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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난 3월 24/25일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미래>라는 국제회의가 열려서 방청을 했고,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관심이 가는 연구 주제의 친근성으로 인해서 주로 성공회대에서 오신 중국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중국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적 맥락을 중시하는 한국 연구자이기도 하다.

 

백원담 선생의 발표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90년대 남한에서의 동아시아론과 문화연구의 부상 배경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었다. 국가주의와 이론주의에 대한 비판인데, 이는 내가 고민해온 정치성의 기본적 전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도입된 동아시아 문화연구(즉, 인터아시아 문화연구)는 궁극적으로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갖는 한반도 및 남한의 모순을 국민국가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으며, 따라서 더 넓은 '동아시아'의 시각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문화적 실천의 장을 통해서 발굴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예로 들었던, 한진중공업의 국제적 맥락(자본의 세계화)과 투쟁 속에서의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희망버스의 결합, 구럼비 투쟁에서의 미제국주의의 군사전략과 삼성카드 반대운동의 결합 등은 적절한 예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내 문제의 답을 얻을 수는 없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분석 속에서 과연 본래 남한의 특수성을 해명할 수 있는 식민과 분단 및 민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와 '문화'라는 새로운 범주의 도입의 대상이 되는 국민국가 자체는 무차별적으로 전제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역시 매우 보편주의적 서사에 갇히는 위험이 있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이런 분석틀은 다른 국민국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한반도에 이런 보편적 분석틀이 적용될 경우 결국 보편적 서사에 특수성이 환원되지 않는가라는 문제이다. 아마도 해결의 실마리는 동아시아를 당대의 초국적 맥락을 포함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당대와 긴장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및 남한의 민족적 현실을 역사적으로 규정지은 요인들의 독특한 결합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이해의 장으로 규정하는 데 있을 것 같다.

 

지난 수요일에 연구소에서 전체회의가 열렸다. 교수와 석박사생 모두 참석하는 회의였는데, 안건은 학업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매 학기 초에 학생들마다 학업 진도를 발표하는 행사를 마련해서, 학생들간의 상호 교류를 도모하고 개별 학생들도 스스로 좀 더 계획적으로 학업 진도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배경에는 우리 연구소 석박사생들의 졸업이 너무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2003년부터 입학한 박사생들 가운데 현재 졸업생은 단 1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근래 몇몇 학생들의 정신질환 및 자살시도 등의 문제가 이와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다. 대만에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두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내 느낌에 대만 사람들을 상당수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고, 한국 사람들은 술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술와 약은 대체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토론은 사실 학과적 규범을 갖지 못하는 문화연구 자체가 제도 영역에 도입되었을 때 갖는 모순에 집중되었다. 문화연구는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학위 논문이 되려면, 어떤 정박점이 필요한데, 그것은 일정한 규범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연구는 그러한 규범성을 거부한다. 이는 문화연구와 사회과학 또는 인문학의 관계설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리군 선생과 관련해서 정리된 자료에 대한 1차 분석을 마쳤고, 우선 관련한 50여권의 단독저작을 먼저 수집하고 있다. 본래 가지고 있었던 25권 외에 도서관과 인터넷 등에서 15권을 다시 수집하였고, 진광흥 선생으로부터 5권 정도 희귀 자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머지 몇 권은 중국의 친구들을 통해서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4월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2달 안에 이 저작들을 개괄적으로 독파해야할 것이고, 초벌적인 분석을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최근 두 권의 저작이 출판되었는데, 그 반응들을 종합해서 6월 홍콩 회의에 가져가야겠다. 그리고 전리군 선생의 저작이 한국에 소개되는 맥락에 대해서 나름대로 구도를 그려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의 정신자서전>의 부분 번역본이 나오면서 한 가지 흐름이 더 추가되지 않나 싶다. 번역본을 받으면 번역 내용을 검토해서 일차적으로 번역상의 오류가 있는지 검토해보고, 나아가 중요한 개념의 함의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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