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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감히 하지 못함”에 관하여

근래에 페이스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면서 블로그 방문이 뜸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확실히 페이스북이 블로그의 호흡을 대신할 수는 없다. 페이스북의 호흡은 너무 짧다. 진지한 고민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는 공간이다.

 

암튼, 최근 대만 왕가 사건과 관련해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며칠전 나도 페이스북에 글을 한편 썼고, 이 글로 인해서 갑자기 여기저기에 친구를 맺자는 신청이 들어왔다. 대만 뿐만 아니라 홍콩, 미국 등지의 친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 글은 내가 써야할 글은 아니었다. 지난번 팍스콘 노동자의 투신 자살 때와 마찬가지로 참다 못해 쓴 글이다. 마땅히 나와야할 비판적 글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외자인 나라도 글을 써야하는 것이 옳은가를 한참 고민하게 된다. 결국 글은 쓰여졌다.

 

현재 왕가 사태는 어서 빨리 출구전략을 논의해야할 시기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이나 청년들 및 학생들 모두를 위해서 어서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내 글이 나온 후의 반응을 보면 일부 동요와 균열의 조짐이 확인되지만, 일부 토론이 불가능한 방어심리를 보이는 경우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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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감히 하지 못함”에 관하여

 

왕가(王家) 사건과 관련해서 두 가지 “감히 하지 못함”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 하다. 하나는 운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회의적인 지식인에 대한 공세적인 비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비판이 사회운동과 비판적 지식인 그룹 안에서 주류적인 상황에서 그 비판 자체의 한계를 감히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나와 가까운 한 친구는 전자의 지식인을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지식인이라고 형용하기도 했다. 나는 물론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둘을 비교할 때, 전자의 ‘감히 하지 못함’의 원인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고 생각하고, 후자의 경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글에서 ‘후자’의 문제를 고려하면서, ‘전자’에 대해 다시 고찰함을 통해 다른 해석을 도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지식인 비판의 역사적 제약 문제를 고려하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비판적 지식인 내부의 분기가 단순히 도덕적인 차이가 아니라 인식론적인 차이를 반영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 이 운동에 대한 ‘유보’적 입장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국외자로서 이 논의에 참여하기가 간단치 않은데, 우선 대만 사회운동의 발전을 위한 개인적인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지난 5년 나름대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만 사회운동의 역사적 제약 요인을 고민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적어도 그 가운데 ‘지식인 문화’또는 ‘지식 위계’의 측면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왕가 사건’을 마주하면서, 나의 토론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출발한다.

 

나는 전자가 명확한 이유가 그 자체가 ‘인식론적 확신’에서 나온 도덕적 비판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나는 ‘확신’에서 나온 운동 참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화’와 ‘설득’의 과정에서 이러한 도덕적 비판은 토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는 왕가 사건이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을 한꺼번에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정말 ‘보신’의 문제일 뿐이라면, 문제는 아주 간단할 것이다. 실천 의식과 능력이 부재한 지식인을 비판하면 그만일 뿐이다. 그러나 정말 ‘보신’의 문제일뿐일까?

 

나는 물론 대만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분석과 대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보신’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나 역시 지식인이 마땅히 지식인 본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식인의 양심은 그들의 지적인 확신에 근거하고, 그래야만 현실 운동의 참여 속에서 지식인의 최대한의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중은 개인의 조건과 이익관계로부터 출발할 수 있지만, 지식인은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왕가’사건을 마주하면서 대만의 상황은 지식의 공백의 상황이라 할 수 있고,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맹목적으로 독려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대만 도시 갱신 또는 도시 재개발의 역사적 특수성은 얼마나 충분히 분석되었는가? 이는 현재의 도시재개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교과서적인 도시재개발과 대만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그 배경과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어떻게 이번 왕가 사건에 반영되어 있는가? 등등. 이런 이유는 나는 이러한 ‘도덕적 비판’이 이 운동을 ‘개량주의’라고 하는 규범적 비판과 마찬가지로 모두 설득과 동의를 통한 대만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확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가 사건과 관련해서 한 가지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의 계급대립이 문제인가? 아니면 현대화와 반현대화 사이의 문명적 대립인가? 나는 전자는 후자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후자로부터 전자를 극복할 동력을 형성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는 역사 진보의 동력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심화를 통해서 대중 운동에 의해서 형성될 수 밖에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 모순은 궁극적으로 계급모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계급 모순은 특정 주체(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 중심론은 아니다. 주체의 심급이라기 보다는 구조 분석의 심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운동이 문명적 대립, 즉 반현대화를 통해서 형성된다면, 나는 그 운동은 계급 정치를 이탈한 지식인 중심의 운동이 되기 쉽고, 결국 진정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포퓰리즘과 대리주의의 위험이 있다. 스스로 ‘인민’의 대표라고 생각하는 지식인 중심의 운동은 계급구조 자체를 바꾸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그 재생산에 복무할 뿐이다. 노신은 일찍이 이러한 지식인을 대중의 도우미幫忙나 놀이패幫閒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 ‘왕가’는 내가 보기에 대만사회에서 이중적 상징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적지 않은 자산(대지와 주택을 포함해 적어도 한화 30억 이상)을 소유한 ‘유산자/부르주아 계급’이자 동시에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다. 물론 구체적 현실 속에서 유산자와 무산자를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대만에서 정책적으로 친유산자적인 부동산 정책이 유지되고, 이것이 계급적 구조의 재생산에 복무하며, 현실 속에서 일정한 부동산의 유무에 따라 계층과 계급의 선이 그어짐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왕가를 유산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계급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일반적으로 후자(국가 폭력의 희생자)는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운동에서 폭넓은 연대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의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운동의 역사 속에서 인권은 그렇게 자율적 성질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인권은 때때로 부르주아 계급 사회를 유지하는 탈계급적 정치의 방편이 되기도 했고, 제국주의적 침략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인권 담론은 그것이 놓이는 구조적 제약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만 분명하게 파악될 수 있다.

 

그래서 왕가 사건에서 보이는 ‘국가 폭력’의 문제에 대한 보편적 인권 옹호와 연대라는 비판적 견해 역시 다시 분석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그 대립의 기본적 구도에 대한 분석이다. 왕가 사건 초기에 ‘주거권’이 제기가 되었지만, 적어도 왕가가 주장한 주거권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주거권’이라기 보다는 문명적/문화적 개인 소유 권리에 대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왕가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보다는 몇 대에 걸쳐 살아온 곳에 계속 살 모종의 인문적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물론 주변의 36가구가 재개발에 동의를 하고 절차를 마친 상태에서 이 주장이 얼마만큼의 현실성을 가지는지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립은 반현대적 문명/문화 소유권과 현대적 자본주의 재개발 논리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이 행사된 것이었다. 이는 어떤 폭력인가? 국가에 의해서 행사된 폭력임은 맞다. 그런데 이것인 반영하는 맥락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대중들 가운데 일부는 운동 속의 ‘왕가가 곧 우리 집’이라는 구호로부터 ‘나 역시 왕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함부로 침범한 국가에 대한 공포의 발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고 본다. 일정한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계급이며, 자유주의적 의회권력의 기본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는 이러한 공포를 가진 그들은 사회주의적 재분배가 가져올 사유재산권 제한에도 동일한 또는 더욱 큰 공포를 가질 것이라고 본다. 설령 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유재산을 가진 가상의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운동의 효과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출발점을 살펴보는 것은 그 이후의 전망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계급적 대립이 문명적 대립으로 치환된 또는 과소결정된 국면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치환된 국면은 계급적 대립 구조를 재생산하는데 복무한다. 이로부터 나는 왕가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연대를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외적’이거나 ‘실수’였다. 국가가 계급적 ‘폭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발생한 자기 편에 대한 ‘무례’와 ‘실수’였다. 이 실수를 ‘계급정치’로 견인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 대만에서는 최소한의 계급정치의 기초를 먼저 다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자유주의적 정치의 재생산 틀을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하지 못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는데, 이는 지식인의 비판이 대중의 주체적 실천을 대신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비판은 대중의 주체적 실천을 통해서 물질적 힘을 갖게 되는데, 이번 왕가 사건에서의 ‘폭력’에 대한 반대는 여전히 ‘비판의 무기’의 수준에 놓여 있다. 그것이 모호하게 ‘친자본’에 대한 비판 담론을 포함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벼려진 무기가 아니다. 아마 그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식인의 탈계급정치적 현대성 비판이 ‘폭력’의 성격을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지식인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치환이 대중운동의 조건을 왜곡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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