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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10
    출입국관리소에서 [2004.3]
    꿈꾸는나비
  2. 2006/03/04
    저는 장애가 있답니다 [2005.3.6]
    꿈꾸는나비
  3. 2006/03/02
    고백 [2004.3]
    꿈꾸는나비
  4. 2006/02/28
    땅과자유 제4대 의장에 당첨되면서(2)
    꿈꾸는나비
  5. 2006/02/28
    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의 숨은 이야기 [2004. 5]
    꿈꾸는나비
  6. 2006/02/25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
    꿈꾸는나비
  7. 2006/02/25
    새내기의 첫마음 [2004.5]
    꿈꾸는나비
  8. 2006/02/24
    잔칫날 [2004.2.17]
    꿈꾸는나비
  9. 2006/02/24
    시창작교실 모임 다음날 [2004.02.01]
    꿈꾸는나비
  10. 2006/02/17
    우리쌀과 농업을 살리기 위한 촛불집회 80일째(1)
    꿈꾸는나비

출입국관리소에서 [2004.3]

출입국관리소에서

 

 

따스한 봄날의 햇볕 맞으며

대구 출입국 관리소 마당에

퍼질고 앉았다

 

섬진강 줄기의

어느 한적한 곳에서

둘이 손 잡고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스물 다섯

생애 처음 연애질을 꿈꾸는데

세상은 배가 아픈가보다

도망치고 싶다

세상을 뒤로하고

둘이서 도망치고 싶다

소설같은 연애를 하고 싶다

 

소장 면담이 길어질 모양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투쟁가로

아직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연애질 한번 실컷해야 할 판이다

이거라도

목숨걸고 해야한다면

죽도록 연애질하고 싶다

 

꿈같은 따스한 봄날

출입국관리소 마당에서

낮잠이라도 한판 때리고 싶다

 

세상을 사랑한

죄가 큰 것 같다

따스한 햇살 받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대낮부터 소주가 생각난다

 

아! 이렇게

또 봄날은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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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애가 있답니다 [2005.3.6]

술을 먹기 시작해서 지금껏 온전한 모습일 때가 없었다.
짐승에 가까운 모습으로 개판치기가 전부였다.
치유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손목에 상처가 첫번째 일 것이다.
죽을때까지 엄마와 내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있을거다.
끔찍한 일이다.
결국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 했던 나.
그 뒤로 자숙의 시간을 보냈지만, 어찌 그 버릇이 쉽게 없어질까

 

어엿한 성인이라고 보겠지만,
나약함과 실수 투성인 지금의 나.
인정하기가 싫지만 그게 내 모습이다.
그 이후로 술 먹고 획을 그을 만한 사건들은 없었지만
자그만한 일들은 많을 것이다.
고스란히 내 가슴 속에 남아
왜 그랬을까라면 자책을 하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머도 없고, 어눌한 말투, 고집쟁이, 깊이없는 무게로 분위기 잡기 등등 완전히 사회 부적응자로 남는 지름길에 놓인 나.
하지만 지금의 길에서 어쨌든 걸어가야 한다.
힘들고 버겁다.
하지만 혼자이지 않는가.

 

밀양을 내려가지 않기로 마음 먹고,
피붙이들과 연을 끊은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정말 지긋지긋한 나의 집구석이다.
사실은 도망친거다.
다시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이 모든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내 속에서 가위눌리듯 내재되어 있다.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게 악몽에 시달린다.
내 유일한 안식처인 내 방.
내 방에서 있으면 하루에 한마디도 못 할때가 많다.
내 혼자이니까,
가끔 손전화기가 있지만, 꼭 그런 날은 침묵을 지킨다.
그래서 요즘 더 말투가 어눌해진다.

 

이유는 분명할 것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일게다.

 

술에 취하는 날이면 자주 필름이 끊긴다.
그런 날은 꼭 사고를 친다.
무의식 중 아니면 숨겨놨던 말들을 퍼붓는다.
맨 정신으로 말 한마디도 안 하던 내가 달변가처럼 말을 한다.

 

그리곤 고스란히 그 화살이 되돌아온다.
어떤 변명과 용서로도 힘든 실수.
그 실수가 또 나에게는 상처로 되돌아 온다.

 

왜 이럴까
오직 알 수있는 건
내 마음은 격렬한 분노뿐이란 것.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한다.
이해 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면 안된다는 사실.

 

나의 장애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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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2004.3]

고백

 

 

2주를 정신없이 준비하고 맞이한 행사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동지를 뒤로 하고
골방에 쳐 박혀 깡소주를 마신다


무얼하지
빚쟁이 독촉하듯이
친구는 니 담배 값이라도 벌어야 할 것 아니냐고
거지 선언을 하고 싶을 정도로 닦달한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사는지
지금 누군가를 몰래 애간장 녹이며 좋아하는 이유도


한심하다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솔직히
탄핵도, 반전도, 평화도, 민주주의도 아닌 것 같다
그래, 운동에 모든 걸 걸고 들어 왔지만
일용할 양식이 없어 빌붙어 살지만
미치기 직전의 봄날 앞에,
따스하게 피어있는 개나리가
활짝 핀 목련에 마음을 빼앗겨 땡땡이 쳤다던 준희형의
그런 봄날에
이 무슨 짓인가


아무나 좋다
나를 좋아한다면
뜨겁게 연애하고 싶다
나 같은 놈은 운동 팔아 연애 할 놈이라고
욕해도 좋다


‘사랑은 사치다. 사랑은 없다’
억병에 취해
호언장담 하지만
거짓말인 게 술 깬 다음 날이면
들통 나고 만다


봄 소풍가고 싶다
남녀 구분 없음,
학력 구분 없음,
이력서, 자기소개서, 주민등록본 1통 절대 필요 없음
하지만 뜨겁게 이 봄날을 사랑할 사람이라면 됨


에라, X같은 인생
이것도 안 되면
민중과 격렬하게 연애하리라
이 망할 놈의 봄날을 박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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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자유 제4대 의장에 당첨되면서

땅과자유 제4대 의장에 당첨되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열우당 당 의장 선거가 갑자기 생각납니다.ㅋㅋ

체육관 선거로 정동영이 당선되면서 수락 연설도 했다고 하던데, 저는 당첨 이바구나 좀 할까 합니다.

우리들의 교과서인 녹평 책을 뒤적였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곳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열우당 당의장 선거가 민주적이라 볼 수 있을까(물론 다른 집의 사는 방식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12년 동안 배워왔던 교육, 과목으로 따지자면 사회, 정치 교과서와 샘을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열받는다. 어디 보상받을 방법 없을까 하고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대로 하되 끈질기게 좀 해볼까 합니다. 게으름 피우고 농땡이 부리면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섞어가며 선배님들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녹색평론사>

에서 몇 구절을 옮겨 놨습니다. 그리고 땅과자유의 제비뽑기에 대해 홍철선배께서 이야기 해주셨고 확인했지만 원칙에 대해 정리해서 적어 놨습니다. 2월 24(금) 제 4대 의장 제비뽑기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증거(?) 사진을 올려 놨습니다. 끝으로 의장의 권한으로 요구합니다. 역대 전 의장님들은 신임 의장에게 수고해라는 뜻으로 축하주 또는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요구한다!!

 

 

{국가에는 3개의 신체가 있습니다. ...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나라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인 신체분이며, 군사적인 신체와 경제적인 신체는 명백히 비민주적, 반민주적입니다. ... 선거는 귀족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거를 하면 가장 유명한 사람, 가장 돈이 많은 사람, 가장 사회에서 눈에 뜨이는 사람이 뽑히게 되므로, 그것은 귀족이라는 것입니다. ... 민주주의에서 만약 대표를 뽑는다고 한다면, 즉 민주적으로 대표를 뽑는다면, 그것은 제비뽑기라야 합니다.

... 어째서 그것이 민주적인가. ... 시민이라면 전원이 대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누구라도 시민이라면 대표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경제성자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라스 러미스, 녹색평론사)> 121~122쪽 인용

 

 땅과자유 제4대 의장 뽑은 방식

1.선거+추첨(제비뽑기)

 ㄱ. 먼저 선거에서 각자 두명의 후보를 기입

 ㄴ. 두표 이상 받은 후보를 추첨한다.

 ㄷ. 후보는 그 날 참가한 이외의 사람도 포함된다.

 ㄹ. 사외 후보도 가능하며 고로 사외 의장도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마르코스, 차베스, 강신우 등등

 ㅁ. 추첨에서 추첨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장소에서의 연장자가 추첨하도록 한다.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답글 부탁드립니다.

 

증거 사진

 ▲제가 될지 누가 알아겠습니까?


 ▲대풍식당 어머니, 뽑기의 긴장감을 막걸리 한잔으로~


 두근두근 결정의 순간


 어쩌겠습니까^^;;


 ▲지소장님 생일이기도 한 날, 의장 당첨 축하 공연



 ▲지소장의 뛰어난 연주 솜씨로 4대 의장 뽑기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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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의 숨은 이야기 [2004. 5]


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의 숨은 이야기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를 치루기 위해서 전날 용수 할매와 분이 할매와 같이 먼저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수습 닦지를 떼기도 전에 이런 큰 대회를 맞이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부딪쳐야 하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헤딩하자.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촌닭의 다짐은 다져지고 있었다.

 

608차 정기수요시위에 참가했다. 일장기가 펄럭이기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과 바위처럼을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대회 사무국인 교과서운동본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대회 준비로 아주 분주했다. 등달아 나도 바쁜척하게 되었다. 이름표를 정리하고 서울여성프라자로 옮길 비품을 체크하고 한숨 돌렸다. 처음 보는 사무국 사람들과 제대로 통성명 할 짬도 없이 일은 바빴다.

 

4일 동안 대회가 열릴 장소인 서울여성프라자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임시 사무국이 설치되었다. 곧바로 사무국의 일꾼들이 다 모여 회의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일을 해온 게 아니니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활동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게 있을거라 믿고 피가 되고 살이 될 소스를 꼼꼼히 필기했다. 몇 시간 동안의 회의가 끝나고 나의 임무를 재확인하면서 자정을 훨씬 넘기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드디어 3박4일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몰래 숨어서 달콤한 잠이라도 잤으면 하는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라도 놓기 싫다는 욕심 때문에 힘에 부치지만 끝까지 하려고 했다.

 

첫날 아침부터 로비에서 전시물 설치에 정신을 빼앗겼고, 오후에는 기자회견장 접수대에서, 저녁에는 환영만찬 세팅에 그리고 다음날 개회식장 세팅에 힘을 다 빼고서야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에서는 당일 평가회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과서운동본부의 최형우 선배, 나눔의 집에 있었던 변상철 선배와 같이 일하고 난 뒤 담배 한 대 피는 맛도 꽤 괜찮았던 것 같았다.

둘째날은 개회식장 무대 대기실에서 우리 국장님의 지시에 따라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조금은 긴장한 채로 움직였다. 개회식과 기조발표가 끝난 뒤 피해자 증언이 있었다. 통역기를 귀에 꽂은 채로 움직였다.

 

중국에서 오신 강근복 할아버지의 남경대학살 증언은 끔찍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일본병사는 어머니를 강간하려다 반항하니 총으로 쏘았고, 11살의 둘째 누나를 강간하려다 도망치니 붙잡혀 군도로 머리부터 반으로 쪼갰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증언을 겨우 마쳤다. 소름이 끼쳤다. 필린핀에서 오신 암모니타 할머니의 말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증언 말미에 분단된 한반도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제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셨다.

 

북측에서 오신 리상옥 할머니의 증언은 치가 떨렸다. 죽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사죄를 받아낼 것이다 라며 울분을 터트려 대회장 내를 숙연하게 했다. 통역기로 들었지만 겨우겨우 분을 삭이면서 원활한 대회 진행을 위해 회의장을 지켰다. 자정까지 다음 날 있을 분과토론 준비 자료를 정리했다.

 

셋째날은 행사장 준비를 다 하고, 사진 찍으러 4개의 분과토론장을 오가며 바쁜 척을 했다. 국포모(국적포기 필요없는 나라만들기 모임)의 짱인 보나선배와 정희선배와 우리의 요구를 담은 문구를 옷에 달고 다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밥 때를 놓쳐 형우선배가 사주신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공식 행사 끝을 알리는 폐회식에서 강만길 선생님의 정곡을 찌르는 폐회사는 강렬했다. “일본인들은 과거청산을 위한 투쟁을 얼마만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일본의 양심세력은 대단히 귀중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하나의 ‘장식품’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환송만찬장으로 옮겨 조금은 맘 편히 저녁을 먹었다. 북측의 계성훈 서기장의 노래 솜씨는 정말로 가수 뺨치는 솜씨였다. 선배들의 제안으로 즉석으로 몸짓과 노래를 맞춰가며 한판 놀 준비를 했다. 떨리는 마음 진정시키기 위해 소주잔을 들이키기도 했다. 기다리던 우리의 차례가 왔다. 반갑습니다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마음껏 부르며 흔들었다. 업된 기분을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로 식혔다.

 

마지막 날 난 총련분들과 함께 서울 나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덕분에 촌닭 서울 구경 확실하게 하는 기분이었다. 버스로 눈요기를 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내려 나보다 더 많이 아시는 총련분의 설명을 들었다. 무식은 죄가 아니라고 했지만 많이 부끄러웠다. 나들이를 마치고 남북교류회장으로 옮겼다.

 

대구행으로 가는 막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쉬웠다. 같이 뒤에서 일을 했던 선배들과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만남이었다. 자료집 인사말에 보면 “피해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활동가에게 ‘연대와 교류’를 이라는 문구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활동가에 ‘연대와 교류’를, 풀어서 말하자면 이 투쟁이 있어서 함께할 동지를 만났다 라는 것이다.

 

어떤 대회, 행사나 그렇지만 실무를 보는 활동가에게는 회의장 앉아 필기를 하며 발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발로 뛰며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 믿는다. 투쟁의 깊이를 더 해가는 공부는 골방에서 집중과 반성으로 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하여튼 나에게 있어서 이번 대회는 보이지 않는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쌓이고 쌓이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투사가 되리라 믿는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가르쳐 준 이번 대회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7월 소식지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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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

 

며칠동안의 집회 모습을 모아서 전합니다.

입춘과 우수가 지나고 경칩을 앞둔 따스한 봄날이 오긴 하지만 쌀과 농업에 대한 문제는 오히려 엄동설한인 것 같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새삼스럽지만 이 말이 절로 나옵니다.

 

동지 여러분!

함께 합시다. 매일 저녁 7시, 대백 앞에서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이닌 거여.

 

                                                                                                -이현주 <밥 먹는 자식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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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2. 21(화)  90일째

  날이 갈수록 시민들의 참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90일째 촛불을 들고 있는 땅과자유 동지들 



 ▲91일째를 이어가기 위해 날짜를 고치는 장우석 동지. 


2006. 2. 22(수)  91일째

  민주노동당 달서구위원회 이종진, 여기복 당원의 참여로 91일째 집회를 힘차게 출발을 하였습니다.

 


▲흥겨운 기타 소리에 맞춰 힘차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서명하면 정말 우리쌀을 지킬 수 있냐며 물어보면서 서명한 학생들.

 


2006. 2. 23(목)  92일째

▲김기훈 동지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김두현 사무처장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대백 앞 거리의 인파 속에서

 



▲집회를 마치고 뒷풀이 장소인 대풍식당에서 쌀밥을 받아 들고는 앞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밥이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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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의 첫마음 [2004.5]

새내기의 첫마음

 

4월 19일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실에 첫 발을 내디디고 3주가 지난 지금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 출근 전날 밤,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라며 불안과 걱정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근데 그것도 잠시 후원의 밤 준비에, 전반적인 분위기 파악에, 텅 비어 있는 머리 속에 뭔가를 하나 둘씩 채워 넣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채 3주가 후딱 지나가버렸습니다.

 

요즘은 불안과 걱정보다는 야물게 하기 위해 의욕에 차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 호흡 조절도 하면서 하나 둘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후원의 밤 때 일손을 거들어 주었던 이영환씨와 박강유성씨, 끊임없이 격려와 조언을 해주시던 열성 회원님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란 극히 작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 둘 모여 이루어지고, 이뤄 낸 모습에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맘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는 재가자원봉사자들의 마음 씀씀이를 새삼스레 다시 한번 더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어버이날 전날에는 카네이션을 들고 박정희 간사님과 같이 할머니 댁을 찾아갔습니다. 사진으로, 글로 보았던 느낌과 어찌 비교를 할 수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카메라 셔터 눌리듯 내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다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분명 제 가슴 한 곳에서 아려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항상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저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 가슴에 무언가는 새겨졌습니다. 저는 고졸 출신이라서 새터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3주는 새내기의 새로운 배움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신문으로, 텔레비전으로 접했던 그래서 저의 삶에 많이 떨어져 있던 일들이 이제는 어느덧 저의 살갗에 와 닿아있는 걸 느꼈습니다. 게을리 했던 근현대사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함을 느끼며, 확실한 실무자가 되기 위해 컴퓨터공부와 일어 공부도 끊임없이 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쌈닭이 되기 위해 배짱 또한 키워 나갈 것 입니다. 그리고 건방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할머니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같이 할 수 있다면 같이 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면서 그런 큰 포부를 밝히냐고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불합리함 속에서 상식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있는 사람이면 이 정도의 말은 나약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민주적이지 못한 위정자와 가진 자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모든 문제들 앞에 너무나 미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새내기의 가슴 속에서 뜨거움으로 차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은 격렬한 분노에 시작되어 진다는 그 말을 아직도 믿습니다. 지금도 격렬한 분노는 유효하다고 봅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5월 소식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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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 [2004.2.17]

잔칫날

이틀 연속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셨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로 마시면 변기 잡고 울거나, 약 먹고 종일 누워있으며 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푸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 오전이 상쾌했다. 술이 덜 깨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업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돈지 땅의 기운을 받아서 일거라 믿어진다. 실상사 졸업식 때문에 민희 누나는 아침에 갔다고 했다.

민희 누나 대신 민철 선배가 부안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일주일치 똥을 이제야 돈지의 힘을 받아서 용을 쓰는 보경 누님 때문에 게으른 출발을 했다. 보경 누님의 빨간 선글라스가 언발란스였지만 미인은 뭘 해도 예쁘니까 괜찮았다.^^ 해안선을 따라 물 흘러가듯이 가고 있었다. 갯벌에 솟은 솟대가 보였다. 길가에 차를 세웠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비싼 돈 주고 유럽의 미술 기행보다 이 곳에 와서 파괴되어 가는 현장에서 가슴 아파하길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장승과 솟대 앞에서 사진 한판 때리고 출발했다.

새만금 방조제 위를 달렸다. 차량 통제 지점에서 멈추었다. 해괴망측한 땅에 발을 디뎠다. 정말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자연에 맞짱 뜨자고 도전장을 낸 놈들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10년도 못 가 쌍코피 터지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20년 안에는 능지처참을 당하리라. 아무것도 아닌 내가 장담하리라. 우리가 서 있는 방조제 앞에서는 덤프트럭이 똥 누듯이 돌을 쏟아 붓고 있었다. 암담할 뿐이다. 관광버스도 보였다. 뭘 보러 왔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웃으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땅과 자유의 학생(?)은 그럴 수없다는 듯이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도 외치고,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며 구호도 외쳤다. 조금은 어설펐는지 몰라도 하나 되어 싸우겠다는 단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박영희 시인의 시 <곰소 잔디다방>에서 보면 채석강 갔다가 언 몸 녹이고 싶거든 곰소의 잔디다방을 가보라고 했다. 육십년대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곰소 잔디다방을 방문하고 싶었거늘 배신의 똥줄을 때리고 어찌 갈 수 있을까. 채석강과 곰소를 뒤로 한 채 달려갔다. 우리의 차를 멈추게 한 풍경이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 마다 걸린 노란 깃발과 아파트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걸개그림이 브이레크를 밟게 했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의 대학교 안에나 있을 법한 것이 손바닥만한 촌구석에 걸려 있다는 사실은 뭘 말해주는 것일까.

최근에 나온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의 저자인 박형진 시인 집에 도착했다. 누에 아줌마(?)의 첫사랑이라 우기는 집에 도착했을 때 누에 아줌마(?) 심정은 어떠했을지 괜히 궁금해진다.^^; 질펀하게 막걸리 마시며 안주의 맛을 못 본 게 아쉽지만(그것까지 바란다면 무례일수도 있겠지.) 식은 밥에 김치와 동치미를 내주시는 풋풋함에 그저 좋았다. 그리고 고마웠다. 동치미 무시 두 개를 맛있게 돌려 먹는 모습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땅과 자유 학생(?)들이 너무 맘에 들었다. 간접 키스니, 남이 입에 댄 건 아무것도 먹지 않는 깔끔함의 극치를 이루는 세상에 거리낌 없이 쥐가 파먹은 듯한 무시를 잘도 베어 먹었다. 간접 키스를 마다할 내가 아니지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 이렇게 살고 싶다. 조금은 허술하게 조금은 더럽게(결코 더러움이 아닌데) 살고 싶다. 뒤뜰의 나무토막 의자와 장독대와 뒷간으로 가는 길과 뒷간 그리고 야트막한 산이 어우러져 아늑했다.

부안 성당에 도착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데 보경이 누나 혼자 가방도 내팽개친 채로 아저씨들과 함께 새끼줄을 꼬기 시작했다. 잘 꼰다며 말하더니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꼬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못 하는데 그런 거 보면 대단하다. 식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종이컵도 노란 색에 핵 없는 세상이라 적혀 있었다. 투쟁의 의지가 어디까지 인지 알 수 있는 증거물이라 생각된다. 성당 앞에 있는 타임캡슐의 구루마 새끼줄에 우리의 마음과 함께 천원을 끼워 넣었다.

이제는 잔칫집 마당으로 변해 버린 반핵 민주광장에 들어섰다. 경록 선배님과 은경 선배님의 (성원 누님 말대로) 혜안이 또 다시 발휘되는 곳이었다. 오월 광주의 시민군 트럭에 주먹밥이며 물을 넣어 주는 아주머니처럼 해방을 선언한 부안에서는 배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부안에는 거지가 있을 수 없었다. 은경 선배와 보경이 누나와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국밥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얼큰한 국물에 속이 다 풀렸다. 은경 선배께서 손수 입에 넣어 주신 젓갈은 정말 입안에 쫙 달라붙었다. 전라도의 깊은 맛은 한마디로 ‘죽인다.’ 어찌 우리끼리만 먹을 수 있을까. 또 다시 받아왔다. 부침개와 막걸리, 김치, 떡으로 대낮에 또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보경이 누나는 목마르다며 다른 자리에 가서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왔다고 했다. 대단한 붙임성인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막걸리 몇 잔이 들어갔지만 대낮에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사는 게 별거 아니라고, 이렇게 사는 거라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내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신경림의 시 ‘파장’이 생각난다. ‘못 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타임캡슐 구루마가 풍물패를 앞세워 들어오고 있었다. 흥을 돋우는 풍물패에 한바탕 흔들었다. 은경 선배가 높이 든 피켓 주위에 보경이 누나와 내가 있었다. 준희 형님은 사진 찍는다고 막걸리도 못 먹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타임캡슐 항아리에 들어가는 물품들이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지만, 부안 전사들에게는 피눈물 겨운 소중한 것들이었다. 헤어진 운동화, 투쟁기록 영상 시디, 반핵 조끼와 잠바등 온갖 반핵용품들로 항아리에 넣어졌다. 8개월 전만 해도 시골의 순박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들을 전사로 만들어 버린 종규와 핵폐기장 그리고 위정자들은 좋은 말할 때 지구를 떠나라. 부안 출정가를 따라 불렀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주머니를 보았다. 내가 어찌 저 한을 알 수 있을까. 부안 자치 공동체 만세!

쉽게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느릿느릿 걸었다. 풍물 소리를 뒤로하고 승합차로 돌아 왔다. 민철 선배는 광주로 가야 하기에 여기서 작별을 했다. 광주를 찾아 가겠는 약속을 고이 간직한 채로. 선물로 반핵 깃발 두개를 얻어 왔다. 차를 타기 전에 정리 구호를 했다. 역시 땅과 자유였다. 출발을 선언했는데 보경이 누나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내팽개치고 새끼줄 꼬면서 챙기지 않은 가방을 찾으러 성당에 들렀다. 진짜로 간다. 부안을 벗어나기도 전에 잠에 빠졌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창렬 선배만 외로이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몸살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배움을 받아서 머리 속을 교통정리 하려면 며칠은 독수공방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 이런 몸살이라면 주기적으로 앓았으면 좋겠다. 이만한 공부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런 인연을 맺어준 땅과 자유의 선배님들께 큰 절을 올립니다.

창렬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먼 길을 운전한다는 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닐 터인데, 운전 때문에 제대로 편히 술도 못 마시고, 부안을 편히 갈 수 있었던 건 창렬 선배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은경 선배님 날뫼터에서 밥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경록 선배님의 허탈한 웃음과 가식 없는 행동이 너무 좋습니다.

준희 선배님의 빼어난 목소리로 부른 노래는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조만간에 술이라도 한잔 하면 어떨까 합니다. ^^

성원 선배님과는 많은 이야기를 못 해 본 것 같네요. 미인 앞에서는 눈도 못 마주치는 숙맥이라서 ^^

보경 선배님은 선머슴아 같아서 좋네요. ^^ 정말 친누나 같이 편해서 좋아요. 조심하세요. 저 왕 빈대라서.

민희 선배님도 많은 이야기를 못 해 봐서 아쉽네요. 평화 유랑단 차 앞에서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요.

지현이는 서른에 가까운 누나인줄 알았는데 동갑이라니 ^^;; 열린 글터 가면 책이나 빌려주라.

동주+남희 바퀴벌레라고 하는데 왜 바퀴벌레라고 하지. 형광등이라서 ^^;; 손잡고 다니는 모습이 좋기만 하더라. 사실은 배가 좀 아프지만 ^^ 지구 연대 동방 자주 가서 신세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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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교실 모임 다음날 [2004.02.01]

오랜만에 시창작교실 회원들을 만났다. 속쓰림과 주정에 가까운 이야기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문디, 술도 못 이기면서 어디서 쳐 마시고 와가주고 지랄이고!"

할머니 특유의 목소리에는 미움이 섞여 있지 않다. 오늘은 변기를 잡고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날이면 술 깨는 약 봉지가 머리맡에 놓여 있을 때도 있다. 예전만큼 속이 안 좋은 걸 느끼지만, 무작정 마시게 되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인 것 같았다. 문학이 뭐고, 시가 뭔지 몰라도 소화 해 낼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오버하는 이 버릇을 언제 고칠지 걱정스럽다. 오버가 아니라 분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커피샵에서 시작해서, 보쌈 집에서 소주, 아구찜 집에서 또 소주, 마지막 입가심으로 생맥주. 솔직히 아구찜 집에서 벌써 술기운이 올라서 살아 보지 못한 80년대를 겁 없이 횡설수설 했는데, 내가 했던 말이 어쩌면 무덤이고 족쇄가 될 텐데. 항상 또 술 깬 아침에 후회하게 된다.

꺼져가는 불씨가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이 생맥주 집에서 지훈이와 미덕이 샘과 밑도 끝없는 입싸움(?)이 계속 되었다. 장사 마치기 위해 우리 테이블만 가길 기다리고 있는 주인아줌마에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혼자서 두 분의 공격을 엄청 받았다^^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설전을 기약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현재의 내 위치를 또 깨닫기 위해서. 쉽게 말해서 한방 먹었다. 그것도 보기 좋게 기분이 엉망이었다. 아니 지금껏 살아 온 내 사상(생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실컷 깨어지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깨어질 게 없는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어디서 귀동냥에 겉멋에 빠져 비겁한 놈처럼 술에 힘을 실어 큰소리치는 내 자신이 초라했다. 껍데기에 불과한 내 삶이 이제는 정말 진절머리 난다.

미덕이 샘의 촌철살인 같은 말과 지훈이의 맑은 기운은 나를 또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물어 본다.

“넌 왜 글을 쓰려고 하고, 그 배움에 있어서는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한가?”

좀더 노골적으로 물어 보자

“너 솔직히 습작이라는 걸 몇 편 쓰고 술주정 부리는 거니?”

속쓰림과 오버한 말의 괴로움보다는 오늘의 삶이 또 허튼 다짐으로 끝나지는 않을까하는 괴로움이 더 크다. 지훈이가 중학교 때 이응인 선생님께 들고 갔던 몇 권의 일기장같이 적겠습니다. 한 편의 글을 들고 와 내미는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술자리를 가지겠습니다. 술 먹고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서로 못 잡아먹어 헐뜯는 자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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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쌀과 농업을 살리기 위한 촛불집회 80일째

우리쌀과 농업을 살리기 위한 촛불집회 80일째

                                                           (2006. 2. 17)

 

 

 

 

2월 17일(금) 오늘로 촛불집회가 86일째가 됩니다.

지역의 많은 분들의 참가로 이렇게 촛불집회가 이어졌습니다.

 

결코 멈출 수가 없기에,

오늘도 내일도 계속됩니다.

 

7시~8시

대백 앞 민주광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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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째 촛불집회입니다.



 

-내일은 평택에 가는 날입니다. 수근선배가 평택대행진을 위해 피켓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피켓옆에 녹색평론에서 이번에 새로나온 책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도 있습니다. 


 

-진홍이 선배가 서명하신 분들과 아는 사이인지 너무나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혹시 제자인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분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얼굴에 화색이 돋는 기홍이^^.. 무지하게 친절해 지더라구요...ㅋㅋ



 

 

*80일째의 촛불집회가 지나고, 오늘은 86일째 촛불집회를 위해 대백앞 민주광장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을 선배와 후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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