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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1 최근의 허무감에 관해

최근의 허무감에 관한 거친 소회

2014년 2월 11일 오후 4:16
 

두 번째 번역서의 출간 이후의 얼마간의 허무와 우울은 알고보니 돌연 발견한 '과거' 속의 긴장의 지속이 상기시켜준 어떤 현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외부'에서 단절한 채 잊고 있었던 '현실'이었는데, 마침 그 '과거'의 긴장의 일부가 출판으로 물질화되면서 그 '현실'에 대한 단절을 '내재적 비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박과 무력감이 모종의 허무감을 만들어낸 듯 하다. 물론 이는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 '외부'에 머물 수 없게 된 상황의 변화와도 관련되겠다.

 

내가 문제화하는 우리의 현실은 기본적으로는 '지적 현실'인데, 반복하여 강조해온 바와 같이 '역사'와 '현실'에 내재하지 못하는 지식과 그것을 둘러싼 엘리트주의-포퓰리즘적 지식인 문화에 관련된다. 엘리트주의를 '이론주의'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화는 인식론적으로 볼 때, 반복해서 타자와 자신을 본질화하고 분리하면서 관계성에 대한 인식에 이르지 못하게 되고, 내부에서는 대리주의적 정치를 심화하고, 외부와의 관계에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단순히 주류적 학문과 그의 적용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비판적 학문 또한 동일한 방식을 취하면서 그 이원화된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모종의 형식 파괴 내지는 방법적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일정하게 보편적인데, 그렇지만 그 내부의 위계와 차이는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준다. 그래서 그 열린 공간을 주목하게 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주체성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가 식민-냉전이라는 역사적 단계를 거치면서 사상적 흐름이 단절되고, 그 단절을 주체성의 결여라는 측면에 착목하여 복원하기 보다는, 외부의 '보편성'에 근거한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수용으로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고 대중의 현실과 유리되었으며, 특히 좌익의 경우 '능동적으로' 외부의 이론을 수용하는 가운데, 이론적으로 대중 위에 서면서도, 현실 운동에서는 대중을 추수해왔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지적 문화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자기 부정과 혁신의 참조점으로서의 새로운 외부를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외부를 통한 사유는 기존의 것과 매우 이질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전달가능성 또한 제약된다. 마치 '외재적 비판' 처럼... 자신을 포함한 전부를 부정하면서도 자신을 고립시키지 않는 비판이란 무엇일까.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스승 노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닐까. 결국 '대중'과의 비판적 해후가 그 기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노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다시 모택동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의 '근거지'라는 사상은 자기부정적 인식을 매개로 한 대중적 기초 위에서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모택동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바로 주체성에 근거한 자기 역사화의 원리를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윤리적 삶의 문제의식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대략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좋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 등의 문제이다. 역사 안에서 타자와 자신에게 모두 폭력적이지 않은 윤리적 삶은 바로 저 근거지 사상에서 도출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에 내재적인 자기 성찰적 지식을 매개로 대중의 주체화를 추동하고, 또한 그 지식은 거대한 외부의 역량을 역전시켜 진보의 방향에서 자신의 역량으로 종합하는 힘이 된다. 그동안의 탈역사적 인식론으로부터 역사를 개방하여 그 안에서 사상적 '근거지'를 추출해 내는 작업이 절박한 시점이다. 역사는 나 자신의 근거지이자, 나와 타자를 맺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결국 희망은 거기에 있다. 그런 확신이 모택동에게는 있었다. 모택동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박현채 선생님의 '민족민중'적 역사서술과 '민족경제론'의 사상실천은 또 하나의 잊혀진 모범이다. 거기에서 비로소 기존의 관계형식을 대체하는 '역사윤리적 민주'라는 새로운 관계설정도 가능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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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와 無

박노자 선생님의 글...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9898

남한의 80년대와 90년대에 대한 박노자 선생님의 진단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매우 아쉬운 글이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변혁적 역량의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와 더불어 체계적 모순의 심화가 어떤 변혁적 주체를 형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분석과 전망은 역사와 현실에 외재적이기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매우 '비주체'적 역사관이다. 그래서 역사의 '개방성'에 대한 주체적 고민이 부재하다.

과연 이 사회의 모순이 극단으로 치다르면 그런 변혁적 주체가 형성될 수 있을까? 박 선생님도 아마 그러한 모순이 또다른 비극, 예를 들어 모종의 파시즘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위험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주체'의 문제를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게 될 경우 노정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및 조선의 예를 들고 있지만, 그가 내놓는 역사는 사실 '내용'이 없는 역사, 다시 말해서 '무차별화'된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그의 분석도 사실상 역사적 개별성을 무시한 채 보편적 좌익담론(이른바 '신자유주의')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미래의 변혁의 순간을 '종말론'처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이 왔다쳐도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무'에서 와서 '무'로 존재하다가 '무'로 나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역사는 엘리트주의적 '지식인'의 머리에만 존재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가 언급한 러시아와 중국 혁명의 역사는 그 시대의 지성이 그 역사적 시간과 장소의 개별성에 입각하여 내외적 모순에 대해 사상적 간파을 한 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대중과 혁명은 매개될 수 있었다. 나아가 그 혁명은 각자의 독립적 대안을 내외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 역사에 대한 평가도 그와 같은 맥락 하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에게 새롭게 열릴 것이고, 역사 안에 주체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각자의 민족적/사회적 전망을 제시하며 실천적 역량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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溝口雄三...

藝術人生님의 [미조구치 유조, 『중국의 충격』 발췌] 에 관련된 글.

2년 3개월 전의 노트를 읽어보니 다소간 그 사이의 생각의 변화가 감지된다. 물론 그 당시 던졌던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해결의 방향을 찾아온 노력으로 인해 지금 읽고 있는 溝口 선생의 글이 다르게 읽힌다. 그렇다. 최소한의 '근대'는 불가피하다. 그것이 '서구적 근대'와의 대비에서 얻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렇지만 그것을 이중적 관계에서, 즉 세계 속의 민족성과 사회 속의 개체성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읽을 때, 개별적 근대성과 보편적 근대성의 종합적 인식의 가능성이 도출될 것이다. 물론 그 출발로서 후자는 우선적으로 부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사실 '방법'으로서의 '근대'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를 읽으며 환산 선생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와의 대비를 강하게 느끼는데, 그런 의미에서 죽내 선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구구 선생 역시 많은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남겨둔 채 가긴 했지만 말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을 경유해서 중국의 전근대를 읽으면서 다소간 막연하게 느껴졌던 '유가' 및 중국철학, 나아가 조선 성리학의 주제들이 조금은 친숙해졌다. 이 역시 나름의 수확이다. 왕효명 선생의 강의에서 다루어졌던 '초기 근대'에 대한 이야기들도 좀더 입체적인 느낌으로 다시 다가오고, 궁극적으로 나와 우리의 '근대'에 대한 고민도 좀더 복잡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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