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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채 |
전리군 |
생몰 |
1935~1995 |
1939~ |
경력 |
빨치산/이론가 |
조반파/이론가 |
대표적 이론/테제 |
사회구성체론(해방공간에서의 분열과 내전이 특수성을 부여하는 역사적 분기가 됨) |
1957년학(중국 당국가 체제의 성립이 중국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분기가 됨) |
학술/이론적 특색 |
빨치산 경험
서울대학 경제학과
석사 졸업 후 강사/평론가/실천가
(반공체제 빨치산 출신성분이 가져오는 제약)
역사적 경험의 이론적 심화
국내 토착적 지식인
역사에 대한 강조(4.19 및 부마항쟁, 광주항쟁 대한 부단한 의미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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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학 중문(신문학전공)입학
인민대학 신문학 졸업 후 운남으로 하방(국민당 현직 관료인 아버지, 출신성분의 제약)
대약진/문혁 경험 후 노신 연구 및 이론화
'망각을 거부하라'는 역사적 은폐에 대한 경고.
국내 토착적 지식인
민간 좌파적 사상자원의 복원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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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묘한 유사성이 떠올라 컴퓨터를 켜고 적어 놓는다. 이 둘을 대화시키는 작업은 어떠한가. 아시아적 시좌를 도입하여 상호참조하면서 일정한 공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아적 시좌에서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보는 시도를 사상연구의 영역에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1년 정도 준비하여 두 과목으로 나누어 보게 될 자격고사의 첫 과목은 '아시아 문화연구'로 잡아 놓았다. 기존의 아시아 문화연구 방법론을 '정치'와 '역사'의 관계라는 내 나름의 설정을 가지고 전반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문화'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두 번째 과목은 아마도 박현채와 전리군을 재료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먼 훗 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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