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took some time to understand, against our own political interests,
that the state, politics, citizenship, and the relation of citizenship to nationality
were not future objects for Marxist theory but were inaccessible to that theory;
they were not only momentary blind spots,
but the absolute limits of any possible Marxist theoretization.
Not because of Marxism’s much-decried economic reductionism,
but because of its anarchist component.
Balibar came to see that the “theoretical anarchism” inherent in Marxism denied it the tools to master either Soviet state socialism, in which “the discourse of the withering away of the state gave rise to a practice which supported an omnipotent state,” or the national populism of democratic capitalist states, where “individuals fear the state—particularly [those] most deprived and the most remote from power—but they fear still more its disappearance and decomposition. The anarchist and Marxist tradition,” Balibar contended, “never understood this, and has paid a very heavy price.” Balibar no longer foresees the nation or the state fading away, but instead redefinitions, recompositions of them, and this has become the terrain of his struggles since his departure from the party.
- Don Reid, Etienne Balibar: Algeria, Althusser, and Altereuropéenisation 中, South Central Review 25.3 (Fall 2008)
위의 글에서 발리바르는
이른바 '이론적 아나키즘'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사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국가, 특히 근대 국가와 대중들 사이의 현실적/상상적 관계일 것이다.
개인들이 국가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그것의 소멸과 해체를 더 두려워하는 현상.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정확히 알지만,
그런데도 국가를 여타의 '사적' 폭력과 다른 식으로 체험하면서 그것에 집착하는 현상.
그러므로 결국 문제는 폭력과 대중들의 주체화 사이의 갈등적 관계를 심도 깊게 분석하는 것,
그리고 '폭력의 합법적 독점'으로 대표되는, 안전에 관한 근대 국가적 해법보다
더 문명적이고 더 효과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서, 나는 여전히 빅토르 위고의 다음과 같은 충고가
여전히 비길 데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대중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을 사고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해서.
<그런데 추악하다 해서 연구를 배제한다는 법이 있겠는가? 질병이 의사를 몰아내는 법이 있겠는가? 독사며, 박쥐며, 전갈이며, 지네며, 독거미 등을 연구하기를 거절하고 ”아이 징그러워!“라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본디의 어둠 속에 팽개쳐버리는 그런 박물학자를 사람들은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은어를 외면하는 사상가가 있다면 그것은 궤양이나 무사마귀를 외면하는 외과의사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떤 언어의 사실을 조사하기를 주저하는 언어학자와도 같고, 인류의 어떤 사실을 탐구하기를 주저하는 철학자와도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어는 문학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으로서 이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잘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데 은어란 본래 무엇인가? 은어란 비참 그 자체의 언어인 것이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