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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구조하의 지식과 주체성의 곤경

순리대로 가는 것이 맞다. 불안정이 주는 불안감은 오히려 필요한 긴장감이기도 하다. 사상과 문학의 통일을 이룬 자들은 대체적으로 부업 작가였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진영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작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상'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배울 점들이 있다.

 

사실 현실의 불안와 긴장이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되려면 스스로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근래의 번민은 어쩌면 벌써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되살펴보게 된다. 그렇다... 주어지는 만큼 순리대로 한 걸음씩 간다.

 

근래에 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고, 생각을 좀 오래 했다. 진영진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재독하기 위한 기본 문제의식을 추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대략 방향은 '냉전 구조 하의 지식과 주체성의 곤경'으로 잡았다. 이는 앞으로 박현채의 부분까지도 끌어 안기 위한 넉넉한 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다소 초보적으로 메모를 해두었지만, 남한의 시각에서 진영진을 읽었을 때, 역시 핵심적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진영진이 마주한 사상적 과제로서의 '분단의 중첩'이라 할 수 있다.

 

식민 분단과 내전 분단이라고 할 만한 두 차례의 분단은 '대만'에게는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외재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이중성을 갖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갖는 한계들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조선과의 상대적 의미에서) 주체적 피식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공백' 또한 존재한다. 지식계급의 참여 자체가 수동적이었다는 의미는 '저항' 자체가 상대적으로 박약했다는 의미인데, 조선의 경우와 같이 '저항'이 사상에 값할 수 없었을 때 초래되는 후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바로 기존의 왜곡된 지식과 싸워서 내부로부터 주체적 전환을 이루는 것보다 비주체적 수용이라는 표면적 흐름의 배후에 존재하는 '공백'을 주목하고 이를 채우는 것이 더 관건이 되었던 것이다. 이는 일정하게 대만이 '준국가'의 수준에서 탈식민 작업을 진행해야만 중국에 복귀할 수 있는 주체성이 확보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조선의 식민성은 지식적 주체성(저항의 한계)이 분석되어야 하고, 자기성찰이 매우 중요하게 되지만, 대만의 경우 지식의 공백이 분석되어야 하고, 이를 채우는 것이 중요해진다. 

 

후자의 경우는 내전의 외부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텐데, 조선전쟁과 비교할 때 대만은 내전의 현장인 적이 없었다는 의미에서 내전으로 인한 분단의 영향을 부분적으로만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중 내부의 상호 적대와 원한의 문제는 그 기초가 박약하다는 것이고, 나중에 省籍 모순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는 남한 내부의 적대와 비교했을 때 대체적으로 가상적 적대의 수준이다. 이로 인해서 대만에서는 국민당이라는 억압적 통치 집단과 대만 민중의 적대가 비교적 분명하고, 그로 인해서 '외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역사적 방향도 국민당의 백색테러에 대한 재조명으로 집중된다. 그렇지만, 내전의 외부성의 한계는 근본적으로 내전의 대중적 기초로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내재적으로 전유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따라서 단순한 백색테러에 대한 재조명만으로는 내전을 낳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추동하는 민중적 역량의 구성이 용이하지 않게 된다.

 

식민 분단에 대한 인식은 내재적 전통에 대한 복원과 재계승 및 학습으로 나아간다. 투옥 이전의 과정은 대략 이러한 실천으로 채워진다. 여기에는 중국의 혁명 및 현대적 전통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 전통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수감 기간 동안 백색테러 피해의 당사자인 대만 공산당 조직원 등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대만에서 내전의 연속성을 발견하면서 그것을 내전으로부터의 외부성을 극복하는 핵심적 실마리로 삼게 된다.

 

그러나 출옥 후의 대만은 진영진에게 다시 이중적 과제를 부여했다. 하나는 감옥에서 만났고 이별했던 선배들의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다. 바로 내전의 연속성으로서의 백색테러를 재조명하고 대만의 좌익을 복권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냉전 하에서 진행된 '현대화'와 자본주의화의 문제를 민중적 시각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통/독이라는 가상적 모순이 국민국가적 의회정치에 의해 물질성을 얻어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을 위해 사상을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진영진은 '사상의 빈곤'을 반복하여 호소하게 되고 나중에 <대만정치경제학총간>을 직접 주편하게 된다. 이는 아주 직접적인 체험과 관찰에서 주어진 것인데, 당시 대만 사회에 중간층이나 상층 또는 하층에 생활 수준에서 이미 통/독 모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농민 계층은 외성인과 본성인 가릴 것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또 중상층의 부르주아들 내부에서도 그런 적대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영진은 로타리 클럽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 등을 예를 들기도 했다. 진영진이 보기에,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주어지는 민중구성에 대한 인식은 가상적으로 구성된 통/독 모순과 대만 분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적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나 싶기도 하다. 진영진의 판단과 인식은 대체적으로 옳았지만, 현실은 그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냉전의 구조가 지식 차원에서 만들어낸 억압과 왜곡, 그리고 민중 생활 상에 만들어낸 변질 등은 지식의 주체성과 민중의 주체화에 질곡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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