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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群像

  

        군상群像


그들은 無에서 오질 않았다

저마다의 재료에서 목적을 잉태하여

사람의 사다리를 타고 세상에 왔다

 

형상을 굳은살로 받아낸 산파여

목적에 목적을 덧씌우진 말자, 애초에

손을 떠난 피조물이 아니다


강철에 흐르는 녹물에게

청동에 집을 짓는 거미에게

돌에 묻어나는 손때에게

목적조차 비어주는 여기

굳어 선 군상이질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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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아저씨

 

빨대아저씨



공원 분수대 옆의 빨대 아저씨

왼손 가득 빨대를 쥐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비오는 처마밑에 서 있음이

유일한 실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은 몇 안되는 목격자

종일 계단에 앉아 빨대를 펴는 그다

공차는 사람 몸짓을 흉내내다 허공에 대고

허허허허, 웃다 욕을 토하다

새벽 쓰레기통 뒤진 빨대를 이어 

호수의 잉어를 낚으려나 영근 달을 찍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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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미래

달콤한 미래

            -은평 뉴타운 재건축 현장에서

 

 

 나무뿌리가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다 땅 거죽에서 뻘건 선지가 덩어리 채 쏟아지고 있다 벌집 속 인골들은 번데기로 누워 부활의 날을 기다린다 달콤한 햇살을 허겁지겁 받아먹으며

 

 산 者가 그 위로 견고한 육면체의 절망을 짓는다 솟아오른 구멍마다 하나씩 기지개를 켤 사람의 고치들, 전리품이 되어 과학실 견본으로 걸릴 과거는 빠진 턱으로 환히 웃음짓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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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허기진 목구멍으로 돼지막창을

구워 던져주었다 속이 꿈틀대며

남의 속을 잘도 받아먹었다


엄지와 검지로 손가락뼈를 돌려 본다

물기 빠지고 마디가 끊어졌으나

제 속을 알아보고도 손가락은 가지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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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고양이 



 


하늘이 요긴한 능력을 주시어

네 발 달린 자, 하늘 나는 자, 뿌리 박힌 자

죽은 자에게까지 말 전해 듣게 하시매

쫓겨난 자들 아픔 온 몸으로 쓰다듬고저

손을 내밀었으나 굽고 딱딱하게 일어선 

언덕 위 그 고양이

처음 건넨 말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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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연

   

인  연

                 -인골수습현장에서


사람은 가고 뼈만 누웠습니다

대칼*을 손에 쥔 불한당인 나는 한 평

관 안의 휴식을 불러 깨우지요

비 온 뒤 연탄마냥 손끝에서 부서지는

왼쪽 정강이, 타다 남은 젓가락이군요

허리의 작은 코뿔소는 척추를 타고 달리며

목도 날개도 쭉- 빼고 고니로 날다가

오스카 상반신같은 손아귀에 덥썩,

그게 아마 뒷 목 쯤이라지요

도끼 같은 엉치뼈는 어디에 숨겼었나요,

넓적다리로 몽둥이를 드니 심성 착한

원시인의 눈망울이 저 너머에 있습니다

조심스레 흙이 낀 이빨을 솔질하며 하냥

입 안의 내 혀도 부지런히 이빨을 닦네요

콧노래 흥얼거리는

입 안까지 시원할 자 누구인지, 이제 상관없지요

다만 어떤 날에 일어선 뼈가 누운 뼈에게 말합니다

-밥이 되려 나를 기다렸나요

-뼈로 살아 마냥 기다렸나요


*대칼:대나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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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 시

낚   시


-인골수습현장에서



잡혀온 물고기에게 말 걸지 않듯

손 안의 해골에게 죽음을 묻지 않습니다

아! 그건 바람이 빠지는 풍선

입만 벙긋이는 복화술 인형이라도

산 사람을 통해 듣고 싶었죠

낚시의자에 앉아

A급 해골*의 이빨을 닦는 나는

오늘도 구경꾼의 은유를 불러 모았으나 그들은

죽은 뼈에만 눈을 맞춥니다

바지 기장을 맞추듯 

-사이즈가 크네요, 남자 건가요

묘지로 가는 백발의 노인에게

부서진 엉치뼈를 들어 보였으나

(이것은 당신이 아닌가요)

말 없이 가던 길을 갔습니다

해 질 때까지 길목을 잡고 기다렸으나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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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도 아는 것

 

 

수박도 아는 것

 

부슬부슬 비 오는 밤 12시, 머릴 풀고 칼 맞을 자 있어

환하게 터지는 백열 촉 아래

입을 다물고 눈 질끈 감아 퍼렇게

질린 두상 또아리에 올려두고

빨간 색, 사냥꾼의 명찰 이마에 붙여

요기를 따라 찔러주세요 굵은 머리칼로 금을 쳤노라

속 검게 태운 씨앗, 채하실까 깊은 속속 심어두어

목 마른 이 목을 빼고 기다린다

겹겹이 옷 껴입고 우산으로 몸을 가리운

사내, 감은 자와 두 눈을 맞추고

내 몸뚱인 뉘에게 주려 화살표 그려진 아스팔트 위를 걷는지

비 오는 하늘이라 차마 묻지 못하고

갈 지 자 걷는 역촌동, 머릿 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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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의 구두

어늘 봄날의 구 두


전봇대 옆에

버렸구나


흐르는 강물 위를 배웅하며

마지막까지 

가지런하겠다던 


더운 육신을

내려놓았구나


날 선 뼈들 서로 부비며

그림자처럼 닮아갔던

깊이

발자국 하나 만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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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나무에게



1

흙을 빨아 올려 뼈를 만들었다

돋은 잎들로 살을 붙이고 붉게, 꽃봉오리 심장을 찍어 퍼올린 핏물을

벌에게 나비에게 내어주다 피가 굳어 시들하면 살이, 심장이 흘러내리는 것을

떼구루루 구르는 것을

한 겹, 뼈들로 보고 있느냐 나무야


2

아스팔트길 가 전선을 가로질러 웃자란 나무들이 싹 틔울 가지를 잘려 봉오리 앉힐 꽃대가 끊겨 비가 내리는 봄 밤, 외마디로 젖고 서서 깜깜 하늘에 삿대질하고 뭉근 팔로 절규하는데 이제 고개 떨굴 이파리도 없어 주룩주룩 섧게 울며 살아지는 날들에 입마저 다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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