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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일자리, 14년간 71만개 사라져

제조업 일자리, 14년간 71만개 사라져
  [산업공동화, 이대로 좋은가 2] 효율화 전략과 해외진출 탓
  2006-08-22 오전 9:05:12
  지난 10여년 간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로 볼 수 있는 대기업의 일자리가 중소기업의 일자리보다 훨씬 빨리 감소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탈공업화 및 서비스화가 진전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제조업 분야의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분야 고용 감소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 문제는 고용을 떠받치는 국내 산업기반의 와해, 즉 산업공동화와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취업비중 20% 아래로 곤두박질…대기업 일자리 감소 두드러져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취업자의 비중은 20% 중반 대였다. 그러나 2004년 현재 이 비중이 20% 이하로 뚝 떨어진 상황이다. 제조업 취업자 수도 1992년 489만4000명에서 2006년 7월 현재 418만 명으로 71만4000명 줄어들었다.
  
  특히 제조업 부문의 고용 감소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쪽에서 더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일자리가 중소기업의 일자리에 비해 고용의 안정성과 임금 수준이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위축됐다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더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체 고용에서 종업원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광공업 기준)의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1993년 30%에서 2004년 17.1%로 크게 축소됐다.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의 수 자체도 1993년 719개에서 2004년 383개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기업의 고용 흡수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이같은 제조업 분야 고용 감소 속도는 선진국들의 경험에 비해 매우 빠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사정위의 이덕재 전문위원은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30~40년 간에 걸쳐 진행된 제조업 분야의 고용 감소가 우리는 불과 10여 년 만에 진행됐다"고 말했다.
  
▲ (왼쪽)1980년대 중반 이후 500인 이상 광공업 사업체의 평균 종사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해 왔다. ⓒ 노사정위원회; (오른쪽)제조업 사업체 중 종업원 500인 이상 사업체들의 고용 규모가 특히 빠르게 축소돼 왔다. ⓒ 통계청

  기업의 해외진출이 적지 않은 영향 미쳐
  
  이처럼 유례 없이 빠른 고용 감소에 대해 전문가들은 1990년대부터 기업들이 '자본합리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970~80년대에 정부가 추진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대대적으로 덩치 불리기에 나섰던 우리 기업들이 1990년대부터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덕재 전문위원은 "1970~80년대에는 재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큰 조선과 자동차 같은 장치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며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대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기보다는 작업장의 효율화와 인력조정 등을 통한 이윤확보 쪽으로 기업전략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개방이 가속화된 이후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갈수록 늘어난 것도 부문별로 고용감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3년 현재 해외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 가운데 해외투자가 국내의 고용 확대로 연결된 경우는 18.8%에 지나지 않은 데 비해 국내 고용의 축소나 중단으로 연결된 경우는 28.7%에 달한다. 수송기계, 섬유, 전자통신 등 부문별로 해외투자가 국내 고용에 미친 영향은 다음 표에서 볼 수 있다.
  

  제조업 고용 감소…빈곤층 확산과 양극화의 배경
  
  우리나라에서는 제조업 분야에서 이탈되는 노동인력을 흡수해낼 다른 산업분야가 없기 때문에 제조업 분야의 고용 감소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제조업 분야에서 이탈되는 노동인력은 조건이 괜찮은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가기보다는 영세 자영업자로 전락하거나 서비스산업 부문의 비정규직 일자리에 하향취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연구원의 하병기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농업에서 이탈된 노동인력을 제조업이 충분히 소화해냈기 때문에 산업고도화 과정의 부작용이 비교적 작았다"며 "그러나 최근에 제조업에서 이탈되는 노동인력은 달리 갈 곳이 없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지평 연구원도 "탈공업화 현상은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가 유발되면서 제조업의 비중이 하락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탈공업화의 이런 선순환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안정된 일자리에서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임금 일자리에서 저임금 일자리로의 노동인력 대이동이 10여 년 간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층이 크게 확대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최저생계비에 비해 120% 미만의 소득만을 올리는 차상위계층(잠재빈곤층)의 인구가 2005년에 7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국민적인 빈곤 상태를 극복했다는 우리의 자부와 달리 현실은 공업화를 거친 뒤에 빈곤의 문제가 새로운 형태로 심각하게 다시 대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와 긴밀하게 연관된 국내 제조업 분야의 고용흡수력 저하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의 이덕재 전문위원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제조업 분야의 급격한 고용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면서 "제조업에서 이탈된 노동자들이 '통닭집 차리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주고받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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