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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내가 소개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다른 누구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구보다 그를 먼저 알았고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어떤 참고할 만한 것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소개라는 행위는 사실 친구를 만드는 행위이고,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개라는 작용은 일정한 목적성을 가지는데, 거기에는 중간에서 소개의 역할을 하는 이의 설계와 실천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소개는 보편주의/타자화와 특수주의/본질화와 같은 모종의 왜곡을 넘어서면서 실천적으로 새로운 관계와 전체의 복합적 의미를 만드어내는 작업일 것이다. 번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번역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누구를 아주 잘 안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전체의 관계를 알고, 또 양쪽의 가능한 관계맺음 및 그 효과를 가늠하면서 구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쩌면 번역자/소개자의 세계관 같은 것이 아주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번역을 한다면 나는 어떤 번역자인가? 모종의 계보학적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 2년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수업을 통해서 만났다. 전리군(錢理群), 사카이 나오키(酒井植樹), 왕휘(汪暉), 진광흥(陳光興), 손가(孫歌), 유기회(劉紀蕙) 선생님 등...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또 오해해왔다. 그들을 나의 관점을 통해 한꺼번에 정리하고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이러한 소개는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이 선생님들과 만난 역사적 우연은 머리가 좋지 않은 나에게 잘못된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나는 그 인연으로 인해 그 사상적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못 의심하면서 커다란 모험을 감행하게 된 듯 하다. 이 모험을 뭐라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지만, 우선 '사상에의 추구'라고 해두자. 암튼 그 모험은 두 가지 준비를 요구하는데, 첫째로 대상을 본질화하지도 타자화하지도 않는 세계관적 측면에서의 주체적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방법론적 시좌이다. 둘째 나의 구도 속에 나의 언어로 그들을 배치시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만큼의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적 주석 보다는 핵심적 논지를 전체적 맥락에 배치시키는 능력에 관련된다. 물론 이는 완벽한 이해를 사전에 배제한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아마 아직도 나는 모험을 위한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번역은 그러한 단계에서 진행된 셈이다. 그래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번역이 끝나면 정말 다음 단계로 넘어갈 고민을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다. 박사논문의 주제를 고민하는 지금 자신의 공부에 대한 솔직한 회고를 통해 내용을 요약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처음에 나는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적 기원을 갖는 마르크스주의와 알튀세르주의 및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다소간 맹목적으로 출발하였고, 그러다 한참 후에 대만으로 건너와 석사과정에서는 이주노동자운동의 비교를 통해 이를 녹여내 보았다. 비교의 함의 확인 보다 오히려 비교의 실패 측면이 이후의 공부에 일정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첫 학기에 중국의 당대 역사를 논의하는 전리군 선생을 만났다. 당시에는 전리군 선생의 사상적 내용도 기존의 이론적 틀에 환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그 다음 학기 설의(薛毅) 선생의 노신 수업도 들었다. 그런 바탕에서 유기회 선생과 서구 정치철학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에 이어 사카이 나오키 선생을 통해 포스트식민주의의 한 축을 접했다. 이 때 자극으로 철학과의 현상학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철학과의 정치철학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동시에 나오키 선생와 진광흥 및 왕휘 선생의 긴장도 보았다. 내가 보기에 이는 매우 상징적이고 대표성을 갖는 긴장이었다. 특히 민족/국민의 문제는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손에 잡혔다. 손가 선생은 그 과정에서 어쩌면 진 선생 보다 방법론적으로 좀더 급진적으로 보였고, 왕휘 선생은 한국에서 기존에 소개된 것과는 조금 달리 이러한 급진적 방법론을 사상적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왕휘 선생은 그러한 실천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신좌파와 달리 그에게는 역전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특히 그의 최근 논의의 내용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정치'와 '역사'라는 구도를 취하여 응용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박현채 선생의 사상을 분석한 글이 그것이다. 그런데 박현채 선생과 더불어 전리군 선생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의 깔대기로 환원되지 않는 복잡성과 징후성을 가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을 포함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름 하나의 사상적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암튼, 출판사의 일정에 맞춰서 번역 초고를 12월 초에 넘겨주기로 하고 전체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 초고와 바뀐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검토를 하고 있지만 빠뜨리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동시에 대만에서의 중문판 출판에 맞추어 서평을 써서 대만사회연구계간에 기고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역자 후기의 내용을 미리 써보는 셈이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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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에 대한 본질주의/특수주의적 또는 옥시덴탈리즘적 접근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모종의 인종주의/국민주의/국가주의적 위험으로 나타난다면, nation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은 nation의 보편성을 전제함으로 인해 국가간의 역사구조적 차이를 무차별화하는 '이론적 국민주의'를 띠며, 구체적 현실 속에서는 외부적 보편주의와 공모할 위험으로 나타난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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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헤겔의 대논리학이 아니라 정신현상학을 인용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강연자가 잘못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자의식은 즉자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존재한다. 그것은 자의식이 또 다른 자의식을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의식이란 인정과 승인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방적인 행위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뭔가 생산적인 것은 쌍방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마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인정하듯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써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의식의 본질적 특성이 완전히 벌거벗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 그 외양을 최초로 만들었던 그런 순진한 형태로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삶이 팽창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개체의 주체성 구성의 차원에서 action과 reaction의 통일적 이해는 헤겔을 원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일정한 지속성과 역사적 구조를 갖는 한 사회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대중의 action과 reaction은 헤겔의 논의로 설명이 가능할까? 사회 집단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의 action의 측면은 결국 마르크스적 변증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탈식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합 가능성은 이렇게 개체와 사회라는 서로 다른 주체를 설정하는 것과 관련되는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개념의 변증법이라는 헤겔적 틀을 폐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인식 주체와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