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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인문정신에 대해

90년대 초반 중국에서는 인문정신 논쟁이 있었다. 백원담 선생의 책 '인문학의 위기'에서 다룬 문제도 이것이다. 전제적 정치체제의 유지 속에서 본격적 시장경제로의 전황이 이루어진 90년대에 지식인 사회도 분화가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인문학의 주변화를 비판하며 인문학의 '시장화'를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다.

전리군 선생은 이에 대해 '병리 상태'였다고 비판한다. 이는 동일하게 우리의 '인문학 위기 담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전체의 기풍이 현실에서 멀어지고 정치에서 멀어지는 추세의 상황에서 이러한 비판적 관심은 당연히 적극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대조를 이루는 것은 동시에 발생한 양극화 현상, 노동자 농민 생존상황의 급격한 악화에 대한 반응이 늦고 무디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화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은 다소간 자기 연민과 자기 도착적 병리 상태를 지닌다.[1]

 


[1]錢理群:《我的精神自傳——以北京大學為中心》,頁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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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일 선생님의 글

임영일 선생님의 글이 레디앙에 전재되었다. 일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먼발치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바라보면서 가졌던 기대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잘못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최초 민노당의 분열에서 어느정도 결론이 났던 것 같다. 그 결론의 내용이 올해 여러 계기들을 통해서 드러났을 뿐이다. 어쩌면 내부의 사람들도 상당수 이를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다수가 놀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실력은 그 때부터 고갈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바닥을 드러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진보신당'이라는 명칭 자체도 본래 잠정적이었고, 본래 기존의 구도를 유지하며 그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하나의 정당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통합의 시도는 분열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기층에서의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면서 정당의 합당은 아무 의미가 없거나 불가능하다.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신발 끈 제대로 묶고 이론과 운동 모두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별 재주가 없지만,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을지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임영일 선생님의 글이다. 본래 그런 삶을 잘 살지 못하는데 가끔 '치열'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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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권력귀족 자본 계층

전리군 선생은 1989년 6.4를 거쳐 성립된 '6.4체제'가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공고화되었고, 이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계층의 출현을 분석한다. 여섯 종류의 계층이 있다. 권력귀족 자본 계층, 사영기업주 계층, 지식엘리트 계층, 하강 노동자 집단, 무토지 농민 집단 농민공 계층 등이다. 전리군은 그 가운데 권력귀족 자본 계층에 대한 네 가지 분석을 하는데, 다음은 그 중 첫번째 내용이다. 참고로, 이 집단의 정점에는 국가 고급간부 자제들이 있고, 그 아래 지방 관료와 그와 결탁한 지방 건달 조직이 있다. 그 외에 중요한 한 세력이 군대이다. 이들은 권력의 자본화를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고 한다.

 

먼저 “처음부터 심각한 부패성과 기생성을 가지고 있었다.”[1]그들은 근본적으로 어떤 새로운 사회적 부를 창조하지 않았고, 건국 후 수십 년 동안 ‘고 축적, 저 소비’의 정책 하에서 노동자, 농민, 지식인이 피와 땀으로 노동하여 축적한 국유 자산을 자기의 것으로 가로챈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윤을 가로챘을 뿐, 일반 자본가들이 반드시 치러야 할 위험부담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서방 자본주의 국가에서, 심지어 원시축적 시기의 서방국가라 해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역시 중국 특색을 갖는 권력귀족 자본 계층입니다. 그들과 그 자녀들은 국내외에서 그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미친 듯이 소비합니다. 서방의 부르주아 계급 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1]錢理群:〈酷夏憂思錄〉(2001年8月27日-9月6日),《知我者謂我心憂——十年觀察與思考(1999──2008)》,頁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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