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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와 無

박노자 선생님의 글...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9898

남한의 80년대와 90년대에 대한 박노자 선생님의 진단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매우 아쉬운 글이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변혁적 역량의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와 더불어 체계적 모순의 심화가 어떤 변혁적 주체를 형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분석과 전망은 역사와 현실에 외재적이기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매우 '비주체'적 역사관이다. 그래서 역사의 '개방성'에 대한 주체적 고민이 부재하다.

과연 이 사회의 모순이 극단으로 치다르면 그런 변혁적 주체가 형성될 수 있을까? 박 선생님도 아마 그러한 모순이 또다른 비극, 예를 들어 모종의 파시즘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위험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주체'의 문제를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게 될 경우 노정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및 조선의 예를 들고 있지만, 그가 내놓는 역사는 사실 '내용'이 없는 역사, 다시 말해서 '무차별화'된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그의 분석도 사실상 역사적 개별성을 무시한 채 보편적 좌익담론(이른바 '신자유주의')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미래의 변혁의 순간을 '종말론'처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이 왔다쳐도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무'에서 와서 '무'로 존재하다가 '무'로 나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역사는 엘리트주의적 '지식인'의 머리에만 존재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가 언급한 러시아와 중국 혁명의 역사는 그 시대의 지성이 그 역사적 시간과 장소의 개별성에 입각하여 내외적 모순에 대해 사상적 간파을 한 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대중과 혁명은 매개될 수 있었다. 나아가 그 혁명은 각자의 독립적 대안을 내외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 역사에 대한 평가도 그와 같은 맥락 하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에게 새롭게 열릴 것이고, 역사 안에 주체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각자의 민족적/사회적 전망을 제시하며 실천적 역량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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