정의 문제(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수익 배분의 문제+창작물에 대한 평가의 문제(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추체 : 생산자 (=이용자)

 

(2)의 문제 설정은 (1)의 문제 설정을 포괄합니다. 앞의 덧글에서 지적한 '생산수단의 공유된 속에서 사적 노동(단순하게 개인 노동)에 대한 보상문제'는 '수익 배분의 문제+창작물에 대한 평가의 문제'와 연관되며, '개별 창작물의 소유권 문제'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의 문제설정은 (2)의 문제설정을 포괄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수익 분배의 문제+창작물의 평가의 문제'는 (1)의 분배의 관점에 포괄되지만 (2)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 설정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1)번에 대한 운동은 IPLeft나 기타 여러 곳에서 '투쟁'을 통해서 아주 훌륭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IPLeft의 주장에는 생산의 관점에서 분배를 주장하지만 현실 운동속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2)번을 고민하는 운동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사민주의 모델 속에서 찾고 있기도 합니다. 합의 기구 등이 그렇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엘리트주의의 극복 문제가 남아 있고, 노동자-민중의 자발적 참여 문제가 강하게 제기됩니다. 그리고 저의 고민은 투쟁하는 주체들 속에서 이런 모델을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 공간에서는 꽃다지와 같은 그룹이나 기타 인터넷상에서는 무료 배포하는 각 단체 기관지 혹은 각종 컨텐츠와 같은 것들이 지속성을 담보하면서, 아울러 어떤 것을 생산하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이용자-생산자 커뮤니티와 같은 것을 '공상'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소프트웨어와 위키페디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민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유소프트웨어가 MS와 같은 일부 거대 자본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성공하고 지속하는 핵심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총자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은 아니겠지요.:> )

2. 소프트웨어 이외의 분야에서 오픈 컨텐츠 라이선스 나 기타 음악 공유운동과 같은 것들은 지지 부진한데, 왜 위키페디아는 지속성을 갖고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아울러 슬레시닷과같은 뉴스 게시판은 물론이고 ‘찌질이들(?)의 글’이 모여 있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들의 동력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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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위키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7호 

김영식 


 중세 봉건제가 맹위를 떨칠 때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어딘가에 대안 사회의 싹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찾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흔히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자유로운 이용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분배의 관점에서는 그리 큰 매력은 없다. 왜냐 하면 자유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셰어웨어나 프리웨어 등 자본의 통제를 받는 무료 소프트웨어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익숙할 때까지 무료로 공급하다가 익숙해질 때쯤 유료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 등을 목적으로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검색 엔진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진정한 강점은 생산자-이용자 공동체에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생산자들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하지, 시장에서 교환할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또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공동체에 기여(노동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다(접근이 허용된다). 노동한 량에 따라(혹은 기여한 양에 따라) 차등으로 분배받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는 비-시장적 관계(non-market relations)를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협동 노동을 이끌어 내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특허를 독점하고 있는 IBM 등 컴퓨터 자본이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자유소프트웨어를 그들의 기계에 적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그 만큼 자유소프트웨어가 기술적으로도 보안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자본마저도 자유소프트웨어에 기여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자유소프트웨어의 강한 흡입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신은 소프트웨어 이외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IPLeft(http://ipleft.or.kr)의 정보공유라이선스운동이 있고 열린-음악 운동 (http://jazzbond.soundhome.cz/OML.html)도 있다. 미국의 MIT대학에서는 강의 자료를 공유하자는 오픈 코스웨어 (Open-Courseware, http://ocw.mit.edu/index.html)운동을 펼치고 있고, 과학자사회에서는 과학저널에 공적 접근(open-access)을 허용하는 공공과학 전자도서관(http://www.plos.org/)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운동은 거의 모두 개별 노동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기부 받아 이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위키페디아(Wikipedia)'라는 인터넷 백과사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처럼 전 세계적으로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거대 백과사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결과 불과 4년 만에 230여년 전통 과 권위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실패한 자유백과사전 : 누페디아


 위키페디아의 이러한 성공 뒤에는 과거 누페디아(Nupedia)의 실패 경험이 있었다. 누페디아(Nupedia)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이었다. 누페디아라는 말은 자유소프트웨어를 나타내는 GNU(그누)에서 '누(NU)'와 백과사전(encyclopedia)에서 '페디아(pedia)'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누페디아는 리차드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일명 그누(GNU) 프로젝트의 정신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문서에 적용하여 권위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프로젝트)이었다.


그러나 누페디아의 경우 '오픈 라이선스'와 같은 정보 공유 라이선스를 채용하는 것 이외에 기존 출판과정과 다른 점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글을 쓰고 전문 편집인들이 평가하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은 주어졌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일단 글이 완성되면 웹상에 올라가는데 더 이상 수정되지 않는다. 누페디아는 일반적인 웹페이지처럼 '중앙'에서 기획되고 통제되었다. 소수 편집저자 몇 명의 헌신에 의존한 누페디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정신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인 전 세계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였다.


다시 시작된 자유백과사전 : 위키페디아(ko.wikipedia.org)


누페디아 운동을 딛고 위키페디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새로운 위키위키(WikiWiki)라는 웹기반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는 지난 1995년으로 당시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네티즌들이 협동해서 웹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에서 만든 웹 소프트웨어이다. 간단하게 협동으로 웹을 구성할 수 있는 '협동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월드 와이드 웹(WWW)의 개념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개념을 다시 살렸는데, 웹에서도 누구나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웹페이지의 내용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었다.


 위키위키 웹페이지를 보면 항상 [편집edit 혹은 수정]이라는 메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누구라도 웹페이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메뉴이다. 변환된 내용은 원 저자의 허락이나 다른 누구의 평가도 없이 웹페이지에 즉시 반영된다. 각각의 페이지에는 가장 최근에 바뀐 내용과 함께 그 웹페이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 history]라는 메뉴가 있다. 이것을 통해 필요하다면 다시 원상 복구할 수 있다. 참고로 위키위키는 하와이 언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이용자가 웹페이지 내용을 읽어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즉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위키위키를 기반으로 한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고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다. 위키페디아에서는 모두가 저자가 되고 편집자가 된다.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단어를 추가하고 편집/수정하는 작업은 전 세계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는 누적되었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 버그가 적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어 버그를 잡을 확률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위키페디아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 가고 있다. 백과사전의 내용 중에 발견된 실수나 빠진 부분은 즉시 교정되거나 추가된다. 모든 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이가 깊어지고 내용은 풍부해 졌다. 2005년 9월 추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 명가량이 참여하고 있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1월 현재 영어판 94만 건, 한글판 1만 9천 여 건을 비롯하여 모두 260만 건 이상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25개국 이상으로 번역 서비스되고 있다.


위키페디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컴퓨터 서브와 인터넷 연결 하드웨어는 미국 산디에고에 있는 검색엔진 회사 보미스(Bomis)의 짐보 웨일즈(Jimbo Wales)에게서 기증받았지만 지금은 비영리 재단인 위키페디아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미스에 데이터의 교환, 전력소비에 사용되는 비용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페디아의 내용은 카피레프트 저작권 가운데 하나인 GNU 자유 문서 사용 허가서로 배포된다.


역 침투


자본주이 사회에서 자라나는 대안 사회의 싹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본주의를 뒤덮어 새롭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어린 싹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밟혀죽기도 하고, 울타리 속에 갇혀 구경꺼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 자라나면서 가지치기를 당해 대안적인 성질이 퇴색해 버릴 수도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내외적으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데, 외적으로는 오픈소스운동이 등장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인 문제로는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를 운영에 몇몇 엘리트들이 지나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엘리트들의 권리는 무력으로 강탈한 것이 아니라 높은 기술력과 공동체 기여도에 따라 권위를 획득한 것으로 민주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의 불평등은 자유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몇몇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에서는 직접 선거의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데비안 리눅스 공동체)


위키페디아도 역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언제나 자유롭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글들이 질적인 수준이 다르며 허위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위 누리꾼들의 일탈행위도 무시할 수 없다.


 2005년 6월 LA타임즈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논설을 위키위키 형식으로 걸고 실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찬성과 반대의 글이 나눠져 고쳐지는 등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포르노 사진과 비속어가 난무해서 결국 닫아 버렸다. 2005년 4월에는 교황 베네틱도 사진이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황제 사진으로 바꿔치기 한 적도 있었다. 전직 언론인인 존 세이겐탈러(John Seigenthaler)는 자신이 로버트 케네디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에 관여했고, 이후 13년간 소련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132일간이나 수록돼 있었던 적도 있었다. 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정기적으로 위키페디아에 올라온 자신의 이력을 자신들에게 이롭게 관리하고 있다. 또 이 위키페디아가 자본에 위협적이라면 자본가들이 자본력을 동원해서 위키페디아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러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42개 항목에 대한 조사한 결과 위키페디아가 브리태니커만큼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2005년 12월 15일)


그러나 몇 차례 홍역을 치룬 뒤 위키페디아 운영진은 운영방식을 수정하였다. 익명의 이용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600여명의 자원 편집자들은 잘못된 내용이나 인신 공격적 내용을 찾아서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The Guardian 2005. 12. 9).


높은 수준의 대안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건 (민주적)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지배자의 역할이 아니라 자본이나 정치/문화 권력 대한 대안 장치로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보호 장치의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보다 세밀한 접근을 요구한다. 그들은 자본주이 시장관계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정보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권을 허용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권력관계(착취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치하였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도 엘리트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위키페디아 운동에서도 익명이용자들의 등록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공동체내에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물론 자유소프트웨어의 경우 소프트웨어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고, 위키페디아의 차별 역시 소수자를 위한 역차별인지 여부 대해서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위키페디아나 초기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생산과 이용 모든 면에서 차별 없는 접근권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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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에너지

 

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연료

                                                                                      노동자의 힘 97호

미국의 부시는 대통령은 1월 31일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석유 중독증‘에 걸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2월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전에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을 끝내거나 줄일’ 것이며 특히 6년 내에  청정에너지 연료로 평가받는 에탄올 생산기술을 실용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6월에 이미 미국 의회는 에너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은 가솔린 공급자는 현재 30억 갤런에서 2012년에 이르면 연간 80억 갤런의 에탄올을 첨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석유자본가 집안의 부시가 이러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보고 있노라면 돈을 위해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이후 크게 뉘우친 놀부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놀부의 뉘우침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왜일까?



 

석유에 중독된 미국


서방 정부는 거대 석유 자본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미국정부는 1930년대부터 석유와 자동차 자본의 음모에 따라 전차(전기 자동차)는 물론 대중교통수단 모두를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10명중에 9명의 사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2억대 이상의 자동차가 미국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결국 미국은 마약중독자와 같이 해마다 더 많은 석유를 공급받지 못하면 살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마약이 끊기면 심한 타격을 입고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1973년 아랍국가의 석유 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한 공급 중단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은 서방 국가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석유 공급을 위협했다. 이들 국가 중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나라는 전 세계 오일의 25%를 사용하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석유 공급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질수록 석유를 생산하는 아랍이나 남미국가에 대한 정치공작을 증대시켰다. 이들 국가의 부패 관료들은 자국의 석유 시설을 미국 자본가에게 헐값으로 넘겼고, 산업 인프라는 미국식으로 석유 의존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은 미국에 빚을 내어 충당하였다. 자국 원주민들은 땅을 강탈당했고 이 정책을 비판한 민주인사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은 헐벗기 시작했고 강과 바다는 오염되어 버렸다. 그들은 마치 고이율의 사채를 빌려 쓰고 장기매매를 기다리는 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라크 침공만으로는 해답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랍 국가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석유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격이나 생산량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랍국가의 국가 주도형 석유산업을 민영화 시키는 것이 이후 중동지역에 정치적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중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석유는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고 더 많이 생산되는 그런 종류의 상품이 아니었다. 1970년 이후 미국 내 석유 발견량은 이미 소비량의 1/3 이하의 수준이었다. 새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더 깊이 매장되어 있고 발굴이 어려운 지역이고 그 양도 작아서 더 많은 비용이 필요 했다. 아랍과 남미 국가도 예전처럼 녹녹하지 않다.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아직까지 저항이 거세고 인접국 이란 역시 반발하고 있다. 17%의 석유를 수입을 수입하고 있는 남미의 베네수엘라에는 '참신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 버렸다. 또 하나 중국의 산업 발전은 전 세계 석유 수급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부시, 대안에너지 찾아 나서다.


이와 같이 부시는 환경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에탄올과 같은 청정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청정에너지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특히 에탄올 연료는 청정에너지의 탈을 쓴 수소에너지(기관지 노힘 59호 참조)나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에너지원임에는 분명하다. 


에탄올이란 정확하게 에틸알코올이라 불리는 물질로 식용으로 제작되면 술이 된다. 제조과정도 술과 동일한데, 사탕수수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을 발효, 증류해서 만들어진다. 에탄올은 가솔린처럼 태워야 하지만 산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가솔린과 섞어 사용하면 이산화탄소(일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또 에탄올 분자는 석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탄화수소보다 분자가 훨씬 작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연소된다. 문제가 있다면 배출되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은 대기 중에서 오존의 광화학적스모그의 생성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브라질은 자국의 막대한 사탕수수 생산량을 바탕으로 에탄올을 대량 생산해서 자동차 연료의 40%를 대체하고 있고, 미행정부는 에탄올 정제회사에 1갤런(약 3.8리터)당 51센트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어 가솔린과 혼합해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작년 여름 새로 입법화된 '종합 에너지법'도 에탄올의 이용촉진을 유도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청정에너지 공장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하다?


작년 11월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프란시스코 안셀모 바로스 (Francisco Anselmo de Barros)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대인 판타날 (Pantanal)지역에 에탄올 공장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온몸에 가솔린을 뿌려 분신자살했다. 환경운동가가 청정에너지 생산 공장을 반대하다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이 청정에너지가 환경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이후로 브라질에서는 대량의 에탄올을 목적으로 대규모 사탕수수 공장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에만 2개의 공장을 설립한 바 있다. 이 과정에 식량생산 경작지가 감소하였고, 농토를 빼앗긴 소농과 소작농이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사탕수수 경작지는 숲을 태워 확보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사탕수수 공장에서는 식물 비료 생산과 수송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였고, 발효시키고 세척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폐수는 하천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켜 버렸다.


판타날의 지역 중 165,000㎢ 넓이를 갖는 그리스보다도 넓은 지역이 원시 지역이다. 이 지역은 파라과이 강과 파라나 강의 유량을 조절하는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650종의 조류, 190종의 포유류, 270 종의 어류 및 1,100종의 나비가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에탄올 대량 생산을 위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하면 망한다.


자본주의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항상 시장 하나만 생각한다. 또 모든 것을 따로 때내서 개별적으로만 생각한다. 에너지 문제는 이미 자본가의 생존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고, 전 인류의 문제로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전 인류의 문제라는 점은 자본가에게는 새로운 ‘시장’으로 보인다. 확신컨대 부시의 청정에너지 정책에는 시장만 고려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도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대안에너지인 태양전지 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데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면 좋은 것이다. 어떤 상품이 시장에 주목받으면 그 상품의 고유의 특성은 무시되며 교환 가치만 중요시된다. 자본의 눈에는 환경과 인간은 없다. 만약 청정에너지가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이것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 놓기 위해 모든 기술을 집중시킨다(과학기술자의 노동 강도를 극도로 높인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파괴되는 환경의 문제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본이 하면 어떤 한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다른 모든 시스템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브라질의 사례는 이점을 잘 설명해준다. 청정에너지 개발 문제는 청정에너지 자체만 봐서는 안 되고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을 건드려야 하는 유기적이며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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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과학기술로 사기 치다.

/* 결론 부분을 바빠서 아쉽게 마무리했습니다. 원래는 과학 저널의 평가 방법인

    동료심사(Peer review)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

    방법중에 하나가 과학저널에 자유로운 '공적 접권'을 허용하는 방법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도 실험되고 있다는점

    그러나 거대 저널(사이언스나 네이쳐지 등)은 이러한 손쉬운 방법을 외면하고

    있고 또 외면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이러한 모습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는다는 점

    등을 지적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결론 부분을 완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놈의 시간!    :> */

 

과학자, 과학기술로 사기 치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2002년 미국 벨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박사는 네이처지와 사이언스지에 무려 4년 동안 13편의 조작된 사기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황우석 박사도 2000여개의 난자로 실험하였지만 결과는 사이언스지에 2편의 조작된 논문만을 발표하였다. 뉴욕 타임즈 (1995년 12월 20일)는 ‘연구 프로젝트와 논문을 게재하는 과학 저널(논문)이 증가할수록 실수와 조작 같은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고 또 최근 워싱턴포스트지(2006년 01월 15일)도 작년(2005년) 미국의 연방연구윤리국(ORI)에 접수된 조작 의혹의 논문이 265건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사기 논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조작하는 이유로 미국의 칼텍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굿스타인(David Goodstein)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 성과에 대한 압박, 두 번째로 올바른 결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즉 적절한 실험을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실험하지 않고 조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개별 실험들이 다른 곳에서 정밀하게 재현하기 힘든 경우로 나누고 있다.

이 세 가지 중 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면 논문 조작의 원인을 모두 과학 기술자 개인에게서 찾고 있다. 과학기술자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자의 책임 문제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자칫 논문 조작의 책임을 과학자 개인에게만 전가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황우석박사 개인을 과학계에서 퇴출시킨다고 하더라도 논문 조작과 같은 과학사기 사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자 사회가 외부 사회와 만나는 지점, 그 중에서 특히 자본과의 관계들을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은 크게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초과학 분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응용분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응용과학 분야는 먼 미래 기술과 바로 적용이 가능한(혹은 적용한) 과학기술로 구분된다. 미래 기술의 경우 자본으로부터 상품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인받지 못하면 바로 퇴출되어 버린다. 상품 적용성이 높은(혹은 적용한) 기술의 경우는 자본의 통제아래 강하게 속박된다. 과학사기도 이와 같이 나눌 수 있다.
기초 과학 분야의 경우 ‘허위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을 때, 먼 미래 기술의 경우 자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할 때(‘자본을 향상 과학사기')와 상품 적용성이 높은 과학 기술이어서 자본의 직접적인 사주를 받을 때(‘자본에 의한 과학사기')로 나눌 수 있다.



허위 이데올로기

허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과학 사례로는 IQ에 대한 연구가 있다. 1921년 발표된 미국 육군의 심리 조사 보고서(PEUSA Report)에 따르면 평균 정신(지적) 연령이 이탈리아인은 11세, 폴란드인은 10.7세 흑인이 10세이고 미국 백인은 13세로 가장 월등하게 나왔다. 인종적으로도 북유럽 인종, 슬라브족, 남유럽 인종 순이었다. 이 보고서는 남부와 동부 유럽인의 이민 제한 강화 및 유태인 이민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이민제한법, 출산 장려 및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건강 복지 정책, 분리 교육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 정책의 근거가 되었다(한국교육신문 1월 21일자). 현재 IQ에 대한 연구는 과학을 빙자한 사기임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유명한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사건이 있다. 1912년 영국 서섹스(Sussex)주의 필트다운 부근에서 아마추어 화석연구가 찰스 다우슨(Charles Dawson)은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뼈 두 개와 원숭이 같은 턱뼈를 “발견”했다. 영국의 고인류학자들은 즉시 이 화석이 인류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턱을 가진 새로운 종에 속하는 원시인류 화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원숭이와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연결고리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40년 뒤인 1953년에 이 화석은 현생 인류의 머리뼈에 오랑우탄의 턱이 끼워진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토록 오랜 시간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영국박물관에서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원인은 따로 있었다. 1924년 다트(Raymond Dart) 교수에 의해 남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의 두개골은 실제 침팬지의 두개골처럼 작았다. 이에 비해 필트다운인은 뇌가 크고 아래턱이 발달하였다. 이 화석은 위대한 영국에서 출현한 커다란 두뇌용량을 가진 인간의 조상이라는 백인 우월주의에 적합했고 인간이 머리부터 발달한다는 관념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2000년에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의 후지무라 신이치는 구석기 유물의 발견자로 유명했다. 그의 발견은 일본에서의 인류 거주의 역사를 70만 년 전으로 이끌 만큼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런데 땅을 파헤치기만 하면 구석기 유물을 발견하는 놀라운 황금의 손은 곧 의심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 발견은 후지무라가 몰래 유물을 땅속에 묻고 다시 발굴한 사기 사건임이 밝혀졌다.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일본에서 이러한 사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2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을 제시하며 최초의 인류가 중국에서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북한의 경우도 상원 검은 모루 유적을 10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남한도 단양 금굴 동물화석을 두고 70만 년 전 유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독 일본만 후지무라 신이치의 발견 이전까지 이러한 주장을 할 만한 유적이 없었던 것이다.

좌파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에 따르면 정보는 우리에게 "문화, 희망, 그리고 기대"라는 필터를 통해서 전달된다고 한다. 흔히 이것을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하는데, 과학적 증거들이 있어서 실제 증거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바라는 소망대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것이 진리에 대한 관심도 없이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잘못된 해석, 왜곡, 속임, 부정직, 또는 전도(perversion)된 진리라고 불린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

1989년 미국의 유타 대학의 두 화학자 폰스(Stanley Pons)와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 교수는 자신들이 저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논문이 아닌) 기자회견 통해 발표하였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한데,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이 발표는 인류의 에너지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발표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완전한 조작 또한 아니었다. 전기분해 실험에서 상당한 열이 방출되자 이를 핵융합이 일어난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왜 유능한 중견과학자들이 성급하게 주관적인 결론을 내렸을까? 이미 상온 핵융합기술은 물리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고, 성공한 사례도 전무했기 때문에 이 기술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기술이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분야도 실현가능성면에서 불신이 높았다. 그나마 줄기세포 연구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서로 경쟁하고 있고,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다시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 중 성체 줄기 세포 연구보다 배아 줄기 세포 연구가 그나마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에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박사가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의 경우 인간의 수정란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종교계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종교계의 반발은 윤리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황우석 박사는 2004년 인간 체세포 복제를 이용해서 줄기세포를 획득했고, 2005년에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와 함께 성공률도 0.4%에서 6%를 끌어 올렸다는 ‘엄청난 성과’를 담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곧이어 STEPI라는 과학기술 평가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 연구가 2015년에 20조원이라는 경제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할 즈음 이 모든 것이 사기였음이 드러났다.

이 두 사례는 자본에게 상품화 가능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지 못하면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없는 미래 기술에 해당한다. 만약 이러한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이 비정규직(계약직)이라면 연구 성과에 대한 압력이 더욱 가중될 것이고 연구 성과를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은 커질 것이다. 또 이들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주식을 보유하거나 창업하였다면 자신이 투자한(설립한) 회사의 미래가치(주가)를 높게 평가 받기 위해 과학적 성과를 조작하고자 할 것이다.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

1997년 미국 브라운대학의 부교수이며, ‘로드아일랜드 메모리얼 병원’에서 직업병 담당의사인 컨(David Kern) 박사는 포터킷(Pawtucket)에 있는 한 섬유회사에서 근무하다 폐질환에 걸린 노동자 두 명의 조사를 의뢰받았다. 컨 박사는 지역의 한 섬유공장으로부터 그가 병원에서 치료한 바 있는 폐질환 환자 두 명을 조사하는 일을 의뢰받았다. 그는 150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같은 질환에 걸린 6명의 환자를 더 발견하였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4만 명당 한 명 꼴로 발명하는 병이기 때문에 직업병이 확실하였다. 컨 박사가 이 사실을 논문에 발표하려 하자 섬유회사는 ‘사업비밀’을 빌미로 발표를 막았지만 컨 박사는 언론에 공개하고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결국 그는 대학과 병원에서 해고되었다. 이 경우는 다행히도 과학자가 자본에 반대했기 때문에 세상에 일찍 공개된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1985년 1월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한국의 경남 온산공단 인근 주민 500여명이 카드뮴으로 인한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온산 주민들은 1982년부터 팔, 다리,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 크게 번지고 있다고 호소해왔었다. 공해문제연구소는 이 ‘온산병'의 원인이 공단내 비철금속 공장들의 오염물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정부와 자본 편을 들었다. 과학기술자들은 너무나 뻔했던 이 병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고(않았고), 그래서 현재까지도 ‘괴질’ 혹은 ‘온산병’이라는 원인 불명의 병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과학기술자들의 원인 규명에 정부와 자본이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일부 사례는 자본의 개입을 충분하게 짐작하게 해준다.

실리콘 겔 유방 보형물은 1960년대 초 성형외과 의사에 의해 고안되었고, 1962년 다우코닝(Dow Corning)에 의해서 제품화되었다. 198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실리콘 겔 유방 보형물이 쥐(rats)에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점차 피해자가 속출함에 따라 1994년 미국의 피해 여성들은 다우코닝사(社)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실리콘 유방 수술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마요 클리닉(Mayo Clinic)과 하버드 의대에서는 실리콘 유방 이식술과 부작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직 간접적으로 다우 코닝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마요 클리닉 연구 결과는 실리콘 유방 이식 수술과 자가면역질환과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적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971명의 조사 환자 중에서 이유를 밝히지 않고 149명의 환자를 배제하였으며, 또 발표 시점에 또 73명의 환자 기록을 배제하였다. 또한 유방이식술의 부작용에는 면역 질환이외에도 많은 비정형적인 질병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하버드 의대의 연구결과에서도 유방 이식 수술을 받은 지 40.5년, 37.5년 된 여성들을 연구에 포함시켰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 유방 이식 수술의 경우 1962년에 시작했고 그 연구 결과가 1990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경우가 28년에 해당한다. 또 이 연구에서는 유방 시술을 한지 30일 미만인 환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학사기의 피해자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든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든 이들 두 경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본가의 이익에 맞추어져 있고, 또 직접적인 피해는 노동자-민중에 전가된다는 점이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는 상품화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며, 과학기술자 사회 자체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핵융합기술과 같이 물리나 화학분야와는 달리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루어지 때문에 과학사기 사건은 과학기술자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황우석 사기논문 사건에서도 보듯이 2000여개의 여성 난자를 소모되어버렸다. 그 난자 중 상당수는 불임과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것 혹은 황우석 박사의 사기에 속아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이다. 이도 모자라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더 많은 신선한 난자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피해가 큰 것은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이다. 상품에 적용된 과학기술은 자본가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에 자본가는 기술의 공개여부는 물론이고 연구 결과 조작에 직접 개입한다. 이 경우 자본이 직접 과학사기를 진두지휘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자 사회의 자정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기술자 집단과 자본이 단합할 때는 온산병과 실리콘 유방 이식 수술과 같이 이 법적 싸움으로 가거나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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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유치원 입학서류 못돌려준다니

[펌]유치원 입학서류 못돌려준다니

                                                                              독자기자석(한겨레) 05. 12. 13

                                                                                                   고선생(누굴까?)

얼마 전 동네 유치원에 입학 등록을 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전형료를 제외한 입학금은 돌려주면서도 입학원서와 관련 서류는 돌려줄 수 없다고 하였다. 주민등록등본과 신상명세가 낱낱이 적혀 있는 입학원서를 입학을 취소한 당사자에게 돌려 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폐기될 자료가 분명한데도 말이다.

 

대학 입학 원서나 입사 지원서의 경우, 제출서류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항목을 모집 요강에 적는 곳도 있지만, 반대로 반환시기를 명시하는 대학도 있다. 제출서류를 돌려주지 않는 학교나 회사가 자신들의 행정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 어떤 법률적인 규정에 근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문의하였더니 원서를 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얼마 뒤 유치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육청으로부터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주민등록등본은 줄 수 있으나, 원서와 개인조사서까지 꼭 받아야겠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원서까지 빼가는지 듣고 싶다고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제출서류는 돌려받았다. 그러나 입학원서 형식이 유출되니 빨리 폐기처분하라고 하였다. 다른 유치원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입학원서 형식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권리를 무시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전형료 5천원의 근거자료로 아동의 질병현황, 환경, 주거형태 등이 적힌 개인조사서, 보호자의 직업, 근무지, 최종학력까지 적힌 입학원서가 꼭 남겨져야 하는가?

어쩌면 내년도 그 유치원 모집요강에는 ‘제출서류는 절대 돌려주지 않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힐지 모르겠다. ‘개인의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은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어 생긴 범죄나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http://www.hani.co.kr/kisa/section-008005000/2005/12/008005000200512121846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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