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그리고.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농담을 곧잘 했다. 농담일 때도 있고 교양용일 때도 있고 시비용일 때도 있는데 가끔은 그렇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용역들이 마을 어귀에서 들어올 준비를 하며 방패를 곧추세웠고 막으려고 섰던 사람들과 용역들 사이에서는 어김없이 신경전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무얼하러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앳되보이는 용역들에게 상황의 진실을 눈물로 호소하며 다독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인간도 못되는 놈들이라며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다. 늘 그렇듯 욕이 나오는 마음은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깔아뭉개는 욕설이 듣기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몸싸움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욕설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가야 할 세상의 진실일 지도 모르니.

 

하지만 도저히 짜증을 숨길 수가 없는 욕설이 있었다. "씨팔년." 정확하게는 '씹할 년'이다. '씹'은 표준국어대사전에  '1) 여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2) 성교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있다. (참고로, 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은 '좆'이다. 그런데 이 말은 성교를 비속하게 이르는 데에는 사용되지 않더군. 질삽입성교 중심의 비속어다.)

 

쨌든 이 말을 듣는 '년'이 과히 기분나쁘지 않을 수가 없다. '좆같은 놈'이라는 욕설과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씹할 년'이라는 말은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성교를 할 여성' 혹은 '성교를 할만한 여성'이라는 말일 텐데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재로서는 '막 다뤄도 되는, '니 맘대로' 해도 되는 여성'이라는 뜻일 뿐이다. 누군가를 '개새끼'라고 욕할 때 불려나오는 개한테 미안한 정도의 감수성은 없지만 '씹'이라는 말이, 혹은 '성교'가 욕설이 되는 상황은 안타깝기도 하다. 사실, 인간의 몸을 소재로 한 갖은 욕설은 모두 속상하다. 그것이 성기든, 신체의 다른 일부든, 사람 몸을 굳이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는 소재로 사용하냔 말이다.

 

그러나 짜증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욕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오히려 그런 욕을 직접 들을 때 욕설의 의미 따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가 들어서는 안될 어떤 말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고 그렇게 욕설이 오가는 상황에서는 어떤 욕을 들었어도 똑같이 모욕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표준국어대사전까지 찾아가면서 욕설을 되새겨보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 남성이 남성에게 던지는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대치하고 있는 이편에서 어떤 사람이 저편의 용역에게 "씨팔년, 꼬나봐?" 라며 비싯 웃었다. 나는 어쩌면 내가 직접 그 욕설을 들었을 때보다 더 화끈거렸고 화가 났다. 왜 상대 남성을 깔아뭉개기 위해 '년'을 동원해? 왜 '씹할' 년이라고 시비를 걸어? 주위에 듣는 '년' 많다는 거 안 보여? 가만히 있는 '년'들은 니가 아무렇게나 입에 담아도 되는 건 줄 알아? !!! 아!!!

 

남성이 사용하는 욕설 중에는 여성을 동원해 상대를 비하하는 욕설들이 많다. 굳이 비속어까지 들이밀지 않더라도 '여자같은 놈'이라는 말 자체가 '그'들에게는 욕이다. 여성이 직접 욕을 듣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결국 모든 여성은 욕설의 소재일 뿐인 것이다. 이렇게 젠더를 이용한 권력이 자리잡기.

 

'이편'에 있었기 때문에 조근조근 이야기라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얼굴도 보기 싫어서 혼자 궁시렁거리기만 했다. 살짝 후회. 살짝인 것은 그 자리에서 말해도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았을 듯해서.

 

쨌든 궁시렁거리는 동안 생각난 또하나의 상황은 작년 아펙반대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아펙기동대 부산회동>. 재미있는 발상들을 통해 아펙을 쉽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부시와 빈 라덴의 '밀월'을 암시하는 장면은 과연 그냥 웃어넘겨도 되는 것인지 무척 난감했다. 장면 자체는 부시와 빈 라덴이 항문성교를 하는 모습을 합성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비열한 야합, 몰래 숨어서 하는 짓' 등을 상징하는 장면이었고 한국처럼 MSM(men sex with men)과 동성애에 대한 구분이 없는(구분이 있는 나라라고 다르게 보였겠느냐마는)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비속화한 욕이었을 뿐이다. 동성애라고 생각할 필요 있겠느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항문성교더라도 마찬가지다.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이용한 욕설의 영상화였을 뿐.

 

그래서 결국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동원한 욕설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 욕설들에 동원되며 비하당하는 사람'. 그것이 아마 'sex/gender/sexuality Class'일 터. 게다가 늘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만 흔히 떠올리는 '전선'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

 

덧. 쨌든 기분 더러웠는데, 이렇게 이어쓰기는 그렇지만, 서있는데 뒤에서 용역 한 명이, 새파랗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꽤나 젊은 아이가, "나도 똥구멍이 끊어지게 가난해서 나온 거예요'라며 항변하더라, 씁쓸하더라, 왜 이렇게 만나는 거냐...

 

굳이 또 덧붙이면 이런 상황에서 '씨발, 좆같은 세상'이라는 욕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거, 기분 더럽다. 언제까지 내 기분을 더럽히고 있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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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21:37 2006/04/0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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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him 2006/04/10 11: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 똥구멍이 끊어지게 가난해서 나온 아이라는 녀석 말이지... 꽤 비싼 상표의 옷과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어. 계속 여기에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줄때 계속 '안들려요! 고만해요!"라고 떠들던 아이이지. 누군가 여기와서 농사를 지으면 먹고는 산다는 말에 "내가 왜 농사를 지어요!"라고 떠들던 아이지. 마치 "내가 왜 군대를 가요!"라는 말처럼 하더라구. 친구가 다쳤다며 까진 팔을 보여주더라구, 그래서 너도 친구가 다치면 마음이 아프구나. 그랬어. 그래도 우리들 말에 꼬박꼬박 대꾸를 했던거 보면 그 놈 마음이 더 불편했던 거야. 그 아이들, 이동하면서 우리를 보면 머리 숙여서 인사도 하고, 조심하라고 협박이 아닌 걱정도 해주던 아이도 있었어.
    아주 기분 더럽고 무기력했던 날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느낀 희망도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그 아이들 욕을 통해서 미류가 느낀 불편함과 함께 그 아이들의 불편함도 헤아린다면(물론 너무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사는게 조금은 덜 슬플꺼같아서 말야...
    석방축하한다고 그리고
    연행될때 조금 더 강하게 주저앉혀서 안보냈어야하는데...하는 마음이 들어서 불편했던 며칠에 대해서
    이야기해줄라고 들렸는데 이상한 이야기만 잔뜩했네....
    암튼 몸조리 잘해요....

  2. 무위 2006/04/10 12: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본론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욕의 어원을 안다는 것은 참 거시기할 때가 있죠. 오래전 우리말에 관심있을 때 욕의 어원에도 관심이 좀 있을 때가 있어서 약간은 알고 있는 편이거든요. 정작 하는 사람은 뜻도 모르거나 뜻을 의식하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듣는 내 입장에서는... 이젠 남녀 구분없이 하도 많이 써서 욕이나 비속어 축에도 못끼는 '졸라'도 뜻을 생각하면 듣기 참 민망한 말이고요 '니미씨팔'은 뜻을 생각하면 어지간히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쓸만한 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중얼거리면서도 사용할 정도죠. '화냥년'은 써서는 안될 잘못된 욕이고...

  3. 노바리 2006/04/10 12:4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여성이라는 젠더 자체를 비하하는 성폭력. 이죠, 결국은. 여성을 일단 열등한 존재로 가정하고 상대를 그 열등한 존재로 끌어내리거나 넌 열등하다고 환기시켜주는. 굉장히 마초적인 면이 있던(그러나 나름 성찰하고자 하던) 지인이, 군대에서 가장 수치를 주는 욕이 '씨발년'이라고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

  4. rivermi 2006/04/10 14: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이 든 여성?을 은근히 비하하는 말로는 "아줌마"를 따라올 단어가 없는 듯...쌍팔욕보다 가끔은 이 단어가 더 열받을 때도..나이들어 콤플렉스여서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사회에서 나이든 남성보다 나이든 여성은 어떤 경우에든 나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림과 비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고 나이든 여성을 비하하는 가장 상징적인 호칭이 "아줌마"인듯..
    프랑스에서는 "마담"이라는 아주 우아한 호칭이 있듯 우리도 대처할만 모 좋은 단어 없을런지...아줌마의 개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같아...

  5. slowpeace 2006/04/11 07: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잘 보고 갑니다. 석방된거 축하드리고요. 이 글 보고 뜨끔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종종 그 말을 썼던 제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잘 배우고 가요...^^;;;;;

  6. 미류 2006/04/11 11: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침| 이제 조금 마음이 놓였다면 다행. 사실 그때 주위에서 '엉뚱한' 연행이 자행되는 걸 위에서 보면서 무지 화났고 그래도 사람들을 중간에 끌어내는 것 보면서 다행스러웠는데 내 스스로는 연행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버리기는 했어. 그래서 내려온 다음에는 그냥 걸어갔고... 아침 달려오는 거 보면서 마음 든든했던 거 알죠? 아침도 몸 잘 챙겨요. ^^ (참, 그 욕은 용역 아이들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아마 누군가 내뱉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들은 건- 학생으로 보이는 황새울 지킴이였다는... -_-)

    무위| 너무 많은 욕들이 정말 그렇죠? 저도 모르는 게 많고... 사실 모를 때가 더 편했던 것도 ㅜ,ㅜ

    노바리 |군대라는 사회에서 그 욕이 어떤 느낌으로 사용될 지 대략 짐작되네요 -_-; '욕'이라는 게 대부분 특정한 집단을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폭력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욕을 듣는 당사자에게만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미갱| 그날 어떤 용역이 날 겨냥해서 '아줌마네~?' 이러더라구요.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해줬어요. ^^;

    영은| 방가방가. 석방이라니 민망하네요. ^^;;

  7. 지나가다 2006/04/11 23: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세상에는 두가지 인간이 있다..는 논리는 저도 애용하는데요, 저의 경우에는 그게 고정적이랍니다.
    세상에는 '나쁜 놈'과 '멍청한 놈'이 있을 뿐이다...라고요.
    간혹 멍청한 나쁜놈들도 있지만 대부분 저 두가지 잣대만으로도 구분할 수 있더군요.
    똥꾸멍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나왔다던 그 친구, 덧글을 보니 분명 나쁜놈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그럼 나머지 하나겠죠?)

  8. 미류 2006/04/12 20:3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나쁜 일을 했지만 나쁜 놈은 아니었겠죠? 갑자기 저는 둘 중에 뭘까 고민이 되네요.

  9. azrael 2006/04/19 15: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는 농담으로 이런 얘기 많이 해요. 세상에는 세종류의 인간이 있다. 조합원 같은 인간, 비조합원 같은 인간, 사측 같은 인간.ㅋㅋ

  10. 미류 2006/04/19 18: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말 그럴 듯하군요. 이제 세 종류로 바꿔볼꺼나~ ㅋㅋ
    지난번 사슴벌레 왔을 때 못봐서 아쉬웠어요. <강의> 읽고 한번 보자고 했던 게 벌써 1년이 된 것 같네요. ^^;