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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 위헌 논란

 

*논리적으로는 한글전용의 근거가 박약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 논리는 국민주의적 포퓰리즘을 등에 없고 논쟁구도를 왜곡시킨다. 궁극적으로 한글전용은 폐기되어야 하고, 국한문혼용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을 이중적으로 비판하는 시각에서 취하는 대안이다. 게다가 한글전용이 폐기되어야 지금과 같은 엘리트주의적 번역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8/2014021804843.html?news_Head1

[5] 법률적 논쟁 붙은 漢字

"훈민정음 창제 이래 한자·한글 혼용, 로마자·아랍문자도 여러 민족 써… 한글전용 강제한 국어기본법 위헌"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헌법 소원

정부 "한자는 고유 문자 아냐" 반박

 
"한자로도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으나, 한자는 우리나라 고유 문자가 아니다."(국어기본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대한 정부 측 의견서)

"고유어와 한자어는 배타적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약점을 보완하며 국어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다."(정부 측 의견서에 대한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의 반박)

한자 사용과 교육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지난 2012년 10월 "국어기본법의 한글 전용 정책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은 "현행 국어기본법이야말로 한자 문맹(文盲) 현상이 확산되는 문제의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법무법인을 통해 지난해 7월 이 헌법소원에 대한 장관 명의 의견서를 내며 맞받아치자, 청구인 측도 지난해 12월 이를 반박하는 의견을 냈다.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은 내년 이후에 나올 전망이다.

헌법소원: "한글 전용은 언어 인권 침해"

청구인 측이 '위헌'이라고 지적한 국어기본법은 2005년에 제정된 것으로, 국가 기관과 지자체의 어문 정책을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역할을 한다. 이 법의 3조 2항은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고 했으며, 14조 1항은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국어기본법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둘러싼 논쟁.
 
 
 
'한자'는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아니라 '외국 글자'라는 얘기다. 청구인들은 "국어기본법은 한국어 표기 문자라는 한자의 법적 지위를 박탈했고, 언어생활 속에서 한글 전용의 표기 원칙을 국가가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언어 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 ▲초·중등교육의 교과용 도서에서 한글 전용의 표기 원칙을 강제하는 것 ▲국어 교과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 역시 위헌이라고 했다.

정부의 반박: "한자는 우리 글자 아냐"

이에 대해 정부 측 의견서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쓰기 쉽고 조리 있는 글자이며, 우리나라 초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며 "아무리 오랫동안 사용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한자를 아는 것이 우리말을 이해하고 바로 쓰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한자 자체가 우리 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의견서는 "많은 국민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중국말,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이상해진 한자로 된 말을 쓰면서 그 말들을 계속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도 모국어를 정확하게 쓸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은 한자어가 57%가 넘도록, 지금까지 순 우리말(고유어)이 풍부하게 발전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했다.

또 ▲한자·한문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별로 적합하지 않으며 ▲처음 대하는 한자어는 이미 알고 있는 한자어들을 통해 알게 된 글자의 뜻과 문맥의 도움을 받아 뜻을 확인하면 된다고 했다.

재반박: "2000년 동안 써 온 고유 문자"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다시 "한국 한자는 한글과 같이 우리의 전통문자이자 고유문자"라고 반박했다. 우리 민족은 민족의 사상과 정서를 담은 한자를 2000년 이상 사용해 왔는데 '이것은 고유한 것이 아니고 500여년 전에 창제한 훈민정음만 고유한 것'이라는 논법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마자나 아랍문자에서 보듯, 문자는 한 민족뿐 아니라 여러 민족이 공통으로 사용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우리말이 한자어와 한자를 필수 요소로 한다"는 점도 제기됐다. 한국어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를 섞어 두 문자의 장점을 절묘하게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래 한국어 표기 방식의 주류는 한글·한자의 혼용이었고 ▲5000년 동양 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한자는 인성을 함양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문명의 도구라고 했다. 청구인 측은 또 "한자를 쓰는 중국·일본이 결코 정보화에 뒤처지지 않았고, 문맥을 통해 어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교과서 용어를 몰라 고통받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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丸山真男《日本政治思想史研究》

요며칠 丸山真男(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읽고 있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한계들이 명확해지는데, 나는 竹內好 선생을 맥락화하기 위한 참조점으로 읽고 있기 때문에 그 논의에 깊이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일정하게 대비되는 측면들이 보인다. 역시나 죽내 선생이 갖는 독특성을 부각시키기에 좋은 내부적 참조점이라 하겠다. 둘은 실제로도 학문적 우정을 돈독히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대비는 역시 내 맥락 안에서 해석되는 측면들인데, 일본의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내재적으로 계통화하여 추적하는 환산 선생의 작업에서 일정하게 일본의 전근대를 '본질화'하는 부분이 두드러지고, 이를 통해 일본의 '근대'를 도출해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에서 '유'를 도출한다는 '근대'적 문제설정이다.[중국 및 일본의 유가와 주자학에 대한 그의 이해에 대해서는 비평의 내공이 부족한데, 언젠가 조선 유학과 함께 대비하여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러한 내부적 '단절'과 전근대에 대한 본질화는 그 내용으로서 '중국성'을 본질화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상적 전환이 현실의 외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정하게 중국(나아가 조선)의 정체성(停滯性)을 근거로 한 '식민근대화'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본의 제국화와 관련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아울러 다소간 당시의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논리에 기대어 봉건 사회경제의 모순 심화가 그 배경으로 제시되면서 정치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정치체제의 혁신이라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동했다는 해석 또한 그럴 듯하다. 그렇게 해서 어찌보면 환산 선생의 작업은 일본의 근대사의 논리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어찌보면 매우 익숙한 논리 구조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근대성'이라는 고정적 설정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서구적인 근대성이다. 그가 '정치적인 것'이라 표현하는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역사성'이 부재한 범주인 것이다. 죽내 선생이 '중국'과의 대비 속에서 비판하고 성찰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중국의 '근대성'과 일본의 '전근대성'이라는 뒤집힌 설정으로 죽내 선생이 제시하고자 했던 과제는 단순히 일본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환산 선생과 같은 뛰어난 정치사상가들이 서구적 근대성의 잣대 하에서 궁극적으로 역사를 '근대성'이라는 관념에 가두는 한계에 대한 비판이었을 지도 모른다.

 

죽내 선생의 선집 한국어 판의 서문을 보면 죽내 선생이 죽어서도 여전히 매우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선집의 서문을 쓴 제자들 또한 내가 보기에 그 뜻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  오늘중으로 마저 읽고 내일부터는 전에 한번 읽었지만 맥락화하지 못했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다시 읽으면서 환산 선생과의 만남을 마무리 짓게 될 것 같다. <일본정치사상사연구>에 대한 나의 의문에 대한 답변이 발견될 지 궁금하다. 아울러 죽내호 선생 전문가를 자처하는 孫歌 선생 또한 죽내호 선생의 계승자인지는 의문스러운데, 그녀의 논의는 죽내 선생의 이야기를 복잡화하는 정도까지만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 이 작업이 '중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표현되는 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아직은 주목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 그녀가 환산 선생을 참조점으로 활용하고 부분은 다시 검토가 필요한데, 이 작업은 이번 주말에 진행될 예정이다.

아울러 죽내호 선생 전문가를 자처하는 孫歌 선생 또한 예외가 아닌데 그녀 또한 환삼 선생을 참조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부분도 다음 주에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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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얼마전 박사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과거에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고 말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매우 흥미로와 했다. 아마도 내가 보여준 얽매이지 않는 사고 방식, 술을 즐겨하는 생활, 또는 종종 보여주는 비타협적인 토론방식이 기독교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터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충북의 한 시골이었는데, 면 단위의 한 리에 속한 그 마을에는 당시 그 면 전체에 하나 밖에 없던 교회가 있었다(물론 훗날 개척교회가 많이 늘어났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개신교 교회인데,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 계단과 주변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도 교회와 인연이 많다. 아마 3대가 같은 국민학교를 다닌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터이다. 그러다 종교에 대한 초보적인 회의로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대략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오는 몇 년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중3부터 다시 교회를 나갔고, 대략 고2 정도까지 나가다가 다시 멈췄던 것 같다. 답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중3 때 읽었던 <사람의 아들>도 당시 어렸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 시절 나의 기본적인 성정이 형성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마주해야 하는 어떤 원점으로서 교회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지금도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듣거나 부르면 참 기분이 좋다. 그것의 내용을 떠나 마치 <박하사탕>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돌아가고자 했던 그 맨 마지막 장면과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영화처럼 나의 그곳에도 어떤 원초적인 첫 사랑이 있다. 

여름이 되면 한국을 떠나 대만으로 온 지 7년을 채우게 되고, 학위는 마치지 못하지만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떠남과 돌아옴이 단순한 하나의 순환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돌아갈 곳이 원래 그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 둘을 역사 안에 위치시키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문득 어떤 원점으로서 '나의 기독교'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대 후반부터 서른 초반까지는 기본적으로 '반 기독교'였던 것 같고, 그 후 지금까지는 다시 그에 대한 반성의 작업을 한 것 같다. 그 반성에는 당연히 '역사'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윤리'를 사고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좀더 충실해지면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아마 거기에 과거의 단절된 새로움과는 달리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역사 안에서 다시 사유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삶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원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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