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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오늘(8.26) 미국, 여성 참정권 인정

 1920년 오늘 미국은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권리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적극적으로 여성의 평등과 권리를 주장한 이래로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치세의 19세기말과 20세기초  영국의 활동가 에밀리 굴덴 팽크허스트와  WSPU(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는 주목할 만 하다. 제국주의 영국의 팽창과 더불어 남성들의 선거권은 점차 확대되고 있었으나 여성 정치권은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경우 1913년 한해동안만  12차례 단식 투쟁을 벌였다고 한다. 또한 시위의 양상은 점점 격렬해져갔다. 1913년 WSPU의 일원인 에밀리 데이비슨이란 여인이  경마장에 난입해 시위를 벌이다가 말발굽에 밟혀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투쟁은 더욱 강화디었고 건물들이 파괴되고 불타기에 이른다.

 

결국 일차대전의 발발과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의 급증으로 영국에선 1918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뒤이은 1920년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획득은 수잔 B 엔터니에 빚진바가 크다. 1820년 태어난 그녀는 재산권법 제정으로 시작하여 여성의 권위 향상을 위해 지칠줄 모르고 뛰었으나 결국 참정권 획득을 보지 못하고 눈감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 <여권통문>이라는 글을 통해 최초로 여성 참정권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후 1919년 4.11 대한민국 임시정부 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여귀천및 빈부의 계급이 무관하게 일체평등' 이라고 명시했다.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 제헌의회 선거 부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으나 한국의 여권이 그만큼 인정 받았다고 말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한국의 여성참정권이 정부수립과 동시에 보장된 것은 여성의 목소리와 투쟁에 의해 획득 되었다기 보단(근우회등이 일제강점기 부터 여성운동을 펼치긴 하였으나 김활란등 일부 상층부가 열매를 다 따먹었다는 평가가 있다) 좋은거 다 갖다 붙인 헌법  덕인 부분이 크다고 말할 수있지 않을까? 스스로의 투쟁에 의해 얻어지지 않은 권리이기에 소중함이 덜 했었을 수도 있는듯 하다.(사실 이런 말 하기 상당히 조심스럽다)

 

참정권의 획득은 첫발에 불과하다! 평등세상의 대장정에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광 있기를..

 

첨언: 2004년 5월 16일 쿠웨이트 내각은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마침내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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