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행인님의 [전자팔찌]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한나라당에서 상습 성범죄자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겠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은 나의 반응은 일단 실소였다. 전자팔찌라는 무시무시한 제안이 나름 정당의 제안이라는 사실이 우스웠고 그 정당이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에서 기가 찼다. 하지만 이내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은 이런 제안이 꽤나 비중있게 다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언론의 선정성에 기인한 바도 있겠으나 의미있는 사회적 논란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실소로 그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정리도 해볼겸 컴퓨터 앞에 앉고 말았다. 여성단체들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입장을 훑어볼까 생각도 해보다가 왠지 눈치를 보게 될 지도 모를 듯해 그냥 쓴다.

 

전자팔찌는 나찌가 유대인들에게 표식을 강제한 것과 동일한 행위다. 기술의 발달로 행위의 직접성이 은폐될 뿐, 감시와 분리를 위한 정책이다. 나는 특정인의 감시와 분리를 통해서 사회가 통제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특정인이 자신의 범죄를 깊이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범죄성을 확인하고 여성억압적이지 않은 질서로 향해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신상공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그럴만한' 범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범죄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고양되고 다른 처벌(보다는 교화여야 하겠지만 쩝)을 통해서 내적인 반성의 계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중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전자감시제도에 대한 반대도 포함되어있다. 전자감시는 구금보다 강력하게 인간을 구속한다. 게다가 특정인에 대한 전자감시가 실제로 미치는 영향은 특정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감시의 위협 아래 몰아넣는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은 범죄자의 인권 차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제안이 실제로 성폭력에 저항해온 여성주의의 노력과 실천을 퇴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의 범죄화가 여성주의적으로 출발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을 가부장의 소유물로 인식해온 가부장제의 권력이 한편에서는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성폭력을 스펙트럼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같은 개념을 끌어내면서 성폭력반대운동이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운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순결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나라당의 제안은 성범죄가 마치 특정한, 혹은 뭔가 결함이 있는 남성들만의 문제인 것으로 성폭력을 치부해버리고 그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그러면서 이면에 깔린 가부장제의 폭력을 오히려 희석시킬 수 있다. 한나라당의 그간의 행태로 보아 익히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상습성에 있어서 그 심각성이 절대 덜하지 않은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심지어 범죄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묶여있는데...

 

물론 보호는 중요하다.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호'이기 때문에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만 그런가. 일단 보호받는 느낌, 즉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것이 매우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고 실효성을 따져볼 수도 있지만 성폭력이 자행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일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런 기회가 성폭력의 범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성범죄의 처벌에 대한 모색을 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한나라당의 show에도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성폭력특별법에서 문제되고 있는 친고죄 규정이나 항거불능상태에 대한 판단 등과 관련된 지점들이 성폭력을 얼마나 축소시키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처벌의 정도나 범위, 방식에 대해서 '여성'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내게도 어색할 정도로 단정적인 글이 됐다. 단어들도 생경하다.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극복하려다보니 글을 쓰면서 조금 경직되어있었다는 걸 지금 느낀다.(피곤해서일지도 ^^;;) 어쩌면 보호받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금은 단호하게 글을 열어놓는다.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지면 좋겠다.

 

(구금 역시 감시와 분리에 기반한 제도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것이라는 수준에서 접어버렸다. 실제로 전자감시제도가 구금의 현대적 방식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처벌을 통한 교화는 불가능하다, 혹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사회통제수단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나아가고 싶지는 않다. 쩝)

 

(행인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 하나. 가해자인권이 아니라 범죄자인권이라고 분명히 써주면 좋겠어요. 물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이성적으로는 옹호해야 하기에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성폭력에 대해 유독 가해자라는 표현을 쓸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물론, 제 글의 논지는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범죄자인권과 여성인권의 대립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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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9 00:54 2005/04/2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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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lgun 2005/04/29 02: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뭔가 쓰면서 정리해 보려고 벼르고있었는데. ^^ 결국 안하게 되지 않을까-_-;;(그런데 미디어 참세상 관련기사에도 트랙백을 보내보심이 어떨지..홍보중입니다. 그러니까..ㅎㅎ)

  2. hi 2005/04/29 09: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제 백분토론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지더군요. 그런데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에서나 정작 그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가 없더군요. 아, 그리고 마지막 덧말에 대해선데요. 가해자 인권이라는 말이 그닥 감성적으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죠. 하지만 성폭력에 대해서만 "유독" 가해자라 표현하는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판단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범죄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가해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3. hi 2005/04/29 09:2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성폭력범죄자들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만큼은 가해자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제가 글을 쓰면서 성폭력범죄자들에 대해서만 "유독" 가해자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는 뜻인가요? 더구나 제 글의 논지가 "범죄자인권"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나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정확하게 제 글에서 그 단어의 선택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제 글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판단하신 것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미류 2005/04/29 09: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달군, 저도 안하게 되지 않을까 하다가 못 참고 -_-;; 조만간 트랙백 날리겠슴다~ ^^

  5. aumilieu 2005/04/29 09:5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행인, 제가 얘기를 좀 이상하게 했네요. 행인이 '유독'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성폭력과 관련해서는 '유독' 가해자인권에 대한 논란이 사회화하면서 범죄자의 인권침해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보다는 '그럴 만한 일이냐' '그 정도까지 처벌해야 할 일이냐'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라도 범죄자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행인의 글이 범죄자인권 차원에서만 논의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구요. 그냥 관련글이라 트랙백한 건데... 행인의 시원한 글은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