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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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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슬프네요..ㅜ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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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쩔 수 없지요. 침울에서 빠져나와 다시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는데, 고질병 처럼 문학적 인간관계와 정치적 인간관계가 다르지 않은가 생각해 봤습니다. 정치적 입장과는 아주 거리가 멀지만 일정하게 나의 삶의 역사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무언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가족과 친구 및 지인들과는 정치적으로 그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 문학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데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아요.Neo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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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정치적 인간관계의 구분 기준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직관적으로 이해한 대로 받아보자면, 저는 요즘 '정치적 인간관계'야 말로 차라리 근심의 근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거기서 받은 상처를 도리어 '문학적 인간관계'에서 위안받고는 했었는데, 이것도 한 때인가 보죠?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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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학적인 것은 그런 목적성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연적인 것과 같은 조금 역사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일종의 숙명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장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일정한 목적과 계획, 즉 정치 안에 다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며 울타리를 치게 되고 문학적 인간관계는 더욱 협소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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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는 한국인으로서 돈 벌이가 안 되는 공부를 직업 삼아 하는 데는 '목숨' 같은 것을 걸어야 한다는 공포심이 어느정도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제시되는 방편은 한국 사회의 학술체제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 규율에 적응하는 것이다. 게다가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이는 진보적/보수적 지식인을 막론하고 한국의 교수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기듯이 공부를 하고 연구주제를 정해 박사논문을 쓰고 학술논문을 쓰라는 주문이다. 물론 이는 현장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어린 제안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 그럴려고 좋은 직장 그만둔게 아니었다. 사회적 생산에 기여하는 노동자와 달리 지식인은 그 의미가 불확실한 지적 노동으로 살아가는데, 그 양심에 위반하는 지적 노동으로 산다면 그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