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근황

대만 와서 우리 연구소 동학들과 술을 한잔 했고, 대북에 있는 탁구 친구이자 인생의 벗인 김 선생과 한잔 그리고 그의 한국인 동학들 및 친구들과 한잔했다. 김 선생은 자격고사를 무사히 잘 통과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몇 년 전 대북 촛불집회를 계기로 알게 된 신죽에 있는 한국인 지인들과 한잔하기로 했다. 암튼, 대만에 오면 적어도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번역 진척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공간적으로 이동을 하니 몇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게 된다.

 

먼저 대북에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가 당산 서점에 가서 책을 좀 보았는데, 재미있어서 몇 시간을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5권을 사서 나왔다. 현재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구체적 제목이나 저자명 등이 생각이 안나는 부분이 있다.

 

한 권은 전부터 계속 주목하고 있는 <사상> 여름호(?)였던 것 같은데, 화동사범대 허기림 선생의 '국가주의' 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왕휘, 왕소강 등 신좌파를 포함하여 좌우를 막론한 국가주의의 부상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와 전리군 선생이 최근에 제기한 왕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백승욱 교수가 제기한 비판 등도 나중을 위해 모아두었다.

 

다른 네 권의 책 가운데 전리군 선생의 책을 제외하고 세 권은 서로 물려있는데, 하나는 대만의 좌익 소설가 진영진 선생이 주도하여 펴 낸 '좌익 전통의 복귀'? 라는 논문집이다. '인간' 출판사에서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물론 진영진 선생은 대만에서는 '통일 좌파'로 분류된다. 재밌는 것은 여기에 '진방명'이라는 '대만문학' 평론가의 독립/분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소개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1970년대 이른바 '향토문학논쟁'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진영진 선생은 이 논쟁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진방명'의 책 가운데 그가 이론적으로 '탈식민주의'를 통해 일종의 하위주체로서의 대만인 소수자의 저항 및 '주체성'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책을 한 권 골랐다. 이 책의 말미에 역시 진영진에 대해 '가소롭다'는 식의 반비판이 실려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륙의 학자(?)가 다른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탈식민주의를 해석하고, 진방명이 어떻게 탈식민주의를 오해하고 있는지 지적하면서, 진영진을 탈식민주의적으로 계승하는 진광흥에 대한 논의를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한다.

 

나는 이러한 이중/삼중의 대립 구도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쟁점을 발견한다. 게다가 이 쟁점으로 인해 '대만'이 나의 논의의 구도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진광흥의 대만 주체성 비판은 아주 전형적인 탈식민주의적 비판인데, 내가 알기로는 사카이 나오키 같은 이들은 이러한 최근 '제3세계' 등을 중심으로 진영진을 재해석하는 진광흥의 시도를 진광흥 자신이 견지했던 탈식민주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탈식민주의의 타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는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는 '정치'와 관련된 문제이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진광흥과 나오키는 매우 다른 지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역사'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둘이 모두 버린 헤겔/마르크스적 보편성을 주목한다.

 

어찌됐든, 나의 논의 안에 대만이 하나의 '실천'으로 들어온다. 대만은 탈식민주의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현재적 사례로서 일정한 대표성과 일반성을 가지는 것 같다. 식민과 분단을 거쳤으나 국제법 상으로 국가에 미달하고,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영토, 화폐, 노동력 등 민족국가의 부분적 요소들을 불안정하게 나마 유지하고 있다. 대만에서 분리주의 또는 독립지향이 탈식민주의를 수용하고 표방하는 것은 참 흥미롭다. 따라서 나는 대만이 탈식민주의 자체가 자율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21세기적 사례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 정치의 가능성, 또는 정치적인 것의 논의를 위해 박현채 선생의 사상으로 진입하고, 다시 박현채 선생('마르크스')이 추상적으로 남겨 놓은 윤리적/실천적 문제를 전리군 선생('노신')을 통해서 구체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대만의 탈식민주의적 실천의 한계과 곤경들에 대해 나 나름의 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식으로 박사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 무모할까? 불가능할까? 나는 이런 식의 사상연구가 진짜 '인터-아시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