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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식민성

종종 중국(또는 가끔 대만)에서 느끼게 되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징후적 '봉건성'(또는 전근대성)은 이것이 한국에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시대에 따라 표현되는 방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중국의 당대 역사를 보면 일정하게 중국적 야만성과 봉건성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일정하게 종교적인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민중의 해방이라는 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식민과 수동적 미완의 독립 그리고 분단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단절 과정들을 통해 식민적이면서 민주적인 강요된 주체성을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이 강요된 주체성 안에서 민중적 시각을 확보하면서 성과를 얻으며 일정하게 내적 주체화의 과정을 겪기도 했다. 특히 80년대는 이런 측면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민주적 주체성이 강요된 식민적 주체성이라는 역사적 결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단절과 연속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다. 부분적 식민을 거쳤지만 종국적으로 민족적 독립과 자주를 얻어내면서 일정하게  봉건적이고 전통적인 주체성을 무의식으로 갖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당국가체제는 현대 정치적 외피를 가지면서 봉건성을 일정하게 무의식적으로 존속시키는 정치 형식인 듯 하다. 이러한 봉건성은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질서의 내부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심각한 폭력을 낳고 있다.

 

박현채의 '민족민중론'의 입장에서 보면, 노신이 '민간'의 '전통'에 주목한 것은 민중적인 내적 주체성과 현대성에 식민화되지 않는 민족적 전통 양자를 결합하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난폭하게 정리되지만, 중국이 '민중' 없는 '민족'의 역사를 겪었다면, 한국은 '민족' 없는 '민중'의 역사를 겪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성의 측면에서 보면 모두 다 불구적인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민족 내부의 민주를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있고, 한국은 민중적인 민족을 재구성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성은 민족적 인식 없이 내부적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될 수 없으며, 민중적 주체화 없이  당파적이고 진보적인 역량을 형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은 일정하게 일본을 매개로 한 중국에 대한 부정이다. 같은 논리로 보면, 일본은 서양을 매개로 한 아시아에 대한 부정이다. 매우 가설적이지만, 현대 정치의 전개 속에서 민족의 결여 또는 민중의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및 중국과 달리 일본은 양자 모두가 결여된 아시아에 대한 추상적 일본으로부터 출발했다는 특징을 갖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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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았다.

 

제목은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You Are the Apple of My Eye

대략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쫓아 다니던 여자 아이"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최근 대만에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들로 인해서 국산영화가 조금 붐을 일으키고 있다. 예전에 처음 막 대만에 와서 영화를 보러 영화 거리로 갔다가 그 많은 영화 가운데 대만 영화는 한편도 없고 헐리우드 영화로 도배된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진 셈이다. 아마도 정부의 지원정책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오늘 본 영화는 나름 상도 타고 인기도 얻은 모양인데, 내 느낌에는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 영화이다. 감상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성장기, 특히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의 연애와 삶 등의 것들이 엘리트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의 옛 기억을 상기시켰을 뿐이다. 

 

조금 과장되었지만 유사한인 것들도 많았다. 그 시절의 사랑, 성적 태도... 문득 생각난 한 여자 아이의 '닭똥 같은 눈물'도 그렇고... 다들 아주 깊은 곳에 말 못할 아픔을 감추고 그 시절을 겪어 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시절 이미 술을 먹으면 자주 필름이 끊기곤 했다. 나의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한 외면은 아마 그때부터 형성되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이 영화를 보면서 이미 무의식이 되어버린 나의 삶의 일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교육 시스템 내의 경쟁의 문제 보다 나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아마도 문화적 콤플렉스였던 것 같다. 이는 계급적 문제이기도 했고, 또 문화적 자본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면에서 읍으로, 읍에서 시로.. 다시 지방에서 서울로 매번 진학에 따라 이동해온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이는 일정하게 무의식적 병리적 요소로 축적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종교적인 문제와 가족 내의 문제도 지금은 거의 잊져혔지만, 정신병적 요인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종종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계급 및 그 문화에 대한 나의 적대심이 매우 신경증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매우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인터넷 동창모임이 유행이어서 국민학교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사투리를 한 마디도 쓰지 않은 나의 모습와 그들의 사투리가 너무 대조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충청북도가 원래 사투리가 별로 강하지 않아서 다들 쉽게 바꾸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리 간단히 해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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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문제

 

한글전용론은 기본적으로 한자라는 전통에 대한 타자화를 골자로 하는데, 그 역사적 배경은 일본에 의한 식민화와 중국으로부터의 문화적 '독립'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을 매개로한 현대화를 따르기 위해 내부의 '사대'적 전통을 제거하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주의자들의 친일성이 언어의 측면에도 드러나 있는 것이다. 친일적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한국 현대사 속에 외국어 표기법이 한글전용론에 근거하여 제정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한글전용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현실적인 주장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주변 한자문화권의 고유명사의 번역 표기법에 은근 슬쩍 적용되면서 대중과 지식인(번역자) 사이의 위계를 심화시키고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에 혼란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본어와 중국어를 아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없겠으나 번역, 나아가 지식 자체가 대중과 위계적 관계를 만들기 보다는 대중의 지식 증가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러한 번역행태는 개선되어야 하겠다. 일본어 번역의 경우 우리가 기존에 일본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적었기 때문에 대중적 층위에서 그다지 저항이 없었고, 따라서 지식인들 중심의 일본어 고유명사 번역 방식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중국어의 경우 상황이 많이 다르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래서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지만, 한글전용을 배후로 하는 원음주의라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으로 인해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도가 조선/한국과 같은 과거의 제국과 새로운 제국 사이에 낀 국가에서 강하게 출현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 학문의 근원적 식민성의 징후를 본다.

어제 쏘아 올려졌다는 중국의 우주선이 '선저우'로 표기되고 있다. '神舟'를 '선저우'로 번역하여 표기하는 것은 분명 잘못 번역한 것이며 의미의 전달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번역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선저우라고 번역하고 '神舟'를 병기하는 것은 언중에게 외국어를 배우라는 요구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신주(神舟)'라고 표기되어야  옳다. 아울러 한글 속의 한자어는 반드시 한자로 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자와의 연관성이 제거될 수는 없다. 지속적인 조어 과정 중에 기존의 한글과 한자의 연관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게 우리의 언어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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