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에 대한 잡상

역시나 진보넷 블로그에 430, 메이데이와 관련된 글들이 많다.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그냥 주절거려본다. 여기저기 트랙백하기도 민망해서 그냥 둔다.

 

#1.

메이데이를 알고나서도 몇 해 동안 나에게 의미있었던 것은 오히려 430이었다. 그랬던 것 같다. 430을 위한 실천보다 메이데이를 향한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곧잘 했던 것도 같지만 기억을 건져올리다보니 430이 더 진하게 남아있다. 공연을 하느라 그랬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430에 그리 관심이 가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때는 분명 달랐다.



-나에게는 처음이고 '청년학생'들에게는 두번째 430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을 쫓아가고 메이데이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던 것도 동아리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분명 선배들은 메이데이에 대한 교양도 하고 토론도 하려고 애썼을 법한데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저 여러 대학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동아리가 공연을 한다는 것, 그것이 첫 430의 의미였던 것 같다. 함께 공연을 준비한 다른 대학의 풍물패와 뒷풀이를 하며 시원했던 기억.

두번째 430 역시 공연을 했던 것 같다. 이건 정말 기억이 충분하지 못한데 사전공연쯤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비가 쏟아져내렸던 기억이 나고 빗줄기 속에서도 집회장을 지키다가 결국 동아리방으로 피해 들어왔던 기억이 앞선다. 다른 학교의 동지들에게 조금 미안했던 마음이 언뜻 떠오르고 "우리 때는 비온다고 집회대오를 이탈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던 선배의 씁쓸한 꾸짖음은 끝내 잊혀지지 않는다.

세번째 430 때도 공연을 했다. 그때는 판을 짜고 안무를 하는 것까지 동기들과 함께 했고 열사들을 추모하는 북춤을 혼자 추었던 기억도 난다. '열사가 전사에게'로 준비했던 군무와 함께. 과, 단대에서는 메이데이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으고 짬짬이 안무를 짜고 연습을 했던 기억.

아, 그 동아리의 어떤 선배들은 졸업하고 서로 흩어져지내더라도 메이데이에는 꼭 거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던데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도 나처럼 메이데이를 기억하고 있다면 거리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2.

그 후로 430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니, 430 문화제에 대한 기억은 없다. 중간고사가 꼭 4월말 5월초에 있었다. 430청년학생투쟁대회에 나가 열심히 달리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밤새 공부-라기보다는 예상문제와 답안을 암기-하고 시험을 본 후 메이데이집회에 나갔다 돌아와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이 끝나면 벌써 아스라이 멀어진 느낌...

그 언젠가부터 430은 꽤 규모있는 행사로 자리잡아갔던 것 같고 그럴수록 큰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3.

그리고 메이데이. 스치듯 지나갔던 2003년의 메이데이를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참석했다. 참석이라고 말하고 나니 조금 웃기네. 하지만 올해 메이데이만큼은 무슨 '기념식'에 '참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띄엄띄엄 설치된 스피커로는 그나마 무대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었으니 기념이나 제대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

무대 뒤편에서 대오로 걸어들어가는데 무대 뒷면의 현수막에 도저히 해독이 안되는 말이 있었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D-365였다. 뭐, 1년 후 메이데이를 기약하자는 말인가? 하면서 뒤집힌 글씨를 읽으려고 애셨는데 아마 <세상을 바꾸는 투쟁 D-365> 였다.

아주 좋게 읽어주자면 365일 열심히 투쟁하자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논리적 비약이 심해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 해석이라는 점이 한계일 뿐이다. 내년에는 한판 붙어보자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2005년 메이데이에 2006년 메이데이를 기약하자는 말은 아이에게 '올해 생일잔치는 내년에 해줄께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 안된다는 의미에서 해석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년 메이데이에는 정말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건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D-day를 우리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정세를 장악하고 있다면 지금 못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말이었다면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SK 건물을 옆에 두고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하고 마포대교를 지나 공덕로터리를 거쳐 애오개로 가서 크레인에 올라가있는 동지들에게 함성이라도 한번 우렁차게 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집회 마무리 발언도 끝난 후에야 애오개 역으로 갈 사람들은 가자는 안쓰러운 목소리가, 어수선한 거리로 내려오는 것을 들으니 괜한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제대로 기념한 것이 있다. 일종의 깜짝쇼 같은 것이기도 한데 남북의 노동자가 노동절에 공동성명을 발표한다는, 분단 이후 처음이라는 순서였다. 사회자의 감격에 북받친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공동성명? 무엇에 대한? 간간히 들렸던 단어들로 미루어보건대 독도에 대한 성명이었다. 당혹스러움은 이내 절망으로...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는 감격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나는 3.8선을 거의 국경처럼 생각하고 있기에 공동성명이 공동의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설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노동자들이 지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독도밖에 없는가. 일본의 '야욕'에 대항해서 '민족'의 '주권'을 지키자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가. 하다못해 독도를 이야기하더라도 한반도를 팽팽한 분쟁지역으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항의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노동자들과 함께 동북아 평화를 이루어나가자는 이야기는 하기가 힘든가. '노동자의 이름으로' 하기에 머나먼 이야기라면 차라리 노동자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뭐, 이런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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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3 14:32 2005/05/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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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구나 나는 뽑기

    2005/05/06 21:59

    * 미류님의 [메이데이에 대한 잡상]을 읽고 그 날 나는 뭐했나 써보는 글 메이데이에 미류 미니님이 나눠주는 유인물 받았다고 했잖아요. 나는 바로 그 근처에서 뽑기하고 있었으삼'ㅁ'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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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객 2005/05/03 14: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95년도에 새내기?

  2. 미류 2005/05/03 16: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하라고... ^^;

  3. 과객 2 2005/05/04 12: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거의 대답? ㅎㅎㅎ

  4. 마님 2005/05/05 02: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작년이었던가. 430 때마다 함께했던 친구들과, 430 전날 우연히 연락이 되었어요. 그래서 430에서 만나기로 했죠. 그런데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뭔가 찜찜하더군요. 다같이 앉아 과거를 울궈먹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미류님 글 보다 보니 작년의 그 생각이 나서, 혼잣말하다 갑니다. -_-

  5. 미류 2005/05/06 18: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가 너무 늦었나요? 혼잣말이라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