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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보니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쓴게 거의 5개월이 다 되간다! 그간 밥도 먹고 면도 먹고 술도 먹었건만...그 동안 몇 군데 맘에 드는 밥 or 술집도 발굴했건만 전혀 소개도 못했다. 그리고 그간 우리 사무실 식사 정책에도 변화가 있었네.
어제는 삼각지 원대구탕 집에 사무실 사람들이랑 갔더랬다. 항상 그랬듯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렸고 번호표까지 받아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잡고 먹었다. 난 이 집에 세번인가 네번인가 가봤다. 아주 옛날꺼까지 치면 더 늘어날런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올 해 들어서 네번 가 본 듯 싶다. 이 집은 티비 음식 프로에도 단골로 나오는 집인데(사실 이 집 예전에 뉴스에 나온 적도 있다. 아주 맛이 좋아서? 그건 아니고 수입 명태 내장을 대구 내장이라고 속여 팔다가 걸려서 뉴스에 나왔지. 머 명태 내장이 대구 내장보다 좀 떨어지긴 하지만 못 먹는 것도 아니고 그닥 큰 이슈는 못 됐던 걸로 안다. 아마 이 식당의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을테다. 비싼 고급식당이면 타격이 컸겠지만 당시 오천원, 요새 육천원 하는 식당이니 무슨 공업용 쇠가죽으로 육개장 만든 것도 아니고 명태 내장을 대구로 속여 쓴건데..)
그런데 여기서만 그런게 아니라 딴데도 마찬가지지만 이 집, 내 판단엔 그리 뛰어나진 않다. 그렇다고 개 꽝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꽤 먹을만 한 정도...내가 억지로 거기까지 가서 6천원내고 사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 쪽 동네에 약속이 있다던가 누가 가자고 하면 따라갈 정도는 된다는거. 머 내가 삼각지 께서 일한다면 아마 자주 갈 정도도 될거다.
이 집에는 대구탕, 내장탕, 지리 이렇게 판다. 근데 대구탕만 먹어봤다. 내장탕은 같은 육수에 끓일테니 안 먹어봐도 그 맛은 알 수 있는데 지리는 안 먹어봤다. 장점은 제외하고 단점만 이야기 해보자면, 미나리를 다른 야채및 대구하고 같이 끓이니까 너무 빨리 익는다. 끓기 전에 미나리만 먼저 건져 먹을 수도 있긴 하지만 너무 부글부글 끓어서 건져 먹기도 불편하다. 거품도 넘치고.. 예컨데 복국집의 경우, 미나리를 나중에 넣는다. 그러니까 향도 살아있고 살짝 데쳐진 미나리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느데 여기 미나린 너무 익어 쓰다.
좀 더 헐뜯어 보자면 양념을 너무 많이 써 맛이 텁텁하다는거, 고춧가루의 질이 떨어진다던가 마늘을 너무 많이 넣은게 틀림없다. 게다가 내 생각엔 조미료도 들어가는것 같다. 이에 비해 서린동 에스케이 본사(요즘 새로 생긴 에스케이텔레콤 사옥 말고) 옆에 있는 대구탕집(여기 이름은 모르겠다. 목조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이층에 있는 식당인데 딱 대구탕만 판다. 점심땐 줄 서야 된다) 집은 지리는 아니지만 맑은 맛을 낸다. 무우, 콩나물, 대구의 맛이 딱 살아있단게지. 고춧가루가 풀려 있지만 맑고 개운한 맛과 고춧가루 맛이 따로 놀지 않으면서도 각각 살아있다.
서린동 대구탕집은 거기서 반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그냥 스텐 대접에 담아주고 삼각지 식당은 술 손님도 꽤 많으니 각자 자리에서 가스불로 끓여 먹게 돼있다. 그런데 서린동 스타일이면 서빙이 좀 후져도 상관 없다. 알아서 먹고 알아서 가는거니까 근데 여긴 불도 조절해주고 초벌 끓으면 뒤섞어주기도 하고 밥도 볶아주니 서빙이 아주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세심하긴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 말이지. 하긴 뭐 안 그래도 알아서 장사 잘 되니 뭐 그리 신경쓰겠냐만, 그래도 밥장사는 그런게 아니자나...뭐랄까 장인정신 같은게 아우라로 작용하는게 밥장사란 업종의 특징 아닌가? 좀 더 완벽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물정 모르는 소리 하는 건가?)
게다가 이 식당에 또 한 가지 웃기는 점은...다른 식당들 처럼 자기네 가게가 나온 방송화면을 캡춰해 식당 벽에 도배를 해놓았는데 이층 안 쪽방 벽은 에스비에스 아침프로에 장면으로 짐작되는데 그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나온 짧은 뉴스들 내용이 아주 웃기다는거 예컨데 이런 식이다. '영국, 또 광우병 환자 발생' '어젯밤에도 보라매 공원에 연쇄 살인, 구멍뚫린 치안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아 참, 난 어제 속이 안 좋아서 대구탕 손도 안댔는데 같이 간 식구들한테 몇가지 갈켜줬다. 나야 어릴적 부터 어패류는 별의 별 것 다 먹어봤고 지금도 좋아하고 꼭 어패류 아니라도 각종 특수부위를 잘 먹는 편이고 신기한게 있으면 먹어보고 궁금증이 많아 그게 뭐지 다시 알아보는 편이라 이런 쪽 지식이 강한 편이기도 하고 난 못먹는데 맛나게 먹는게 약간 배아프기도 하고 해서 ㅋㅋ
곤 혹은 고니 좀 더 유식한 말로는 이리 라고 하는건데 (라면 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긴 하얀거, 창자로 알고 먹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게 뭔지사람들한테 갈켜줬다. 뭐냐 하면 뭐긴 뭐야 '정소'지 정소는 또 뭐냐 난소 정소 할때 바로 그거. 내 옆에 있던 영상활동가가 좀 찝찝해 하길래. '난소나 정소나 그게 그거니 뭐 다를게 있냐, 명란젓은 명태의 난소고 계란도 알고 보면 닭의 난소나 다를바 없지 않냐' 고 말해줬다. 근데 진짜 좀 찝찝한가ㅋㅋ 알고보면 고니는 단백질 덩어린데...앗 그러고 보니 나도 태'곤'이군. 설마 큰 단백질???
원대구탕집의 대구탕 모습, 하얗고 꼬불꼬불한게 '고니' 혹은 '곤' 혹은 '대구 이리'다. 반이 쪼개진 모습의 덩어리는 대구 간. 간 맛은 다른 짐승의 익힌 간 맛이 그렇듯이 씁쓸하고 진한 맛이다. 흔히들 어른의 맛이라 하는 그런 맛. 그래도 육상동물 간 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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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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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산 영도 섬마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1989년생)-뱀띠-
저는 아빠에게 버림받은 후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아 늘 몸과 맘이 좋지 않은 엄마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철부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희 아빠는 저와 동생이 어렸을 때 무책임하게도 저희와 엄마를 버리고, 빚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헤어지기 전 그러니까 아빠의 사업이 잘 되었을 때는 방이 많은 큰 집에서 살았고 부모님 또한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아빠의 사업 실패로 부도가 나게 되었고 저희 집에는 예전의 웃음과 화목보다는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들의 협박과 욕설이 집안의 어두운 공기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가족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또다시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더 작은 집으로 계속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난에 빚에 쫓겨 이사를 하다 보니 영도의 작은 영구임대 아파트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 갑작스럽게 닥쳐온 가난과 부모님의 이혼, 그로 인해 엄마가 겪는 마음의 상처와 병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아빠의 몫까지 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아빠와 빚쟁이들로 인한 깊은 마음의 상처는 엄마를 엄마의 조그마한 역할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집은 늘 가난하고 밝음보다 어둠이 더 많았습니다.
엄마는 이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와 해외로 이주를 해버린 남편에 대한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빚을 갚으라는 빚쟁이들의 수많은 협박과 괴롭힘으로 마음과 몸이 모두 병들게 되어 심할 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무료급식을 먹고 복지관의 도움을 받고 하면 친구들이 거지라고 막 놀려대고 하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숨만 늘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오히려 수급자로 도움 받는 것이 큰 다행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수급자로 국가와 복지관의 도움을 받지 못 했다면, 저희 엄마는 더 많이 아팠을 것이고 난 나의 꿈을 키우기 위한 노력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의 동생 또한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날에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했던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큰 울타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부에서 보조받는 돈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형편에 돈 많은 부잣집 자녀도 하기 어렵다는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이 너무나 좋습니다. 대학 진학 또한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교수나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주었던 음악처럼 저 또한 그런 음악을 만들어 세상이 힘들거나 외로운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너희 집 가정형편에 너무 사치스럽다는 말을 할 때 나의 욕심 때문에 세상에 상처가 많은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음악을 하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생각을 했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곧 나의 삶의 희망을 접으라는 뜻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에게 ‘형편이 어려우니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아 주면서 ‘내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엄마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힘든 형편이지만 내 아들이 하고 싶다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하는 엄마의 따뜻한 말에 저는 저희 가정형편에 사치스러운 음악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내린 나의 꿈인 만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백 번, 천 번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혼자서 알아 가는 것보다 레슨을 통해 배우고 알아 가는 것이 많은데 저희 집안 형편상 이러한 부분들이 해결되지 못해 저는 학교에서 단체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매달 10만원씩 수업료를 내야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를 내는 것이 힘들어 몇 달 연체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참 부끄러웠지만 이렇게라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희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매달 밀리는 레슨비 고지서에 맘이 많이 무거운지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십니다. 사실 이 수기를 쓰게 된 큰 이유도 학교에서 하고 있는 레슨비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입니다.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버스를 왕복 네 번을 갈아타야 합니다. 한 달 교통비가 너무나 부담이 되어서 교통비가 오르고부터는 부산역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닙니다. 물론 좀 더 일찍 나와야 하고 다리도 아프고 힘들지만 버스를 타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은 편안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좀 더 걷고 다리가 아픈 만큼 급할 때 버스를 한 번 더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차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어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물론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매우 슬퍼하시겠지만 말이예요. 동생교육비, 제 교육비, 생활비, 엄마 병원비만으로도 생활이 벅차고 어려운데, 저의 레슨비와 차비까지 부담되게 하는 것이 굉장히 죄송스럽고 맘이 아픕니다. 형편은 어려운데 저와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많고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일이 많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엄마의 건강상태 등등으로 많은 것이 힘겨우신지 어머니께서는 요즘 들어 부쩍 더 많은 약을 드십니다. 많이 힘겨우신지 정신과 상담 횟수가 많아지고 약도 더 많이 드시는 것 같아 맘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도 기도로 늘 강인하게 저희를 키워주시는 엄마를 보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런 엄마를 가끔 속상하고 힘들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저희 엄마는 가진 것 없는 형편에도 저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으시면서 저의 뒷바라지를 하고 계십니다. 요즘은 물가가 올라 집안 형편이 더 많이 어려워졌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 왠지 모를 슬픔이 수십 가지의 잔주름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웃을 때나 눈물을 흘릴 때 언제나 나타나는 엄마 눈가의 잔주름을 보면 저도 모르게 괜실히 힘들었던 삶이 슬퍼지려 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지급했던 레슨비를 석 달 전부터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레슨비를 내지 못 하거나 체납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3이 되면 피아노 레슨비, 작곡 레슨비도 부담해야 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텐데... 꿈과 이상, 희망도 좋지만 막상 부딪히는 현실 앞에선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는 벌써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것저것 많은 것들로 고민하시고 걱정도 하시지만 막상 제가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면 혹시라도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저에겐 언제나 ‘일규아, 힘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희 엄마 또한 어렸을 때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것이 그렇게 한이 되고 상처가 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고 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고통이 많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엄마는 그런 고통을 최대한 저희들에게 감추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즘 약을 더 많이 드시고 정신과 상담을 자주 받으러 다니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미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엄마의 힘겨움이 조금이나마 덜할텐데 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원망 섞인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엄마가 바라는 것도 제가 잘 되는 것이고 저 또한 저의 꿈을 이루고 싶은 의지가 많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서 엄마가 그동안 힘들어하고 가슴앓이 했던 것을 보상해드리고 엄마의 삶에 음지를 없애고 양지를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우리 가정과 제가 잘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과, 나처럼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든든한 힘이 되고 싶습니다. 가끔 저도 시험기간에 놀고 싶기도 하고 공부하는 것이 싫어지기도 하지만, 엄마의 얼굴만 떠올리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이러면 안되지... 내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으면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는거야’하는 생각들이 저로 하여금 손에 연필을 쥐게 하고 친구들에게 머물러 있던 눈을 책으로 돌려놓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는 전교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모두 저희 엄마 덕분입니다.
저는 지금 부산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학등록금은 장학금을 받고 다닐 생각인데, 그렇지 않으면 저희 가정형편에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감사하게도 작곡선생님께서 저의 사정과 환경을 다 알고 이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엄마에게 말씀해 드리니까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비록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성공시대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엘리트가 되어 이 사회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채워져 있었다면 오히려 나태해질 것이고 주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을 찾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 감사하고 즐겁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힘든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까?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노력하는 삶을 배워 갈 수 있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며 생활하려 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부딪히는 현실 앞에 난 연습환경이 더 좋았으면, 나도 예고에 다니는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피아노 작곡레슨을 받아봤으면 하는 생각에 완전히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좀 못 입고, 못 먹는 것은 차라리 그때뿐이지만 배움의 기회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 생각.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을 못 배우는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것보다 더 마음의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집에도 피아노 한 대가 있어서 마음대로 연습하고 창작도 마음대로 해보고 싶지만 현재 나의 형편으로 그러한 것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의 힘든 환경이 나를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 변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꿈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이 사치라고 이야기해서 정말 사치인줄 알았고 저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의 꿈은 사치가 아니라 제가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어려운 여건과 환경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수기를 쓰면서 그동안 수없이 다져왔던 제 자신에 대한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처음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생활수기를 써보라고 하셨을 때 엄두도 나지 않고 글 솜씨도 없어 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서툴지만 나름대로 저의 생각을 적은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런 친구들을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기에 그들의 꿈은 절망이기보다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칡흙같은 어둠에서 한 발짝 한 발짝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 그 희망을 또 다른 절망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그래서 가끔 자신감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저는 제 꿈을 실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더 힘을 낼 것입니다. 비록 등에 날개는 없지만 제 자신의 한 발짝 노력에 저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날개가 조금씩조금씩 만들지는 것 같습니다. 그 날개가 만들어지면, 저는 제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철부지 동생아 ! 우리 아버지처럼 힘들다고 서로를 버리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그동안 누리지 못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전 엄마도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셨어요.이제 저희는,동네 홀로 사시는 할머니한테로 갔어요.
할머니는,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얼마의 보조금으로,저희까지 돌봐주십니다.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워,인터넷에 저희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제 (여)동생이 저에게 가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오빠)어차피 나도 여잔데,(남자들에게)몸이나 팔아버릴까~~~~~"물론,저와 (여)동생 둘만 있을때 이지많,만약,할머니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어쩌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저와 제 (여)동생 차비라도 벌어보려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됀겁니다.제 (여)동생도.얼마전 집을 나가버렸어요.이제,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오로지,자살 뿐~~~~~~~~~~~~~~~~~~?!
(제발,도와주세요.)
농협)계좌번호=113-12-779966
((예금주)신일규.
*5천원만 좋은일에 쓰신다고 생각하시고,
저 좀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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