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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春節有感]

[春節有感]

2014년 2월 3일 오후 12:51
 

며칠 집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도서관도 주변 식당도 대체로 문을 닫았고, 앞으로 며칠더 그럴 모양이다. 갇혀 있으면 확실히 움직임이 적어지고 또 게을러진다. 오늘 아침 기어코 하천변에 나가 5킬로를 뛰고 왔다. 꽃도 피고, 바람은 따스하고... 정말 봄인가보다. 게다가 어제부터 날씨도 춘절이라는 이름에 맞게 완연한 봄이다. 낮기온이 25도를 넘으니 어쩌면 초 여름 날씨인지도... 물론 이러다 또 추워진다는 걸 안다. 겨울 옷을 너무 빨리 정리하지 말 것. 

 

진도는 여전히 생각만큼 안 나가고, 그 밖에 읽을 책들은 많아서 침대와 거실, 화장실 등 곳곳에 읽다 만 여러 권의 책들이 놓여져있다.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못 읽은 책일지도 모른다. 겨우 박사 들어와서야 비로소 책 읽는 법을 조금 알았기 때문에... 그래도 이젠 책을 읽으면 대화가 된다. 주고 받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고마운 마음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서 논쟁을 걸기도 한다. 진심이 다가오기도 하고, 위선이 감지되기도 한다. 읽다만 竹內好 선집을 다시 읽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식민성과 주체성의 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했던 그의 감수성이 우리 선배 사상가들과 닿아 있다. 지금은 모두 잊혀졌거나 형해화되었지만. 암튼 그런 선도적 문제제기 이후에도 일본은 크게 바뀌지 않은 듯 하고, 내 느낌에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뒤따라가고 있다. 식민성과 반봉건이라는 주체성의 문제다. 참고로 조경란 선생의 竹內好 인용 부분은 완벽한 오독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내 선생이 비판하고자 하는게 바로 조경란 선생이 유무의식적으로 갖는 전제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격고사 디자인이 잘 된 듯 싶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자찬이 심한가? 그래도 내용과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고생 길이 훤하다... 그렇지만... 그렇다. 언제 또 이런 공부를 해보겠나. 앞으로 네 달간은 100여권의 책을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한다. 시험이 끝나면 자연스레 논문계획서 내용이 정리될 거라 본다. 물론 앞 일은 모른다. 또 어떤 시험과 시련이 기다릴지...

 

7년을 거의 다 채워간다. 여기도 살만큼 살았던 모양이다. 아직 반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벌써 마음은 정리와 수습의 단계에 들어선 듯 하다. 문득 부쩍 많아진 하늘의 구름이 우울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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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趙剛老師新書發表會後記(20130602)

2013/06/02 趙剛老師新書發表會後記

2013년 6월 3일 오후 5:46
 

把陳映真的「左翼」和「統一」分開來,以及把他的「文學」和「思想」分開來的方式,這就當然是以對統一和思想的判斷為前提的。而且,這些判斷,很可能以對中國革命以及其後的歷史的判斷為前提。台下的杭之(本名為陳忠信,因高雄事件坐過牢的民進黨的所謂「中國通」)所提出來「文學掛帥論」以及與談人陳柏偉所提出的「左翼掛帥論」,都屬於這樣的方式。

 

不過,趙剛先生對「中國」基本上保留任何判斷 。這也是我採取的策略性方式。因為經過「冷戰」而被遺忘和斷裂的「中國」認識,如同我們對「北朝鮮」的認識一樣,是非主體性,也是外在性的。如果沒有為了確保自己的「主體性」的集體思想解放實踐,而直接把「中國」或「北朝鮮」當作批判的對象或判準,這樣的「左翼」很可能永遠留在對台灣或南韓的歷史外面的理論的層次。

 

因此,趙剛先生保留其判斷,似乎認為透過陳映真的「小說」重新閱讀陳映真,才能以內在於「台灣」的方式,閱讀陳映真。透過「小說」得到的「抽象」,不是從對中國的直接認識或所採取的政治立場所演繹的,而是透過當初設定的思想解放的問題意識,把對歷史和現實的當前支配性認識加以解體掉,努力提供尋找運動和思想的新出口的線索。

 

因此,在我看來,昨天討論當中,與趙剛新書形成有意義的論點的,就是邱士杰的討論。 在那裡,雖然沒有那麼明確,但可以發現與「傳統與現代、鄉土與民族、台灣與中國」等的二元化,具有緊張和衝突的內在於台灣歷史的陳映真有關的研究方向。進而,內在於陳映真的「國民黨左派」的契機,也是在台灣把陳映真加以再脈絡化的重要面向,同時也是在歷史和思想方面,台灣成為參與「中國」的積極的部分的媒介。有趣的是,我認為,這就與王曉明老師在討論中國早期現代思想的時候,給「國民黨左派」賦予積極的意義,是一脈相通的。當然,我也感覺到邱的討論中的某種症候性矛盾。因為他一方面提出如此的某種解放性的思想論述,但另一方面也以「國際主義」來提出「第三世界」的局限。我認為,這在方法上似乎無法解決普遍性或普遍主義的問題。

 

另外,趙剛先生的新著裡,也收錄一篇反駁白永瑞老師對陳映真的批判的文章。我記得,此論點大約1年前已經提出過。趙老師,認為白永瑞(以及白樂晴)老師所提出的台灣-中國-世界的重疊,與台獨派把台灣實體化的格局類似,這在陳映真那邊不可能成立的。因為在陳映真那邊台灣和中國不能重疊。在這裡,我可以發現白永瑞老師以「韓國」的討論方式來介入台灣的討論。但在我看來,白老師沒有做好充分的介入準備。

 

但把此問題追到底,我就發現這不只是「介入」層次的問題。其實這裡也有認識「主體」的問題。因為那裡同樣有「南韓」的實體化的問題。這個「實體」,基本上意味著歷史上把當代的現代國家當作稍微絕對的單位,因此這些論述在他們的展望上具有基於「現代性」的制約。白樂晴老師或白永瑞老師的討論,所提出的「分斷體制」,雖然正確的呈現了當代歷史結構的複雜性和現實性的某一面向,但往往淪落為「國家主義」的論述,是因為那裡還沒有真正形成把「分斷體制」歷史化而終究挑戰「現代性」的機制。因此那裡也有過度強調當代歷史中「韓國」的主體性的問題。而且,雖然其論述中的「變革」非常現實,而現實到可以與「中道主義」結合,但越如此越脫離當代中的矛盾和政治性而有危險淪落為「去政治」的知識分子論述。總之,對南韓來說,「台灣」這麼成為一個把白永瑞和白樂晴的論述加以複雜化而重新消化的重要參照點。我個人也希望,白永瑞老師提出反駁或補充,以豐富化論點。

 

附記:白永瑞老師對南韓的「批判性中國研究」以及對李泳禧先生的詮釋,也可以被症候性的閱讀。在那裡,白老師正確的提出在韓國的中國研究,不能把現代和前現代分開來對待。但我也發現那裡也有從「對現代的認識」演繹出「前現代」的問題。因此我感到,他的歷史討論,是一個自然而沒有矛盾的展開。此問題也關係到「朝鮮-大韓帝國-大韓民國」的歷史的批判性「相對化」,終究也包含透過「朝鮮-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的內在化,形成批判性主體性的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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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對反智主義批判的一點補充

對反智主義批判的一點補充

2013년 6월 10일 오전 2:54
 

我認為「反智主義」和「唯智主義」是二元對立的概念。因此兩者都內涵著負面意義。似乎有些人認為可以把反智主義和唯智主義,看作正面或中立的概念,但我覺得,要那樣使用,乾脆用別的概念比較好。因為這裡「主義」基本上內涵著排他性,因此都成為批判的對象

 

我認為,我們需要反思既定的去歷史化的「知識」,同時也需要批判知識分子對有意義的知識討論的拒絕。

 

就前者而言,比較代表性的,就是我們之間已經比較熟悉的對西方普遍主義普世價值的反思。因此,進行對陳映真的不同閱讀、跨越普遍主義的亞洲內部互相參照,都有意義。而且,我們面對「殖民」-「冷戰」歷史所造成的如此去歷史化的知識狀態,也需要進行全面的批判,也需要通過個別「歷史」重新去發掘思想資源。而且,為了與群眾分享如此的思想,也需要新的「方法」和「實踐」。在我看來,如果搞混如此反思知識的工作和「反智主義」,就會轉移討論的焦點。

 

就後者而言,似乎被誤解為對「運動」的批判,但事實上對「反智主義」的批判,就是知識分子內部的批判。我所運用的「反智主義」這個概念,就關係著一種狀況:以反思去歷史化的知識為前提的知識討論,不能走向與群眾分享,進而形成不被普遍主義所異化的內在於歷史/現實的主體,反而變成道德批判的對象。道德批判的根據,大體上來自「運動」外部的旁觀者這樣的「身份論」,其背後就有一定的「經驗主義」,進而也有把「理論」和「實踐」分開來的思考。這次,我首先提出兩個前提:「有用的知識」是存在的;而且,從人學的角度來看,「知識的差異」需要不斷被克服。在這樣的前提下,我認為,「知識分子」和「群眾」需要區分,而「知識分子」的反智主義,則成為批判的對象。而且,其後果就是有用的知識無法與群眾所分享,因此「群眾」的主體化也不能實現。

 

毛澤東曾經對此提出「包辦代替」這樣的批判。在我的這樣的思維裡,原則上不存在理論和實踐的分離,因此也不存在任何身份論,雖然知識分子內部會有情勢性的分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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