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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7. 22 비. <비>
-ᄀᄎᄉᄋ-
이슬비보다는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내게 있어 ‘비’ 라는 단어는 씁쓸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봄비. 비오는 날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감상적이게 된다. 씁쓸한 추억 이후부터는 세상을 살아가는 냉혹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병신! 싸구려 감상에 젖지 마라! 비오는 날이면 떠나간 내 사랑이 생각난다고 그래서 술을 찾는다고 배부른 소리하지마라.” 내 삶의 한 때 이런 말들로 날 채찍질했었다. 재수시절 생계비(솔직히 말하자면 생활비)를 위해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배달. 자전거로 이 잡듯이 온 시내를 휘젖고 다녔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200부 정도를 배달했다. 예고도 없이 비가 올 때가 있다. 그것도 신문사 배급소로 되돌아가기에는 먼 거리에서 난감했다. 비옷 안 입어 옷 젖는 건 문제가 아니다. 비닐을 안 씌운 신문지가 빗물을 쪽쪽 빨아 먹고 있는 게 안타깝다 못해 내 얼굴이 울상이었다. 퉁퉁 부른 우동 가락처럼 신문지가 너덜거린다.
서러움의 눈물과 봄비가 내 볼을 같이 타고 흐르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이지 남들 다 발 뻗고 편히 잘 때 난 졸음을 참으면서,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다. 세상에 대한 나의 첫경험은 서럽고도 슬펐다.
술을 먹다가 가끔 신문배달을 회상할 때면 목이 메이는 울음이 나올 때도 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처럼 말이다. 상대적이다. 내가 경험한 거와 남과는 다르다. 내 삶의 때도 저 비처럼 말끔히 씻겨 내려 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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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기를 좀 근사하게 뭔가 있어 보이게 쓰고 싶어 기다리고 기다렸건 만, 눈알 빠지게 기다리다간 속에 천불이 나서 못 베기길 것 같아 쌓여 있는 것을 휘갈겨 쓴다. 그것도 새벽 3시를 넘겨서 말이다. 내일 아침에 선거 사무실 청소를 가기로 약속을 해서 일찍 자리에 누워 건만 오늘 일때문인지, 원래 불평불만이 많아서 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할 일을 다 해놓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백수 생활도 3개월째를 달리고 있다. 백수 생활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래서 달콤한 잠도 안 자고 날밤까면서 까지 귀찮은 행정서류와 면접, 시험(상식적인 수준)을 보면서 참고 참았다. 근데 떨어지고 말았다. 그냥 짜증이 왕창 밀려 왔다. 짜증나서 미치겠다.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일거리 걱정에 집회 마치고 밥만 먹고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왜 떨어졌을까 하고 아주 심한 자책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겠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니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그 전에도 아주 많아겠지만 미술대회 나가서 떨어졌던 기억으로 시작해서 대학 떨어진 것, 또 떨어진 것, 이번 앞에 기회가 되어 특별전형으로 서류접수를 했는데 그것도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뭐가 있나. 이 정도 되니 시험친다라는 류의 모든 것에 그냥 말 안하고 조용히 지나가려고 노력하지만 이게 술만 먹으면 입이 근질근질해서 말해버리고 만다. 발표가 나면 쪽팔리만.
실업자 재취업 교육 일환으로 백수라면 한 번쯤 교차로로 통해 눈요기 정도는 했을 법한 IT교육 과목 중에 컴퓨터 초급 단계인 분야를 체계적이면서 구속받으며 배우고 싶었다. 그것도 공짜로 (실제로는 공짜도 아니면서 사기 때리는 거지만) 배울 수 있으니. 근데 이 일정을 맞춘다고 백수의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았지만 참았다. 평택 투쟁도 이런 핑계거리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받곤 했다. 6개월 과정을 교육 받을 준비로 6개월 동안 모든 일정을 이에 다 맞춰 놓았다. 근데 이제는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게 될 판이다.
그리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어떤 틀에 구속을 받으며 교육 또는 그에 준하는 뭐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내 친구 중에는 대학교 2학년인 학생이 있는데.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닌 것 같고, 이 짜증남을 어떻게 해소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다. 경쟁율, 시험, 운, 실력 이런 것 다 떠나서 이번에 떨진 것에는 면접에서 아주 거침없이 말 한 것에 대한 보복성이 있지 않았을까. 근거없는 추측을 해 본다. 자전거를 타고 집회를 나가면서 그 학원을 지나 갔는데 밉고, 분하거나 이런류의 기분보다는 그냥 짜증이 일어 왔다. 며칠은 그렇게 지나가곤 할 것이다.
오늘 짜증에 일조한 건 평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안 함께 하지 못한 이유 중이 이 일정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보상 받을까 싶다. 보상해 줄 일도 없겠지만. 어이구 왜 내 삶인데 내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여~ 짜증, 짜증
결국 오늘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와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며 논을 파고 말았다. 근데 이건 짜증이 아닌데, 왜 짜증으로 느껴질까. 분노가 쌓이고 쌓여, 관성이 되어서 그런가.
16일이 최대의 고비가 될 것이라 하는데 대추리에서는 지금도 규찰을 서고 있겠지. 평택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다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무례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 기도하는 게 나의 한계인 것을.
나의 짜증이여, 어서 증발하여라
대풍으로 이어지는 뜨거움
100일을 맞아 각자 준비를 많이 했을텐데, 음향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는 바람에 아쉬웠지만, 뒷풀이에서 풀어 놨습니다. 100일 동안, 거의 집회가 끝나면 자연스레 대풍으로 발걸음이 향해지곤 했습니다. 대풍식당 어머니께서도 100일 이라는 걸 아셨는지 기본안주로 계란말이도 내주셨고, 두루치기 안주도 많이 주셨습니다. 뒷풀이 자리에 이승렬 교수님과 민주노동당 동지들과도 함께 했습니다.
▲방을 가득 메운 땅과자유 동지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이자 땅과자유 시인인 장우석 동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독하고 있다.
▲며칠 뒤면 합천으로 돌아가시는 농군이자 기타리스트, 소리꾼인 학진선배.
▲몇 달만 선보이는 하모니카 연주, 김현식의 '한국사람'으로 분위기는 익어 간다.
▲'청계천 8가'와 '저 창살에 햇살이' 노래를 시원하게 부른 준희형.
▲땅과자유 재주꾼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된 영우선배.
▲다 외우지 못 하는 우리의 교가 '천리길'를 힘차게 부르며, 우리의 흥은 절정에 이르렀다.
100일째 촛불을 밝히며 쌀을 지키는 사람들
3월 3일(금) 늦은 7시 부터 한시간 반 가량 대백 앞 민주광장에서 쌀을 지키기 위해 100일째 촛불을 밝혔습니다. 우리쌀을 지키위해 30명이 넘는 동지들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민주노동당 동지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동지들, 민중연대 동지, 녹색평론을 읽는 대구독자모임 동지들, 영남대 이승렬 교수님, 최연소 참가인 이산, 땅과자유 동지들 그리고 민주광장의 4그루 느티나무. 그 동안 함께 해주셨던 동지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멀고도 험한 길을 이제 몸풀기 정도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날 아쉽게도 후원금으로 마련한 음향을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만 함께 했던 동지들의 뜨거운 연대를 확인했습니다. 101일째, 102일째... 한 걸음 또 한 걸음, 항상 동지들과 함께.
▲준비한 피켓과 초가 모지랄 정도로 함께 해주신 동지들.
▲서명 작업을 위해 100일 동안 목이 터져라 외쳤던 이진홍샘과 상민
▲항상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시는 민주노동당 동지들.
▲ 영남대 영문과 이승렬 교수님께서도 참석해주셨습니다.
▲떡과 막걸리를 준비해주신 환경과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동지들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신 민주노동당 동지들.
▲평택 미군기지 몰아내고 올해도 농사짓자!!
▲끊이지 않는 서명 열기.
▲펼침막을 달기 위해 이 나무를 타고 가지에 묶었다. "고맙다. 나무야!"
▲100일 동안 함께했던 4그루의 느티나무에게 큰 절을 올리고, 막걸리를
부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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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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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한 소식들이었어요.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습니다. 다 읽고나니 이런 소식들을 거짓으로 접해야 하는 이 현실에 너무 허탈해지고 답답해지네요.부가 정보
gl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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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