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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도시 재개발

http://www.flickr.com/photos/coolloud/sets/72157629396219902/with/6907702026/

 

대만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직접 관계하지 않은 지 좀 되었다. 박사반 들어와서는 공부에 전념해야 했던 사정도 있었고, 대만 사회운동 문화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답답함은 나의 지적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지난 5년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 대만은 진보적 운동의 주체가 일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어떤 건강한 대중 조직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로 들 수 있는게, 결혼이주여성 운동과 성노동자운동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나는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대만적인 운동의 문화라고 보고 있는데, 이를 해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근래에 대만에서 나의 이 답답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사건이 있었다. 대북(台北)의 왕(王)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이 도시 재개발에 의해 강제로 철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8일 철거가 되면서 그 후 지금까지도사회운동, 야당인 민진당, 학계 및 문화예술계까지 현장으로 집결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는 몇년 전 낙생원(한센병 환자 주거지 강제철거) 이후 처음 보는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이었다. 우선 관련 기사들을 종합해본 결과, 개발지구에 15층 규모의 주택을 건설할 예정이고, 지난 여름에 이미 다른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철거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개발상이 왕씨에게 9천 6백만 ntd(우리돈으로 약 35억)까지 보상금액을 제시했으나, 왕씨는 몇 대에 걸쳐 오랜동안 살아온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주를 거부해왔다고 한다. 왕씨를 도운 이들은 대만 <도시재개발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이다. 이 단체에는 내가 잘 아는 열정적인 친구도 있는데, 왕씨와 함께 그리고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개발상의 이익과 왕씨의 이익이 표면적로 충돌하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자본과 민중의 충돌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공권력의 강제철거는 분명 개발상의 이윤 확보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도시 재개발을 친민중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단체들은 왕씨의 '주거권' 또는 '사유재산권'을 옹호하고, 정부는 법적 승인을 거친 개발상의 '개발권'을 옹호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러한 운동 내부에서 먼저 검토되었어야 할 정부의 도시계획과 재개발 정책의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거의 부재하다는 것이다(이는 활동가/지식인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주체와 성격이 매우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나는 대만에서 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이례적으로 모여 경찰과 충돌하고 왕씨의 주거권을 지키고자 했는지 궁금해졌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거의 부재하다시피한 대만에서 이러한 충돌은 일종의 예외적 사건이다.  그래서일까? 그토록 상업주의적인 대만 언론은 열심히 카메라에 이 학생들을 담는다.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걸어왔던 야당 민진당과 기타 여러 부류의 사회운동의 활동가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대만의 사회운동의 주체성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포퓰리즘적 대리주의적 운동... 특히 지식인과 학생은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경찰에 붙잡혀가는 그릇된 정의감이 주는 쾌감 때문일까? 학생들은 그렇다치고, 연구자들이나 교수들도 유사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낙생원과 마찬가지로 지금 철거된 왕씨 집은 학생들과 연구자들 및 예술가들의 축제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그곳은 그들에게 오랜만에 '정의로운 나'를 확인하는 장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이번 철거가 있기 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철거'의 희생자가 되었을텐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왕씨만 남았을까? 그리고 왕씨는 진정한 운동의 주체일까? 낙생원 운동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많았는데, 그에 대한 반성은 대만 사회운동 안에서 다시 망각된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결국 자기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남기는가가 아닐까?

 

지식인의 역할은 그것이 활동가이든 비판적 지식인이든 대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입을 통해 대중의 주체화라는 소임을 다하면서 자연스러게 사라지는 것일테다. 그러한 반복적 개입과 소멸이 바로 지식인의 역할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대만의 작금의 상황이 다시 한번 지식인들이 사회운동의 의제를 독점하거나 치환하여 자기 욕망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궁극적으로 대중의 주체화를 지연시키는 대만 문화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이 끈질긴 연속성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보기에 아마 지식인 문화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이는 대중들이 지식인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대중은 지식인 보다 아래에 있어 도움을 구하지만, 궁극적으로 지식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급적 본질이 다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노동조합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경험이 없었던 대만의 사회운동은 유/무의식중에 사실 자유주의에 복무하는 사회운동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인의 급진적 주장도 그것이 대중과 결합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기만족적인 것이고, 오히려 대중과 지식인의 지적 위계(나아가 계급적 위계)를 재생산하는 반동적 주장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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