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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이야기/문충성

개 이야기

 

들불이 났다 들판에 나자빠져 술 취한 이

술나라를 돌아다니는 동안 시냇가 오르내려

제 목숨 버리며 불을 끄고 개는 충견이 되고

그 시절에 한 도둑이 살았다 너무 가난하여

몽땅 훔쳐내어도 섬 하나뿐인 제주섬에서

부잣집 넘나들며 배고픔도 찾아내고 이따금 사랑도 훔쳐내고

세상 사람들 모여앉아 충견 이야기 똥개 이야기

고거 사람보다 썩 낫다고 긴 담뱃대 재 터는 소리

개야 주인이 도둑인 줄 모르지 주인만 따르지 꼬리치며

멍멍멍 즐겁게 짖으며 험한 길 앞장서 달리기도 하고

어느 날 포졸 나부랭이 도둑잡이 나서

한 도둑을 잡으려 들자 어림없지 개는 달려들었다

도둑보다 괘씸한 게 개였지 포졸이 개와 싸우며

개를 꽁꽁 묶는 그 사이

한 도둑은 멀리멀리 달아났다 그뒤

포졸은 도둑의 개는 죽여야 된다고 죽여버렸지만

멍멍멍 개는 왜 죽는지 모르고 죽어갔다 멍멍

세상 사람들도 충견이라고 하기는커녕 그거 못된 개라고

까놓고 욕들 했다 반대하는 사람도 없이

오로지 한 도둑만 긴 한숨 내뿜으며 도둑질을 하고

 

-문충성, 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문학과지성사, 1981

......................

도둑의 개지 도둑개는 아닌데 사람들은 도둑의 개와 충견을

구분하고 잘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되엇건 개는 주인을

위해 죽었고 사람들이 어쩌든 간에 주인은 한숨을 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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