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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의 영원한 가치

어제 '전달'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펌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어지간하면 안하려는 입장이었는데...

반대로 '내 얘기'만을 써야지... 하는 강박도 웃긴 건 마찬가지인 듯해서...

당분간 '잘' 퍼오려는 노력을 해볼까 합니다.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봤을 것이라고 무작정 가정하는 것 보다, 중복되더라도 확인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포스팅을 안할 때, 헛걸음질 치신 분들께도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봐야 내가 퍼오는 건데.. 뭐 영 딴소리겠나 싶기도 하고...

요새는 블로그에 기록되지 않은 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따지고 보면 세상에 펌질 아닌 건 또 뭐가 있나 싶기도 하고...

뒷북이면 뒷북이라는 사실도 알아야겠고... ㅋㅋㅋ

 

암튼. 앞으로는 펌질이 좀 늘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_____^

 

 

아래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와이어드 뉴스 코리아'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Wired News 

 

와이어드 뉴스는 제가 가끔 조언을 구하곤 하는 선배가

우리나라 정보운동이 이런 걸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된 곳입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는데...

뭐 영어로 정보를 습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터라...

다음에서 번역해 놓은 거나 종종 볼 뿐이죠. (근데 번역이 좀 거시기할 때가 많아요.)

 

주로 정보기술과 관련된 뉴스를 다루는 곳임에도 은근히 정치적입니다.

아래같은 기사도 사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글이죠.

 

일단은 반가워서 퍼왔습니다만,

요새는 '프라이버시'라는 문제설정 자체에 대해서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어서 그런지

의문스러운 구절이 좀 있네요.

밑줄과 녹색 글씨는 제가 덧붙인 겁니다.

 

 

  

프라이버시의 영원한 가치

By Bruce Schneier 2006.5.21(일) 14:34

신원확인과 카메라, 데이터베이스, 데이터 마이닝, 그 밖의 전면적인 감시 수단에 찬성하는 사람들. 이들의 프라이버시 옹호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격은 바로 “잘못 한 게 없으면 왜 숨는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대답들이 존재한다. “잘못 한 게 없으면 나를 감시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정부가 잘못된 것에 대한 규정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정보를 악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부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이런 말들의 문제는, 프라이버시는 잘못을 숨기는 것과 관련된다는 전제를 일단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기본권으로서 주장하는 건 우리도 종종 써먹는 논법이기는 한데... 영 힘없어 보이지 않나요? 그냥 내 느낌인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속담 두 개를 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이다.

감시의 진가를 잘 알았던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장 정직한 사람이 쓴 여섯 줄짜리 글을 받는다면 나는 거기서 그를 교수형에 처할 구실을 발견할 것이다.” 누군가를 충분히 오래 감시하면 그를 체포할 구실 혹은 공갈할 구실을 찾을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배제될 경우 감시를 통해 얻은 정보가 오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몰래 엿보는 일, 마케터들에게 정보를 파는 일, 정적(政敵)을 감시하는 일. 이런 일들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설사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를 찾는 것은 의도적으로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비밀 일기를 쓰고, 혼자 샤워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밀 연인에게 편지를 쓴 다음 태워버리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오래전 헌법의 틀을 마련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미래를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프라이버시를 명백한 권리로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결함과 인간의 목적에 따르는 생득권이었다. 자기 집에 앉아서 감시를 당하는 것은 당연히 불합리한 일이었다. 어쨌든 감시는 당시의 신사들 사이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행위였다. 감시의 대상은 자유 시민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자신의 집은 자신이 통치했으며,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개념의 본질이다. 참... 이런 부분은 자유주의적인 프라이버시운동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자유의 본질이 '신사'들이 '자신의 집'을 '통치'하는 것이라니요. 근대적인 시민권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솔직히 표현하다니요. 자유시민과 범죄자를 간단하게 구분한 것도 거시기하구요. 그래서 오히려 앞에서 프라이버시를 생득권으로 주장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모든 면에서 관찰을 당하는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반발과 평가, 비난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만의 독특성을 도용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감시의 눈길에 속박되어, 우리가 남긴 양상들이 우리를 다시 어딘가에 연루시켜 놓을까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것은 현재 권력이 지극히 사적이며 결백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성을 잃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감시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반 동안, 갑자기 누가 엿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대화를 중단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물론 전화 대화에서 그랬을 확률이 가장 높지만, e-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교환 중, 혹은 공개적인 대화 중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저는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지금 미국 시민들이 느끼는 위협이 저 정도일까요? 대화의 주제는 테러리즘이나 정치, 아니면 이슬람이었을 것이며, 말이 새어나갈까 봐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가 자신의 망상을 비웃으며 대화를 재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태도와 말투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했을 때 겪게 될 자유의 상실이다. 구동독이나 사담 후세인 치하 이라크에서의 삶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침입자가 개인적이고 은밀한 삶을 들여다보도록 허용할 때 직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논쟁을 “보안이냐 프라이버시냐”의 문제로 잘못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이다. 정부당국의 부단한 감시로 인한 전제 정치는 물리적인 외세 공격의 위협으로 인한 전제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자유는 침입을 배제한 안보와, 이에 더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만 이뤄질 수 있다. 광범위한 경찰 감시는 경찰국가의 정의이다. 그러니 우리는 숨길 것이 없을 때에도 프라이버시를 옹호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에는 100% 동의하지만... 자유와 규제... 안보와 프라이버시... 뭔가 껄끄럽습니다.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설정은 정확히 자유주의적인 문제설정인데... 적은 너무나 명확한 것 같아요... 국가 또는 정부. 이들이 기업에 의한 감시에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요? 또... 안보는 필연적으로 군대를 호출하는 개념인 것 같은데... 과연 경찰과 군대는 얼마나 다르다는 것일까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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