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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주의적인 지식생산의 체제의 한 특징이 식자 대중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주의 또는 우등생주의일 것이다. 진보/좌익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마찬가지의 우등생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기적으로 불가피한 측면 있다손 치더라도, 장기적인 전망 안에 이에 대한 극복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뛰어난 이론을 공부해서 수입하면 우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가상은 심지어 그러한 내용적 주체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마찬가지로 내부에서도 그런 이론가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낳는다. 그래서 신식민주의의 극복은 단순히 反신식민주의라는 반명제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동일한 신식민적/현대적 지식 '소유'의 확대재생산일 뿐이다. 반명제가 진정한 반명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의 실천이 이론에 갇히지 않는 기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의 생산은 개인적 차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과도기적으로 개인의 차원을 경유할 수 밖에 없더라도 그것을 집단의 것으로 전화시키는 내재적 기제가 필요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를 알면서도 잘 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동지들 사이에서도 종종 부담이 편중된다. 적어도 이는 탈식민주의적 지식 담당자의 비극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소유의 유혹이 너무 끈질긴 것일까. 그도 그렇겠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번의 성공사례일 것이다. 아주 작더라도 의미 있는... 그 역사적 전통이 단절된 우리 세대의 경우 비소유적 지식생산이라는 것이 추상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사상계의 한번의 작은 해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급할 수록 정말 단단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긴 역사적 호흡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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