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남해금산 통영 미륵산

#1.

남해에서 상주로 가기 위해 올라탄 버스운전사 아저씨. 다음에 올 때는 꼭 가천을 먼저 들르라며 챙겨주셨다. 이미 타버린 버스라 어설프게 세운 계획대로 그냥 갔지만 다음날 하동으로 가려던 계획을 삼천포, 통영으로 바꿨다.



금산 매표소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저수지까지 다녀왔다. 바로 갔으면 보리암까지 올라갔을 시간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려준 아저씨가 너무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서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냥 걷는 거지.

 

#3.

쌍홍문을 보면서 감탄하다가 문득 돌아본 산아래자락에서 구슬처럼 물방울 두 개가 반짝였다. 어제 내린 눈이 녹으면서 고운 색을 한껏 머금었는데 하나는 주홍색, 하나는 초록색, 모두 투명하게 반짝였다. 색을 적절히 설명할 만한 말을 모르겠다.

 

#4.

보리암 올라가는 길에 햇발이 무섭게 쏟아져내리다가 눈꽃을 만나 신나게 부서졌다. 그렇게 황홀한 눈꽃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전날 내렸던 부슬비가 산에서는 바람과 함께 가지가지마다 빗살무늬 결정이 되어 맺혔나보다. 비꽃 떨어지는 소리처럼 툭 툭 울렸던 그 소리가 눈꽃 떨어지는 소리였다. 정상까지 더 오를 일 없다는 소리.

 

#5.

삼천포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지족에서 수산가는 버스를 같이 탔고 수산에서 단항 가는 버스를 같이 탔다. 창선, 삼천포대교를 걸어서 건너는데 택시를 타고 오시던 할머니가 어서 타라며 손짓하셨다.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할머니 씩씩한 목소리가,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말붙이고 싶어진 분이다.

 

#6.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기분이 시원하기는 했지만 다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압적인 철골구조물.

 

#7.

하동 쌍계사 올랐다가 화개장터 들러 섬진강 따라 걷다가 서울 오자는 계획이 삼천포로 빠졌다. 통영에 도착했더니 궁금해지는 곳이 별로 없더라. 그런데 원래 그렇다. 다 사람사는 곳이다. 구경하는 곳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구경당하는 곳이 있을 수는 없다. 터미널 앞 기사식당 아주머니의 담담한 어조 덕분에 새삼 여행은 구경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8.

미륵산. 이름이 맘에 들어 기억에 담아두었던 산. 17번 버스운전사 아저씨 덕분에 미륵도의 반을 드라이브하고 바다에 그윽히 떠있는 섬 보면서 산으로 들어갔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난 산길따라 걸어갔더니 다 보인다. 한산도 뒤로 거제도, 그 아래 비진도, 사량도, 욕지도, 수많은 알섬들까지. 섬이름을 하나하나 짚어주신 아저씨. 그 이름들보다 깊숙한 곳에 진득하니 붙박은 삶들.

 

#9.

일제시대에 만들었다는 해저터널. 예상 교통량. 자전거 1000대, 우마차 1000대, 인력거 1000거 라는 기록이 압권이었다. 세월의 깊이를 느끼는 데에 국사책에서나 나오는 시대구분은 참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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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23:19 2004/12/2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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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슴벌레 2004/12/28 02: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 고향을 다녀오셨군요. :)

  2. kanjang_gongjang 2004/12/28 05: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보리암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남해 바다를 멋지게 바라보았겠군요.
    그런데 보리암도 차 길이 사찰 입구까지 나 있어 예전 운치만 못하더군요. 참 멋진 곳을 다녀오셨군요.
    다음엔 시간나시면 붉디붉은 강진 황토 땅을 정처없이 걸어 해남 땅끗까지 가셔서 월출산에 당도해 보세요.
    하동부터 남원까지 쳐놓은 어머니 품 같은 산 장막안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함을 엿볼 수 있답니다.

  3. 해미 2004/12/28 09: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네가 벌써 간단한 기록들을. 나는 사진 정리하면서 간단한 느낌들을 남겨볼 생각이네만. 여유가 잘 안 생기는 군. 연말에 조금 여유를 내어볼까 생각중이라네. ^^

  4. 미류 2004/12/28 14: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사슴벌레, 언젠가 사진과 함께 고향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해였나요? 집집마다 물메기를 널어 말리고 있던데...
    오타맨, 올해 6월에 월출산 갔다가 미끄러지면서 손에 찐한 상처 하나 얻어왔답니다. 그거 희미해지고 나면 다시 가보려구요. 그 전에라도 강진에서 해남까지 정처없이 걸어보고는 싶네요. ^^ (복곡저수지 쪽에서 올라온다는 차길은 못 봤어요. 그래서 운치, 그저 좋던데요. ㅎㅎ)
    해미, 그냥 간단히... 자네가 찍어놓은 사진들 기대하고 있네. 몸은 좀 풀렸나? ^^

  5. neoscrum 2004/12/28 20: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빨리 휴가가 와서 다시 여행 다녔으면 좋겠어요. 지난 여행을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했는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스트레스 풍선의 바람을 왕창 빼준 여행이었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뻥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는데 말이에요.
    미류님도 부디 좋은 여행 되셨길.. 또 가시게되면 전남지역은 이번에 제가 구입한 안내 책자나 전도 등등 빌려드릴 수 있어요.

  6. jaya 2004/12/28 21: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언니 어디 다닐때 장갑 끼고 다녀요??
    통영 하동 이러면 토지밖에 생각이 안나요;
    언닌 여행다니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거 같아요

  7. 자일리톨 2004/12/28 21: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렸을 적 계몽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에서 통영(그땐 충무라고 적혀있었는데 지명이 바뀌었다지요?)에 있는 해저터널입구사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시는 어렸을 때라 코엑스 아쿠아리움처럼 유리로 덮여 있는 해저통로인 줄 알았지요. 그래서 통영이 남한의 과학기술 중심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8. 머프 2004/12/28 22: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일/지금 중요한건 통영이 충무로 바뀌었다. 또는 통영이 남한의 과학기술 중심지였다. 이게 아니라, 자일이 그 비싼 아쿠아리룸에 갔다 왔다는 말에 놀래고 있음..거길 갔다왔구나..자일이..짠돌인줄 알았는뎅..아마 애인 티켓도 같이 지불했겠쥐?

  9. 자일리톨 2004/12/28 22: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스머프/ㅋㅋㅋ 이보시요! 스머프님 난 코엑스 아쿠아리움에는 가본적도 없는 사람이오. 내가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어케 생겼는지 안 것은 KBS2TV의 <생방송 오늘>을 통해서라오. 괜히 넘겨짚지 마시오. 난 강남 땅을 밟아본 것이 손에 꼽을만 하다오~~^^ 근데 오늘은 스머프님과 여러 포스트에서 실시간 채팅을 하는 것 같군. 좋은 현상이야~~:)

  10. neoscrum 2004/12/28 23: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통영은 이번 여행코스에서 계속 갈까말까 망설였던 곳인데.. 완도에서도, 부산에서도.. 대신 전 그 비싼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지요.. 음.. 그러고보니 그게 예전 연애라는 걸 할 때였네요. 헤헤..

  11. 미류 2004/12/29 15: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오, 사진 볼 때 그런 느낌 들었어요. 조금은 여유를 느끼나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건져올렸나 보다, 뭐 그런 느낌. 주제넘은 말이군요. ㅡ.ㅡ 다음 여행은 좀더 설레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래요. ^^;

    자야, 장갑 사줄라고? 그렇게 물어보면 너무 속보이자너, ㅎㅎ 아닌겨? ㅡ.ㅡ;; 벙어리장갑 하나 있으면 좋겠당. ^ㅇ^ (글구 언니가 좀 이쁘자너,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줄을 선단다~ ^^;;)
    오늘 심하게 오버하네... ㅡ.ㅡ;;

  12. 미류 2004/12/29 15:2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터미널 앞 기사식당 아주머니가 그 얘기 해줬어요. 해저터널이라고 해서 바다속이 보이고 그런 거 아니라구, 근데 그걸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생해서 만든 걸 생각해보라구, 대단한 일이면서 억울한 일 아니냐는, 뭐 그런... 여행 다니면서 그런 목소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자꾸 떠나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같은 곳을 가도 늘 다른...

    머프의 구박을 이젠 네오가 받아야겠네요, ㅋㅋ. 근데 머프는 애인이랑 갔다왔다고 하면 용서해줄 듯~ ^^;

  13. 콩아줌마 2004/12/30 16: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다음에 섬진강 쪽으로 갈 때는 광양엘 들러보셔도 좋겠습니다. 저도 내년에 다시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기왕이면 대기오염이 극성을 부린다는 여름에 말예요. ^^

  14. 미류 2004/12/30 18: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광양... 들른 적은 있는데... 다시한번 가볼 생각은 안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