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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실에서 사실상 '북조선'은 변수라기 보다는 상수로 설정해야 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변수'라는 설정은 그 값의 변화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인지가능해야 하는데, 우리의 인식틀이나 분석틀로는 사실상 인지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지불가능성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관계의 비대칭성과 그로부터 주어지는 비합법성에 있다. 다시 말해 '신식민성'이 엄연히 존재하는 조건에서 '북조선'에 대한 접근은 원천적 제약에 놓여져 있다.
그러면 북조선은 어떤 상수인가. 그것은 남한의 역사내재적 모순들로부터 추출되는 내재적 타자로서의 북조선이다. 따라서 '식민', '내전', '분단', '신식민-냉전'이라는 역사적 범주들에 대한 인식에서 주어지는 20세기 조선반도와 남한에 대한 인식의 참조 축으로서 북조선이라는 상수를 설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북조선에 대한 담론은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 및 현실 인식과 그로부터 얻어진 변혁적 전망 속에서만 우리에게 의미 있고 유효하게 제기될 수 있다.
결국 현실에서 우리는 북조선과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역사적 전환기에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정하게 운명적 '비주체성'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는 것일까? 적어도 현실의 정세 속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좀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는 또 다른 '주체성'의 정세가 출현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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